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149화 지도자의 품격
광무 27년 6월.
국무총리대신 이상설이 지병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직무를 중단하고, 내각 서열 2위인 의정대신 박은식이 총리서리(總理署理)를 맡게 되었다.
총리 대행이라고는 하지만, 최초의 야당 출신 총리이자 언론인 출신 총리가 되었다.
광무 24년에 개정된 정부법에는 총리 유고 시에 의정대신이 차기 총리를 선출할 때까지 총리서리를 맡아 대행한다는 조항이 있었으므로, 박은식의 총리 대행에 법적 하자가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정치적인 문제가 남아 있었다.
“입헌개화당 출신 총리가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면 당연히 제1여당인 개화당에서 차기 총리를 선출해야지요. 어찌 제2당인 신민당에서 총리서리를 맡는단 말입니까?”
문제를 제기한 건 외무대신 이승만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개화당원들이 공통적인 불만을 갖고 있었다.
“신민당은 연립여당이고, 총리 유고 시에 의정대신이 총리서리를 맡는다는 규정이 있지 않소.”
“그러니 서리가 아니라 당장 후임 총리를 선출해야지요.”
“총리께서 건강 악화로 직무를 잠시 못 맡는 건데, 어찌 바로 총리를 선출하겠소?”
탁지대신 이시영은 난색을 표했다.
이승만은 자택에서 정양 중인 이상설을 찾아가 정치적인 문제를 따졌다.
“각하, 저는 각하께서 속히 쾌차하시어 다시 정부로 돌아오시리라고 고대합니다.”
“고맙네, 우남.”
“다만, 각하의 부재 시 의정대신이 총리서리를 맡는 건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절차상으로 문제 될 건 전혀 없네만.”
“처음 의정대신 조항을 만들 때는 연립정부를 염두에 둔 게 아닙니다. 의정대신이 연립여당 소속이라면, 당연히 제1당에서 총리대행을 맡아야죠.”
외무대신이 내각 서열 3위였으므로, 총리를 대행한다면 이승만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의정대신은 명예직 아닙니까. 그래서 신민당의 실질적인 지도자가 아닌 명예 지도자인 박은식 대감이 맡은 게 아닙니까. 냉정히 말해서, 박 대감이 이 어려운 시기에 국가를 이끌 능력이 된다고 보십니까?”
“백암(白巖, 박은식) 선생은 인격자일세. 나뿐만 아니라, 당색을 가리지 않고 모두 그분을 존경하네.”
올해 65세인 박은식은 정부 인사 중 최연장자로, 유학의 변화를 이끈 개신유림의 대표자였다.
선비의 전통을 계승해 고고한 성품과 대쪽 같은 비판의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소탈하고 넓은 아량을 지녀 많은 사람이 따랐다.
공식 행사가 아니고서야 늘 검소한 한복을 입고 다녔기에, 지나가는 노인 정도로 인식하지 정부 2인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막 의정대신에 취임해서 총리 관저에 출근했을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이봐요, 어르신. 거기 서 있으면 안 돼요. 어서 가시오.”
“고생이 많으시오. 다만 볼일이 있어서 왔으니, 들여보내 주시오.”
“어허, 이 노인네가. 여긴 총리 관저란 말이오. 얼쩡거리다 혼나지 말고 썩 가시오.”
개혁으로 관리의 절대적 권한과 부정부패는 사라져도 관존민비 인식은 여전히 만연해 있었기에, 총리 관저 경호원들은 권위적인 태도를 취했다.
“허허, 노인네한테 그리 대하면 쓰나. 바로 그 관저에 볼일이 있어서 온 사람이라 하지 않소. 나는 신임 대신이오.”
경호원들은 노인의 허름한 한복 도포차림을 보며 그럴 리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총리관저에 드나드는 대신들은 숱하게 봤지만 다들 깔끔한 양복을 입고 수행원을 데리고 다니지, 이런 허름한 차림의 노인네가 혼자 온 적은 없었다.
“대신? 정신 나간 노인네일세. 경치고 싶지 않으면 썩 돌아가쇼!”
“그리 못 믿겠으면 사람을 불러 주겠소?”
“우린 바쁜 사람이오. 오늘이 내각 첫 회의라 정신없는데.”
“내가 바로 그 회의에 참석하려고 온 사람이오.”
“하이고, 노망 날 나이도 아닌 것 같은데 벌써부터 노망이야.”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는 사이, 총리대신 이상설이 우연히 관저 밖을 바라보았다. 그는 깜짝 놀라 정문까지 한걸음에 내달렸다.
“총리 각하!”
경호원이 거수경례하는데도, 이상설은 무시하고 노인에게 다가갔다.
“아니, 백암 선생님. 어째서 여기서 이러고 계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총리대신. 원, 쉽게 들여보내 주질 않는구려.”
“자네들은 신민당 총재이자 신임 의정대신도 몰라보나? 이분은 의정대신 각하일세!”
그때서야 노인의 정체를 파악한 경호원들은 깜짝 놀라 부동자세를 취했다.
“고위 대신이자 연세도 많으신 분께 이 무슨 무례란 말인가! 대체 책임자가 누군가?”
정부 직책은 이상설이 더 높을지 몰라도, 박은식은 그보다 12살 연상에 품격 높은 선비였다. 총리 자신도 깍듯이 모시는데, 일개 경호원들이 무시하니 저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그러지 마십시오, 총리. 저들은 자신의 직무를 다한 거지요. 잡인을 관저에 들일 수 없는 건 당연한 일, 처음 보는 노인네가 의심스러울 수 있지요.”
이상설이 거듭 경호원에게 매서운 시선을 돌리자, 박은식은 개의치 말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총리. 저 젊은이들은 자기 직분에 충실한 거니, 혼내지 마십시오.”
경호원들이 고개를 조아리며 송구스러워하자, 박은식은 따끔하게 한마디는 덧붙였다.
“그대들, 다만 노인에게는 예의를 갖추는 게 좋겠소. 설령 대신이 아니라 일개 촌로라 할지라도, 그리 함부로 대하는 법이 아니오. 황제 폐하께서도 명하셨듯이, 관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민을 함부로 대해선 결코 아니 되오. 이제 시대가 변했다는 걸 명심하시오.”
“예, 각하! 명심하겠습니다!”
이런 일화가 알려진 후, 각지의 관저 경비원들은 출입자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건 물론이요, 관료들도 수행원을 데리고 다니며 건방을 떠는 일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관존민비 의식은 여전히 사회에 만연해 있던 만큼, 지방 군수, 아니 시골 면서기라 할지라도 주민들에게 오만방자하게 구는 일이 허다했다.
하지만 내각 서열 2위인 의정대신조차 겸손히 처신하는데, 일개 관리들이 나댔다가는 무슨 비난을 받을지 모를 일이었다.
바로 야당이 연립정부에 입각한 효과였다.
오랫동안 권좌에 앉아 개화당과 정부가 곧 동일시되고, 타성에 젖어 있던 관료사회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왔다.
내무대신 안창호와 협판 김구가 실무와 행정의 차원에서 개혁을 이끈다면, 명예직인 의정대신 박은식은 행동으로 솔선수범하며 관료사회의 변화를 촉구했다.
이상설을 비롯한 개화당 인사들도, 당색을 막론하고 박은식의 고결한 성품을 존경했다.
군부 인사인 군무대신 이동휘와 참모총장 노백린도 박은식을 깊이 존경하여, 만나게 되면 허리 굽혀 인사할 정도였다.
“백암 선생이 훌륭한 인격자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하지만 총리로서 국정을 이끄는 건 별개 문제입니다. 작금 국제 정세가 얼마나 혼돈입니까. 유럽은 난리가 났고, 저 북방의 공산주의자들은 무슨 음모를 꾸미는지 모릅니다.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운 정세 인식이 필요한 시기라 말입니다.”
이승만도 박은식이 인격자라는 건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급박한 시기에 어울리는 총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남, 내 솔직히 말하겠네. 분명 자네는 현재 대한에서 가장 뛰어난 정세인식을 가진 관료일 거야. 그런 면에서 자네가 더 총리에 어울리겠지.”
이승만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날카로운 정세인식을 가진 사람, 즉 자신과도 같은 사람이 총리에 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황제 폐하보다 자네의 식견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나?”
“아니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천하에서 제일 잘났다고 생각하는 이승만이라지만, 감히 황제보다 자신이 낫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현재 대한에는 불세출의 뛰어난 지도자가 계시니, 총리의 역할은 여러 정당과 관료들의 의견을 조율하여 효율적인 정부를 운영하는 것이라 생각하네.”
“황공하오나, 총리는 민의에 의해 선출된 국민의 대표자입니다. 총리가 황제의 손발 노릇만 한다면, 어찌 진정 대표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승만은 다르게 생각했다. 그도 황제의 천부적인 능력을 부정하진 않았지만, 대한제국도 궁극적으로 영국식 입헌군주제가 실시되어야 한다 보았다. 현재 황제가 하는 통치자의 역할은 민의에 의해 선출된 총리가 해야 한다고 보았다.
“자네는 성상을 전제군주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 누구보다 변화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계시네. 성상께서 프랑스 상원에서 하신 연설 기억하지? 괜히 프랑스인들 기분 좋으라고 하신 말씀이 아니라고 보네. 성상은 누구보다 더 진보적이고, 먼 미래를 바라고 계시네.”
예전에는 김옥균이, 현재는 이상설이 이선의 복심(腹心)을 헤아리고 있었다.
“지금은 말하자면 과도기야. 성상께서 원하시는 총리는, 뛰어난 식견으로 좌지우지하는 지도자보다는, 다양한 의견을 조율할 수 있는 포용력 있는 지도자야. 나는 그러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만, 잘 해냈는지 모르겠네.”
“총리께선 잘 해내셨습니다. 신민당에 많은 양보를 하고, 저들의 억지 주장도 다 받아 주셨으니.”
“나라고 왜 야당과 권력을 공유하고 싶겠나? 예전처럼 개화당 단독으로 통치할 방법이야 구상해 보면 많겠지. 하지만 그러지 않았네. 우남 자네 말대로, 총리는 민의를 대표해야 해. 개화당은 지난 총선에서 과반을 잃었어. 간발의 차이로 이겼다고, 소수 정파가 모든 권력을 얻은 것처럼 야당을 무시해선 안 되네. 연립정부와 협치. 그게 바로 새로운 시대의 방식이고, 성상의 뜻이라 보네.”
총리의 진정 어린 말에, 이승만은 더 이상 불만을 표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우남, 다시 말하지만 자네는 능력만 놓고 보면 대한에서 손을 꼽을 정도야. 하지만 동료들과 늘 불화를 빚지. 그게 문제일세.”
“정치에 어찌 동지만 있겠습니까? 옳고 그름을 따지다 보면 자연히 멀어지고 그러는 거지요.”
“군무대신은 그렇다 치고, 대체 도산(안창호), 우사(김규식), 우성(박용만)과 갈라진 이유는 뭔가? 한때 미국 유학도 같이하면서 그렇게 절친하던 사이 아니었나.”
이승만이 군무대신 이동휘, 내무대신 안창호, 주청 판무관 김규식, 군무협판 박용만 등과 갈등을 빚는다는 건 알 사람은 알고 있었다.
“도산이야 당이 다르니 자연히 거리가 멀게 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럼 우사와 우성은? 우사는 무소속이어도, 우성은 개화당 아닌가.”
“우사는 소비에트에 너무 관대합니다. 가끔 저들의 프로파간다에 넘어간 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모스크바에 다녀온 몽양(여운형)처럼 말입니다.”
여운형의 모스크바 극동민족대회 방문은 대한제국 내에서 정치 스캔들로 확산될 뻔했으나, 황제가 직접 방문을 허가했으니 문제 삼지 말라고 발표하여 정치적 문제로 커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제가 커지지 않았다뿐이지, 우익은 여운형과 사회당을 ‘골수 빨갱이’라고 의심하게 되었다.
“우사나 몽양이나 온건하고 유화적인 거지, 어찌 소비에트의 선전선동에 넘어갔겠나.”
“그들이 애국자라는 건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방향이 틀렸다는 거지요. 소비에트, 공산주의와는 타협이 불가능합니다. 대한은 반공·반소를 국시(國是)로 삼아야 합니다.”
“그럼 우성하고는 왜 대립하는 건가? 우성도 반공 반소를 외치지 않나.”
이승만과 박용만은 오랜 벗이었고, 미국 유학도 함께 했으며,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가까웠다.
“방향이 다릅니다! 저는 국제정세를 면밀히 분석하여 대한의 지정학적 의의가 반공 반소에 있다고 보는 거지만, 우성은 미치광이 군국주의자가 다 되어버렸습니다. 만주와 몽골도 모자라 시베리아까지 고조선의 고토이니 진출하자고 주장하잖습니까. 어쩌다 사람이 그리 돌아 버렸는지, 원······.”
이승만은 자신의 탓이 아닌 옛 동지의 탓으로 돌렸다. 그는 박용만의 변모에 혀를 끌끌 찼다.
우성(又醒) 박용만(朴容萬)은 강원도 철원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시대의 변화는 강원도 시골 평민인 박용만에게도 기회를 주었다.
관립 황성외국어학교를 다니는 동안, 선배인 이승만·안창호·김규식 등과 친분을 맺게 되었다.
병역 의무를 마친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네브래스카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군사학이 군인만의 분야가 아니다. 작금과 같은 시기에는 문민도 군사학을 알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단기장교로 복무하며 군사학에 관심이 생긴 박용만은, 유학생으로는 특이하게도 군사학을 부전공으로 택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이승만과 김규식처럼 외교관으로 특채되었다.
대학 재학 당시 미식축구 선수로 뛸 만큼, 활동적이고 리더십 있는 성격의 박용만은 미국 정관계 인사들과 접촉하며 재미한인사회에서 중심적인 인물로 떠올랐다.
그런데 대전쟁이 발발하자, 박용만은 다른 외교관들과 달리 뜻밖의 선택을 했다.
“이 전쟁은 프로이센 군국주의에 맞서는 자유의 성전(聖戰)이다. 모름지기 대한의 남아라면 목숨 바쳐 싸울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박용만은 출세가 보장된 외교관 지위를 던져 버리고, 자발적으로 예비역 참위 신분으로 돌아가 참전을 청원했다.
외교관이 참전하겠다고 나선 건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모범이 될 수 있겠다고 판단한 군부에서는 부위 계급으로 받아들였다.
전역 후 10년이 넘은 데다, 나이 30대 중반에 부위부터 다시 시작하게 되었지만, 박용만은 개의치 않고 군 생활에 적응했다.
박용만은 후방에 있기를 원치 않았고, 러시아 파병에도 지원하여 2년을 동부전선에서 보냈다.
“전쟁. 혁명. 제국의 몰락. 대전쟁 이후의 세계는 그 이전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대변혁의 시대에 살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뒤떨어지면, 곧 파멸하리라.”
파국적인 대전쟁, 그중에서도 혁명의 열기가 폭발하는 동부전선에서 보낸 경험은, 스포츠에 열광하던 청년 박용만의 인생 항로를 영원히 바꾸었다.
작가의 말
작중 대한제국 정계는 실제 독립운동가들의 올스타전이 아닐 수가 없군요.
<한국통사>, <한국독립운동지혈사>의 저자로도 유명한 박은식 선생은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역임하셨습니다. 실제로 훌륭한 인품으로 소속과 이념에 관계없이 후배 독립운공가들의 존경을 받았지요. 경비원 일화도 실제 임시정부 청사에서 있었던 일로, 작중 상황에 맞게 변주했습니다.
원래 한편으로 쓰려다가, 쓰다보니 분량이 13000자 이상으로 길어져 두편으로 나눴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연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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