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혁명의 시대 3부-139화 (787/812)

3부 135화 일본의 경로(經路)

워싱턴 회의가 종료된 후, 각국의 대차대조표는 뚜렷했다.

최대의 승리자는 미국이었다. 미국은 파리강화회의에 이어 워싱턴 회의를 주도함으로써, 세계질서의 지도자로 떠올랐다.

“미합중국은 유럽과 아시아, 대서양과 태평양, 즉 세계에 평화를 정착시켰습니다. 새로운 국제질서에서 지난 대전쟁과 같은 참사는 결코 없을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다시는 우리의 아들들이 전쟁터에 나가는 일이 없을 것이라 약속드립니다!”

“평화의 지도자, 우드 대통령 만세!”

백악관은 워싱턴 조약 결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미국 국민 역시 환영의 뜻을 보였다.

당장 1922년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있는 공화당으로서는 중요한 치적이었다. 우드 행정부는 고립주의 여론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세계질서를 움직일 방안으로 평화를 내세웠다.

“워싱턴 군축회의는, 군비의 제한 및 축소에 대한 최초의 중요한 자발적 합의를 세계에 가져왔다.”

전임 해군차관으로 대전쟁기 미 해군의 확장적인 건함정책을 지휘했던 민주당 소속 프랭클린 루스벨트도 당적을 넘어 워싱턴 회의에 찬사를 보냈다.

공식적으로 루스벨트는 야인으로서 군축회의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지만, 중요한 정보를 해군부에 넘겨줌으로써 정부 인사들로부터 ‘초당적으로 국익에 협력하는 애국적 정치인’이라는 인상을 심어 주었다.

백악관의 공화당 정치인들도 루스벨트의 협력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루스벨트는 11월 중간 선거를 준비, 뉴욕의 연방 상원의원으로 정계에 복귀할 시동을 걸었다.

“우리는 미국과 패권을 균등하게 나눴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팍스 브리타니카의 종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대영제국의 영광은 영원하리라!”

영국 정부는 세계 패권을 미국에 양도했다는 걸 인정했지만, 영국의 해양 지배력은 확고하게 유지한다고 선언했다.

로이드조지 내각의 대외정책이 파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배상금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바이마르 공화국은 소비에트 러시아와 손잡을 기미를 보였고, 독일과 러시아의 결합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로이드조지가 밀어줬던 그리스는 동로마제국 재건을 외치며 야심차게 아나톨리아로 진격했지만, 튀르키예(터키) 대국민회의와의 전쟁에서 패퇴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놀랍게도 튀르키예는 오랜 숙적이었던 러시아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종교와 이념의 차이를 넘어 영국이란 공동의 적에 맞서기 위함이었다.

“에드워드 이놈, 어디 돌아오기만 해라. 다시는 사고 치지 못하도록 단단히 혼을 내줄 터이니.”

회의 결과와 무관하게, 조지 5세는 웨일스 공 에드워드의 귀국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겐 한국에 목줄이 잡혀 외교적 양보를 한 것보다, 태자가 타국 왕실에 무례를 끼친 것이 더 용서할 수 없었다.

공식적으로 ‘그 사건’은 어둠 속으로 묻혔기에, 태자를 교체하거나 하는 일은 없을 터였다. 하지만 조지 5세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후계자인 장남을 확실히 갱생시켜야 했다.

“워싱턴 조약의 결과로 일본제국은 미국과 영국의 뒤를 잇는 세계 제3의 강국으로 공인받았습니다. 합리적인 군축과 서태평양 지역의 비요새화 조치로 일본의 안보를 위협받을 가능성은 사라졌습니다. 이제 1년 예산의 3할을 건함으로 써야 하는 비상식적인 시대는 지났습니다. 바로 경제발전과 국민의 복지확대를 위해 쓰이게 될 것입니다.”

일본 정부도 워싱턴 조약의 성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문민 정치인들은 주력함 비율 10대6이란 결과를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제 과도한 건함 예산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 돈을 필요한 국내정책에 쓸 수 있었다.

‘미국과 영국의 뒤를 잇는 세계 제3의 강국’이란 건 대내외용 프로파간다였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에 협조하여 아시아-태평양의 2인자로 성장하는 길도 일본이 충분히 선택할 수 있는 경로(經路)였다.

총리 하라와 대장대신 다카하시, 문민정치인과 외교관들은 자신들이 옳은 선택을 했다고 확신했다.

* * *

“도대체 이번 회의에서 일본이 얻은 게 뭐란 말이오? 한국은 만주와 연해주의 지배권을 공인받은 것이나 다름없소. 하지만 우리는 산동을 토해 냈고, 일영동맹을 해체당하고, 황국의 국위를 상징하는 전함들까지 폐기처분하게 되었소!”

“이게 연약외교, 아니 굴욕외교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하라 총리와 가토 해상은 영미의 앞잡이인가?”

“하라는 물러나라! 내각은 총사퇴하라!”

일본이 얻은 장기적 이익은 생각하지도 못하는, 눈앞의 결과만 보고 흥분하는 군부와 우익들은 분노로 발광을 했다.

“여러분! 어찌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단 말입니까? 미국은 세계 제1의 경제대국입니다. 미국과 건함경쟁을 이어 나간다는 건 곧 파멸을 의미합니다! 정부는 파멸로부터 일본을 구한 것입니다!”

“국민에게 언제까지 희생만 강요할 생각입니까? 1년 예산의 3할이 건함 비용입니다. 군비를 다 합치면 5할에 달합니다! 이게 정상적인 나라입니까?”

“영미와 협력하여, 평화의 새로운 국제질서 위에서 경제발전에 주력해야 합니다! 일본은 군사력이 아니라 경제력으로 세계 강국이 되어야 합니다!”

정부와 의회의 합리적인 인사들은 워싱턴 조약의 결과를 지지했다. 의회는 여야를 막론하고 막대한 군비와 건함예산에 염증을 내고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군축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당시는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자유주의적 기풍이 한창 확산되는 시기였으므로, 정치인과 지식인은 정부의 조처를 옹호했다.

문제는 군부와 호전적인 여론의 반발이었다.

“해군 나리들, 이제 정신이 들어? 군축이란 된서리를 맞아 보니 어때? 우리 심정을 알겠나?”

“저 정치인과 관료란 놈들은 땅개고 물개고 다 재갈을 물려 사냥개로 쓰고 싶은 거야. 그것도 모르고 문민정부랑 짝짜꿍하더니 꼴 좋구만.”

육군은 해군을 비웃었다. 러일전쟁의 실패, 쿠데타 미수, 해주육종 북수남진 정책으로 육군은 거듭 군축을 겪어야 했다.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쓰시마 해전의 승리자인 해군에 돌아갔고, 해군이 야심 차게 8·8함대를 추진할 때 육군은 상비사단이 17개까지 감축되는 굴욕을 감내해야 했다.

육군이 마지막 기회로 여겼던 대전 참전과 러시아 내전 개입도 실패로 끝나면서, 이대로 해군에 잠식되는 것처럼 보였다.

“기껏 얻은 산동은 토해 내고, 태평양 섬 쪼가리 얻자고 해주육종 북수남진 운운한 건가? 한국은 만주와 연해주를 얻었는데?”

“이래서 강력한 육군이 필요하다니까! 한국이 저런 성과를 낸 것도 육군이 러시아에서 승리한 덕이 아닌가!”

총리와의 갈등으로 육군대신에서 물러난 다나카 대장이 지지기반인 재향군인회를 움직여 여론몰이에 나섰다. 육군으로선 해군이 비틀거리는 지금이 절호의 반격기회였다.

“다시없을 기회다. 굴욕외교를 불러일으킨 정부와 해군을 몰아쳐야 한다!”

자신의 이름을 빌린 상주서가 미국의 경계를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다나카는, 모처럼 얻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과연 타나카 메모리얼이 사실이었나 보군.”

“역시 일본 육군의 야심은 경계해야 한다.”

“일본 정부가 군부를 어떻게 통제하느냐에 따라 동아시아의 안보 지형이 바뀌겠군.”

조약이 체결되자마자 시작된 육군의 정치적 행보에, 미국은 더욱 다나카 상주서의 내용을 확신하게 됐다.

“저, 저 땅개들 신난 거 보소.”

“그런다고 해주육종 북수남진의 국책이 바뀔 줄 아나? 어림도 없는 소리.”

“제군, 하지만 지금은 육군과 손을 잡고 군축을 받아들인 정부를 비판해야 하지 않겠는가? 정치인과 관료 놈들이 영미의 앞잡이가 되어 감히 천황 폐하의 군대를 홀대하고 있지 않은가!”

“육군은 해군이 망하기를 바라는 놈들이야! 해군의 일은 해군이 알아서 해야지, 육군과 손을 잡으면 기껏 잠재워 놓은 저놈들 야욕만 살려 주는 셈이지!”

육군과 해군은 모두 문민정부에 불만을 품었지만, 합작하여 군부가 정부에 반격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기엔 일본 육군과 해군 사이 감정의 골이 너무나도 컸다.

“육군이 뭐라고 하든, 해군의 일은 해군이 알아서 한다.”

“하라는 결코 용서할 수 없다. 끌어내려야 해!”

“가토 대장도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해군을 대표하는 이가 어찌 해군의 이익을 저버린단 말인가?”

“다음 총리를 노리나 보지. 정치인 다 됐어.”

“더 이상 문민에게 맡기면 안 된다. 다음 총리는 반드시 해군에서 배출해야 한다.”

“도고 원수께서도 실망이 크시네. 국민적 영웅인 원수께서 나서면······.”

“원수께서 직접 정치를 하시진 않을 텐데.”

“해군의 총의를 모을 수는 있지. 도고 원수라면 황공하옵게도 천황 폐하를 움직일 수 있네.”

“그럼 차기 총리로는 야마모토 백작?”

“지멘스 사건으로 물러난 사람을 다시 부를 수야 있나. 비리의 책임자인데.”

“그래도 해군에 그만한 정치력을 가진 사람은 없지. 야마모토 백작과 도고 원수가 힘을 합쳐서 내각을 교체해야 하네.”

호랑이 없는 골에 여우가 설친다고, 해군 강경파들은 분수도 모르고 정치에 개입하려고 했다.

“나 역시 워싱턴 조약에 반대하고, 정치인들 하는 일이 심히 못마땅하긴 하지만, 천황 폐하의 군인이 칙유(勅諭)를 받은 총리대신을 끌어내리면 불경일세. 내가 해군을 대표해 내각에 엄중히 경고할 터이니, 귀관들은 맡은 바 임무에나 충실하게.”

해군 강경파의 제안을 받은 도고 헤이하치로는 딱 잘라서 거절했다. 도고는 워싱턴 조약에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냈지만, 존경받는 원로 군인으로서 정치에 개입할 생각은 없었다. 일본에 흔한 정치군인과의 차이점이었다.

“가토 대장은 국익에 근거해서 판단한 거네. 해군에서 총리를 선출한다면, 난 가토 대장이 차기 총리를 맡았으면 좋겠군. 귀관들은 쓸데없이 정치에 개입하지 말고 은인자중하게.”

지멘스 군수비리사건으로 실각했으나, 여전히 국가원로로 정치에 관여하는 전 총리 야마모토 곤노효에도 강경파의 제안을 거절했다. 오히려 가토 해군대신을 차기 총리로 밀겠다는 말에 질리고 말았다.

두 해군 원로가 강경파를 제압함에 따라, 해군 일각의 내각 교체 시도는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강경파도 정치 개입을 포기했다. 이미 육군이 쿠데타 실패로 얼마나 큰 타격을 입었는지 알고 있었기에, 쿠데타는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해군대신, 노고가 많았습니다. 제독이 나라를 위해 큰일을 했습니다.”

“불초소생이 워싱턴에서 끝까지 관철하지 못해 나라에 큰 혼란을 불러일으킨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해군대신의 고뇌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압니다. 군축은 피할 수 없는 과제였어요. 제독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라 총리는 귀국한 가토 도모사부로 해군대신을 환영했다.

“난 이번 회의로 대임을 다했다 생각하고 총리에서 물러날 생각입니다. 해군대신을 후임으로 천거하고자 합니다만.”

하라는 1885년 내각제 창설 이래 최장인 만 4년째 총리로 재임 중이었고, 장기집권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었다.

워싱턴 회의를 통해 새로운 국제질서 확립을 목도한 하라는 이제 대임을 넘기고, 후임 총리로 하여금 신질서에 협력하고 군부를 확실하게 통제하게 할 생각이었다.

원역사와 달리 하라는 암살의 운명을 피했지만, 워싱턴 조약 이후 극우파로부터 거듭 비난과 위협을 받고 있었기에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고 있었다.

“과분합니다. 소관은 정치경험도 없고, 건강도 좋지 못해서 총리직을 수행할 자신이 없습니다. 총리께서 계속 맡아 주십시오.”

“내 사임 의지는 확고합니다. 현재 정부와 군부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은 제독뿐입니다. 부디 총리를 맡아 주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내각의 2인자이자 재정 전문가인 다카하시 대장대신이 낫지 않겠습니까? 소관은 해군대신으로서 후임 총리를 계속 보좌하겠습니다.”

가토는 거듭 고사했다. 실제로 건강이 워낙 좋지 못했고, 총리를 맡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으음, 아쉽군요. 제독의 건강 문제가 정 그렇다면······. 정당, 원로 여러분과 의논해 보겠습니다.”

하라는 못 이기는 척 가토의 사양을 받아들였다.

그는 양식 있는 군인인 가토의 지지와 군부통제를 원했을 뿐, 후임 총리를 진짜로 맡길 생각은 없었다.

하라의 필생 소원인 정당중심 문민정치로 나아가는 상황에서, 정치경력이 없는 해군대장이 총리를 맡는 것은 모양새가 안 좋았다.

“다카하시라면 찬성이오. 경제 감각도 뛰어나거니와, 국제정세를 그만큼 잘 읽는 친구도 없어. 세계의 대세는 영미와 손을 잡는 거요. 워싱턴 조약은 아주 잘 맺은 거야.”

모처럼 원로로 자문을 받게 된 이토 히로부미는 워싱턴 조약을 적극 지지했다.

“감사합니다. 이토 공작께서 원로를 대표해 천황 폐하께 주청을 드리심이 어떤지요?”

“허, 언제는 원로의 정치 간섭은 사양이라더니?”

하라가 원로들의 정치개입을 막으려고 여러 수단과 방법을 강구했던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오해이십니다. 자질구레한 일들이야 저희 후배들이 맡지만, 총리 지명과 같은 중대 사안에는 원로께서 힘을 써 주셔야지요.”

이토는 헛웃음을 흘렸다.

‘능구렁이 놈. 군바리들이 다카하시를 반대할 테니까 방패막이로 원로를 내세우겠다 이거지.’

‘어르신, 거 마지막으로 나라를 위해 좋은 일 하고 가십시오.’

“좋소. 마쓰가타와 사이온지를 만나 원로의 총의를 모으지.”

이토는 속내야 어쨌건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하라-다카하시의 외교 정략을 지지하는 입장이었고, 과거에 야마가타한테 하도 시달렸던 만큼 군부가 정치에 개입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모처럼 원로의 영향력도 되살릴 수 있는 기회였다.

생존해있는 원로인 마쓰가타 마사요시와 사이온지 긴모치도 워싱턴 조약과 다카하시 후임 총리를 지지했다.

역사의 변화로 야마가타도 여전히 생존해 있기는 했지만 원로 지위를 박탈당하고 은거하는 상황이라, 아무런 영향력도 없었다.

“워싱턴 조약은 세계의 대세를 정확히 읽고, 일본이 새로운 국제질서에서 중요한 지위를 누리게 되었음을 상징하오. 이는 하라 총리의 혜안이고, 가토 해군대신의 공이오. 다카하시 대장대신은 일로전쟁을 승리로 이끈 숨은 공로자이자, 최고 경제 전문가요. 후임 총리로 이만한 인재가 없소이다. 이 늙은이는 원로의 총의를 모아, 삼가 황거로 나아가 천황 폐하께 대임의 주청을 아뢰었소이다.”

이토는 모처럼 공공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워싱턴 조약에 찬사를 보내고, 후임 총리로 다카하시 대장대신을 추천했음을 밝혔다.

“아니, 이토 영감이 아직도 살아있었나?”

“버젓이 살아서 정치활동하는구만.”

“하여튼 서양이라면 꼼짝 못 하는 새가슴 이토답군.”

“이토라면 영미에 무조건 굴종하겠지. 어쩌면 하라더러 굴복하라고 배후에서 조종했을지도 몰라.”

“팔순이 넘어도 여전히 막후정치인가. 하여튼 음흉한 늙은이야.”

여론은 간만에 모습을 드러낸 이토에게 부정적이었다.

진보적인 지식인들은 원로의 정치개입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겼고, 호전적인 인사들은 ‘새가슴 이토’가 무조건 해군 군축을 받아들이라고 조언했으리라 의심했다.

그런데, 상황은 일본의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전개로 나아가게 되었다.

작가의 말

김옥균 : 일본이 동양의 영국 노릇을 하려고하니, 조선은 마땅히 동양의 프랑스가 되어야한다.

과연 이 세계의 일본은 진정한 의미로 ‘동양의 영국’이 될 수 있을까요?

실제 하라-다카하시가 구상했던 정당정치 확립, 군부의 문민통제, 영미와의 협조외교, 군사력이 아닌 경제력으로의 열강이 가능할 것인가?

중대한 역사의 갈림길에 선 일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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