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당주로서의 결단
“답변을 드리기에 앞서, 폐하께 직접 여쭙고 싶습니다.”
“무엇이든 말씀해 보시오.”
“왕가 간의 결합은 유럽에서는 오랜 전통입니다만, 아시아에서는 극히 드문 일로 알고 있습니다. 러시아 공주가 유럽 왕가로 시집을 가는 건 상례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500년 동안 한 번도 전례가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정녕 이 국혼을 추진해도 괜찮은 것입니까?”
올가로서는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의문이었다.
“물론 전례가 없지요. 전례를 찾으려면 550년 전 고려왕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니까. 그때는 고려와 몽골제국 간의 혼사가 빈번했었으나, 조선에서는 외국과 혼인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했었소.”
이선은 선선히 대답했다. 그리고 단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물론 전통은 중요하지만, 전례에 집착할 필요는 없지요. 조선이 서양과 통교(通交)하고, 서양식으로 근대화를 추진하며, 서양인들이 한국에서 살아가는 건 전례가 있는 일이었겠소? 모두 태상황과 짐의 치세에 이뤄진 일이오. 짐은 전례를 깨고, 국민과 함께 세상을 변혁했소. 40년 사이에 중세국가였던 조선을 근대국가 대한제국으로 변모했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오.”
이선은 관례에 대해선 걱정하지 말라는 신호를 주었다. 전례 없는 서양인 황태자비에 대해 국민적 반감이 적지는 않겠지만, 자신의 권위와 권능으로 여론을 반전시킬 자신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저희는 폐하의 진심을 믿습니다. 폐하께서는 아버님의 친우셨고, 저희 남매를 구해 주셨습니다. 폐하와 한국의 배려가 아니었더라면 저희는 지금쯤 비참한 처지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은혜를 생각하면, 저희가 평생을 다 바쳐 갚아도 부족할 것입니다.”
“고마운 말이나, 고인의 벗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오. 혹여 은혜를 입었기에 갚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국혼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소. 짐이나 태자나 은혜를 빙자해서 결혼을 강요할 생각은 추호도 없소. 그대들에게는 스스로의 인생을 선택할 권리가 있으니까.”
이선은 혹여 올가나 타티야나가 은혜에 대한 부담으로 국혼을 받아들일까 싶어 선을 그었다.
“니콜라이 황제께서는 여러분의 안전과 행복한 삶을 신신당부했고, 짐은 고인의 마지막 당부를 지키리라 맹세했소. 그대들은 짐에게 있어 조카나 다름없고, 짐은 그대들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겠소.”
올가는 이선의 배려를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폐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로마노프 왕가의 당주 대리로서 대답을 드린다면, 이 국혼은 성사함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로마노프 왕가의 공주가 동양 왕실과 국혼을 맺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긴 하나, 폐하께서 말씀하신대로 전례에 집착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저희 아버님께서도 황태자 전하를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믿음직한 친우의 아들이자 차기 황제가 되실 황태자께서 사위가 된다면, 돌아가신 부모님께서도 천국에서 기뻐하실 겁니다.”
여대공의 긍정적인 답변에 이선도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다음에 나올 말을 기다렸다. 당주로서가 아닌 언니로서의 답변을.
“하오나 타티야나의 언니로서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 국혼이 과연 모두에게 행복한 일이 될지 확신할 수 없어 걱정스럽습니다. 한국과 러시아, 동양과 서양간의 문화 차이가 너무나도 큽니다. 언어와 관습부터 시작해서, 종교와 사고방식에 이르기까지 너무나도 다릅니다. 당장 저희가 폐하께 드리는 말씀도 영어가 아니겠습니까? 물론 한국어는 빠르게 배우고 있습니다만, 언어만 배운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건 짐작이 갑니다.”
올가는 작심한 듯 언니로서의 걱정을 드러냈다.
“국민적 여론은 폐하께서 잘 해결해 주신다고 하여도, 서양 기독교 문화권에서 자란 타티야나가 동양 유교 문화권인 대한제국 황실에서 잘 적응할지 의문입니다. 저희 어머님만 생각해도, 러시아의 이웃나라인 독일에서 오셨음에도, 처음에는 정교회와 러시아 문화에 익숙하지 못해 당황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제 어머님이 러시아인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비난을 받았을지는, 폐하께서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언제나 독일 여자라고 비난받기 십상이었지요. 독일과 러시아의 문화차이도 그러할 진데, 한국과 러시아의 문화 차이는 더욱 극복하기 어려울 겁니다.”
헤센의 알릭스, 또는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는 러시아인들에게 ‘독일 여자’라고 미움을 받았다. 혁명이 터졌을 때도, 황제보다 황후에 대한 증오가 더 클 정도였다.
올가는 타티야나가 인종적으로 99% 균일한 나라인 한국에서 ‘서양 여자’라고 미움을 받는 상황을 우려했다.
“여대공의 우려를 충분히 이해합니다. 타당한 지적이고, 짐 역시 우려하는 바가 같소. 하지만 그대들의 어머님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듣기 거북할 수 있겠지만, 짐이 생각하건대 고인이 대중적으로 비난받은 건, 독일 출신이라서가 아닙니다. 역대 러시아제국의 황후 중에 독일 출신이 얼마나 많았는지 기억해 봅시다. 심지어 예카테리나 2세는 독일 출신으로서 황제가 되고 대제라는 칭호까지 받았습니다. 국적이 문제가 아니라, 처신의 문제지요.”
이선은 친구의 딸이나 피보호자가 아닌, 로마노프 왕가의 당주 대리로서 올가를 존중했다.
듣는 입장을 배려해 더욱 정중한 언어로 대놓고 고인의 허물을 지적하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알아듣도록 말했다.
알렉산드라는 지나치게 시대착오적인 옛 관습에 집착했고, 정치적으로 부적절한 태도를 수차례 보였다. 남편의 몰락에 직간접적인 기여가 적지 않았다.
올가도 이선이 하는 말을 이해했다.
“물론 태자 전하께서는 제 아버님이 아니시고, 타티야냐도 제 어머님이 아니지요. 타냐는 어릴 적부터 헌신하고 순종하는 성품이라, 제가 당주로서 혼인을 맺으라고 하면 따를 겁니다. 저희 네 자매 중에서, 타티야나는 가장 동양적인 성품을 지니긴 했습니다. 동양에서는 아내가 남편에게 무조건적으로 헌신하고 순종하는 게 미덕이라 들었습니다.”
“그건 틀린 말은 아닌데, 옛 관습이지요. 짐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관습이라고 생각합니다. 20세기에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부부상이 필요하다고 여깁니다.”
이선은 유교의 삼종지도(三從之道), 즉 여인은 어려서는 아버지를, 결혼해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은 후에는 자식을 따라야 한다는 윤리를 싫어했다.
‘무슨 케케묵은 춘추시대 윤리야. 그런데 조선이 대한으로 바뀌어도 그걸 당연하게 여기니…….’
나름 근대적인 교육을 받고 서양 구경도 했던 아내 아영도, 명문 사대부 가문의 여식답게 삼종지도의 윤리에 충실했다. 이선이 한참 설득한 후에야 ‘동등한’ 부부관계에 동의했다.
하지만 그건 ‘지아비의 뜻’이 그렇기 때문에 따른 것이지, 스스로 남편과 동등하다고 여겨서 받아들인 게 아니었다.
이선은 아영의 현명함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유교적 윤리에 지나치게 충실한 태도가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그건 아영이 이상한 게 아니라, 이선이 특이한 것이었다. 500년 유교국가의 정점에 있는 군주가 유교 윤리를 내심 혐오한다는 게 모순이었다.
‘외면의 근대화뿐만 아니라 내면도 조속히 근대화되어야 해. 유교의 좋은 점만 살리고, 악습은 모두 없애 버려야지.’
유교 윤리가 절대적인 국민적 정서를 고려해 이선은 대놓고 유교에 반감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 자신도 유교적 군주상에 충실한 시늉은 했지만, 위로부터의 다양한 개혁을 통해 전근대적 윤리를 무너트렸다.
입헌군주제 실시와 황태자의 국혼은 위로부터 주는 충격에 정점을 찍을 수 있었다.
“서양에서는 흔히 짐을 동양의 표트르 대제라고 칭하던데, 과분한 호칭이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표트르 대제가 옛 러시아를 철두철미하게 뒤바꿔 버렸듯, 짐도 한국을 근본적으로 바꾸려고 했으니까. 표트르 대제가 턱수염을 잘랐다면 짐은 상투를 잘랐고, 대제가 서구식 제복을 입고 서구식 제도를 도입하였듯 짐도 그렇게 하였소이다. 차이가 있다면, 18세기의 황제였던 표트르 대제는 국민을 신경 쓸 필요는 없었지만, 20세기의 황제인 짐은 국민의 권리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거지요.”
러시아인 입장에서 알아듣기 쉬운 비유라, 올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20세기의 입헌군주제에는 군주뿐만 아니라 그 배우자의 역할도 중요해질 터. 짐이 서양 왕가와 통혼하려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서양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여러분은 좀 더 주체적인 배우자, 진보적인 황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선은 왕가의 장기 존속을 위해서라도, 군주가 권력을 내려놓고 국가의 상징이 되길 원했다.
‘물론 후대에 어지간히 말아먹는다 해도, 나라가 망하지 않는 이상 일본이나 태국처럼 왕가가 살아남을 수는 있겠지. 하지만 일본 천황가나 태국 왕가는 21세기 기준에도 여전히 신성불가침이 아닌가. 현대 민주국가와 어울리지 않아. 유럽식 입헌군주제가 최선이다.’
서양인 황후의 존재가 한국의 입헌군주제 정착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물론 러시아는 전제군주제 국가였지만, 그래도 동양 왕가보다는 진보적이었다. 니콜라이가 아내와 자식들을 대하는 것만 봐도, 서양의 일반 가정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만약 니콜라이가 입헌군주였다면, 가정적이고 신사적인 훌륭한 입헌군주가 될 수 있었다. 전제군주로 황위를 물려받아 시대착오적 전제정에 집착했다는 게 니콜라이의 비극이자 로마노프 왕가의 비극이었다.
‘타티야나는 동양적인 황후상에 어울리면서도, 유럽식 입헌군주제 문화도 알고 있지. 현대적 퍼스트레이디로서 훌륭히 기능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서양인 황후와 혼혈 황자의 존재는, 대한제국이 전제군주국으로 돌아갈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는 길이 될 수 있었다.
결국 황제의 권위와 권능에 복종할지라도, 황실에 마이너리티가 있는 이상 예전처럼 절대적인 권위를 누릴 수는 없을 터였다.
자연스럽게 권력은 민의를 대표하는 정부에 넘어가게 될 터였다.
“여기까지는 국혼의 필요성에 대해 논의하는 대화였소. 올가 니콜라예브나가 언니로서 말했으니, 짐도 아비로서 말하고 싶군요. 짐, 아니 나는 아들이 원하는 결혼을 해 주고 싶소. 본래 나는 청국 공주와의 국혼을 계획했지만, 진의 마음을 알게 된 이상 그 마음을 존중해 주고 싶었소.”
“정녕 황태자께서 타티야나에게 특별한 마음을 품고 계시다면, 저 역시 반대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타냐는 약간 당혹스러운 듯합니다. 타냐의 성격이 둔감한 측면도 있겠습니다마는, 황태자께서 자신을 좋아하리라곤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던지라…….”
“그건 진이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이지. 황태자로서 감히 마음을 드러낼 수도 없었다고 했소.”
이선은 아들이 자신이 했던 말을 전했다. 올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점잖으신 분인데다, 의무감이 강하니 그러셨던 게로군요. 그러실 만도 합니다. 저는 계승자가 아닌데도 장녀로서 느끼는 의무감이 상당한데, 계승자인 태자 전하의 의무감은 얼마나 강할지…….”
올가는 이진에게 군주의 맏이만 느낄 수 있는 동병상련을 느꼈다.
자신도 군주의 맏이로서, 국가와 가문의 미래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 그렇다면 굳이 거절할 필요가 없어. 어차피 우리는 한국의 힘을 빌려야 하는 망명자 신세니까. 드미트리나 유수포프 공작의 말이 옳아. 동양의 강국인 한국 왕가를 시가로 두게 된다면, 소비에트도 우리를 업신여기진 못하겠지. 극동에서 제국의 정통을 지켜서, 언젠가 러시아를 수복할 날을 기다리며 힘을 길러야 해.’
백군 운동이 사실상 실패로 끝난 이상, 올가도 ‘정통 러시아’를 복원한다는 기대는 접었다. 하지만 극동에서라도 명맥을 이어 나가길 바랐다. 그러려면 한국과의 협력은 필요했고, 관념적인 우호보다 왕가 간의 결합만큼 좋은 방법도 없었다.
‘황제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황태자께서 타냐를 아껴 주시겠지.’
로마노프 왕가의 당주 대리로서, 올가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저는 로마노프 왕가의 당주 대리로서, 이 국혼을 지지하겠습니다. 타티야나의 언니로서도 찬성하겠습니다.”
“오오, 반가운 결정이로군요.”
당주로서 결단을 내렸다고는 하나, 언니로서의 염려를 접은 건 아니었다.
“다만 폐하께서 괜찮으시다면, 국혼을 당장 성사시키는 것보단 시일을 두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황태자 전하와 타티야나가 서로를 알아 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이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결혼은 당사자 간에 이뤄지는 일이니만큼, 두 사람의 감정 교류가 가장 중요하지요. 차분히 시간을 두고 진행합시다.”
이선은 전적으로 동의했다. 어차피 시간은 필요했다. 어찌 됐건 전례 없는 일이니만큼, 여론을 전환할 공작에 나서야 했다. 적어도 반년에서 1년 정도의 시간은 필요할 터였다.
“그럼 저는 평양으로 가서 타티야나에게 폐하와 전하의 뜻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도 어차피 평양으로 갈 예정이니 같이 갑시다. 동생에게 좋은 말씀 전해 주길 바라오.”
“예, 그리하겠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이번 달 20일이 황태자의 생일인데, 올해는 특별히 서양식으로 무도회를 열어 볼까 하오. 타티야나 니콜라예브나가 주빈이 되면 어떻겠소?”
11월 20일은 황태자의 탄일인 천추경절이었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자연스럽게 호감을 만들 수 있는 자리가 되겠군요.”
“좋소. 그럼 바로 추진해 보지요.”
이선은 빙긋 웃었다.
“두 왕가와 두 남녀의 행복한 결합을 기원하며,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선이 장차 며느리의 언니가 될 올가에게 악수를 청하자, 올가는 여동생의 시아버지가 될 사람에게 정중히 고개 숙여 손을 맞잡았다.
‘후. 한 고비는 넘었다.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아 다행이다.’
아비로서 아들을 결혼시킨다니 감개무량할 따름이었다. 아들이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할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로군.’
수많은 장벽 중에서 한 고비를 넘겼을 뿐이었다. 당사자 간의 교류도 중요했고, 반대여론을 잠재우려면 다방면으로 공작에 나서야 했다.
‘가장 큰 문제는 황실이군. 태상황께서 결코 용인하지 않을 터. 일단 황실 내부부터 공작에 나서야겠어.’
이선은 태상황과 종친들의 결사반대를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대비할 계획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이선은 즉시 다음 계획에 착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