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로마노프 왕조의 보호자
광무 24년(1920) 1월, 황태자 이진은 부황을 대신해 서북 일대를 순행하고 행사에 참석했다.
“대한국 만세! 황제 폐하 만세!”
“황태자 전하 천세!”
한겨울의 추위 속에서도, 자발적으로 모인 주민들은 황태자의 방문을 열렬히 환영했다.
오랫동안 조선 왕조에서 차별받다 경장 이후 대우를 받게 된 서북 지역은 이선의 열렬한 숭배자들이오, 신민당의 텃밭이자, 개혁의 확고한 지지자였다.
이들의 눈에는 소조 또한 대조의 뒤를 이어 개혁을 이끌고 있는 젊은 지도자였다.
“마침내 보통선거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소, 여러분!”
“아시아 최초라! 대한이 아시아의 자유와 민본을 선도한다!”
근래 최대 이슈는 보통선거권의 확립이었다.
선거법 개정 이전, 아시아 최초의 보통선거권 확립에 보수파들의 반발이 적지 않아, 이진은 보통선거의 대의에는 공감하면서도 급진적인 개혁이 아닌가 우려했었다.
“총리, 지나치게 급진적인 개혁은 반발을 불러일으키지 않겠습니까?”
“심려 마시옵소서. 이는 대조의 뜻이자 국민의 성원이기도 합니다.”
“음, 좋습니다. 그렇다면 강행합시다.”
이상설 내각은 황제와 의회의 지지를 받아 개혁의 선봉에 섰다. 부황의 확고한 의지를 확인한 이진도 정치개혁을 밀어붙였다.
「짐은 소조와 내각, 의회와 국민의 여망을 받아들여, 선거법 개정을 재가하는 바이다.」
민의원과 중추원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얻은 선거법 개정안은 황제의 재가를 받아 최종 공표되었다.
이선은 이제 중대한 정치개혁은 모두 대리청정 중인 소조(小朝)의 명의로 공표하기로 했다.
공식적으로 보통선거권 개혁을 주도한 건, 총리 이상설과 황태자 이진으로 알려졌다.
“소조께서 보통선거권 개혁을 주도했다더군. 과연 젊은 만큼 혁신적이시군!”
“마치 30년 전 대경장을 이끄시던 대조(大朝)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지 않은가?”
“암, 위대한 군주의 혈통을 계승했는데 그 자질과 능력이 어디로 가겠는가.”
“대한의 미래가 실로 탄탄대로일세!”
국민은 점차 이진이 ‘새 시대의 지도자’로 손색이 없다고 여기게 되었다.
이선이 계몽전제군주로서 대경장, 근대화, 자주독립, 부국강병 등을 상징한다면, 이진은 입헌군주로서 정치개혁과 민본주의를 상징하는 지도자가 되어야 했다.
‘부황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마땅히 따라야지.’
이진은 부황의 뜻을 받아들였다.
이제 부황과도 같은 계몽전제군주가 되겠다는 옛꿈은 버렸고, 새로운 시대의 상징이라는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였다.
이진은 부황이 동양의 전통적인 군주상을 벗어나, 오히려 서양의 근대적 계몽전제군주에 더 가깝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단순히 옷만 곤룡포에서 프로이센식 대원수 제복으로 바뀐 게 아니었다.
이선은 서양 언론의 평을 빌리자면, 「동양의 표트르 대제, 프리드리히 대왕, 나폴레옹」이었다.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시대를 돌파하기 위해 필요한 리더십이었고, 마침내 목표를 달성했다.
“대전쟁 이후 대부분의 군주제는 몰락했지만, 영국의 군주제는 국민적 지지를 받아 오히려 더 굳건해졌다.”
이제 이진이 참고하는 모델은, 이선의 권유대로 영국 국왕 조지 5세였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으나, 국가의 상징으로서 모든 국민을 대표하고, 의무를 솔선수범하며, 유사시 전쟁과도 같은 상황에서는 통수권자로서 승리의 깃발이 된다.
이진 개인의 취향으로 말하자면, 서양을 동양보다 훨씬 좋아하고 동경했다. 20세기 초, 서양이 압도적으로 우월하던 시대였다.
당장 주변을 둘러봐도 그랬다. 사람은 좋아 보이나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다이쇼 천황, 어린 꼭두각시 선통제, 왕공들에 의해 추대된 전직승려 복드 칸.
하나같이 군주로서의 권위는 모자랐다. 도저히 부황과 동렬에 설 수 없는 군주들이었다.
이진이 직접 본 군주들 중에서 그나마 부황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이는 카이저 빌헬름 2세와 차르 니콜라이 2세였다. 하지만 그들은 대전쟁에서 실패하고 몰락했다. 역시 부황에 비견될 군주는 동시대에 아무도 없었다.
‘카이저와 차르가 몰락한 이상, 이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군주는 동양에서는 부황이오, 서양에서는 조지 5세라.’
물론 이진이 되고 싶은 건 전자였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이상 후자를 택해야 했다.
‘이제는 정말로 서구형 군주가 되어야겠군.’
이진은 결심했다. 확실한 서구형 군주가 되겠다고. 그게 부황의 뜻에 부응하는 길이고, 새 시대의 흐름을 따르는 길이었다.
‘그렇다면, 혼례도 꼭 케케묵은 청 황실과 할 필요가 있나?’
이진의 시각에선, 아무리 생각해도 청 황실은 실패하고 낙후한 왕가였다. 그나마 숙친왕의 자녀들이 당대 최고의 교육을 받은 엘리트고, 한만 협화라는 목표가 최우선이라는 건 이진도 물론 인지했다.
협화는 인적결합으로 이뤄질 것이며, 두 황가의 결합만큼 상징적인 것이 없었다.
‘꼭 국혼으로만 달성해야 하나? 숙친왕은 엄연히 방계니까 우리도 적당한 방계 황족 내세우면 되잖아. 도저히 격에 맞지 않는걸…….’
이진은 정말로 이 혼사가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부황이 추진하는 일에 ‘싫다’라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아마도 자신이 싫다고 하면 부황은 뜻을 접을 것이다. 부황은 한 번도 자신에게 무언가를 강요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실망하시겠지. 대조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소조가 되고 싶지는 않다.’
그는 어떠한 일에서도, 부황에게 실망을 주고 싶지 않았다.
정작 이선은 아들이 원한다면 무엇이든 해 줄 수 있다는 걸, 이진은 감히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 * *
1920년 1월 7일, 율리우스력 1919년 12월 25일.
이날은 동방정교회의 크리스마스이다. 여전히 율리우스력을 고수하고 있는 정교회에서는 그레고리력보다 13일이 늦었고, 따라서 서력 1월 7일은 아직 12월 25일이었다.
정작 러시아 본토에서는 이미 그레고리력으로 개정했지만, 소비에트 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백군과 그 지지자들은 여전히 율리우스력을 고수했다.
자신들이 러시아의 정통성을 계승했다고 확신하는 황실 망명자들은 더욱 그러했다.
“주님! 신실한 러시아의 자녀들이, 세상을 파괴하고 있는 저 사악한 무신론자-사회주의자들을 무찌를 수 있도록 가호하여 주시옵소서!”
“모스크바를 되찾는 그 날까지!”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하신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신부의 선창에 망명자들은 모두 성호를 그으며 기도했다. 니콜라이 2세의 자녀들도 전면에 서 있었다.
평양 성 게오르기 성당의 크리스마스 예배에 참석한 이들은 대부분 러시아인이었다.
‘조선의 예루살렘’ 운운하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기독교세가 비교적 강한 평양이라지만, 개신교가 강세였고 드물게 천주교가 있는 정도였다.
대한제국과 러시아제국의 우호관계에도 불구하고 정교회는 러시아와 접경한 함경도 일대에서만 퍼졌을 뿐, 전체적으로 보면 한국의 마이너리티인 기독교 중에서도 마이너리티였다.
“대공 전하, 우리는 반드시 승리하여 모스크바로 되돌아가게 될 겁니다. 올해 부활절에는 크렘린과 성 바실리 대성당에서 테 데움(Te Deum, 찬미가)을 합창할 수 있을 겁니다.”
“예, 반드시 그래야지요. 주님의 이름으로 승리할 겁니다.”
알렉세이는 병약해 보이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전 황태자다운 근엄함을 갖추어 화답했다.
하지만 혈족에 대한 걱정을 감추지는 못했다.
“올가 누님은 무탈하시겠죠?”
“물론입니다. 올가 여대공께서는 안전한 후방에서 부상병 간호를 돕고 계십니다. 드미트리 대공께서 특별히 보호하고 계시니 걱정 마십시오.”
“부디 올랴에게 주님의 가호가 있기를!”
1919년 8월, 올가는 드미트리 대공과 함께 내전 중인 러시아로 돌아갔다.
차르 부부의 비참한 최후를 전해 들은 자녀들은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 없었다.
“자식 된 도리로 부모님의 원수를 가만히 지켜만 볼 수는 없어. 정통 러시아군의 승리만이 부모님의 원수를 갚는 길이야. 나도 힘을 보태겠어.”
“그럼 우리도 같이 갈래!”
장녀의 결심에 동생들은 따라나서길 원했지만, 올가는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너무 위험해. 난 맏이로서 의무를 다해야 하지만, 너희는 아니야. 부모님께선 너희들을 반드시 보호하라고 하셨어. 그 약속을 저버릴 수는 없어.”
“그럼 올랴 혼자 위험한 곳으로 가겠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 디마(드미트리)가 날 도울 거야. 애국자 동지들이 우릴 보호해 줄 거야.”
올가는 둘째 타티야나에게 신신당부했다.
“타냐, 동생들을 잘 부탁해. 한국 황실이 안전하게 보호해줄 거야. 결코 한국의 보호를 벗어나면 안 돼. 특히 알료샤를 잘 부탁해. 그 아인 아프니까.”
“알겠어, 올랴. 반드시 그럴게.”
타티야나는 굳은 의지를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올가가 없다면, 이제 그녀가 맏이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올가는 한국 정부에 청원하여 러시아로 되돌아갔다. 백군은 정통성을 지닌 황녀의 귀환을 일단 환영했지만, 백군 상당수가 공화주의자라는 점을 감안하여 전러시아 임시정부에 충성서약을 요구했다.
“나, 올가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는, 러시아의 국민으로서, 전러시아 임시정부와 제헌의회에 충성을 바칠 것을 맹세합니다.”
올가는 흔쾌히 임시정부에 충성을 맹세했다. 그녀는 황위나 제정복고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고, 오직 부모님의 유해를 되찾고 원수를 갚는 게 목표였다.
백군 소속이 된 올가는 동부전선의 후방에서 부상병 간호를 맡았다. 대전쟁 시에도 간호사로 활약했던 그녀로서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타티야나, 마리야, 아나스타샤, 알렉세이는 거처를 대련에서 평양으로 옮겼다. 만주도 그다지 안전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고, 한국 정부도 공식적으로 소비에트 러시아와 적대하게 된 이상 이들 남매를 한국 국내로 받아들였다.
단교와 외교관 철수로 인해 비워진 평양 주재 러시아 총영사관이 4남매의 새로운 거처가 되었다. 완전히 러시아풍인 영사관은 흥경궁에서 지척이었고, 경호하기에도 용이했다.
4남매의 안전을 위하여, 매주 일요일과 축일에만 교회 방문이 허용되었다. 혹은 가끔 황실 행사에 초청되어 위로를 받았다.
이들을 전담하여 돕는 이는, 예전처럼 정친왕 이안이었다.
“안, 유럽은 어땠어요? 폴란드에서 성대한 환영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예, 과분할 정도로 환대를 받았죠.”
“역시! 세기를 뒤흔든 로맨스의 상징이니까요.”
“소설은 사실이 아니고 소설일 뿐이라고 누누이 말해도, 듣지를 않더군요.”
이안의 귀국을 고대하던 자매들은, 돌아오자마자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안이 한국에 없는 동안, 황태자 전하께서 많이 배려해 주셨어요.”
“오, 그렇군요.”
“황태자 전하는 정말 좋은 분이세요. 저희 부모님의 서거에도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셨죠.”
“말뿐만이 아니라, 우리를 진심으로 친남매처럼 대해 주고 계세요.”
“…….”
이안은 맏형이 친형제들에게 그리 다정한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없었기에, 도대체 뭘 어떻게 대했기에 러시아 황녀들이 그토록 찬사를 보내는지 알 수 없었다.
이안이 부재했던 반년 동안 이진은 각별히 망명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였다. 겉으로는 냉정해 보여도 말없이 배려를 하는 스타일인 이안과 달리, 이진은 정중하고 예의 바른 태도로 4남매를 후대했다.
어찌 보면 관점의 차이였다.
폴란드 혈통을 이어받은 이안은 그들을 ‘오갈 데 없는 망명자’이자 ‘도움을 베풀어야 할 친구들’로 생각했지만, 황태자 이진은 그들을 ‘정통 러시아의 계승자’이자 ‘불행하게 박해받은 가련한 사촌들’로 여겼다. 즉 그들을 돕는 건 자신의 사명이었다.
“여대공 전하, 한국 생활은 좀 어떠신지요.”
“폐하와 전하께서 많은 배려를 베풀어주신 덕에 더할 나위 없이 편합니다.”
이진은 4남매의 대표인 타티야나와 주로 접촉했다. 알렉세이의 병은 더욱 악화되어 외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있었고, 마리야와 아나스타샤는 이안에게 호의적이라는 걸 이진도 알고 있었기에, 종종 타티야나를 만나 근황을 물었다.
“며칠 전이 정교회 크리스마스였던 걸로 압니다만, 즐겁게 보내셨는지요?”
“예, 모처럼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올랴가 없는 게 아쉽지만, 그래도 저희에겐 특별한 시간이었어요.”
“정통 러시아를 되찾기 위해 분투하시는 올가 여대공께서는 반드시 승리하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전하. 한국 정부가 러시아 임시정부를 위해 많은 도움을 준다고 들었습니다.”
“우방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요.”
한국은 작년 여름부터 전러시아 임시정부, 즉 백군을 지지했다. 백군을 도와 시베리아에 1개 군단을 파병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선을 긋고 있었다. 이선과 한국 정부는 내전 개입에 소극적이었다.
굳이 백군이 한국에 손을 벌릴 필요도 없는 것이, 1919년은 백군 승리의 해이자, 소비에트에게는 후퇴의 시기였다.
동부전선에서는 비록 카잔에서 진격이 막히긴 했지만 볼가강까지 진격했고, 주력인 남부전선에서는 데니킨이 이끄는 남러시아군이 돈강 유역을 평정하고 우크라이나 동부와 키예프(키이우)까지 확보했다.
서부전선에서는 폴란드군이 적군을 격파했고, 북서부전선에서는 핀란드군과 연합한 만네르하임의 북서군이 페트로그라드를 위협했다.
스톨리핀이 하얼빈에서 암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긴 했지만, 백군의 군사적 우위가 바로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이제 백군의 다음 목표는 모스크바였다. 남러시아군은 1920년 봄 부활절까지 모스크바를 ‘해방’시킨다는 목표를 가지고, 한겨울의 가혹한 날씨에도 모스크바를 향해 북상했다.
“나는 정통 러시아의 복권이 머지않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리되면 여러분도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요.”
“그리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타티야나의 얼굴에 미소와 홍조가 띠었다.
이진은 문득 그녀가 굉장히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진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유럽 유수의 왕가와 귀족 가문에서 혼처로 원했던 타티야나였다.
175cm이라는 당대 여성으로서는 놀라울 정도로 큰 키에 늘씬한 몸, 적갈색 머리와 회색 눈, 혹자가 평했듯 ‘아름답고 조각 같은’ 얼굴.
활달한 성격의 마리야, 활달하다 못해 말괄량이인 아나스타샤에 비하면 타티야나는 차분하고 순종적인 성격이라, 동양적인 부인상에도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전하께서 한국을 떠난다면, 나는 매우 아쉬울 것 같습니다.”
“네?”
이진은 자신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그는 아차 싶어서 바로 주워 담았다.
“아, 그러니까, 우린 사촌 같은 사이니까요. 사촌이 떠난다면 정말 아쉽겠죠. 물론 여러분이 러시아로 되돌아가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타티야나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저희도 아쉬울 것 같습니다. 저희가 모두에게 버림받아 위험에 처해 있을 때, 황제 폐하께서 구원의 손길을 내미셨지요. 폐하께서는 삼촌처럼, 전하께서는 사촌처럼 저희를 후대해 주셨지요. 이 은혜는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아니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순간 타티야나는 동갑내기 ‘사촌’의 손을 꼭 잡았다.
“만약 러시아를 되찾게 되면, 저희는 제일 먼저 전하를 초청하겠습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전쟁에 패한다면…….”
“그럴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만약 그리 된다 할지라도, 맹세코 내가 전하와 가족들을 평생 보호할 겁니다.”
마치 이선이 예전에 니콜라이로부터 ‘로마노프 왕조의 구원자’라는 소리를 들었던 것처럼, 로마노프 왕조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이진이었다.
‘이건 내 사사로운 감정이 아니야. 보은과 국익을 위해서라도 로마노프 왕조는 보호해야 해. 대한의 국력 신장에 로마노프 왕조가 얼마나 많은 도움을 줬단 말인가? 국제 사회주의자들에 맞서 로마노프 러시아가 대한의 완충국이자 동맹이 되어야 해.’
이진은 만청보다는 로마노프 러시아가 훨씬 중요한 동맹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생각을 정당화했다.
결국, 성패는 러시아 내전의 결과에 달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