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정복의 백기사 (610/812)

24화 정복의 백기사

러시아에서 본격적인 내전의 불꽃이 발화된 1919년 봄.

그건 갑자기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누적된 의심과 증오의 표현이었다. 계급 갈등, 민족 갈등, 지역 갈등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기에 전쟁은 시작부터 잔혹한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소비에트 러시아나 서방 연합국이나 관심사와 충돌지역은 유럽, 즉 우랄산맥 서쪽의 러시아였다.

국제전의 양상을 보인다고 해도 중동부유럽이었다. 러시아는 독일에 혁명을 수출하려 했다.

「독일 인민이여! 과거 여러분을 억압하는 건 호엔촐레른 황실과 프로이센 군국주의자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인민의 혁명으로 권좌에서 축출된 지금도 여러분의 고통은 끝나지 않고 있다. 왜 그런가? 바로 영불 제국주의자들이 독일을 향해 가혹한 복수심을 드러내며, 프로이센 군국주의자들의 죄악을 독일 인민을 쥐어짬으로써 갚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에 맞서 일어서라, 독일 인민이여!」

러시아는 패전 이후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고 있는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를 향해 혁명적 선동을 이어 나갔다.

신생 독일 공화국을 주도하는 사회민주당은 러시아와 거리 두기에 나섰지만, 제1야당 독립사회민주당은 급진적 여론을 대표해 모스크바와 연대했다.

독일의 사회주의 혁명은 서방 연합국에는 최악의 악몽이었고,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사태였다.

“우리는 러시아 민주주의 연방공화국을 연합국으로 받아들였지,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받아들인 바는 없다. 소비에트 정권을 연합국의 일원으로 인정할 수 없다.”

러시아의 국호개정을 명분 삼아, 서방 연합국은 소비에트 러시아를 파리강화회의에서 축출했다.

이미 서방 연합국과 관계를 끊을 각오를 했던 러시아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한때 대혁명의 수도였던 파리는, 추악한 제국주의자들의 온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1789년 파리에서 시작된 혁명이 세계를 뒤흔들었듯이, 1917년 페트로그라드에서 시작한 혁명이 세계를 뒤흔들 것이다. 파리가 다시 세계혁명의 수도로 돌아올 그 날을 기다리며, 러시아 대표단은 파리에서 철수한다.”

트로츠키를 대리하여 러시아 대표단을 이끌던 치체린은 철수를 선언했다.

서방 연합국이 소비에트 러시아의 승인을 거부하고, 러시아 대표단도 파리에서 철수함에 따라, 연합국과 러시아의 외교적 관계는 사실상 끊어지고 말았다.

이윽고 폴란드가 연합국의 전위대가 되어 러시아에 맞서기 시작했고, 연합국은 ‘볼셰비키에 맞서는 모든 세력’, 독립을 선포한 국가들과 반혁명 우파를 은밀히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러시아나 연합국이나 초점은 모두 유럽에 맞춰져 있었다. 

우랄산맥에서 시베리아를 넘어 태평양에 이르는 러시아령 아시아는 광활한 영토였지만, 인구는 희박하고 교통은 불편했다. 

러시아군의 동원령 해제로 아시아 지역에 주둔한 군대는 적었고, 새로 편성된 붉은 군대의 급한 불도 유럽이었으므로 한동안 방기되었다.

모두가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던 이 시베리아-극동에서, 예기치 못한 충돌이 발생했다.

* * *

1918년 11월 종전 이후, 러시아에 파병되었던 연합국 군대는 순차적으로 철수를 개시했다.

서방 연합군과 체코군단은 종전으로 안전이 확보된 발트해 항로를 이용해 귀국할 수 있었지만, 동방의 한국군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따라 머나먼 귀국길에 올라야 했다.

10만 한국군의 철수에는 예기치 못한 변수가 계속 잇달았다.

혁명과 전쟁의 여파로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극도로 지연되었다. 모스크바에서 만주에 이르는 철로 연변에는 한국군을 태운 기차가 일렬로 죽 늘어져 있었다.

지연은 기다리면 해결될 문제라고 쳐도, 문제는 스페인 독감이었다.

「이스판카(스페인 여인), 마침내 러시아도 습격하다!」

독감의 기원은 미국이 유력했지만, 스페인에는 억울하게도 이미 대중적으로 ‘스페인 독감’으로 알려졌다. 스페인 전통 복장을 입은 여인으로 상징된 죽음의 여신이 유라시아 대륙을 덮쳤다.

중부동맹국의 패전 원인 중 하나였던 스페인 독감은, 1918년 늦가을 독일군 포로를 통해 러시아군에도 전파되었다.

러시아 정부는 부랴부랴 감염의 온상이 되고 있는 군대를 해산시켰지만,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들을 따라 독감이 퍼져 나갔다. 러시아의 열악한 의료 사정과 맹렬한 추위는 삽시간에 독감을 전파시켰다.

“본국에서 방역대책이 도착했다! 모두 안면가리개를 쓰고, 사람 간에 최대한 접촉을 피할 것!”

“아니, 언제 10만 명분의 안면가리개를 확보합니까? 그리고 밀집된 군대 안에서 접촉을 피하는 게 가능합니까? 더군다나 이 좁아터진 객차 안에서?”

“무슨 잔말이 많아? 명령이니까 하라면 해!”

독감의 전파는 한국군의 철수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전투에서는 유능함을 보였던 파병군 사령부도 전례 없는 사태에 혼란에 빠지긴 매한가지였다.

급하게 ‘안면가리개(마스크)’를 쓰라는 명령이 떨어졌지만, 러시아에서도 극도로 부족한 물량이 한국군에게 주어질 리가 없었다. 한국에서 생산된 마스크가 도착하려면 시간을 한참 필요로 했다. 결국 파병군은 보급품 안에서 자체해결을 해야 했다. 의료용 천도 모자라 심지어 군복까지 잘라서 마스크가 보급됐다.

하지만 좁은 공간에 다수가 밀집한 군대에서 전염은 피할 수 없었다.

치사율은 낮지만 전염력이 높은 독감은 삽시간에 한국군도 덮쳤고, 환자의 수는 갈수록 늘어났다.

1918년 여름에 서방 연합군을, 가을에 중부 동맹군을 덮쳤던 독감이 겨울에는 한국군을 덮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서반아 독감의 전염력이 전례 없는 수준이라고 하던데, 즉각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1910-11년 만주 페스트를 기억하고 있는 한국 정부는 세계에서 들려오는 불길한 소식에 화들짝 놀랐다.

이선과 개화당은 집권 초기부터 전염병 방지에 만전을 기했다. 1880년대에는 천연두, 1890년대에는 콜레라, 1910년에는 페스트에 맞서 싸웠다.

위생과 의료가 근대국가를 가르는 초석이라고 생각했던 개화당 정부는, 스페인 독감에도 기민하게 대응했다.

특히 서재필은 미국에서 전염병학을 전공하고 군의총감을 지낸 의사 출신이니만큼, 스페인 독감을 막기 위한 각고의 대책을 세웠다.

“황제 폐하의 긴급 칙령이다! 모든 국민은 서반아 독감 예방대책을 준수하도록!”

1882년 이선에 발탁되어 종두법을 전국에 전파한 이래, 오랫동안 예방의학의 선두에 서 있다 은퇴했던 지석영이 복귀하여 방역 대책을 총괄했다.

내무부 위생국에서 긴급히 작성한 ≪서반아 독감 예방주의서(西班牙豫防注意書)≫가 전국에 반포되었다.

과거 천연두와 콜레라와 마찬가지로, 독감에도 방역의무가 가호마다 전달되었다. 군수품을 만들어내던 공장에서 신속히 마스크가 생산되었고, 도시 거주민은 외출 시 마스크 착용이 필수화되었다.

정부로부터 상당한 권한을 받은 각지의 ‘위생순검’은 방역의무를 위반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가차 없이 공권력을 휘둘렀다.

신속하고 강제적인 조치 끝에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독감의 무풍지대가 되었지만, 정부는 안심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독감이 전파한 최초 사례가 유럽에 파견되었다 귀환한 해군이었다고 합니다. 군항 사세보를 통해 독감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대로 국군이 본국으로 귀환하면, 독감이 삽시간에 번질 게 분명합니다. 파병군은 심지어 10만이나 되지 않습니까.”

“당분간 러시아, 만주, 일본의 출입국을 통제하고, 모든 해외입국자를 대상으로 입국을 엄격히 선별해 국내 전염 방지에 만전을 기하시오.”

한국 정부는 파병군의 철수를 일시적으로 중단시켰다. 상대적으로 인구가 희박한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만주철도 연선에 파병군을 분산 배치하여 전염을 최소화하고, 어느 정도 진정이 되면 철수를 재개하기로 했다.

파병군에는 실로 가혹한 조치였지만, 정부는 2천5백만 국민의 안위를 더 중시했다.

“국군 병사들은 러시아의 극단적 좌경화와 사회주의 선동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있었다. 이대로 아무 대책 없이 귀환했다가는 본국에 혼란을 전파할지도 모른다.”

“독감보다 더 무서운 게 붉은 물입니다. 사회주의라는 전염병이 대한에 아예 못 들어오게 막아야 합니다. 철저히 정훈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독감에 가려져 있었지만, 철군 중단의 목적 중 하나는 정부와 군부 상층부의 불신이었다.

러시아 혁명의 확산은 군대를 통해서 이뤄졌다. 병사 소비에트는 4월 혁명 이후에 러시아 정국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고, 사회민주노동당과 사회혁명당이 권좌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노동자·병사 소비에트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러시아에서 잇달아 들어오는 흉흉한 소식, 빈농 출신인 한국군 일부 사병들도 러시아 혁명의 영향을 받아 좌경화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정부는, 파병군을 걸어 다니는 전염병 보균자로 인식하게 되었다.

“머나먼 타국에서 전공을 세운 장병들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비록 급진적 환경에 노출되었다고 해도, 대한국군은 절대적으로 황제 폐하와 정부에 충성합니다.”

“아, 여부가 있겠소? 어디까지나 전염병 대책을 위한 방비일 뿐입니다. 장병들의 영웅인 장군이 잘 이해시켜 줬으면 합니다.”

파병군 사령관 홍범도 대장이 서둘러 귀국하여 정부를 설득했지만, 신임 민영환 내각은 파병군의 귀환을 중단시켰다.

민영환 자신이 공안경찰 총수였던 만큼 사회주의를 사갈시(蛇蝎視)하고 있었고, 내각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원훈 박영효도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잘됐소. 국군이 계속 러시아에 어물쩍 눌러앉아 있어야 하오. 그럼 자연히 러시아와 충돌할 일이 생길 거고, 공격의 명분이 생기겠지. 독감을 예방하듯, 더 무서운 전염병인 사회주의도 예방해야 합니다.”

박영효는 ‘예방전쟁’의 야심을 저버리지 않았다. 만약 전쟁이 벌어지면 국내에 있는 병력도 시베리아로 출병해야 할 판인데, 기껏 러시아에 있는 병력을 국내로 되돌린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민영환 내각은 대리청정을 맡고 있는 황태자 이진에게 파병군 철수 중단을 요청했다.

“경들의 진언이 그러하다면, 그리하시오. 다만 군대와 관련된 일이니만큼, 반드시 대원수 폐하의 재가를 받아야겠소.”

“지당하시옵니다. 신등이 폐하께 전문을 보내겠나이다.”

그 무렵 프랑스로 향하는 배 안에 있던 이선은 ‘방역 목적의 철군 중단’을 보고받고 재가했다.

“흠, 장병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지. 독감 전파를 막기 위해 철군은 일시 중지하되, 파병군에게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하라. 그 외에도 진급, 훈장, 포상, 은사금의 조치를 취해 장병들의 불만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프랑스로 떠나기 전에 국내 방역을 단단히 당부하고 갔던 이선으로서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조치였다.

“정부의 훈령이 도착했다. 러시아와 청국의 양해를 얻었다고 하니, 당분간 러시아와 만주에 주둔하면서 전염 방지와 치료에 전념하라고 한다.”

“예엣? 귀환을 고대하던 병사들이 납득하겠습니까?”

“적당히 발표해. 대한국 정부와 군부는 철군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나, 러시아 상황이 워낙 개판이라 철수가 느려지고 있다고.”

병사들의 불만이 속출할 건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철군 중단이라니? 정부가 우릴 버린 건가요?”

“전쟁도 끝났는데 왜 여기에 멈춰 있어야 하는 겁니까? 러시아군도 해산되었는데!”

“그럴 리가 있겠나? 순차적으로 철군할 거야. 저 망할 러시아 빨갱이 놈들이 나라를 망쳐 버리는 바람에, 철도 사정이 개판인 건 다 보지 않았나? 그래서 철군이 늦어지고 있는 거라고.”

독감 확산 못지않게 파병군 장병들의 좌경화를 두려워하고 있는 사령부는 책임을 은근히 러시아의 혼란상에 전가했다.

“대원수 폐하께서 우리를 저버릴 리가 없다. 폐하께서는 언제나 신민을 적자(赤子)처럼 아끼시고, 국군은 특히 사랑하지 않으셨나.”

“제군도 보지 않았나? 황제를 폐위하고, 합법적인 정부를 무너트리고, 무지한 자들을 부추겨 사회적 혼란을 일으키고, 심지어 장교와 사병을 이간질하여 군의 붕괴를 촉진시킨 무리가 러시아의 권력을 찬탈했다.”

“사회주의자들은 군대를 증오한다. 전쟁 기간에는 한편인 척했지만, 전쟁이 끝나니까 우리의 이용가치가 떨어지니 홀대하는 것이다.”

“작금 러시아는 혼란과 무질서 그 자체다. 사회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으면 이렇게 된다. 대한국군은 저들을 반드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정훈장교들은 병사들에게 분노의 화살을 러시아 사회주의에 돌리도록 했다.

“그럼 그렇지. 대원수 폐하께서 우리를 저버릴 리가 없다.”

“이게 다 러시아 놈들 때문이다. 독감도 막지 못해 우리에게 퍼트리고, 심지어 귀국조차 방해한다.”

“우리가 러시아의 승리를 도왔는데, 어째서 이런 대우냐? 배은망덕한 놈들!”

일부 병사들이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곤 하지만, 대부분 농촌에서 온 순박하고 충성스러운 병사들은 장교들의 말을 믿었다. 애초에 병사들의 절대다수는 러시아어도 하지 못했고, 대외정보도 군대에서 나오는 게 전부였다.

‘귀환을 막고 있는 무능하고 배은망덕한’ 러시아에 대한 분노와 혐오의 감정이 파병군에 확산되었다. 러시아는 이제 독일 군국주의에 맞서 싸운 전우가 아니라 잠재적인 적이었다.

봄이 되면서 스페인 독감은 일시적으로 잠잠해졌다. 전염력은 높지만 치사율은 낮은 독감에, 파병군은 수천 명의 희생자를 냈지만 대부분은 독감에서 자연히 치유되었다.

철군은 다시 재개되었고, 시베리아 횡단철도 연선을 따라 한국군을 태운 기차가 빼곡히 만주로 향했다.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계속 악화됨에 따라, 러시아는 조속한 철군을 요구했다. 한국 정부는 계속 미적거렸지만, 이선의 훈령을 받자 5월 말까지 러시아에서 철군을 완료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5월 중순이 되자 국군 대부분은 만주로 철군을 완료했다. 일부 부대만이 바이칼 동부의 베르흐네우딘스크(울란우데)와 치타, 러청국경의 만주리를 잇는 시베리아-만주철도 분기를 따라 늘어서 있었다.

바로 이 시점에서, 예기치 못한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한국군과 러시아군의 우발적 충돌이 발생한 것이다. 

요한묵시록에 등장하는 ‘묵시록의 4기사’.

정복 혹은 질병을 상징하는 하얀 말의 백기사, 전쟁을 상징하는 붉은 말의 적기사, 기근을 상징하는 검은 말의 흑기사, 그리고 죽음 그 자체를 상징하는 창백한 말의 청기사.

대전쟁 종결과 함께 사라진 줄 알았던 묵시록의 4기사는,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스페인 독감으로 세계를 정복한 백기사는, 다시금 전쟁의 적기사에게 차례를 넘겨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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