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민본주의 개혁
광무 24년(1920), 대한제국 보통선거 원년.
보통선거에 의해 선출된 개화당-신민당 연립정부는 광범위한 정치·사회개혁을 의제에 올렸다.
야당 진보당-신한청년당은 정부가 민본주의 개혁에 나서라 촉구했고, 새로운 사회개혁에 부정적이던 집권 개화당도 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무시할 수 없었다.
연립정부의 한 축인 신민당, 특히 내무대신 안창호가 개혁의 기치를 들고 개화당을 압박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철권통치의 상징이었던 내무부가 민본주의 개혁의 선봉에 섰다.
8월 22일, 함경남도 원산부.
‘원산 노동자 항쟁’ 1주기를 기념하여, 노동자들은 자발적인 추모제와 기념식을 조직했다. 재건된 원산노련이 이를 주도했다.
노동계를 대표하는 야당인 신한청년당뿐만 아니라, 민중의 벗을 자처하는 진보당, 심지어 연립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신민당 의원들도 참석했다.
노동계와 민간 주도의 행사였으므로, 정부 차원에서는 참석하는 이가 없었지만, 국내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내무협판 김구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원산에 왔다.
“노동자 동지들이여! 원산 시민들이여! 우리는 1년 전 바로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을 기억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외국 자본의 부당한 처사, 자본과 결탁한 극우 정치깡패들의 습격에 맞서, 우리의 열사(烈士)들은 단결하여 맞서 싸웠습니다!”
신한청년당 대표이자 민의원 여운형이 추도 연설을 시작했다.
“아, 그런데 어찌하여 국민을 보호해야 할 경찰은 형제와도 같은 노동자들에게 총구를 겨눴단 말입니까. 목숨을 위협하는 총구 앞에서도, 노동자들은 물러서지 않고 맞섰습니다. 하지만 비정하고 무참한 총알은 그들의 목숨을 빼앗을지언정, 의지를 꺾지 못했습니다. 열사들의 숭고한 희생은, 침묵하던 인민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인민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함흥에서, 평양에서, 부산에서, 광주에서, 인천에서, 그리고 황성에서 투쟁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여운형은 목소리를 드높이며 힘차게 외쳤다.
“주린 자는 먹을 것을 찾고, 목마른 자는 마실 것을 찾는 것은, 자기의 생존을 위한 인간 자연의 원리입니다. 이것을 막을 자가 있겠습니까! 자본가와 지주에게 생존권이 있다면 노동자와 농민에게는 생존권이 없겠습니까? 노동자와 농민이 계급적 자각으로 자유와 평등을 요구하는 것은 하늘이 허락하는 바입니다. 이제 세계는 약소민족 해방, 여성 해방, 노동자 해방 등 세계 개조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이는 동양을 넘어선 세계적 운동입니다. 인민이 해방을 추구하는 것은 세계의 대세요, 하늘의 뜻이요, 한민족의 각성입니다!”
“옳소!”
군중 사이에서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여운형의 격정적인 연설은, 8월의 열기를 받아 상기되어 있는 노동자들의 마음을 더욱 뜨겁게 달구었다. 반대로 보수파 인사들이 들으면 불편하기 짝이 없겠지만, 이 자리에는 그럴 이들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인민이 승리하였습니다. 현명하신 황제 폐하께옵서는 인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낡은 정치는 무너졌습니다. 인민을 짓밟은 권력자들은 숙청되었습니다. 마침내 보통선거가 이뤄져, 민의로 선출되는 정부가 탄생했습니다. 민본주의의 새로운 시대가 우리 앞에 도래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노동자 동지 여러분의 희생과 투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말뿐만 아니라, 여운형은 단상 위에서 고개를 깊이 숙여 경의를 표했다. ‘의원 나리’가 노동자를 향해 이토록 존경심을 표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동지들! 이로써 인민의 투쟁이 끝난 것입니까? 여기서 만족하겠습니까?”
“아니오!”
“결코 아니외다!”
“그렇습니다. 과거의 약탈, 살육을 중지하고 세계를 개조하는 것이 하늘의 뜻입니다. 인민의 완전한 자유와 평등을 쟁취하고, 세계를 개척하고 개조로 달려 나가 평화적 천지를 만드는 것이 한민족의 사명입니다! 그때까지, 우리의 투쟁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와아아아아!”
“대한국 만세!”
“자유, 평등, 연대!”
“인민의 해방을 위하여!”
연설에 도취된 군중은 열렬한 환호와 만세로 화답했다. 8월의 뜨거운 열기는, 군중의 열렬한 환호로 대지를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정말이지 엄청난 화술이로군. 대중을 들었다 놨다 하지 않나.”
“괜히 연설은 몽양이라고 하는 게 아니지.”
귀빈석에 앉은 신민당과 진보당 의원들이 수군거렸다.
35세의 소장파 의원 여운형의 연설은 이미 의회에서 경험한 바였지만, 연설의 귀재로 알려진 안창호 정도를 제외하면 이 정도로 대중에게 열렬한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 정치가는 없었다.
“연설이 기사화되서 전해지면 개화당이 꽤나 불편해하겠구만.”
“뭐, 그래도 몽양은 선을 넘지 않지 않나. 성상의 현명한 결단을 강조하고, 현 정부는 민의에 의해 선출되었다는 걸 언급했으니.”
우익들에게는 상종 못 할 급진 좌파 취급 받고 있는 여운형이지만, 그는 황제와 대한제국이라는 국체를 부정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여운형과 신한청년당은 사회주의 혁명과 선을 그었고, ‘인민의 각성’을 이끌어 내어 선거를 통해 합법적인 집권과 개혁을 천명했다.
「1900년 창당 당시, 영국 노동당은 자유당과 선거 연합으로 간신히 원내에 진입했다. 그때 노동당의 득표율은 1.8%, 의석은 단 2석이었다. 선거가 있을 때마다 급성장하여, 불과 20년 만에 득표율은 30%에 근접했다. 이 성장률이라면, 머지않은 시기에 집권을 이뤄 낼 것이다. 우리는 이들을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
대전쟁과 러시아 혁명 이후 유럽에서는 노동계급의 정치적 성장이 두드러졌고, 진정한 의미의 보통선거가 이뤄지면서 노동계급을 대표하는 정당이 원내 1, 2당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신한혁명당은 영국 노동당이 자유당의 그늘을 벗어나 수권능력을 갖춘 야당으로 성장하고, 독일 사회민주당이 선거를 통해 원내 제1당이 되어 권좌에 오른 전례를 역사적 모범으로 삼았다.
“진정한 정권 교체를 이뤄 내려면, 역시 진보당과 신한청년당과 합당을 해야겠네. 노동자와 농민의 단결을 이끌어 내려면, 몽양과 함께 가야 해.”
민의원 부의장 전봉준은 연설 없이 참관만 했지만, 새삼 노동자-농민의 연합정당을 구축해야 한다는 걸 확신했다.
과거 농민들이 자신에게 환호했던 것 이상으로, 노동자들은 여운형에게 환호를 보냈다.
목가적 농민 유토피아를 꿈꾸는 진보당과 산업사회 노동자 유토피아를 꿈꾸는 신한청년당의 거리는 분명히 존재했지만, ‘민본’이라는 대의는 분명히 공유했다.
진정한 민본주의는 노동자-농민의 지지를 받는 정당에 의해서 이뤄지리라.
전봉준이나 여운형이나 모두 그렇게 생각하였으므로, 사상의 차이에도 있더라도 타협의 여지는 분명히 있었다.
“민중의 기, 붉은 기는, 전사의 시체를 감싼다. 시체가 굳어 차가워질 때까지, 피는 깃발을 물들인다!”
추모제와 기념식이 끝난 후, 노동자들은 태극기와 붉은색 현수막을 함께 들었다.
영국 노동당의 당가(黨家)이자 노동운동을 상징하는 적기가의 번안곡을 합창하며 원산 시내를 행진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적기가를 부르며 행진하던 노동자들은 경찰의 총격을 받고 학살당했다.
하지만 지금은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시가지를 행진하고 있으니, 놀라운 변화였다.
“나 참, 이게 무슨 일이래. 순검 체면에 노동자 뒤꽁무니나 따르고 있으니.”
“빨갱이 세상이 다됐구만.”
“이러다 아라사 꼴 나는 거 아닌지 두렵네그려.”
노동자 대열을 뒤따르며 대열을 ‘보호’하고 있는 일선 경찰들이 투덜거렸다.
엄밀히 말하면 노동자들의 행진이 격화되거나, 우익과 충돌이 발생할 경우를 방지하기 위한 감시였다. 하지만 한동안 노동운동은 무조건 때려잡아야 한다고 교육받았던 경찰들로서는 총칼도 차지 않고 노동자를 뒤따르는 게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
내무협판 겸 치안국장 김구는 몸소 원산으로 와서 노동자 행진을 참관하고 있었다.
일선 경찰들의 불평불만을 그가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신민당 내각의 일원으로서, 내무대신 안창호의 보좌역으로서, 경찰개혁을 이끌고 있는 이가 바로 김구 그 자신이었다.
원산 학살에 관여된 간부와 순검은 모조리 추방되었고,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에 대한 탄압을 중지했다.
‘대한국민은 계급과 출신에 상관없이 모두 단결해야 한다. 노동운동이 격화된 건 외부의 자극이 아니라 내부의 불평등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경찰은 탄압 일변도였지. 작금의 정세에서, 국민의 단결에 방해가 되는 건 권위주의 관료 조직이다.’
김구로 말할 것 같으면,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지만, 철저한 민족주의자로서 국민의 평등과 국민적 단결을 추구했다.
본인도 독립전쟁에 참전한 하사관이자, 황해도에서 농촌계몽운동을 이끌었던 경험이 있었던 김구로서는, 향촌사회에서 군림하는 관료-경찰 조직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백범. 대한국을 위해서도, 신민당을 위해서도, 관료사회의 전면적인 개혁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과거 조선의 탐관오리들과 비교하면, 오늘날 관료조직은 청렴하고 유능하다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관존민비의 구시대적 작태를 벗어나지 못하면, 민본주의라는 이상을 이뤄 낼 수 없습니다.”
김구는 안창호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내무대신 안창호는 자유주의 정당을 자처하는 신민당에서도 가장 개혁적인 인사였다.
신민당 인사 대부분이 정치개혁에 만족하고 있는 것에 달리, 안창호는 더 근본적인 사회개혁을 지향했다.
안창호는 조소앙이 주창한 삼균주의에 공명하는 입장을 보였다.
근래 안창호가 정립한 ‘대공주의(大公主義)’도 민족평등·정치평등·경제평등·교육평등의 4대 강령을 주창했으니, 신한청년당의 삼균주의와 매우 유사했다.
여운형과 조소앙이 한때 안창호의 영향을 받아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처럼, 안창호도 젊은 소장파 정치가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였다.
「여성에도 투표권을 부여해 진정한 의미의 보통선거를 이뤄 내고, 공공부조를 확립하고, 노동개혁으로 노동자들을 배려하며, 농민들의 과중한 지세 부담을 경감하고, 보통교육을 더욱 적극적으로 확대하여 모든 국민이 선비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안창호의 주장은 개화당, 관료집단, 심지어 신민당 내 보수파의 반발에 부딪혔다.
“대단하시군. 예산은 어떻게 확보할 생각입니까?”
“대전쟁 이후 과도하게 확장된 군비를 감축하고, 사회 예산을 적극적으로 늘려야 합니다.”
“대한의 적이 버젓이 있는데, 군비를 감축하자니 말이 되는 소리요?”
“대체 그 적이란 누구입니까? 일본과는 우방이고, 분열된 중국은 대한을 위협하지 않으며, 소비에트 러시아와도 평화협상을 맺지 않았습니까?”
“평화도 군사력이 있어야 유지되지! 대한의 국익을 진취적으로 확보하려면, 막강한 군사력은 필수요.”
“군사력을 축소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과도하게 늘어난 군비를 줄이자는 것이지요.”
“그게 그 말 아니오? 군비 없이 군사력을 어찌 확보하나?”
대전쟁 이후에도, 일본의 군비 증대와 러시아와의 갈등은 군비 예산 강화를 정당화했다. 광무 24년 국가 예산의 3할은 군비였다.
군비 감축은 군부만이 아니라 개화당 정부와 관료집단도 용인하지 않았다.
“대한을 왜 서양처럼 만들려고 하는 것이오? 서양 급진주의에 도취되어 세상을 뒤바꾸려 했던 개화당의 결말을 보시오. 서양 자유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그들의 이념이 모두 옳다는 건 허구에 가깝소.”
서북지역을 최대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 있는 신민당은, 전국정당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도시 지식인과 신흥 상공인, 특히 삼남지방의 개신유림과 손을 잡았다.
의정대신 박은식으로 대표되는 개신유림은, 개화에 반발하다 사회적으로 도태된 보수적 유림과 달리, 근대화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개혁적 유림이었다.
개신유림은 근대화에서 소외된 향촌 지식인들을 대표했다. 이들은 ‘유교적 이상을 저버리고 탐욕에 찌든 개화당 명문사족’들에 반대하는, 근대화와 유교적 이상을 동시에 이루는 ‘대동사회’를 지향했다.
어떤 의미에서 이들은, 목가적 농촌 유토피아를 꿈꾸는 진보당 주류와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었다.
신민당의 중요한 축인 개신유림은 근본적인 사회개혁에 반대했다.
“도산. 개화당 독재, 기호 500년 독점을 끝내고 우리 서북인들이 정부에 참여한 것만으로 대단한 진일보 아니오? 왜 신한청년당이나 추진할 법한 정책들을 들고 나오는지 모르겠소.”
“동지 여러분. 우리가 겨우 개화당 대신해서 권력이나 잡자고 그 노력을 해 왔던 겁니까? 우리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권력에 도전한 겁니다.”
안창호의 최대 정치적 기반인 평안도의 신흥 상공인들도, 정치개혁과 정권을 획득한 것에 만족했다. 이들이 보기에 안창호가 추진하는 사회개혁은 긁어 부스럼이었다.
이들을 모두 아울러야 하는 안창호로서는, 개화당 못지않게 신민당 보수파와도 갈등을 빚어야 했다.
“어찌 이리도 대세를 보지 못한단 말인가! 세계의 대세뿐만 아니라, 국내정치에서도 마찬가지거늘. 기껏 연립정부를 수립하고도 개화당 집권기와 다를 바가 없다면, 국민이 우릴 뭐라고 생각하겠나? 개화당과 다를 바 없는 신기득권으로 여기겠지. 진정한 수권정당이 되려면, 개화당의 정책과 명백히 차별성을 보여 줘야 하거늘.”
안창호는 여러 반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뜻을 꺾을 생각이 없었다.
국민이 근본이 되는 민본주의 개혁을 이루겠다는 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안창호는 자신이 총리가 아닌 이상, 모든 걸 당장 뒤바꿀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신 그는 일단 자신이 가진 권한, 즉 내무대신으로서 할 수 있는 개혁을 추진하기로 했다.
“백범이 저를 도와주십시오. 제게는 백범과도 같은 강력한 의지, 뚝심이 필요합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길이라면, 마땅히 따르겠습니다.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먼저 시급한 일은…….”
안창호는 김구와 손을 잡고, 내정개혁에 나섰다.
“내무대신의 행보가 지나치게 급진적입니다. 내무부는 신성한 국체를 수호하는 관부(官府)지, 뒤흔들라고 있는 곳이 아닌데 우려가 됩니다.”
“그래서, 짐이 어쩌길 바라는 건가?”
“대조께옵서 내각에 명을 내리시어 지나친 변화에는 제동을…….”
법제개혁으로 순수한 황궁 관련 사무만 맡게 된 궁내부는, 황제에게 우려를 표명했다.
보수적 근왕파들은 ‘민본주의 개혁’이 황실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짐은 국가를 향한 도산(안창호)의 충정을 믿어 의심치 않네. 또한, 내정의 일은 소조와 내각이 알아서 잘하리라 생각하네. 그러니 궁내부도 왈가왈부하지 말라.”
대리청정의 명에서 예고한 대로, 군사와 외교만큼은 전권을 행사하고 있는 이선이었지만, 내정의 대부분은 소조(이진)와 내각에 위임했다.
정당이 주도하는 영국식 입헌군주제로 전환하기 위한 과도기로서, 이선은 정부가 국내정치에서 무엇을 하든 관망할 생각이었다.
이선은 연립정부가 추진하는 민본주의 개혁을 지지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황제가 나서서 추진하는 것보단, 선출된 정부가 추진하고 소조가 승인하는 형태를 원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완전히 손을 내려놓은 건 아니었다. 문제가 발생할 경우 개입할 수 있도록, 다각도에서 정보를 입수하고 보고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