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화 적백내전 (621/812)

35화 적백내전

폴란드 방문을 마친 이선은,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의 초청을 받아 프라하로 떠났다. 체코도 연합국의 지지를 받아 군대를 우크라이나에 파병하였으므로, 한국과 협의를 원했다.

6월 하순이 되어 파리강화회의도 종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으므로, 이선의 유럽 외교도 끝이 보이고 있었다.

폴란드를 떠나기 전, 이선은 제국익문사 유럽지부장 조한민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동안 양성한 요원들을 통해 러시아와 계속 접촉을 이어 나가게. 소비에트, 백군, 분리주의자 가리지 않고.”

“예, 폐하.”

“모스크바와는 아직 협상의 여지가 남아 있나?”

“현재 모스크바는 강경론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협상의 여지가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좋다. 그대에게 전적으로 위임하지.”

조한민은 혁명 이전부터 친교가 있었던 울리야노프와 접촉했다. 시베리아 충돌은 우발적인 사태였으며 한국은 소비에트와 적대할 뜻이 없다는 점을 전했다.

“블라디미르 일리치(울리야노프). 설령 겉으로는 전쟁과 혁명을 부르짖더라도, 뒤로는 협상창구를 만들어 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국주의자들이 우리를 협상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소? 귀국도 결국 서방과 손을 잡고 시베리아 분리공작에 나선 거 아니오?”

“시베리아 임시정부는 한국 입장에선 보험이지요. 반소비에트 십자군에 참여하길 원하는 서방에게 뭔가 하고 있다는 걸 보여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한국군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치타를 넘어 베르흐네우딘스크(울란우데)까지 점령한 거요?”

“아닙니다. 블라디보스토크와 베르흐네우딘스크는 시베리아군이 점령했지요.”

울리야노프가 헛웃음을 흘렸다.

“허, 시베리아군이 누구의 지원을 받는지 뻔한데. 소비에트는 애초에 우발적인 충돌이 아니라 한국군이 작정하고 점령에 나선 것이라 의심하오.”

“우발적 사태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한국군을 상대로 체포하라는 전보를 보낸 혁명군사위원회가 문제 아닙니까.”

“난동자 체포지 한국군의 공격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소.”

“의장 동지, 책임 소재를 놓고 계속 입씨름하는 건 외교관들에게 맡겨 두시지요. 우리는 보다 실질적인 문제를 논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울리야노프는 계속하라는 듯 손을 들었다.

“우리는 혁명 이전부터 함께 손을 잡지 않았습니까. 제정의 우방이었던 한국이 의장 동지에게 미리 보험을 들어 두었듯이 말입니다. 이번에는 의장 동지가 우리에게 보험을 들어 두시지요.”

혁명 전에 맺은 ‘보험’이란, 만약 혁명이 성공해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정권을 잡더라도, 전쟁 기간 동안에는 급격한 사회혁명을 실시하지 않고 러시아가 독일과의 전쟁을 포기하지 않기로 합의했었다.

또한 북만주와 몽골에서 ‘제국주의적 세력권’ 철수를 약속했고, 자의든 타의든 이행되었다.

원역사의 볼셰비키가 가장 극렬한 반전 세력이 된 것과 달리, 울리야노프가 주도하는 사회민주노동당은 사회주의 연립정부에 참여하고 종전까지 전쟁수행노력을 이어 나갔다. 그 대가로 한국은 러시아의 승리에 협조했다. 

사회민주노동당에서도 특히 민족문제에 정통한 울리야노프는 소수민족의 권리 존중과 연방주의 개혁에도 나섰다. 만약 사태가 악화되어 내전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비교적 평화롭게 민주연방공화국 체제로 이행할 수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내전은 평화로운 해결책의 가능성을 사라지게 했다. 수백 년간 누적된 분노와 증오의 연쇄 고리는 정치적 타협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비즈니스맨답게 언제나 말은 잘하시는군. 좋소, 들어나 봅시다.”

“지금 소비에트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건 남부의 반혁명 백군입니다. 이미 백군이 로스토프를 점령하고 돈바스까지 진격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돈강에서 볼가강까지 이어지는 지역이 다 위태롭지요. 붕괴 위기에 놓였던 우크라이나와 발트 3국도 되살아나게 될 겁니다. 이제는 연합국이 직접 개입에 나서 주요항구를 점령하고 봉쇄까지 나섰지요. 더욱이 연합국의 지원을 받는 폴란드군과 체코군이 공세를…….”

울리야노프가 조한민의 말을 끊었다.

“그만, 우리의 처지가 곤란하다는 걸 굳이 상기할 필요는 없소. 분명 소비에트는 위태롭지. 하지만 적들은 단결하지 못하고 있고, 우리는 단결되어 있소. 당장 백군과 우크라이나군은 서로 총질을 하고 있는 상황이니. 아무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요?”

“이런 상황에서 굳이 동방의 한국까지 적으로 돌릴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귀국 군대가 치타를 점령하고 시베리아 반혁명정부를 지원하는 시점에서 이미 적이 된 거요.”

말은 그렇게 해도, 이미 서방 연합국을 적으로 만든 데다 유럽 상황이 시급했기에 울리야노프는 한국까지 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확실하게 하겠습니다. 분명히 시베리아 정부에도 반혁명을 주장하며 우랄산맥을 넘어 모스크바까지 진격하자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이들을 통제하겠습니다. 군사행동은 바이칼 동쪽에만 한정할 거고, 유럽 러시아에서 벌어지는 내전에 전혀 관여하지 못할 겁니다. 소비에트는 아시아는 신경 끄고 유럽에서의 전쟁에만 집중하면 됩니다.”

“시베리아 반혁명분자들이 한국의 괴뢰라고 자인하는 꼴이군. 시베리아 분리공작은 착실하게 진행하면서 한국군도 주둔시키고? 그동안 시베리아 분리는 공고해지겠군. 우리가 그걸 용인하리라 생각하오?”

“동지가 예전부터 한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후퇴. 유럽에서의 이보전진을 위해 아시아에서는 일보후퇴를 받아들이시지요.”

조한민은 소비에트와 시베리아의 일시 휴전을 제안했다. 한국이 시베리아군을 내전에 동원하길 원하는 반혁명 세력을 통제하는 대신, 소비에트는 시베리아 임시정부를 묵인하고 당분간 휴전한다.

기질적으로 러시아인이라기보다는 독일인에 더 가까운 울리야노프는, 합리적으로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만큼 받아들일 용의가 있었다.

하지만 사회혁명당 좌파가 주도하는 강경론이 소비에트를 지배했고, 모든 반혁명세력과 외세를 일소하겠다는 결의가 채택되었다.

“사회혁명당 좌파가 받아들이지 못할 거요. 이들은 사생결단을 내야 한다는 입장이오.”

“공식적으로 휴전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비공식적으로 당분간 충돌을 자제하자는 거지요.”

울리야노프는 고심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국방인민위원 트로츠키 동지와 논의하도록 하지. 이건 휴전이 아니오. 어디까지나 전선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뿐이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울리야노프와 ‘휴전’을 합의한 조한민은 트로츠키와도 접촉했다.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떠나는 상황이었던 트로츠키는 자신의 전용 장갑열차에 조한민을 초대했다.

열차 안은 정예병들이 무장하고 있고, 열차 위에도 포탑과 기관총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철로 위에 움직이는 요새이자 사령부였다.

일종의 무력시위라는 걸 조한민은 인지했다.

“긴 시간은 못 냅니다. 알다시피 우크라이나 상황이 시급해서. 블라디미르 일리치 동지에게 대략적인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아시아 방면으로는 군을 움직이지 말란 말이지요?”

“예, 시베리아군도 유럽 방면으로 군을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그까짓 허수아비 반혁명 군대, 언제든 영웅적인 붉은 군대가 분쇄할 수 있소. 한국군이 개입한다고 한들, 시베리아의 게릴라전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될 거요.”

“우리도 가급적 유혈사태는 피하고 싶군요. 피차 불필요한 희생을 낼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한껏 허세를 부리긴 했지만, 명석한 트로츠키는 현실을 인정했다. 신생 적군의 총력은 백군과 우크라이나, 내전에 개입한 폴란드군과 체코군에 집중되어야 할 상황이었다.

“뭐, 좋습니다. 당분간 시베리아에 붉은 군대 주력이 투입될 일은 없을 겁니다. 단, 시베리아에 반혁명 세력이 결집하여 소비에트 정부를 위협한다면, 우리는 언제든 총부리를 동쪽으로 향할 거요.”

“알겠습니다. 그럴 일이 없도록 하지요.”

비공식적 휴전이었다. 소비에트는 전력을 유럽에 집중하길 원했고, 한국은 내전의 수렁에 빠져들기를 원치 않았으니 이해관계가 일치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적군이 유럽의 백군을 분쇄하고 나면, 시베리아로 총부리를 겨누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이선과 조한민은 만약 적군이 승리하더라도 1~2년의 시간은 필요하다고 보았고, 벌어둔 시간 동안 시베리아 정부를 공고히 할 계획이었다.

“알고 있습니까? 내 고향은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요. 청소년기를 그곳에서 보냈지요.”

“아, 그렇습니까.”

트로츠키는 갑작스럽게 옛이야기를 꺼냈다.

“1896년의 일이오. 당시의 나는 혁명을 꿈꾸지 않았고, 수학과 진학을 원했던 고등학생이었소. 어느 날 오데사 시내가 시끌벅적했소. 동양에서 대규모 사절단이 도착했거든. 아주 진귀한 구경거리였지요.”

바로 1896년 이선이 니콜라이 2세 즉위를 맞이하여 이끌고 온 사절단이었다. 트로츠키는 감상을 걷어 내려는 듯, 냉정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새로 즉위한 니콜라이의 친우라는 한국 왕자 말이오. 그때만 해도 내가 혁명가가 되리라고는, 니콜라이가 몰락하리라고는 생각도 안 했소. 그리고 그 총명하다는 한국 왕자가 인민의 적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고.”

“인민의 적이라니, 말씀이 심하시군요.”

“내가 파리에서 확신을 얻은 바가 있소. 로이드조지, 클레망소, 윌슨, 오를란도, 사이온지, 모두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백만을 죽여도 상관없는 자들이지. 소위 연합국 최고위원회야말로 세계 인민의 적이오. 대전쟁이 끝났는지 얼마 안 됐는데도, 소비에트의 목을 조르려고 새로운 전쟁을 획책하고 있지 않소?”

“연속혁명론이 주장하는 세계혁명에 위협을 느낀다는 건 생각 안 하시는지? 특히 독일로 혁명을 전파하려는 시도에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조한민은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을 콕 찍어서 말했다. 트로츠키는 대표적인 세계혁명론자였다.

“우리가 혁명을 부추긴다고 생각하지 마시지요. 혁명은 나 같은 직업 혁명가 몇 명이 부르짖는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분노한 인민이 움직여야 비로소 혁명이 일어나는 거지. 독일과 유럽에서 혁명적 상황이 몰아치는 건, 대전쟁으로 고통 받았던 인민들의 자발적인 분노요. 소비에트 탓하기 전에 먼저 자국의 정치를 돌아다 봐야지.”

말인즉슨 틀린 말은 아니라서, 조한민은 굳이 논쟁하지 않았다. 조한민의 화술도 만만치 않았지만, 혁명을 대표하는 웅변가 트로츠키와 논쟁해서 이길 자신은 없었다.

“그런 면에서, 귀국에서는 혁명이 일어날 전망이 거의 없으니 안심해도 됩니다. 아직 동양에서는 혁명의 전망이 보이지 않으니. 물론 독립을 원하는 아시아 인민들의 저항이 이어지겠지만, 제국주의자들도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터이니. 제3인터내셔널은 약소민족의 식민지 독립투쟁을 지원할 겁니다.”

“아시아의 민족자결과 주권존중은 대한제국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특히 만주와 몽골, 신강(위구르)과 티베트의 민족자결은 한국이 아니면 위태롭지요. 이들에게 가장 위협적인 적은 중화주의와 러시아 제국주의였으니까요.”

트로츠키는 웃음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허허, 재미있는 말이군요. 과연 현지인들도 그리 생각할지 모르겠소. 아무튼 이제 전선으로 출발해야하니, 이야기는 여기서 끝냅시다.”

“알겠습니다. 무운을 빕니다.”

“적에게 무운을 빌다니 관대하군요.”

“적과 동지는 언제든 바뀔 수 있으니, 적과도 악수할 수 있다는 게 우리 황제 폐하의 명이신지라.”

“유연해서 좋군요. 그럼 악수합시다.”

트로츠키는 조한민과 악수했다. 적과의 일시적인 휴전이었다.

한국이 서방과 손을 잡고 시베리아 임시정부를 후원하면서, 한국과 소비에트 러시아는 공식적으로는 적대관계가 되었다.

비밀리에 협상을 마친 조한민은 모스크바에서 퇴거했지만, 비선을 통해 연결고리는 남겨 두었다. 

모스크바를 떠나기 위해 기차역에 도착한 조한민의 눈에 붉은 깃발과 징병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동지들, 혁명을 수호하자! 혁명군사위원회가 그대들을 부른다!」

기차역은 붉은 깃발과 구호로 장식되고, 전선으로 향하는 적군 병사들로 가득 찼다. 병사들의 총검이 빛에 반사되어 번쩍거렸다.

적과 백, 내전의 불꽃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 * *

“전군, 포격 개시!”

“돌격! 돌격하라! 어머니 러시아를 위하여!”

“동지들, 전선을 사수하라! 혁명 만세!”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적군과 백군의 충돌은 주요 공업지대인 돈바스에서 가장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백군은 예카테리노다르(크라스노다르)와 로스토프 점령으로 기세를 올렸다.

점령 이후 백군의 주력인 돈-쿠반 카자크 외에도 러시아인 의용군이 크게 늘어났다. 특히 캅카스 전선에서 복무했던 병사들이 대거 동원되었다. 

연합국이 내전 개입에 나서면서 백군이 장악한 흑해 항구를 통해 무기와 물자가 충원되었다.

7월이 되자 자칭 ‘남러시아군’으로 확대된 백군의 총병력은 보병 10만과 기병 5만, 무기도 야포 600문과 기관총 150문에 달했다.

남러시아군은 과거 러시아군의 장성들, 즉 총사령관을 역임했던 코르닐로프 대장과 알렉세예프 대장, 남서부 전선군 사령관을 역임했던 안톤 데니킨 대장, 기병사령관 표트르 브랑겔 중장 등 군부 유력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성향과 파벌이 달랐던 장군들이 하나로 뭉쳤던 건, 소비에트에 대한 증오였다.

“하나이자 분리될 수 없는 러시아를 파괴하려는 빨갱이 놈들을 모조리 교수대에 매달아야 한다.”

“돈바스에 주력을 배치하되, 배후지 확보를 위해 서쪽으로 크림반도, 동쪽 차리친으로도 진격하라.”

연합국의 지원을 받은 덕에 백군은 흑해의 제해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전 흑해함대 사령관 콜차크 제독이 지휘하는 병력이 크림반도 상륙에 성공하고, 흑해함대의 모항인 세바스토폴을 점령했다.

브랑겔 장군이 이끄는 부대는 차리친(볼고그라드)을 향해 진격했다.

“최종 목표는 모스크바다! 신속히 돈바스와 하리코프를 점령하고, 오룔을 지나 모스크바까지 진격한다!”

거듭된 승전보에 남러시아군은 돈바스와 우크라이나 동부를 확보한 후, 최단거리로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실로 무모하기 짝이 없는 계획이었지만, 남러시아군 총사령관 코르닐로프는 작전을 밀어붙였다.

‘지금 적을 너무 얕잡아 보고 있어. 전선을 지나치게 늘여 놨다간 반드시 역공 당한다.’

백군에는 관전무관, 주로 영국과 프랑스 장교들로 구성된 연합군 장교단이 있었다.

이들의 공식적인 신분은 관전무관이었지만, 연합국을 비공식적으로 대표하는 군사고문관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자존심 강한 러시아 장군들은 연합군 장교단의 조언을 귀찮게 생각했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데, 어째서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과는 손을 잡지 못하는 건가? 키예프 탈환을 노리는 우크라이나와 손을 잡으면 적군을 더 쉽게 몰아붙일 수 있을 텐데.’

한국군 관전무관 김광서(경천) 부령은 답답했다.

러시아군을 대표하는 장군들로 지휘부를 구성한 백군이 군사적으로는 적군보다 더 유능할지 몰라도, 정치적으로는 완고하기 짝이 없었다.

남러시아군의 공식입장은 ‘러시아는 하나이자 분리할 수 없으니, 우크라이나 독립을 주장하며 정부를 자처하는 세력도 반역자 집단’이라는 논리였다.

대러시아주의에 집착하는 백군은 분리주의 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군이 키예프로 진격하면 일전을 불사할 기세였고,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조지아 민주공화국과도 마찰을 빚었다.

‘가뜩이나 소비에트는 민족자결과 토지개혁이라는 명분을 먼저 선점했는데, 적군에 맞서는 세력과도 손을 잡지 못한단 말인가.’

분명 백군은 현재 연전연승하고 있었지만, 군사적으로는 승리할 수 있어도, 정치적으로는 패배할 수 있었다.

도네츠크로 향하는 격렬한 포성이 쏟아지는 소리를 들으며, 김광서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