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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화 연립정부 (652/812)

66화 연립정부

총선 결과, 어떤 정당도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였다. 이에 연립정부 수립은 필수 조치가 되었다.

신민당(59석)과 진보당(50석) 연합은 신한청년당(10석)을 더해도 과반(126석)에 미치지 못했으므로, 결국 가능한 조합은 개화당(105석)과 신민당 혹은 진보당의 연합뿐이었다.

“굳이 야당과 연정을 안 해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요.”

“어떻게 말인가?”

“성상께서 소수 정부 출범을 허용하신다면…….”

그동안은 개화당이 과반의 지위를 언제나 누려 와 문제될 것이 없었지만, 소수파 정부를 출범시킬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예전처럼 황제가 총리를 임명한다면, 선거 결과에 상관없이 황제의 권위로 정국을 운영할 수는 있었다.

“모르는 소리. 성상께서 원치 않으시네. 성상께서는 의회 다수당에 의한 내각 출범을 원하시네.”

이상설은 소수파 정부 출범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이는 황제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황제의 측근으로 보좌해 왔던 이상설이 이선의 뜻을 모를 리가 없었다.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무소속이 21석 아닙니까? 이들을 모두 받아들이면 126석, 딱 과반이 됩니다. 단독 과반으로 달성할 수 있지요.”

“오오, 그거 묘안이구만.”

이번 선거에서는 유난히 무소속이 많았다. 특히 농촌에서 무소속 의원이 많이 당선되었다.

그 이유인즉슨, 이상설과 개혁파들이 개화당의 전권을 장악하면서, 자격기준에서 미달하는 후보를 공천하지 않았다.

“무소속 당선자들은 대부분 개화당에 공천을 신청했다가 떨어져서 단독 출마한 게 아닙니까? 입당을 제안하면 흔쾌히 받아들일 겁니다.”

예전 같았으면 개화당 이름을 달고 무난히 당선되었을 지역 토호들이 대부분 공천에서 배제되었고, 이들은 문중이나 소작농 같은 향촌 사회의 힘을 동원해 무소속으로 당선되었다.

그렇다고 ‘지주연합당’같은 걸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들은 다시 개화당을 기웃거리게 되었다.

“소탐대실입니다. 개화당이 지주와 토호의 당으로 찍히길 원하는 겁니까? 그러지 말자고 공천 기준을 엄격히 한 게 아닙니까. 무소속 한 사람씩 설득해서 이권을 약속해 주는 것보다, 차라리 야당과 협상해서 연립정부를 출범하는 게 훨씬 낫습니다.”

초대 총리 김홍집의 사위이자 제국익문사 독리 이회영의 아우, 오랜 행정경력을 지녀 개화당의 2인자로 떠오른 이시영이 연립정부를 강력히 주장했다.

“성재(省齋, 이시영의 호)의 말씀이 옳소. 무소속을 영입하면 정권이야 쉽게 잡겠지만, 다시 구태로 돌아갈 수야 없는 노릇. 야당과 연립정부 출범을 논의해 봅시다.”

이상설의 생각도 같았다. 총리인 이상설이 확고한 연정의 뜻을 밝히니, 더는 반대가 없었다.

다만 연립정부의 파트너가 누가 되느냐가 문제였다.

“연정을 하면 아무리 못해도 요직 몇 자리는 넘겨 줘야 할 텐데, 이러다 내무대신 안창호나 참정대신 전봉준을 보는 거 아니오?”

“백번 양보해서 안창호 그 애송이는 그렇다 쳐도, 전봉준 그 영감은 절대 안 되지요!”

“지주라면 다 청산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영감이 내각에서 중책이라도 맡게 되면 끔찍한 일이구만.”

관료·자본가·지주 등 개화당의 핵심 지지기반인 유산계급은 전봉준에 대한 적의를 드러냈다.

특히 지주의 반감이 컸다. 전봉준은 농지개혁을 주도한 장본인이자, 더욱 더 중소영농 중심의 국가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지주에 대한 토지몰수 같은 극단적인 조치야 없겠지만, 대토지보유자, 특히 부재지주에 대한 중세(重稅)를 예고했다.

“경상도당과 충청도당에서 진보당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전봉준 의원에 대해서. 진보당과 손잡느니 차라리 당대 우파가 무소속들을 끌어 모아 새 당을 창당하는 게 낫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박영효와 개화당 우파 지도부가 실각하고, 이상설과 개화당 좌파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지도자를 잃은 우파는 새 지도부에 고개를 숙였다. 당내 요직에서도 밀려났다.

하지만 사회주의나 인민주의에 대한 우파들의 본능적인 반감에, 농촌지역에서 진보당과 경쟁하며 대립해왔던 의원들은, ‘진보당과 연정하느니 개화당을 쪼개서 무소속과 손잡고 신당을 창당하겠다!’라는 반발로 이어졌다.

“동조할 의원이 몇이나 될 것 같나?”

“주로 경남과 충남의 농촌 지역 의원들 10여 명 정도로 추정됩니다.”

“탈당해도 상관없지만, 이들이 무소속은 물론이고 망해 가는 제국당까지 끌어들여 우익 블록이라도 만들면 관리하기가 귀찮아지겠군. 하나를 얻었으면 하나는 내줘야겠지. 그 작자들 소원대로 진보당과의 연정은 없다고 하게.”

“예, 각하.”

이상설은 진보당과의 연정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제1야당인 신민당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오히려 진보당이 신민당보다 다루기 쉬울 수 있는데. 어차피 도시에서는 신민당과 계속 경쟁할 수밖에 없어. 신민당은 서북이라는 확고한 지지기반도 가지고 있고. 진보당은 농촌 중심이어도, 신민당에 비하면 지역기반이 확고한 것도 아니다. 농민들이 반드시 진보당에 투표하는 것도 아니라는 건 분명해졌지. 연정으로 끌어들여 초록은 동색이란 말이 나오게 해서, 그 표를 흡수해야 하는데…….’

기실 개화당 대부분이 신민당과의 연정을 선호했으나, 이상설의 생각은 달랐다.

‘전봉준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있어. 그도 성상의 충신임에는 틀림없거늘.’

이상설은 농림대신 시절의 전봉준과 같이 일해 본 적도 있고, 개화당이 진보당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 생각했다.

오히려 신민당이 더 다루기 어려웠다. 현재와도 같은 100% 소선거구제에서는, 확고한 지역기반을 갖춘 신민당은 계속 개화당의 경쟁자가 될 터였다.

“각하, 신민당과의 1차 협상은 제게 맡겨 주십시오. 제가 그들을 어르고 달래겠습니다.”

“음, 우남이라면 안창호를 비롯한 신민당 중진들과 관계가 좋지. 그리 하시오.”

개화당의 새로운 총아로 떠오른 인물은, 다름 아닌 이승만이었다.

파리강화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이승만을, 이상설이 외무대신 후보로 발탁했다.

‘윌슨 대통령의 제자’라는 후광을 갖고 있는 이승만은, 파리강화회의에서 상당한 능력을 보여 줬다.

전권대표단 부사로서 강화회의를 주관했던 이상설은 전권위원 이승만과 김규식을 높이 평가했다. 이들이야말로 떠오르는 대한제국 3세대 외교관이었다.

김옥균이 김규식을 발탁해 만주로 데려가면서, 이상설의 선택은 자연히 이승만으로 가게 되었다.

이승만은 뛰어난 화술과 기민한 정치력을 발휘하면서, 단숨에 개화당의 3인자로 떠올랐다.

“파리강화회의는 서구 자유주의의 승리를 상징합니다. 이제 미국이 주도하는 시대가 임박하였으며, 1920년대는 더욱 그러한 방향으로 가게 될 겁니다. 앞으로 외교는 미국과의 관계를 어찌 정립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미국과 손잡아 러시아의 적화 야욕을 무찌르고, 태평양으로 진출하려는 일본의 야망을 잠재워야 합니다.”

원래도 친미 성향이었던 이승만은, 파리 강화회의를 거치면서 골수 친미주의자가 되었다.

이선은 누가 정권을 잡건 미국과의 관계를 계속 강화하길 원했고, 이승만을 외무대신 후보로 추인했다.

단순히 이승만이 윌슨의 제자라서가 아니었다. 서재필이 은퇴의사를 밝힌 이상, 대미 외교에서 그만한 인물이 없기 때문이었다.

‘우남이 야심이 넘치기는 하지만, 내가 외교를 맡고 있으니 억제 가능하지. 이완용도 내 뜻대로 다뤘는데, 하물며 이승만이야.’

이선은 내정에 대해서는 대리청정중인 소조와 내각에 상당한 자율권을 줬지만, 여전히 외교와 국방에서는 전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즉 외무대신과 군무대신은 누가 되었건, 유능하되 자신의 손발이 되어야 할 인물이어야 했다.

* * *

개화당과 신민당의 연정협상은 총리 후보인 이상설과 총재 박은식이 공식적인 협상을 시작했지만, 실무는 각 당의 사무총장인 이승만과 안창호가 맡게 되었다.

두 사람의 정치적 성향은 크게 다르지만, 나이도 비슷하고, 고향도 황해도와 평안도고, 미국 유학파에 개신교도라는 공통점으로 인해 사적으로는 친밀한 관계였다.

“우리는 신민당과 함께 국가를 운영할 생각이오. 아무쪼록 협조를 바랍니다.”

“예, 우리 역시 개화당과 손잡고 국가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싶습니다.”

개화당과 신민당은 연정을 이뤄야 한다는 큰 틀에서는 합의했다. 문제는 구체적인 방향성이었다.

“새 정부에서는 정치개혁, 제도개혁, 사법개혁, 경찰개혁, 교육개혁, 노동개혁이 이뤄져야 합니다. 신민당은 개혁을 관철할 목적으로 입각할 겁니다.”

“좋습니다. 함께 개혁을 이끌어 나가 보지요.”

이승만은 신민당이 외치는 ‘개혁’에 동조했다. 하지만 조건을 달았다.

“개화당이 35년 수권정당이며, 지금껏 모든 위로부터의 개혁을 개화당이 추진해왔다는 걸 잊으면 안 됩니다.”

“으음, 그래서요?”

“총리는 당연히 다수당인 개화당 몫이고, 각료 배분에서도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외무, 내무, 탁지, 군무. 이 네 부처는 반드시 개화당이 임명해야 합니다.”

외교, 행정, 재정, 군사. 사실상 국가의 모든 부분은 개화당이 통제하고 있겠다는 말이었다.

“그럼 신민당에 허용되는 자리는 뭡니까?”

“법무, 학무, 농림, 상공은 신민당에도 전문성이 있는 이들이 있으니, 내어 드릴 수 있습니다.”

요컨대 주요 부처는 모두 개화당이 장악하고,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지는 부처만 내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이건 너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지 않습니까? 최소한 내무부만은 신민당이 입각해야 합니다. 행정, 경찰, 위생, 노동의 핵심 부분이 모두 내무부에 있지 않습니까!”

“말씀하신 대로 내무부는 주요부처인데, 수권경험이 없는 신민당이 잘 이끌 수 있겠습니까?”

“개화당은 처음부터 다 잘했습니까? 원산 사태의 주범이 바로 내무부입니다. 내무부만큼 개혁이 시급한 부처도 없습니다. 내무부만은 양보하십시오.”

“아니, 왜 그렇게 내무부에 집착합니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서북 사람들에게 정권을 내줄 수 없다는 게 기호 양반님네들 생각 아닙니까? 신민당에선 개화당이 연정을 해도 곁다리로만 시켜 주겠다는 게 아닌지 의심합니다.”

500년 동안 권력에서 배제되어 있던 서북, 즉 관서서(평안), 관북(함경), 해서(황해), 그중에서도 특히 관서인은 서울과 기호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다.

갑신경장 이후에야 서북인들이 등용되기 시작했고, 특히 출신을 따지지 않고 능력으로 발탁되는 군부에서는 서북인의 출세가 확연했다.

박유굉 계파의 몰락 이후, 군부 ‘3대장’으로 떠오른 홍범도(평안), 이동휘(함경), 노백린(황해) 모두 서북 출신이었다.

하지만 지금껏 대신까지 오른 서북인은 전 탁지대신 이용익과 전 법무대신 이준을 제외하면 없었다. 

이는 의도적으로 배제해서가 아니라, 경장 이후 새로이 양성된 서북의 상공인-지식인 계급이 이제야 사회 주류에 합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근대화의 수혜자로 황제의 절대적인 근왕파인 동시에, ‘권력의 분점’을 원했다. 

연립정부에 참여하는 지금이야말로 500년 만에 찾아온 기회였다.

“신민당이 물론 서북민만을 대표하는 정당은 아닙니다만, 그들의 500년 한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절대로 순순히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

안창호의 강경한 태도에, 이승만이 말투를 바꿨다.

“흠. 이보시게, 도산. 1당은 개화당일세, 신민당이 아니라. 우린 신민당과 협상이 결렬되어도 진보당과 협상한다든가, 무소속 의원들의 지지를 받아 낸다든가 하는 방법이 있네. 이번 기회에 연립정부 해 보고 싶지 않나? 강경하게 나와 봐야 자네들 손해야.”

“우남 형님. 전자는 개화당내 우파가 결사반대할 일이고, 후자는 개화당의 개혁을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될 터인데, 정말로 할 수 있겠소? 결국 개화당의 선택지는 신민당 밖에 없을 텐데.”

안창호의 분석은 정확했다. 이승만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정곡을 찔렸다.

“그래, 나는 신민당에게 우호적이야. 하지만 개화당이 다 그런 건 아니라고. 나야 황해도 출신이고 미국식 자유주의를 선호하는 사람이니, 사실 출신으로 보나 이념적으로 보나 신민당하고 더 잘 맞지. 개화당의 명문가 도련님들 보면 짜증 날 때가 적지 않네.”

“그래서 일전에 형님에게 신민당 입당을 권한 게 아닙니까.”

신민당은 수권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외교 전문가’ 이승만에게 입당을 권했으나, 이승만의 선택은 개화당이었다.

“아니, 어쩌니저쩌니해도 개화당은 35년 수권 정당이야. 관료 조직은 전부 저들이 장악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당연히 개화당을 통해 지배해야 해. 다행히도 이상설 대감이나 이시영 대감 모두 개혁적이고 사람도 좋단 말이야. 연립정부를 운영하는 데 거부감이 없을 분들일세.”

“그분들의 인품이야 훌륭하시지요. 하지만 신민당이 주장하는 전면적인 개혁에 동의하실지는 의문입니다.”

“도산, 길게 보자고. 이번에 못하면 4년 뒤도 있어. 그동안 부처 운영 맡아 보면서 착실하게 수권능력을 갖추라고. 나도 그때까지 개화당의 당권을 장악하겠네. 이제 미국식 자유주의는 세계의 대세가 될 거야. 나나 우사(김규식), 자네나 우성(박용만) 같은 미국 유학파들이 최고 주류로 떠오르게 될 거라고. 그때가 되면 시대에 뒤떨어진 양반들은 전부 뒷방으로 가게 되겠지.”

요컨대 당분간은 표면적인 연정으로 남더라도, 이승만이 4년 뒤에 개화당의 당권을 장악할 테니, 그때 개화당과 신민당의 통합을 이뤄 완전한 공동정권을 세우잔 말이었다.

“더욱이 황공하옵게도 소조께서는 내 제자이기도 하네. 어릴 적 내게서 정치학을 배우지 않으셨던가. 소조는 영민하시네. 이상설 대감이나 개화당 고관들은 소조가 아니라 모두 대조의 측근들이야. 소조께서도 자신의 사람을 만들고 싶지 않겠나?”

“설마, 대조와 소조 간에 갈등이라도 있다는 겁니까?”

이승만은 정색하면서 펄쩍 뛰었다.

“그럴 리가. 여전히 실질적인 통치는 대조께서 하고 계시네. 오해하지 말게. 나 역시 대조의 충성스러운 신하야. 대한에 이런 위대한 군주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과연 그렇지요.”

“다만 소조께도 믿을만한 신하가 필요하다는 거야. 대조께서 전제군주의 시대를 끝내려는 게 확실하네. 이번 대리청정도 소조로 하여금 입헌군주제에 첫발을 떼게 하려는 거고.”

“대조의 심모원려로군요.”

“그렇지. 내 말은 그처럼 장기적으로 보자는 걸세. 진정한 의미의 입헌군주제, 정당정치 내각제가 확립되려면, 우리처럼 서구 입헌주의를 공부하고 경험한 사람들이 전면에 서야해. 4년 뒤에는 우리가 정권을 잡아 입헌군주제를 확립하자고.”

국가의 전면적인 개혁이 목표인 안창호에 비해서, 말은 그럴싸해보여도 권력 그 자체가 목표로 보이는 이승만을 안창호는 쉽게 신뢰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개화당을 장악할 수 있다면, 해 볼 만한 도박이었다.

“좋습니다. 하지만 내무부와 법무부는 내주셔야 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행정개혁, 경찰개혁, 사법개혁은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노동자와 농민들을 배려하는 정책도 확립되어야 하고요. 이건 양보 못합니다.”

“원, 알겠네. 이상설 대감께 그리 보고하지.”

이승만과 안창호는 자리에서 일어서 악수했다.

“이제 우린 한배를 탄 걸세.”

“대한의 개혁을 위해서, 그렇지요.”

“그래, 새로운 대한을 위하여!”

이승만은 미국식으로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대한제국은 이미 군주제 국가니까 ‘한국의 워싱턴’이나 ‘동양의 링컨’은 될 수 없겠지만, ‘한국의 글래드스턴’이나 ‘동양의 로이드조지’는 도전해볼 수 있을 터였다.

역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겠다는 이승만의 야심은 이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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