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최초의 보통선거
광무 24년 상반기 최대 화두는 총선거였다.
그동안 점진적으로 유권자를 확대하여 4대 총선에는 200만 명에 이르렀으나, 보통선거법이 통과되면서 이제 모든 성인 남성이 유권자가 되었다.
일부 수형자를 제외하면, 만 25세 이상의 남성이라면 피선거권을, 만 21세 이상의 남성이라면 선거권을 갖게 되었다.
총 유권자 수는 650만에 이르렀으니, 이는 명실상부한 아시아 최초의 보통선거이자 민주선거였다.
“개화당 장기집권의 실책이 드러난 데다, 마침내 보통선거가 됐으니 이제 개화당 일당독재도 끝나겠지요?”
“아니, 꼭 그렇지도 않을 거요. 개화당은 정부 여당이자 황제 폐하의 당이란 느낌이 강하지. 이는 절대로 무시 못 할 장점이오.”
“야당이 약진하긴 하겠지만, 이번에도 개화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크오.”
정치 전문가들은 첫 보통선거의 승리자로 개화당을 예상했다.
장기집권의 부작용과 근래 드러난 실수에도 불구하고, 지난 35년간 국가를 근대화시켰다는 정부 여당의 프리미엄이 국민 사이에서 너무나 강했다.
“여러분, 생각해 봅시다. 대한이 오늘날 열강의 반열에 들어선 게 누구 덕이오?”
“아, 당연히 지극한 황은이지요.”
“그렇소. 지극한 황은이오. 그리고 성상을 보좌해 지난 40여 년간 국가를 헌신적으로 이끌어온 당이 있다는 건 다들 잘 아실 겁니다.”
“물론 개화당이지요.”
“그래요. 개화당입니다. 개화당이 성상과 함께 자주독립과 부국강병을 이룩했고, 식산흥업과 산업입국을 이뤄 냈소. 헌법반포와 보통선거도 사실 개화당이 주도한 개혁이란 말이오.”
“개화당이 아니면 어찌 열강의 문턱에 들어왔겠소? 우리는 결코 공로를 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성장한 건 개화당 덕입니다.”
“그래도 작년에 개화당이 한 짓을 보면…….”
“그건 박영효와 그 일파들이 저지른 오류 아니오. 모두 처벌받고 실각했고. 작금은 이상설 대감께서 개화당을 새로 혁신하시지 않았소.”
“하긴. 이상설 대감이라면 유능하고 청렴한 데다 인격도 훌륭하지. 흠잡을 데가 없소.”
“야당에 그분을 대체할 만한 인사가 있겠소? 전혀 없소. 신민당의 안창호나 진보당의 전봉준이 총리가 된다고 생각해 보시오.”
“보통선거랍시고 무지한 농민들이 진보당에 몰표를 던질까 두렵소.”
“걱정 마시오. 농민들에게 그리 계급인식이 투철했으면 벌써 나라 뒤집어졌지. 성상만큼 농민을 배려해 준 분이 어디 있소? 농민들에게는 나라님이 곧 하늘이올시다. 그 나라님을 보좌하는 조정이 어느 당이오? 개화당이오.”
“하긴. 개화당이 곧 조정이지요.”
근대화의 가장 큰 수혜자들, 도시와 농촌의 관료·자본가·지주·장교·경찰·상공인은 개화당 지지로 똘똘 뭉쳤다.
“이야, 생전 처음으로 나도 선거해 보게 되는구만. 감개무량해.”
“그러게 말이야. 가난한 논투성이가 투표하게 되리라곤 누가 알았겠어?”
“이게 다 황제 폐하의 은혜야. 황은 덕에 우리 같은 농촌 무지렁이가 농사할 땅도 받고, 먹을 것도 넉넉하고, 애들도 학교 보내고, 이젠 나랏일 할 사람들까지 뽑게 되지 않았는가.”
“아따, 역시 소학교 나와서 도시물도 먹어 본 사람이라 말도 잘하는구만. 그래서 이번 선거는 누구 찍어야 하나?”
“선거는 비밀선거라는데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떡하나?”
“아니, 그래도 투표란 걸 해 본 적이 있어야지.”
“누군 투표해 봤나?”
“그래도 김서방 자넨 신문도 읽을 줄 알잖아. 우리 같은 까막눈은 봐도 뭔 말인지 모른다고.”
“다들 언문은 깨치지 않았나?”
“언문 깨치면 뭐하나. 이름 석자 읽고 쓸 줄 아는 정도지.”
정부와 농민운동의 적극적인 문맹퇴치운동으로 인해 농촌의 문맹률이 급감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실질 문해율(文解率)은 낮았다. 한글은 깨치게 됐지만,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가 대부분이었다.
“흠흠, 그럼 한마디 하겠네. 지금 우리가 잘 살고 있는 건 다 누구 덕이지?”
“임금님 덕이지.”
“그럼 임금님을 수십 년간 도우며 조정을 이끌어 온 당이 어딘지는 아나?”
“어, 음, 개화당 아닌가?”
“그래, 맞아. 개화당일세. 개화당이 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우리를 먹고살게 해 준 거야.”
“그런데, 우리에게 땅을 나눠 준 건 전봉준 대감 아닌감? 난 그렇게 들었는데.”
“그렇긴 하지. 하지만 전봉준 대감도 임금님의 명령을 받아서 한 거야. 개화당이 한 거나 다름없지.”
“그렇구만! 역시 개화당을 찍어야겠군.”
새로 투표권을 받은 농민들 상당수는 개화당에 기울어졌다.
여태껏 그들이 살아온 시대를 지배해 온 조정이 곧 개화당이기도 했고, 지난 35년은 조선 건국 이래 농민들이 가장 살기 좋은 시대였다. 그럼 가장 살기 좋은 시대를 만들어 준 조정을 지지해 주는 게, 이들의 소박한 세계관에선 당연한 귀결이었다.
“국가를 이끌 수권능력을 가진 당은 오직 입헌개화당뿐! 안정을 위하여 개화당에 한 표를!”
이상설이 주도하는 개화당의 새로운 모범은 영국 보수당이었다.
이상설은 개화당 원로들을 은퇴시키고, 개혁적이고 국민친화적인 2-3세대 개화파를 중심으로 정당을 재편했다.
급진적 근대화라는 목표를 달성한 2세대 개화파는 안정적인 자유주의 산업국으로 나가는 게 목표였다. 이제 이들은 ‘급진 개화’의 기치 대신에 자유와 보수의 기치를 내걸었다.
하지만 서양의 보수주의 정당하고는 결이 좀 달랐다. 개화당은 관치경제, 관세도입, 개입주의, 국가자본주의를 받아들였다. 여기에 충군애국과 부국강병은 기본 스탠스라 할 수 있으니, 동양적 의미의 ‘보수정당’이라 할 수 있었다.
“개화당 독재, 이젠 지긋지긋하다.”
“말이 좋아 만민평등이지, 개화당 지도부는 대부분 기호(畿湖) 명문가 출신이야.”
“여태 총리를 지낸 사람 면면만 봐도 경주 김씨, 안동 김씨, 반남 박씨, 기계 유씨, 대구 서씨, 여흥 민씨, 죄다 노론 명문가 일색 아닌가.”
“이상설 그 양반은 결이 좀 다르다곤 하지만, 결국 그도 충청도 양반 출신이지.”
“언제까지 기호 출신 양반들만 권력을 독점할 건가? 이젠 뜯어고쳐야 해!”
“아무리 지도부가 교체됐다고 해도, 원산 학살의 책임이 있는 당이 재집권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도시 지식인, 소자본가, 소상공인, 사무직노동자, 개신유림, 서북출신자들은 신민당을 선호했다.
이들 역시 근대화의 수혜를 일정부분 누린 계급이자, 지역적으로나 계급적으로나 오랫동안 소외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500년 기호 지배’에 대한 반감으로 불타고 있는 평양과 평안도 주민들은 신민당으로 대동단결한 상태였다.
“자유주의는 세계의 대세! 개화당과 같은 사이비 관제 정당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주의 정당 신민당에 한 표를 던집시다!”
“새로운 국민, 신민(新民)은 신민당으로!”
“개화당 독재, 기호 양반 독재 끝장내자!”
“특정 출신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계급의 단결을 이뤄 낼 수 있는 유일한 정당, 신민당!”
신민당의 모범은 영국 자유당과 미국 공화당이었다. 자유주의, 평등주의, 시장경제, 이상주의 등 영미 자유주의를 동양식으로 변형한 정당이었다.
“대한의 인구 8할이 농민이오. 그런데 그동안 농민을 대표하는 정치세력이 의회에 몇 명이나 있었소? 거의 없었소이다. 개탄스러운 일이오.”
“개화당에게 있어 농민이란 그저 세금을 내고 군대를 보내기 위한 자원에 지나지 않소. 그들이 농민을 우대한다? 그건 소를 키우기 위해 사료를 잘 먹이는 거지.”
“명심하시오, 농민 노동자 여러분! 여러분을 대변할 수 있는 당은 오직 진보당뿐이오!”
“농민들이여, 속지 마시오! 개화당은 지주의 당입니다!”
“농민의 벗, 농지개혁의 완수자, 전봉준의 진보당으로!”
“한울님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진보당입니다. 손병희 교령께서 진보당을 이끄십니다.”
진보당은 영세농민, 육체노동자, 천도교도, 북방 신영토, 삼남출신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보통선거의 수혜를 가장 크게 누리라고 예상되는 당은 단연 농민의 당을 자처하는 진보당이었다.
문제는 진보당이 ‘진보’를 내세운 당답지 않게, 지도부의 세계관이 전통적 농본주의와 종교적 유토피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산업사회에 부정적이고, 목가적 농촌사회를 이상적으로 보았다.
진보당과 가장 유사한 정당은 스웨덴 농민당이나 폴란드 농민당, 혹은 러시아 사회혁명당이었다.
한국에서는 좌익 취급을 받고 있지만, 유럽으로 가면 중도 정당이었다.
“진보당은 분명 농민의 당이오. 하지만 앞으로의 변화하는 산업사회에는 대응하지 못하오. 대한은 점점 산업화되고 있소. 새로이 등장하고 있으나 소외되고 있는 이들, 노동자 계급을 대변하는 정당이 있어야 하오.”
무죄로 석방된 여운형은 보통선거 도입에 맞춰 정당 창설에 나섰다.
노동자와 청년 지식인들의 우상으로 떠오른 여운형을 향해 신민당과 진보당, 심지어 개화당 좌파에서조차 입당 제안이 잇달아 들어왔지만, 여운형은 모두 거절하고 독자 정당 창설에 나섰다.
기존의 신한청년단 조직을 정당으로 전환하고, 지식인 중심을 탈피하기 위해 각지의 노동운동 조직과 결합했다. 원산 학살 이후 자유노조 설립을 허가받은 서울, 인천, 원산 일대의 노조가 신당 창당에 동참하고 나섰다.
“모든 불평등과 억압을 철폐하고 진정한 평등의 길로! 청년과 노동자들이 함께 새로운 대한을 만들어 나갑시다! 오시오! 신한청년당으로!”
몽양 여운형을 대표로, 독일과 프랑스에서 유학하며 사회민주주의를 연구한 소앙(素昻) 조용은(趙鏞殷)을 부대표로 하는 신한청년당이 공식 창당되었다.
“우리는 급진 혁명을 옳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정치개혁을 넘어 사회개혁으로! 우리는 대한국민의 정당이자, 사회개혁을 선도하는 정당이 될 것입니다.”
신한청년당은 유럽 사회민주당, 특히 독일 사회민주당과 영국 노동당을 모범으로 하는 정당을 지향했다. 우파의 비난과 달리, 소비에트 러시아식 급진 혁명은 배제했다.
그래서 ‘사회’나 ‘민주’, ‘노동’이나 ‘인민’이란 단어는 의도적으로 정당명에서 배제했다. 이는 상당수의 한국인에게 있어 소비에트 러시아를 연상시켰던 것이다.
“우리 당의 핵심 주장은 삼균주의입니다. 개인 간, 민족 간, 국가 간의 균등! 정치의 균등(균정권), 경제의 균등(균리권), 교육의 균등(균학권)! 개인 간·민족 간·국가 간의 균등!”
“전 국민 보통선거제로 정권을 가지런하게 하고, 기간산업 국유제로 경제를 가지런하게 하며, 전 국민 국비 의무교육으로 교육을 가지런하게 한다!”
조소앙이 유럽 사회민주주의와 손문의 삼민주의, 유교 대동사상 등을 종합하여 만든 삼균주의가 신한청년당의 강령으로 채택되었다.
독자적인 한국식 평등이념의 탄생이었다. 유럽에 치우쳐져 있고 이해하기도 어려운 마르크스주의 이론보다, 세 가지 균등을 약속한 삼균주의는 쉽게 한국인의 귀에 들어왔다.
신한청년당은 남성을 넘어 여성을 포함하는 보통선거제, 러시아와 독일이 수행하고 있는 주요 기간산업의 국유화, 전 국민 국비 의무교육을 외쳤다.
당대 한국적 기준에서 볼 때 엄청난 급진좌익으로 여겨졌지만, 유럽 기준으로 보면 중도 좌파에 가까웠다.
“모름지기 청년들이라면 신한청년당으로 갑시다!”
9월 의거를 주도한 학생 세대가 신한청년당에 대거 입당했다. 혈기 넘치는 이들에게 있어 개화당은 적폐였고, 신민당은 부르주아 정당이었고, 진보당은 낡은 농민당이었다. 신한청년당이야말로 이들 청년세대의 진보적 이상주의에 부합하는 당이었다.
이로써 보수주의-자유주의-농본주의-사회민주주의로 상징되는 새로운 4당 체제가 구축되었다.
* * *
광무 24년 4월 19일.
대한국 5대 총선거, 역사적인 보통선거가 이뤄지는 날이었다.
이번 선거부터 농민이 대거 투표권을 받게 된 만큼, 농번기를 피해서 선거가 4월로 앞당겨졌다.
각지에 설치된 투표장에는 구름 같은 인파가 모여들었다.
“형님, 기호 몇 번을 찍으라고요?”
“몇 번을 말해! 1번! 1번 개화당이라고!”
“어이, 자넨 몇 번 찍었어?”
“이봐, 투표장에선 말하면 안 된다고. 비밀선거 아닌가!”
“내 표 사 갈 사람 없소? 국밥 한 그릇이면 충분하오!”
“에라 미친놈아! 매표 행위는 금지다! 체포한다!”
“선생, 내가 언문은 읽어도 한자는 못 읽어서 그러는데. 여기 대체 뭐라고 써 있는 거요?”
“후보자 이름입니다. 이름 몰라도 기호 보시고 투표하시면 됩니다.”
“오, 저 작대기가 기호구만. 알겠소.”
“아저씨, 거긴 투표함이 아니고요! 이쪽에다가 넣으세요!”
첫 보통선거라는 장대한 출발의 이면에는, 혼란이 난무했다.
사전에 투표인 등록을 해야 하므로, 문맹은 애초에 투표권을 받을 수가 없었다.
이로 인해 투표인은 총 유권자의 70%인 450여만 명이 등록할 수 있었다. 도시로 갈수록 비율이 높아졌고, 농촌으로 갈수록 비율이 낮아졌다.
하지만 그나마 국문(한글)을 읽어도, 1,2,3과 같은 숫자를 읽지 못하는 촌로들도 있었으므로, 一, 二, 三과 같은 직관적인 한자 기호가 쓰였다.
“이야, 내가 직접 대표를 뽑는다니. 세상 참 좋아졌어.”
“대한은 이제 완전한 문명국이야. 아시아 유일의 보통선거제 국가라고.”
“대한국 만세!”
그래도 첫 선거는 축제와도 같았다.
대부분은 투표라는 걸 처음 해 보았지만, 누구보다 진지한 자세로 선거에 임했다.
일부 외국인 관찰자들은 ‘작대기 선거’라고 폄하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공정하고 깨끗하게 진행된 선거였다.
총리 이상설은 사전에 철저한 공정선거를 약속했다.
“총선거는 그 어떤 권력집단의 압력 없는, 공정선거로 이뤄질 것을 약속합니다.”
정부의 호언장담과 달리, 지주와 향촌 지배층의 지배력이 강한 일부 지방에서는 소작농들이 일제히 지주가 시키는 대로 투표한다든지, 문중 전체가 압력을 행사해 투표한다든지, 사병들이 상관의 지시대로 투표한다든지 같은 사례들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 투표했다.
1920년이라는 당대 기준에서 볼 때, 특히 민주주의 불모지였던 아시아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광범위한 대중적 참여를 통한 선거가 이루어졌다.
“광무 24년 5회 총선거 결과를 발표합니다. 민의원 의석 총 250석 중 입헌개화당 105석, 신민당 59석, 진보당 50석, 신한청년당 10석, 제국당 5석, 무소속 21석.”
정당별로 희비가 엇갈렸다.
개화당은 1당을 유지했지만 처음으로 과반선이 깨지고 말았다. 연립정권을 운영하든가, 소수파 정부를 출범시켜야 했다. 개화당 지도부는 누구를 연립정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장고에 들어섰다.
신민당은 의석수는 49석에서 10석 늘었지만, 전체 총원이 200석에서 250석으로 늘었음을 감안하면 오히려 비율은 줄어들었다. 도시 지역의 진보적인 표심이 신한청년당과 나뉜 영향이 적지 않았다.
진보당은 18석에서 50석으로 대약진을 했다. 인구의 다수가 농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기대한 만큼의 결과는 아니었지만, 분명한 성장이었다. 특히 천도교의 영향력이 강한 곳에선 몰표가 나왔다.
신한청년당은 신생정당으로서는 의미 있는 출발을 했다. 진보당과의 노농 선거연대를 통해 사표를 방지하고, 서울·인천·함흥·원산 일대의 청년 지식인과 노동자들에게서 득표하여 두 자리 의석을 달성했다.
제국당은 사실상 독자정당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원산 학살에 가담한 국수단과의 관계를 부정했지만, 유권자들은 그들의 책임을 심판했다.
유독 무소속이 많은 이유는, 농민 투표권이 대거 늘어난 상황에서, 향촌 사회에서 문중과 소작농을 등에 업고 당선한 후보가 적지 않은 탓이었다.
지역별로도 뚜렷이 나뉘어졌다.
서울, 경기, 충남, 충북, 강원, 경남에서는 개화당이 1당을 유지했다.
서북지방의 평양, 평남, 평북, 함남, 함북, 황해에서는 신민당이 확고한 1당이었다.
농민이 많은 전북, 전남, 경북, 연길, 요동에서는 진보당이 1당으로 떠올랐다.
이로서 역사적인 아시아 최초의 보통선거가 성황리에 이루어졌다.
민의를 확인했으니, 남은 절차는 새 정부를 조직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