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황태자와 친왕
대한제국 황태자 이진의 미래는 탄탄대로였다. 그 누구도 이진의 국본(國本) 지위를 부정하는 이가 없었다. 이진의 권위를 위협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사실은 누구보다 이진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권리와 의무를 그 누구보다 확실하고 강렬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이진은 명실공히 대한제국 미래의 황제였다.
‘정친왕 이안.’
그런데도, 이진은 못내 이복동생 이안이 신경 쓰였다. 그 자신도, 이성적으로는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다. 형제라지만, 자신은 황태자고 이안은 친왕이었다. 제위를 계승할 황태자와 친왕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친왕, 그것도 서자를 신경 쓴다는 건 그 자신의 체통을 갉아먹는 일이었다.
‘동기(同氣)를 사랑하고 우애로써 대해야지.’
이진 본인도 아우를 우애와 사랑으로 대하려고 노력했다. 어릴 적에 이안을 내심 경계하고 미워했던 것은, 치기 어린 소년 시절로 치부했다.
황후 아영은 자신의 소생이 아닌 이안과 이라도 친자식처럼 아꼈다. 서자도 법적으로는 중궁의 자식이기도 했거니와, 아영 본인이 진심으로 그들을 자식처럼 대했다.
이진은 어머니를 본받아 이안과 이라를 친아우처럼 대했다. 그들 남매도 맏형을 존중하고 잘 따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이선이 흐뭇해하게 여기는 건 당연했다.
물론, 이진이 이복아우를 우애와 사랑으로 대하는 건, 다분히 부친을 신경 써서였다. 이진은 언제나 부친에게 실망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부친에게 치기 어린 맏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동생 이라를 대할 때는 일말의 거리끼는 감정 없이 아낄 수 있으면서도, 왜 이안을 대하는 건 묘한 감정을 느끼는지, 이안의 소식은 왜 이진에게 후련치 못한 기분으로 다가오는지, 이진 자신도 그 감정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안이 광무학교 수석 졸업이라.’
5년 전, 자신이 걸었던 그 길을 이안이 그대로 따라 걸었다.
이진도 수석 졸업이었다. 그런데 그 자신이 최우등을 받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었던가. 황태자란 이유로 형식적인 수석을 받았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진정한 수석이 되기 위해 밤낮없이 공부했다. 태자로서의 의무를 병행하면서 이뤄진 성과였다.
그런데 들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안은 그다지 학업에 열의를 보이지 않는데도, 성적은 언제나 우등을 도맡는다고 했다.
‘그럼 안은 타고난 천재란 말인가?’
이진과 이안이 종종 만나 대화를 한다고는 하지만, 대개 안부를 물을 뿐이지 깊게 이야기를 한 적은 없었다. 그럴 때 보면 딱히 번뜩이는 천재성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학업성적은 유독 뛰어났다.
친왕이라는 이유로 형식적인 우등을 줬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정말로 우수했다. 어떤 교수가 이안의 답안을 보고 5년 전의 황태자와 비견될 만하다고 찬사를 보냈다가, 학장의 질책을 받고 시말서를 썼다고 한다. 이진은 못내 불편했다.
‘부황으로 똑같은 혈통을 물려받았다. 어릴 적부터 교육은 내가 훨씬 좋은 교육을 받았다.’
교육 수준만 놓고 봐도, 미래의 황제인 이진은 어릴 적부터 최고의 스승들을 초빙하여 교육을 받았다. 이안은 모친 마르가리타가 직접 가르친 정도였다. 물론 마르가리타가 페테르부르크 의과대학 출신의 의사로, 당대 여성으로는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았음을 감안해야 했다. 그래도 이진을 가르친 미국·영국·프랑스 등지에서 초빙된 유수의 학자들과 비견될 수는 없을 터였다.
‘그런데도 나는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최우등을 받고, 안은 학업에 열의를 보이지 않아도 최우등이라고?’
반은 사실이고, 반은 과장이었다. 이진은 태자로서의 의무에 종사하면서 학업을 병행해야 하니 당연히 노력을 배로 필요했지만, 이안은 학업 외에는 할 일이 없으니 이진만큼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이안이 겉보기에는 학업에 열의가 없어 보여도, 어릴 적부터 꾸준히 해 온 다양한 독서와 폭넓은 사고가 학업에 도움이 되는 건 분명했다.
이진이 체계적인 커리큘럼의 교육을 받아 모범적인 답안지를 냈다면, 자유롭게 인문학적 사고를 해온 이안은 독창적인 답안지를 냈다. 객관식이라면 이진이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지만, 서술형 주관식이라면 오히려 이안이 이진보다 나을 수 있었다.
이진이 조선의 전통적인 세자 강학(講學)에 근대적 교육을 받았다면, 이안은 자유롭게 서양의 인문학적 교양(Bildung)을 쌓았다.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차이였다.
하지만 이진에게는 그런 차이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건 결과였다. 이안이 자신과 대등한 결과를 얻는 것도 내키지 않는데, 만약 자신보다 더 우월하다면 참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아니야! 이런 생각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 안이 그토록 뛰어나다면 황실의 경사가 아니겠는가?’
이진은 이성적으로 자신의 시기심을 꺾으려고 했다. 이진을 추종하는 종친과 칙임관 자제들이 황태자의 심기를 헤아린답시고 이안을 깎아내리려 할 때였다.
“정친왕이 올해 광무학교 최우등이라면서요?”
“기이한 일입니다. 내 아우도 올해 졸업하는데, 아우에게 듣기론 정친왕은 딱히 열심히 공부하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뭐, 그럼 친왕이라고 교수들이 어련히 점수를 잘 줬겠나 보군요.”
“그건 아닐 듯싶소. 나 역시 황태자라고 해서 거저 쟁취하지 않았소. 노력으로 얻어 낸 성과지요.”
이진의 말에 좌중이 무안한 듯 입을 다물다가, 누군가 곧잘 아부를 했다.
“그렇습니다. 태자 전하의 빼어난 재능과 성실함으로 얻어 낸 성과지요.”
“정친왕도 그렇게 해냈겠지요.”
이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또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아우 말로는, 정친왕은 그 누구하고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그 누구도 정친왕과 어울리지 않으려고 한다는 게 답이겠죠.”
“하긴, 누가 정친왕과 어울리려고 하겠어요.”
“맞아요. 딱 봐도 우리와 생긴 것부터 다른데. 황실에 백인 혼혈이라니…….”
혈통 운운하는 이야기가 나오자, 이진은 정색하며 분노를 터뜨렸다.
“말을 삼가라! 정친왕은 황제 폐하의 아들이자 대한의 친왕이다. 어디서 감히 혼혈 운운하는가? 네놈이 감히 존엄한 황통을 깎아내리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 성싶은가?”
전에 없는 황태자의 분노에 좌중은 고개를 조아리며 잘못을 빌었다. 이진은 꼴 보기도 싫다는 듯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기세였다.
‘좋든 싫든 안은 황실의 일원이다. 황실의 존엄을 침해하는 자는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이진은 이안의 존재가 못내 신경 쓰였지만, 황제의 아들이자 황실의 일원이라는 걸 절대로 부정한 적이 없었다. 아니, 바로 황실의 일원이기에, 그렇기에 신경이 쓰이는 것이었다.
한동안 태자로서의 의무가 바빠 이안의 거취를 신경 쓰지 않고 있던 이진은, 뜻밖의 소식에 놀랐다.
‘왜 부황께서는 굳이 안에게 러시아 황태자와 공주들을 망명시키고 보호하는 일을 맡기셨을까? 익문사와 궁내부에서 어련히 할 일이 아니던가?’
이진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굳이 이안이 나서도 되지 않을 일이었다. 그런데도 부황이 이안에게 이런 중차대한 임무를 맡기다니.
‘차라리 이건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그들하고는 내가 더 가깝고, 그들의 망명도 내가 제일 먼저 동의했는데.’
그런 생각을 하던 이진은 고개를 저었다.
‘황태자로서 해야 할 일이 있지, 그건 내가 할 일이 아니다. 그래, 정부가 아닌 황실의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안이 맡는 것도 아주 이상한 건 아니다.’
망명을 받는 주체가 한국 정부가 아니라 황실이라면, 누군가 황실을 대표해 맞이하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왜 하필 이안이냐, 여전히 신경 쓰이는 일이긴 했지만, 의친왕 이강이나 영친왕 이영이 나설 수 없는 상황인 걸 감안하면, 이안이 임무를 맡게 된 것도 이해를 할 수는 있었다.
‘부황께서 그들의 망명을 받아 주신 건, 물론 인간적인 감정도 있으시겠지만, 대한의 국익을 위해서겠지. 어쩌면 저들을 내세워, 러시아 사회민주주의 정권에 반대하는 이들을 규합해 극동 지역에 개입할 여지를 만들지도…….’
이진은 망명 승인을 정치적 계획의 일부라고 해석하고 있었다. 그는 부친 이선이 언제나 국제정치적으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래, 대련의 상황이 그렇단 말이지. 알겠네.”
이진은 대련에 귀를 열어 두고 있었다. 러시아 황실의 거주지인 저택에 파견된 궁내부 직원 중에는 이진의 사람도 있었다. 그를 통해서 이진은 비밀리에 별도의 보고를 받았다.
‘안이 공주들과 제법 친해졌다, 라. 동년배 소년 소녀가 모여 있으니 그럴 법도 하지.’
이진이 대련에 별도의 정보망을 유지하는 건, 이안이나 공주들을 감시할 목적은 아니었다. 만약 ‘불상사’가 발생한다면, 부친의 귀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이 먼저 무마하려는 목적이었다.
그 ‘불상사’의 성격이란, 이진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형태로 드러났다.
“오라버니, 어쩌면 안이 우리보다 먼저 혼례를 치를 수도 있겠어.”
동복동생 예경공주 이희가 하는 말에, 이진은 농담이려니 여겼다.
“그게 무슨 되지도 않는 소리야? 아직 안은 열일곱밖에 안 됐어. 더욱이 태자인 내가 아직 혼례를 올리기 전인데.”
“글쎄, 들어 봐. 대련에서 이런 일이 있는 모양이야.”
이희는 마리야와 아나스타샤가 이안을 놓고 경쟁 중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안이 이 문제를 놓고 자신에게 상담을 청했고, 이희는 진정 어린 조언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안에게 고맙다는 답이 왔다. 어느 정도 일단락이 됐다고 생각한 이희는 대수롭지 않게 오빠에게 이야기를 알렸다. 그들 남매간에는 애초에 비밀이 별로 없었고, 이진이 가장 가깝게 여기는 사람도 이희였다. 이진이 여동생에게만큼은 속내를 드러내는 것처럼, 이희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진의 반응은 이희의 예상 밖이었다.
“그걸 왜 지금에야 말하는 거야? 그런 일이 있었다면 내게도 알렸어야지!”
“왜 화를 내고 그래? 안이 문의를 한 건 나였지 오라버니가 아니잖아.”
“그래도 그런 중대한 일이 있었다면, 당연히 내게도 알렸어야지! 그래야 내가 제때 개입할 수 있을 거 아니냐!”
“중대하다니? 남녀 간의 사소한 일인데, 오라버니가 개입할 필요가 뭐가 있어?”
이희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자, 이진은 정색하며 꾸짖었다.
“너 정신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황실에 추문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그게 사소한 일이라고?”
“추문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그럼 미혼의 남녀들, 그것도 대한 황실의 친왕과 러시아 공주들이 혼례도 없이 사랑 타령을 하고 있는데, 이게 추문이 아니면 뭐란 말이냐?”
이진은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이야기를 여동생을 통해 들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어리석은 놈, 대체 뭘 보고한 거야? 친밀해졌다고? 이게 친밀한 정도냐?’
이진에게 보고하는 궁내부 직원은 내밀한 사정까지는 알지 못할 터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난 오라버니가 왜 이렇게 정색하고 화를 내는지 모르겠어. 두 공주가 안을 좋아한다는 게 그렇게 큰 문제야? 안이 온갖 위험을 넘어 그들을 구했잖아. 그리고 한동안 같이 지냈고. 남녀 간에 호감의 감정이 싹트는 건 자연스러운 일 아니야?”
이희가 이치를 들어 설명해도, 이진은 요지부동이었다.
“대한의 친왕과 러시아의 공주가 어디 평범한 남녀더냐? 무릇 황족이란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단 말이다! 그런데 이 엄중한 시국에 사랑 타령이나 하고 있어?”
이희는 여전히 오라비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까지 정치적 의미를 두고 해석할 일인가 싶었다.
“나도 안에게 당부했어. 이성으로서의 처신은, 대한 황실의 법도와 친왕의 명예에 어긋나지 않은 선에서, 네가 스스로 잘하리라 믿는다고. 그리고 안은 내 당부대로 황실의 법도와 친왕의 명예에 어긋나지 않았어!”
“지금이야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정분난 남녀 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찌 아나? 당장이라도 안을 황성으로 소환해야지.”
이진의 지레짐작에, 이희도 마침내 목소리를 높였다.
“대체 안과 공주들의 명예를 뭐로 보는 거야? 그렇게까지 그들이 어리석을 거라고 생각해?”
“역사를 보면, 인간이 사랑에 눈이 멀어 어리석은 짓을 한 건 허다해! 하물며 스물도 안 된 애송이의 짧은 생각으로 무슨 짓을 벌일지 아나!”
이진도 아우가 무슨 잘못된 행동을 할 정도로 어리석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 번 엇나간 감정은 멈추질 못했다.
“오라버니, 안이 그렇게 신경 쓰여?”
“뭐?”
뜻밖의 말에 이진은 허가 찔렸다.
“오라버니가 안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건 알아. 하지만 그렇게까지 부정적으로 말할 필요는 없잖아.”
“뭐? 나는 안을 동기의 우애로 대하는…….”
“나도 알아. 다른 누군가 안을 비난하면 오라버니가 오히려 감싼다는 걸. 하지만 내 앞에서만큼은, 안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잖아. 그게 오라버니의 솔직한 속내겠지.”
이희는 침착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내가 오라버니에게 안의 이야기를 한 건, 물론 이런 반응을 기대하고 말한 게 아니었어. 안이 이런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을 만큼 다 컸다는 걸, 유럽 최고의 신붓감이었던 러시아 공주들에게 호감을 얻을 만큼 훌륭하게 컸다는 걸 알리고 싶었거든.”
“…….”
“나는 안이 내게 고민을 털어놓고 상담을 청해서 기뻐. 이 아이는 나를 친누나처럼 여기고 있구나 싶었거든. 하지만 왜 오라버니에게는 친형처럼 다가가지 못할까. 그건 오라버니가 마음의 벽을 쌓고 있기 때문이야.”
이희의 말에 이진은 화를 내지도, 반박하지도 않았다.
‘그런가? 내가 마음의 벽을 쌓고 있나?’
이진은 생각했다. 여동생에게 이야기를 듣고 왜 분노의 감정부터 들었는지.
‘공주들은 내가 먼저 봤고, 더 친밀하게 대했고, 망명도 내가 제일 먼저 추진했지. 그런데 왜 내가 아니라 안에게?’
1913년에 처음 러시아를 방문한 이래, 공주들과 먼저 친분을 쌓고 ‘사촌’처럼 가깝게 대한 건 자신이었다. 차르의 호소에 가장 먼저 망명을 받아들인 것도 자신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을 구하고 보호하는 임무는 이안이 맡게 되었고, 공주들의 호감과 사랑을 받게 된 것도 이안이었다. 바로 그 점이 이진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내가 대체 안보다 부족한 게 뭐길래? 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건 내가 아니라 안이지?’
결국 이진을 분노하게 한 건 질투의 감정이었다. 그는 부친이 자신보다 안을 더 사랑한다고 느꼈다. 이선이 안다면 오해라고 반박할 터였다. 장남이자 황제의 후계자인 이진을 대하는 건 자연히 상대적으로 엄격할 수밖에 없었고, 차남인 이안을 대하는 건 자애로웠다.
하지만 이진은 부친이 마르가리타를 사랑했으므로, 그 자식까지 더 사랑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부친을 존경하고 숭상하는 만큼, 그는 부친의 관심과 사랑에 목말랐다. 이안은 어릴 때부터 그걸 빼앗고 있는 본능적인 경쟁자였다.
그런데 이제는 러시아 공주들조차 ‘이안을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니, 이진의 본능적인 경쟁 심리가 폭발하고 만 것이었다.
‘그래, 녀석이 사랑 타령이나 한다면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르지. 러시아 공주랑 결혼이라도 한다면, 영친왕 숙부처럼 자연히 계승권에서 멀어질 테고…….’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치자, 이진은 자신에 대한 혐오감을 느꼈다.
‘내가 녀석을 후계 경쟁자로 생각하고 있었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애초에 이안은 이진과 경쟁 대상이 아니었고, 그럴 의지도 없었다. 이진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안을 본능적인 경쟁자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런 감정은 불필요하고 어리석은 것이지. 나도 안다. 하지만…….’
이진도 이성적으로는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는 질투와 시기가 솟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억제하려고 노력해도, 잘되지 않았다.
장차 모든 걸 가지게 될 대한제국 황태자가, 유일하게 경쟁 심리를 느끼고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 정친왕 이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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