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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혁명의 시대 3부-208화 (765/812)

3부 204화 성전(聖戰)

광무 28년 5월, 몽골 수도 우르가 주재 대한제국 영사관.

“먼 길에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협판.”

“영사야말로 이곳에서 노고가 많으시지요.”

“아닙니다. 노고라고 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여긴 제 터전이나 다름없는데.”

대한제국 특사로 파견된 외무협판 이위종은 복드 칸의 어의이자 우르가 영사인 이태준과 악수했다.

부친 이범진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이위종은 주이탈리아 대사를 끝으로 오랜 외국 주재생활을 마치고 귀국했다. 신진정부 출범 이후 외무대신 김규식을 보좌하는 협판으로 임명되었다.

이위종은 러시아에서 오래 근무한 만큼 러시아어가 원어민 수준으로 유창했고, 일전에 황명으로 몽골과 투르키스탄 탐사에 나선 적도 있는 만큼 중앙아시아의 정세에도 밝아 특임을 맡을 인사로 적격이었다.

“칸의 병세는 어떠하십니까?”

“위암 말기입니다. 보고했다시피 위독하십니다. 이번 달을 넘기긴 어려울 겁니다.”

“본국에서는 칸의 사후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운게른-슈테른베르크 남작을 제어하는 게 중요합니다.”

“남작의 폭정이 극에 달한 상황입니다. 최근에는 일방적인 차르 복위 선언으로 인해 몽골인들이 경악했습니다. 왜 하필 이곳에서…….”

“칸으로부터 작위를 받은 몽골의 친왕이라고 자처해도, 본질은 러시아 군벌이니까요. 일방적인 복위 선포로 곤란해진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운게른과 디테히리스의 일방적인 차르 복위 선포 이후, 러시아 황실과 아무르 백군의 입장은 둘로 나뉘었다.

운게른이야말로 로마노프 왕조의 충신이요, 더 늦기 전에 ‘제4의 로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제정복고를 선언해야 한다는 소수의 왕당파도 있었지만, 운게른의 복위 선언은 광인의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다수의 중론이었다.

“운게른 남작이 무슨 권한으로 젬스키 소보르를 소집하는가?”

“알렉세이 대공 본인의 동의와 참여가 없었는데, 누구 마음대로 차르 알렉세이 2세를 운운하는가?”

“백군의 주도권을 남작이 잡고 싶다는 의미겠지.”

“같잖군. 변방의 일개 기병대장 따위가…….”

운게른이 극렬 왕당파인 만큼, 일부 왕당파들은 운게른을 충신이자 애국자라고 부르짖었지만, 백군 수뇌부는 운게른을 경멸했다.

현존 백군을 대표하는 콜차크나 브랑겔과 비교하면, 운게른은 계급과 전공에서 한참 뒤떨어졌다.

제정 시절 계급으로 따져도, 콜차크는 해군 중장이고 브랑겔은 육군 소장이었지만 운게른은 카자크 소령에 불과했다.

오늘날 운게른이 자처하는 백군 중장 계급은 전러시아 임시정부에서 부여한 계급도 아니고, 세묘노프와 운게른이 일방적으로 자처한 계급에 불과했다.

그런데 운 좋게 몽골을 차지해 놓고선 맞먹으려고 드니, 백군 수뇌부가 같잖게 보는 건 당연했다.

하물며 ‘정통 러시아’를 자처하는 이들에게, 티베트 불교로 개종하고 바투의 후예를 자처하는 운게른은 이질적 분자이자 광인이었다.

어쨌든 운게른의 일방적인 복위 선언에 가장 황당한 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전러시아인의 차르 알렉세이 2세’로 추대된 알렉세이 그 자신이었다.

“몽골에서 나를 차르로 선포하다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큰누나 올가와 함께 살고 있는 알렉세이는 소식을 듣고 황당할 따름이었다.

제정복고를 위해 노력 중인 올가와 드미트리 대공도 기가 막하긴 매한가지였다.

“운게른, 이 광인이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르는 바람에 제정복고가 광대놀음이 되고 말았군!”

백군 내부에서도 제정복고가 시대착오라는 여론이 적잖은데, 시대착오적인 이질적 광인으로 소문난 운게른이 일방적으로 선포하는 바람에 코미디가 되고 말았다.

제정복고 반대파들은 당연히 비웃었고, 백군 수뇌부를 진지하게 설득해 가고 있던 복고파로선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이유야 뭐가 됐건 나는 결코 이러한 선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내 명의로 거부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겠어요.”

“알료샤, 네가 직접 나서기보다는 공동으로 대응하는 게 좋겠어. 황실 명의로 발표하자.”

로마노프 황실은 대한제국의 보호를 받았고, 무엇보다 타티야나가 황태자비로 있는 이상 더욱 처신을 조심해야 했다.

한국이 꺼리는 운게른과 손을 잡았다는 인상을 주면 곤란한 일이었다.

「몽골의 자칭 젬스키 소보르는, 로마노프 황실과 무관한 일임을 분명히 밝히는 바이다.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대공은 제위와 관련된 어떠한 의사표현도 하지 않았으며, 이는 다른 황실 구성원도 마찬가지다. ……」

‘전러시아인의 차르 알렉세이 2세’로 추대된 알렉세이 본인과 로마노프 황실이 거부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면서, 운게른의 복위 선포는 완전한 코미디가 되고야 말았다.

“왜냐! 대체 왜냐! 왜 아무도 나의 충심을 몰라 주는 것이냐! 러시아에는 차르가 필요하고, 차르가 될 수 있는 분은 오직 황실의 정통 후계자인 알렉세이 대공뿐이건만! 왜 진정한 충정은 알아보지 못하고, 간신과 역적들의 말만 듣는단 말인가?!”

진정한 충정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운게른은 격분하여 날뛰었다.

“아시아의 전륜성왕이 되어야 할 한국 황제는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저버리고 빨갱이들과 내통하더니, 로마노프 왕조 재건과 유라시아 제국 건설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지닌 정통 후계자조차 빨갱이들을 두려워하는 소심한 어린아이에 불과하구나!”

이선에 이어 알렉세이까지, 자신의 열렬한 구애를 무시당한 운게른은 실망을 금치 못했다.

프로파간다의 일환으로 칭기즈칸의 맏손자인 금장 칸국(킵차크 칸국)의 칸 바투의 후예를 자처하고 있다지만, 운게른은 어디까지나 자신을 로마노프 왕가의 가신이자 몽골 대칸의 친왕이라고 여겼다.

시대를 잘못 태어난 이 중세적 야만전사는, 바투가 몽골의 기마군단을 이끌고 오늘날 러시아에 해당되는 루스와 유라시아 서부를 정벌하였듯, 자신이 아시아 기마군단을 이끌고 소비에트를 정벌하고 로마노프의 정당한 후계자에게 황위를 돌려주겠다는 망상을 품고 있었다.

이 역사적인 ‘위대한 성전’을 후원하고 지지해야할 이선은 무시와 냉소로 일관하고, 당사자인 알렉세이와 황실마저도 거부한다고 선언하니 운게른으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한국 특사가 왔다니 잘 됐다. 우리 군단의 위용을 보여 주고 나면, 생각이 달라지겠지.”

운게른은 이를 뿌득 갈았다. 정신적으로 성전을 납득하지 못한다면, 물리적으로라도 납득시켜야 하리라.

* * *

5월 15일, 우르가 광장.

나름 근대화에 몰두하던 운게른은 칸의 궁전 앞에 서양식 광장을 조성했고, 광장에서 정기적으로 열병식을 개최하며 군의 위용을 과시했다. 몽골인들을 향한 프로파간다이자 경고이기도 했다.

마침 5월 15일은 한국의 준 국경일인 세종대왕 탄신일이자 독립전쟁 승전 기념일로, 오늘의 주빈은 바로 대한제국 특사 이위종이었다.

“위대한 칭기즈칸의 후예들이여! 몽골의 황금군단 용사들이여! 그대들은 칭기즈칸과 바투칸이 그러하였듯, 서쪽을 향해 초원을 내달려 적들의 머리를 베어야 한다! 칭기즈칸의 대몽골을 재건하자! 러시아를 파괴한 반역자 볼셰비키를 타도하자! 로마노프 왕조를 복원하여 차르의 왕관을 다시 씌우자! 대몽골-전러시아 제국 만세!”

“우라, 우라, 우라아아아아!!!”

“만세, 만세, 만만세!!!”

다민족군단을 상징하듯, 운게른의 연설에 러시아어·몽골어·중국어 등으로 만세가 쏟아졌다.

칭기즈칸의 군기와 러시아제국의 군기가 엇갈리듯 내걸리고, 러시아인 장교단의 지휘를 받는 아시아인 기병들이 보우당당하게 행진했다.

몽골인의 장포에 러시아군 계급장을 달고, 카자크 군도와 러시아제 권총을 차고 있는 운게른은 이 기이한 군단의 사령관이었다.

“특사, 어떻습니까? 아시아 기마군단의 위용이. 마치 칭기즈칸의 황금군단이 되살아난 거 같지 않습니까?”

“예에, 대단한 군대로군요.”

운게른의 자화자찬에 이위종은 화답했다. 속내야 어떻든, 외교관으로서 외교적 수사에 익숙했다.

“우리 아시아 기마군단에는, 열여섯 민족이 평화롭게 공존합니다. 출신이나 종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대의로 뭉쳐 있을 뿐. 칭기즈칸의 몽골제국이 그러하였듯이 말이지요!”

아시아 기마군단에 16개 민족이 있다는 건 사실이었지만, 물론 ‘대의’ 같은 건 없었다.

운게른의 기이한 카리스마에 끌려 따르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높은 급료에 이끌려 복무하는 용병들이 절대다수였다.

“하지만 대전쟁에서 드러났듯, 현대전에서 중요한 건 병력의 수, 원활한 군수생산과 보급입니다.”

“유럽의 전쟁은 그렇지요. 하지만 아시아 내륙의 초원에선 다릅니다. 기병의 빠른 기동력을 활용해 적을 제압하는 게 중요하단 말입니다.”

이위종이 당연한 사실을 지적하자, 운게른은 코웃음을 흘렸다. 무수한 사선을 누빈 자신에게 백면서생이나 다름없는 외교관이 지적한다고 느낀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생시르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로 복무한 경험이 있고, 대전쟁기 유럽에서 근무하며 총력전 체제를 연구한 이위종도 단순한 외교관은 아니었다.

“몽골의 희박한 인구와 열악한 생산력으로 어찌 소비에트 러시아에 대적하려고 한단 말입니까?”

“동양에는 일당백이란 좋은 표현이 있다더군요. 우리 전사들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천호제가 완전히 정착되면, 10만 대군은 동원할 수 있을 겁니다. 몽골의 10만 기병이면, 칭기즈칸이 그러했듯 세계를 정복할 겁니다!”

운게른의 호언장담과 달리, 징병제를 실시하며 몽골에 재도입한 칭기즈칸의 ‘천호제(千戶制, 밍간)’ 체계는 몽골인의 거센 반발만을 샀다.

청의 몽골 지배 이후 티베트 불교가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 몽골인은 병역 의무를 지지 않은지 오래였다. 그런데 갑자기 외국인 군벌이 칭기즈칸의 천호제를 운운하며 징병제를 도입하려 하니 반응이 좋을 수가 없었다.

“…….”

이위종은 기가 찼다. 시대착오적 광인으로 악명 높은 운게른에 대한 의심이 확신으로 굳어지는 순간이었다.

“특사, 특사께서도 러시아 귀족의 일원 아닙니까. 범죄자 볼셰비키를 타도하고, 러시아에 차르를 복원해야 합니다.”

이위종의 아내 엘리자베타는 놀켄 남작가 영애로, 이위종도 제정 시절에 귀족 예우를 받았다. 자신의 귀족적 정체성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운게른으로선 그나마 대화가 통하는 상대라고 생각했다.

“차르니 귀족이니 하는 신분은 다 지나간 유산일 뿐이지요.”

“그 무슨 말입니까! 차르는, 군주는 영구불멸한 존재입니다!”

운게른이 목소리를 높이며 외쳤다.

“악의 현신들, 즉 혁명가들에게 그토록 잔인하게 짓밟힌 진리와 선의 명예와 관습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군주뿐입니다. 군주만이 국가와 종교를 보호하고 지상의 믿음을 드높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이기적이고 오만하며, 기만적인 존재입니다. 인간은 마침내 믿음을 잃고 진리를 저버린 끝에 군주를 끌어내렸습니다. 그 결과 그들에게는 행복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불면하며, 진실은 항상 승리합니다!”

운게른은 피를 토할 듯 하늘을 가리키며 외쳤다.

“군주는 신과 인간을 결합하는 힘의 화신입니다! 과거에는 중국의 황제가 그러했고, 러시아의 차르가 그랬습니다. 지금은 몽골의 복드 칸,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 일본의 천황, 그리고 한국의 황제지요. 한국 황제 폐하께서는 위대한 역사적 사명을 갖고 이 땅에 강림해, 조국의 부흥을 이끌었습니다. 한국의 신민들은 황제 폐하를 열렬히 존경하고 숭배하지 않습니까? 이 얼마나 아름다운 전통의 모습입니까! 과거엔 러시아도 이랬었지만, 사악한 혁명으로 파괴되어 사라졌지요!”

운게른의 찬양에 이위종은 대체 뭐라고 답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보통 이런 말은 의례적 찬사나 외교적 수사였으나, 운게른은 진심인 게 분명했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남작.”

“나는 몽골의 호쇼이 친왕입니다. 이 자리에서는 남작이 아니라 친왕이라고 부르십시오.”

운게른의 요구에 이위종은 정색하면서 말했다.

“좋습니다, 친왕. 나는 한국 정부를 대표해서 몽골에 왔고, 친왕과 정치사상을 놓고 토론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중요한 건 현실입니다. 소비에트 정권은 모든 백군의 소멸을 원합니다. 결국 유럽의 모든 백군이 소멸됐지요. 극동에서 그러지 못했던 건, 한국과 열강의 보호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현재 한국과 열강이 원하는 건 동양의 안정과 평화입니다.”

외교적 수사로 돌려서 말했지만, 요컨대 ‘너희가 버티고 있는 건 우리 덕이다. 우리는 소련과 전쟁할 생각 없으니, 목숨 부지하고 싶으면 선 넘지 말고 조용히 살아라.’라는 경고였다.

이선은 운게른을 제거하기로 결심을 굳혔지만, 가능한 몽골 문제에 개입하고 싶지 않았던 한국 정부는 최후의 기회를 탐지하도록 했다.

아무르 백군은 한국의 암시를 잘 이해하고 있기에 선을 넘지 않았지만, 운게른에겐 알 바가 아니었다.

“결코 그 자리에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 황제 폐하께서는 전륜성왕의 화신입니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 세계의 운명을 바꿀 의무가 있습니다! 아시아 기마민족의 힘으로, 러시아와 유럽은 구원받을 것입니다. 아시아 기마민족의 도움으로 유럽에 군주제가 복원될 겁니다! 성전의 그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나는 군단을 이끌고 빨갱이들을 무찌르러 출정할 겁니다. 내 말을 반드시 황제 폐하께 전해 주십시오. 폐하께서는 현실을 딛고 일어나셔야 합니다!”

운게른은 자신의 신조를 꺾지 않았다. 이위종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본국에 전달하지요.”

「운게른-슈테른베르크 남작과는 어떠한 이성적 논의도 불가능합니다. …… 복드 칸의 병세는 위독하며, 5월을 넘기기 어려워 보입니다. 칸의 사후에 2안을 계획대로 진행하는 게 좋겠습니다.」

계획을 실행하기 전 운게른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어 보자는 제안을 따랐지만, 이위종의 보고를 받은 이선은 냉소를 흘렸다.

“결국 운게른이 마지막 기회를 걷어찼군. 제거를 해야겠어.”

당초 김규식이 이선에게 제안한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운게른을 토벌하려면, 만주군이나 국군이 직접 나서는 건 곤란합니다. 현재 소련은 몽골 문제에 직접적인 개입을 자제하고 있습니다만, 만약 만주군이나 국군이 투입된다면 소련도 묵과하지 않을 겁니다. 대리전으로 확산될 여지가 있습니다.”

우선순위에서 한참 떨어지는 몽골 문제로 소련과 전쟁까지 가는 건, 한국 입장에선 결코 바라지 않는 일이었다.

“음. 그래서 어떻게 인민혁명당을 이용해 운게른을 제거하겠다는 건가?”

“인민혁명당을 포섭해야 합니다. 외몽골을 내몽골과 분리하여, 소련과 대한 사이의 완충국으로 두는 게 어떻겠습니까?”

“설득 가능하겠나?”

“모스크바에서 인민혁명당 수장 수흐바타르를 만난 몽양의 말에 따르면, 그는 본질적으로 민족주의자이지 공산주의자가 아닙니다. 몽골을 지배해온 청국과 오랜 숙적 중국, 새로운 주인 노릇을 하려는 운게른에 반감을 갖고 있기에, 소련만이 유일한 동맹 대상이 될 수 있는 거지요.”

김규식은 반제국주의 식민지 해방운동이 본질적으로 공산주의가 아닌 민족주의적 대의에 있다는 걸 간파했다. 식민지를 지배하는 제국주의 열강들이 소련의 적이기에, 식민지 해방운동을 유일하게 후원하는 소련에 기대면서 공산주의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었다.

김규식이 파리에서 만난 완애국(응우옌아이꾸옥)도 그랬다. 애국이란 가명을 쓸 정도로 열렬한 베트남 애국자인 완애국은 파리강화회의에 기대를 걸었으나, 결국 서방 자유주의 국가들에 철저히 외면당하고 무시당한 채 1923년 모스크바로 향했다. 그의 새로운 이름은 호치민이었다.

“몽골뿐인가? 아시아, 아니 모든 식민지 국가는 마찬가지지.”

이선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원역사의 김규식도 민족주의 우파였지만, 바로 같은 이유로 모스크바에 가지 않았던가.

세계혁명을 주창하며, 식민지 약소민족의 유일한 후원자을 자처하는 소련을 상대하려면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지. 좋아. 추진해 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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