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특수군사작전
전문을 읽는 이진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졌다. 그는 알지 못했던, 전쟁의 적나라한 현실이 펼쳐져 있었다.
“이게 바로 전쟁이다. 정규전도 아니고 전선 없이 벌어지는 게릴라전이란 게 이런 거지. 대한국군이라고 무오류일 줄 아느냐? 대한국군의 영웅적인 승리 뒤에는 이런 현실이 있다.”
국내에는 대한제국군의 영웅적인 면모, 적군을 격파하고 치안을 숙정(肅正)하며 주민을 보호하는 모습만 선전됐기에, 다수의 한국인은 전쟁의 현실을 몰랐다.
“우린 편안한 후방에 있기에, 전방의 현실을 모른다. 그렇기에 손쉽게 전쟁을 외칠 수 있지. 지금은 내가 군사에 대해 결단을 내리지만, 장차 네가 내려야 할 순간이 올 거다. 어떠냐. 이런 전쟁을 계속하고 싶으냐?”
“…….”
이진은 태자로서 시종무관에게서 유년군사교육을 받고, 육군대학에서 청강하며 체계적인 군사교육을 받은 바 있었다. 육군대학 어학우(御學友)가 바로 현 참모본부 작전과장 홍사익 부령과 러시아 전선에서 활약한 김좌진 부령이었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홍사익과 김좌진으로부터 전쟁에 대한 보고를 들었지만, 이런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너도 잘 알고 있는 김좌진 부령의 활약상을 보면.”
이선은 마치 이진의 생각을 꿰뚫어 보듯이 말했다.
“대전쟁에서 시베리아 파병에 이르기까지, 가장 주목받는 청년 장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전대 지휘관으로서 유능하고, 최전방에서도 용맹과감하며, 부하들의 마음도 휘어잡고 있지. 세운 훈공도 혁혁한데다 상부에서도 높이 평가해서, 30대에 장성도 가능하단 말이 나올 정도야.”
대한제국 군사 프로파간다에서 김좌진은 위대한 전쟁영웅으로 표상되어 있었다. 32세에 육군 부령까지 진급한 엘리트, 최전방에서 숱한 공훈을 세운 용사, 더욱이 6척 1촌 5부(약 185cm)의 장신에서 나오는 위압감은 전쟁영웅으로 표상하기에 최적이었다.
“그런데 김좌진에 대한 현지의 평판은 어떤지 아느냐? 아무르강의 폭군이다. 김좌진이 이끄는 특전대는 빨치산 토벌에 특화되어 있는 부대다. 아군에게는 관대해도, 적으로 간주하는 자에게는 절대로 살려 두질 않는다지. 특전대가 파괴한 마을, 죽인 적의 수가 셀 수 없이 많다. 그중에는 본래 적이 아니었던 자들도 있었겠지.”
이 시대에 초토화 작전, 가혹한 토벌은 사령부에서 칭송받을 일이지 비난받을 일이 아니었다.
‘100명의 빨치산을 사살했다고 하면, 그중에 상당수가 양민일 것도 각오해야 한다.’라는 말이 공개적으로 나올 정도였다.
“나는 그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유럽에서는 유례없이 참혹한 대전쟁이 벌어졌다. 우리는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젊은이들을 유럽의 전장까지 보냈고, 그들은 전장에서 살육의 논리를 배웠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그러므로 적은 죽여야 한다. 대서양에서 태평양에 이르기까지 이런 흑백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니콜라옙스크에서 학살을 저지른 자들도 이 시대가 만들어 낸 괴물이지.”
대전쟁이 만든 극단의 시대는 유라시아 전역을 관통하고 있었다. 한국은 멀리 떨어져 있어 호황의 무풍지대에 있었다지만, 지옥의 전쟁터에서 돌아온 군인들은 극단주의 논리를 내면화했다. 오직 그들만이 전쟁의 참모습을 알고 있었다.
“내가 늙어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나는 이런 증오와 학살의 악순환이 이제 멈췄으면 좋겠다. 유럽에선 총력전을 내면화한 세대가 정점에 오를 시기, 향후 20년 내에 더 끔찍한 대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 그때 대한은 어떤 사람들이 통치하고 있을까?”
대한제국은 조선의 전통을 계승해 군부의 문민통제가 확고한 나라였다. 하지만 단기간에 큰 피해 없이 승리만 거듭해 왔기에, 군부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전쟁을 손쉽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당장 이 순간에도 소비에트 러시아와 일전을 벌여야 한다고 외치는 여론이 대세가 아니던가.
“물론 우리 동포를 해친 학살자는 결코 용서할 수 없고, 반드시 처단되어야 한다. 하지만 정치적 해결책을 먼저 도모해 보고 싶구나. 너도 내 뜻을 따랐으면 한다.”
말없이 부친의 말을 경청하고 있던 이진은, 고개를 숙였다.
“소신은 삼가 부황 폐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 * *
전쟁은 미친 짓이다. 하물며 광활한 러시아 극동에서 벌이는 전쟁은 훨씬 더 미친 짓이다.
이선은 그렇게 확신했다.
현실주의자의 문제점은, 상대방도 현실주의자라고 생각하기에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지 않으리라는 계산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현실적인 판단을 하지 않으며, 1914년 이후 극단의 시대에서는 이성보다 광기가 더 강한 시대였다.
대한제국과 소비에트가 ‘합리적인’ 판단으로 완충국인 극동 공화국 수립에 합의했을지라도, 이를 깨부수려는 시도는 양쪽 모두에 있었다.
“멸적(滅敵)! 북진(北進)!”
“아라사 적색분자를 타도하자!”
“대한 동포를 학살한 빨갱이들을 토벌하자!”
광무 25년 6월 5일 일요일.
흥경절을 하루 앞두고 경운궁과 제국의회에 인접한 황성광장 일대에 인파가 몰려들었다.
고종 태황제의 국상 기간이라 대부분 하얀 상복을 입고 있었지만, 이들이 들고나온 표어는 상복과 어울리지 않게 강경하기 짝이 없었다.
“국민 여러분! 대한의 동포들, 한민족 형제들이 극악무도한 과격파 적색분자들에게 학살당했습니다. 대한이 이러한 모욕을 참을 수 있겠습니까!”
“없소! 절대로 없소!”
“빨갱이들은 상종이 불가능한 종자들입니다! 러시아 황제 폐하께서 무참히 시해당하고, 애국자들은 반동으로 몰려 박해받고 있습니다! 이 악랄한 종자들을 타도하지 않으면, 지금 러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일들이 동아, 아니 대한에서도 벌어질 수 있습니다!”
“타도하자! 타도하자!”
“내일은 황제 폐하께서 고구려 계승의지를 만방에 천명하신 흥경절입니다! 고구려와 발해의 고토를 수복하기 위해선, 흑룡강(아무르강)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멸적! 북진!”
“멸적! 북진!”
“황제 폐하께서 지엄하신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대한국군은 과격파 적색분자를 토벌하고, 원동(遠東)에 러시아 정통 정부를 재건할 것입니다!”
“대한국 만세! 대황제 폐하 만세!”
대한제국 역사상 찬전 시위가 이토록 크게 일어난 적이 없었다. 재향군인회 퇴역군인들이 중심이 되어 시작된 찬전 시위는 일반 대중까지 속속 참여했다.
정부와 의회도 깜짝 놀라 상황을 지켜봤다.
“젠장, 배후가 누구야? 아직도 제국당 무리가 남아 있었나? 아니면 개화당 우파인가?”
경운궁의 이선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배후 타령을 했지만, 예전에 개화당이 즐겨 하던 관제시위도 아닐뿐더러 특정 정파의 배후조종 같은 건 없었다.
이는 마치 1914년 여름 유럽의 뜨거운 열기를 떠올리게 했다. 전쟁을 열광적으로 외치던 대중의 목소리.
대중이 정부보다 더 강경한 대외정책을 부르짖는, 새로운 대중정치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파시즘의 맹아(萌芽)까지는 아니더라도, 팽창주의와 대중주의가 결합하는 모습이 드러나고 있었다.
물론, 한국은 유럽과 다른 한국만의 특수성이 있었다.
태황제의 국상을 맞아 경운궁 인근에는 초막을 짓고 애도하는 늙은 유림이 있었다.
“성상께서 계신 궁궐이 지척이건만 어찌 저리 시끄럽단 말인고. 대체 뭐라 떠드는 것이냐?”
“연해주에서 우리 백성들을 해한 아라사 과격파 정권에 전쟁을 선포하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무엄한 놈들을 봤나? 국상 기간에 전쟁을 하자니, 제정신이란 말이냐?”
80세의 노유학자 간재 전우는 제자들의 부축을 받으며 찬전 시위대를 향해 나아갔다. 여전히 상투를 틀고 갓을 쓴 채 흰 상복을 입은 유림들이 등장하자 시위대도 외침을 멈췄다.
“성상께서는 천붕(天崩)을 겪으시고 국상의 의무를 다하고 계시거늘, 어찌 전쟁을 함부로 입에 담는단 말인가? 국상 중에 전쟁을 하라니, 어찌 신하된 자로서 성상을 그릇된 길로 떠민단 말인가! 그대들은 군주도 아비도 없단 말인가?”
전우는 80이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시위대를 향해 목청을 높였다.
“선생, 우리 동포가 외적에게 피살당했는데도 한가로운 소리를 할 때입니까!”
“아라사가 대한을 침략했다면 응당 맞서 싸워야겠지만, 연해주가 아령(俄領)이지 대한의 영토라더냐! 아무리 아라사 적당(賊黨)들이 제 군주를 시해한 불측한 역적들이라지만, 대한이 공격하여 전쟁을 벌이면 더 많은 우리 백성이 해를 입는 게 아니더냐!”
노유학자의 꾸짖음에 시위대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지만, 전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신하된 도리로 성상께서 계신 궁궐에 떼로 몰려와 전쟁을 하자고 외치는 일 자체가 불측한 일이다. 하물며 국상 기간에 이 무슨 무례란 말이냐! 썩 물러나지 못할까?”
재향군인회가 주축이 된 우익 성향의 시위대는 거칠 것이 없는 자들이었지만, 태황제의 삼년상을 치르는 노유학자를 상대로 싸울 정도는 아니었다. 전우를 따르는 제자만 해도 수천이었다.
“오늘은 이만하고 물러납시다. 다음 주말에는 탑골공원에서 모입시다, 동포 여러분!”
“호오, 그 노인네가 그리 말했단 말인가.”
이선은 황성광장에서 있었던 일을 듣고 빙긋 웃었다.
‘과연, 국상 기간에는 방어전이라면 모를까 전쟁을 하는 게 법도가 아니지. 명분으로 내세우기에 적절하군.’
전례 없는 찬전의 분위기 속에서, 정부와 의회의 목소리도 점점 더 강경해졌다. 물론 최종결정은 황제의 몫이었지만, 정부 및 의회에 대립각을 세워가며 정책을 추진할 순 없었다.
‘새로운 출구전략을 만들어야겠군.’
이선은 전쟁을 원치 않았지만, 군사적 조치를 취할 필요성은 느꼈다.
“각국 대사관에 전문을 넣도록.”
6월 15일, 국무회의.
“폐하, 속히 군사적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소위 극동 공화국은 모스크바의 괴뢰라는 게 분명합니다. 앞으로 국가로서 존속할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소비에트 정권이 폴란드와의 전쟁으로 유럽에 발목이 잡혀 있을 때, 연해주를 확고하게 장악해야 합니다.”
정부와 군부가 ‘민심을 등에 업고’ 한목소리로 연해주 점령을 주창하자, 이선은 헛웃음을 흘리면서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어찌 태황제의 국상 중에 전쟁을 할 수 있겠소? 짐에게 불효하다는 악명을 얻게 할 생각이오?”
국상 중에 군주가 전쟁을 한다는 건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유학을 익힌 대신들은 차마 반박하기 어려운 논리였다.
사전에 이선과 밀담을 나눈 총리 이상설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고개를 숙였다.
“황제 폐하의 지극한 효심을 신등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하오나 이는 전쟁이 아니라, 대한의 안보와 국민을 지키기 위한 특수 목적의 군사작전입니다.”
“그러하옵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수만의 백군 잔당이 남아 있습니다. 이들을 국군의 후원으로 다시 재무장시키고, 연해주의 통치를 맡기시지요.”
“남러시아군 6만 병력과 흑해함대가 도착하면, 극동의 세력균형이 바뀝니다. 이들은 더 밀릴 곳도 없으니, 필사적으로 연해주를 지키려 할 겁니다.”
“국군을 추가 파병할 필요도 없습니다. 백군과 힘을 합치면, 현재 연해주에 주둔하는 병력으로도 충분합니다.”
백군을 내세우자는 작전에 이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역시 사전에 군무대신 이동휘, 참모총장 노백린과 논의한 바였다.
이선은 다음으로 외무대신 이승만을 향해 물었다.
“주변국의 반응은 어떻소?”
“일본은 개입을 지지한다고 합니다. 블라디보스토크, 니콜라옙스크, 캄차카에 병력과 함대를 증파하겠다고 했습니다. 대한이 연해주 점령을 맡으면,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호오, 일본이 웬일로 순순히 연해주 점령을 양보한다지?
“정부와 해군이 결국 육군을 눌렀나 보군.”
대신들은 반가워했지만, 이선은 일본의 노림수를 짐작했다.
‘동양의 영국’을 지향하는 일본 문민정부는 더 이상 대륙에서 전쟁을 일으켜 피를 흘리길 원치 않았다.
‘러일전쟁에서 피를 흘린 건 일본이지만 결국 수혜를 입은 건 한국이듯, 이번에는 한국이 피를 흘리고 일본이 수혜를 입길 바라는 거 아닌가?’
물론 이선은 러일전쟁 직전의 일본 군부처럼, 러시아를 상대로 국운을 걸고 총력전을 벌일 생각 같은 건 조금도 없었다.
“무엇보다 미국의 반응은?”
“우드 대통령은 소비에트 정권을 결코 승인할 의사가 없으며, 소비에트가 태평양으로 나가는 길을 봉쇄하길 원합니다. 대한이 연해주를, 일본이 캄차카를 점령하고, 새 러시아 정부를 수립하면 승인하고 지지할 의사가 있다 합니다.”
역사의 변화가 동양 정세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원역사에서는 미국이 일본의 노골적인 야욕이 드러나는 극동 괴뢰정권 시도를 방해했지만, 변화한 역사는 오히려 개입을 원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러시아 내전 개입에 반대했던 윌슨, 고립주의자였던 하딩과 달리, 변화한 역사의 신임 대통령 우드는 러시아 봉쇄를 원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념적인 문제도 있지만,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적극적 개입주의 대외정치관을 계승한 우드는 러시아 세력의 태평양 진출을 용인할 생각이 없었다.
루스벨트가 일본과 손잡고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려 했듯이, 우드는 한국과 손잡고 소비에트의 남하를 저지하길 원했다.
미국의 긍정적인 반응을 확인한 이선은, 연해주에 백계 위성정권을 설립하기로 결심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여전히 개입을 원하는지?”
“영국은 좀 태도가 애매합니다. 로이드조지 내각이 유화정책으로 전환해서, 소비에트 정권과 새로운 무역조약을 체결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는 최대한 소비에트의 힘을 빼놓기를 원하며, 백군이 극동에서라도 계속 싸울 수 있다면 환영하는 입장으로 보입니다.”
“흠, 좋소. 그럼 결단을 내려야겠군.”
일전에 한국이 내전에 개입하길 원했던 영국과 프랑스는 애매한 태도로 바뀌었지만, 소비에트 러시아의 힘을 빼는 걸 싫어할 리 없었다.
국내외적 정세와 대책을 분석한 이선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1. 극동 공화국에서 아무르강 이남의 연해주를 분리하는 계획에 착수한다.
2. 단, 어디까지나 이는 연해주 주민의 자발적인 희망이라는 형식을 취해야 한다.
3. 연해주 정부 수립, 군대 편성, 교전 모두 백계 러시아 주민들과 백군이 주도하는 형태가 되어야 하며, 새 연해주 정부가 대한제국 정부에 지원을 요청한다.
4. 증파는 당분간 배제하고, 대한국군 연해주 주둔군이 현재의 위치를 수호한다.
5. 작전지역은 아무르강 이남 연해주만을 대상으로 하며, 서로는 하바롭스크에서 동으로는 니콜라옙스크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6. 연해주 내 파르티잔 토벌은 백군에게 맡기고, 대한국군은 보조적인 역할을 맡는다.
7. 대한국군이 아무르강을 건너 인민혁명군을 선제공격하는 것은 엄금한다. 오직 적의 공격이 있을 경우에 반격을 허용한다.
8. 소비에트 러시아에 대한 공식적인 전쟁이 아닌, 연해주 지역에 한정한 특수한 목적을 지닌 군사작전이다.
‘광무 25년 연해주 특수군사작전(特殊軍事作戰)’으로 명명된 계획안이 확정되었다.
“광무 25년 특수군사작전은 6월 25일을 기해 실시할 예정입니다.”
“좋소. 만반의 준비를 하여 작전을 성공시키도록 하시오.”
“예, 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