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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전쟁과 평화 (613/812)

27화 전쟁과 평화

대한제국 황성.

갑작스럽게 시베리아에서 들려온 급보에 정부와 군부도 깜짝 놀랐다.

무엇보다 정보가 불확실한 게 가장 큰 문제였다. 20세기 초는 지난 세기와 비교하면 통신기술이 일취월장했다지만, 시베리아의 오지에서 벌어지는 사태까지 실시간으로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나마 블라디보스토크-경흥을 통해 연결된 전신망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이조차도 오고 가려면 최소 한나절은 필요로 했다.

결국 원수부는 치타의 파병군 사령부를 향해 원론적인 훈령을 내렸다.

「보르자 사태에 대하여 본국에서도 상황파악을 위해 노력 중. 적위대의 기습 공격은 결코 묵과할 수 없는 일로, 정부는 러시아에 강력히 항의할 예정임. …… 사령관 대리는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고 본국에 보고하라. 평화적인 해결책을 도모하여 가급적 무력 사용은 배제하되, 만약 적군이 먼저 공격을 가해 교전이 발생할 경우에는 즉시 반격하라.」

전문을 받아 든 사령관 대리 어담은 이미 방아쇠가 당겨졌다고 보고를 해야 할 입장이었다. 치타에서 국경까지 이어지는 철도는 이미 한국군이 신속하게 점령한 상황이었다.

어담은 마지막 문장에 주목했다. 원수부는 적군이 먼저 공격을 가했다면, 반격할 권한을 부여했다.

첫 방아쇠를 당긴 건 한국군이 아니라 러시아군이어야 했다.

치타의 한국군 사령부는 교전의 책임을 적위대에 전가하는 보고서를 올렸다.

「5월 15일 밤, 적위대가 보르자에 주둔하던 아군을 기습하여 사상자 발생. 이에 아군은 반격하여 보르자를 점령. 발견한 혁명군사위원회의 전문에 따르면, 모스크바는 연합국과 반혁명세력의 연계를 의심하여 공격을 명한 것으로 추정됨.

16일 오전 치타에서도 적위대의 불측한 동태가 발견됨. 본 사령부는 모스크바의 지령에 따른 적군의 기습으로 간주하고, 자위(自衛)를 위해 부득이하게 응전함. 아군은 신속히 승리하여 치타와 보르자로 향하는 철도 연변을 장악함.

군사적 충돌은 완전히 종료되지는 않았지만, 곧 안정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판단함.

…… 신속히 본국의 훈령을 바랍니다.」

“교전과 점령이라니, 이미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평화적인 해결책은 없었던 거요?”

“그럼 적들이 공격하는 동안 당하고만 있어야겠습니까? 자위를 위해 당연한 행동입니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정부는 당혹감을 느꼈지만, 군부는 현지 사령부의 판단에 손을 들어주었다.

“소위 혁명군사위원회의 전문까지 발견됐습니다. 편집증에 걸린 모스크바가 대한을 의심하여 선제공격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 아니오. 러시아는 이미 사실상 내전 상태에 돌입했다고 들었소. 내우외환의 위기에 처해 있는데, 구태여 대한을 적으로 돌릴 이유가 무엇이란 말이오?”

총리 민영환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애초에 시베리아에 러시아군이 얼마 없지 않소?”

“국경 일대와 주요 도시에 일부 적위대만 있는 걸로 판단됩니다.”

이런 상황인데, 병력이 희박한 시베리아에서 소비에트가 한국을 상대로 먼저 도발한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소위 세계혁명을 부르짖는 사회주의자들의 비정상적 사고를 우리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들면 안 됩니다. 소비에트는 광신자의 무리입니다. 이보다 더한 미친 짓도 할 수 있는 자들입니다.”

군무대신 박유굉 대장은 소비에트를 격렬히 비난했다. 군부의 관점에서 볼 때 파병군의 행동은 정당했다.

“일단 상황 파악부터 확실히 합시다. 정부는 러시아 대사를 초치해 강력히 항의하겠소. 주청대사와 파병군 참모장을 현지에 보내 정보를 파악하고, 상황을 안정시킬 수 있도록 해야겠소.”

“예, 알겠습니다.”

민영환은 즉각 대리청정 중인 이진에게 시베리아 사태를 보고했다.

이진은 내심 파병군의 점령 소식에 통쾌함을 느꼈으나, 내색하지 않고 답했다.

“총리의 판단이 현명하오. 무엇보다 상황을 확실히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황공하옵니다, 전하.”

“이 일은 매우 중차대한 사안이니만큼, 파리에 계신 황제 폐하께서 판단하셔야 합니다. 즉시 파리에 전문을 보내고 폐하의 성지(聖旨)를 받듭시다.”

“예, 삼가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이진 본인의 솔직한 심정대로라면, 파병군에게 명령을 내려 서쪽으로 진격하라고 하고 싶었다.

‘제국을 타도하고 세계혁명을 운운하던 소비에트에 일격을 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서방 연합국도 그걸 원하고 있지. 적이 먼저 선제공격했다면 명분도 충분하고. 소비에트에 맞서는 러시아 충의지사들도 결집하고 있다 하지 않았던가? 대련에 망명한 알렉세이 황태자를 내세워 분조를 세우고, 니콜라이 황제를 구출한다는 명목으로 군대를 시베리아로 진격시킨다면…….’

군부와 서방 연합국 못지않게 소비에트에 혐오감을 느끼고 있는 이진은, 제정을 복원한다는 명분으로 러시아 내전에 개입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진은 자신이 대리청정 중이라는 걸 분명히 인식했다. 모든 건 부황 이선의 판단에 달려 있었다. 이진은 감히 부황의 판단에 맞설 생각은 꿈에도 꾸지 못했다.

* * *

프랑스 파리.

파리에서 러시아 대표단이 철수하는 바람에, 시베리아 충돌에 대한 가장 빠른 소식은 한국에서 온 전문이었다. 이선은 이미 치타 점령이 완료된 후에야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이런 미친!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본국의 명령도 없이 교전을 벌이고, 이미 점령까지 완료했다고? 제정신인가?”

이선의 첫 반응은 황당함을 넘어선 분노였다.

“본국의 보고에 따르면, 러시아 측에서 선제공격을 한 게 틀림없습니다. 모스크바의 전문도 발견되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짐도 눈이 있으니 봤소! 하지만 이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오. 소비에트는 이미 서방 연합국을 적으로 돌렸고, 무엇보다 국내에서 분리주의와 반혁명세력과 싸우고 있소. 그런 상황에서 대한을 상대로 선제공격이라니, 말이나 되는 소리요?”

소비에트 러시아는 이미 독립을 선포한 우크라이나와 발트 3국과 교전 중이었으며, 폴란드와도 충돌을 시작했다. 남부 러시아에서는 카자크와 우익 반혁명 세력이 결집하여 내전은 기정사실이었다.

‘셋 중 하나지. 우발적 충돌이던가. 현지의 광신적인 소비에트 간부가 명령을 과잉해석해서 무작정 총질을 했던가. 러시아와 일전을 벌이고 싶은 국군 지휘관이 전쟁명분을 얻으려고 일을 벌였던가.’

상식적으로 소비에트가 하필 지금 이 시점에서 한국과 전쟁을 벌이길 원한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동원해제된 러시아군이 재소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고, 그나마도 내전으로 대부분 유럽 지역에 집결해있을 터. 우랄 동부에 러시아군은 거의 없을 터이니, 기껏해야 지역 적위대 수만이 한계일 텐데. 국군 병력 대부분이 러시아 국경에 전개된 상황에서 선제공격을 한다고? 미치지 않고서야 그게 말이 되나?’

이선의 합리적 의심은 모스크바보다는 오히려 현지의 한국군으로 향했다.

‘군부가 사건을 조작한 게 아닌가? 군부 장성 대부분은 소비에트 러시아에 부정적이고, 내전 개입을 선호하겠지. 마침 러시아가 내우외환의 위기에 빠졌겠다. 이 틈을 타서 전쟁을 도발하는 게 아닌가?’

이선도 군주이니만큼, 사회주의자들이 좋을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그게 꼭 전쟁을 벌여야 할 이유는 아니었다.

‘대한은 폴란드나 체코는 말할 것도 없고, 영국이나 프랑스와도 달라. 내전에 개입해 봤자 도대체 뭘 얻는단 말인가? 기껏 미국을 설득해서 중재에 나서려고 했는데…….’

현재 소비에트 정부가 급진적인 사회주의 정책을 쓰고 있다고는 하지만, 정부를 이끄는 울리야노프와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의 5단계 역사발전론에 따라 자본주의적 발전이 뒤이어야 사회주의가 완성된다고 확신하는 이들이었다.

이들은 러시아의 자본주의적 발달이 아직 미미하다고 보았고, 먼저 국가 주도 하의 자본주의적 발전을 완성한 후에 사회주의로 넘어갈 계획이었다.

국유화는 제한적으로 시행되고, 사적 소유는 용인되며, 계획경제를 실시하더라도 자본주의적 발전을 먼저 도모할 터였다.

울리야노프는 이러한 정책을 ≪국가자본주의(Staatskapitalismus)≫라고 규정했고, 당내 좌파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기업가들과 접촉하고 해외자본의 유치를 희망했다. 

이미 프랑스·영국과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됐고, 독일이 패전국이 된 이상, 울리야노프는 소비에트와 척을 진 바가 없는 미국 자본과 합작하길 원했다.

미국에서는 상원에 진출한 ‘자동차 왕’ 포드가 호응하여 러시아 투자계획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선은 포드와 손을 잡고 윌슨을 설득해, 진작부터 혁명파의 비선으로 만들어 둔 제국익문사 유럽지부장 조한민을 통해 울리야노프에게 전달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선의 계획은 내전 발발과 갑작스러운 충돌로 여지없이 어그러지고 말았다.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일은 절대로 벌일 생각이 없다. 만주도 아직 소화하기 힘든 상황에서 시베리아까지 확장하자고?’

이미 역사의 물줄기를 틀어버린 이선이지만, 역사개변은 최소화하려고 했다. 한국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안 이외의 역사 개입에는 가급적 회피하고 있었다.

이선의 최대 장점은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역사 전개에 해박하다는 점이었다. 그게 바로 다른 사람들이 가질 수 없는 ‘시간여행자’의 힘이었다.

‘우랄 동부의 군사적 공백을 고려하면, 당장은 연해주와 시베리아를 넘어 우랄까지도 점령할 수 있겠지.’ 

이선은 다른 이들이 알 수 없는 ‘역사적 선례’를 참고하여 정책을 결정했다.

‘하지만 그건 광대한 면 위에서 철도라는 선과 도시라는 점만 차지하는 꼴이다. 배후지에서는 게릴라전이 끊이지 않을 거고, 자발적으로 진창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꼴이지. 실제 일본이 4년간 막대한 예산을 쏟아 가며 시베리아에 대군을 투입했음에도, 개입 결과는 완벽한 실패 아닌가. 국군이라고 다를까?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다.’

역사개변을 하더라도, 최대한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움직이길 희망했다. 역사개변이 발생할 때마다, 나비효과는 통제할 수 없는 범위로 확산됐다. 이선이 가진 최대 장점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이선은 국내에서는 진보적 정책을 구사하는 것과 달리, 대외정책은 지극히 보수적인 관점을 취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선은 국가의 운명을 걸고 도박할 생각은 없었다.

「군부는 현지에 고위 장성을 파견하여 상황을 파악하고 군을 확실히 통제하라. 외무부는 공식적으로는 적위대의 공격으로 어쩔 수 없이 대응했다는 성명을 발표하되, 사태의 외교적 해결책을 골몰하라. 즉시 소비에트 정부와 대화를 재개하고, 책임 소재가 적위대에게 있다면 강력히 항의하되, 군사적 충돌을 벌일 의사가 없음을 전달하라.

짐도 유럽에서 외교적 합의를 이룰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다.」

황제의 명령은 즉시 파리에서 서울로 향했다.

* * *

한국 정부와 러시아 정부는 잇달아 성명을 반포하여 책임소재를 상대방에게 돌렸다.

「혁명군사위원회의 명령을 받은 적위대의 공격에 맞서, 국군은 부득이한 자위적 대응에 나선 것뿐이다. 한국 정부는 러시아의 안보를 위해 파병한 연합군, 피 흘리며 함께 싸운 연합군을 적으로 간주하고 선제공격한 행태를 엄중히 규탄한다.」

「혁명군사위원회의 전문은 한국군의 반복되는 군기이탈행위를 막기 위한 명령이었을 뿐이다. 한국군의 치타-보르자 점령이라는 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군의 공세는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결과가 틀림없다. 소비에트 정부는 한국군의 기습공격과 불법 점령을 엄중히 규탄한다.」

서로 비난을 이어 가면서도, 모스크바에서는 은밀히 외교적 해결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주러시아대사 이위종은 공식적인 루트로, 전임 대사이자 익문사 유럽총책 조한민은 비공식적인 루트로 소비에트 정부와 접촉하여 협의했다.

“치타 점령은 귀국 적위대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따른 우발적 대응이었을 뿐입니다. 우리는 러시아와 전쟁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한국과 전쟁을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귀국 군대가 러시아 영토를 공격하여 점령한 건 명백한 사실입니다. 즉시 포로를 석방하고 철수를 요구합니다.”

“포로는 석방하겠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적위대의 공격이 재발하지 않으며, 러시아 정부가 한국과 적대하지 않는다는 보증이 필요합니다.”

“적위대가 중앙위원회의 명령을 어기고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소비에트 정부는 한국과 적대할 의사가 없으며, 우리 역시 한국 정부의 보증을 희망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강경한 태도와 달리, 소비에트 정부는 한국과의 전쟁을 원치 않았다.

한국을 신뢰해서가 아니라, 가혹한 현실이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미 발트, 우크라이나, 남부 러시아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로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소비에트는 일단 전력을 유럽을 향해 쏟고 있었다. 신생 붉은 군대 전력의 절대다수가 유럽에 투입되었다.

우랄 동부는 사실상 군사적 진공 상태였다. 시베리아 자치주의 운동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세묘노프-운게른의 소규모 반혁명 부대를 토벌하지 못할 정도로 방기하고 있었다.

비록 모스크바가 ‘반혁명 세력과 연합국은 연계되어 있으며, 한국도 반혁명 음모의 일부분’이라는 피해망상을 갖고 있다지만, 아시아는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었다.

“한국 정부 또한 소비에트와 적대할 의사가 없습니다. 한국군은 철수할 용의가 분명합니다만 상황 통제를 필요로 하는 만큼, 철군에는 다소 시일이 걸릴 수 있습니다.”

“철군 완료까지 얼마나 더 시일이 필요합니까?”

“6월 30일까지는 철군을 완료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철군 완료가 이행되어야 합니다.”

5월 23일. 사건 발생 1주일 만에 한국과 소비에트 러시아는 충돌 재발 방지, 상호 비난 중단, 점령지 반환과 한국군의 철군을 신속히 합의했다.

“음, 수고 많았네.”

이선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선택했다. 자신의 선택과 상대방의 합의로 전쟁은 일어나지 않으리라 희망했다. 이는 충분히 합리적인 예상이었다.

하지만, 역사의 전개를 이선이 모두 통제할 수는 없었다. 유라시아라는 거대한 체스판에서 벌어지는 게임의 플레이어는 그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전통적으로, 이 거대한 게임의 가장 오래된 플레이어는 바로 대영제국이었다.

그들은 기꺼이 한국이라는 체스판의 말이 새로운 플레이어로 올라서려는 걸 받아 줄 생각이 있었다. 어디까지나 그들과 같은 편으로 말을 움직인다는 조건으로 말이다.

「대영제국 정부와 프랑스 공화국 정부는 한국군의 시베리아 철군 과정에서 벌어진 소비에트 적위대의 기습공격을 엄중히 규탄하는 바이다. 이는 명백한 소비에트의 폭거이며, 한국군의 대응은 국제법의 상식에 부합되는 자위적 방어였다. 영국 정부와 프랑스 정부는 어떠한 경우에도 대한제국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바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손색없는 한국에 대한 지지와 소비에트 러시아에 대한 규탄 성명문이었다.

문제는 그다음 결의안에 있었다.

「연합국 최고위원회는 철군 과정에서 벌어진 기습공격에 개탄을 금치 못하며, 연합국을 적대하는 소비에트의 광신적인 행태에 이러한 상황이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한다. 

이에 연합국 최고위원회는 오데사, 무르만스크, 아르한겔스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철군 대기 중인 연합군을 보호하기 위하여 파병을 결의한다.」

유라시아의 무게추가 평화에서 급격히 전쟁으로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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