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차르 암살
박영효와 팽창주의 세력은 굳이 손을 쓸 필요가 없었다. 역사의 변화는 그들의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닥치고 있었다.
1919년 여름, 러시아 내전은 한층 격렬해졌다.
남부전선에서 백군의 우위는 분명해 보였다.
“하나이자 분리할 수 없는 러시아를 위하여!”
백군 남러시아군은 유조프카(도네츠크)를 점령하여 주요 공업지대인 돈바스에 기반을 확보했다. 이들의 다음 목표는 예카테리노슬라프(드니프로)와 하리코프(하르키우), 그리고 키예프(키이우)였다.
동부로 향한 남러시아군의 조공(助攻)은 차리친(스탈린그라드)을 포위하고 볼가강의 적군을 압박했다.
여기에 소비에트는 분리주의 세력의 봉기에 직면했고, 리투아니아와 벨라루스로 진격하는 폴란드와 서부 우크라이나로 진격하는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세도 막아 내야 했다.
“동지들! 소비에트 권력, 인민의 혁명이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모든 반혁명 세력을 일소하고 혁명을 수호합시다!”
위기에 처한 소비에트는 갈수록 급진화됐다.
‘반혁명 세력’, 특히 옛 로마노프 왕조 인사는 가장 경계해야 할 적이었다.
구체제의 상징인 전 차르 니콜라이 2세는 가장 먼저 제거되어야 할 ‘인민의 적’으로 규정되었다.
“인민의 적 니콜라이 로마노프를 즉각 재판에 회부합시다! 학살자 니콜라이를 단두대로!”
소비에트 정부를 구성하는 정파 중, 소수파인 사회혁명당 좌파와 아나키스트들은 로마노프 왕조에 가장 강경했다.
“지금 니콜라이를 재판에 회부하여 처형하는 건 정치적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소. 지금은 내전의 승리에 집중해야 할 때요.”
사회민주노동당(RSDLP)은 니콜라이의 처형에 반대했다. 딱히 그의 운명에 동정적이라서가 아니었다. 이들도 니콜라이를 증오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섣불리 죽여서 반혁명세력의 순교자를 만들어 줄 순 없지. 살려 두는 게 더 유용하다.”
블라디미르 울리야노프 개인으로 따지면, 그의 형 알렉산드르가 니콜라이의 부친 알렉산드르 3세에게 처형당했으니, 개인적 원한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부차적 문제였다. 그는 니콜라이가 살아 있는 게 더 유용하다고 판단했다.
이미 정치적으로 거세된 인물을 죽여 백군의 순교자로 만들어 줄 필요도 없었고, 유사시 영국과 협상할 인질로 쓸 생각이었다.
울리야노프는 소비에트 정부를 통제했다. 문제는 내전의 격화가 그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동부전선이 위태롭습니다. 투르키스탄 백군이 오렌부르크까지 진출했습니다.”
분리주의 열풍 이후, 1916년에 대대적인 반란을 일으켰던 러시아령 투르키스탄(중앙아시아)에도 자치정부가 수립되었다. 대초원의 카자흐족은 알라시(Alash) 자치국을 선포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통치는 투르키스탄 총독부가 이어나갔고, 카자흐인들은 백군과 제휴했다.
시베리아 카자크 혈통이자 카자흐스탄 태생인 백군 수령 코르닐로프의 존재는, 민족평등을 내세운 소비에트를 지지하는 경향을 보인 다른 아시아계 민족과 달리 카자흐인들을 백군과 손잡게 했다.
이들의 백군 가담은 동부전선의 개막을 의미했다. 아랄 철도를 따라 오렌부르크를 점령하고, 사마라-우파-첼랴빈스크를 위협했다.
사마라로 이전한 제헌의회 세력, 사회혁명당(SR) 우파가 이들과 결합하여 소비에트의 정통성에 도전했다.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시베리아 자치정부하고는 차원이 다른 위협이었다.
“우파와 첼랴빈스크가 함락 직전입니다. 적들이 첼랴빈스크를 장악한다면 니콜라이 로마노프를 구출할지도 모릅니다. 모스크바로 이전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베리아 충돌 이후, 니콜라이와 알렉산드라 부부는 이르쿠츠크에서 우랄산맥 인근 예카테린부르크로 이송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예카테린부르크는 전선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동부전선 개막과 오렌부르크 함락으로, 예카테린부르크가 백군의 진격에 노출되었다.
“전선 상황이 급박해서 안전하게 이동이나 시킬지 의문입니다. 반혁명 세력이 구출하면 니콜라이가 구심점이 될지도 모릅니다. 즉시 처형해야 합니다.”
“니콜라이는 이미 정치적으로 파산했소. 민주공화국 운운하는 제헌의회파가 퍽이나 니콜라이를 구심점으로 삼겠소.”
현실적으로 이미 국민으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은 니콜라이 2세가 정치적으로 부활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제정복고파도 니콜라이보다는 다른 황족을 추대하길 원했다. 심지어 동부전선을 주도하는 백군은 제정복고파도 아니었다.
하지만 23년간 제국을 통치한 차르라는 상징성 때문에, 니콜라이는 주목을 받게 되었다.
“사민당 동지들이 정치적 계산으로 결단을 못 내린다면, 우리가 인민의 적을 처단합시다.”
“그렇소. 머뭇거리다간 백군에게 넘겨주고 말 거요.”
“적당한 인물이 예카테린부르크에 있습니다. 당에 충성스럽고, 차르에 대한 증오로 가득한 동지지요.”
“좋소. 그에게 즉시 차르를 처단하라고 하시오.”
SR 좌파는 독단적으로 차르 암살을 결의했다. 혁명 이전부터 황족과 정부 인사에 대한 테러리즘으로 유명했던 이들은, 총과 폭탄을 쓰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예카테린부르크.
니콜라이와 알렉산드라 부부는 교외의 저택에 엄중한 감시하에 놓여 있었다.
내전이 격화되면서, 그나마 매주 일요일마다 허용되던 교회 방문도 금지되었다. 부부는 저택 안에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했다.
“완전히 창살 없는 감옥이로군.”
“그나마 아이들은 이런 신세를 피해서 다행이에요.”
니콜라이와 알렉산드라는 불안과 절망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녀들을 미리 피신시켰다는 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찌 지내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달니이(대련)에선 자유롭겠죠.”
“걱정하지 마시오. 이선과 이진 부자가 아이들을 아껴 줄 거요.”
니콜라이는 자녀의 망명을 받아 준 이선에게 늘 감사의 마음을 가졌다. 모두가 그들을 외면할 때, 오직 이선만이 받아 주었으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폐하, 적군을 타도할 정통 러시아군이 우파와 첼랴빈스크를 함락시켰습니다.”
니콜라이는 외부와의 접촉이 완전히 차단되었으나, 그들 부부를 따르는 주치의와 하인이 남아 있었다. 비교적 행동이 자유로운 주치의는 비밀리에 정보를 수집하여 니콜라이에게 전달했다.
“첼랴빈스크라면 여기서 멀지 않군. 정통 러시아군이 승기를 잡은 건가?”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해방의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폐하. 조금만 더 견디십시오.”
“음, 마침내 이런 날이 오는군. 역시 주님께선 신실한 종을 저버리지 않으셨구나.”
절망에 빠져 있던 니콜라이는 희망을 되찾았다.
머지않아 ‘정통 러시아군’이 자신을 구출하고, 왕관은 되찾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유의 몸이 되리라 기대했다. 그리되면 자녀들과 재회할 수 있었다.
1919년 7월 31일. 월말이 되어 경비병 교대가 이루어졌다.
새로 들어온 경비 지휘관 중에는 이반 일리치 이바노프라는 평범한 이름의 청년이 있었다.
“이반 일리치 동지, 알다시피 우리의 임무는 니콜라이 로마노프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오. 백군의 공세가 임박한 지금, 유사시 로마노프를 모스크바로 이전시켜야 하오.”
“만약 니콜라이 로마노프가 백군과 내통하여 탈출하려 한다면 어찌합니까?”
“그런 경우가 없길 바라지만, 만약 그렇다면 제거해도 어쩔 수 없지.”
소비에트 중앙위원회가 임명한 경비대장은 모스크바의 명령에 충실했다.
하지만 이반은 달랐다. 경비병 교체로 어수선한 바로 그 날 밤, 이반은 즉시 총구를 빼 들었다.
똑똑.
니콜라이는 한밤중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새로 온 경비병입니다. 문을 여십시오.”
니콜라이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문을 열었다.
“늦은 밤에 어인 일이오?”
“폐하, 저는 이반 일리치라고 합니다.”
간만에 듣는 ‘폐하’라는 경칭에 니콜라이는 내심 놀랐다. 경비병들은 그를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라고 불렀다. 불쾌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폐하를 구출하라는 명을 받고 도착했습니다. 속히 탈출을 준비하십시오.”
갑작스러운 말에 니콜라이는 깜짝 놀랐다.
“지금 당장 말이오?”
“예,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당장 준비하십시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러워, 니콜라이는 순간 의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말투나 행동거지가 백군이라고 여겨지진 않았다.
“그대의 소속이 어디요?”
“사마라 제헌의회 정부에서 보냈습니다.”
“사마라 제헌의회? 그럼 사회혁명당 소속이라는 거요? 그들이 왜 나를 구하려 하오?”
“폐하, 저는 병사입니다. 명령받은 대로 수행할 뿐입니다.”
니콜라이는 청년이 사회혁명당이라면 말투나 행동거지가 이해가 됐다. 하지만 그들이 왜 자신을 구출하는지는 의문이었다. 물론 ‘적의 적은 아군’이니, 구하려는 것일 수도 있었다.
“정통 러시아군이 곧 예카테린부르크에 도달한다고 들었소. 그렇다면 기다리는 게 낫지 않겠소?”
“참 딱하시군요. 그때까지 순순히 볼셰비키가 폐하를 살려 주리라 생각하십니까? 백군이 가까워질수록 폐하의 목숨이 위험합니다. 그래서 저를 보낸 겁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과연 니콜라이를 움직이기에 이만한 말이 없었다. 마침내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알겠소. 아내와 수행원들을 깨우겠소.”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아내 없이는 난 어디도 가지 않소.”
“그럼 황후만 모시고 나오십시오.”
“아, 알겠소.”
니콜라이는 불안한 표정의 알렉산드라에게 속히 옷을 갈아입으라고 권했다.
“니키, 무슨 일이에요?”
“우리가 염원하던 원군이 왔소. 소비에트가 우리 부부를 총살시키려 한다는군. 지금이 마지막 기회요. 탈출합시다.”
“아, 마침내! 알겠어요. 즉시 준비하지요.”
니콜라이와 알렉산드라는 속히 여장을 준비하고 이반을 따라나섰다.
야간 경비병들을 신속히 제압하고 도주로를 확보한 이반은 니콜라이 부부를 숲으로 인도했다.
“이제 어디로 가는 거요?”
“조금만 더 가면 자동차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걸 타고 백군 지역으로 넘어갈 겁니다.”
니콜라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반의 날랜 솜씨에 그는 내심 신뢰를 얻게 된 터였다.
“허억, 잠시만. 조금만 쉬었다 가요.”
50대인 니콜라이나 병약한 알렉산드라나 도주에 지치긴 매한가지였다.
“이반 일리치, 아내가 몸이 안 좋아서 빠르게 움직일 순 없소. 꽤 많이 온 것 같은데 잠깐만 쉽시다.”
주위를 살피던 이반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니콜라이와 알렉산드라는 나무 아래 바위에 앉았다.
생각해 보면 처량하기 짝이 없었다. 전 러시아의 전제군주였던 자신이 야반도주하는 처지라니.
“니키, 탈출에 성공하면 아이들을 볼 수 있겠죠?”
“아아, 물론이오. 달니이든 어디든 우리가 살 수 있는 곳으로 가서 아이들과 재회합시다.”
니콜라이는 마음을 다잡았다. 살아서 자녀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충분했다.
“폐하께선 아이들을 꽤나 사랑하시나 봅니다.”
“아아, 물론이오. 차르라고 다르진 않소. 나 또한 아이를 사랑하는 평범한 아비지.”
니콜라이가 웃음 띤 얼굴로 답하자, 이반이 냉소를 흘렸다.
“그렇군요. 그런데 어찌하여 당신은 아이들에게도 총질을 했습니까?”
이반의 태도가 갑자기 바뀌었다. 니콜라이와 알렉산드라는 순간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당신은 누구요?”
“내 질문에 먼저 답해 주시지요. 13년 전 겨울, 왜 당신의 군대는 아이들에게도 총을 쏘았단 말입니까? 차르의 초상화를 들고, 신에게 차르를 보호하라는 국가를 부르며, 어버이 차르에게 청원하러 가던 차르의 아이들을.”
이반은 1906년 1월 피의 일요일 사건을 상기시켰다. 러시아 혁명의 서막이자, 니콜라이 최악의 실수였다.
“그, 그건…….”
니콜라이는 답을 하지 못했다. 자신이 완전히 왜곡된 세계 안에서 살아가며, 왜곡된 보고를 받아 어리석은 판단을 내렸다는 걸 깨달은 건 나중의 일이었다.
“당신은 알지 못하겠지만, 나도 그 행렬에 있었습니다. 공장 노동자였던, 어버이 차르를 찬양하고 존경하던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는 늘 나에게 당신을 찬양하라고 하셨지요. 차르는 우리의 어버이시니, 자식들을 저버릴 리가 없다.”
니콜라이는 눈을 꽉 감았다. 자신의 업보였다.
“우리는 그날 사람들이 흘리는 피를 보고 배신감과 충격에 빠졌소. 아버지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소. 당신의 개들이 쏜 총을 맞기 전, 마지막으로 내게 남긴 말씀이셨지.”
이반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총을 빼 들었다.
“아들아, 보았느냐?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렀는지 똑똑히 보았지? 오늘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해라! 아들아, 이 원수를 잊지 말고 반드시 복수해라! 반드시 차르에게 갚아 주겠다고 맹세해라!”
절규와도 같은 외침에 니콜라이는 감았던 눈을 떴다.
“내 책임을 통감하오.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주시오. 나 역시 좋은 차르가 되고 싶었소……. 비록 결과가 이리되었지만 말이오.”
이반은 냉소를 흘리며 총구를 겨누었다.
“한 가지만 묻겠소. 당신의 진짜 정체는 뭐요?”
“나는 러시아 농민-노동자의 아들이자, 사회혁명당 전투단 소속 이반 일리치 이바노프다.”
이반은 사실 전설적인 테러리스트인 사빈코프의 사회혁명당 전투단 출신으로, 사빈코프가 우익으로 전향하자 SR 좌파로 이동하여 소비에트를 지지했다.
그는 처음부터 니콜라이를 죽일 생각으로 저택에 들어왔다. 그는 러시아 제국을 연상시키는 모든 것, 특히 ‘학살자 차르’를 혐오했다.
“내 아내는 책임이 없소. 아내는 살려 주시오.”
“니키!”
알렉산드라가 니콜라이의 몸을 부둥켜안으며 부들부들 떨었다.
“황후가 섭정으로 했던 짓은 기억하지 않나 보군. 여성의 날 시위에 발포를 명령한 건 이 여자였어. 당신의 병사들은, 누군가의 딸이고 아내이고 어머니인 여성들도 쏴 죽였지.”
“그건 모두 내 책임이오! 내 이름으로 벌어진 일이 아니오?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소. 제발…….”
니콜라이는 자신을 죽이려는 암살자에게 애원했다. 처절한 최후의 몸짓이었다.
“그건 걱정하지 마라. 나는 당의 명령을 따른다. 당은 니콜라이 로마노프만을 처형하라고 명령했다.”
“고맙소. …… 당신은 꼭 살아남으시오, 알릭스. 그동안 이 못난 남편을 따르느라 고생 많았소. 사랑하오.”
“안 돼요, 니키!”
니콜라이는 아내에게 작별을 고하고, 총구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신에게 기도하고, 이선을 향해 부탁했다.
‘벗이여, 내 아이들을 잘 부탁하네. 부디 내 아이들만은 이 지옥과도 같은 왕가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를!’
“사회혁명당 좌익 중앙위원회의 명령을 받아, 인민의 적 니콜라이 로마노프를 처단한다.”
탕! 탕!
고요하던 숲에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총알은 정확히 심장과 머리를 꿰뚫었다. 고통조차 느낄 필요 없는 즉사였다.
로마노프 왕조 제17대 군주이자 러시아제국 제14대 황제인 니콜라이 2세는 우랄산맥 인근의 숲에서 쓸쓸한 최후를 맞이했다. 향년 51세.
개인적으로는 선량한 신사이자 훌륭한 부모였으나, 군주로서는 자격이 없을 정도로 무능하고 독선적이었다. 그가 꿈꿨던 17세기 러시아였다면 그럭저럭 괜찮은 전제군주가 되었을지 모르나, 20세기 격동의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자리였다.
니콜라이 개인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는 수많은 사람의 죽음에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었다.
세르비아를 보호하기 위해 전쟁을 섣불리 일으키고, 무능한 지휘로 2백만에 달하는 병사들이 죽은 건 통수권자인 그의 책임이었다.
혁명의 시발점이 된 피의 일요일 사건은 온전히 그의 실책이었다. 왜곡된 세계에서 살아가던 군주의 어리석은 선택이자, 왕조와 자신마저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살행위였다.
물론 러시아 사회의 모순은 수백 년간 중첩된 것이었기에, 니콜라이가 군주가 아니었더라도 결국에는 혁명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무능과 독선은 혁명의 시계를 앞당겼고, 역사의 물줄기를 돌렸다.
한 가지 변화한 점이 있다면, 니콜라이가 무엇보다 사랑하던 자녀들의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 세계의 니콜라이는 최소한 가족의 안위만은 안심하고 눈은 감을 수 있었다.
1919년 여름, 역사의 시계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