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164화 로마 진군
‘검은 셔츠단’ 2만여 명의 진격은, 놀랍게도 경찰 병력 400여 명에 의해 효과적으로 저지되었다.
기차와 차량을 타고 로마로 진입하는 검문소에서, 경찰은 검은 셔츠단의 진군을 막았다.
절반은 그대로 진격을 멈췄고, 검문소를 피해 기차를 버리고 도보로 계속 전진한 나머지 1만여 명은, 역시나 경찰의 검문에 막히자 우왕좌왕하며 도로를 배회했다.
“이대로 뚫고 나가자!”
“뭐 어떡하자고? 경찰이랑 싸우잔 말인가?”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해 곤봉이나 채찍을 들고 있는 검은 셔츠단은, 비무장한 노동조합원을 공격하는 데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완전무장한 전투경찰과 싸우는 건 무리였다.
“두체, 우리의 영도자는 어디에 계신가?”
“정부 놈들에게 최후통첩을 전달했다. 곧 우리에게 승전보가 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라, 동지들!”
검은 셔츠단을 이끄는 젊은 파시스트 지도자 이탈로 발보(Italo Balbo)는 혀를 찼다.
무기가 없는 건 둘째 치고, 식량도 부족해 먹고 마시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따뜻하던 이탈리아의 날씨도 9월 하순에 접어들어 하필 비까지 내리자, 검은 셔츠단의 처량함은 극에 달해 있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인류 역사를 통틀어, 출발선상에서 그토록 처참하게 실패한 로마 공략 시도는 없었다.」
외신은 검은 셔츠단의 ‘로마 진군’을 촌극이라고 보도했다.
한니발과 카이사르, 아틸라와 알라리크, 카를 5세와 나폴레옹, 근래에는 가리발디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에 이르기까지, ‘영원의 도시’ 로마를 향한 정복자의 발걸음은 언제나 보무가 당당했다.
검은 셔츠단은 로마 정복을 목표로 진군하는 정복자의 군대가 아니라, 처량한 거지 떼의 몰골이었다.
로마 정복은 불가능했다. 누군가 거지 떼의 허세에 넘어가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탈리아 왕국은 의회제 입헌군주국이나, 헌법상 국왕에게는 총리 임명권과 의회 해산권, 법률 거부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이 있었다.
즉, 다수당이 아니더라도 군주는 총리를 임명할 권한이 있고, 의회 구성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해산 후 재선거가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좋게 말하면 선량하고, 객관적으로 말하면 우유부단하고 소극적인 성격이라 그동안 정치 문제에 개입해 오지 않았다.
전제군주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이지만, 입헌군주로서는 꽤 괜찮은 덕목이었다. 군주가 얼굴마담 역할만으로도 만족한다는 것이었으니.
그렇기에, 총리를 여섯 번이나 재임한 노인 졸리티는 국왕이 이번에도 군말 없이 내각이 결의한 계엄령에 서명해 주리라고 믿었다.
“계엄령을 내리면 유혈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지 않은가?”
“파시스트들이 진군을 포기하고 항복한다면, 유혈사태는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반란이라도 일어나면 어쩔 생각이오? 짐의 국민끼리 총을 쏘는 상황은 원치 않소.”
“이미 반란은 일어난 상황입니다. 반란에는 단호한 대처가 필요로 합니다, 폐하.”
“반란은 사회주의자들이 일으키고 있지. 오히려 파시스트들은 군경에 협력하여 사회주의자들의 폭동을 진압하고 있지 않나?”
국왕은 사회주의에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1900년, 아나키스트에게 선왕 움베르토 1세가 암살당해 젊은 나이에 즉위하게 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아나키즘이건 사회민주주의건 공산주의건 ‘좌익적인’ 이념을 혐오했다.
의회민주주의에 깊은 신뢰를 갖고 있는 조지 5세와 달리,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겉으로는 존중하는 척하면서도 내심 경멸했다.
“폐하, 파시스트의 초법적인 행위는 도를 넘어섰습니다! 저들이 중북부에서 벌이는 무력사용은 군경의 암묵적인 지지가 있었기에 눈감아 주고 있었지만, 수도 로마로 진격하는 건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건 명백한 쿠데타 시도입니다!”
“짐이 그래서 경에게 무솔리니를 내각에 끌어들이라고 한 게 아니오? 그 조건으로 경을 다시 총리로 임명하였소만.”
“무솔리니는 타협이라는 개념을 모릅니다, 폐하. 겨우 35석을 가진 당이 총리직을 요구한다는 건 의회정치의 기본을 어긴 겁니다. 원내 1, 2당인 사회당과 가톨릭 인민당 역시 무솔리니 총리는 절대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사회주의자와 바티칸 눈치 보자고 경에게 총리를 맡긴 게 아니오!”
쿠데타나 다름없는 폭동을 일으킨 무솔리니가 아닌 자신을 질책하는 국왕을 보면서, 졸리티는 분개하였지만 꾹 눌러 참았다.
“저는 40년간 의회에 몸을 담은 사람으로서, 의회정치를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총리로서 제 사명은, 공공의 질서와 안녕을 수호하고 쿠데타를 단호하게 진압하는 것입니다. 계엄령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재가해 주십시오.”
늙은 총리의 단호한 태도에, 우유부단한 국왕은 움찔했다. 153cm의 단신인 국왕에 비하여 80대 노인의 당당한 풍채는 국왕에게 위압감을 주었다.
“짐은 내전이 벌어질 가능성을 우려하오. 다방면으로 의견을 들어 보고 싶소. 지금은 곤란하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오.”
“폐하! 쿠데타를 진압하는 데는 시간이 승부입니다. 속히 재가를······.”
“아, 알겠소. 결정까지 하루, 하루만 시간을 주시오. 그때까지만 기다려 주시오.”
졸리티는 한숨을 쉬었다. 우유부단하고 귀가 얇은 국왕이 다른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판단을 내릴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계엄령을 선포할 권한은 온전히 국왕에게 있었다. 총리는 저녁때 다시 뵙겠다고 말하며 물러나고 말았다.
“총리 각하, 어찌 되셨습니까?”
“뭘 어찌 되나? 지금은 곤란하니 기다리란 답변만 들었네. 쿠데타 진압은 시간과의 싸움인데, 제기랄!”
외무장관의 물음에 총리는 참았던 분노가 폭발했다.
“영국대사 뷰캐넌 경이 국왕 폐하를 알현하기를 희망합니다.”
“그래? 영국 정부는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다던가?”
외무장관이 총리를 향해 귓속말로 속삭였다.
“잘됐군. 최대한 빨리 알현을 성사시키게.”
“예, 각하.”
국왕은 육군참모총장 피에트로 바돌리오(Pietro Badoglio) 대장을 불러들였다.
“장군, 총리가 계엄령을 요청했소. 만약 계엄령이 내려진다면, 어찌 되겠소?”
“현재 로마에 알피니 산악여단이 주둔 중입니다. 계엄령이 내려지는 순간, 군은 신속하고 확고하게 반란을 진압할 겁니다.”
“심각한 유혈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검은 셔츠단은 오합지졸에 지나지 않습니다. 첫 번째 발포만으로, 반란은 진압될 겁니다. 폐하께서 계엄령의 결단만 내려 주시면 됩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반란 진압 책임자가 될 바돌리오는, 국왕의 명령만 떨어진다면 단호하게 진압할 뜻을 밝혔다.
“알겠소. 조금만 더 생각해 보고 장군을 불러들이겠소.”
“예, 폐하!”
그래도 확신하지 못한 국왕은, 대전쟁 승전의 영웅이자 바돌리오의 전임자인 전 총사령관 아르만도 디아스(Armando Diaz) 원수를 불러들였다.
디아스 원수는 2차 피아베강 전투와 비토리오 베네토 전투의 승리로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인물이었다. 국왕은 원수에게 ‘승리의 공작(Duca della Vittoria)’ 작위를 부여하고 종신 상원의원직을 임명했다.
“원수, 총리가 계엄령을 요청했소. 계엄령을 내려야겠소? 군은 얼마나 충성할까?”
“폐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만약 군대에 검은 셔츠단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내린다면, 군인들이 오히려 저들에게 합류하여 총구를 거꾸로 돌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요? 정말로 그렇게 될까?”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리된다면, 수도 로마에서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겁니다.”
대전쟁의 승리자답지 않은 소극적인 태도였다.
디아스 원수는 사회주의자가 집권하느니 파시스트가 집권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보수 우익이었다.
보수 우익은 무솔리니는 천박한 정치깡패에 불과하니, 총리직을 맡기더라도 조종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명백한 착각이었다.
대전쟁 참전용사들로 구성된 파시스트 정부는 군인들을 위한 정권이 될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이미 무솔리니는 그렇게 되리라고 떠들고 다녔다.
“으음······. 알겠소. 역시 계엄령은 안 되겠군. 수도에서 내전은 피해야지.”
“현명하신 판단이십니다, 폐하.”
우유부단한 국왕은 계엄령 거부로 기울어졌다.
운명의 여신이 무솔리니에게 기울어지는 순간, 뜻밖의 개입이 발생했다.
“폐하. 영국대사 뷰캐넌 경이 긴급한 일로 알현을 청합니다.”
“영국대사가? 알현을 허락하지.”
* * *
무솔리니가 로마 진군이라는 일생일대의 도박을 하는 동안, 영국 정부에서는 격렬한 논쟁이 발생했다.
프랑스는 루르 점령으로 인한 독일과의 갈등에 집중하느라 이탈리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내버려 두었고, 미국도 국제정치가 아닌 유럽의 국내정치는 알아서 하라는 태도였다.
오직 영국만이 파시즘 정권의 가능성 출현에 주목하고 있었다.
「무솔리니는 빨리 해치우지 않으면 끝없이 해를 끼칠 미친개입니다. 파시스트는 국제연맹을 부정하고, 베르사유 체제를 불신합니다. 분별없고 어떤 무모한 행동이든 저지를 수 있어서, 유럽을 전쟁에 빠트릴지도 모를 위인입니다.」
주이탈리아 영국대사 조지 뷰캐넌의 서한은 외교관답지 않게 신랄했다.
그도 그럴 법한 것이, 뷰캐넌은 1917년 러시아 혁명 당시 주러시아 영국대사였다.
이위종은 러시아 주재 외교관으로 오래 근무했기에, 8년이나 러시아대사를 역임한 뷰캐넌과 친분이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대사로 재회하자, 이위종은 뷰캐넌과 돈독한 친분을 쌓았다.
“조지 뷰캐넌 경, 현재의 이탈리아는 마치 6년 전 러시아를 떠올리게 합니다. 극심한 정치적 혼란, 좌익의 득세, 그리고 우익의 쿠데타 시도.”
뷰캐넌은 불길한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혁명 직전에 차르 니콜라이 2세를 간곡히 설득해 어떻게든 개혁의 양보를 얻어 내려 했다. 혁명을 막기 위한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차르는 고집불통이었고, 혁명은 터지고 말았다.
영국은 4월 혁명으로 들어선 자유주의 성향의 임시정부를 지지했지만, 좌익의 확산을 두려워한 코르닐로프 장군과 군부 쿠데타 시도로 오히려 임시정부가 실각하고 사회주의자들이 집권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일련의 사태의 최종 결론은 바로 ‘볼셰비키’의 승리였다. 영국과 소비에트 러시아의 관계가 최악으로 돌아서면서, 뷰캐넌은 러시아를 떠나야 했다.
“유감스럽게도, 국왕은 우유부단하고 우익은 쿠데타를 열망합니다. 러시아와 똑같은 상황이 연출될 수 있습니다. 쿠데타 시도를 저지해야 합니다.”
“이 대사의 말씀이 옳소. 이탈리아를 제2의 러시아로 만들 수는 없지요.”
엄밀히 말하면 이탈리아와 러시아의 상황은 달랐지만, 러시아의 악몽을 외교관 최악의 실패로 여기고 있는 뷰캐넌은 두 상황을 겹쳐 보았다.
이탈리아에선 러시아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 뷰캐넌은 확신을 갖고 런던을 향해 무솔리니를 저지해야 한다는 보고를 올렸다.
그동안, 노동당과 자유당은 보수당에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데일리 메일의 스캔들 기사에도, 애스퀴스와 로이드조지는 화해하여 자유당을 재통합했다.
평당원이지만 높은 명성을 자랑하는 케인스의 주도로, 자유당과 노동당의 연대가 추진되었다.
제2당인 노동당과 제3당인 자유당이 힘을 합치면 과반을 압도했고, 보수당을 배제한 연립정부 수립이 가능했다.
노동당과 자유당은 서로를 여전히 불신했지만, 기존의 자본주의에 대수술을 가할 필요가 있다고 설득한 케인스의 중재로 거리를 좁혀갔다.
노동당과 자유당이 연대할 가능성이 보이자, 보수당은 대경실색했다. 두 야당이 손잡으면 내각불신임과 연립내각 수립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다.
“의회를 해산하고 재선거하시죠. 정부에 대한 여론이 나쁘지 않습니다. 노동당과 자유당의 결탁을 대대적으로 공격하죠. 지금처럼 애매한 소수 여당이 아닌 단독 과반을 차지하면 됩니다.”
여기까지는 데일리 메일이 구상한 바와 일치했다.
재선거를 실시하면, 선거 직전에 데일리 메일은 노동당을 음해할 기사를 발표할 생각이었다.
실제로, 데일리 메일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조작된 기사를 내보내는 일이 있었다. 1924년 처음 정권을 잡은 노동당을 단 10개월 만에 실각시킨, 조작된 ‘지노비예프 서한’의 주인공이었다.
불과 선거 이틀 전에 발표된, 노동당이 코민테른의 조종을 받아 공산주의 혁명을 추구한다는 조작된 기사에, 여론은 크게 흔들렸고 노동당은 참패했다.
“선거를 치른 지 겨우 1년도 안 됐소. 무슨 명목으로 의회를 해산하겠소?”
그런데 총리 볼드윈이 의회해산을 거부했다.
명목상 군주로서 의회해산에 동의해 줘야 할 조지 5세가 현시점에서 선거를 시행하는 데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짐은 데일리 메일이 의회해산과 재선거를 목적으로 그 입에 담기도 싫은 스캔들을 터트린 게 아닌지 의심스럽소. 그렇다면 그들의 계략에 놀아나서는 안 되는 게 아니겠소?”
조지 5세는 데일리 메일에 반감을 드러냈고, 국왕의 반대에 보수당도 의회해산의 뜻을 접어야 했다.
의회해산이 무산되자, 애스퀴스와 로이드조지는 합동으로 보수당에 위협을 가했다.
“데일리 메일은 왕실의 명예를 더럽히고, 오랜 우방과의 관계를 무너트리려 하였으며, 정치적 목적으로 자유당을 흔들려고 했던 게 분명하오. 설마 보수당과 관계가 있는 건 아니지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데일리 메일이 내가 총리에 취임하는 걸 반대한 걸 잊었소?”
볼드윈은 단호히 데일리 메일과의 유착을 거부했다.
“그럼 설마 경쟁자였던 커즌 후작이 총리가 되기를 바라고······.”
“그 무슨 근거 없는 소리를! 그 오리엔틀 스캔들로 제일 난처해진 게 외무부요!”
외무장관 커즌도 펄쩍 뛰며 부정했다.
어디서 정보가 샜든 간에, 현재로서 책임자는 외무부였다. 웨일스 공의 방한과 관련된 사건은 궁내부와 외무부 소관이었다. 결국 왕실 아니면 외무부인데, 왕실일 가능성은 적으니 외무부의 누군가가 데일리 메일에 흘렸다는 거였다.
진실은 커즌이 아내에게만 슬쩍 이야기했던 걸, 바로 그 아내가 사위인 오스왈드 모슬리에게 전달했고, 데일리 메일이 확보하게 되었다는 걸 그 누구도 미처 알지 못하고 있었다.
비록 그건 모르고 있을지라도, 커즌은 외무장관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있었다.
“그럼 확실히 하시지요. 보수당과 데일리 메일은 관계가 없는 겁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절대 저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보수당은 데일리 메일과 완전히 선을 그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보수당 정부는 데일리 메일이 무솔리니와 파시스트에 열렬히 찬사를 보내고 있다는 게 심히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무솔리니는 이 시대의 위대한 인물이다. 19세기 초가 나폴레옹의 시대였다면, 20세기 초는 무솔리니의 시대가 되리라. 무솔리니는 볼셰비키의 해악으로부터 유럽을 구원해 낼 것이다! 이탈리아 의회제는 파산했다. 우리는 새로운 이탈리아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
“공산주의를 막기 위해서라도 무솔리니가 정권을 잡아야 합니다!”
보수당 우익은 데일리 미러와 마찬가지로, 노골적으로 무솔리니와 파시즘을 옹호했다. 이들은 영국 정부가 최소한 이탈리아에서 파시즘 정부의 수립을 방해해야 하지 않는다고 압력을 넣었다.
“국왕 폐하께서 데일리 메일을 얼마나 혐오하시는지 분명히 말씀하셨소. 만약 이 상황에서 우리가 파시스트 정권 수립에 동조한다면, 자유당과 노동당은 물론이고 국왕 폐하께서도 용납하지 않으실 겁니다.”
볼드윈의 말에 커즌도 동조했다.
“나는 무솔리니가 빨리 해치우지 않으면 어떤 해악을 끼칠지 모른다는 조지 뷰캐넌 경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이탈리아는 우리의 중요한 우방입니다. 러시아의 실패를 반복할 수는 없습니다. 적극적으로 파시스트 정권 수립을 막아야 합니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면서, 영국 정부는 원역사와 달리 대륙 불개입 원칙을 깨고 주이탈리아 대사에게 국왕을 설득하라고 훈령을 내렸다.
한국이 불러일으킨 나비효과가 태풍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작가의 말
??? : 주사위는 던져졌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참고로 조지 뷰캐넌은 2부에 주러시아 영국대사로 종종 등장했습니다. 뷰캐넌이 혁명 직전인 1917년 1월에 니콜라이 2세를 만났을 때,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되찾아야 합니다”라는 말에 차르가 “국민이 짐의 신뢰를 되찾아야한다”라는 명언(?)으로 유명합니다.
실제로는 파시즘 정권이 수립될 때 영국은 모호한 입장을 보였고, 하딩이 파견한 미국대사는 무솔리니를 지지했습니다. 뒷일을 생각하면 역설적이지지만, 처칠(!)과 체임벌린도 환영할 정도였습니다. 그 기대는 불과 1년 뒤에 무솔리니가 코르푸 사건을 터트리면서 의심으로 바뀌게 되지만... 일단 1930년대 초까지는 영국은 그럭저럭 무솔리니를 신뢰했죠.
오늘 연참입니다. 5분 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