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혁명의 시대 3부-159화 (732/812)

3부 155화 운명의 아이

대한제국 황태자 이진은 대리청정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내정과 관련된 사안은 국무회의에서 논의하여 이진의 결재를 받아 시행되었다.

총리대신 이상설이 병으로 사임하고 의정대신 박은식이 총리직을 계승하자, 이진은 부황 이선에게 물었다.

“총리가 사임하였으니, 마땅히 대조(大朝)께옵서 후임 총리를 지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총선이 얼마 안 남았으니, 총선까지 백암(박은식)이 직책을 수행한 뒤 선거 결과를 보고 후임 총리를 지명함이 좋겠다.”

이진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대한국헌법상 총리 지명은 황제의 권한이었다.

이상설은 ‘의회의 추천으로’ 총리에 지명되었고 차후 선거에 승리하여 다수당 총재 자격으로 내각을 이끌어 나갔지만, 이는 황제가 선위를 하겠다는 상황에서 예외적으로 발생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총리는 민의를 대표하는 다수당에서 선출하고, 황제가 추인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게 좋다고 본다.”

이선은 아들의 의문을 꿰뚫어 본 듯이 설명했다.

“영국식 입헌군주제로군요.”

“그래. 비상시에는 예외적으로 황제가 적임자를 지명할 필요가 있겠지만, 지금은 평화로운 시기니.”

“하온데, 만약 급진 사회주의자나 극단적 민족주의자가 국민을 선동하여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어찌해야 하옵니까?”

“정상적인 국가라면, 극좌나 극우가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작다. 만약 그 지경이 되었다면, 그 이전에 심각한 상황인 거지.”

원역사에서, 극좌나 극우가 선거로 집권한 사례는 드물었다.

볼셰비키는 노동자-군인 소비에트의 지지를 받았다지만 ‘10월 혁명’이라는 봉기로 권력을 얻었고, 제헌의회에서 제1당이 된 사회혁명당을 탄압하고 내전에서 승리하여 소비에트 연방을 건설했다.

파시스트도 좌익을 상대로 유혈 폭력을 불사하다 ‘로마 진군’이라는 극단적 방법이 추인 받아 권좌로 나아갔다.

나치는 비록 선거에서 제1당으로 올라섰다곤 하지만, 대공황이 만들어 낸 특수성이었다. 그나마도 과반을 얻은 적은 한 번도 없었고, 37%라는 최대치에서 정치적 야합을 통해 집권한 것이었다.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만약 극단주의자들이 득세한다면 황제는 국가와 헌정을 지켜야 한다. 극단주의자들을 고립시키고, 헌정주의자들을 단결시켜야 한다.”

이선도 개화당의 변모, 정당의 통합과 분열, 급진 좌·우익의 등장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좌익은 세력이 약했고, 사회당을 이끄는 사민주의자 여운형이 체제 내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오히려 우익이 더 문제였다. 우익은 이승만의 ‘보수 우파’와 박용만의 ‘급진 우파’로 분화하고 있었다.

박용만은 기존의 우익들과 달리 진보적인 면모가 있지만, 황제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과 팽창주의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다.

‘현재의 정치구도상 개화당의 분열이 나쁘진 않아. 박용만이 개화당에서 나가서 신당을 창당한다 한들 1당으로 올라갈 가능성은 앞으로도 희박하지. 이승만이 집권할 가능성도 한층 낮아졌고.’

이선은 정당 내부의 일을 주의 깊게 살필 뿐, 개입하지는 않았다. 만약 황제가 정당정치까지 개입한다면 전제군주제와 다를 바가 없었다.

“대전쟁 이후 유럽 정세가 워낙 혼란스러우니, 네 우려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대한에서는 당분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대전쟁 이후 유럽의 정치는 계속 극단화되고 있었고, 1923년은 더욱 심각해 극좌와 극우가 득세하고 있었다.

“애초에 의회정치와 다당제라는 건, 백가쟁명의 다양한 의견이 분출됨이 당연하다. 총과 칼이 아닌 말과 붓으로 싸우는 게 얼마나 바람직한 일이냐. 단일한 국론은, 결국 폭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대한은 아시아에서 자유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 앞으로 펼쳐질 너의 시대에는 더더욱.”

“예, 폐하. 명심하겠습니다.”

이 시대 한국인, 아니 비(非)서구인은 의회와 정당정치를 불필요한 정쟁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았다.

뛰어난 지도자가 확고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국가를 이끌고, 국민은 그에 복종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잖았다.

이선은 그러한 주장을 하는 이들이 모범으로 꼽는 계몽적 철인(哲人)군주 그 자체였지만, 그 자신은 그런 관점에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독재자 한 사람이 이끄는 전제독재체제는 건강하지도 않고, 오래 가지도 못한다. 누가 지도자가 되어도, 설령 지도자가 부재하여도 돌아갈 수 있는 안정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국가를 위해 최선이야.’

이선은 1920년대에 보통선거와 정당정치에 기반을 둔 입헌군주제를 확립할 생각이었다.

세계사적으로 중대한 변혁의 시대였다.

* * *

이진은 부황의 말을 따라 당분간 국가의 앞날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걱정되는 건, 오히려 사사로운 일이었다.

황태자비 타티야나가 회임하여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부인, 부디 건강히 아이를 낳기를 바랍니다.”

“예, 감사합니다. 건강한 아이가 태어날 겁니다.”

회임 소식을 듣고 이진은 진심으로 기뻤다.

아버지가 된다는 건 아직도 믿기지 않을 일이지만, 그도 이제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득 한 가지 걱정이 들었다.

‘혼혈이라는 건 시대가 지나면서 받아들여지겠지. 그런데 만약 병을 갖고 있다면······?’

아들이,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가 태어날 수 있었다.

문제는, 처남 알렉세이처럼 혈우병 보인자를 갖고 태어날 가능성이었다.

혈우병은 모계 유전을 통해 물려받고, 빅토리아 여왕의 외증손녀인 타티야나도 보인자일 수 있었다.

알렉세이가 혈우병으로 고통받는 걸 보면서, 이진은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제국의 후계자가 설마 혈우병 환자라면······. 그 고통을 어떻게 견뎌 내지.’

그 가능성은 누구보다 타티야나가 걱정하고 있었다. 알렉세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누나인 타티야나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걱정하지 말거라. 태어날 아이는 반드시 건강할 거다. 혈우병은 있을 수가 없다.”

이선이 확신을 갖고 하는 말에, 이진과 타티야나는 기쁘면서도 그 확신의 근거가 궁금했다.

“부계로는 천명을 받은 대한의 열성조와, 모계로는 신의 가호를 받는 아이가 아니냐. 병이 있을 리가 없지.”

이선은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종교적으로 독실한 정교회 신자이자 신비주의 성향의 타티야나는 감명 깊은 눈으로 시아버지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진은 의외이다 싶었다.

‘언제나 과학적 합리성을 중시하던 부황께서, 뜻밖의 말씀을 하신다는 건, 역시 확신이 없으시다는 건가······.’

이선의 말이 이어졌다.

“확률적으로 보아도, 혈우병이 유전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빅토리아 여왕의 4남 5녀 중에서 혈우병이 유전된 건 1남 2녀뿐이었다.”

혈우병 보인자인 빅토리아 여왕의 4남 5녀 중, 혈우병을 물려받은 건 2녀 앨리스(헤센 대공비), 4남 레오폴드(올버니 공작), 막내 베아트리스(바텐베르크 공비)였다.

앨리스의 딸인 알릭스, 즉 알렉산드라 황후를 통해 알렉세이에게 혈우병이 유전되었다.

베아트리스의 딸인 빅토리아 에우헤니아(스페인 왕비)를 통해 스페인 왕태자 알폰소(알폰소 13세의 장남)에게 혈우병이 유전되었다.

“예컨대 장녀의 아들인 카이저 빌헬름은 멀쩡하지 않으냐. 알렉세이 황태자는 유감스럽게도 낮은 확률의 희생자일 뿐이지.”

장녀 빅토리아(독일 황후)를 비롯한 대부분의 자식들은 혈우병을 물려받지 않았고, 카이저 빌헬름을 비롯한 프로이센 후손들은 멀쩡했다.

‘21세기에 읽은 논문에서, 혈우병 유전자를 올가와 타티야나는 유전되지 않은 걸로 기억하는데.’

이선의 기억으로는, 현대 연구 결과 올가와 타티야나는 모친으로부터 혈우병이 유전되지 않았다. 마리야는 미확인이었고, 아나스타샤만이 보인자였다.

그렇기에 이선도 장남과 타티야나의 결혼을 허락한 것이었다. 만약 혈우병 보인자라면, 제국의 앞날과 자식의 삶을 위해서라도 허락하기 어려웠다.

물론 21세기 연구 결과를 말할 수는 없으니, 이선은 돌려서 말했다.

“너희의 아이는 천명과 신의 가호를 타고난 운명의 아이다.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게 될 터이니 걱정하지 말거라.”

하늘의 뜻이 되었건, 과학적 확률론이 되었건, 부황의 확신과도 같은 말에 이진은 왜인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부황께서 하교하시니, 반드시 그리될 것입니다.”

광무 27년 8월 하순.

여름의 무더운 날씨가 서서히 끝나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무렵.

황태자비 타티야나의 산통(産痛)이 시작되었다.

“출산은 9월로 예정되어 있다고 하지 않았소?”

“예, 그러하온데······.”

예정보다 빠른 산통에, 이진은 당황했다. 어의(御醫)가 예상했던 출산은 9월 초순이었다.

산부인과 경험이 많은 마르가리타가 조언했다.

“때로는 출산이 예정보다 빠를 수 있습니다. 황후께서도 공주님을 낳으실 때 그러셨습니다. 위험한 일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마르가리타는 나이가 들어 황실 의료진에서 은퇴했지만, 타티야나가 회임하자 황후 김아영이 특별히 부탁했다.

“내가 아이를 낳을 때도 여사께서 봐준 덕에 무사히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황태자비에게도 힘이 되어 주세요.”

“마땅히 그리하겠습니다.”

이진은 어머니와 달리 마르가리타를 완전히 신뢰하지 않았지만, 의사로서의 능력은 확신했다.

어머니가 동생들을 낳을 때 누구보다 힘이 되어 준 사람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이가 빨리 세상을 보고 싶은가 봐요. 아버지도 빨리 보고 싶겠죠.”

타티야나는 고통을 참고 웃으면서 말했다. 이진은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화답했다.

“걱정하지 않아요. 당신을 닮은 아름다운 아이가 건강히 태어날 테니까.”

말은 그렇게 했어도, 이진은 초조한 심정을 가까스로 누르며 출산을 기다렸다.

황태자, 아니 황제라 할지라도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오직 기다리는 것뿐.

“네 심정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세상에 그 누구도 날 때부터 자연히 부모가 되는 건 아니니까, 첫 아이는 더욱 특별하지. 나와 사랑하는 이를 닮은 분신이 태어난다는 게 얼마나 특별한 일이냐.”

이선은 초조해하는 장남의 마음을 달래며, 옛 일을 떠올렸다.

“광무 원년에 네가 태어날 때도, 나 역시 초조했다. 일부러 국무에 집중하면서 초연해 보이는 척했다마는, 몸은 근정전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교태전(交泰殿)으로 향해 있었지. 혹여 아내를 잃을까 봐, 아이를 잃을까 봐 노심초사했었다.”

산모와 영아의 사망률이 높은 시대였다. 조선 왕가의 여인 중에서 아이를 낳다가, 혹은 낳은 후에 세상을 떠난 이들이 허다했다.

영아는 두셋 중 하나는 죽기 마련이었고, 그러니 돌이 지나기 전까지는 아명조차 지어 주지 않았다.

본래 고종만 해도 9남 4녀를 얻었지만, 대부분 조졸하여 10세 이상 장성한 건 4남 1녀뿐이었다.

“다행히도, 나는 아내도 아이도 잃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럴 가능성을 두려워했지. 그렇기에 네가 지금 어떤 마음일지를 안다.”

의학의 발전도 있었지만, 이선은 산부인과에 만전을 기울였다. 세상의 그 어떤 죽음보다도 자식의 죽음만큼 슬픈 건 없었다. 아내와 아이를 잃지 않도록 만전을 기울인 결과, 3남 3녀를 얻도록 아무도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

단순히 황실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의료 개선과 산부인과 보급으로 국민적 차원에서도 영아 사망이 줄어들었다. 시골에서는 갓 태어난 아이가 울지만 않아도 죽었기려니 생각하여 윗목에 밀어 죽음을 방치했지만, 왕진을 온 의사들은 살려 냈다.

그 결과 영아사망률이 급감했고, 1920년대 들어 대한제국의 인구는 크게 증가했다.

“나의 첫 아이인 네가 장성하여 이렇게 번듯한 청년이 되었듯이, 태어날 네 아이도 그럴 날이 올 게다. 그러니 네 아내를 믿고 차분히 기다려 보자꾸나.”

“예, 폐하. 그 아이가 장성하여 아이를 보는 날까지, 부황께서도 지켜봐주십시오.”

부친의 덕담에 아들도 화답했다. 이선은 너털웃음을 흘렸다.

“할아버지가 된다는 것도 놀라운데, 증조할아버지까지 되란 말이냐. 내 나이 벌써 쉰여섯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겠느냐.”

“폐하, 어찌 그런 말씀을······.”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늙은이는 세상을 떠나는 게 자연의 이치. 내 자식이 아이를 본다는 사실만으로도, 한 인간으로서는 더 바랄 게 없다.”

원역사의 완화군 이선은 불과 만 11세에 죽었다. 자신은 만으로 55세가 되었으니, 다섯 배는 살고 있는 셈이었다.

“물론 하늘이 내게 장수를 허락한다면, 손자가 장성하여 증손자까지 얻는 걸 보고 싶지. 네게 아명을 지어 주신 대원왕처럼 말이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79세까지 장성하여, 증손자가 태어나는 걸 보고 세상을 떠날 수 있었다.

“한 인간으로서는 그렇고, 군주로서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지. 네가 대한의 번듯한 군주가 될 때까지 지켜볼 터이니, 걱정하지 말거라.”

이선은 생전에 선위할 생각이었고, 아들의 치세가 번영할 때까지 버틸 생각이었다.

아직 대한제국을 둘러싸고 있는 파도는 거칠기 짝이 없었다. 파도가 진정될 때까지는 키를 잡고 이끌어야 했다.

8월 26일은 음력으로 7월 보름, 백중(百中) 또는 중원(中元)일이었다.

백중날은 불교에서는 큰 명절로, 불교를 억압했던 조선에서도 민간 차원에서는 지역에 따라 농민들의 축일로 기념되었다.

심심찮게 태풍이나 비가 올 시기였지만, 다행히 올해는 맑은 하늘에 보름달이 떠올라 있었다.

미신을 믿지 않는 이진도 저도 모르게 보름달을 향해 기도했다. 보름달을 바라보며 초조하게 소식을 기다리던 이진을 향해, 고대하던 소식이 전해졌다.

“황태자비 전하께옵서 아기씨를 생산하셨사옵니다!”

이진은 한달음에 아내가 있는 전각을 향해 달려갔다. 황태자의 체면 같은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경하드립니다, 황태자 전하. 예쁜 아기씨입니다.”

마르가리타가 웃으면서 축하했다.

“태자비는 평안한지요?”

“예, 산모도 아이도 건강합니다. 어서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이진은 이선이 그러하였듯, 의사용 가운을 입고 전각 안으로 들어왔다.

상궁이 강보(襁褓)에 싸인 아이를 황태자에게 조심스럽게 넘겼다. 이진은 아이를 쳐다보았다. 너무나도 작았다.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아이라니, 뭉클한 기분이었다.

“정말이지 노고가 많았습니다, 부인.”

땀을 흘리며 기절한 듯 쓰러져 있던 타티야나가 남편을 향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딸이라서 송구할 따름입니다.”

뜻밖의 말에 이진이 오히려 놀라워했다.

“아들이면 어떻고 딸이면 어떻습니까? 건강하게 태어난 게 중요하지.”

“그래도, 황실에서는 모두 후계자가 될 아들이 태어나길 고대했을 터인데······.”

어머니 알렉산드라가 딸만 연달아서 넷을 낳았기 때문에, 후계자가 될 아들을 낳으라고 러시아 황실로부터 얼마나 압박을 받았는지 타티야나는 잘 알고 있었다.

하물며 한국은 러시아보다 더 남아선호가 심했고, 타티야나는 내심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었다.

“개의치 마세요. 나는 물론이고, 부황께서도 아이의 성별을 따지실 분이 아닙니다. 자식은 하늘이 결정하실 일이고, 아들도 언젠가 태어날 터인데 뭘 걱정합니까. 그저 당신과 아이가 건강한 것만으로 족합니다.”

장차 후계자가 될 아들이 아니라는 게 전혀 아쉬워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아들딸 구별 않고 사랑을 베푼 이선의 영향을 받은 이진은 개의치 않았다.

“이 아이는 어머니를 닮아 아름다운 숙녀로 성장하겠지요. 딸아이가 커 갈 생각에 벌써부터 기쁩니다.”

“전하······.”

남편의 말에 타티야나도 미소를 지었다.

“부황께서 말씀하신대로, 이 아이는 대한의 천명과 신의 가호를 모두 갖고 태어난 운명의 아이니까요.”

이진은 자신과 타티야나의 피를 물려받은 딸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실로 이진과 타티야나, 이왕가와 로마노프왕가, 대한제국과 러시아, 동양과 서양의 결합을 상징할 운명의 아이였다.

작가의 말

??? : 운명의 아이... 크킹의 ‘운명의 아이’...? 그럼 천재에다 최강의 유전자가 아닌가?!

어머니를 닮아 엄청난 미인으로 성장하면 혼혈에 반감을 느끼는 노인들도 입 다물게 될...

혈우병 보인자라고 해도 꼭 유전되는 건 아니라서, 빅토리아의 후손인 유럽 왕실을 보면 1/3 정도가 유전되었습니다. 다만 그로 인해 러시아와 스페인은... (공교롭게 왕정도 폐지)

실제 조선 왕실의 영아사망률은 심각해서, 후기로 갈수록 손이 귀해지게 됩니다.

철종만 해도 5남 6녀를 얻었는데 그중에서 10세 이상 장성한건 박영효와 결혼하는 영혜옹주뿐입니다. (그나마도 15세에 요절)

고종은 9남 4녀 중에 10세 이상 성장한 건 4남 1녀, 어른까지 장성한건 순종, 의친왕, 영친왕, 덕혜옹주뿐입니다. 덕혜옹주가 막내로 알려져있지만 그 뒤로도 유아기에 죽은 왕자가 둘이나 더 있습니다.

이 세계관예선 역사의 변화로 13세에 죽은 이선이 오래오래 살고 있지만...

어린 소년이었던 이선이 마침내 할아버지까지 되었군요. 제가 다 감개무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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