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혁명의 시대 3부-212화 (769/812)

3부 208화 황제의 딸

대청국 성경 봉천부.

주청고등판무관 이승만은 외무대신 시절보다 더 강한 의욕을 갖고 업무를 추진했다.

‘이거 생각보다 괜찮은 자리구만.’

염원하던 총리직을 눈앞에 두고 미끄러진 후에 부임한 터라 처음엔 좌천이라고 생각했지만, 있어 보니 오히려 외무대신보다 훨씬 괜찮은 직책이었다.

외무대신은 내각의 일원으로서 총리의 명령을 받고, 외교 전문가인 황제에게 일일이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 처지였다.

하지만 고등판무관은 달랐다. 황제 직속이라지만 봉천과 황성 간의 물리적 거리도 있고, 청국 내에서 상당한 자율권을 갖고 있었다.

고등판무관은 명목상으로는 ‘대청 황제의 수석 외교 고문관’이었지만, 3차례에 걸친 한청조약으로 청국 내정의 다양한 영역까지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청국 고위관료 면면을 봐도, 3분의 1가량이 한국인이었다. 각부 대신이나 차관급은 만주인이나 한인(漢人)으로 구성되었지만, 실무진인 국장급은 ‘엘리트 교육을 받아 시정개선을 지도할’ 한국인으로 채워졌다.

사실상 만주의 총리 혹은 총독이나 다름없는 역할에, 이승만은 만족감을 느끼며 자아를 마음껏 실현할 수 있었다.

자신을 후임 고등판무관으로 추천한 고(故) 김옥균에게 새삼 감사의 마음이 생길 정도였다.

“안녕하십니까, 닥터 리.”

“오, 미스터 크레인. 노고가 많으십니다.”

청국의 경제정책을 ‘조언’하는 재무고문은 미국인이 맡았다. 초대 재무고문으로 선임된 찰스 크레인은 산업계의 거물이자 윌슨 대통령의 측근이었고, 주한대사를 역임한 바 있었다.

크레인은 호황을 누리는 미국 자본을 끌어들여 만주의 자원개발과 산업발전에 혁혁한 기여를 했다.

윌슨의 측근이었으니만큼 공화당으로 정권이 넘어간 이후에 교체가 예상되었지만, 한국의 요청을 받아들인 우드 대통령은 크레인을 유임시켰다.

“만주는 한미우호의 상징이자 핵심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실로 그렇습니다. 양국의 협력 속에서 만주의 번영이 이뤄지고 있지요.”

미국은 한국의 만주 ‘문호개방’ 정책을 높이 평가했다.

1898년 스페인을 격파하고 태평양의 패권을 확보한 미국은, 중국의 문호개방을 외쳤다.

하지만 아편전쟁 이래 중국 시장의 핵심은 영국이 선점한 상태였고,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중국 동북방 만주를 눈여겨보았다.

러시아가 만주를 점령하려 하자, 일본의 야망을 부추겨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게 한 다음, 두 나라의 힘이 빠지자 강화협상을 주선해 만주를 ‘무주공산’으로 만들었다.

이 틈을 타 재빨리 치고 나온 나라는 한국이었다. 한국은 일본이나 러시아와 달리 만주 이권을 미국과 기꺼이 나눠 먹을 생각이 있었고, 미국은 한국을 극동의 새로운 파트너로 삼았다.

신해혁명과 청조 만주 이전을 거치며 한국은 만주의 정치·군사적 지배권을 얻는 대신 경제이권의 상당수를 미국에 양보했고, 전시호황을 맞이한 미국 자본은 본격적으로 만주에 진출하여 개발에 나섰다.

다만 한국은 조건을 한 가지 붙였는데, 미국 자본의 투자는 ‘합작회사’의 형태를 갖춰야 하고, 청국 혹은 한국 자본과 인력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형태여야 했다.

합작회사의 대주주와 경영진은 대개 미국인이나 유럽인이 맡았지만, 실무진은 ‘지역전문가’인 한국인이 맡는 경우가 많았다.

합작의 성공사례는 대표적으로 한미일이 공동으로 출자한 남만주철도주식회사가 있었고, 만철은 철도회사를 넘어 만주의 자원개발과 산업발전에도 큰 역할을 수행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노선을 계승한 우드는 만주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한국이 소련의 남하를 저지하는 ‘방벽’이자 미국 자본의 ‘향도(嚮導)’ 노릇을 해 주는데 아주 만족했다.

겉보기에는 한국이 미국의 하위파트너로서 충실히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선은 1930년대 이후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현시점에서 대한이 만주를 독점하는 욕심을 드러내려 한다면, 미국은 원역사의 일제처럼 여기고 경계하고 압박하겠지. 변화하는 미국의 대외정책에 적극적으로 발을 맞추며 때를 기다린다.’

1919년 이후의 세계는, 총칼로 정복하여 영토를 넓히는 것보다 정치와 경제의 힘으로 세력권을 형성하는 게 중요한 시대였다.

역사가 변화하였으므로 정확히 어느 시점에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지만, 대공황은 피할 수 없으리라.

미국 자본은 큰 타격을 받아 해외투자가 수축(收縮)될 것이고, 한국에게는 위기이자 기회가 될 것이다.

그때까지 한국은 미국의 충실한 ‘방벽’이자 ‘향도’가 되어 준다.

김옥균의 후임 고등판무관에 윤치호와 이승만과 같은 대표적인 친미파를 임명한 이유이기도 했다.

“대청 황제 폐하, 외신(外臣) 이승만이 삼가 고하나이다. 작금 세계의 정세는…….”

이승만은 선통제의 ‘수석 외교 고문관’으로서 정기적으로 알현하여 보고하였다. 부의는 어릴 적부터 서구식 교육을 받아 영어가 유창했고, 이승만과도 예를 표할 때만 제외하고는 영어로 환담을 했다.

“할하의 복드 칸이 위독하다고 들었소. 차하르부의 덕왕은 짐에게 변함없는 충성을 맹세하는 서한을 보내왔소만, 할하를 다스리는 러시아 군벌은 제멋대로에 고집불통이 아니오. 반공 성전을 운운하며 북방의 소련을 자극하는 게 아닌지 우려가 되오.”

“걱정 마시옵소서, 폐하. 그 미치광이는 머지않아 제 무덤을 파게 될 것입니다. 복드 칸의 사후에 대비하고 있사오니, 진전이 있으면 바로 아뢰겠습니다.”

이승만은 운게른을 숙청할 구체적인 계획을 우르가에 나가 있는 이위종과 함께 계획했다.

“으음. 예전과 달리 우리 만주군도 귀국의 조언 덕에 꽤 정예화되었다고 들었소. 필요하다면 무력을 써서 제압해야 하지 않겠소?”

만주군은 군의 근대화가 한창 진행 중이었지만, 한국 군사고문관의 ‘조언’을 받았다. 즉, 사실상 만주군의 지휘권은 군사고문관에게 있었다.

올해 한국군에서 전역하고 군사고문관으로 부임한 홍범도 대장은, 만주군에서도 대장에 준하는 예우를 받으며 군을 통제했다.

“군사력 동원은 어디까지나 최후의 경우입니다, 폐하. 피를 흘리지 않고 사태를 해결하면 가장 좋은 방법이지요.”

“그야 그렇소만.”

“아, 순친왕세자의 한국 유학을 환영한다는 본국의 답변이 왔습니다. 순친왕세자께서 광무학교에서 수학 후, 황성대학과 육군무관학교 중에서 원하는 곳으로 진학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승만은 능숙히 화제를 전환했다. 순친왕세자는 순친왕 재풍의 차남이자 선통제 부의의 친동생인 부걸을 지칭한다.

올해 열여덟이 된 부걸이 한국 유학을 희망한다는 소식에 이선은 흔쾌히 수락하고 환영했다.

“오, 잘됐구려. 아우도 크게 기뻐할 거요.”

예경공주 이희와 결혼한 헌원처럼, 숙친왕 산기의 자녀들은 한국 유학을 여럿 왔지만, 황실 직계에서 한국으로 유학 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대한 황제 폐하께서 국혼 문제는 논의하기가 아직은 이르나, 긍정적으로 검토해 본다 하셨습니다.”

“으음, 그 말씀이 옳소. 급한 건 아니니 천천히 논의하도록 합시다.”

부의는 예성공주 이라와 이뤄지지 못한 게 못내 아쉬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청 황실에서 제안한 황귀비 자리는 한국 입장에서는 모욕적으로 들렸을 가능성이 충분했고, 부랴부랴 부걸과 한국 공주의 약혼을 제안했다.

‘국혼으로 만주를 장악하겠다는 건 시대착오적인 생각이지만, 혈연으로 엮이면 보다 부드러운 관계를 만들어 줄 수는 있겠지.’

이승만은 국혼으로 인한 한국과 청국의 인적 연합은 시대착오적이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외교적으로 괜찮은 제안이라고 생각했다.

이승만이 탐지해 보니, 청 황실은 이라보다는 이금을 더 선호했다. 혼혈의 서녀보다는, 막내라 해도 적녀 쪽이 왕세자비로서 더 적당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부의는 결코 속내를 드러내진 않았지만, 한때 자신이 흠모했던 여인이 아우와 결혼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이제 선택은 공주의 부친, 이선의 몫이었다.

* * *

대한제국 황성.

청나라로부터 순친왕세자 부걸의 유학과 국혼 제안을 받아든 이선은, 유학부터 승인했다.

부걸은 한국 친왕에 준하는 예우를 받으며 황족들을 위한 광무학교에 진학하도록 했다. 장차 육군무관학교에 입학을 유도하여, 확고한 친한파로 육성할 계획이었다. 먼저 부마도위가 된 헌원과 함께 청 황실과 만주군의 중추를 장악할 목적이었다.

‘부걸을 사위로 둔다. 역사대로라면 부의가 자식을 얻지 못하지? 부걸은 자식이 있었고.’

부의의 나이 이제 열아홉에 불과하므로, 모두 부의가 후계자를 얻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선이 아는 범위 내에서 부의는 자식이 없었다. 만약 본인의 문제라면, 역사가 변화해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원역사에서 부걸은 일본 귀족 영애와 결혼하여 딸 둘을 얻었다.

‘그렇다면 차기 황제는 부걸이고, 그다음 황제는 내 외손자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머나먼 훗날의 이야기이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이승만의 계산처럼, 20세기는 왕실 간의 국혼으로 인한 국가 간 인적연합은 시대착오적이고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충분히 시도할 가치가 있는 계획이었다. 청국 황실과 한국 황실이 ‘일가(一家)’를 이루고, 차기 청국 황제가 한국 황제의 혈통을 잇는다면, 군주제가 폐지되지 않는 이상 양국 관계는 불가분(不可分)의 관계가 될 것이다.

‘좋은 계획이야. 하지만 청 황실이 라는 원치 않는 게 분명하고. 그럼 금인데, 금은 이제 겨우 열셋. 결혼하려면 적어도 5년에서 7년은 있어야지. 뭐, 그때까지 차분히 관계를 증진시켜 볼까. 만약 금이가 싫다면 어쩔 수 없는 거고. 부걸이 라에게 마음이 끌릴 수도 있는 거고.’

이라가 서녀에 혼혈이라는 점을 꺼리는 건, 한국의 보수적 종친들보다 청 황실이 훨씬 심했다. 서녀까지는 그러려니 해도, 백인 혼혈인 건 전통적 사고방식으로는 용납할 수 없었다.

이선의 막둥이 이금은 아직 어렸고, 위로 세 명이나 아직 혼인을 치르지 않았는데 벌써 국혼을 논의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특히 이금은 막둥이답게 부모에 대한 사랑과 의존도가 엄청 강했고, 이선도 막내딸만큼은 오냐오냐 키웠다. 이선이 정무 중에 뛰어 들어와 안길 수 있는 건 이금뿐이었다.

“너는 황제 폐하의 공주라지만, 폐하께서는 만백성의 어버이시다. 황상께서 국사를 돌보시는데 어찌 여염집 아이처럼 함부로 구느냐? 다시는 그러지 마라. 또 그러면 크게 혼낼 것이다.”

막내의 어리광에 어머니 아영이 따끔하게 혼내기도 했지만, 이선은 관대했다.

“허허, 어린애가 그럴 수도 있지. 다만 이 아비 체면을 좀 생각해서, 대신들 보는 앞에서는 그러지 말거라.”

“네, 아바마마! 소녀는 세상에서 아바마마가 제일 좋아요! 평생 아바마마랑 같이 살면 좋겠어요.”

이금은 배시시 웃으며 아비의 품에 안겼다.

‘음, 이게 딸 키우는 재미인가.’

내리사랑이라고는 하지만, 뒤에 태어난 자식일수록 이선과 정서적 교감이 깊었다.

딱히 늙어서 사람이 변했다기보다는, 이선이 젊었을 때는 국가의 운명을 걱정하며 국정에 몰두하느라 자녀와 정서적 교감을 나눌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때의 이선은 문자 그대로 ‘만백성의 어버이’였고, 대한제국이야말로 애지중지하는 자식이었다.

대한제국이 열강 반열에 오르고, 이선이 국정 수행의 상당수를 내각에게 넘겨준 후에야, 비로소 자녀들과 교감이 깊어졌다.

부친을 열렬히 숭배하나 심리적 거리가 있었던 장남 진하고는 오히려 나이가 들어서야 마음을 털어놓는 사이가 되었고, 장녀 희하고도 그랬다.

차남 안과 차녀 라는 주말에만 보는 사이였고, 둘은 혼혈에 서자라는 처지로 인해 눈칫밥을 먹고 사는 처지다 보니 부친에게 잘 달라붙지도 않았다.

그에 비하여 삼남 은과 삼녀 금은 어릴 적부터 부친과 가까웠다. 그나마 사내인 은은 나이를 먹자 독립적인 성격이 되어 바다와 군함에 열광하는 해군 생도가 되었지만, 막둥이 딸은 그저 부모만 바라보는 부모바라기였다.

‘이제 막내까지 결혼을 계산해야 할 시기가 오다니. 자식들 모두 결혼할 때가 되었구나.’

스물셋 이안, 스물 이라, 열아홉 이은 모두 혼인을 고려할 시기였다. 왕조의 전례를 따르면 적령기를 이미 한참 지나쳤지만, 시대가 바뀌었으니 슬슬 결혼을 할 때가 되었다.

영국 유학 중인 안과 해군무관학교 생도인 은은 천천히 해도 되겠지만, 딸인 라는 결혼을 할 시기였다.

그렇기에, 이선은 유럽에서 돌아온 딸에게 결혼에 대해 의논하고자 했다.

* * *

“저는 당분간 결혼하고픈 마음이 없습니다, 아바마마.”

자신의 의견을 뚜렷이 드러내지 않던 차녀의 드문 의견 표명에, 이선은 내심 놀랐다.

“무슨 이유라도 있느냐?”

“저보다 오라비가 먼저 결혼하는 게 순리라고 생각합니다.”

“허허, 예전의 예경하고 똑같구나. 예경도 태자가 결혼하기 전에는 혼인을 올리지 않겠다고 했었지. 하지만 태자와 친왕은 경우가 다르다. 더욱이 안은 지금 영국에 있지 않으냐.”

“그렇기는 하오나…….”

이라는 말을 흐렸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였다.

“개의치 말고 말해 보아라.”

“알겠사옵니다. 소녀가 부황께 감히 아뢰옵건대…….”

이라는 결심한 듯, 자신이 생각하던 바를 부친에게 아뢰었다.

유럽에서 돌아오는 배 안에서, 마르가리타는 딸에게 말했다.

“네가 엘리자베트 여사를 본받고 싶다는 건 기특한 일이기는 하다만, 너는 황제 폐하의 딸이다. 만약 황녀인 네가 정치에 관여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어찌 생각하겠느냐.”

“예? 어머니, 오해세요. 전 정치를 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대한은 오스트리아가 아닌걸요. 저도 엘리자베트 여사가 아니고요.”

마르가리타의 우려에 이라는 오히려 깜짝 놀랐다는 듯이 답했다. 이라는 한국의 정치에 관여하고픈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애초에 정치에 큰 관심도 없거니와, 어릴 적부터 처신을 조심하던 이라가 부모님을 곤란하게 만들 일을 할 리가 없었다.

“제가 여사의 삶에서 본받고 싶은 건, 스스로 황녀의 지위를 던져 버리고 만인을 위한 삶을 산다는 그 자체지요. 얼마나 자유로운 삶이에요. 사랑하는 사람도 스스로 선택하고. 어떠한 굴레에도 굽히지 않잖아요.”

“아아, 그런 의미였구나.”

“전 세상의 시선과 굴레로부터 자유롭고 싶어요. 단지 그뿐이에요.”

남들과 다른 외모, 특별한 신분. 이라는 어릴 적부터 언제나 관심 혹은 적대의 눈빛을 보아야 했다.

난생처음 떠난 유럽에서 이라는 자유로움을 맛보았고, 그녀가 본 엘리자베트 마리아는 자유의 화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네가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게 있다. 너는 지금껏 황제 폐하의 배려와 은혜로 풍족하게 살았다는 걸 잊으면 안 돼. 만약 네가 진정한 자유를 추구한다면, 네 스스로 학문과 기술을 익혀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앞가림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네 포부는 다 의미가 없어지는 거야.”

대부분의 여성이 중등학교 진학도 못 하던 시대에, 예외적으로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가 된 마르가리타는 확신을 담아 딸에게 말했다.

“물론이죠, 어머니. 할 수만 있다면, 먼저 대학에서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요. 어머니처럼 의사가 되어서 장차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은데, 부황께서 허락해 주실까요?”

의사의 딸다운 말에, 마르가리타는 놀라면서도 내심 기뻤다. 딸의 생각은 자신이 40년 전 품었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황제의 딸이 의사라니, 한국은 물론이고 서양에서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구나.”

“아무래도 그렇겠죠……?”

전례 없는 일이었다. 이라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이자, 마르가리타는 딸을 다독였다.

“그래도 말씀은 드려 보거라. 설령 허락받지 못하더라도, 네 뜻을 알려 드리면 현명한 조언을 해 주실 게다.”

“예, 어머니. 한국에 돌아가면 말씀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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