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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기호지세(騎虎之勢) (614/812)

28화 기호지세(騎虎之勢)

기실 시베리아 충돌에 누구보다 기뻐했던 이는 클레망소와 처칠이었다. 이들은 마침내 한국이 소비에트 러시아를 상대로 칼을 빼 들었다고 여겼다.

한국이 비밀리에 모스크바와 협상하는 동안, 이선은 처칠의 방문을 여러 차례 받았다.

“폐하, 치타에서 전해 온 소식을 들었습니다. 연합국은 볼셰비키의 폭거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한국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합니다.”

“지지에 감사드립니다. 다만 이는 우발적인 충돌로, 모스크바와 사태 해결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폐하. 적위대가 철군 중인 연합군을 공격했다면, 이는 가볍게 볼 일이 아닙니다. 똑같은 일이 어디서든 반복될 수 있습니다.”

1919년 5월. 동부전선에 파병된 연합군 대부분은 러시아에서 철수를 완료했지만, 스페인 독감과 교통 문제로 인해 철수가 지연되면서 항구에는 연합군 일부가 잔류해 있었다.

오데사에는 프랑스군이, 무르만스크와 아르한겔스크에는 영국군과 미군이, 블라디보스토크에는 미군과 일본군이 주둔했다.

전염병과 교통의 핑계를 대고 있지만, 일부 병력이 철수를 미적거리며 잔류해 있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러시아 내전 가능성을 탐지하고 유사시 개입할 수 있는 항구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채무불이행에 격노한 영불 연합국은 어떻게든 소비에트에 일격을 가해 주려고 했고, ‘세계혁명’을 봉쇄하려고 했다.

때마침 발트 3국과 우크라이나에서 독립전쟁이 발발하고, 남부에서 내전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하자 연합국은 개입의 때가 왔다고 판단했다.

소비에트 정부도 연합국의 행태에 불신을 갖고 있었다. 한국군은 시베리아를 거쳐 이동하니 시간이 걸려도 어느 정도 이해해 줄 수 있는데, 항구에서 손쉽게 이동할 수 있는 서방 연합국이 아직도 병력을 주둔시킨다는 건 악의가 있다고밖에 판단했다.

5월 초에 소비에트와 연합국은 사실상 단교 직전까지 갔고, 상호 비난 끝에 대사관과 외교관도 철수하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소비에트는 연합국에 통첩을 날렸다.

「연합군은 종전 6개월이 되는 날인 5월 10일까지 철수를 완료하기로 합의했었다. 10일까지 철수를 완료하지 않으면, 소비에트 정부는 외국군의 주둔을 적의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연합국이 합의한 대상은 러시아 민주연방공화국 정부와 두마지, 의회를 해산하고 권력을 독점한 소비에트가 아니다. 러시아 곳곳에서 전쟁의 불길이 치솟고 있고, ‘적대계급’과 소수민족에 대한 무분별한 공격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 연합국은 러시아 내 자국민의 안전에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국민의 철수가 완료되면, 철군은 조속한 시기 내에 완료할 것을 약속한다.」

연합국은 자국민의 안전을 운운하며 소비에트의 최후총첩을 사실상 거부했다.

소비에트는 연합국의 행태에 불신을 넘어 적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혁명군사위원회의 명령과 시베리아 충돌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지역 적위대의 어설픈 행동은 오히려 연합국에 개입 명분만 가져다주고 말았다.

“이야말로 하늘이 가져다준 선물이 아닌가!”

시베리아 충돌에 대한 소식이 전해지자, 서방의 개입주의자들은 환호했다.

소비에트 러시아에 맞선 반혁명 운동은 물론이고, 분리주의 운동도 직접적으로 개입하기에는 명분이 부족했다. 

영국은 발트 3국을, 프랑스는 우크라이나를 배후에서 후원하며 소비에트에 맞섰다.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의 유권자들이 정식 국가도 아닌 ‘발트3국과 우크라이나의 자주독립’을 위하여 병력을 파병하는 걸 용인할 리 없었다.

하지만 ‘연합군’인 한국군에 대한 공격은 달랐다. 서방 연합군도 철군 과정에서 한국군처럼 공격당할 수 있으니, 보호를 위해 파병한다는 논리가 제공되었다.

“소비에트와 볼셰비키들은 외국, 특히 서방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현재 러시아 내에 거주하는 우리 국민, 그리고 항구에 주둔 중인 우리 군대가 언제 공격당할지 모릅니다. 현재 주둔 중인 병력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즉시 증파해야 합니다.”

클레망소와 로이드조지는 개입을 합의했다. 윌슨은 여전히 개입에 부정적이었지만, 국민의 보호와 연합군의 안전한 철수라는 명분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연합국 최고위원회에 속한 이탈리아와 일본도 영불에 지지 의사를 밝힘으로써, 개입으로 무게추가 완전히 기울어졌다.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이탈리아 외에도 루마니아, 그리스,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는 조속한 시일 내에 러시아로 병력을 파병하기로 결의했다.

‘…… 전략적 모호성을 시전하면서 서방에 만주 세력권을 승인받고 군사지원만 얻어 내려 했더니, 내가 서방 제국주의자들을 너무 얕잡아 봤나.’

한국과 러시아 간에 신속한 합의에도 불구하고, 시베리아 충돌을 러시아 개입의 명분으로 만들어 낸 영불의 술수. 이선은 자신이 안이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긴 클레망소, 로이드조지, 처칠은 역사에 길이 남은 정치가이자 전략가들 아닌가. 니콜라이나 광서제처럼 내 뜻대로 움직여 줄 리가 없지. 결국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연합군이 러시아 항구들로 파병한다면, 뒷일은 안 봐도 뻔했다.

피포위(被包圍)의식에 빠져 있는 소비에트 정부는 한국군의 충돌도 사전에 모의된 공격이오, 한러 간에 철수를 합의한 사항도 연합군의 병력 파병을 가리기 위한 기만전술이라고 의심할 게 뻔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결국 개입은 피할 수가 없게 됐군. 그렇다면 전략을 수정해야지. 이제 소비에트는 매몰비용으로 생각해 포기하고, 서방에 얻어 낼 수 있는 걸 얻어야겠다.’

어차피 소비에트와의 관계는 파탄이었다. 이선은 뒷맛이 씁쓸했지만, 포기할 건 빠르게 포기하고 새로운 협상에 나섰다.

“한국군이 극동과 시베리아에 개입하면, 일전에 합의한 대로 전차, 항공기, 건함기술에 대한 지원을 즉시 실시할 수 있습니까?”

“여부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그리해야지요.”

마침내 이선이 개입에 긍정적인 의사를 보이자, 개입주의자를 대표하는 처칠이 만족감을 표명하며 지원을 약속했다.

“극동과 시베리아에 개입하더라도, 한국군은 영구히 주둔하지 않을 것입니다. 민족자결의 원칙에 따라 러시아 문제는 러시아인들이 해결해야 하며, 한국은 보조적인 입장을 취할 겁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이선은 러시아령으로의 영토 확장은 선을 그었다. 한국은 당분간 만주를 소화하기만으로도 벅찼다. 광활한 시베리아와 극동 러시아는 소화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한국이 극동에 영토적 야욕을 드러낸다면, 러시아는 물론이고 미국도 용인하지 않을 터였다. 미국과 충돌하는 길은 무조건 피해야 했다.

“대한제국은 소비에트 러시아에 맞서 청국, 특히 만주와 몽골의 주권과 영토를 보호하고자 합니다. 물론 이 지역의 문호는 세계에 개방될 것입니다.”

“대영제국은 이를 존중합니다.”

만주와 몽골을 정치적·군사적으로는 한국이 통제하되, 경제적 이권은 서방에게 열려 있다는 말이었다.

영국이 한국의 만몽 세력권을 지지한 이상, 프랑스는 당연히 동의할 것이고, 미국도 승인할 터였다. 일본은 배알이 꼴리지만 어쩔 수 없으리라.

“일본도 개입하겠다는 의사를 보였지요?”

“그렇습니다. 육군과 함대를 블라디보스토크에 파병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럼 일본은 대가로 뭘 원한다고 하던가요?”

처칠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한국과 이해관계가 중첩되는 일인 게 분명했다.

“확실히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야 한영일 동맹 간에 세력권 다툼이 발생하지 않지요.”

“알겠습니다. 일본은 태평양에 면한 프리모리예(연해주)와 아무르주의 세력권을 원합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오호츠크해에 이르는 지역을 일본이 통제하겠다는 말이었다. 

‘아직도 대륙 진출의 야욕을 버리지 않았나? 연해주는 한국과 국경을 접했는데 어림도 없지.’

“프리모리예와 아무르는 명백한 러시아의 영토이며, 다수의 러시아인과 함께 한인도 15만 명 이상 거주합니다. 이 지역을 연고도 없는 일본의 단독 세력권으로 삼는 건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그럼 좋은 방안이 있으십니까?”

물론 이선은 대안을 준비하고 있었다.

“극동과 시베리아에 소비에트에 맞서는 신정부를 세워야 합니다. 동으로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로는……. 인민의 지지와 군사적 개입에 성패가 달려있겠군요.”

“현재 남러시아에 정부 수립이 계획되고 있습니다.”

독립을 선포한 민족들 말고도, 남부 러시아에서 소비에트 정권에 맞서 반혁명 세력이 ‘정통 러시아’ 정부 수립을 획책했다. 물론 아직 정권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단계였다.

“그쪽은 카자크와 군부, 우익 중심 아닙니까. 시베리아는 상황이 다릅니다.”

“그렇다면, 폐하께서 망명을 받아 준 알렉세이 황태자를 중심으로 새로운 정부를 구상하시는지?”

국내든 국외든 이선이 니콜라이 2세와 친분이 깊고, 그 자녀들의 망명을 받아 주었다는 이유로 제정을 복원하길 희망하는 것으로 오해했다.

“아닙니다. 이미 혁명으로 무너진 제국을 복원하려 한다한들, 얼마나 응하겠습니까? 더욱이 황태자는 어리고 병약해서 정부를 이끌기 어렵습니다.”

제정은 이미 러시아 인민의 버림을 받았다. 복원 시도는 그야말로 역사의 반동에 불과했다.

이선 개인으로서도, 병약한 알렉세이에게 막대한 의무를 안겨 줄 생각도 없었다.

“황태자 말고 대안이 준비되어 있으신가 보군요.”

“물론입니다.”

이선은 세계지도를 가리키며 처칠과 한동안 방안을 논의했다.

* * *

시베리아 충돌 이전부터, 이선은 혁명 러시아와의 관계가 단절되고 대립해야 할 상황에 대비해서 대안을 준비하고 있었다.

러시아 전문가인 전 외무대신 이상설, 제국익문사 유럽지부장 조한민이 이선의 자문에 응했다.

“만약 극동과 시베리아에 개입해야 할 상황이 온다면, 반드시 현지 정권을 내세워 명분과 여론을 갖춰야 하오.”

“연해주에는 우리 한인(고려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만큼, 이들을 전면으로 내세우는 게 어떨지요?”

정부와 군부가 유사시 1안으로 생각하고 있는 바였지만, 이선은 고개를 저었다.

“한인을 내세우는 건 개입 명분은 될지 몰라도, 민족 문제를 자극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소. 연해주 제2의 민족이기는 해도, 러시아 영토라는 건 부정할 수 없으니까. 러시아인을 내세우는 게 가장 좋지.”

“그렇다면 러시아 황태자 전하를?”

“알렉세이는 어리고 병약해서 그럴 수가 없소. 물론 제정 복원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싶다면, 알렉세이 외에도 올가 대공녀를 내세우는 방법이 있지.”

혁명 이후 해외로 망명한 제정복고파들은, 당연히 알렉세이 및 여대공들과 접촉하려 들었다. 비록 마지막 차르는 미하일 2세였지만, 정통성이란 측면에서 니콜라이 2세의 자녀들을 따라갈 이가 없었다.

“당연히 알렉세이 대공께서 차기 황제가 되셔야지.”

“이 험난한 시기에는 유능한 성년 황제가 필요하지. 키릴 대공이 차기 차르가 되셔야 한다.”

제정복고파들은 알렉세이를 차기 차르로 내세울지, 아니면 계승서열 2위인 키릴 블라디미로비치 대공을 내세울지를 놓고 다퉜다.

알렉세이의 병약함, 키릴의 자유주의적 성향에 모두 반대하는 제정복고파는 올가를 황위계승권이 가까운 로마노프 황가의 대공, 예컨대 5촌 당숙인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대공과 결혼시켜 공동 차르로 내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드미트리 대공은 젊은 전쟁영웅에, 확고한 제정의 수호자요. 대공녀 전하와도 어릴 적부터 친밀하니, 두 분이 혼인해서 황가의 정통을 계승하는 게 좋겠소.”

그리하여 이런저런 망명자 무리들이 대련을 찾아와 알렉세이와 여대공들과 만나려 했지만, 이선은 저택의 경비를 엄중히 하여 차단했다.

‘아직도 정신 못 차렸나? 제정이 망한 지가 언젠데 차기 황제 놀음하고 있어. 러시아 국민의 마음에서 로마노프 황가는 이미 떠난 존재인데.’

1917년 제헌의회 선거는 제정이 러시아 국민에게 완전히 버림받았다는 걸 증명하는 선거였다.

1919년 즈음되면 차라리 제정시절이 나았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긴 했지만, 그게 로마노프 왕가로의 지지로 결합되는 건 아니었다.

연합국도 처음부터 제정복고는 논외로 치고 있었다. 연합국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러시아 정부 형태는 자유주의 우파가 주도하는 민주공화국이었다.

문제는 러시아에서 자유주의 세력이 너무나도 허약하기 짝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러시아 전체는 차치하고, 극동 시베리아로 후보군을 줄여 봅시다.”

1안. 극동에서 가장 먼저 소비에트에 맞서 ‘성전’에 나선 바이칼 카자크 세묘노프와 운게른 남작.

이들은 제정복고를 지지한 것을 넘어 전제군주제로의 복귀를 원했다. 만약 러시아에 제정복고가 실패하면 만주-몽골-신강을 묶어 청국을 대신해 ‘하얀 칸’의 지배를 이룰 야망을 품고 있었다.

광기가 넘치는 무리이니만큼 전쟁에서 용맹성을 발휘할지는 몰라도, 정권을 담당할 능력은 없었다.

“이런 미치광이들은 논할 가치가 없소. 가장 다루기 쉽겠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고. 인민의 지지를 얻을 수 없는 집단이오. 논외.”

2안. 남러시아의 반혁명 운동과 결합을 희망하는 우익 세력. 러시아 군부와 지주를 중심으로 세력이 형성되고 있으며, 입헌군주제를 지향했다. 대련의 황족들과 접촉하려는 망명자들도 주로 이쪽계열이었다.

하지만 ‘하나이되 분리될 수 없는 러시아’를 내세우는 이들은 한국으로선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내세울 만한 정통성은 가장 강할지 몰라도, 인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군. 무엇보다 정통 러시아를 재건하겠다는 이들의 야망은 대한의 국익과 일치하지도 않소. 일단 보류.”

3안. 제헌의회에서 제1당으로 올라섰으나 소비에트에서 추방당한 사회혁명당 우파와 시베리아 자치주의 세력.

본래 ‘사회혁명’을 내세우는 정당이니만큼 좌익에 속했지만, 혁명의 속도를 놓고 볼셰비키와 갈등을 빚고, 제헌의회 해산으로 결정적으로 소비에트 정권과 척을 지고 말았다. 사회혁명당 우파는 자신들의 지지세가 높은 우랄 동부로 피신했다.

본래 자영농이 많은 특성상 극동-시베리아 지역은 제헌의회에서 농민의 당을 자처하는 사회혁명당에게 몰표를 던졌다. 의회 해산 후에는 유럽 러시아에 대한 전통적인 반감까지 더해지며, 시베리아 자치를 주장하는 자치주의자들이 득세했다.

자치주의자와 사회혁명당 우파가 주도하는 시베리아 지방두마는 톰스크에서 자치정부를 선언했다가 적위대에 해산당한 이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전하여 두마를 이어 나갔다.

“치타가 함락된 이후, 볼셰비키에 의해 체포되었던 자치주의자들이 석방되어 즉시 독자적인 시정부를 구성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시베리아 의회는 환영하며 치타로 향할 뜻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들이 시베리아에 독자적인 정부를 세우길 원한단 말인가?”

“예, 그럴 의사가 있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극동-시베리아의 민주공화국 수립이었다. 이선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시베리아의 정치 집단 중 그나마 인민의 지지를 얻을 만하고, 모스크바와의 분리를 택할 수 있는 세력은 이들뿐으로 보이는군. 좋소. 접촉을 취해 봅시다.”

* * *

“하하, 폐하께서는 이미 다 계획이 있으셨군요. 아주 좋습니다. 추진해 보지요.”

모든 논의가 끝난 후, 이선은 애주가인 처칠을 향해 와인을 권했다.

“아, 오늘도 좋은 와인이군요.”

“Le vin est tiré, Il faut le boire(포도주 병을 땄으면 마셔야지요).”

“Oui, Bien sûr(물론입니다).”

이선이 문득 영어에서 프랑스어로 언어를 바꿨다. 아무 생각 없이 들으면 권주사(勸酒辭)였지만, 처칠은 문장 속에 숨은 의미를 파악했다.

이는 프랑스 격언으로, 시작한 이상 끝을 봐야 한다는 말이었다. 고사성어로 치면 기호지세(騎虎之勢)와 비슷한 의미였다.

자의든 타의든 한국은 서방 연합국과 손잡고 소비에트 러시아에 맞서는 길을 택했다.

한국은 지금 클레망소와 처칠이라는 호랑이 등에 타고 달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어설프게 호랑이 등에 매달린 채로 달리는 게 아니라, 확실하게 대처해서 움직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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