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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화 국혼 제안 (670/812)

84화 국혼 제안

‘올해 안에 간택을 마치고, 늦어도 내년 초에는 국혼을 올려야겠다.’

이선은 황태자의 국혼, 즉 태자비 간택을 해야 할 때가 왔다고 판단했다. 당시 시대상으로 볼 때 국본의 나이 스물넷이면 많이 늦었고, 이선의 계획보다도 늦어졌다.

국내에서 간택한다면 이미 국혼을 올렸겠지만, 국외에서 신붓감을 물색하다 보니 시일이 많이 소요됐다.

오랜 탐색 끝에 청국의 실권자이자 친한파인 숙친왕 산기의 딸들이 후보군이 됐고, 그중에서도 10녀 현사가 잠정적 내정되었다.

현사를 한국으로 유학 보내고, 한국인이나 다름없는 교육을 받는 것도 국혼 계획의 일환이었다.

간택령은 형식적인 문제였고, 발표 수순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선이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한국 황태자가 숙친왕가의 공주를 국혼 대상으로 물색한다는 정보가 전해지면서, 일본 측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한국 황태자와 청국 공주의 혼례라. 양측의 혈통을 잇는 후계자를 얻어, 궁극적으로 청국을 집어삼키려는 속내인가?”

“지금이 18세기입니까? 시대가 바뀌었는데. 민족자결의 시대에 결혼동맹으로 합병한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요.”

“그렇기는 해도, 황가 간의 혈연을 결합해 국가 간의 결속을 더 단단히 묶으려는 목적이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전례 없는 국혼을 추진할 리가.”

러일전쟁 이후 한만(韓滿) 문제에 개입을 포기한 일본이긴 하지만, 아예 관심을 끊은 건 아니었다.

“국가 간의 결속이라고 한다면, 황공한 일이오나 일본 황가와 한국 황가가 결합하는 건 어떻습니까? 양국 관계가 더 두터워지지 않겠습니까?”

“천황가의 공주가 외국 왕족과 결혼한 전례가 없는데, 가당키나 한 일이겠는가.”

“천황 폐하께옵서는 한국에 대해 꽤나 우호적이시고, 한국 황태자에 대해서도 호의를 갖고 계시지 않습니까.”

다이쇼 천황, 즉 요시히토가 한국에 우호적이라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이선에 대한 존경심을 표명하기도 했고, 이진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도 특별히 한국어까지 배워 가며 극진히 환대했었다.

“흠, 그건 그렇긴 하지만. 국혼은 또 다른 문제일세. 어느 공주님을 후보로 정한단 말인가?”

요시히토에게는 아들만 넷이고, 딸은 없었다. 결국 방계 황족, 친왕가에서 후보군을 만들어야 했다.

“결정만 내려진다면야, 후보를 정하는 건 어렵지 않지요. 제국에서도 국혼 문제로 떠들썩한데, 한국 황태자와의 국혼이 추진되면 구설수도 덮어질 겁니다.”

다이쇼 9년(1920), 일본에서도 황태자의 국혼 문제로 조야가 들썩였다.

황태자 미치노미야 히로히토(迪宮裕仁)의 나이 스물. 황태자비를 결정할 때가 되었다.

일본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해군과 사쓰마번은 방계 황족 구니노미야 구니요시(久邇宮邦彦) 왕의 딸이자 사쓰마 번주의 외손녀인 나가코(宮良子)를 낙점하고 국혼을 밀어붙였다.

“미친 해군 놈들, 정부와 군대도 모자라 이제 천황가까지 좌지우지하겠다고?”

러일전쟁 이후 아무리 세력이 꺾였다지만, 메이지 유신 이후 중요한 축이었던 조슈파와 육군은 해군과 사쓰마의 독주에 반발했다.

여전히 살아 있는 조슈의 최고 원로 이토 히로부미는 전통적으로 황후를 배출해 왔고, 메이지 황후 쇼켄(昭憲)의 친정이기도 했던 이치죠(一條) 가문을 밀었다. 이치죠 사네테루(一條實輝) 공작의 딸인 도키코(朝子)가 유력 후보로 부상했다.

조슈파의 몰락을 이끌어 냈던 사이온지 긴모치 전 총리와 하라 다카시 총리, 즉 입헌정우회 세력도 이번에는 조슈의 입장을 지지했다. 

러일전쟁 이후 해군의 힘이 막강해진 상황에서, 차기 황후까지 사쓰마-해군이 미는 후보를 정할 수는 없었다.

“왜 정부가 황태자의 국혼까지 결정하려 드는가? 이 문제는 짐이 알아서 하겠다.”

아무리 허수아비나 다름없는 다이쇼지만, 국혼 문제만큼은 정부의 개입을 막으려 들었다.

사다코(節子) 황후와 히로히토가 나가코를 마음에 들어 하면서, 사실상 황태자비는 내정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조슈-입헌정우회 동맹도 물러서지 않았다.

“황태자비까지 뜻대로 배출하면, 앞으로 해군이 얼마나 오만방자해질지 모른다.”

천황가의 뜻이 꺾이지 않자, 일본 정부는 언론플레이에 나섰다.

1920년, 당대 최고 의학 잡지에 특집 기사가 실렸다.

「나가코 여왕의 외가인 시마즈 가문에는 색맹의 형질이 유전되고 있다. 결코 안심할 수 없다.」

“어찌 만세일계의 황통에 유전병의 위험성을 감수할 수 있겠습니까! 황통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황태자비는 건강한 분을 뽑아야 합니다!”

반대파의 낙마운동이 거세지자, 반대로 찬성파의 목소리도 커졌다. 황태자비 간택 문제는 일본 국민의 관심사가 되었고, 국가적 문제가 되어 버렸다.

결국 이 문제는 장본인인 히로히토가 나서면서 정리가 되었다.

“과학이라고 언제나 옳기만 한 건 아니고, 유전병이라고 반드시 발현되는 게 아니오. 나는 나가코 여왕이 좋소. 부황께서도 이 국혼을 원하십니다.”

천황과 황태자가 확정했다니, 정부에서도 더 반대할 여지가 없었다.

히로히토와 나가코의 약혼이 결정되면서 황태자비 간택 문제는 마무리된 것으로 보였지만, 이 사건은 상당한 후폭풍을 불러일으켰다.

“이토와 하라가 뭐 하는 놈들인데 감히 천황가의 국혼을 왈가왈부하는가.”

“천황 폐하께옵서 결정하실 일을 이놈들이 뭔데 나서서 이런 모욕을 준단 말인가!”

“실로 역적이다! 역적은 베어야 한다!”

천황가의 신성성을 믿어 의심치 않는 극우 세력은, ‘감히 천황가의 국혼에 개입하려 든’ 이토와 사이온지, 하라를 향해 살해협박을 보냈다.

이들은 모두 테러라면 이골이 난 사람들이라 살해협박은 개의치 않았지만, 문제는 간택 건으로 인해 정치적 위기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중의원 선거 압승과 보통선거권 개혁이 무색하게도, 내각과 입헌정우회를 향해 대중적 비난이 커지고 있었다.

“곤란하군. 극우파 놈들은 그렇다 쳐도, 황태자비 가문과 사쓰마뿐만 아니라 대중까지 적으로 돌리게 되어 버렸어. 국면 전환이 필요한데…….”

“국혼은 국혼으로 덮어 버리죠. 한국 황태자와의 국혼을 추진해 보시지요.”

이리하여 하라 내각은 한일 황가 간의 국혼을 구상해 내기에 이르렀다.

“폐하, 한국 황태자가 외국 황실에서 황태자비를 들이려고 한다고 합니다. 이에 정부는 동양 평화와 일한 양국의 우호를 위하여, 황가에서 국혼을 추진함이 어떠하온지 감히 여쭙습니다.”

“흠, 좋은 생각이군.”

총리의 제안에, 다이쇼는 의외로 순순히 수락했다.

황태자비 간택 문제에 개입해 언론 플레이까지 한 하라가 괘씸하긴 했지만, 한국 황가와 국혼으로 결합된다는 건 좋은 아이디어였다. 다이쇼는 황태자 이진을 훌륭한 청년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후보는 누가 좋겠소?”

“구니노미야 가문에서 황태자비를 간택했으니, 같은 가문에서 뽑는다면 더욱 경사일 것입니다. 나시모토노미야(梨本宮)가문이 어떻겠습니까?”

하라는 황태자비의 가문에 화해의 손길을 보냈다.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梨本宮 守正)왕은 구니노미야 구니요시의 친동생이었다. 즉, 그의 딸은 황태자비가 될 나가코의 사촌이었다. 

“나시모토노미야 가문이면 마사코인가?”

“그러하옵니다. 마사코 여왕께서는 아름답고 현명하시니, 한국의 황태자비로서도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좋소. 추진해 보시오. 필요하다면 짐이 친서를 보내도록 하지.”

* * *

「동양의 문명국이자 우방국인 대일본제국과 대한제국의 우호와, 동양의 항구적인 평화를 위하여 …… 짐은 대한제국 황제 폐하께 황태자 전하와 일본 황가 간의 국혼을 정중히 청하는 바입니다.」

광무 24년 9월.

주한일본대사를 통해 다이쇼 천황의 친서를 받은 이선은, 일단 웃는 낯으로 화답했다.

“귀국 천황 폐하의 호의에 감사드리오. 다만 이미 국혼이 추진 중이니만큼, 이 문제는 짐이 혼자 결정할 수 없소. 차분히 논의를 하여 화답하겠소.”

“예, 폐하. 양국의 우호와 동양 평화를 위하여 현명하신 결단을 고대하겠습니다.”

일본대사가 물러난 후, 이선은 기이한 역설을 느꼈다.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면 이방자 아닌가? 거 참, 그쪽은 전혀 신경 안 쓰고 살았는데 이렇게 엮이나.’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梨本方子)는 바로 원역사에서 ‘이왕비’가 되는 이방자였다. 

역사의 변화로 인해 1897년에 ‘영친왕 이은’은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같은 해에 태어난 황태자 이진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마사코는 이번에도 한국 황실과 엮이게 되었다.

‘역사가 바뀌었는데, 일본 황가랑 엮여서 좋을 게 뭐가 있나.’

이선에게 있어 일본 황가와의 국혼은 처음부터 염두 대상이 아니었다. 상징적인 의미야 있겠지만, 국익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었다.

‘한일 양국 간의 국혼이 성사되면 한일동맹이 진의 치세까지 연장되긴 하겠지만, 언젠가 일본과의 대립은 피할 수 없을 터. 동맹 연장만 믿고 국혼을 추진할 순 없지.’

어찌 됐건 제안이 들어왔으므로, 이선은 황후 및 황족들과 의논은 해 볼 생각이었다.

그래도 이미 결심은 청국과의 국혼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천황 명의로 친서까지 보냈는데 대놓고 거절하기는 모양새가 안 좋으니, 이미 약혼이 정해졌다고 해야지. 차라리 잘됐다. 두 말 나올 여지 없이 간택을 빨리 추진해야겠다.’

일본의 제안이 들어온 시점에서, 국혼 문제는 이제 공식적인 문제가 되어 버렸다. 조속히 결론을 내려야 했다.

“폐하, 제가 감히 국혼 문제에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황후, 국혼만큼 황후의 의견이 중요한 일도 없소. 편하게 말씀하시오.”

“하오나 태자의 국혼은 국가의 중대사이오니, 공연히 제가 나서기에는…….”

황후 김아영은 집안 어른이자 시어머니인 황태후의 신신당부대로, 절대로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했다. 

외국 황실과의 국혼이 언급되는 시점에서 정치의 영역이라고 판단한 아영은 국혼 문제에서 물러서 있었다.

“그 누구도 아닌 우리 아들의 결혼이오. 모친으로서 당연히 의견을 듣고 싶소.”

이선은 아영의 현명한 처신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때로는 답답함을 느꼈다. 아내의 의견을 알고 싶어도, ‘지아비의 뜻이 곧 제 뜻’이라고만 했다.

‘하지만 자식의 결혼에 의견이 없는 어머니가 세상 어디 있겠는가?’

이선의 예상대로, 아영은 당연히 자신의 의견이 있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저는 태자가 청국 공주와 국혼을 반드시 올려야 하는지 의문이옵니다. 물론 청국과의 관계가 대한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 저도 가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꼭 국혼이라는 형태로 결합되어야 하는 것인지요?”

“음, 황후. 대한은 청국을 보호하는 입장이오.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만주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지. 노골적으로 한국이 만주의 주인 노릇을 하는 것보단, 형제국가라는 명분이 좋소. 황실 간의 인적 결합은 가장 좋은 상징이 되겠지. 장차 한국과 만주의 피를 모두 이은 황손이 제위에 오르면, 만주인들 입장에서도 보기 좋지 않겠소?”

이선은 차분히 국혼의 정치적 이익을 설명했다.

“폐하의 큰 뜻을 제가 어찌 감히 거스르겠습니까. 하오나…….”

아영은 정치 문제라 생각해 말을 머뭇거리자, 이선은 손을 내저었다.

“부디 편히 말씀하시오. 대한의 황후이자 진의 모친으로서 가감 없이 말해 줬으면 좋겠소.”

“예, 그럼 감히 말씀 올리겠습니다. 숙친왕이 비록 청국의 실권자라고는 하나, 방계 황족입니다. 하물며 국혼 대상으로 고려되는 공주는 숙친왕의 적녀도 아니지 않사옵니까. 대한의 황태자와 격이 맞는지 의문입니다.”

아영이 작심한 듯 의견을 냈다.

“나 역시 그걸 고려하지 않은 건 아니오. 하지만 청 황제는 어리고, 그 누이는 더 어리오. 결국 방계에서 찾아야 하는데, 만주에 숙친왕가보다 더 격이 높고 권세가 있는 가문은 없소. 숙친왕의 적녀는 진보다 다 나이가 많고 이미 혼례를 치렀소. 남은 딸 중에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된 이가 10녀 현사고.”

“물론 저도 현사 양이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직접 보니 아름답고 총명한 아가씨였습니다. 하오나 한청 양국의 우호를 위해서라면, 꼭 태자가 아니라 대한의 다른 황족과 혼례를 해도 되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럼 이번엔 내가 묻고 싶소. 이 국혼에 반대하오? 그렇다면 대한의 황후로서 반대하는 것이오, 진의 모친으로서 반대하는 것이오?”

반대를 직감한 이선의 물음에, 아영은 드물게 확실한 의견을 냈다.

“둘 다입니다. 정치적 의미는 고려하지 않겠습니다. 황후로서도, 모친으로서도 반대합니다.”

“으음.”

뜻밖의 반대에 이선은 고민했다.

물론 이 시대는 부모, 그중에서도 부친이 자식의 혼인대상을 결정해 주는 게 상례였다. 

하물며 왕가에서는 더욱 그랬고, 역대 왕들은 정치적 안배를 고려해 왕세자비를 간택했다.

만약 이선이 강행한다고 쳐도, 결국 아영은 따를 터였다. 관례가 그랬고, 국익에 걸린 문제라는데 아영이 결사반대하고 나설 사람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선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진의 혼인에 아영은 발언권을 낼 자격이 있다. 내 의견 못지않게 그녀의 의견도 중요하다.’

이선은 아영을 존중했다. 그녀에게 있어 장남의 혼인만큼 중요한 문제도 없을 터였다. 그 의견을 무시한 채 강행하고 싶지는 않았다.

“혹여 이번에 제안이 온 일본 황가와의 혼례를 염두에 두고 있소? 그쪽 제안도 국익의 측면에선 나쁘지 않지마는, 나는 별로 내키지 않는구려.”

“저는 단순히 모친의 입장에서만 생각해 보려 합니다. 그나마 현사 양은 대한에 유학해 한국어라도 유창하다지만, 그 일본 공주가 대한에 대해 얼마나 알겠습니까? 당장 말도 안 통할 것입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대사에게 듣기론 그 공주가 영어와 프랑스어를 할 줄 안다고 하고, 한국어도 금방 배울 수 있다고는 하는데. 단순히 언어가 문제가 아니라, 문화 차이라는 건 절대 무시할 수 없지.”

이선도 일본과의 국혼은 내키지 않았다.

그나마 청국 황실은 중국을 지배하는 동안 유교화되면서 한국 황실과 공유하는 문화가 많은데, 일본 황실은 미지수였다.

“그렇다면 진의 의견은 어떻소? 무엇보다 당사자의 의견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리 정략결혼이 절대적 대세요, 결혼 당사자의 의견이 무시되는 시대라지만, 이선은 아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오직 ‘부황의 뜻을 따르겠다.’라고만 하니, 이 역시 답답한 노릇이었다.

자신의 앞에선 말을 않는 아들이지만, 혹여 모친에게는 의견을 드러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제가 오늘 감히 폐하께 드린 말씀은, 진과 나눈 대화에 모친으로서의 염려를 더한 것이옵니다.”

“그 말인즉, 진은 청국과의 국혼을 원치 않는단 말이오?”

“진은 오직 부황의 뜻을 따르려고 하지요. 명하시면 따르겠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이옵니다.”

아영의 솔직한 답변에, 이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내가 직접 진을 만나 이야기해 보겠소. 이번만큼은 내 뜻대로가 아닌, 진이 자신의 의견을 확실히 드러내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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