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아시아의 희망
그런데, 아시아의 여론은 이선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한국 만세!”
“한국 황제 폐하 만세!”
문무대왕호가 기항하는 곳마다, 한국과 이선에 대한 환호가 쏟아졌다.
“안남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오랜 역사와 유학적 전통이 있는 나라입니다. 안남인들은 동양의 형제지국인 한국을 숭모합니다!”
“프랑스는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으면서 안남을 짓밟고 있습니다. 부디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안남도 한국처럼 자주독립을 이루고 싶습니다!”
프랑스령 베트남의 사이공에서는 이선을 향해 독립청원 행렬이 몰려들어 경찰이 항구를 겹겹이 에워쌀 정도였다.
“폐하, 송구합니다만 상륙은 자제해 주십시오. 민족주의 과격파들이 폐하께 어떤 위해를 가할지 모릅니다.”
베트남인들은 위해는커녕 열렬한 환대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프랑스 식민당국은 정반대로 왜곡을 해서 상륙을 막았다. 베트남인들이 이선에게 독립청원서를 보내는 걸 어떻게든 막으려는 심산이었다.
프랑스 당국의 요청으로 문무대왕호는 상륙하지 않고 사이공을 떠나야 했다.
나중에 사이공 주재 영사관 전보를 통해서, 이선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해프닝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아시아를 대표해 강화회의에 참석하는 폐하는 아시아의 희망입니다!”
“폐하, 우리의 요청을 외면하지 말아 주십시오!”
“아시아의 희망, 한국 만세!”
이선으로서는 당혹스럽게도,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시아의 희망’이 되어 있었다.
파리에 도착한 윌슨이 ‘세계 평화의 사도’로 추앙을 받듯, 파리로 향하는 이선은 아시아의 희망으로 불렸다.
1900년대에는 메이지유신으로 근대화를 이룩하고, 러일전쟁에서 대등한 싸움을 보였던 일본이 아시아의 희망으로 떠올랐다면, 1919년에는 단연 한국이 아시아의 희망으로 보였다.
가난한 약소국이었던 한국이 자주독립을 쟁취하고 근대화에 성공했다는 이야기, 연합국의 일원으로서 강대국인 독일에 맞서 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했다는 소식은 아시아인들을 열광시켰다.
“한국이 독일을 격파하고, 동양을 대표하여 서양 열강과 담판을 한다!”
“한국은 일본보다 더 열악한 사정에 놓여 있었는데도, 자주독립과 개혁을 모두 이룩했다. 우리도 한국을 본받아 독립과 개혁을 이뤄 내자!”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이끈 한국의 지도자’ 이선과 한국의 국력은 실제보다 훨씬 높이 평가되고 미화되어 아시아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1900년대 베트남과 태국, 터키와 이란 등지에서는 근대화의 상징으로서 메이지의 초상화가 내걸렸다.
그런데 상징 그 자체에 불과했던 메이지와 달리, 이선은 직접 근대화를 이끈 지도자였다.
동으로는 필리핀에서 서로는 터키까지, 남으로는 네덜란드령 동인도(인도네시아)에서 북으로는 몽골에 이르기까지, 독립과 근대화를 꿈꾸는 젊은 아시아주의 지식인의 집에는 이선의 초상화가 내걸렸다. 이들의 모임에서는 이선의 업적이 적힌 전기(傳記)가 낭독되었다.
“가난한 약소국, 중국의 번국이었던 한국은 어떻게 단기간에 자주독립과 부국강병을 이룩할 수 있었는가? 어떻게 서양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력한 국가가 되었는가? 바로 개혁을 이끈 위대한 지도자가 존재했고, 국민이 일심으로 단결하여 근면히 매진한 덕분이다.”
“한국은 우리의 모범이다! 한국 황제는 역사를 바꾼 위대한 지도자다!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지도자가, 근면하고 깨어난 국민이 필요하다!”
정작 이선 자신이 들으면 터무니없는 과장이라고 손사래를 칠 말들이었다.
‘난 이미 역사를 알고 있었으니까 가능했던 일이지. 모든 오류를 피하고 정답만을 택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 기적이 없었더라면 어림도 없었다.’
물론 아시아인들이 그런 속사정을 알 수 없으니, 그들의 눈에는 이선이 정말로 역사를 바꾼 초인적인 지도자로 보였다.
과거에 일본으로 향했던 유학생의 발걸음은 한국으로도 향했다. ‘한국의 기적’을 배우려고 하는 이들이 서울로 몰려들었다.
한국 정부도 친한파 양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아시아 유학생을 유치했으니, 바로 이들이 미래의 지도자가 될 수도 있었다.
아시아 근대화의 상징으로 떠오른 이선이 직접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하니, 빠르게 소문이 퍼져 나갔다.
“한국 황제가 아시아 민족들의 자결을 위하여 파리에 간다더라.”
“과연! 서양 열강에 맞서 우리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은 한국 황제밖에 없다!”
베트남에서, 말레이에서, 실론과 인도에서, 심지어 아라비아에서도 문무대왕호가 기항하는 곳마다 열렬한 환호가 쏟아졌다.
“영국은 인도에 참전의 대가로 자치를 약속했습니다! 영국이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폐하께서 도와주십시오!”
“강화회의에서 인도의 자결을 위하여 힘써 주십시오, 폐하!”
영국은 대전 기간 인도에 자치를 약속하고 대규모 병력을 모병했다. 인도인들은 그 약속을 믿고 영국군에 지원하여 승리를 위해 싸웠다. 그 결과 파리강화회의에도 대표단을 보낼 수 있었으나, 영국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싹 씻고 말았다.
“인도는 독립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캐나다, 남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처럼 자치를 하게 해 주십시오!”
“자치도 국민의 수준이 올라가야 가능한 일이오. 인도인에게 그럴 준비가 되었소?”
영국은 국민 수준 운운하며 자치 약속을 짓밟았다. 영국의 배신에 분노한 인도 민족주의자들은 자치에서 독립으로 전환했다.
여전히 영국과 타협이 가능하다고 믿는 자치론자들은, 영국의 동맹이자 ‘아시아의 희망’인 이선에게 매달렸다.
영국 식민당국은 문무대왕호의 기항과 현지 유력자의 방문을 허용했지만, 영국 관리가 회견을 감독했다.
아시아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한국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라빈드라나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는 이선의 인도 방문을 기념하여 헌시(獻詩)≪동방의 등불(The Lamp of the East)≫을 썼다.
「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촉(燈燭)의 하나인 한국이여
그 등불이 다시 켜져 세상을 비추니,
그대는 진정 동방의 밝은 빛이로다!」
‘이거 어디서 본 시 같은데……. 실제 타고르가 식민지 조선에 보내는 시였던가? 여기선 이렇게 역사가 바뀌는 건가? 내용이 다른 것 같기도 하고.’
“폐하, 자유를 열망하는 아시아의 형제들은 한국을 마음의 조국처럼 여깁니다. 부디 한국이 인도와 아시아의 자유를 위한 등대가 되어 어둠을 환하게 비추는 빛이 되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로부터 직접 헌시를 받을 정도로, 생각지 못했던 열렬한 환영에 이선은 당혹감을 감추며 원론적인 말을 했다.
“민족자결의 대의가 파리에서 관철될 수 있도록, 짐과 한국 대표단은 노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와아아아아!”
“아시아 민족자결의 후원자이신 한국 황제 폐하 만세!”
사람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이선의 초상화와 태극기를 들며 열렬히 환호했다.
‘나이 50대에 갑자기 뭔 국제적 아이돌이냐. 빨리 자리를 피해야겠다.’
“폐하께서는 오랜 항해로 인해 매우 피로하십니다. 여러분의 뜻은 잘 이해하였으니, 이만 물러나 주셨으면 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평안한 여정을 기원합니다. 부디 저희의 열망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한국 만세! 황제 폐하 만세!”
이선은 자신에 대해 쏟아지는 열렬한 환영에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부담감을 느꼈다.
이선은 식민제국이자 한국의 동맹인 영국과 프랑스가 경계하지 않도록 지극히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말만 했지만, 사람들의 기대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이선이 A라고 말하면 B라고 인식했다.
이선은 아시아의 희망이 될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되어 있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만…….’
원역사에서 1919년, 조선인들이 윌슨에게 걸었던 기대, 미국과 열강을 향해 품었던 기대와 같았다. 그들은 진정으로 윌슨과 파리강화회의가 민족자결과 식민지 해방을 위해 노력한다고 믿었고, 전국적인 만세운동과 함께 독립을 열망하는 청원을 보냈다.
바로 그와 같은 기대가, 이선에게 향하고 있었다. 이선과 윌슨의 차이는, 민족자결을 약속한 윌슨과 달리 이선은 아무것도 약속한 게 없다는 점이었다.
그런데도 아시아 지식인들은 이선에게 기대를 품었다. 이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화적인 존재가 되어 있었고, 아시아 지식인들은 실재하는 이선이 아닌 상상 속의 한국 황제를 만들고 아시아의 자유를 위해 싸울 대변인으로 기대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데, 본의 아니게 실망을 안겨 주겠군.’
실재하는 이선은, 대한제국의 국익을 위해 노력하는 노회한 현실정치가일 뿐이었다. 결코 서양 열강에 맞서 아시아인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줄 수 없었다. 오히려 서양 열강과 야합하여 세계 분할을 논의하러 가는 길이었다.
그 자명한 사실이 이선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자신들에게 소박한 희망을 보내는 이들에게는 ‘배신’으로 보일 터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선은 한때 조선의 자유와 희망을 위해 분투해 왔다. 하지만 이제 와서 아시아의 자유와 희망을 위해 분투하기에는, 너무 늙었고 냉소적인 정치가였다.
문무대왕호는 인도양을 횡단해 홍해로 접어들었다. 수에즈 운하를 넘어서면 이제 지중해였다.
아라비아 헤자즈(Hejaz) 왕국의 제다 항에 기항한 문무대왕호를 향해, 열성적인 아랍 민족주의자들이 모여들었다.
“폐하, 아랍 민족의 통일을 위하여 파리에서 힘을 보태 주십시오!”
이 지역은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의 후손인 하심 가문(Hashemites)의 영역이었다. 메카의 수호자인 후세인 빈 알리(Hussein bin Ali)가 통치했다.
후세인과 그의 아들 파이살(Faisal)은 1916년 영국과 손을 잡고,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 맞서 ‘아랍 봉기’를 일으켰다.
아랍전문가인 영국의 연락장교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Thomas Edward Lawrence)는 후세인과 파이살에게 독립된 통일 아랍 왕국을 약속했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아랍인들뿐만 아니라 그 약속을 한 로렌스까지 속였다. 중동 이권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영국은 결코 통일 아랍을 만들어 줄 생각이 없었다. 오스만 제국을 해체한 후에 프랑스와 나눠 먹을 계산이었다.
아랍 독립을 약속한 지 얼마 안 되어, 영국은 프랑스와 이른바 사이크스-피코 협정(Sykes–Picot Agreement)을 체결했다. 오스만 제국의 해체 이후, 영국과 프랑스가 중동을 분할한다는 밀약이었다.
파이살 왕자와 아랍인들은 밀약의 존재는 까맣게 모른 채로 영국군과 함께 싸웠고, 1918년 종전 때까지 오스만 군대를 무찌르고 시리아 다마스쿠스를 정복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당연히 약속대로 통일 아랍 왕국이 생길 거라고 기대했던 아랍인들에게, 뜻밖의 사태가 전개되었다.
강화회의를 앞두고 러시아 민주연방공화국이 러시아와 연합국 간의 비밀외교문서를 공개한 것이었다.
러시아의 명분은 ‘세계의 모든 민족에게 공정한 외교를 위하여, 차리즘의 야욕을 낱낱이 공개한다.’는 것이었으나, 실상은 영국과 프랑스를 겨냥한 공세였다.
사이크스-피코 협정도 공개된 문서 중의 하나였다. 러시아제국은 협정 당사자가 아니었으나, 오스만 제국의 해체에 일익을 담당할 예정이었으므로 영국이 동의를 얻고자 협정문을 보냈다.
“이런 배신자 이교도 놈들!”
“이용만 해 먹고 버릴 생각이었단 말인가?”
밀약이 세상에 공개되자, 영국과 프랑스의 국제적 위신은 크게 추락했다.
영국은 당황했고, 아랍은 경악했으며, 러시아는 기뻐했다.
“폐하, 우리는 연합국의 승리와 아랍의 해방을 위해 싸웠습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우릴 배신한 이상, 우리가 호소할 나라는 러시아와 함께 독일을 격파한 아시아의 희망 한국입니다. 부디 파리에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아랍 독립을 위해 분투한 파이살 왕자께서도 파리에서 폐하의 방문을 고대하고 계십니다!”
아랍 민족주의자들은 말로만 부탁하지 않고, 열렬한 환대와 선물을 안겨 주었다. 아라비아의 보물과 금, 향신료와 각종 특산품이 문무대왕호로 향했다.
이선은 이번에도 원론적인 대답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여러분의 처지를 충분히 이해합니다. 자결과 통일의 대의가 관철될 수 있도록, 짐과 한국 대표단은 노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오오!”
“알라께서 황제 폐하를 보우하시기를!”
“비스밀라 히르라흐마닐라힘(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알라의 이름으로)!”
이선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영국 놈들은 똥을 전 세계에 싸지르고 앉았냐. 니들이 싼 똥을 왜 내가 대신 치워 주라는 부탁을 받아야 해?’
“우리는 독일을 격파할 정도로 성장한 귀국의 국력과 군사력이 부럽습니다. 아랍 신생국가가 자주독립을 지킬 수 있도록, 귀국의 군사교관을 파견하고 유학생을 보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선도 이런 부탁까지는 거절하지 않았다.
“좋습니다. 긍정적으로 검토하지요. 귀국하는 즉시 정부와 논의하여 결정하겠습니다.”
“오오, 감사합니다.”
“한국 만세!”
이선도 아랍을 위해 뭔가 해 주고 싶어도, 아랍은 한국에서 너무 멀고 이해관계가 적었다.
훗날 아라비아 반도에서 쏟아 낼 엄청난 석유를 생각하면 미리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 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중동 전체를 자신들의 세력권으로 여기는 영국이 석유 이권에 끼어드는 걸 용납할 리가 없었다. 중동의 석유 이권을 함께 하고 싶다면, 이 시대에는 페르시아나 아랍보다는 오히려 영국을 잘 설득해서 받아 내야 했다. 석유는 중동에서 날지라도, 이권은 영국이 갖고 있었다.
‘석유는 만주에서나 집중해야지. 아랍은 아직 때가 아니다. 훗날을 위해서 우호적인 감정은 심어 둬야지.’
아직 세계전략을 나설 때는 아니었다. 지금은 오로지 동아시아, 만주에 집중할 때였다.
* * *
파리 강화회의. 파리에서는 러시아 대표 트로츠키가 ‘식민지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영국과 프랑스 대표단에게 다시 묻습니다. 귀국은 민족자결의 대의를 존중합니까?”
“당연하지요.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 동유럽 국가들의 민족자결은…….”
“식민지의 설움을 느끼는 나라는 동유럽에만 있지 않습니다. 대영제국과 프랑스 공화국이 세계 최대의 식민국가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되지요.”
“그럼 러시아는 세계 최대의 영토를 확보하면서 모든 민족의 의지를 존중했단 말이오?”
“차르의 러시아와 혁명의 러시아는 다릅니다. 연방공화국은 이미 폴란드와 핀란드의 독립을 인정했습니다.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인민이 원한다면, 그들 또한 독립을 쟁취할 것입니다.”
트로츠키는 독일제국과 패전국들뿐만 아니라, 대영제국과 프랑스 식민제국까지 해체할 기세로 외쳤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아일랜드와 인도, 아랍과 아프리카, 수많은 식민지 인민이 부르짖는 민족자결의 외침을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약소국 대표단은 열렬히 환호를 보냈지만, 서방 연합국은 골머리를 썩였다.
“도대체 저 작자는 파리에 왜 온 건가? 우리를 조롱하러 온 건가?”
“언제까지 지켜만 볼 겁니까? 강화회의를 자기네 혁명의 선전장으로 삼고 있지 않소!”
“러시아를 회의에서 축출해야 합니다!”
“아니, 사회주의자들을 러시아에서 축출해야지요! 러시아의 채무불이행으로 프랑스가 입은 손해가 얼마나 큰지 압니까?”
프랑스와 영국은 격렬하게 러시아를 비난했다. 이탈리아와 일본도 러시아 비난 대열에 합류했으나, 정작 윌슨은 느긋했다.
“러시아가 우릴 대신해서 프랑스와 영국에게 뺨을 날려 주니 흐뭇하군. 제국주의자 놈들 같으니라고.”
미국은 러시아에 떼어먹힌 돈이 상대적으로 적었고,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공포도 덜했다.
공개외교를 주장하는 윌슨은 러시아가 공개한 비밀문서들을 보고, 영국과 프랑스의 비밀외교를 더욱 용인할 수 없게 됐다.
대독 보복에 혈안이 되어 자신의 국제주의적 이상을 무너트리려는 영국과 프랑스를 러시아가 대신 비난해주니, 윌슨은 기꺼운 마음으로 경청하고 있었다.
물론 보수적 자유주의자인 윌슨은 사회주의를 결단코 용납할 생각이 없었지만, 머나먼 러시아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개입할 생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