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혁명의 시대 3부-138화 (786/812)

3부 134화 아시아-태평양 신질서

미국 정부에서는 육군부와 해군부가 확보한 두 가지 극비문서의 진위를 두고 논쟁했다.

“만약 이 문서 내용이 사실이라면, 일본의 야심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 기회에 일본의 발톱을 뽑아내야 합니다.”

“타나카 메모리얼, 이거 진본인 건 맞는 겁니까? 허황된 내용인데.”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허황된 망상을 갖고 있는 건 오래 전 일입니다.”

“맥아더 장군이 확보했다고는 하지만, 결국 출처는 한국이 아닙니까? 한국이 무슨 수로 일본 내부의 기밀사항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단 말입니까?”

“우리 정보부도 일본의 기밀정보를 탐지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한국은 이웃나라인데, 침투할 방법은 많을 겁니다.”

“글쎄요. 우리도 일본을 주적으로 상정하고 전쟁계획을 세우는데, 저들이라고 미국을 주적으로 상정하고 계획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아니, 이게 일반적인 전쟁계획입니까? 중국 대륙을 지배하고 태평양까지 진출하겠다는 일본의 야심이? 대체 일본에서 로비를 얼마나 받으셨기에 그런 말을 합니까?”

“뭐, 뭐요! 그러는 당신은 한국에서 로비를 얼마나 받은 거요!”

격렬한 논쟁은 인신공격으로까지 이어졌다. 육군부를 대표해 참석했으나 논쟁을 말없이 지켜만 보던 맥아더는 한심한 듯 파이프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한국이 흘린 역정보일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미일관계를 이간질 하려는 목적이 아니겠습니까?”

“설령 역정보여도 상관없습니다.”

단언하듯이 하는 말에, 좌중은 깜짝 놀라 맥아더를 쳐다보았다.

“아시다시피 제 부친께서 주일공사와 러일전쟁 관전무관을 역임했고, 본인도 부친을 보좌해 일본을 시찰했습니다. 군국주의 일본의 야심은 그때부터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러일전쟁의 결과로 대륙 진출은 실패했지만, 이들은 중국 정복의 야망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북쪽을 대신해 남쪽에서 침투하고 있지요. 타나카 메모리얼이 사실이든 아니든, 일본 군부의 사고방식은 저 문서와 매우 유사합니다.”

군부 내에서도 ‘아시아통’으로 알려진 맥아더의 말이니만큼, 그의 말은 무게가 있었다.

“애초에 군축회의의 목표는 영일동맹의 해체, 일본 해군력의 제한입니다. 장차 일본이 미합중국과 태평양의 패권을 두고 다투리라는 예상이 있었기에 제안한 것입니다. 일본은 궁극적으로 아시아에서 서양 세력을 몰아내기를 희망합니다. 한국이 흘린 역정보라고요? 잘됐습니다. 일본도 한국의 대륙정복 야욕을 운운하며 음해하지 않습니까. 동맹이었던 저 둘의 관계가 갈라지고, 서로 견제한다면 미국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 아닙니까?”

“나도 맥아더 소장의 의견에 동의하오.”

대통령이 동조의사를 보임으로써, 맥아더에 대한 신뢰를 분명히 했다.

“설령 일본 군부가 그럴지 몰라도, 현 일본 정부는 다릅니다. 이들은 진지하게 미국과 협조할 의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군부가 확보한 정보에 따르면······.”

“루스벨트 씨가 해군부에 흘린 정보 말이오? 도대체 민간인이 국가정책에 왜 관여하는지 모르겠군. 아직도 자기가 차관인 줄 아나.”

그동안 침묵하고 있던 부통령 쿨리지가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지난 대선에서 부통령 후보로 경쟁했던 장본인이었다.

“국익 앞에 여야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만큼 중차대한 사안이라고 여겨서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일본 해군은 전함비율 10대7을 고수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10대6을 받아들일 용의가 확실합니다.”

해군군축회의는 일본의 비율 10대7 고수로 합의가 지연되고 있었다. 미국은 일본이 10대7을 끝까지 고수한다면 어떻게 조약을 맺어야 할지를 놓고 대안을 논의하고 있었다.

“근데 그것도 한국발 정보 아니오? 도대체 한국이 모르는 건 뭐랍니까?”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한국 대표단이 말하는 것처럼 미국이 추구하는 세계질서에 협조한다는 의미 아닙니까. 만약 미일관계를 해치기 위한 역정보라면, 타나카 메모리얼에서 주장하듯이 끝까지 군축 반대한다고 흘렸겠죠.”

“하긴 그렇소만······.”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의도를 파악하고, 자국의 국익 확대를 계산했다.

“각하, 블랙 챔버에서 일본의 정보를 탐지하고 있습니다. 곧 좋은 소식이 있을지도 모르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지요.”

“좋소, 기다려 봅시다. 일본 정부가 10대6을 받아들인다면, 군부도 굴복하게 되겠지.”

국무부와 육군부가 공동으로 자금을 대고 있는 ‘블랙 챔버(Black Chamber)’는 미국 암호국이었다. 이들은 각국의 전신을 탐지해 암호 해석에 나섰다.

“각하, 블랙 챔버에서 일본 정부가 주미일본대사관에 보내는 훈령 암호문을 해독했습니다.”

“오, 그래! 뭐라고 합디까?”

「미국이 끝내 10대6 비율을 고수한다면 받아들일 것. 단, 태평양 군도의 새로운 요새나 해군기지 건설 금지를 조건으로 삼아야 한다.」

“과연! 정보가 사실이었군. 이제 일본을 확실히 압박할 수 있는 무기를 얻은 거요. 아주 잘했소!”

우드는 크게 기뻐하며 암호국을 치하했다. 일본이 결국 양보할 것이라는 정보를 얻었으니, 일본을 설득할 대안으로 반대조건을 내놓을 필요도 없었다.

“루스벨트 씨의 정보, 아니 한국의 정보가 사실이었군. 저들은 우리보다 먼저 일본 정부에 정보망을 꽂아 놓고 있었던 거요.”

“한국이 거듭 미국에 극비정보를 공유해 준 거지요. 한 가지 분명해진 건,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를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는 겁니다. 그를 위해선 일본을 얼마든지 저버릴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지요.”

“뭐, 그건 일본도 마찬가지긴 하지. 일본도 끊임없이 한국의 위험성을 경고했으니.”

“하지만 저들은 앞에서는 웃으면서 뒤로는 미국을 상대로 칼을 갈고 있었지요. 심지어 소비에트 러시아를 이용해 한국을 치겠다니, 이게 제정신입니까?”

“그럼 타나카 메모리얼도 사실이라고 봐야겠지.”

한국이 흘린 해군 정보가 암호문 해독을 통해 사실로 드러나면서, 한국이 흘린 또 다른 정보, 다나카 상주문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는 효과가 있었다.

“한 가지 다행인 건, 일본 정부, 특히 하라 총리를 비롯한 문민 정치인은 미국과 협조할 의사가 있다는 겁니다. 저들이 군부를 통제하고 있는 이상, 일본이 완전히 폭주의 길로 나아가지는 않을 겁니다.”

“해군 조약이 일본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겠군. 일본 정부가 군부를 얼마나 통제할 수 있는지. 만약 실패한다면, 그때는 태평양에서 전쟁을 준비해야 할 시기가 될 거요.”

미국은 긴장을 놓지 않았다. 워싱턴 회의 이후에도, 미국은 일본의 동태를 끊임없이 예의주시할 터였다.

* * *

“주력함 비율 10대6. 더 이상의 양보는 없습니다. 최소한의 성과라도 거두고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10대6을 받아들여야 할 겁니다. 만약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회의는 이대로 끝입니다.”

미국 전권대표 휴즈 국무장관은 일본 전권대표 가토 도모사부로 해군대신을 전에 없이 강한 어조로 압박했다.

미국은 정보의 우위를 통해 일본이 끝내 판을 깨트리지 않고 양보하리라고 확신했다.

정보가 새어 나갔을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지 않는 일본으로선 미국의 강경함에 손을 들어야 할 판이었다.

‘여기서 만약 회의가 엎어지면, 내각의 안위가 위태롭다. 아니, 일본의 안위가 위태로워진다. 미국과 건함경쟁을 계속한다는 건 미친 짓이야. 전쟁이라는 파멸을 향해 들어가느니, 차라리 내가 군부에 매국노라고 욕을 먹는 게 낫다.’

일본 전권대표단은 정부가 훈령한 10대6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터였다.

하지만 해군 강경파는 끝까지 10대7을 고수해야 한다고 우겼고, 쓰시마 해전의 영웅 도고 헤이하치로 원수까지 나서 가토를 압박했다.

호전적인 여론도 막대한 국민세금이 들어간 전함들을 지켜내라고 아우성이었다.

양쪽에서 압박을 받던 가토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그는 해군의 이익보다 정부, 아니 국가의 이익을 더 중시하기로 판단했다. 가토는 당대 일본에서 드물게도 대국적 판단을 중시하는 군인이었다.

“좋습니다. 주력함비율 10대6을 받아들이지요. 단, 이를 수락하기 위해선 조건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동경 110도 이동(以東) 태평양에 신규 요새와 해군기지 건설 금지. 특히 필리핀과 괌에 위협적인 해군기지가 건설되면 안 됩니다.”

일본은 태평양, 특히 괌에 미군 요새와 해군기지 건설되면 일본의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리라고 우려했다. 이 시점에서 일본 정부는 미국을 공격한다는 건 상상도 못 했고, 미국이 일본을 공격하는 상황을 우려했다.

이미 하와이와 마닐라에 해군기지와 요새를 완성한 미국으로서는 일본이 주장하는 태평양 신규 요새화 금지는 받아들일 용의가 있었다.

“뭐, 좋습니다. 평화를 위해서라면, 미합중국은 서태평양의 비(非)요새화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미국은 대단한 인심을 쓴다는 듯 받아들였다.

전략적 요충지인 괌을 요새화하지 못하는 건 아쉽긴 하지만, 마찬가지로 일본도 요충지인 사이판과 남양군도를 요새화하지 못할 터였다.

전시 대호황이 끝나고 1920년대 초 디플레이션에 직면한 미국 행정부는 재정지출을 아끼고 있는 상황이었다. 미국 국위의 상징인 전함도 포기한 마당에, 머나먼 태평양에 요새를 건설한다고 돈을 쏟아부으면 유권자들이 좋아할 리가 없었다.

“영국 대표단도 동의합니다.”

영국 역시 동경 110도라는 조건에서는 홍콩을 요새화할 수 없지만, 싱가포르는 요새화할 수 있으니 받아들였다.

“단, 비요새화 지역을 동경 108도로 수정하기를 희망합니다.”

일본이 제안한 110도에는 일본 조차지인 해남도(하이난)가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갔고, 필리핀과 홍콩이 포함되는 상황에서 해남도만 빠지는 건 문제가 있었다.

결국 논쟁 끝에 일본이 다시 양보, 동경 108도가 확정되었다. 일본도 일찌감치 해남도와 대만에 해군기지를 건설해 둔 터였다.

“대한제국은 앞으로도 건함경쟁에 나설 의사가 전혀 없으며, 군축조약은 5대 해군강국 간의 조약이 되어야 합니다.”

대한제국 해군대표 신순성과 안중근은 군축조약에서 한국이 빠지는 걸 관철시켰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모두 한국이 5대 해군강국에 비견되지 않는다는 데 동의했고, 일본도 결국 이를 받아들여야 했다.

“해군 군축조약 최종안을 확정합니다.”

8월 24일, 5대 해군강국 간의 합의가 확정되어 조약이 발표되었다.

1. 1922년 6월 1일부터 10년간 모든 주력함(전함 및 순양전함)의 신규 건조를 중단. 현재 건조 중인 주력함은 일제히 건조중단. 계획 중인 함선은 모두 폐기.

2. 주력함의 비율은 미국과 영국 각 10, 일본 6, 프랑스와 이탈리아 각 3.4.

2-2. 주력함은 표준 배수량 35,000톤과 구경 16인치 이하의 함포로 제한.

3. 항공모함은 27,000톤으로 제한되며 최대 구경이 8인치인 중포를 10개 이상 탑재 불가.

3-2. 단, 각 서명국은 각각 33,000톤의 배수 한도인 두 척의 기존 주력함 선체를 항공모함용으로 전용 가능.

3-3. 항공모함은 배의 배수량이 10,000톤 이상인 군함이며, 항공기의 진수 및 착륙 전용으로 건조. 따라서 10,000톤보다 가벼운 항모는 배수량 한도에 포함되지 않음.

4. 모든 군함은 최대 배수량이 10,000톤이고 최대 함포 구경이 8인치로 제한.

5. 순양함, 구축함, 잠수함 등 보조함 건조에 대한 제한은 없음.

6. 동경 108도 이동의 신규 해군기지 및 요새의 건설 중단.

······

대부분 미국의 요구사항이 관철되었지만, 몇 가지 사항은 각국의 의견이 받아들여졌다.

미국은 순양함과 구축함에도 제한을 걸려고 했지만, 영국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대신 보조함의 함포와 배수량에 제한이 걸렸다.

독일 잠수함대의 악몽을 겪은 영국은 잠수함의 완전한 폐지를 요구했지만, 프랑스의 반대로 아무런 합의 없이 무산되었다.

일본의 요구대로 서태평양의 신규 요새화 금지에 합의하고, 현상유지에 동의했다.

총배수량에 약간의 변화가 있어, 미국과 영국 55만 톤, 일본 33만 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18만 7천 톤의 전함과 순양전함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는 역사가 미세하게 변했기 때문이었다. 독일 대양함대가 자침하는 일이 없었기에, 각국에 분배받은 군함으로 인해 배수량이 늘어났다. 결국 분배된 독일 군함은 최신형 전함을 제외하면 대부분 스크랩 처리하기로 결정되었으니, 몰락의 운명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해군 군축회의가 원역사보다 6개월 늦게 개최되는 바람에, 몇몇 전함의 운명도 바뀌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실제 건조중이든, 계획상이든 폐기의 운명을 맞이한 주력함이 가득했다.

미국은 80만 톤을 폐기하고, 영국은 63만 톤을 폐기하며, 일본은 42만 톤을 폐기해야 했다. 3대국을 합쳐 145만 톤이 폐기처분이었다.

군축조약과 더불어, 회의에 참여한 열강 간의 마지막 합의가 이루어졌다.

해군조약과 달리, 이탈리아가 빠지고 동아시아 문제의 당사자인 한국이 참여한 조약이었다.

1. 미합중국, 대영제국, 프랑스공화국, 대일본제국, 대한제국은 동아시아 내에서의 상호권리 존중과 현상유지에 동의한다.

2. 각국은 더 이상의 영토 확장을 추구하지 않으며, 분쟁이 발생할 경우 상호 협의로 해결한다.

3. 각국은 중화민국과 대청국의 주권과 독립, 영토 보전을 보증한다.

4. 대청국을 구성하는 지역, 즉 만주, 몽골, 신강, 티베트는 중국과 구별되는 별개의 영역이며, 이들은 대청황제를 공동의 군주로 섬기되 민족자결의 원칙에 따라 자치정부를 구성할 권리가 있다.

5. 자유국가 설립을 희망하는 극동 러시아 인민의 의지를 존중하여, 민주적인 제헌의회 선거를 통해 정부가 선출된다는 전제하에, 프리모리예(연해주) 지역의 정부 구성권을 인정한다.

6. 소비에트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는 청국과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한국이 지역의 안정과 방위를 목적으로 만주·몽골·연해주에 우호적인 조언과 지도를 할 권리를 인정한다.

7. 제3국이 동아시아 역내의 정치적 변동 혹은 군사적 위협을 가할 경우, 각국은 공동으로 대응한다.

1922년 8월 22일, 5개국 전권대표가 서명함.

한국은 원하는 바를 거의 얻을 수 있었다.

3항과 4항을 통해 중국과 청국은 완전히 분리되었으며, 각 지방은 별개의 민족으로서 정부를 구성할 권리를 열강으로부터 확실히 공인받았다.

5항에서 프리아무르 임시정부 역시 민주적인 제헌의회 선거로 선출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소비에트 러시아로부터 분리되어 별개의 정부를 구성할 권리를 인정받았다.

6항은 ‘조언과 지도’라는 외교적인 수사를 달았지만, 대한제국이 만주·몽골·연해주에서 누리는 권익을 열강으로부터 실질적으로 승인받은 셈이었다.

7항은 ‘제3국’이라 지칭했지만, 사실상 소비에트 러시아를 겨냥한 5개국 협력체계를 의미했다.

이는 곧 한영일동맹을 대신해, 동아시아 5개국 안보협력체계가 성립되었음을 의미했다.

워싱턴 회의의 중대한 결과는, 유럽-대서양에 베르사유 체제가 확립되었다면 아시아-태평양에는 워싱턴 체제가 새로운 국제질서로 확립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대영제국의 세계 패권이 종식되고, 미국이 세계 문제에서 지도적 역할을 떠맡았다. 팍스 브리타니카를 대신할 팍스 아메리카나의 서막이었다.

비록 현시점에서는 오월동주일지라도, 미국의 주도하에 5대 열강의 협력으로 아시아-태평양의 신질서가 확립되었다.

대한제국은 이 신질서의 숨은 수혜자였다.

작가의 말

실제 워싱턴 조약과 몇가지 중대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동아시아 안보 협력체계는 완전히 새로운 판이고... (그런거 없었음)

미국의 역할이 훨씬 커졌으며... (20년대 미국은 고립주의로 복귀함)

중국 영토로 공인받은 만몽회장이 완전히 분리되었으며... (분리의 마지막 기회)

반소 백군정권이 세워졌으며... (일본의 시베리아 분리공작은 미국이 분쇄함)

특정 대륙국가의 만몽 지배력이 공인받음. (만몽을 향한 일본의 야심은 미국이 반대함)

??? : 역시 아메리카 코인 떡상할줄 알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