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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역사개변 (619/812)

33화 역사개변

1919년 6월 21일. 최초의 한국-폴란드 정상회담이 바르샤바 왕궁에서 성사되었다.

환영 행사와 오찬이 끝난 후, 핵심문제를 논의할 정상 간의 실무회담이 이어졌다.

이선의 보좌역으로는 조한민, 그리고 통역으로 마르가리타가 동석했다.

폴란드가 독립한 지 7개월밖에 안 된 시점이라, 한국은 폴란드를 신속히 승인하고 외교관계를 맺기는 했지만 아직 주재 외교관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전 러시아 대사이자 제국익문사 유럽지부장인 조한민이 모스크바에서 퇴거한 후 바르샤바에서 실질적인 공사 역할을 수행했다.

이선과 피우수트스키는 외교언어인 프랑스어로 대화를 나눴지만, 모국어와 외국어의 차이를 생각하면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반드시 통역관이 필요하기 마련이었다.

이 당시 한국에서 폴란드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조한민도 러시아어는 할 줄 알았지만 폴란드어는 한계가 있었고, 두 언어를 모두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은 마르가리타 뿐이었다.

이선은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하는 사람이라 관직에 있지 않은 마르가리타에게 지금껏 어떤 역할을 맡긴 적이 없었지만, 이번만큼은 통역을 맡겼다.

통역관은 언어 외에도 상대국가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하는데, 폴란드에 대해서는 마르가리타를 따라갈 사람은 없었다.

“폐하. 폴란드는 현재 러시아에서 벌어지는 일을 깊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모스크바는 약소민족 해방과 민족자결을 운운하면서도, 옛 러시아제국의 영토에 강제로 소비에트 체제를 이식하고 있습니다.”

“각하의 우려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민족자결은 반드시 존중되어야 합니다. 이는 대전쟁 종식 이후 새로운 국제질서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입니다. 옛 러시아제국의 후속국가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론적인 이야기를 한 이선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먼저 모스크바가 정확히 어떤 생각을 하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여기 조한민 대사는 최근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정부 권력자들과 회견한 바 있습니다.”

이선은 최근까지 러시아에서 정보를 수집했던 조한민에게 발언권을 넘겼다.

“저는 인민위원협의회 의장 울리야노프, 군사인민위원 트로츠키, 외무인민위원 치체린 등과 회견했습니다. 외교적 수사는 차치하고 실질적인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이들이 세계혁명을 부르짖긴 하지만 현실을 도외시할 정도로 광신적이진 않습니다. 이들은 남러시아 반혁명 백군을 가장 위협적인 적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독립을 선언한 발트3국과 우크라이나 등은 부르주아 반혁명으로 규정하고 공격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지만, 이미 독립을 승인한 폴란드와 핀란드에 대해서는 싸울 의사가 없다고 합니다.”

피우수트스키는 단호한 어조로 답했다.

“그들의 말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정세가 불리하니 우선순위를 정한 것뿐이지요. 우리는 리투아니아와 우크라이나 다음은 폴란드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세계혁명은 러시아의 야욕을 가리는 적색 제국주의일 뿐입니다.”

현재 러시아는 폴란드와 적대할 뜻이 없을지라도, 소비에트 정부가 가장 중시하는 대외정책이 독일혁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독일로 향하는 길목인 폴란드를 내버려 두지 않으리라는 피우수트스키의 예견은 틀리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는 반드시 독립되어야 합니다. 폴란드는 국가의 자주와 이웃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피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폴란드는 이미 반소비에트 전쟁의 선봉에 섰다. 독립한지 얼마 안 된 신생국으로서는 도박과도 같은 전쟁이었지만, 폴란드의 생존이 강력한 균형추가 되는 것이라고 믿는 피우수트스키는 밀어붙였다.

“자주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폴란드 국민의 결의에 찬사를 보냅니다.”

“감사합니다. 연합국의 어떤 국가보다도, 한국은 폴란드를 이해해 주리라 생각합니다. 폴란드의 투쟁은 중국의 압제에 맞서 투쟁하던 한국과 매우 흡사합니다. 폴란드와 한국에 놓인 물리적 거리는 멀지 몰라도, 강대국에 맞서 자주독립이라는 기치를 높이 드는 정신을 공유합니다. 폴란드는 서쪽에서, 한국은 동쪽에서 적색 제국주의에 맞서 단결해야 합니다.”

이선은 씩 웃었다. 외교적 수사 다음에는 반드시 실제 목적이 따를 터였다.

“한국이 귀국에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군대를 급히 재건하고 있는 상황이라 모든 게 부족합니다. 특히 유능한 지휘관이 부족하지요. 경험 많은 한국군 장교들을 군사고문관으로 보내 주시길 바랍니다.”

“이미 프랑스가 귀국을 돕고 있지 않습니까?”

전쟁의 선봉에 선 폴란드는 연합국, 특히 프랑스의 총애를 받았다. 프랑스는 군사고문관을 파견하여 폴란드군 조직을 돕고, FT-17 전차를 필요한 최신 무기들을 폴란드에 공여했다.

현재 18만 규모의 신생 폴란드군은 6개월 이내로 60만까지 확대할 계획을 세워 두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러시아군에서 복무했던 병사들을 소집해 병력은 급격히 팽창하고 있었지만, 장교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프랑스의 지원은 분명 큰 도움이 되고 있지만, 프랑스 장교들은 전황이 완전히 다른 서부전선에서 복무했습니다. 한국군은 동부전선에서 2년간 전투를 치렀으니, 연합국 중 누구보다 동부전선을 잘 아리라 생각합니다.”

마르가리타는 통역만 전할 뿐 자신의 의견은 내지 않았지만, 무언으로 기대하는 눈빛을 보냈다.

한국 입장에서도 군사고문관 파견은 별로 어려운 게 아니었다. 시베리아와 달리 폴란드에게 병력 파견이나 무기 공여는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군사고문관 파견은 대전쟁 이후 새로운 군사교리를 확인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유능하고 경험 많은 장교들로 군사고문단을 파견하지요.”

“감사합니다, 폐하.”

“그리고 지금부터 짐이 드리는 말씀은, 군사적 목적이라기보다는 독립을 쟁취한 폴란드와 한국의 우호로 생각하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예, 말씀해 주십시오.”

“짐도 35년 전에는, 국제사회의 신생국이나 다름없는 국가를 이끄느라 골머리가 아팠지요. 그때 무엇보다 가장 화급했던 건 재정이었습니다. 귀국도 그렇지 않습니까?”

이선은 정확히 아픈 곳을 찔렀다.

신생국 폴란드는 가난했다. 러시아제국에서 가장 공업이 발달한 지역이었던 폴란드는, 동부전선의 최전선이 되면서 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러시아는 퇴각하면서 청야작전으로 파괴를 저질렀고, 점령자 독일은 물자를 수탈해 갔다.

독립하자마자 새로운 전쟁까지 돌입하게 되니, 재정 빈곤은 가장 큰 문제였다.

그나마 심각한 식량문제는 해결의 실마리가 보였다. 미국 식량청장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가 중부유럽의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폴란드에 온 후, 미국의 대규모 식량을 무상 공여했다.

후버에 따르면 ‘가난과 굶주림은 사회주의로의 길’이기에, 신생국뿐만 아니라 패전국에게도 식량을 지원하자고 요청했다. 심지어 기아에 시달리는 러시아에도 식량 공여를 제안했다.

2차대전 이후 마셜플랜의 효과를 알고 있는 이선으로선 후버의 제안이 1차대전판 마셜플랜이 되길 바라며 지지했지만, 패전국에 대한 징벌과 러시아 봉쇄를 원했던 연합국 최고위원회는 후버의 제안을 거절했다.

“정확히 보셨습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4년간의 대전쟁으로 인해 폴란드는 숱한 피해를 입고 가난해졌습니다.”

“한국은 폴란드의 재건과 발전을 위하여 차관과 투자를 제공할 용의가 있습니다.”

“오! 정말로 반가운 말씀입니다.”

대전쟁으로 한국은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전환했고, 대외투자가 가능한 환경이 조성됐다.

한국의 대외투자 대부분은 만주에 집중되었지만, 이선이 러시아에 투자하던 자금은 혁명을 전후하여 모두 스웨덴으로 옮겨 둔 상황이었다.

이선은 중동부유럽의 신생국들, 기술력과 공업 기반은 있지만 신생국이라 재정이 빈약한 국가와 협력관계를 맺어 둘 생각이었다. 서유럽 선진국은 한국이 시혜를 받는 쪽이라 장기적 협력에 한계가 있지만, 중유럽 신생국들은 오히려 한국이 주도하는 입장이 될 수 있었다.

‘그동안 유럽에는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없었지만, 세계대전과 신생국 성립은 후발주자에게도 기회를 주는군.’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한 독일이야말로 가장 기술을 흡수하기 좋은 나라였지만, 패전국 독일에 대한 투자는 연합국에 의해 완전히 막힌 상황이었으므로 대안을 찾아야 했다.

유력한 후보군은 체코와 폴란드였다. 구 합스부르크 제국에서 손꼽히는 보헤미아 공업지대, 구 러시아제국에서 손꼽히는 바르샤바-우치 공업지대를 보유한 체코와 폴란드였다.

이선은 폴란드를 선택했다. 전쟁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아 경제가 안정적인 체코는 한국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고, 폴란드는 당장 자금이 필요했다.

“먼저 2천만 달러를 차관으로 제공하지요.”

“담보는 어찌 설정할까요?”

“귀국의 신용을 믿고 무담보로 제공하겠습니다.”

“폐하의 결단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재정난에 시달리던 피우수트스키는 크게 기뻐하며 감사를 표했다. 탁월한 정치가이자 뛰어난 군사지도자인 그도 재정 문제는 어찌할 수 없었다.

가난한 신생국에게 차관을 빌려주는 나라는 없다시피했다. 본래 물주 역할을 해 줄 영국과 프랑스도 미국에 막대한 빚을 지고 있었으므로 자금은 대 주지 못했고, 미국도 식량 공여는 해 줘도 자금 지원은 해 주지 않았다.

물론 한국의 차관은 장기적인 투자의 시작이었다. 중부 폴란드의 공업과 기술은 구 러시아제국 최상급으로 잠재력이 풍부했고, 폴란드가 독일로부터 할양받을 실레시아의 강철과 석탄은 유럽 최고 수준이었다.

“차관 제공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구체적인 논의는 양국이 맺을 경제협정을 통해 이어 갔으면 합니다.”

“예, 그리하시지요. 어려운 처지에 놓인 폴란드를 향한 귀국의 호의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대한제국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리투아니아, 발트3국의 자주독립을 지원하는 폴란드 공화국을 절대적으로 지지할 뜻을 밝힙니다.”

“감사합니다. 폴란드 공화국 역시 시베리아 임시정부를 승인하며, 대한제국의 대외정책을 절대적으로 지지함을 밝힙니다.”

한국과 폴란드는 대외정책의 절대적 지지를 확인했다.

경제협정은 군사협정으로도 확대될 수 있었다. 폴란드의 선전이 이어지면 소비에트 러시아는 시베리아와 극동에 투사할 전력이 줄어들 터였다.

“한국과 폴란드, 양국의 영원한 우호와 친선을 위하여!”

정상회담이 끝난 후 이뤄진 만찬에서 이선과 피우수트스키는 훈장과 선물을 전달했다.

이선은 왕실에서 특별히 제작한 사인참사검(四寅斬邪劒)을 선물했다. 사인검은 인년 인월 인일 인시에 만들어졌기에 붙어진 이름이었다. 왕실 최고의 장인이 만든 검이었기에, 사인검은 본래의 주술적 의미 외에도 높은 예술성을 자랑했다.

사인검은 본래 하사용이었으나, 대한제국 선포 이후에는 외교용 선물로도 쓰였다.

이선은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하면서 윌슨, 클레망소, 로이드조지, 오를란도, 포슈 원수 등에게 사인검을 선물했다.

“호랑이의 해였던 갑인년, 1914년에 제작한 검입니다. 대전쟁이 일어난 해이자, 오늘날 폴란드군의 기원이 되는 폴란드 군단을 각하께서 창설한 해이기도 하지요.”

이선이 사인검의 유래와 의미를 설명하자, 피우수트스키는 크게 기뻐했다.

“훌륭하군요. 사악함을 무찌르는 검으로 잘 쓰겠습니다.”

피우수트스키도 답례 선물을 전달했다.

“공교롭게도 저 역시 칼을 준비했습니다. 폴란드 구국의 영웅인 포니아토프스키 원수가 사용하던 사브르입니다.”

피우수트스키의 선물은 나폴레옹의 26원수 중 한 사람이자 폴란드 독립을 위해 싸웠던 유제프 포니아토프스키 공작(Józef Poniatowski)의 사브르였다.

만들어진 지 100년이 넘은 칼인데도 보물처럼 아껴졌기에 보존 상태는 좋았다. 국보나 다름없는 칼을 받은 이선 역시 크게 기뻤다.

“폴란드의 영웅이 쓰던 보검을 받다니, 감격할 따름입니다.”

“폐하와 한국을 향한 저와 폴란드 국민의 마음입니다.”

물론 국가원수 간의 선물에는 의미가 숨어 있었다.

사인검에는 폴란드가 소비에트라는 공동의 적에 맞서 앞장서 싸우는 칼이 되어 주길 바란다는 의미가 있었다.

사브르에는 포니아토프스키가 나폴레옹과 함께 전장을 누비며 폴란드 독립을 싸웠듯이, 이선도 나폴레옹처럼 폴란드를 계속 도와 달라는 의미였다.

실로, 칼로 맺어진 동맹이었다.

* * *

한국과 폴란드의 첫 정상회담은 성공적이었다. 양국 모두 필요한 걸 얻었다.

표면적으로 보면 신흥국 한국이 신생국 폴란드에 일방적으로 지원해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국은 유럽의 경제적 교두보이자 소비에트 러시아의 발목을 잡아줄 잠재적 군사동맹국을 확보한 것이었다.

“폐하께서 외교를 하는 걸 직접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는데, 정말 대단했어요.”

마르가리타는 이선에게 찬사를 보냈다. 그녀의 눈에는 한국이 자신의 조국인 폴란드에 무한한 호의와 막대한 지원을 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옛 동지이자 지금도 존경하는 지도자인 피우수트스키에게도 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35년 전 폴란드 바르샤바에 처음 왔던 게 생각나는군요. 그때 폴란드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조선은 세계에서 가장 약한 나라였지.”

문득 이선은 1884년 보빙사절단으로 왔던 기억을 떠올렸다.

오늘 회담은 이선 개인에게 있어서도 만족스러웠다. 청국을 제외하고 유럽 국가를 상대로 우월한 위치에서 외교협상을 이뤄 낸 건 처음이었다.

이제는 서양 열강과도 대등한 위치에서 협상을 했으니, 그만큼 한국의 국력이 강해졌음을 의미했다.

생존 여부를 걱정해야 했던 약소국에서, 동양정세를 주도할 수 있는 지역강국으로, 세계정세에 관여할 수 있는 열강의 말석에 합류하게 되었다.

한국의 역사는 이제 완전히 개변(改變)되었다. 그에 따라 다른 세계가 형성되고 있었다.

“35년 전, 동양에서 온 어린 왕자가 훗날에 세계를 움직이는 지도자가 되리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마르가리타도 옛 추억에 잠겼다. 그때만 해도 자신이 그 왕자를 따라 머나먼 동양까지 가게 되고, 다시 그와 함께 고향에 돌아오리라곤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나도 마찬가지. 어린 애국소녀가 훗날 폴란드 구국의 여인이 되리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소.”

이선은 빙긋 웃었다. 그도 마르가리타가 졸지에 구국의 성녀로 폴란드에서 떠받들어져 있는 걸 알고 있었다. 막후사정을 모르는 폴란드인들은, 양국 간 협력이 마르가리타가 이선에게 영향력을 행사한 덕이라고 착각할지도 몰랐다.

“사람들의 오해가 너무 심해요. 난 아무 일도 한 게 없는데. 소설과 현실을 착각한다니까요.”

“뭐, 그런 오해라면 즐거운 오해지. 받아들이도록 합시다.”

굳이 착각을 정정할 필요도 없었다. 대중이 원하는 바는 받아들여야 했다. 하물며 국익에 도움이 될 긍정적인 착각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었다.

“고마워요.”

“무엇이 말이오?”

갑작스러운 감사의 표시에 이선이 되물었다.

“모든 게 다.”

말을 하지 않아도, 이선은 그녀의 깊고 푸른 눈에 담긴 표정에서 고마움의 의미를 읽을 수 있었다.

“내게 고마워할 거 없소. 역사의 변화가 만든 거니까. 클리오(역사의 여신)에게 고마워합시다.”

이선의 수수께끼 같은 말에 마르가리타는 의아했지만, 되묻지는 않았다.

이선은 역사를 개변할 기회를 주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감사했다.

그게 완화군의 혼령이든, 역사의 여신의 변덕이든, 아니면 평행우주의 세계일 뿐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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