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199화 동지이자 벗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노신은 이제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워졌습니다.”
“어찌 그런 말을 하시오. 경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 궤장(机杖)을 받은 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조선에서는 나이 일흔을 넘긴 정2품 이상의 신하에게 기로소에 입회하고, 특히 공을 많이 세운 노신에게는 임금이 궤장(지팡이와 의자)을 하사하는 전통이 있었다. 궤장의 하사는 연로한 대신을 극히 우대하는 예법으로서 받는 사람들이 큰 영예로 여겼다.
대한제국 선포 이후에 궤장을 하사받은 이는 예외적으로 장수한 박정양과 김윤식뿐, 공신들 대부분이 일흔 전에 별세하여 받지 못했다.
재작년 김옥균이 은퇴하며 궤장을 받아, 현재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노신이었다.
“신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총리가 되었고, 성상께서 하사한 궤장을 받았으니 신하로서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존귀한 지위에 올랐습니다. 더욱이 조선이 자주독립과 문명개화를 이룩하고, 마침내 부강한 열강 대한제국이 되었는데, 신이 무슨 여한이 있겠습니까?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성상을 뵙게 되었으니, 내일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고균…….”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니었다. 김옥균은 생에 원했던 모든 걸 이룩했고, 행복하게 눈을 감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모두 위대한 주군이자 동지를 섬길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신의 비천한 육신은 이제 흙으로 돌아가겠으나, 성상의 영도하에 우리의 대한은 영구불멸하리라 믿사옵니다. 그렇기에 편히 눈을 감을 수가 있습니다.”
“짐도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겠지. 황제 역시 인간, 언젠가 흙으로 돌아갈 운명은 피할 수 없소.”
“신은 오늘 죽어도 나라에 상관없지만, 폐하께서는 앞으로 20년, 아니 30년은 건재하셔야 합니다.”
김옥균이 정색하며 하는 말에 이선이 웃음을 흘렸다.
“30년이라고? 내 나이가 몇인 줄 아시오? 3년 후면 예순이오. 선대왕 중에 환갑을 넘긴 분이 드물다는 걸 잊은 게요? 태조 고황제, 정종대왕, 영조대왕, 고종 태황제 네 분이 다요. 아, 광해군도 있었군. 이 중에서 마지막까지 왕위를 유지한 분은 영조대왕뿐, 모두 선위하고 물러나신 분들이군. 흠, 역시 선위가 장수의 요건인가.”
공교롭게도 환갑을 넘긴 조선의 다섯 임금 중에 넷이 퇴위하여 물러난 군주였다. 그만큼 임금의 보위란 단명을 재촉하는 자리였다.
“시대가 변했고, 특히 의학의 발전이 비약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이 또한 폐하의 업적, 폐하께서 그 수혜를 받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건 인정하오. 현대의학이 아니었으면 진작 세상을 떠났을 거 같군. 앞으로도 의학 덕에 더 살 수 있을 거고.”
한껏 엄살을 부리긴 했지만, 이선도 내심 팔순까지는 살아서 모든 대업을 이루고 더 나은 세상을 보고 싶었다.
“신은 내일 죽더라도, 성상께서 보우하실 10년 후, 20년 후의 미래를 그려 봅니다. 송구하옵니다. 늙은이가 할 일이 없다 보니 생각만 많아지고, 걱정만 늘어나다 보니.”
“하하. 좋은 정치가는 10년 뒤를 내다보고, 위대한 정치가는 50년 뒤를 내다봐야 하는 법이오.”
“그럼 감히 여쭙고자 합니다.”
“개의치 말고 편히 말해 보시오.”
김옥균은 먼저 심중에 있는 첫 번째 의문을 물었다.
“폐하께서는 어찌 그리도 일본을 경계하시는지요?”
뜻밖의 질문에 이선은 대답 없이 쓴웃음을 지었다.
“일본과 대립이 있었던 건 개항 무렵의 사소한 충돌이었습니다. 갑신경장 이래 일본은 대한의 중요한 우방이었습니다. 독립전쟁에서 청국과 맞서 함께 싸웠으며, 함께 영국과 동맹을 맺어 20년 간 동맹국으로서 지내 왔습니다. 비록 동맹이 만료되었고, 관동대진재라는 불미스러운 사태가 있었기는 하나, 일본은 여전히 대한의 우방입니다.”
조선과 일본이 충돌한 건 1875년 운요호 사건과 1882년 임오군란이 전부였고, 그 외에는 본심이야 어쨌건 우호적 관계를 맺고 동맹까지 발전했다.
그런데 이선은 일본에 대한 경계심을 놓은 적이 없었다. 다른 신하들은 몰라도, 이선의 최측근인 김옥균은 알고 있었다.
“작금 대한의 주적은 소련이오, 그다음 가는 적은 중국 북양정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일본의 군사력이 위협적이기는 하나, 그 방향이 대한으로 향하고 있지는 않사옵니다.”
“흐음, 경은 근래 해군의 건함계획이 일본을 겨냥한 거라고 생각하는 거요?”
“물론 제해권을 지키기 위해 해군은 필요하고, 배라곤 목조선이 전부였던 조선이 오늘날에는 최신 군함까지 건조하는 시대가 왔으니 신도 감개무량하옵니다. 저 항구에 정박한 대한 군함의 늠름한 자태를 보면 이 늙은이도 어찌나 가슴이 뛰는지, 40년 전 조선을 기억하지 못 하는 젊은이들은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하하, 짐 또한 그렇소. 해외에 나가려면 외국배를 얻어 타야 했는데, 이제는 우리 손으로 기선을 넘어 군함까지 만들게 되었지.”
아무것도 없었던 맨땅에서 헤엄쳐 여기까지 올라온 걸 기억하는 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소회였다.
“실제로 해군은 일본을 가상적국으로 생각하고 있다 들었습니다. 일본해군이 미국을 가상적국 1호로 생각하듯이 말이지요. 하지만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덤벼들면 그건 패망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입니다.”
“실로 그렇소. 자멸의 길이지.”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대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은 숙원이었던 만주와 연해주로 나아갔고, 북방의 대국이자 이념적 적수인 소련과 기나긴 국경선을 접하게 됐습니다. 이미 과도한 군비를 쓰고 있고, 국력에 넘치는 팽창을 이뤄 낸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해군력에 국력을 집중하고 있는 섬나라 일본과 건함 경쟁을 한다는 해군의 계획은 나라를 위기에 몰아넣을 광기나 다름없습니다!”
김옥균은 언제 죽음을 눈앞에 두었냐는 듯,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해군력으로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카이저의 망상은 영국을 적으로 돌리게 했고, 결국 독일의 패망으로 이어졌습니다. 만약 비스마르크가 살아 있었더라면, 영국과 적대하는 상황을 지켜보지 않았을 겁니다.”
한국의 엘리트에게 있어, 최근의 역사적 반면교사는 러시아제국과 독일제국이었다. 특히 신흥강대국 독일의 몰락은, 한때 독일을 우러러보았던 개화파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김옥균이야 소문난 프랑스 애호가였지만, 가장 높이 평가하는 정치가는 그 프랑스를 굴복시켰던 비스마르크였다.
“이는 단순히 해군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해군은 방어적인 의미의 건함계획이라 이해할 수는 있지만, 공세에 몰두하는 육군 소장파는 더 심각합니다. 이들은 과거의 조선, 쇠락과 멸망의 위기를 겪어 보지 못한 세대라 그런지, 대한이 싸웠다 하면 이기리라 믿습니다. 만주와 연해주를 넘어 중국 대륙, 몽골과 시베리아까지 진출하자는 주장을 보면, 도대체 현실감각이란 게 존재하는지 의문입니다!”
개화당의 창설자이자 남만주철도주식회사를 설립한 총리였기에, 많은 이들이 김옥균도 대외팽창주의자라고 오해했다. 육군과 해군의 고급장교들은 유일하게 남은 개화당 원훈이자 황제의 최측근인 김옥균을 찾아 후원과 지지를 청원했다.
조선의 열악했던 현실을 기억하는 김옥균은, 현재의 낙관적이다 못해 희망회로로 가득한 상황이 개탄스럽기 짝이 없었다.
“성상께서 얼마나 절묘한 외교적 곡예와 뼈를 깎는 국력증진으로 이 자리에 올랐는지, 저들은 모릅니다. 성상께서 얼마나 노심초사하여 살얼음판을 걸어가며 공든 탑을 쌓았는지, 저들은 모릅니다. 작금 대한이 누리는 지위가 원래부터 누렸던 권리고, 앞으로 무한히 팽창하리라고 착각합니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입니다.”
김옥균은 처음으로 황제 앞에서 거센 시국비판을 이어 나갔다. 이선은 말없이 경청했다.
김옥균의 비판이 단순히 ‘에잉, 요즘 젊은것들이란!’ 하는 늙은이의 시대착오적 후속세대 비난은 아니었다.
김옥균은 50년 전 비밀결사조직을 창설한 이래, 조선의 자주와 변혁을 누구보다 원했던 이였다.
조선의 문명개화, 자주독립, 만민평등을 일찌감치 외쳤고, 이선을 개화당의 지도자로 받들어 함께 노력했다. 그는 새로운 대한제국이 오늘날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분투했던 원훈이었다.
유학의 전통적인 제세경륜(濟世經綸)에서 벗어나 근대적 국민국가를 지향한 김옥균은 새로운 시대정신을 대표했고, 이선의 충실한 조력자였다.
그렇기에 김옥균은 조선-한국이 얼마나 뼈를 깎는 노력과, 천운으로 이 자리에 올랐는지 알고 있었다. 이선이라는 비범한 지도자가 없었더라면, 여기까지 오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 대한제국의 주류 엘리트로 떠오른 이들, 특히 군부와 우익은 달랐다.
물론 이들은 황제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고 숭배했다. 하지만 열강과의 협조를 통한 국제체제를 구축하고, 군비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며, 과잉팽창을 자제하려는 황제를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소극적’이라고 생각했다.
감히 황제에게 비판의 목소리는 내지 않아도, 대신해서 중도·좌파 정당들, 특히 대외팽창과 군비 증대에 비판적인 신민당-진보당-사회당에 이를 갈았다. 신진정부 수립에 군부와 우익이 느끼는 불만은, 군축에 나선 일본 문민정부에 일본 군부가 반발하는 것과 유사했다.
그나마 조선은 역사적으로 문민통제의 전통이 확고하고, 황제가 강력히 군권을 장악했으며, 군부를 이끄는 이동휘와 노백린이 정부의 방책을 지지하는 합리적 인사였기에 불만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짐도 알고 있소. 한 번쯤 패배해야, 아니 이기더라도 크게 피를 흘려 봐야 정신을 차리는 법인데, 최소한의 피로 최대한의 성과만을 냈으니 착각할 수밖에. 빌헬름 2세의 독일이 그랬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착각에 빠져 폭주하게 된 원역사의 일본은 더 심했고. 최소한 현실을 알고 있던 1세대 원로들이 살아 있을 때에는 자제했지만, 모두 죽고 난 다음에는 폭주를 막을 수가 없었지. 대한도 이대로 가다가는 원역사 일본제국의 서쪽 버전이 되겠지. 그래서 내가 최대한 오래 살아야 해. 이쯤에서 정권이 바뀐 건 바람직한 일이다. 대공황에 대비해 팽창을 멈추고 내실을 다져야 해.’
“경의 우려는 충분히 이해하오. 하나 원훈인 고균이 단순히 짐에게 시국비판을 하려고 하는 건 아닐 터. 그럼 고균이 생각하는 대안은 무엇이오?”
“대한은 두 열강과 이웃하고 있습니다. 서북쪽의 소련과 동남쪽의 일본. 가능하면 두 나라 모두와 평화를 유지하는 게 좋고, 만약 한 나라만을 택해야 한다면 일본입니다. 대한은 남수북진의 전략을 취해 만주와 연해주로 나아갔습니다. 우선순위는 당연히 북방에 있고, 이는 소련과 대립하는 영역입니다. 일본과는 계속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둘 다 적으로 돌리는 건 최악이지. 하지만 앞으로 일본과 미국이 대립한다면? 필리핀, 남양군도, 태평양의 패권을 놓고 두 나라가 충돌한다면?”
나름 한국 최고의 일본전문가라고 자신하는 김옥균은, 일본이 그렇게까지 막 나갈 미래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상상하기 어렵습니다만, 만약 그렇다면 일본이 미쳐 버린 게지요. 미국과 우호를 든든히 하되, 중립을 지켜야 합니다.”
“만약 일본이 미국을 치기 전에 대한을 먼저 공격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짐도 과도한 군비투자는 반대하지만, 일본의 공격을 억제할 적절한 해·공군력의 육성은 필연이 아닌가 싶소.”
이 또한 현재 정세를 생각하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김옥균은 당초의 의문으로 되돌아왔다.
“물론 전쟁을 억지하기 위해 국방을 튼튼히 하는 건 언제나 필요한 일입니다. 하온데 신이 알기로는, 폐하께서는 오래전부터 일본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40년 전, 일본의 국력이 미약하던 시절부터 말이지요. 혹여 노둔한 신이 알지 못하는 일본의 위협이 있사옵니까?”
이선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생각에 잠겼다.
김옥균의 의문은 타당하다. 현재의 상황, 특히 변화한 역사만 놓고 보면, 일본의 한국 공격을 경계하는 건 지나친 피해망상일 수 있었다.
이선이 품고 있는 뿌리 깊은 의심 - 일본은 결국 무수한 유혈을 각오하며 팽창과 침략에 나서고, 한국이 목표가 되리라는 의심은 ‘원래 20세기 역사를 아는 사람’으로서 가지는 당연한 귀결이었다.
“내가 왜 그런다고 생각하오?”
하지만 그렇게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 이선은 김옥균에게 질문을 유도하고, 머릿속으로 적절한 논리를 가다듬었다.
그런데, 김옥균이 먼저 선수를 쳤다.
“세간에서는 개화당 최초의 창설자를 신이라고 합니다만, 이는 틀렸습니다. 창설자는 역매 오경석 선생과 대치 유홍기 선생이었지요. 조선을 변혁하겠다는 이분들의 꿈이 신을 감화시켰고, 신은 청년들을 모아 함께 뜻을 키웠습니다.”
새삼스레 개화당의 태초를 읊던 김옥균은, 이선이 알지 못했던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20년 전, 유대치 선생이 별세하기 전, 막 총리가 된 신을 불러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성상께선 현재를 살고 있지만, 과거를 두루 알고 계시고, 미래를 내다보고 있지. 어쩌면 다른 세상에서 오신 분이 아닌가 싶어.」
“…….”
“선생은 독실한 불자였기에 윤회와 환생을 믿었고, 신은 물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선생은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멸망의 위기에 놓인 조선을 구하려고, 다른 세상에서 오신 분이라고.」
유대치가 죽기 전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 것처럼, 김옥균도 오늘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죽겠다는 각오였다.
“그 무렵에 폐하께서 명하신 대로, 티베트에서 온 승려를 만났습니다. 달라이라마의 사절이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삼라만상을 꿰뚫는 동양의 새로운 전륜성왕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야말로 황당무계한 이야기라고 내심 비웃었습니다만…….”
김옥균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지난 20년간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전륜성왕 운운하는 이야기는 그렇다 쳐도, 유대치 선생의 가정이 사실이라면, 신의 모든 의문이 풀립니다. 폐하를 지근거리에서 40년 넘게 모셔 왔던 신입니다. 폐하의 그 비범함, 영명함, 놀라운 예측력을 모두 보았습니다. 아뢰옵기 참으로 송구하옵니다만, 폐하께서는 미래를 알고 계신 게 아닌지요?”
이선은 거듭 생각에 잠겼다.
김옥균의 말처럼, 40년 간 가장 가까운 측근이기에 가질 수 있는 의문이었다.
단순히 신하이자 고굉(股肱)만이 아니요, 오랫동안 속내를 털어놓았던 유일한 동지이자 벗이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가장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에게도 하지 않았고, 자신을 누구보다 아꼈던 할아버지에게도 하지 않았으며, 생명을 주었던 아버지에게도 임종 직전에서야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문득 김옥균에게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국가를 건설한 40년 동지이자 마음을 털어놓은 벗으로서, 그는 죽기 전에 이야기를 들을 권리가 있었다.
“고균. 내가 지금부터 할 말은 굉장히 황당하게 들릴 수 있는데, 들어 주길 바라오. 물론, 여기서 하는 말은 오직 나와 그대만이 알아야 할 것이오.”
“신이 맹세컨대, 무덤까지 함께하겠나이다.”
이선은 동지의 맹세를 믿었다.
결심한 이선은 술잔에 포도주를 가득 따르고, 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마침내, 기나긴 이야기를 풀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그래, 우리의 대한과 다른 나라의 이야기부터 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