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161화 배후 조종
평양의 소식이 전해지며 황성의 민심이 동요했다. 영국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자, 더 이상 비밀로 할 수가 없었다.
“폐하, 참으로 황공하옵게도, 더 이상 감출 수가 없습니다. 교지를 내리심이······.”
“그래야겠지. 교서를 반포하시오.”
총리 박은식의 건의를 받은 이선은, 사전에 준비한 교서를 반포하도록 했다.
“외무대신은 짐의 명을 받아 때를 기다린 건데, 군무협판이 성급하게 군중을 선동했소. 군무협판은 마땅히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할 거요.”
“지당하신 하교이옵니다, 폐하!”
“송구하옵니다, 폐하! 즉시 경질을 통보하도록 하겠습니다.”
박용만 경질 명령에 외무대신 이승만이 즉각 찬동하고, 군무대신 이동휘가 송구해하며 고개를 숙였다.
“교서를 반포하시오. 그리고 영국 대사를 초치하시오. 짐이 직접 만나겠소.”
이선은 머리가 지끈거린 듯 이마에 손을 얹으며 모두 물러나라고 손짓을 했다. 대신들이 황송해하며 고개를 조아리며 물러났다.
「작년, 광무 26년 6월. 한영수교 40주년을 맞이하여 대영제국 황태자가 국빈으로 대한을 방문하였음은 그대들 국민도 잘 알 터이다. 대한은 정성을 다해 국빈을 예우하였고, 열렬히 환영하였다.」
「접반사를 맡은 영친왕과 영친왕비는 영국 황태자를 자택에 초청해 정성껏 모셨다.
문화의 차이로 인해, 영국 황태자는 서양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친왕비를 여인으로 대했고, 태생은 서양이라 할지라도 대한황실의 일원이 된 친왕비는 이를 준엄히 꾸짖었다. 이에 황태자는 실수를 깨닫고, 자신의 행동을 반성했다.
영국 대군주이자 인도 황제이신 조지 5세의 명을 받아, 황태자는 짐이 친견하는 가운데 친왕 부부에게 정중히 사과하였다. 친왕 부부는 영국 황태자의 실수를 관대히 용서하였다.」
「이게 바로 사건의 전말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동서양의 문화 차이에서 비롯된 불행한 사건이다. 영친왕비는 대한의 여인으로서 흠잡을 바 없는 예의를 보였고, 영국 황태자는 비록 실수하였으나 곧 잘못을 깨닫고 정중히 사죄하였다.
이미 양국 군주와 정부의 동의로 끝난 사안을, 영국의 일개 언론이 부적절한 추측을 기반으로 악의적인 보도를 하여 짐은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어떠한 이유로 이런 악의적 보도를 하였는지, 분명히 밝혀내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짐의 국민에게 말하노니, 이 사건은 영국 왕실이나 정부와는 무관한 사안이다. 대한제국과 대영제국은 동맹이자, 지금도 국제질서의 중요한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우방이다. 불미스러운 사안으로 양국의 관계가 훼손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황제의 교서는 침착하고 냉철했다.
영친왕비는 올바른 처신을 하였다고 강조함으로써, 성 문제가 발생하면 흔히 여자 탓으로 돌리는 반동적 관습에 쐐기를 박았다.
웨일스 공 에드워드의 추행은 ‘문화의 차이로 인해 발생한 해프닝’일 뿐이며, 이미 사과하여 해결된 문제이다.
영국 왕실이나 정부와는 무관한 사안이라 믿는다. 하지만 악의적으로 보도한 영국 언론을 용납할 수가 없으며, 엄중히 책임을 물겠다.
이는 다분히 국민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 특히 영국을 향해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대한제국 황제와 황실은 악의적인 보도에 깊은 상처와 모욕감을 입었음에도, 영국 왕실의 명예와 양국의 우호를 위하여 국민 여론의 격화를 막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에 상응하는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민의원 회기(會期)에서도, 이 사건이 가장 중요한 소용돌이로 떠올랐다.
여야를 막론하고, 민의원은 만장일치로 영국 언론 규탄 결의안을 상정하여 가결했다. 본래는 영국 정부를 규탄하는 결의안이었지만, 황제의 교서 반포 이후 언론만 비난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대체 외무부는 뭘 하고 있는 겁니까? 영국의 모욕에 단호히 대응해야 하지 않습니까!”
야당에서는 좌우를 막론하고 주무부처인 외무부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나 역시 즉각적인 대처를 원했지만, 지엄한 황명을 받아 때를 가늠하고 있었습니다. 교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성상께서 대국적인 견지로 냉철한 판단을 내리시는 동안, 충신을 자처하며 곤란하게 만든 자들은 바로 지난 평양 집회를 조직한 자들입니다! 이 신성한 의회에서 추방되어야 마땅합니다!”
외무대신 이승만은 전 군무협판 박용만과 신민당 의원 신채호를 비난했다.
이승만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개화당 내에서 박용만을 출당할 것을 외치며 정치적 공세를 퍼붓고 있었다. 시위를 주도한 이가 신채호요, 격화가 신민당의 정치적 기반인 평양에서 일어났기에 신민당을 비난하는 건 덤이었다.
“외무대신! 황제 폐하와 황실이 모욕당한 이 중차대한 사건을, 자신에게 유리한 정쟁으로 사용할 생각입니까?”
“내년 총선을 위함입니까? 총리가 되기 위해서라면 수단방법 가리지 않겠다는 거요?”
신민당과 진보당에서는 이승만을 비판했다.
발언권을 얻은 신채호는 더욱 강경히 비난했다.
“그렇습니다! 외무대신은 영미가 주도하는 국제질서를 운운하면서, 대한을 영미에 팔아먹을 기세입니다. 고구려를 당나라에 팔아먹은 연남생(淵男生)과 악비(岳飛)를 금나라에 팔아먹은 남송 진회(秦檜)와 다를 바가 없는 자입니다! 이런 이가 대한의 총리가 된다면,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진회는 중국사 최악의 매국노로 치부되는 인물이고, 근대 한국 민족주의자들에게 연남생은 고구려를 무너트린 최악의 매국노로 떠오르고 있었다.
즉, 이 둘에 빗댄다는 건 최악의 비난이었다.
“뭐요! 연남생? 진회? 신 의원, 지금 발언 당장 취소하시오! 고얀 사람 같으니라고!”
“정회(停會)! 긴급 정회합니다!”
이승만이 분노하여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를 보이자, 의장이 정회를 선언하여 가까스로 뜯어말렸다.
‘민의는 소중하지만, 통제되지 않는 군중은 위험하다. 하마터면 성상과 국가에 큰 누를 끼칠 뻔했어. 우성의 방식이 옳은지 의심스럽군.’
이승만을 향해 격렬히 비난을 쏟아 내긴 했지만, 신채호는 황제의 교서를 떠올리며 평양 시위를 반추했다. 정치적 대의를 위하여 박용만과 손을 잡기는 했지만, 그 방식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경운궁 정관헌.
주한영국대사 램프슨 남작은 황실 호위대의 경호를 받으며 입궁했다. 분노한 군중의 불미스러운 공격을 피하기 위함이었으나, 황제의 교서가 내려지자 대사관을 포위하던 군중은 빠르게 해산했다.
영국대사관에서 경운궁은 지척이었다. 그 짧은 거리를 가면서, 대사는 지옥처럼 먼 길처럼 느껴졌다.
‘진작 임지를 옮겼어야 했는데. 망할 신문 같으니!’
램프슨은 데일리 미러가 진심으로 원망스러웠다.
작년 6월에 황제의 역린을 체험했던 램프슨은 이번에는 어떤 분노를 경험할지 다리가 덜덜 떨렸다.
그런데, 황제의 반응은 뜨거운 분노가 아닌, 싸늘하고 차가운 냉정함 그 자체였다.
“대사.”
“예, 폐하.”
“짐과 대한이 귀국에 뭘 그리 잘못을 했소?”
“예, 예?”
대사는 당혹스러워하며 황제를 쳐다보았다.
“지난 일은 언급하고 싶지도 않지만, 영국 언론은 짐을 러시아 스파이로 몰았지. 이제는 아우의 아내를 팔아 웨일스 공을 함정에 몰아넣어 영국을 옥죈 추악한 동양의 전제군주로 만드는군.”
“폐, 폐하. 그건······.”
“겨우 2만이 죽은 주제에 영국과 대등한 위치에 서려고 한다고? 이게 동맹의 승리를 위해 피를 흘린 나라에 할 말이라 생각하오?”
할 말이 없는 대사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귀국은 짐과 대한이 그렇게 못마땅하오? 동양의 소국이 영국과 대등한 위치에 서는 게 그리 못마땅하다는 건가? 그래서 동맹이 끝나자마자, 이런 말도 안 되는 억측을 뿌린 건가?”
“절대로 아닙니다. 이건 일개 언론의 망동······.”
이선은 대사의 말을 다 듣지 않고 끊었다.
“이제 속내를 알겠소. 짐과 황실이 인종적 타락을 부추긴다고 생각하겠지? 결국 고귀하신 백인의 혈통에 열등한 황인의 피가 섞였다고 비난하는 게 아닌가? 내 아우와 제수를, 내 아들과 며느리의 결혼이 참을 수 없이 역겹다는 거 아닌가?”
“폐, 폐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한국 황제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리라고 생각하지 못한 대사는 사색이 되어 고개를 흔들었다.
“짐이 서양과 교류한 지가 어언 40년이 넘었소. 서양 인종주의자들이 벼락출세한 원숭이 취급하는 걸 모를 것 같소? 그래도 나는 지금껏 참고 넘겼소. 국익을 위해서. 참고 또 참았지. 하지만 이제 인내심의 한계가 오는군.”
“폐하! 그렇지 않습니다. 이건 결코 정부 입장이 아니며······.”
“그러거나 말거나, 누군가 언론에다 흘린 건 사실 아니오? 일개 언론사가 극비사항을 무슨 수로 안단 말이오? 보나 마나 짐과 대한에 악의를 가진 누군가가 흘린 거겠지.”
그건 명확한 사실이라,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짐도 이 데일리 메일이란 신문의 성향을 알아봤소. 아주 극렬 우파 언론이더군? 공산주의를 주적으로 여기며, 인종주의 프로파간다를 생산하는. 대한은 국제 반공의 최전선에 서 있는데도 이런 모욕을 가한다는 건, 인종주의가 더 중요한 가치란 의미겠지.”
“송구합니다. 아마도 영국 국내 정치를 뒤흔들 목적으로 추정합니다만······.”
“대충 짐작이 가오. 그런데 이유가 뭐가 됐건, 폭탄을 맞은 우리로선 매우 불쾌하기 짝이 없소.”
이선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짐이 국민에게 문화 차이 운운하면서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자제를 요청한 건, 순전히 귀국 왕실의 명예와 양국의 우호를 위해서 그런 거요. 즉,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참겠소. 이제 앞으로 귀국이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겠소.”
“예, 폐하! 관대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본국에 폐하의 깊은 우려를 상세히 보고하겠습니다.”
이선은 인내심을 강조하면서, 문제 해결을 영국에게로 돌렸다.
영국 정부에 엄청난 부담감을 안겨 준 셈이었다.
물론, 그러면서도 구경만 하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 * *
그날 밤, 석조전 황제의 서재.
이선은 익문사 독리 이회영과 독대하며 야참을 했다.
이탈리아식 피자와 파스타, 스테이크와 와인이 준비되어 있었다.
당대 한국에서는 흔치 않은 요리였지만, 외빈 접대용 외에도 이선이 종종 양식을 즐겼으므로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온 요리사를 고용했다.
“오늘도 노고가 많았는데 들게. 아, 우당은 양식 안 좋아하던가?”
“아, 황공하옵니다. 감사히 들겠습니다.”
이선이 직접 식사를 권하자 이회영은 황공해하며 고개를 숙였다.
“우성 말인데, 근래 너무 과격한 거 아닌가? 그러다 군중이 정말로 영사관을 공격했으면 어쩌려고?”
이선이 지나가는 어조로 하는 말에, 이회영이 답했다.
“과잉 충성으로 사료됩니다만, 따끔히 경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충성도 지나치면 곤란한 법이야. 이번 일은 실망했다고 확실히 경고하게.”
대한제국 전 군무협판, 개화당 소장파, 우익의 떠오르는 스타인 박용만이 익문사의 통제, 아니 황제의 통제를 받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선과 이회영을 제외하면 없었다.
“그나마 우성은 말귀를 알아들으니까 됐네. 대한에도 진짜 파시스트가 등장하면 곤란하거든. 무솔리니 일당은 사보이 왕실도 우습게 보잖나.”
박용만이 민족주의적·팽창주의적 주장으로 우익에서 인기를 끄는 건, 물론 그 자신의 본심이었다.
우익의 신성으로 박용만이 떠오르자, 이선은 이회영을 보내 신뢰를 표명했다.
“성상께서는 군무협판의 식견과 충심을 높이 평가하십니다. 때가 되면 중히 쓰일 일이 있을 터이니, 개화당을 벗어나 독자적인 조직을 준비하십시오. 만약 자금이 필요하다면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성상께서 이 불초한 신하를 높이 평가하신다니, 황공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폐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하여 충심을 다하겠습니다.”
“단, 이 사실은 절대로 외부에 알려져서는 아니 됩니다. 헌정의 시대인데, 폐하께서 특정 정당이나 인물을 지지하는 건 곤란한 일이니까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무덤까지 가져가겠습니다.”
황제의 충성스러운 신하를 자처하는 박용만에게, 황제의 은밀한 지지 표명은 감격 그 자체였다.
박용만은 자신에게 대권의 기회가 주어졌다 생각하고, 개화당을 분열시키고 독자적인 조직 구성에 나섰다.
물론, 이선은 박용만에게 특별한 지지를 해줄 생각은 없었다.
“기껏 금릉위 일파를 숙청해서 개화당 우익의 힘을 꺾어 놨는데, 우남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지 않나. 난 제2의 박영효를 만들어 줄 생각이 없네.”
이승만이 반공을 내세우며 박영효 몰락 이후 지도자를 잃은 우익과 각 정당의 보수파들을 끌어들여 거대한 우파 포괄정당을 건설하려고 하자, 이선은 우려를 느꼈다.
개화당 일당 독재가 꺾이기는커녕, 헌정과 대의정치의 이름 아래 더 강성해질 판이었다.
하지만 명색이 헌정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황제가 정당 내부의 일까지 대놓고 개입할 수는 없었다.
“개화당 총재 선거에서 경의 아우가 이길 가능성은 얼마나 된다고 보나?”
“황공하오나, 어려울 듯합니다. 폐하께서 평하신 바와 같이, 신의 아우는 행정가로선 유능해도 대중 정치가로선 우남에게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이선이 은근히 개화당 총재로 밀던 이시영은 당내 경쟁에서 이승만에게 밀리고 있었다. 이시영의 친형인 이회영을 내세워 총재 선거에 개입할 수도 있었지만, 공평무사하고 청렴결백한 이회영은 오히려 친아우의 일이기 때문에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신이 아우의 일에 개입하는 건 옳지 못합니다. 만약 신의 아우가 총재이자 총리가 된다면, 친형인 제가 이 자리에 계속 있어서도 안 됩니다.”
“하하, 사람 엄격하기는. 짐은 경의 그런 점을 높이 평가하네. 경은 고균 못지않은 짐의 고굉일세.”
이선은 이회영의 바로 그런 점을 높이 평가했고, 그렇기에 오랫동안 최상위 정보기관의 총수 역할을 맡기고 있었다.
과거에는 김옥균이 가장 가까운 측근이었다면, 지금은 단연 이회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선은 은밀히 개입했다. 개화당뿐만 아니라, 진보당과 신민당, 심지어 사회당에도 익문사에 협력하는 ‘프락치’가 있었다. 각 정당 내부의 급진파 동향에 대해서 익문사는 파악하고 있었다.
이선이 택한 전략은 우익의 분열이었다. 박용만의 야심을 부추겨 개화당에서 급진 우익을 분리시키고, 통제할 수 있는 독자 정당을 건설하도록 밀었다.
개화당이 강성한 우익 포괄정당으로 가는 방향을 저지하였고, 황제에게 충성하는 박용만이 급진 우익의 총아로 떠오를수록,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파시즘의 열풍도 대한제국 내에서는 통제 가능한 변수 내로 묶어 둘 수 있다.
‘급진 우익을 통제 가능한 관제 야당으로 만들고. 좌익은 여운형을 중심으로 견실한 노동계급의 대표 정당으로 유도하고. 극좌와 극우는 철저히 배제한다. 공산주의와 파시스트는 용납 못 해.’
“현재 대한의 주적은 소비에트 러시아지. 이념적으로든, 지정학적으로든.”
“그러하옵니다.”
“하지만 당분간은 파시스트들을 손봐 줘야겠네. 단순히 데일리 메일 같은 황색언론을 손봐준다고 될 일이 아니야. 유럽 우익이 착각하고 있는 게 있는데, 국제 반공의 보루는 파시즘이 아니라 자유주의가 되어야 하네.”
이선은 파시스트가 설치는 미래의 귀결을 알고 있었다.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끔찍한 대살육의 광기.
베르사유 체제의 근본적인 한계로 인해 ‘2차’ 세계대전은 필연적으로 발생하겠지만, 꼭 나치-파시스트와 같은 희대의 정신병자들에 의해서만 주도될 필요는 없었다.
“경은 이탈리아 가 봤던가?”
“아뇨, 유럽은 알프스 북쪽만 가 봤습니다.”
“은퇴하면 이탈리아 꼭 가보게. 유서 깊은 역사, 아름다운 경치. 음식도 맛있고 포도주도 훌륭하지. 멋지고 아름다운 남녀들의 나라이기도 하고.”
이선은 파스타 접시를 비우고, 자신이 좋아하는 이탈리아산 아마로네 와인을 마시며 씩 웃었다.
“과연 훌륭해. 이탈리아가 인류에게 기여할 길은 음식과 술에 있네. 군대와 파시즘이 아니라.”
“익문사 요원들이 황명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네. 그럼 시작하지.”
이선은 다시금 건배한 후, 술잔을 비웠다.
작가의 말
이선 : 아아, 배후조종이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
그동안 이선이 이승만-박용만 갈등을 지켜본 이유가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승리로 대한제국과 포르투갈의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앞으로 포르투갈은 대한의 우방이요, 마카오는 대한과 유럽을 잇는 무역의 거점이 되고, 이선은 포트와인을 대량 수입해서 매일 마실 겁니다.
브라질은... 너무 멀어서 이해관계가 없군요. 일본과 달리 한국계 이민도 없고... 라이벌 아르헨티나를 밀어줘야하나... 커피값 폭락 유도해서 파산 후 전함이라도 압류할까...
(머나먼 브라질 대신, 크로아티아가 일본 이기면 유고슬라비아도 합스부르크도 아닌 크로아티아 독립국을 건설하는 걸로...?)
승패가 어찌 됐건, 최선을 다한 것으로 만족합니다. 마지막까지 좋은 경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