258화 대전쟁의 종결
"이 무슨 배신이란 말인가! 절대로 단독 강화는 없을 거라고 하더니!"
독일은 오스트리아의 ‘배신’에 격분했다.
독일이 단독 강화 여부를 추궁하자, 오스트리아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독일과 운명을 함께하며 단독 강화는 없을 거라고 약속했었다. 그런데 일방적으로 단독 강화를 선포한 것이었다.
"배신자 합스부르크! 연합국과 결탁해 독일의 등 뒤에서 음모를 꾸미다니!"
"오스트리아 놈들은 독일 민족의 수치다!"
"빈으로 진격해 합스부르크를 끌어 내려라!"
독일 군부는 펄펄 뛰며 ‘오스트리아의 배신을 징벌하기 위해’ 빈 진격과 프란츠 페르디난트 폐위를 외쳤지만, 현실적으로 서부전선의 방어도 뚫린 마당에 그럴 여유가 있을 리 없었다.
"불가리아는 그렇다 쳐도, 오스트리아 없이 전쟁을 어떻게 수행하지?"
"터키의 항복도 시간문제입니다."
"이제 서부뿐만 아니라 동부와 남부에서도 적군이 밀려올 수 있소."
이제 독일에 남아 있는 동맹은 없었다. 아직 오스만제국이 공식적으로 항복하진 않았지만, 10월 초에 엔베르 파샤를 비롯한 친독파 대신들이 경질되어 독일 군함을 타고 베를린으로 망명했다. 친영파 자유주의자들이 기용된 새 정부는 연합국에 강화를 요청했다. 사실상 항복 수순이었다.
10월 25일, 오스만도 연합국과 정전협정을 체결함에 따라 이제 독일만이 유일한 교전국이 되었다.
"이젠 정말 우리만 남았군."
"강화는 피할 수 없겠지. 하지만 연합국이 계속 무리한 조건을 강요한다면, 군은 제국의 존속을 위해서라도 최후까지 저항할 수밖에 없소."
이미 서부전선도 붕괴 직전에 놓였건만, 군부는 여전히 최후의 저항을 운운했다.
연합국은 8월 중순에 시작된 2차 공세로 독일군에 상당한 타격을 입혔고, 9월 하순에 3차 총공세를 감행했다.
서부전선에 전개된 연합군 총병력은 660만. 프랑스군 260만, 영국군 190만, 미군 180만, 벨기에군 20만, 이탈리아-포르투갈 파병군 10만이었다. 그야말로 총력을 갈아 넣은 최후의 대공세였다.
이에 맞서는 서부전선의 독일군 총병력은 약 300만으로, 이조차도 대부분은 4년간의 전쟁과 기아, 독감으로 지치고 병든 병사들이었다. 연합군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진격! 낙엽이 지기 전에 이 전쟁을 끝내자!"
"좋다! 추수감사절까지 독일의 항복을 받아 내자!"
연합군은 힌덴부르크 라인을 돌파하고, 독일군에게 ‘최후의 심판’을 내렸다.
독일이 4년간 점령했던 북프랑스의 점령지들은 모두 수복되었다. 국토의 90%를 점령당했던 벨기에에서도 절반을 수복했다.
10월 하순까지 북쪽에서 남쪽으로, 헨트-릴-스당-메츠가 수복되었고, 연합군의 다음 목표는 앤트워프-브뤼셀-룩셈부르크-스트라스부르였다.
"Vive la France! Vive la Republique!"
특히 프랑스로서는 뜻깊은 순간이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참패한 스당에서 독일군을 격파하고, 독일에 강탈당했던 로렌의 메츠를 탈환했다. 프랑스 제3공화국이 그토록 염원하던 알자스의 스트라스부르 탈환이 눈앞이었다.
"조국을 위하여 4년 동안 할 만큼 했다. 이제 더 이상의 전투는 한계다."
독일군은 예전과 같은 저항을 보여 주지 못했다. 전의를 상실하고 집단으로 항복하는 병사들이 늘어났다. 독일군의 붕괴, 아니 독일제국의 붕괴가 임박했다.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국가의 존속이 달렸습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전쟁을 끝내야 합니다."
"아직 적은 메츠를 제외하면 독일 영토에 진입하지 못했소! 항복이라니 가당치도 않소!"
군부는 서부전선의 붕괴가 눈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연합군이 독일 영토에 진입하지 못했음’을 주장하며 결사항전을 외쳤다.
이는 시간문제였다. 만약 독일이 끝까지 저항한다 한들, 늦어도 12월이면 연합군이 독일 본토에 진입할 것이고, 겨울이 되면 독일은 기아를 버텨 낼 수 없었다.
"이대로 계속 저항해 봐야 무의미한 희생만 늘어날 뿐입니다."
"치욕스러운 항복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군은 피비린내 나는 최후까지 싸울 각오가 되어 있소."
루덴도르프의 뻗댐에 총리 바덴 공은 할 말을 잃었다. 그는 결심을 굳혔다.
"폐하, 이제 시간이 없습니다. 군부는 국가를 파멸로 이끌고 있습니다. 내각과 루덴도르프 중에 양자택일하십시오."
카이저 빌헬름은 바덴 내각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대로 계속 버티다간 러시아처럼 혁명과 퇴위에 직면할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카이저는 마침내 최고사령부에 맞서 민간정부를 지지하기에 이르렀다.
진작 그랬다면 제국의 수명을 연장했겠지만, 너무 때늦은 결단이었다.
"그간의 노고에 고생이 많았소, 장군. 하지만 장군은 서부전선 붕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오. 참모차장 겸 병참감에서 물러나시오."
10월 26일, 카이저는 루덴도르프에게 경질을 통보했다. 힌덴부르크는 군의 사기를 위하여 참모총장 직위는 유지했지만, 모든 권한을 박탈당했다. 이제 실질적인 군부 최고 책임자는 신임 병참감 빌헬름 그뢰너 대장이었다.
일방적인 경질 통보를 받은 루덴도르프는 분을 삭이지 못했다. 카이저를 알현하는 자리에선 냉정함을 유지하며 물러났지만, 궁전을 떠나면서 외쳤다.
"프로이센의 군주가 군부를 배신하고 정부의 신사 나리들을 택해? 두고 보라! 2주 안에 우리에겐 제국도 카이저도 없을 것이다."
루덴도르프의 외침은 패배자의 원망 섞인 저주였지만, 마치 예언처럼 되고 말았다.
지도부의 변화는 이미 때가 늦었다. 민간과 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진 상태였다. 마치 1917년의 러시아처럼, 군사적 참사와 전쟁 피로감은 혁명의 분위기를 충족시켰다.
우익의 망상처럼, 패전의 원인은 혁명 때문이 아니었다. 패전으로 인해 혁명이 발생한 것이다.
기아와 물질적 궁핍은 노동자들의 파업과 군인의 불만을 야기했다.
불만은 마침내 임계점에 도달했다. 도화선은 해군에서 비롯되었다.
"해군 최고사령부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이라는 명령을 내렸다는군."
"미쳤나? 패전이 임박하니 다 같이 죽자는 거야?"
"책임은 지휘부 놈들이 져야지, 왜 우리더러 지라는 거냐?"
독일제국해군 최고사령부는 영국해군에 맞서 최후의 결전을 명령했다. 카이저의 자랑이었던 제국해군은 전쟁 기간 내내 영국의 해상봉쇄에 맞서 별다른 전공을 세운 바가 없었다. 1916년 유틀란트 해전만이 유일한 함대결전이었다. 그마저도 무승부로 끝났고, 해군의 작전은 잠수함으로 국한되어 있었다.
해군 사령부는 패전을 앞두고, ‘해군의 명예’를 위하여 전멸을 각오하고 최후의 결전을 벌이겠다는 생각이겠지만, 수병들은 무의미한 자살작전에 동조할 생각이 없었다.
"이 빌어먹을 전쟁을 끝내라!"
"우리는 평화와 빵을 요구한다!"
"카이저는 물러나라! 최고사령부를 해체하라!"
10월 31일, 군항 킬(Kiel)에서 수병 반란이 일어났다. 함대 사령부는 주모자들을 체포해 진압하려 했지만, 조선소 노동자들이 결합하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거쳤다.
수병들은 함대를 점거하고, 킬 시내를 점령했다.
수병과 노동자들은 ‘평화와 빵(Frieden und Brot)’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노동자-군인 평의회를 수립했다.
마치 러시아와 유사한 상황이 재현되고 있었다.
즉, 혁명이었다.
"평화! 빵! 자유! 군국주의 타도!"
독일의 잘 발전된 철도망이 혁명의 수송대 역할을 했다.
수병들은 고향으로 무작정 귀향을 시작했고, 북부의 대도시인 함부르크가 혁명의 기점 역할을 했다.
이미 인내의 임계점에 도달해 있던 대도시 주민들도 혁명의 대열에 동참했다. 혁명을 상징하는 붉은 깃발이 도시마다 휘날렸다.
혁명은 함부르크, 브레멘, 하노버, 쾰른,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뮌헨, 드레스덴으로 번져 나갔다.
"군주정을 타도하라! 공화국 만세! 혁명 만세!"
혁명은 제일 먼저 독일제국을 구성하는 왕국의 군주들을 타도 대상으로 삼았다.
바이에른의 비텔스바흐 왕가, 작센의 베틴 왕가, 뷔르템베르크 왕가 등이 모두 몰락했다. 이들 왕가는 각 지역에서 천 년 가까이 통치한 유서 깊은 가문이었지만, 혁명에 맞서 그들을 옹호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불과 며칠 사이에, 22명의 국왕과 대공, 공후들이 폐위되었다. 왕국 정부를 대신해 노동자-군사 평의회가 통치에 나섰다. 평의회를 주도하는 정파는 단연코 사회민주당(SPD)과 이들로부터 분리된 급진파 독립사회민주당(USPD)였다.
11월 7일이 되자, 독일 전역에서 유일하게 남은 왕가는 프로이센 국왕이자 독일 황제인 호엔촐레른 가문뿐이었다.
"혁명이 베를린까지 번지는 걸 막아야 하오! 사민당이 대중을 통제해 주시오."
"나 역시 혁명을 죄악처럼 싫어합니다만, 군중과 병사의 급진화는 당이 통제할 수가 없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저들이 요구하는 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더 큰 사태로 번질 겁니다."
총리 바덴 공은 사회민주당 지도자 프리드리히 에베르트(Friedrich Ebert)에게 혁명을 막아줄 것을 호소했다. 에베르트는 사민당 소속이지만 사회주의 혁명을 우려하는 인사였다.
"무엇을 하면 되겠소?"
"카이저의 즉각적인 퇴위. 만약 퇴위하지 않는다면 사회혁명이 불가피할 겁니다."
에베르트의 최후통첩을 받은 바덴 공은 즉시 벨기에의 최고사령부에 있는 카이저에게 퇴위를 요청하는 전문을 보냈다.
하지만 카이저의 답변은 단호했다.
"짐은 충성스러운 군대를 이끌고 베를린으로 복귀하여 질서를 회복할 것이다."
최고사령부의 카이저는 상황을 몰라도 전혀 몰랐다. 독립사민당은 대규모 시위를 조직했다. 카이저가 당장 퇴위하지 않으면 무력을 뒤엎을 기세였다.
11월 9일 정오. 바덴은 빌헬름의 승인을 기다리지 않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황제 폐하께서는 제위를 포기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황태자는 황제의 퇴위 이후 임시로 섭정을 맡으며, 보통선거에 의한 제헌의회 수립으로 새로운 정치 체제가 수립될 때까지만 재임합니다. 제국총리에는 사회민주당의 에베르트가 취임하며…….」
일방적인 퇴위 선언문을 받은 카이저는 격노했다.
"누구 마음대로 퇴위를 운운해! 짐이 베를린으로 진격하여 이 반역자 빨갱이들을 타도할 것이다!"
빌헬름은 즉각 군부를 소집해 베를린으로의 진격을 요구했지만, 병참감 그뢰너 대장은 이미 각 전선 사령관들의 의견을 취합한 뒤였다.
"폐하.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입니다만, 폐하께서 베를린으로 진격하신다 할지라도 따르는 장병은 없을 겁니다."
그뢰너의 단호한 답변에 카이저는 충격을 받았다.
"대체 맹세는 어찌 된 것인가? 카이저에 대한 신성한 깃발맹세는 어디로 갔는가?"
제국군이 카이저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깃발맹세’. 빌헬름은 여전히 맹세가 영원하리라고 믿었다.
"폐하, 깃발맹세는 오늘날에는 그저 단어에 불과합니다. 병사들은 아무도 따르지 않습니다."
각 전선 사령관들도 모두 베를린 진격이 불가능하며, 카이저의 퇴위를 권유하는 전문을 보냈다.
마치 1년 반 전의 차르처럼, 카이저도 시민의 분노와 군부의 외면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배신, 정말 지독한 배신이로군! 군대가 카이저를 배신하다니, 너무나 수치스러운 일이야!"
빌헬름은 이제 카이저가 아니었다. 그는 독일로 돌아갈 생각을 포기하고, 그대로 중립국인 네덜란드로 망명하는 길을 택했다.
"시민 여러분, 카이저가 퇴위했다! 썩어빠진 구체제는 무너졌다. 군국주의는 끝장났다!"
"와아아아아아!"
"독일 민족은 언제나 승리했으며, 공화국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를 상징한다! 독일 공화국 만세!"
"공화국 만세!"
부총리이자 사민당 지도자인 필리프 샤이데만(Philipp Scheidemann)은 제국의회에 몰려온 군중들 앞에서 제국의 종말과 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 군중들은 일제히 열렬한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에베르트는 공화국 선포 소식을 듣고 벌컥 화를 냈다.
"당신에게 공화국을 선포할 권리가 어디 있소? 새로운 제헌의회가 선출되기 전까지는, 아직 헌법적으론 제국이오! 오직 국민에 의해 선출된 제헌의회만이 공화국을 선포할 권리가 있단 말이오!"
이 와중에도 에베르트는 헌법과 절차를 따졌지만, 혁명은 그런 절차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이로써 독일제국의 멸망이 현실이 되었다.
동시에 군사국가 프로이센 왕국이 종말을 고하는 순간이었다.
호엔촐레른 왕조가 프로이센의 전신이 되는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가 된 지 500년 만의 일이었다.
* * *
평화의 마지막 걸림돌이 사라졌다.
휴전협정을 위해 프랑스 콩피에뉴의 연합군 최고사령부로 파견되었던 사절단은 독일에 혁명이 발생하고 카이저가 퇴위했다는 소식을 받았다.
"독일군은 모든 전선에서 즉각 철수하고, 무기와 함대 전부를 연합군에 넘긴다. 알자스-로렌은 프랑스에 반환되고, 라인강 서안을 프랑스군이 점령한다. 독일 정부가 정전협정을 충실히 이행하도록, 영국해군의 해상봉쇄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연합군 최고사령관 페르디낭 포슈 원수는 정전협정의 조건을 내밀었다. 4년 동안 온갖 희생을 감내하며 승리를 위해 분투했던 국가에 너무나 가혹한 조치였다.
"이런 조건이라면, 베를린에서 제2의 혁명이 일어나고 독일 전역이 혼돈에 빠질 겁니다."
"선택은 당신들의 몫이오. 정전조건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전쟁을 지속해서 연합군이 무조건항복을 쟁취하게 만들든지. 나는 후자여도 상관없소."
포슈의 본심으로 말하면, 단연코 후자였다. 그는 독일을 재기불능으로 짓밟아 놔야 한다고 생각했고, 지금보다 더 적절한 때가 없었다.
마침내 새 정부는 어떤 조건에서라도 즉각 정전협정을 체결하라는 전문을 보냈다.
11월 10일 일요일 오전 11시 15분, 연합군 최고사령부와 독일 대표단은 정전협정에 서명했다.
동부전선의 공식적인 항복은 그로부터 이틀 뒤인 11월 12일이었다.
독일군 동부전선 사령관 팔켄하인이 보낸 대표단이 러시아군 총사령부가 있는 페트로그라드에 도착했다.
러시아군 총사령관 브루실로프 대장은 독일의 항복문서를 접수했다.
"이로써 공식적으로 4년간의 전쟁이 종결되었습니다. 무수히 많은 희생을 내가며 승리를 거둔 러시아 인민과 군대, 연합군 동지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만세! 만세! 만세!"
일제히 환호와 만세가 쏟아졌다.
여전히 폴란드, 리투아니아, 발트,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일대가 독일군에게 점령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동부전선은 독일의 생각처럼 그들이 이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전투에서는 패배했을지 몰라도 전쟁에서는 이겼다. 연합군 덕이라 할지라도 러시아는 승전국의 일원이 되었다.
이는 200만 명이라는, 연합국 최대 규모의 전사자라는 막대한 희생에 보답하는 길이었다.
"마침내 승리했군요. 축하드립니다."
"아아, 함께 축하할 일이지요. 귀국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겁니다."
한국 파병관 사령관 홍범도의 축하에 브루실로프는 정색하며 거수경례했다.
한국이 흘린 피는 러시아에 비교하면 백분지일에 지나지 않았지만, 동부전선의 전세 변화에 기여한 당당한 승전국의 일원으로서 받는 경례였다.
홍범도는 엄숙한 태도로 고개를 숙이며 거수경례했다. 단순히 러시아군 총사령관에게 보내는 경의가 아니라, 이 전쟁으로 희생된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경의였다.
이로써 4년 2개월간의 파멸적인 대전쟁은 종결되었다.
무수히 많은 시체와 포탄으로 얼룩진 폐허, 셀 수 없는 절망과 분노를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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