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의심하는 지도자
황성에 도착한 이선은 밀려 있던 국무의 처리에 나섰다. 떠나 있던 기간에는 내각이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이진도 대리청정으로서 충분히 역할을 해 왔다.
“태자가 그동안 노고가 많았다.”
“황공하옵니다. 소자가 부족하여 부황께 심려를 끼쳐드렸사오니…….”
이진이 송구해 하며 고개를 숙였다. 부친이 원산 학살에 분노하여 대신들을 크게 꾸짖었다는 사실이 송구스럽기 짝이 없었다. 자신이 그런 명령은 안 내렸더라도 대리청정으로서의 책임이 없지 않았다.
“그래. 너는 원산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
“예. 내무부, 군무부, 현지 보고 모두 보고 사항은 대동소이합니다. 저도 그래서 소비에트 러시아가 배후에서 조종한 폭동인 줄 알았습니다. 하온데 소자가 신문 보도에 의아함을 느껴 경위원을 통해 알아본 바에 의하면…….”
책임부서인 내무부 치안국·군무부 국가헌병대·함경남도청·원산부청 모두 소비에트 러시아의 조종을 받은 좌익 폭동임을 역설했다.
하지만 현지에 파견된 경위원의 보고는 달랐다.
「러시아가 배후에서 조종했는지 여부는 경찰 조사에 참여한 게 아니므로 장담할 수 없습니다만, 사건의 발화가 된 총파업은 영국계 자본의 모욕과 약속이행 거부로부터 비롯되었고, 과격화가 된 원인은 국수단의 노조 습격과 원산노련 지도부의 체포였습니다. 노조 지도부는 알려진 것과 달리 오히려 파업의 과격화를 막기 위해 노력했다고 추정됩니다.
발포의 경우 노동자들이 경찰서를 향해 위협적으로 행진한 건 분명하고, 세 번의 해산 경고를 무시하였음도 분명합니다. 하지만 경찰이 말하는 자위적 발포인지 여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경위원 보고서를 읽은 이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태의 실태에 훨씬 가깝게 접근한 제국익문사의 보고만은 못해도, 이 정도면 정부의 공식적 발표가 거짓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네가 보았듯이, 구중궁궐에 있는 군주는 언제든지 눈과 귀가 가려질 수 있다. 아무리 전국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읽고 만기친람을 하여도, 관료들이 중간에서 정보를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신뢰하는 신하의 말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하고, 의심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예, 폐하. 소자가 부족하여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진 자신도 중간에서 정보가 차단됐다는 사실에 충격과 배신감을 느꼈다. 자신이 신뢰하는 대신들조차도 그랬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언제나 의심만 한다면, 피해망상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 작금 개화당의 가장 큰 문제가 그러하다. 나도 국가를 향한 그들의 충정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문제는 그 방향이 틀렸다는 것이다.”
이선은 오랜 동지인 개화당에 대한 실망감을 이진에게 솔직히 털어놓았다.
“개화당은 러시아에서 일어난 일이 한국에서도 일어날까 두려워하고, 파업이니 사회주의니 하는 말만 봐도 공포를 일으키며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다. 의심이 그들의 눈을 가려 버린 것이다. 적색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니 모두 붉게 보이는 거지. 기실 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작금 세계의 지배층 대부분이 공유하는 실수지.”
만약 이진이 적극적으로 발포 명령을 내렸더라면, 이선은 크게 실망하였을 터였다. 태자에게 국가의 미래를 맡길 수 있을지 여부를 근본적으로 다시 고려해 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진의 선택지는 불확실한 정보로 인해 차단되어 있었고,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오히려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진아, 너는 세상에서 어떤 지도자가 가장 많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부친의 질문에 이진은 잠시 생각을 하다 답했다.
“폭군, 사악하고 잔인한 본성을 가진 폭군이 아닐련지요.”
“물론 그럴 수 있지. 하지만 멀리는 걸주나 수양제의 고사, 가까이에는 폐주 연산군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의 사악함과 잔인함은 기껏해야 단기간의 폭정으로 끝날 뿐이다. 폭군은 지배계층 내부에서도 공포를 느끼고 제거하려고 한다. 폭군보다 훨씬 위험한 존재는 따로 있다.”
이진이 의아해하는 표정을 짓자, 이선이 미소를 거두고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자신이 무엇을 하든 옳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지도자야말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이들은 국가안보라는 명목으로, 역사의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얼마든지 전쟁과 수백만의 학살을 정당화하고 추진할 수 있다. 지난 대전쟁이 그러했으며, 현재 러시아와 유럽에서 벌어지는 일이 그렇고, 앞으로 네가 살아갈 세계에서도 그리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20세기의 악명 높은 독재자이자 학살자인 히틀러와 나치당은 단순히 사악하고 잔인한 본성을 갖고 있어서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대학살을 벌인 게 아니다. 그들은 정말로 자신들이 독일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옳은 일’을 한다고 생각했다.
스탈린과 볼셰비키도 마찬가지다. 급진적 공업화에 따른 막대한 희생과 대숙청은 ‘역사의 진보’를 위한 불가피한 일로 여겼다.
“원산에서 40여 명이 죽었다고 한다. 개화당 정부나 군부에선 그러겠지. 좌익 노동자 40명 죽은 게 무슨 문제인가? 유럽에선 수백만 단위로 죽어 나가는데. 그리고 자신들이 혁명을 방지하고 국가안보를 위해 옳은 선택을 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바로 그게 틀렸다.”
아시아에서 끔찍한 살육을 벌인 일본 제국주의 또한 그렇다. 그들은 일본의 ‘주권’과 ‘아시아의 해방’을 위해 자신들이 정당한 ‘성전’을 벌인다고 확신했다.
그보다 규모는 작을지라도, 1차 세계대전의 지도자들도 국가안보와 패권수호라는 명목으로 수백만의 피를 흘리게 했다. 그들 중 누구도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패전국의 지도자조차도.
“자신이 옳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지도자들은, 40명이 4백, 4천, 4만, 40만, 아니 400만으로 늘어나도 개의치 않는다. 국가안보라는 명목으로 얼마든지 정당화하고 세뇌할 수 있다. 물론 지금의 개화당이야 그런 짓을 벌이지 않을 이성이 남아 있지. 하지만 앞으로 시대가 미쳐 간다면, 어찌 될까?”
이진은 부친이 말하는 묵시록적 미래가 상상되지 않았지만, 엄숙하고 진지한 가르침에 깊이 경청했다.
“지도자는 언제나 먼저 자신을 의심하고 경계해야 한다. 나 또한 언제나 그러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지 못하면, 국가와 국민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 벌어지겠지. 너는 언제나 이를 명심하고 기억해 두어라.”
기실 이선이 자신을 의심하고 경계할 수 있는 것도, 미래의 기억 – 20세기 극단의 시대의 역사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러지 않았더라면, 이선도 성공에 취한 독재자가 되었으리라. 그 또한 장기집권한 권력자의 관성으로 오만에 빠졌다가, 민중의 각성을 지켜본 후에 다시 객관화할 수 있었다.
“예, 폐하. 소자, 반드시 부황의 가르침을 평생 잊지 않고, 늘 자신을 의심하고 경계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모르는 이진으로선, 부황이 국가의 지도자로서 위대한 업적을 세우고도 스스로를 경계하고 객관화하는 모습에 놀라고 감격하였다. 새삼 부황이야말로 자신이 언제나 본받아야 할 지도자라고 확신하고 다짐했다.
* * *
이선은 귀국 후 며칠간 원산 학살은 문제 삼지 않고, 밀린 업무 처리에 집중했다. 파고다공원과 황성광장을 가득 메웠던 군중도 황제의 귀국 후에는 일단 물러섰다. 황제가 제대로 처결해 주리라는 믿음에서였다.
개화당 정부는 이대로 마무리되는 것처럼 여겼지만, 이선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9월 7일 밤.
전 외무대신이자 궁내부 특진관 이상설, 제국익문사 독리 이회영, 원수부 검사국 총장 이동휘 정장, 전 주중공사이자 비서원경 신규식이 비밀리에 입궐했다.
“성상께서 어인 일로 부르시는지, 대감께서는 짐작 가시는 바가 있으십니까?”
“글쎄요, 나도 모르겠습니다.”
일요일 밤의 갑작스러운 입궐이었다. 이선과 함께 유럽에서 귀국한 이상설은 대략 짐작이 갔으나, 신중한 성격답게 입을 다물었다. 익문사를 이끄는 이회영만이 목적을 알고 있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경들은, 실로 국가의 공신이자 짐이 신뢰할 수 있는 고굉(股肱)이다.”
“황공하옵니다, 폐하.”
“짐은 경들을 믿고 특명을 내리고자 한다.”
“하명하소서.”
이선은 목소리를 낮추고 특명을 전달했다. 특명의 내용에 이들은 깜짝 놀랐다.
“폐하, 이 어인 하교이신지…….”
“신하된 도리로 감히 받기가 어렵사옵니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 경들은 짐의 명을 받들라.”
황명에 네 신료는 무릎을 꿇고 명을 받았다.
“신등은 지엄한 황명을 받들겠습니다.”
“좋다. 명일 짐이 직접 조서를 내릴 것이다. 그때부터 경들은 이대로 움직여 주면 된다.”
익문사가 준비한 보고서와 계획서를 토대로, 이선은 신료들에게 명했다.
“이건……!”
“삼가 성상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대한제국 선포 이래 최대의 정치적 교체를 암시하는 사안에 신료들은 긴장감을 느꼈으나, 고개를 끄덕이며 성사를 다짐했다.
광무 23년 9월 8일. 태상황의 탄일인 만수성절(萬壽聖節)을 맞이해 창덕궁에서 축연이 열렸다.
이선이 9월 초까지 입국을 확정했던 이유도, 장남으로서 만수성절에는 꼭 참석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태상황 폐하의 성수무강을 기원하옵니다.”
“고맙소, 황상.”
태상황 이형의 나이 어느덧 예순여덟. 원역사대로라면 올 1월에 이미 세상을 떠났어야 했으나, 역사의 변화는 수명을 늘려 주었다. 노환으로 잔병치레는 달고 살아도, 편안하고 유유자적한 삶이 건강에 큰 도움이 되는 건 분명했다.
“구주에서 대한의 위상을 떨치고 돌아왔다고 들었소. 참으로 장한 일이오. 아, 황상이 아니었더라면 대한이 어찌 서양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동렬이 되었겠소?”
“황공하옵니다. 위로는 열성조의 보살핌, 아래로는 문무백관과 신민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태상황은 완전히 달관한 듯, 장남에게 순수한 찬사를 보냈다.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이 그 자리에 있어야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조선의 역사를 바꾼 명군이 자신의 아들이라는 데 자부심을 가졌다.
“새삼스러운 말이오만, 황상도 이제 늙었구려. 흑발홍안이었건만, 어느덧 백발의 장년이 되었으니.”
“하하, 소자의 나이도 쉰이 넘었습니다. 어찌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워낙 부자간의 나이 차가 적은지라, 태상황과 이선은 함께 늙어 가고 있었다.
“하긴 태자가 어느덧 스물셋의 훤칠한 장부가 되었으니. 예친왕도 열넷이니 다 컸구나.”
“그러하옵니다, 태상황 폐하.”
태상황은 태자 이진과 예친왕 이은에게는 애정을 표명하면서도, 정친왕 이안은 언급하지도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황족들 대부분은 이안을 없는 사람처럼 대했다. 단지 황제의 체면을 생각해서 친왕으로 존중할 뿐이었다. 여전히 그들의 내심은 혼혈 왕자를 용납할 수 없었다.
이안 자신은 그런 대접에 익숙해서 별로 개의치 않았으나, 이선은 차남이 딱하게 느껴졌다.
“황태자가 대리청정을 함에서도 부족함이 없다고 들었소. 과연 부황을 담아 성군의 자질이 있구려.”
“아니옵니다. 소손은 그저 대조(大朝, 군주)의 명을 받들어 국정을 잠시 대리했을 뿐입니다. 중요한 일은 모두 대신들과 의논하여 처결하였습니다.”
이진이 당치도 않다는 듯 손사래를 치자, 황족들이 잇달아 찬사를 보냈다.
“대조께옵서 성군이시니, 대조를 계승한 소조(小朝, 섭정하는 태자)께서 성군의 자질이 있음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옵니다!”
“종사의 홍복이자 대한의 영광이옵니다!”
거듭된 찬사에 이진은 오히려 좌불안석이었다. 이선이 웃으면서 황족들에게 물었다.
“소조의 대리정청이 그리도 훌륭했군요.”
“안으로는 신민의 삶을 보듬고, 밖으로는 의리를 저버린 아라사 역적들을 정벌하는 명을 내리셨으니, 마치 대조께옵서 국운을 크게 일으키시고 만청 오랑캐를 정벌하셨던 20년 전을 보는 것과 같사옵니다.”
흥친왕 이준용이 황족들을 대표해 이선과 이진 부자에게 찬사를 보냈다.
“소조의 자질과 품성은 짐 또한 높이 평가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근래 원산에 이어 황성에서 민심의 동태가 심상치 않음은, 소조의 문제가 아니라 이를 잘못 보필한 원훈과 대신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선의 말에, 선왕의 부마로서 황실 행사에 참석한 박영효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필경 ‘잘못 보필한 원훈과 대신’의 필두에는 박영효가 있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이는 소조의 문제가 아님은 당연한 일이요, 대신들이 잘못 보필한 일도 아닙니다.”
“그렇소? 흥친왕은 그리 생각하시오?”
박영효가 눈짓으로 이준용더러 입을 다물 것을 권했으나, 상황파악을 못 하고 있는 이준용은 거듭 개화당 정부를 변호했다.
“그러하옵니다. 감히 사악한 외세와 내통하는, 불순한 무리의 조종을 받은 자들에게, 제국정부의 추상과도 같은 엄벌을 내린 것이옵니다.”
“하긴 국수단과 제국당이 밀접한 관계에 있고, 제국당의 정치자금 상당수는 운현궁이 대고 있으니, 흥친왕의 말은 과연 공로자의 말이라 할 수 있소.”
이선의 비아냥거림에 이준용은 입을 다물었다. 극우 팽창주의 세력인 국수단이 제국당의 하부조직이고, 그 제국당을 후원하고 있는 이가 이준용임을 이선은 이미 알고 있었다.
“흥친왕의 말이 틀리지 않소. 설령 저들이 외세와 내통하지 않았더라도, 감히 국가의 일에 맞서는 폭민(暴民)의 무리는 마땅히 징벌을 받아야 하오. 원훈과 대신이 그러한 명을 내리도록 조언했다면, 오히려 치하를 받을 일이지 비난 받을 일이 아니오.”
태상황이 이준용과 박영효를 옹호했다. 본래 이준용은 운현궁의 손자로서, 박영효는 이선의 왼팔로서 자신을 왕위에서 끌어내리는 데 적극 동참했었던 만큼, 태상황은 내심 저 둘을 괘씸하게 여겼다.
하지만 이 경우에서만큼은 옳다고 생각했다. 태상황의 세계관에서, 감히 백성이 국가에 맞선다는 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이 실권한 원인이 된 임오군란 당시 병사들에게 궁궐을 점령당했던 치욕을 생각하면, 아직도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
“의친왕의 생각은 어떠한가?”
이선은 대답하지 않고 의친왕 이강에게 발언권을 넘겼다.
“어리석은 신의 생각으로는, 설령 폭민이라 할지라도 효유하여 스스로 복종하게 함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물며 요 근래 황성을 떠들썩하게 한 시위대는 폭민이 아니라, 잘못된 일을 바로잡고자 일어선 의로운 국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저……. 네 나이도 마흔이 훌쩍 넘었는데 언제 정신을 차릴 게냐? 황상, 저놈의 말은 듣지 마시오. 어릴 적부터 미국물이 잔뜩 들어 엇나가는 놈이니.”
이강의 소신 있는 발언에 태상황뿐만 아니라 황족들 모두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 반대로 이선은 내심 미소를 지었다.
‘설령 내가 사라진다 해도 태자를 보필할 지친(至親)이 한 사람은 있으니 다행이군.’
만수성절 행사를 마치고 경복궁으로 환궁한 이선은, 그날 저녁 뜻밖의 폭탄선언을 했다.
「짐이 천명을 받들어 대한의 제위에 오른 지 어언 23년. 짐은 비록 어리석고 덕이 없으나, 위로는 열성조의 보살핌, 아래로는 문무백관의 보좌와 신민의 충성을 받아, 국가를 반석 위에 올리고자 했다.
…… 금년 태자 진에게 대리청정을 맡기어 살펴보니, 현명한 천성을 타고난 소조는 진실로 군주의 자격이 충분하다.
대전쟁의 끝으로 비로소 세계에 평화가 도래했고, 짐의 나이 쉰을 넘어 병환이 적지 않으니, 유능한 후계자에게 선위한 태종대왕의 선례를 따라, 소조에게 국가를 맡기고 뒤로 물러나 병을 다스리고자 한다. 아! 태종대왕의 결단이 세종대왕의 성세(盛世)를 이루게 하였으니, 짐이 어찌 이를 본받지 않겠는가? 소조는 짐의 선위를 받들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