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혁명의 시대 3부-163화 (736/812)

3부 159화 파시즘 세계혁명

로더미어는 화제를 전환했다.

“우리에겐 로이드조지나 볼드윈같이 우유부단한 자들이 아니라, 단호한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소비에트 러시아를 저지하고, 아시아인들의 발흥을 막을 강력하고 단호한 지도자가.”

“그렇다면 역시 외무장관 커즌 후작입니까?”

보너로의 후임 총리로 볼드윈과 커즌이 경쟁할 때, 로더미어는 볼드윈에 반대해 커즌을 적극적으로 밀었다. 인도 총독을 역임한 커즌은 확고한 제국주의자였다.

“커즌 후작? 앞으로 귀족원 의원이 총리가 될 가능성은 별로 없어요. 이제 정치생명은 거의 끝난 셈입니다. 제기랄, 귀족이라는 게 오히려 발목을 잡히는 시대가 오다니. 이게 바로 그 대단한 민주주의 시대란 말입니다!”

그 자신도 귀족원 의원인 로더미어는 열을 올렸다.

후임 총리로 유력했던 커즌은, 후작이자 귀족원 의원이라는 지위가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보수당 원로인 밸푸어는 민주주의 시대에 귀족원 의원이 총리가 되는 건 서민원(하원)이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국왕에게 조언했고, 조지 5세는 조언을 받아들였다.

귀족원 의원은 총리가 될 수 없다는 역사적 선례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커즌, 커즌이라. 차라리 그 딸 신시아와 결혼한 젊은이 쪽이 더 가능성이 있지요.”

“오스왈드 모슬리? 제법 말재주는 좋다지만, 빨갱이 노동당과 놀아나는 애송이 아닙니까!”

안코츠 준남작(Baronet of Ancoats) 오스왈드 모슬리(Oswald Mosley)는, 나이는 20대로 젊지만 탁월한 웅변력으로 하원의 촉망받는 의원이었다.

1918년 22세의 젊은 나이에도 커즌 후작의 사위라는 후광으로 보수당에서 출마하여 당선되었지만, 보수당의 보수성을 비판하고 탈당하였다.

변혁의 시대를 맞이한 탓인지, 모슬리는 갈수록 좌경화되어 1923년 무렵에는 노동당에서도 좌파에 속하는 독립노동당 계파와 정견(政見)을 같이했다.

“그렇게 따지면, 무솔리니도 한때 급진사회주의자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빨갱이들을 때려잡는 아주 훌륭한 국가주의자죠.”

무솔리니는 한때 이탈리아 사회당의 지도부였다가 대전쟁 참전을 지지하다 제명되었다. 종전 후 파시스트 조직을 창설하여 옛 사회당 동지들에게 테러를 가하고 있다는 건 유명한 일화였다.

“그래도 지금 하는 걸 보면······.”

“젊은 혈기에 그럴 수도 있죠. 그는 본질적으로 귀족이라 노동당하고는 어울리지 않아요. 하지만 청년 세대가, 노동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귀족이지요. 노동자들도 투표권을 행사하는 민주주의 시대 아닙니까? 우리에겐 그런 인재가 필요합니다. 지금부터 키워 줘야 해요.”

“흐음······. 그래도 빨갱이들과 같이 놀아나는 친구는 믿기가 어려운데요.”

비버브룩이 노동당에 가담한 모슬리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손을 내젓자, 로더미어가 씩 웃었다.

“극비사항 한 가지 더 알려 드리지요. 그 내부고발자, 정보를 내게 흘린 게 바로 오스왈드 경입니다.”

“네에? 정보 출처가 모슬리라고요? 일개 서민원 의원이 무슨 수로 극비사항을 안답니까?”

“조금 전에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가 누구 사위라고 했지요?”

“아, 커즌 후작의 사위지요!”

비버브룩이 무릎을 탁 쳤다.

“그 입 무거운 노인네가 노동당에 가담한 사위한테 국가기밀을 흘릴 줄이야.”

“아니, 물론 그건 아닙니다. 외무장관이 그렇게 분별력이 없지는 않죠. 다만 딱 한 사람, 아내에게만 말했던 모양입니다. 어디서나 부부간에는 비밀이 별로 없는 법이지요.”

“그렇다면 커즌 후작부인이······.”

“사위에게 전해준 거지요. 후작부인이 사위를 총애한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 아닙니까.”

두 사내는 서로를 바라보며 실실 웃었다. 신시아 커즌의 젊은 미국인 계모인 후작부인과 모슬리의 사이가 워낙 친밀해서, 사교계에선 그 둘이 불륜관계가 아니냐는 기이한 소문까지 돌고 있었다.

“그래도 이해가 잘되지 않습니다. 노동당에 가담한 사람이, 왜 노동당에 가장 극렬히 반대하는 데일리 메일에 정보를 흘렸단 말입니까?”

“정치라는 건, 적의 적은 동지 아닙니까. 오스왈드 경은 로이드조지와 자유당을 끝장내고 싶어 해요. 자유당이 약해져야, 보수당과 노동당 양당 체제가 구축될 테니까. 그리고, 볼드윈을 싫어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의견이 같거든.”

“과연.”

“그리고 무엇보다, 본질적으로.”

로더미어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오스왈드 경은 애국자입니다. 일반적인 좌파와 달라요. 대영제국의 애국자. 대영제국의 국익을 침해받는 걸 결코 용납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물며 왕실의 사소한 스캔들로, 한국 따위에게 대영제국이 목줄을 잡히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사람이지요.”

“아아, 과연 그렇군요.”

오스왈드 모슬리는 노동당 좌파와 정견을 함께하고 있지만, 사회주의자인 동시에 국가주의자였다. 왕실에 대해서도 충성했지만, 무엇보다 국가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했다.

로더미어는 바로 그 지점을 주목했다. 무솔리니는 한때 이탈리아 사회당의 기관지 편집장일 정도로 급진좌파였지만, 대전쟁을 맞이하여 극우 국가주의로 전향하지 않았던가?

“우리의 목적은 영국만이 아닙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무솔리니가, 파시즘이 승리해야 합니다. 현재 이탈리아에서는 파시즘의 승리가 눈앞입니다. 국왕이 총리로 임명하기만 하면 됩니다.”

역사의 변화로 1923년에도 무솔리니는 아직 이탈리아에서 정권을 잡지 못했지만, 파시즘은 갈수록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독일에서는 아직 주목받을 만한 인물이 없지만, 파시즘의 가능성이 싹트고 있어요. 요새 내가 바이에른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쪽에서 분명히 무솔리니에 필적할 인물이 나올 겁니다.”

“루덴도르프 장군이 바이에른에서 활동한다는 정보는 파악했습니다만.”

“루덴도르프가 주도하는 군부독재도 괜찮지요. 그는 이미 대전쟁기에 효율적으로 군부독재를 운용한 경험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는 낡았어요. 반영이라서 문제입니다. 장차 독일의 새로운 권력자는 게르만 인종의 단결을 추구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지요.”

독일에서는 파시즘 세력이 아직 미미하였고, 일부 선동가들이 세력 확산을 위해 노력 중이었다. 전 참모차장 루덴도르프를 중심으로 하는 프로이센 군부 세력이 훨씬 강성했다.

“영국도 마찬가집니다. 시대착오적인 반독에 집착해서는 안 돼요. 프랑스 개구리들은 그걸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반공, 반소여야 합니다. 독일이 그 선봉에 선다면, 우리의 적이 아니라 친구가 될 자격이 있습니다. 영국에서도 유럽 문명의 단결을 이끌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보수당은 너무 낡았어요. 새로운 피가 필요합니다.”

파시즘의 지지자인 로더미어는 탁월한 웅변가인 모슬리에게서 무솔리니의 가능성을 보았고,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영국에서 파시즘이 성공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물론 우리에게는 국왕과 의회가 있습니다. 오랜 전통이지요. 전통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문명화된 영국이야말로, 입헌군주제를 이끌어나갈 능력이 있지요. 우리 문명화된 앵글로색슨족에게, 파시즘이 좀 천박해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그런 건 감정적인 라틴족이나 독재에 익숙한 게르만족이 더 어울리는 경향이 있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전통적 의미의 보수 우파들은, 파시즘을 대중을 선동해서 권력을 쟁취하는 천박한 형태의 이념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우리 도시들에 공산주의가 득세해서 이탈리아나 독일과 같은 혼란에 빠진다면, 파시즘은 필요할 겁니다. 그렇기에 파시스트들과 손을 잡을 필요가 있지요.”

보수주의가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공산주의를 저지하는 데 있어 파시즘만큼 적절한 파트너가 없었고, 그게 바로 보수주의자들이 파시즘과 손을 잡는 이유가 되었다.

“공산주의와 황인종의 위협으로부터, 유럽이 파시즘으로 단결해야 합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자작. 그 가능성을 타진하고 대중에게 알리는 게 우리 언론의 사명이겠지요.”

“그렇습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북 치는 사람입니다. 서커스의 주인공은 따로 있지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을 발굴하고 대중에 소개하는 것입니다.”

로더미어와 비버브룩, 두 ‘언론남작’은 술잔을 부딪쳤다.

“볼셰비키가 외치는 공산주의 세계혁명에 맞서서, 우리도 세계혁명을 추구해야 합니다. 파시즘 세계혁명!”

“듣기 좋은 말씀이군요. 파시즘 세계혁명!”

파시즘 세계혁명을 결의한 극우 언론남작에게 있어, 선동의 소재로 삼은 ‘웨일스 공의 오리엔탈 스캔들’은 사소한 서막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 사소한 스캔들이, 역사의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그들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향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 * *

대한제국, 황성.

웨일스 공의 스캔들을 악의적으로 폭로한 데일리 메일 보도에 대해서, 한국의 그 누구보다 이선이 빠르게 파악했다.

주영한국대사관은 외무부에 타진했고, 제국익문사 유럽지부는 이보다 한발 앞서 긴급전문으로 황실에 전송했다.

외무대신 이승만이 대경실색하여 전문을 들고 왔을 때는, 이미 이선은 내용까지 파악한 상태였다.

“폐, 폐하! 영국에서 급보가······.”

“이미 알고 있소, 외무. 그러니 호들갑 떨지 마시오.”

이승만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조심스럽게 황제의 눈치를 살폈다.

황제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까스로 참는 것처럼 보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폐하, 이는 황실에 대한 심각한 중상모략입니다. 즉시 영국 대사를 초치하고······.”

“아니오. 지금 그보다 시급한 건, 당분간 보도통제를 하는 거요. 이 보도가 나가게 되면, 분노한 국민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겠소. 사건을 명확히 파악할 때까지 만이라도 시간을 벌어 두어야 하오. 정부가 나서서 주요 언론사 대표들에게 양해를 구하도록 하시오.”

“예, 폐하!”

대한제국은 언론검열이 남아 있다지만, 원산 학살사건의 후폭풍에서 보았듯이 완전한 언론통제는 불가능했다.

개화당-신민당 연립정부 출범 이후에는 언론자유가 더욱 확산되었고, 검열의 빈도도 확연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황실에 관한 일은 예외였다. 가장 급진적인 자유주의 언론도 황실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조심성을 취했다.

황제와 황실의 문제만이 유일한 금기라고 할 수 있었다.

“당분간 이 사안에 대한 보도를 자제해 주시오. 헌법에 보장된 언론의 자유가 소중하기는 하지만, 불확실한 사안으로 황실의 존엄과 국민적 감정이 훼손되는 건 큰 문제입니다. 사안이 이렇게 됐으니, 여러 언론사의 양해를 구합니다.”

“알겠습니다. 당분간 정부의 지침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총리 박은식이 직접 양해를 구했다. 언론인 출신이기도 한 박은식의 양해에 언론사 대표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요 언론사 중 가장 진보적인 대한매일신보도 지침을 받아들였다.

영국인 어니스트 베델이 사주(社主)로서, 한국 정부의 압력을 받지 않고 원산 학살을 폭로할 만큼 강골이었으나, 하필 영국 언론으로 인해 발생한 일이니만큼 대한매일신보도 조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도 영국인입니다만, 이럴 때만큼은 제 조국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언론의 자유를 방패로 삼아 타국에 이렇게 모욕을 주다니.”

“그거야 배 사장의 잘못이 아니지요.”

“평생 한영관계의 증진을 위해 노력해 왔는데, 그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까 봐 걱정입니다.”

베델은 ‘배설’이라는 한국 이름을 쓸 만큼 한국에 애정이 깊었고, 오랫동안 한영우호회를 이끌며 한영관계 증진을 위해 노력했던 만큼, 앞으로 벌어질 일이 암담하기 짝이 없었다.

‘이 무례한 쓰레기 놈들을 어떻게 처리한다?’

이선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내려 앉히고, 냉철한 시각으로 돌아갔다.

손녀의 탄생으로 기뻐하던 이선에게, 영국이 참으로 훌륭한 탄생 선물을 보내 준 셈이었다.

‘누가 흘렸을까? 데일리 메일이라면 보수당과 유착관계에 있지 않나. 그렇다면 역시 보수당의 누군가인가?’

하지만 보수당이 폭로했다면, 당시 연립정부에 가담했던 보수당으로선 제 발등에 찍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보수당이 아니야. 그들이 그렇게 어리석을 리가 없다. 데일리 메일은 파시즘과도 유착관계가 있었지? 그쪽을 파헤쳐 봐야겠군.’

이선은 현대에서 언론의 역사에 대해서도 공부한 바 있었고, 21세기에도 영국 3대 언론인 데일리 메일이 전간기에 얼마나 추악한 과거를 갖고 있는지 대략 기억하고 있었다.

데일리 메일은 파시즘을 칭송했고, 무솔리니를 유럽의 구원자라고 찬양하였으며, 전쟁 발발 전까지는 나치와 히틀러에게도 비슷한 찬사를 보낸 바 있었다. 영국의 파시즘 운동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대한이 그렇게 만만히 보이나? 목적이 무엇이든, 배후가 누가 됐건 간에, 잠자는 호랑이의 수염을 건드린 줄 알아라.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

이선은 제국익문사 유럽지부에 영국의 최근 정치적 동향과 언론의 보도 경향, 데일리 메일 사주가 누구와 접촉하고 있는지 극비리에 조사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친왕 부부는 당분간 연해주에 머무르며 양국 관계의 증진을 위해 노력하길 바란다.」

이선은 연해주 방문을 마치고, 조카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돌아오던 영친왕 부부에게 다시 연해주로 돌아갈 것을 명령했다.

‘결국, 국내에 알려지긴 할 텐데, 이 사건으로 아우와 제수씨가 크게 상처받을 수 있다. 차라리 연해주에 있는 게 낫겠지.’

이선은 이영-이서아 부부가 받을 충격과 상처를 우려했다.

성 문제가 터지면 여자 탓으로 돌리는 수구적 관념이 여전히 지배적인 문화에서, 비난의 화살이 피해자인 이서아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컸다.

백인 황태자비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종친들도 차마 황태자비는 비판할 수 없겠지만, 그보다 만만한 친왕비를 향해 비난을 집중시킬 수 있었다.

이선은 결단코 그런 상황을 원치 않았고, 사안이 알려질 경우에 대비해 교서도 준비하고 있었다.

국내 보도를 제한한다고 해서, 비밀을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다.

영국발 보도는 바로 다음 날 미국에서도 경쟁적으로 특종으로 보도되었고, 그다음 날이면 일본에서도 보도되는 상황이었다.

관료와 지식인 중에서는 외국 신문을 구독하거나 외국인들과 친분을 맺는 이들이 적잖았고, 미국 유학파인 군무협판 박용만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다.

연해주 방문을 마치고 귀국 중이던 박용만은, 원산 주재 미국 영사관에 들렀다가 충격적인 보도를 전해 들었다.

“이런 천하의 개자식들을 보았나. 대한을 어찌 보고 이따위 모욕을 해!”

박용만은 분노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단순히 국가주의를 넘어, 황제와 황실에 대한 그의 충성은 절대적이었다.

“도대체 외무부에서는 뭘 하고 자빠진 거야! 영국 눈치 보느라 여태 대사 초치조차 안 하고 있는 건가?”

박용만은 한국 정부, 특히 외무부의 후속조치가 없다는 데 분개했다.

“교환! 빨리 황성 외무부 연결해주시오. 누구냐고? 나 군무협판 박용만이오, 지금 당장!”

박용만은 즉시 외무부를 향해 전화를 걸었다.

“전화 받았습니다. 외무부입니다.”

“나 군무협판 박용만이오. 외무대신 당장 바꾸시오.”

“용건이 무엇인지 먼저 말씀해 주셔야······.”

“국가대사에 대한 극비사항! 지금 당장 바꾸라니까!”

“아, 알겠습니다.”

박용만이 분노를 삭이면서 기다리는데, 전화를 받은 사무관이 이승만의 말을 전했다.

“외무대신께서 이렇게 전하시랍니다. 협판이 무슨 말을 할지는 알겠는데, 전화로 이야기할 수 없는 사안이니 자세한 건 황성에 오면 말씀해 주시겠답니다. 아, 황제 폐하의 특명이니 경거망동하지 말고 은인자중하시랍니다.”

“뭐, 뭐야? 이봐! 어이!”

전화는 이미 끊어져 있었다. 박용만은 분노를 터뜨리며 수화기를 쾅 내려트렸다.

“이승만 이 매국노 같은 놈, 이런 중대 사안에 황제 폐하의 명을 팔아서 몸을 사려! 어디 두고 보자.”

이선의 특명으로 인해 외무부가 아직 행동에 나서지 않은 거였지만, 박용만은 친영파인 이승만이 영국 눈치 보느라 몸을 사리는 것이라고 오해했다.

박용만은 황성이 아니라, 신채호와 만나기로 예정되어 있는 평양행 특급열차에 즉시 몸을 실었다.

작가의 말

??? : I will find you, and I will kill you.

아시는 분들이 이미 많습니다만, 오스왈드 모슬리는 전간기 영국 파시스트 연합을 이끈 파시즘 정치가입니다. 원래 그 자신도 귀족이고 외무장관 커즌 후작의 사위였죠. (부인 신시아도 정치활동을 함께 함) 다만 작중 시점에서는 보수당을 탈당하고, 노동당에서도 급진적인 독립노동당과 활동을 같이 하던 무렵입니다. 무려 케인즈의 지지를 얻을만큼 진보적인 경제정책을 주장했습니다.

파시즘으로 전향한건 1930년의 일이고, 이때 모슬리를 밀어준게 바로 로더미어와 데일리메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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