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혁명의 시대 3부-143화 (791/812)

3부 139화 파시즘의 발흥

1922년 하반기, 대전쟁 종전과 함께 윌슨이 약속했던 자유주의적 세계질서는 초장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20세기를 뒤흔드는 양극단의 사상, 공산주의와 파시즘이 참혹한 전쟁과 경제 붕괴의 상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귀족, 군부, 지주, 자본가는 제국주의적 야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수많은 민중의 피를 흘리게 했습니다! 지금도 그들은 더러운 탐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동자와 농민, 식민지의 고혈을 짜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제국주의를 타도하자! 세계혁명 만세!”

“볼셰비키의 조종을 받는 마르크스주의 빨갱이들이 세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우리의 위대한 국가를 파괴하고, 소비에트 러시아와 같은 암흑세계로 만들어 버리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볼셰비키의 지배를 받기를 원합니까? 볼셰비키의 음모에 맞서, 위대한 민족이여 단결하라!”

대전쟁의 여파로 촉발된 갈등은 1922-23년에 절정에 달했고, 유럽을 넘어 아시아에까지 전이될 가능성이 엿보였다.

‘대한이 동양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

대한제국은 아시아에서 공산주의와 파시즘을 저지하는 방벽이 되어야 했다.

그러려면 시대착오적인 보수반동주의나 극렬한 군국주의가 아니라, 영국이나 프랑스가 추구하는 ‘자유주의 제국’이 되어야 했다.

‘안이 격동의 시기를 체험하겠구나.’

이선은 유럽으로 떠난 차남 이안을 떠올렸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안은 하필 대변혁의 시기에 유럽에 체류하게 되었다.

이선은 차남에게 공부 외에도 비공식적으로 정보 수집의 임무를 맡겼고, 이안은 정기적으로 부친에게 보고를 했다. 이안이 현지에서 보내는 생생한 이야기들은, 현재 유럽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를 체감할 수 있게 하였다.

* * *

광무 26년 8월. 대한제국 정친왕 이안은 영친왕 이영의 전례를 따라, 영국 유학에 나섰다.

“영국까진 머나먼 길이다. 영국에 도착하기 전에, 최대한 많은 걸 경험하길 바란다. 그래, 어디를 가 보고 싶으냐?”

이선의 물음에 이안은 생각에 잠겼다.

‘파리, 빈, 베를린, 바르샤바는 지난번에 방문했고. 지중해를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했구나.’

“3년 전에 유럽의 현재를 보았으니, 그 근원을 알고 싶습니다. 로마, 아테네, 콘스탄티노플······.”

“하하, 안목이 좋구나. 그래, 수천 년의 유구한 역사가 너를 기다리고 있다. 영국으로 가는 길에 방문하는 걸 허락하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부황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먼저 너 자신을 위해 노력하거라. 학업을 마치는데 족히 4, 5년은 필요하겠지. 하지만 배움은 책 안에서만 있는 게 아니다. 네 경험이 다 피가 되고 살이 될 터이다.”

이선은 차남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안아, 부디 건강하여라. 폐하께서 허락하시면, 나도 최대한 빨리 널 보기 위해 유럽으로 가마.”

“어머니, 이번엔 저도 함께 가는 거죠?”

이라가 이번만은 자신을 함께 데려가 달라고 눈을 빛냈다.

“넌 대한의 공주가 아니냐. 공주가 유럽까지 간 전례가 없는걸.”

“오라버니 만나러 가는 것도 안 돼요? 친왕은 되고 공주는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부황께선 그런 분이 아닌걸!”

마르가리타와 이안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딸을 아들 못잖게 아끼는 이선이야 흔쾌히 허락할 수 있겠지만, 결혼적령기의 공주가 해외를 방문한다면 황실 보수파들은 또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을 터였다.

“알겠다. 폐하께 잘 말씀드려 보마.”

“와아, 약속한 거예요!”

이라는 기뻐하며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이안과 이라는 어릴 적부터 남매간의 우애가 좋기도 했고, 이렇게 오래토록 멀리 떨어져 있기도 처음이었다.

어차피 두 사람은 황실에서 겉돌고 있었고, 차라리 이라도 오라비처럼 유럽에서 사는 게 행복한 일일지도 몰랐다.

“늘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어머니. 소자는 이만 떠나 보겠습니다.”

“그래, 네가 어련히 잘하겠지만, 무탈하길 바란다. 자주 편지 쓰거라. 곧 다시 보자꾸나.”

가족들의 격려를 받고 8월 중순 인천에서 출발한 이안은, 5주간의 기나긴 항해 끝에 유럽에 당도했다.

이안이 가고 싶다고 한 루트는 영국 엘리트들의 ‘그랜드투어’와 유사했다.

18세기부터 대전쟁 이전까지, 영국 귀족 자제들은 유럽 문명의 근원인 그리스-로마 문명을 직접 보기 위해 지중해로 장기간 여행을 떠나곤 했다. 그랜드투어는 영국 엘리트 교육의 최종단계였다.

‘로마, 새로운 로마 콘스탄티노플, 제3로마 모스크바. 로마노프 왕가의 정통이 황성에 왔으니, 그럼 제4로마는 서울이려나?’

마침내 ‘그 도시’,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에 도착한 이안은 역사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유럽과 아시아, 동로마와 오스만, 그리스와 튀르키예(터키), 기독교와 이슬람이 혼재된 도시.

이안은 대한제국 황자로서 한국인의 정체성이 확실했지만, 그 절반은 유럽인이었다.

유럽 문명의 근원인 그리스-로마 문명을 보고 싶다는 건, 유럽인의 정신세계를 공유하고 있는 이안 역시 기대되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대전쟁이 바꾸어 놓은 세계는 동양에서 온 청년의 소박한 꿈을 깨고야 말았다.

“그리스-터키 전쟁의 격화로, 동지중해 정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얼마 전 스미르나에 터키군이 진주하면서 대화재가 발생했습니다.”

“그리스의 아나톨리아 원정이 실패로 끝났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실패, 아니 참담한 파국이지요.”

1919년. 냉철한 국제정치가인 그리스 총리 베니젤로스도, 오스만제국의 패전과 붕괴를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고 여겼다.

로이드조지와 클레망소의 지지를 얻은 베니젤로스는, 파리에서 그리스 영토로 배정된 스미르나(이즈미르)로 군대를 진주시켰다.

문제는 그리스의 야망이 스미르나로 한정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그리스계 주민 보호와 고토 수복을 외치며 아나톨리아를 분할하려고 했다.

그리스는 ‘위대한 이상’의 기치 아래 동로마제국의 재건을 부르짖으며, 아나톨리아 침공을 단행했다.

오스만제국 정부는 연합국의 위협에 굴복했지만, 튀르키예인들은 순순히 분할의 운명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갈리폴리 전투의 영웅인 무스타파 케말 파샤의 지휘 아래 앙카라에 대국민의회가 결성되어, 결사항전을 천명했다.

케말은 철저한 튀르크 민족주의자였지만, 오랜 숙적인 러시아와 조약을 맺고 지원을 받는 데 성공했다. 그리스 배후에 있는 영국은 튀르키예와 소비에트 러시아 공동의 적이기 때문이었다.

3년간 치열한 전쟁이 지속되었다. 그리스와 튀르키예 양측 모두 대규모 민병대를 동원했고, 학살과 보복학살이 반복되는 끔찍한 사태가 이어졌다.

1922년 가을, 마침내 승부가 결판이 났다. 한때 앙카라 근처 내륙까지 진격하며 세력을 떨쳤던 그리스군은 튀르키예군의 대반격에 밀려 바다까지 밀려났다.

퇴각하는 그리스군은 후안무치하게도, 울부짖는 그리스계 주민들을 내버리고 영국 군함을 타고 도망쳤다. 주민들은 꼼짝없이 적군의 자비만 기대야 할 상황이었으나, 3년 전 그리스군의 스미르나 무슬림 학살을 기억하는 튀르키예군은 대대적인 보복을 가했다.

그 과정에서 스미르나에 대화재가 발생했고, 번영하던 항구도시는 시체와 돌무더기로 가득한 폐허가 되고야 말았다.

대전쟁의 끔찍한 유산이었다.

“터키 대국민의회가 연합국 해협통제위원회를 향해 최후통첩을 보냈습니다. 콘스탄티노플과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터키군을 진주시키겠다고 합니다.”

“하! 건방진 터키 놈들, 그리스 따위를 이겼다고 대영제국이 우습게 보이는 건가!”

스미르나에서 그리스군을 밀어낸 튀르키예는, 마지막 남은 콘스탄티노플과 동트라키아를 되찾기 위해 연합국에 최후통첩을 보냈다.

콘스탄티노플의 연합군은 대부분 영국군이었고, 이들은 갈리폴리(차낙칼레)에 주둔하며 튀르키예군의 진격에 대비했다.

영국 정부는 튀르키예의 배후에 소비에트 러시아가 있다고 의심했고, 소비에트 세력이 흑해를 넘어 지중해까지 미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느꼈다.

이른바 ‘해협 위기’의 서막이었다.

“전하, 콘스탄티노플이 곧 전쟁에 휘말릴지도 모릅니다. 즉시 떠나시는 게 좋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소관이 직접 로마까지 전하를 모시겠습니다.”

워싱턴 회의를 마치고 연합국 해협통제위원회에 복귀한 안중근 부장이 이안의 수행을 맡았다.

“외람스러우나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편히 말씀하십시오, 장군.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이안은 존경받는 군인인 안중근을 부황이 신뢰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저는 처음부터 연합국의 콘스탄티노플 지배가 오래가지 못하리라 봤습니다. 오스만 술탄의 정부는 연합국에 복속하고 있을지 몰라도, 터키 국민은 연합국의 지배를 강점으로 여깁니다. 한때의 대제국에서 반식민지로 전락하면 누가 용인하겠습니까. 마치 지금 중국의 상황과 비슷하지요.”

“장군의 말씀이 옳습니다. 폴란드도 그렇지만, 민족주의 정서가 강한 나라는 결코 타국의 지배를 용인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민족주의가 강하지요. 하지만 지나친 도박을 했습니다. 스미르나에 만족했다면 이런 참사는 없었을 겁니다. 고토 수복이라는 허황된 꿈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폴란드도 결국 고토 수복이란 명분으로 우크라이나를 포기 못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대한에게는 만주와 연해주가 그렇지요.”

안중근은 씁쓸한 표정을 짓더니, 화제를 전환했다.

“이 전쟁은, 단순히 그리스와 터키라는 두 나라만의 전쟁이 아닙니다. 배후에 영국과 소비에트 러시아가 얽힌 전쟁입니다. 무엇보다도, 대전쟁 종결 후 맺어진 조약과 국제질서가 처음으로 무너진 사건입니다. 터키는 연합국이 강요한 조약을 부정하고 저항에 나선 최초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성공했습니다.”

“이제 중부유럽, 독일과 도나우 연방이 그 뒤를 따를 수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두 나라 모두 배상금 압박과 극심한 불황에, 급진좌익과 급진우익이 체제 변동을 꾀하고 있지요. 이들은 터키의 저항이 성공하는 걸 보았습니다. 터키가 해냈는데, 독일이라고 왜 베르사유 체제를 타파하지 못하겠는가? 라는 의문을 가질 겁니다.”

이안은 문뜩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그렇다면, 또다시 전쟁이란 말인가? 콘스탄티노플은 당장이라도 전쟁에 휘말릴 분위기였다.

도대체 어떻게 맺은 강화조약이기에, 전쟁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단 말인가.

“작금 유럽 정세가 심각합니다. 참으로 어려운 시기에 오셨습니다.”

이안 일행은 콘스탄티노플을 떠나 아테네에 당도했다.

그리스는 패전으로 인해 극도로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이안이 계획했던 그리스 고대유적지 방문은 고사하고, 잠시 머물렀다가 떠날 형편이었다.

‘이게 그 위대한 역사의 도시 아테네인가? 저 비참한 난민들의 움막으로 가득한 이곳이?’

고대 그리스와 아테네에 대한 낭만적인 회고를 갖고 있던 이안은, 현대 아테네의 민낯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제국의 야망은 분쇄되었고, 아나톨리아 각지에서 쏟아져 온 난민들이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수많은 나라가 명멸하면서도, 3천년 넘게 지속되었던 그리스인의 아나톨리아 영주가 참담하게 종말을 맞이했다.

탕! 타다다당! 쾅! 콰쾅!

10월 8일 새벽, 주희랍한국공사관에 머물던 이안은 갑작스러운 총격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입니까? 설마 터키군이 아테네까지 진격한 건 아니겠죠?”

“절대 그럴 리는 없을 겁니다. 즉시 알아보겠습니다.”

오전이 되자 상황이 명확해졌다. 그리스 해군부를 방문했던 안중근은, 정부 부처가 군인들에 의해 겹겹이 포위된 것을 보고 급히 되돌아왔다.

“군사정변입니다! 군인들이 정변을 일으켜 콘스탄티노스 국왕의 정부를 타도했습니다.”

안중근은 쿠데타군이 살포한 문건을 해석했다. 그리스어 외에도 프랑스어로 쿠데타의 대의를 설명하고 있었다.

근대 그리스의 내분은 고질적이었다. 특히 대전쟁을 놓고 그리스는 문자 그대로 국가가 둘로 쪼개지는 ‘국론분열’을 겪었다.

카이저의 처남으로 독일을 지지했던 국왕 콘스탄티노스 1세에 맞서, 연합국을 지지한 베니젤로스 총리는 각각 아테네와 테살로니키에 별도의 정부를 수립했다.

연합국은 당연히 베니젤로스의 정부를 지지했다. 대내외의 압력을 받은 콘스탄티노스는 퇴위하고, 친연합국파인 차남 알렉산드로스가 왕위를 계승했다.

그리스는 승리자의 편에 서게 되고, 베니젤로스는 파리에서 연합국의 총애를 받으며 영토를 확장했다.

그런데 역사는 사소하고도 기이한 사건으로 변화하게 된다. 알렉산드로스가 키우던 원숭이에게 물렸는데, 패혈증으로 악화되어 급사한 것이다.

알렉산드로스의 급사로 퇴위했던 전 국왕 콘스탄티노스가 복위하였고, 국왕은 자신을 쫓아냈던 총리를 용납하지 않았다.

베니젤로스의 실각 이후, 콘스탄티노스는 군부 왕당파들을 내세워 아나톨리아 본토로 진격할 것을 명령했다.

동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를 계승한 ‘콘스탄티노스 12세’로서 로마제국 재건을 선포하는 날을 꿈꾸며.

하지만 그 야망은 헛되이 끝났다. 대참사에 경악하고 분노한 베니젤로스파 장교들이 봉기하여 패전의 책임을 물어 왕당파 정권을 타도했다. 콘스탄티노스는 다시 퇴위하여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고토 수복이라는 망상이 이렇게 위험하구나.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어야지, 국력의 한계를 벗어난 팽창은 종말의 지름길이다. 열강이 지지해 준다고 해서 반드시 정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스의 야망이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는 걸 보면서, 이안은 반면교사를 보았다.

베니젤로스가 이선을 만났을 때 말한 것처럼, 한국이 옛 종주국인 청나라를 무찌르고 고토를 수복했듯이, 그리스도 옛 종주국인 오스만을 무찌르고 고토를 수복하리라 기대했다.

그 시점에서 그리스는 영국과 연합국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고, 실제로도 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국력이 뒤따르지 않는 팽창은 비참한 종말을 예고할 뿐이었다.

이안이 그다음 목적지로 향한 이탈리아에서도, 바로 ‘위대한 제국의 재건’이라는 망상이 현실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었다.

“이탈리아는 위대한 로마의 후계자입니다! 그런데 그 후예인 우리는 세계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이탈리아 청년 60만이 대전쟁에서 피를 흘리고 스러졌건만! 미국, 영국, 프랑스는 우리를 대등한 동지로 여기지 않습니다. 왜입니까? 저들은 우리를 나약한 2류 열강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후예들이여, 이러한 대우를 참을 수 있습니까?”

“없소!”

“그럼 우리는 왜 나약해졌습니까? 바로 전쟁을 두려워하는, 국가의 위대함을 두려워하는, 사회의 전복을 꿈꾸는 사회주의자들이 득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빨갱이들이 국가전복을 꾀하고 있건만, 이 정부는 나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파시스트당은 빨갱이들을 분쇄할 것입니다!”

“옳소!”

“사보이 왕가는 파시스트당의 강령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우리의 강령은 단순합니다! 단지 이탈리아를 통치하고 싶을 뿐이다!”

“와아아아!”

“국가파시스트당은 빨갱이를 분쇄하고, 위대한 로마의 영광을 재건할 것이다! 지중해는 우리의 바다(Mare Nostrum)가 되리라!”

“Viva Il Duce(영도자 만세)!”

‘일 두체(Il Duce)’, 즉 영도자를 자처하는 파시스트당 당수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의 외침에, 파시스트 당원들이 일제히 오른팔을 쭉 들어 올리며 만세를 외쳤다. 이른바 ‘로마식 경례’였다.

무솔리니는 의도적으로 고대 로마의 흉내를 내고 있었다. ‘파쇼’라는 단어부터가 로마 집정권의 상징인 파스케스(Fasces)에서 따온 것이었다.

“위대한 로마의 후예들이여, 영원의 도시 로마로 진군하자! 국가파시스트당 만세!”

“영도자 만세! 국가파시스트당 만세! 이탈리아 만세!”

자본주의의 위기와 공산주의의 위협은, 극단적 국가주의가 성장하는 토대가 되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항마를 자처하는 ‘제3의 위치’, 파시즘이 역사에 부상(浮上)하고 있었다.

파시즘이 오른쪽에서 세계정복을 꿈꾼다면, 공산주의는 왼쪽에서 세계혁명을 꿈꿨다.

1922년 시점에서, 아직 세계의 시선은 로마가 아닌 모스크바로 향하고 있었다.

작가의 말

그리스-터키전쟁은 2류국가간의 흔한 자강두천(...)이 아니라,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1차대전 패전국이 베르사유체제를 부정하고 조약을 수정한 최초의 사례라는 점, 후속 조약(로잔조약)으로 국경 내 모든 소수민족을 ‘교환’하는 선례를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무솔리니와 히틀러 모두 케말이 보인 단호한 저항과 승리에 큰 감명을 받고 베르사유 체제를 부정하는 모델로 삼았다고하죠. 정작 케말은 파쇼들과 엮이길 싫어했지만...

그리스-터키전쟁은 큰 변수가 없어 역사대로 진행됐지만, 변화한 이탈리아의 역사로 인해 무솔리니와 파시즘은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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