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혁명의 시대 3부-160화 (733/812)

3부 156화 런던 스캔들

1923년 8월, 영국.

대한제국 정친왕 이안은 한국에서 온 전문을 받고 빙긋 웃었다.

“무슨 소식인데 웃어요?”

“황태자비 전하께서 공주님을 낳으셨네요.”

이안의 곁에 있던 아나스타샤도 기뻐하며 언니를 찾았다.

“마샤! 좋은 소식이야! 타냐가 예쁜 딸을 낳았데!”

“와, 정말? 대한제국 공주님이시네!”

마리야와 아나스타샤 자매는 서로를 껴안으며 감격을 표했다. 그들 자매 중에서 자식을 얻은 건 처음이었다.

“이제 다음은 마샤 차례네?”

“얘도 참. 결혼한 지 얼마나 됐다고.”

동생의 말에 마리야는 얼굴을 붉혔다.

* * *

마리야는 루이 마운트배튼과 5월에 결혼식을 올렸다. 빅토리아 여왕의 외증손자와 외증손녀, 영국 해군 원수의 아들이자 니콜라이 2세의 딸 결혼식에 수많은 로열패밀리가 참석해 축하했다.

“결국 어릴 적부터의 소원대로 결혼하는군.”

“선남선녀로군. 최고의 신랑에 최고의 신부야.”

“고인이 된 부친들이 보면 기뻐할 거야.”

“예전 같았으면, 러시아 공주의 결혼이 어마어마했지. 그런데 지금은 혁명으로 몰락한 처지니······.”

“그래도 신부가 지참금으로 100만 달러나 들고 왔다며?”

“아니, 200만 달러라던데?”

“엄청나군. 빈털터리 망명자 신세였는데 한국 황제가 결혼 기념으로 준 거라잖나.”

“자기 딸도 아니고 며느리의 동생한테 그 정도 지참금이라니.”

“소문대로 한국 황실이 엄청 부자이긴 한가 봐.”

하객들은 숙덕거리며, 신랑들러리로 참석한 이안을 쳐다보았다.

마리야의 막대한 지참금을 대한제국 황제의 내탕금으로 지원해 줬다는 게 알려지면서, 한국 황실은 동양의 대부호로 인식되었다.

5남매에 각자 몫으로 배정된 100만 달러 외에도, 타티야나는 자신의 몫을 영국으로 떠나는 마리야에게 양보했다.

“타냐, 고맙지만 그럼 타냐는······.”

“괜찮아. 난 대한제국 황태자비니까 별도 재산이 필요 없어. 새로운 터전으로 가게 된 네가 돈이 많이 필요하겠지. 러시아 여대공이 영국에서 무시당하지 않고 품위를 누리며 살아야지.”

“정말 고마워, 타냐! 이 은혜는 잊지 않을게.”

“다만 너 혼자 쓰라고 주는 건 아니야. 영국과 프랑스에 망명한 우리 동포들을 위해서 기금을 마련해 줘.”

“물론이지. 루이와 의논해서 기금을 설립하는 방향으로 알아볼게.”

지참금 200만 달러, 40만 파운드는 610파운드의 연봉을 받는 해군 대위 루이 마운트배튼에게 엄청난 자산이 되었다.

두 사람은 새로 런던의 집과 교외의 별장을 마련하고, 막대한 예금을 은행에 예치했다.

언니의 부탁을 받은 마리야는 빈털터리 신세로 서유럽에 망명한 백계 러시아인들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여, 망명 러시아인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고맙습니다, 여대공 전하. 저희를 잊지 않고 사비를 털어 도와주시다니.”

“아닙니다. 우리 모두 혁명 이후 얼마나 고생이 많았나요? 로마노프 가문의 사람으로서 의무지요.”

“역시 고귀한 공주님은 다르시군요.”

“이는 모두 한국 황제께서 도와주신 덕입니다.”

기금 출처는 한국 황제의 내탕금이었으니, 마리야는 이선의 관대함을 칭송했다.

“모든 나라가 우리를 외면할 때, 오직 한국 황제 폐하만이 우리를 받아 주고 자립할 길까지 열어 주셨습니다.”

“정말 고마운 분이십니다. 과연 로마노프 왕조의 구원자시군요.”

“동포 여러분, 극동 프리모리예(연해주)에 러시아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남아 있습니다. 정통 러시아의 마지막 보루입니다.”

“예, 기억합니다. 콜차크 제독과 브랑겔 장군이 함대를 이끌고 극동으로 갔지요.”

“지금 프리모리예는 인구 부족으로 고민이 많습니다. 여기서 망명자로서 힘겹게 사는 것보다, 새로운 터전에서 국민으로서 살아가는 게 나을 겁니다. 이주를 원하는 분들은 우리가 힘껏 도와드리겠습니다.”

마리야와 아나스타샤는 백계 망명자들의 연해주 이주를 홍보하고 지원하는 일도 했다.

연해주의 인구가 예전에 비하면 급증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소비에트 러시아와 비교하면 100 대 1의 인구 비율이었다. 최대한 인구수를 늘려 백계 러시아의 보루로 만들어야 했다.

결혼식을 올린 후, 마운트배튼 부부는 휴가를 얻어 유럽과 미국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아름답고 고귀한 신혼부부는 특히 미국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떠오르는 할리우드 스타인 찰리 채플린(Charles Chaplin)의 무성영화에도 등장했다.

그동안 이안은 케임브리지에서 대학 예비과정을 이수하며 입학을 준비했고, 아나스타샤는 런던에서 신혼부부의 집을 지켰다.

아나스타샤의 성화에, 이안은 여름에 예비과정이 끝나자마자 런던으로 돌아왔다.

“공주님은 왜 미국 여행에 함께 안 갔어요?”

“하아, 눈치 없는 왕자님. 아무리 동생이라지만 태어나서 한 번뿐인 신혼여행을 어떻게 따라가요. 신혼부부만의 행복한 시간인데.”

“아, 그런가. 동양에는 신혼여행 개념이 없어서.”

“신혼여행은 필수죠. 안은 결혼하면 신혼여행 어디로 가고 싶어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이안은 쓴웃음을 지었다.

“글쎄요. 그리스? 작년에 그리스 여행하고 싶었는데 갑작스러운 정변 때문에 중단했어요.”

“아아, 그리스 정말 아름답죠. 나도 가 보고 싶은데.”

“그리스 국내 정세가 안정되어야 가능하겠죠. 그리스 왕족들도 망명하는 상황이니.”

1923년, 그리스는 전쟁 패전의 여파로 혼돈에 빠져 있었다. 왕정은 지탄의 대상이 되었고, 왕족들도 거센 비난을 받았다.

패전의 책임을 지고 고위 군사령관들이 군사재판을 받았고, 왕당파 장군 6명이 처형되었다. 요르요스 1세의 4남이자 콘스탄티노스 국왕의 동생인 안드레아스 왕자도 고위 군사령관으로서 재판을 받았다.

빅토리아 여왕의 외증손자이기도 한 안드레아스는 영국에 구원을 요청했고, 러시아 황실의 망명을 거절한 데 죄책감을 갖고 있는 조지 5세가 긴급히 개입하여 안드레아스를 구명했다. 그리스 정부는 처벌을 내리는 대신 안드레아스 일가를 추방했다.

안드레아스 일가는 영국 군함을 타고 코르푸를 거쳐 이탈리아로 망명했다. 그들이 원했던 영국 망명은, 그리스 신정부와의 관계 악화를 우려한 영국 정부가 불허했다.

재산 한 푼 없이 몸만 챙겨 망명한 안드레아스 일가는 난처한 지경에 놓였다.

“안드레아스 왕자 일가는 우리 가족이잖아.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어.”

안드레아스는 바텐베르크의 앨리스(Alice von Battenberg) 공녀와 결혼했다. 앨리스는 바로 루이 마운트배튼의 큰누나였다.

루이와 앨리스의 어머니 빅토리아는 마리야의 어머니 알릭스의 언니이기도 했으니, 외사촌 간이기도 했다.

“누나 처지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알지. 나도 그들을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만 정부에서 불허한 사항이니······.”

“가장 어린 아이 이름이 필리포스라고 했던가?”

“아, 필립. 너희 집안처럼 딸 넷에 막내아들이지.”

“그래. 갓 태어난 아이가 무슨 잘못이야? 그 아이가 불행한 처지가 되면 좋겠어?”

“마샤, 물론 내 조카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나도 그들을 우리 집에 데려오고 싶어. 하지만 난 군인이야. 군인인 내가 정부를 거역할 수는 없어.”

남편의 처지를 이해한 마리야가 한숨을 쉬었다.

“알겠어. 그럼 내가 책임지고 그들을 돌볼게. 그건 상관없겠지? 난 러시아 국민이지 영국 국민이 아니니까, 영국 정부의 명령을 받을 의무는 없지.”

망명자 신세였던 마리야는 안드레아스 일가에게 동병상련을 느꼈다.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나 정치적 변동으로 몰락하고, 망명도 받아 주지 않아 버림받은 그 기분은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가 없었다.

“마샤, 네 뜻이 그렇다면 난 지지하겠어. 하지만 넌 내 아내고, 세상 사람들은 널 영국 해군 장교의 아내라고 인식하게 될 거야. 그걸 기억해 두길 바라.”

“하아, 알겠어. 그럼 믿을 만한 사람과 대안을 찾아볼게.”

마리야는 믿을 만한 사람, 즉 이안과 상의를 했다.

“저도 돕죠. 런던이 무리라면 파리가 어떨까요?”

“파리는 망명자의 천국이니까, 그게 좋겠네요.”

마리야는 사비를 털어 안드레아스 일가의 망명을 도왔다. 안드레아스의 형수인 그리스 왕자비 마리 보나파르트(Marie Bonaparte)가 소유한 파리 교외의 별장이 새 터전이 되었다.

이안은 시간을 내서, 마리야-아나스타샤와 함께 직접 파리로 가서 망명자들의 정착을 도왔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 은혜는 잊지 못할 거예요. 반드시 보은하겠습니다.”

“가족으로서 마땅히 도와드려야죠. 루이도 여러분의 안정과 행복을 바라고 있으니까요.”

마리야는 앨리스의 품에 안겨 있는 어린 필리포스를 보며 싱긋 웃었다. 필리포스는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잘생긴 아이였다.

“괜찮으시면 루이와 제가 이 아이의 후견인이 되고 싶어요.”

막내 필리포스(필립)는 누나 넷을 둔 고명아들이라, 공교롭게도 OTMAA 5남매와 가족구성이 같았다. 마리야는 필리포스를 보며 마치 어린 알렉세이를 보는 기분이었다.

“여대공 전하께서 그래 주시면 영광이지요.”

필리포스의 할머니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여대공은 차르 알렉산드르 3세의 사촌으로, 즉 마리야하고는 친가로도 8촌 관계일 만큼 로마노프 왕가와도 관계가 밀접했다.

“기뻐요! 조카, 아니 아들처럼 생각할게요.”

마리야는 기뻐하며 필리포스의 금발을 쓰다듬었다. 아이도 외숙모(이자 당고모이자 8촌 누나)의 손길이 나쁘지 않은 듯 방긋 웃었다.

“소문의 동양 왕자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저야말로 보나파르트 가문의 후예를 뵐 수 있어 영광입니다.”

마리 보나파르트는 성에서 알 수 있듯이, 나폴레옹의 동생 뤼시앵 보나파르트의 증손녀였다.

“한국 황제 폐하께서는 동양의 나폴레옹이라고 불린다지요? 1919년에 파리에 오셨을 때 저도 뵌 적이 있습니다.”

“아아, 그렇군요.”

“사실 어디의 나폴레옹이란 말은 굉장히 흔한 비유가 되어 버렸지만, 한국 황제 폐하께서는 그렇게 불릴 자격이 있지요. 위대한 부친을 두어 기쁘시겠습니다.”

이안은 미소를 지었다.

대한제국이 연합국 일원으로 활약한 데다, 이선의 파리 방문 이후에는 서양에서도 그 명성이 드높았다. 이안 역시 어딜 가나 ‘한국 황제의 아들’로서 환대를 받았다.

이안은 가끔씩, ‘한국 황제의 아들’이 아닌 인간 이안 그 자체로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선의 아들로 태어난 이상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안, 그렇게 자주 웃어 봐요. 웃으면 좋은데 맨날 심각한 표정만 짓지 말고. 봐, 잘 어울리네.”

아마도 이안을, 황제의 아들이 아닌 순수한 인간 이안으로 대하는 건, 부모님과 누이를 제외하면 아나스타샤 로마노바만이 유일할 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이안은 이성적으로 황태자비의 여동생인 아나스타샤를 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감정적으로 친밀함을 느끼는 걸 어쩔 수가 없었다.

아나스타샤가 이안을 좋아하는 만큼은 아닐지라도, 이안 역시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가 태자비의 누이인 이상, 나와는 안 될 일이야. 부황을 곤란하게 할 수는 없지. 포기해야 하는데······.’

이안은 쓴웃음을 지었다.

결국 어딜 가나, 황제의 아들이라는 운명의 굴레는 피할 수 없었다. 더욱이 자신은 서자, 그것도 혼혈의 서자였다. 더욱 처신을 조심해야 했고, 흠 잡힐 일은 일절 피해야 했다.

그는 대한제국 황제의 아들이었다.

* * *

이안은 진심으로 조카의 탄생을 기뻐했다.

황실에서 혼혈이 태어난 걸 기뻐하기로서는, 그 자신만 한 이가 없을 터였다.

혼혈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된다면, 자신과 누이 이라가 택할 수 있는 삶의 선택지도 한층 넓어질 터였다.

그건 영친왕 이영도 마찬가지였다. 이영과 이서아 역시 혼혈인 아들 이연을 위해서라도, 황태자 부부의 행복과 다산(多産)을 원했다.

그런데, 황손의 탄생으로 경사를 맞이한 황실에, 영국발 태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1923년 8월 17일, 동맹조약이 만료되어 한영일동맹이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한영일동맹은 워싱턴 조약으로 대체되었고, 동맹은 만료되어도 미영불한일 5개국 협력체제의 일원으로 남았다.

“수교 40년, 동맹 20년간 양국은 최상의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비록 동맹은 만료되었지만, 양국의 우호는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양국은 세계의 자유를 위해 함께 싸운 전우이자 혈맹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기억할 것입니다.”

이안은 주영한국대사 이한응과 함께 영국 외무부가 주최한 행사에 참석했다.

비록 한국이 영국보다 미국에 더 가까워졌고, 영국이 한국보다 일본을 더 선호한다고는 하지만, 양국은 여전히 국제질서의 중요한 우방이었다.

비록 ‘그 사건’이 양국의 흑역사로 남아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드러나지 않고 역사의 어둠 속으로 잊혀져 가는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특종 보도가 있기 전까지는.

“안! 오늘 데일리 메일 특집호 봤어요?!”

“아뇨, 무슨 소식이라도?”

아나스타샤가 전해 준 ≪데일리 메일(The Daily Mail)≫ 특집호를 본 이안의 표정이 순간 경악으로 물들었다.

「웨일스 공의 오리엔탈 스캔들!」

자극적인 제목에 엇갈리듯, 신문 첫 면에는 웨일스 공 에드워드와 대한제국 영친왕비 이서아의 사진이 실렸다. 이서아는 주영한국대사를 지낸 이영의 아내로서 사교계에 알려진 인물이었다.

「‘제국의 아폴로’, 웨일스 공은 대영제국을 상징한다. 제국의 후계자, 수려한 외모, 시대를 선도하는 뛰어난 패션 감각. 그를 열렬히 사모하는 전 세계 여성들의 수는 셀 수 없이 많을 터이다.」

「웨일스 공의 역사적인 아시아 방문에, 아시아인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전례 없는 환호였다. 그런데 대체, 아시아 방문 중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본지의 취재에 따르면, 웨일스 공이 한국을 방문한 작년 6월에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본지의 취재에 응한 익명의 제보자에 따르면, 웨일스 공은 한국 황제에게 머리 숙여 사과하는 일이 있었다. 대체 어떤 과오를 저질렀기에, 대영제국의 후계자가 동양의 군주에게 머리 숙여 사과해야 했단 말인가?」

「한국 측의 주장에 따르면, 웨일스 공이 한국 황제의 동생이자 주영한국대사를 지낸 프린스 영(이영)의 러시아 부인, 프린세스 아나스타샤 브론스카야를 희롱했다고 한다.」

「한국 황제는 격노하여 당장이라도 선전포고하겠다고 분노를 쏟아 냈고, 이에 당황한 특사단은 진위여부는 살펴보지도 않은 채 동양 군주의 분노에 몸을 납작 엎드렸다.」

「더욱 분노할 일은, 사과를 강요한 주체가 영국 정부 – 즉 로이드조지의 정부였다는 것이다! 런던에서는 머나먼 서울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즉각 파악할 능력이 없다. 그런데도, 로이드조지는 특사단에 특명을 내려 대영제국의 후계자인 웨일스 공에게 머리 숙여 사과할 것을 강요했다!」

「영국 역사상, 왕위를 계승할 웨일스 공에게 이렇게 수치스러운 일이 또 있었단 말인가? 결코 없었다! 중세에도 이런 일은 없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대영제국의 황태자가 동양의 군주에게 머리 숙여 사과하는 치욕이 벌어진 것이다!」

「대영제국은 도처에서 후퇴하고 있다. 아일랜드에서, 인도에서, 이집트에서, 아라비아에서, 페르시아에서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세계의 패권은 우리의 옛 식민지 미국에 넘어갔고, 동양의 패권은 우리의 기술과 자본을 구걸하던 일본과 한국에 넘어가고 있다.」

「웨일스 공의 굴욕은 곧 대영제국의 굴욕을 상징한다. 대영제국의 후퇴를 상징한다. 우리는 결코 이 굴욕과 후퇴를 참을 수 없다. 우리는 로이드조지와 당시 정부 당국자들의 책임 있는 해명을 요구한다!」

작가의 말

??? : 찌라시의 원조가 영국 타블로이드라는건 알고 있겠지? 특히 왕실 관련 특종은 영국이 세계 제일!!!

에, 영국 황색 언론은 정말 대단하죠. 오늘날에도 악명 높은 데일리 메일도 무려 130년 역사를 자랑합니다. 이미 1920년대에도 유명했는데, 단순히 타블로이드를 넘어 자극적인 보수우파 언론으로 유명했습니다.

아마 작중 서양의 한국 황실 인식은 오늘날 아랍 왕실과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싶네요.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필리포스는 여러분도 잘 아시는 필립 마운트배튼 공입니다. 저 시대에 태어난 분이 작년까지 생존해있었다는게 새삼 놀랍습니다...

작중 필립과 마리야는 무려 3중 친척입니다. 외숙모이자 외가로 5촌이자 친가로는 8촌 누나. 도대체 유럽 왕실의 결혼이란;; 동양에선 상상하기 힘들군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