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혁명의 시대 3부-137화 (785/812)

3부 133화 진실과 거짓

워싱턴 회의의 어느 순간부터, 회의를 임하는 미국의 자세가 크게 바뀌기 시작했다.

일본에 대한 압박의 강도가 더 강해졌고, 한국의 입장을 전향적으로 고려했다.

한국 대표단은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성상께서 동청철도 이권을 미국과 공유할 수 있다고 훈령을 내리셔서 그렇겠지요?”

“물론 그렇겠지요. 생각보다 효과가 좋군요.”

“어지간히 원했던 모양입니다.”

한국 대표단은 미국의 전향적인 태도가 동청철도 운영권 공유와 만주-연해주 이권의 분배 덕이라고 생각했다. 공개회의라는 장막의 바깥에서 이뤄진 일은 극소수의 인원만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김유진이 맥아더에게 전달한 문서, 즉 이선이 백악관에 보내고자 했던 문서의 내용은 대관절 어떤 것인가?

「육군대신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 군신을 행리(行率)하여 성황성공(誠惶誠恐)하옵고, 삼가 소신은 제국의 지나(支那,중국)에 대한 적극적 근본 정책에 관한 건을 아뢴다.」

「소위 민절(閩浙)이라 하는 곳은 복건과 절강이며, 인구는 많으며 물산이 풍부하다. 원료 생산지와 시장으로서 중국 어디에도 그에 비할 곳이 없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그 부의 원천을 개척하여 제국의 영구한 번영을 배양시키고자 한다.」

「우리의 대만 경영은 지나 대륙으로 향하는 창끝이자, 남양과 인도로 나아가는 발판이다. 바다를 통해 북으로는 민절과 접하며, 남으로는 루손(필리핀)을 접한다. 대만을 통해서 제국은 동서남북으로 뻗어 나갈 것이다.」

「지난날의 일로(러일)전쟁은 실제는 일지(일중)의 전쟁으로서, 장래 지나를 제어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미국의 세력을 타도해야 할 것이니 일로전쟁과 대동소이하다. 그리하여 지나를 정복하길 원한다면, 우선 민절을 정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계를 정복하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먼저 지나를 정복해야 한다.」

「반드시 적극적으로 민절에 있어서의 이권을 강제로 취함으로서, 이권으로서 무역을 배양해야 할 것이다. 이는 지나 공업의 발전을 억제할 뿐만 아니라 구미 세력의 동점(東漸)을 회피하게 할 것이며, 방책의 우선으로서 계획의 최선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대(對)민절권리가 진정 우리 소유로 돌아간다면, 민절을 근거로 하여 무역의 가면을 쓰고 지나 사백여 주를 풍미(風靡)하여, 전 지나의 이권을 확취(攫取)하여 부의 원천으로 인도 및 남양(남태평양)의 각 섬들, 나아가서는 중서아시아 및 유럽을 정복하는 자원이 되도록 우리 야마토 민족이 아시아 대륙에서 보무(步武)하기 위한 제일의 대관건은, 민절의 이권을 장악함에 있다.」

「조선은 그간 일본의 동맹을 자처했지만, 실상은 배은망덕하고 교활한 적이다. 일본남아의 피가 무수히 흐른 요동과 만주는 조선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쟁취했다. 이제 조선은 연해주와 시베리아까지 그 촉수를 뻗고 있다.

조선과의 동맹 종료는 바람직한 일이다. 언젠가 조선은 동아(東亞)의 패권을 두고 반드시 격돌할 것이며, 압도적인 무력으로 제압해야 한다. 그렇기에 결코 육군의 군축은 있어서는 안 된다.」

「다행히도 적로(赤露, 적색 러시아)의 힘이 쇠하여 동아에 진출할 힘이 없다고는 하나, 아직 그 유용함이 남아있다. 바로 적로를 이용하여 조선을 견제함이다. 러시아 세력의 동진은 제어해야 하나, 우리는 별도 기밀의 수단을 가지고 적로와 제휴하여 조선 세력의 증장(增長)을 막고, 우리가 지나 대륙에서 이미 얻은 권리를 옹호해야 한다.」

「장차 일어날지도 모를 유럽전쟁의 때에, 미국이 뒤에서 조선과 통하여 우리나라의 대(對)지나 행동을 견제하고자 한다면, 미국과 일전을 벌임으로써 지나 및 세계에 경고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미국에는 태평양 함대가 있다. 우리 쓰시마 및 지시마(千島,쿠릴)와는 일의대수(一衣帶水)의 거리에 지나지 않고, 아침에 출발하여 저녁에 이르게 될 것이다. 우리는 강력히 해상권을 장악하여, 미국이 일본 근해에 결단코 진입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기에 결코 해군의 군축은 있어서는 안 된다. 워싱턴 군축회의에서 미국의 뜻대로 놀아나면 안 될 것이다.」

「메이지 대제의 유책(遺策)인 제1기 대만의 정복, 제2기 러시아의 격퇴는 모두 실현되었지만, 제3기인 민절에 진출하고 조선을 굴복시켜, 마침내 제4기인 지나 전토를 정복하여 동양 및 아시아 전체로 하여금 제국에 외복(畏服)하여 그 기세를 우러러보게 하려던 대업은 아직 실현이 요원하니, 이는 모든 신하들의 죄이다.」

「아무리 미국 해군이 강대하다 하더라도, 한국 육군이 정예하다 하더라도, 중국 군병의 수가 많다 하더라도, 러시아 군병이 위협적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메이지 대제의 유책을 완성해야 한다.」

······ (후략)

- 다이쇼 11년(1922) 5월 27일.

육군대신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가 궁내대신 마키노 노부아키(牧野伸顕)에게 적극정책의 상주를 청하는 서한.

* * *

“폐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감히 여쭙고자 하옵니다. 이와 같은 극비문서를 대체 어디서 확보하셨는지요?”

소위 ‘다나카 상주문(田中上奏文)’을 읽던 제국익문사 독리 이회영은 깜짝 놀라 이선에게 물었다.

사본이라고는 하나, 상주문은 일본 군부의 가장 내밀한 생각이 담겨 있었다. 회람(回覽)인원도 극소수였다.

연명으로 회람했다는 이들도 육군의 핵심인사들이었고, 의외인 건 이미 쿠데타 사건에 연루되어 정계에서 완전히 은퇴하고 칩거 중인 육군과 조슈벌의 대부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이름도 있었다. 그만큼 육군의 총의(總意)를 의미했다.

‘이 정도 거물들 사이에 대한의 밀정이 있단 말인가? 정녕 익문사도 알지 못하는 성상의 정보기관이 있는가?’

이회영이 예전부터 품고 있던 의문, 최상위 정보기관인 익문사도 알지 못하는 놀라운 기밀을 황제는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의문의 해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어렵게 확보할 필요가 있나? 짐이 쓴 건데.”

“······ 예?”

“짐이 작성한 문서라고. 다나카 상주문이 아니라 이선 상주문이 되어야겠지, 하하.”

이회영이 황당한 듯 말을 잃자, 이선은 부연설명을 했다.

“물론 완전히 창작에 근거한 건 아닐세. 짐이 소설가도 아닐 진데 말이야. 다나카 대장은 육군과 조슈벌의 우두머리로 일본의 팽창정책을 대표하네. 아무리 육군과 조슈의 힘이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다나카는 무시 못 하지.”

다나카 기이치는 ‘러시아통’으로 불리는 일본 육군의 전략가로, 군부의 요직을 역임하다 하라 내각에서 4년간 육군대신으로 재임했다.

다나카는 육군과 조슈벌의 지도자였다. 일본의 정책이 북수남진 해주육종으로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다나카 개인의 힘은 여전히 막강했다.

그 이유인즉, 다나카는 재향군인회를 조직하여 퇴역군인들을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삼았다. 일본의 호전적인 여론은 퇴역군인들이 주도했고, 이들을 조종하는 인사는 다나카였다.

실제로 다나카는 이러한 힘을 토대로 정계에 입문, 총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원래 위서(僞書)라는 건, 적당한 진실과 거짓을 섞어줘야 효과가 극대화되는 법이라네. 상주문의 내용은 상당 부분 진실일세.”

원역사에서, 다나카 기이치는 이와 유사한 ‘다나카 상주문’을 1927년 히로히토에게 상주했다고 알려져 있다.

만몽(滿蒙) 패권을 토대로 장차 중국 전역을 지배하자는 것으로, 21세기 이선우의 기억이 있던 시절 상주문을 꼼꼼히 읽어본 바 있었다. 이선은 옛 기억을 되살려, 이를 토대로 ‘창작’했다.

‘뭐, 원역사에서도 위작 여부가 있으니, 여기선 내가 확실하게 위작을 만들어 주지.’

실제 다나카 상주문은 중국에서 확보하여 공개했고, 일본은 위작이라고 부정했지만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이 정말로 발발하면서 진실로 굳어져 버렸다. 미국에서는 다나카 상주문을 일본판 ‘나의 투쟁’으로 규정했다.

위작 여부가 의심되지만, 상주문을 다나카 본인이 작성하지 않았더라도 일본 육군 내부의 팽창주의자가 작성했을 가능성이 컸다.

“폐하, 황공하오나 한 가지 더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네. 경과 짐 사이에 감출 게 뭐가 있겠나?”

“30년 전 러시아 황태자 암살 미수 사건 때도, 폐하께서 손을 쓰신 건지요?”

이선은 오래전 기억, 1891년 니콜라이 황태자 암살 미수사건, 즉 오쓰 사건을 떠올렸다.

“짐이 니콜라이에게 조언을 해주긴 했지. 야마가타로 대표되는 일본 군부 강경파들을 억제하려고. 하지만 아예 근거 없는 건 아니었네. 야마가타의 주권선과 이익선 정략은 실제로 조선과 청국, 러시아를 겨냥한 것이었으니까.”

한 광인의 테러에 불과했던 사안을, 이선은 일본 정부 내부의 팽창론과 연결지어 러일관계를 악화시키고, 팽창주의자들을 실각시켰다.

그야말로 남의 칼을 빌려 살인하는, ‘차도살인’의 계책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세. 짐이 구체화하긴 했지만, 요리의 재료는 일본이 제공한 거지. 짐은 재료를 가공하고 양념을 쳐 요리해서 손님에게 제공하는 거고. 맛의 판단은 손님이 내리는 거지. 재료가 좋든, 요리가 훌륭하든, 손님이 만족하면 그만이거든.”

이선은 재료를 토대로 요리를 만들어 미국인이란 손님에게 제공했을 뿐이었다. 현지인 입맛에 맞도록 친절하게 ≪Tanaka Memorial≫이라는 영문 번역과 주석까지 곁들어서.

맛의 판단은 손님의 몫이었다. 그들에겐 맛이 중요한 거지, 요리사가 누구냐는 중요하지 않을 터였다.

“미국이 순순히 이 내용을 받아들일까요?”

“그건 짐도 장담 못 하겠군. 그래서 하나를 추가로 더 배달해 줄 용의가 있네. 좋은 음식에는 좋은 술도 있어야 하는 법. 미국이 금주법 때문에 고생이라니, 술도 곁들여 줘야지.”

이선의 선물은 아직 남아 있었다.

* * *

주미한국대사관, 대사 별저.

“오늘은 어떤 술로 드릴까요, 뉴욕에서 오신 신사님?”

“당신네들이 좋아하는 폭탄주. 위스키와 맥주 비율 조절 잘하시오. 지난번엔 숙취로 고생했거든.”

“이거야 원, 제가 바텐더도 아니고. 금방 한 잔 만들어서 올립지요.”

이날의 손님은 한국 대사관의 단골이나 다름없는 인물 – 전 해군차관 프랭클린 루스벨트였다.

바텐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건, 물론 루스벨트의 ‘친구’ 주재무관 김유진 부령이었다.

“주문하신 폭탄주입니다, 손님.”

막상 ‘폭탄주(bomb shot)’가 나오자, 루스벨트는 잔을 물끄러미 쳐다만 볼뿐 들이키지 않았다.

“비율 조절 잘했습니다. 걱정 말고 드시죠.”

“당신, 워싱턴에 폭탄을 떨어트렸더군.”

루스벨트의 말에 김유진은 능글맞게 웃었다.

“제가 폭탄주를 잘 만들긴 하죠. 한국식 폭탄주는 기원이 불분명하긴 한데, 이미 조선에서도 막걸리와 소주를 섞어 마시는 혼돈주가 있었다고 하지요. 하지만 확산된 건 대전쟁기 동부전선입니다. 러시아군이 보드카에 맥주 섞어 마시는 걸 보고, 한국군은 배급받은 소주에 맥주를 섞어 마셨죠. 추운 러시아에서 마시는 폭탄주 한 잔에 추위도 녹아내리고, 용감해지죠. 사기 유지의 숨은 공신이랄까요?”

“이보시오, 킴 중령······.”

“저는 미국인 취향에 맞게 위스키와 맥주를 섞었는데, 미국인들도 엄청 좋아하지 뭡니까! 한국식 폭탄주를 금주법의 나라 미국에 전파한 데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신명 나게 폭탄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김유진을 보면서, 루스벨트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서 맥아더 소장에게도 폭탄을 선물한 거요?”

김유진은 대단한 비밀을 말하듯,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였다.

“이건 비밀입니다만, 그분이 애연가로만 알려져 있는데 사실 술도 좋아합니다. 금주법 시대에 모범적인 군인상이 못되죠.”

“허! 맥아더, 아니 당신이 떨어트린 폭탄 덕에, 백악관과 군부가 난리가 났소.”

“그렇습니까? 전 금시초문입니다만?”

김유진이 계속 딴청을 피자, 루스벨트는 벌컥 폭탄주를 들이켰다.

“어떻습니까, 폭탄주의 맛이?”

“제기랄, 지랄같이 짜릿하군. 이 망할 놈의 금주법.”

“어휴, 점잖으신 분이 욕하시기는.”

“당신도 국가가 강제로 술 못 마시게 하면 입이 험해지지 않을까?”

“아, 그건 인정합니다.”

루스벨트는 언제 욕을 했냐는 듯, 곧바로 정색을 했다.

“대체 맥아더에게 폭탄을 선물한 저의가 뭐요?”

“아니, 전 정말 모르는 일이라니까요. 제가 그분에게 진급기념으로 술 좀 대접해드렸기로서니, 이렇게 추궁받을 일입니까? 금주법 위반 단속 나온 경찰도 아니고.”

“농담은 여기까지. 난 지금 진지하오.”

루스벨트의 정색에 김유진도 능글맞은 웃음을 거두었다.

“제가 대답해 드릴 의무가 있을까요? 손님께서는 지금 평범한 민간인 신분이십니다만. 애초에 어떻게 민간인에게 정보가 흘러들어 갔는지 모르겠군요.”

“내 전직을 잊어버린 모양인데, 난 얼마 전까지 해군부 차관이었소. 당연히 해군부에 친구들이 많지. 당신이 넘겨준 선물이 해군 군축조약에도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으니까. 뭐, 혹여나 정보가 새는 건 걱정 마시오. 아는 사람은 극소수니까.”

“이런이런, 사적인 친분으로 민간인에게 극비정보를 흘리다니. 공과 사를 분명히 해야지요. 한국 같았으면 어림도 없는 일인데요.”

김유진이 손가락을 들어 좌우로 흔들었다. 루스벨트는 슬슬 술김이 오르고 열도 받고 있었다.

“근데 전 미국에서 유년기를 보내서 그런가, 미국인 정서에 익숙합니다. 그래서 저도 친구에게 선물을 드리고 싶군요.”

“이번엔 또 뭐요?”

김유진은 잘 포장된 술병을 선물했다.

“제 마음이 담긴 선물입니다. 루스벨트 전 차관께서 우리 대사관을 애용해 주시는 VIP이시니, 특별히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멀리 한국에서 왔지요.”

“어떤 폭탄인지 풀어 봐도 되겠소?”

“물론입니다.”

포장을 푸니 한국 전통주와 함께 루스벨트에게 보내는 서한이 있었다.

서한 내용을 읽어보던 루스벨트는, 당장 술 한 잔을 더 들이키고 싶은 심정이었다.

“당신, 대체 뭐요? 맥아더에게는 폭탄을 선물하더니, 내게는 금괴라도 선물하는 거요?”

“정치에는 돈과 사람이 필요하지요. 그걸 토대로 힘을 만드는 거고. 이 문서가 각하께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중령 말마따나 민간인인 내게 이런 선물을 해 주는 게 무슨 가치가 있소?”

“오, 말씀하신 대로 전 해군부 차관 아니십니까. 정권은 바뀌었다지만, 여전히 해군부의 높으신 분들과 막역하지요. 그분들에게 전달해주면 아주 좋아할 겁니다.”

“이것도 황제 폐하의 선물이신가?”

“황제 폐하께서는 각하께서 장차 미합중국의 지도자가 되어 세계사를 좌지우지할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하십니다. 각하와의 친분을 위해서 이 정도 선물이라면, 투자할 가치가 있지 않겠습니까?”

루스벨트의 나이 40세, 아직 젊다고 하지만 정치인이었다. 입에 발린 찬사에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서한 내용을 다시금 살펴보던 루스벨트는, 김유진에게 폭탄주 한 잔을 더 부탁했다.

“이 서한의 내용, 진짜요? 그렇다면 대체 출처가 어디요?”

“전 배달부입니다. 그것까지 파악할 위치에 있지는 않습니다. 맥아더 소장에게 드린 선물도 마찬가지죠. 저는 전달만 할 뿐, 판단은 받는 분의 몫이지요.”

루스벨트는 생각에 잠겼다.

중요한 건 미국의 국익과, 대선에서 참패하여 야인 신분이 된 자신의 정치적 명운이었다.

‘이 문서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미국의 향후 행보에 큰 도움이 될 터. 이 정보를 확보한 당사자가 내가 된다면, 해군부뿐만 아니라 이 정부에 막대한 빚을 안겨 주는 셈이지.’

김유진이 위스키와 맥주를 섞으며 설명했다.

“우리 한국인들은 섞어 먹는 걸 좋아합니다. 가장 대중적으로 먹는 국밥이라고 있는데, 밥과 국을 섞어서 먹지요. 비빔밥이란 요리도 여러 재료를 섞어서 먹습니다. 술도 그렇습니다. 막걸리와 소주를 섞고, 맥주와 소주를 섞죠. 이렇게 위스키와 맥주도 섞고. 섞으면서 융화가 되고 풍미가 완성되죠.”

곧 폭탄주가 완성되어 루스벨트의 앞에 놓였다.

“뭘 섞든 맛있으면 그만이지요. 국가의 일을 하다 보면, 진실과 거짓도 자연스럽게 섞이기 마련입니다. 중요한 건, 국익에 무엇이 도움이 되냐는 거지요. 겸사겸사 사익(私益)도 결부되면 좋겠지요. 한국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한미 양국과 우리 모두의 이익을 위하여, 건배하시지요.”

김유진의 건배사에, 루스벨트는 잔을 부딪치고 폭탄주를 들이켰다. 짜르르한 느낌이 목을 타고 흘러들어 갔다.

“과연, 이 맛에 섞는군. 잘 알겠소.”

작가의 말

??? : 일본이여, 음해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

한국 폭탄주는 이 세계에서도 나타나는군요.

실제 다나카 상주문(1927)은 위작이 의심됩니다만, 다나카는 아니어도 일본 내부의 핵심 정보를 알고 있는 군부 유력인사가 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걸 공개한 중국이나 미국 모두 진본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실제로 만몽을 장악하려고 만주사변 일으키고, 소련과 충돌하고, 마침내 중국 본토까지 침략했으니...

물론 이 세계관에선 이선이 정성껏 지어낸 위작입니다. 실제 다나카 상주문을 참고하되, 내용은 다릅니다.

오늘은 마침 하얼빈의거 113주년입니다. 안중근의사가 이토를 저격하였듯, 1922년 상해에서 김익상의사도 다나카를 저격하려고 했지요. 비록 거사는 실패했지만, 이 세계관에서는 이선이 총알 대신 펜으로 저격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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