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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혁명의 시대 3부-218화 (775/812)

3부 214화 대아시아주의

광무 28년 11월 29일, 대한제국 황성 경운궁.

대한제국 황제 이선과 중화민국 호법정부 육해군 대원수 겸 국무총리 손문의 회담이 성사되었다.

서한으로는 여러 번 의견을 주고받았지만, 이선과 손문이 공식적으로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손문은 9년 전에 원세개의 쿠데타로 실각한 후에도 방한해서 김옥균과 회담한 적 있었지만, 그때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방문일 뿐이었다.

6년 전 이선이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홍콩에서 회담한 적이 있었지만, 이 또한 ‘개인적이고 비공식적’이었다.

“동양의 위대한 지도자이신 대한제국 황제 폐하를 알현하게 되어 크나큰 영광입니다.”

“중국 인민의 대표자인 손 총리를 뵙게 되어 짐 또한 크나큰 기쁨입니다.”

이선은 손문과 사진기 앞에서 반갑게 악수했다.

공식 회담에서 황제와 동등한 국가원수로 인정한다는 표시에, 국제적으로 공인받지 못한 호법정부의 수반인 손문은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폐하의 위업은 중국에서도 명성이 자자합니다. 저는 중국에 민국을 수립한 공화주의 혁명가이지만, 폐하를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폐하와 같은 위대한 지도자가 있었더라면, 오늘날 허약하고 분열된 중국은 없었겠지요.”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위대한 혁명가인 손 총리가 아니었더라면, 중국에 어찌 민국이 건국될 수 있었겠습니까? 총리는 중국뿐만 아니라 동양의 역사를 바꾼 혁명가입니다.”

이선과 손문은 서로에게 찬사로 가득 찬 덕담을 보냈지만, 현실의 차이는 컸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이 손문은 나이 60이 되도록 이룩한 게 없다시피 하여, 동포에게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약소국 조선을 오늘날 열강 대한제국으로 이끈 이선과 달리, 손문은 신해혁명 성공을 제외하면 이룬 게 거의 없었다. 신해혁명 이후에도 군벌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끝에, 근래에야 광동에 가까스로 기반을 확립할 수 있었다.

“어찌 이룬 게 적다 하겠습니까? 총리는 중화민국의 국부로 영원히 기억될 겁니다.”

이선은 한껏 손문을 추켜세웠다.

한국 황제의 찬사에, 손문 자신보다 그를 수행하는 이들이 더욱 감격하는 눈빛이었다.

“자, 그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양국은 비공개로 회담에 들어갔다.

이선은 외무대신 김규식과 제국익문사 독리 이회영을, 손문은 최측근인 왕조명(汪兆銘)과 장중정(蔣中正)을 대동했다.

이선과 손문은 모두 영어가 유창했지만, 여러 언어에 능통한 김규식이 직접 통역을 맡았다.

“저를 보좌하는 왕조명 동지, 장중정 동지를 소개 드리겠습니다.”

‘왕징웨이와 장제스인가? 젊은 시절이군.’

왕조명과 장중정은 본명보다 자(字)인 정위와 개석으로 더 유명하다.

청년 혁명가 출신인 왕조명은 청조 말기 순친왕 재풍의 암살을 기도하다 체포되었다가, 신해혁명으로 석방되었다. 이로 인해 전국적인 명성을 누리게 되었고, 프랑스 유학 후 호법정부에 참여하여 손문의 보좌관이자 최측근이 되었다.

장중정에 대해서는 딱히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이선도 잘 알고 있었다.

‘요컨대 수명이 다해 가고 있는 손문의 후계그룹에 속하는 국민당의 2세대들이지.’

역사의 변화로 송교인이 살아남아, 국민당의 확고한 2인자로서 자리 잡고 있었다. 애초에 송교인은 신해혁명의 공로자이자 국민당 창설자이니만큼, 그 위상은 손문 못지않게 높았다.

문제는 송교인의 건강이 누적된 과로와 지병의 악화로 40대 초반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좋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이선은 김옥균을 통해 진작부터 송교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손문과 송교인의 유고를 대비하여 후계그룹을 염두에 두었다.

“총리가 어제 인천에서 한 연설은, 열렬한 박수로 장내가 터질 것 같다고 보도되었더군요.”

“감읍할 따름입니다. 그저 제 소신을 한국인들에게 밝힌 것입니다.”

손문의 연설을 들으러 온 이들 대부분은 중국에 우호적이거나 아시아주의자였으므로, 연설에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왕도의 간성이라. 짐 역시 어릴 적부터 왕도정치를 이 땅에 구현하는 걸 목표로 해 왔습니다. 대한을 넘어서 동양과 세계에 진정 왕도정치가 구현되는 날을 기대합니다.”

“참으로 현군(賢君)다운 말씀이십니다. 현재 세계 인구 4분의 1을 차지하는 아시아가 인의도덕(仁義道德)으로 연합 제휴함으로써, 아시아에 대한 서양의 압박에 대항하는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선은 손문이 아시아주의를 진심으로 믿는지, 아니면 외교적 수사인지 생각해 보았다.

세평에 따르면, 손문은 연설에는 능했지만 책략에는 하수였다. 너무 솔직해서 자신의 속내를 금방 드러냈고, 현실에서 붕 떠 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이상주의자였다. 오죽하면 젊은 시절 별명이 허풍선이라는 의미의 ‘손대포’였겠는가.

나이를 먹어 가면서, 계속 이용당하고 뒤통수를 맞으면서 사람이 변화하기는 했지만, 손문은 여전히 현실 정치가라기보다는 사상가였다.

‘원역사의 레닌이 손문을 평하기를, 흉내 낼 수 없을 정도의 처녀다운 순진성을 가진 사람이라던가. 과연 그런가?’

이선은 손문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어찌하여 국민당은 소련과 제휴합니까? 소련이 달콤한 말로 식민지 약소민족의 벗이라고 자처하지만, 그들의 본질적 목표는 세계혁명에 있습니다. 세계혁명이 진정 세계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혁명이라고 믿는다면, 그건 공산주의자거나 바보입니다. 나는 코민테른이 붉은 제국주의, 러시아 제국주의의 극좌적 변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선의 통렬한 소련 비판에, 손문은 당혹감을 느꼈다. 국공합작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는 왕조명은 통역을 듣는 순간 눈을 찌푸릴 정도였다.

장중정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었지만, 내심 이선의 말에 동조하고 있었다. 소련 시찰을 하면서, 장중정은 국민당을 대하는 소련의 태도에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러시아가 진정 왕도를 추구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러시아는 동양을 억압하던 서양이 아니던가요? 소련은 국민당을 이용해 공산당의 세력 확장을 추구하는 겁니다. 짐이 코민테른의 전략에 대해 연구해 봤는데, 저들은 소위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단계에 따른 전략을 추진하는 겁니다. 민중의 지지를 받는 국민당을 이용해 군벌을 무찌르고, 그 안에서 서서히 잠식해 들어가려는 것이겠지요. 공산주의자들을 경계하십시오. 그들은 중국의 적입니다. 짐이 중국과 여러분을 벗으로 생각해서 하는 충고입니다.”

소련 비판을 넘어서 국민당에 대한 훈계에 접어들자, 듣다못한 왕조명이 끼어들었다.

“폐하, 그건 중국 정부가 판단할 문제입니다!”

“정위! 함부로 끼어들지 말게! 폐하, 제가 대신 무례를 사과드리겠습니다.”

손문은 재빨리 왕조명의 입을 막았다.

이선에 대해서 잘 모르는 손문은, 한국 황제가 공산주의와 혁명을 혐오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고 해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허허, 아닙니다. 누구든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권리가 있지요.”

“황공한 말씀입니다. 먼저 국민당은 고(故) 김옥균 총리가 신해혁명 이전부터 물심양면으로 국민당을 지원해 준 사실에 깊이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고인의 서거에 저 또한 형제를 잃은 것 같은 슬픔을 느꼈습니다.”

“고마운 말씀이오. 짐은 고균의 충언을 받아들여 중국 혁명의 가능성을 믿었소.”

사실은 이선이 김옥균에게 지시한 것이었지만, ‘혁명을 혐오하는 군주’ 연기를 하고 있는 이선은 짐짓 김옥균에게 공을 돌렸다.

“다만 국민당이 대한의 적인 소련과 손을 잡았다는 소식에, 우리 정부에서는 호법정부에 대한 호의를 완전히 접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지요.”

“폐, 폐하. 그건……. 제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여기 우사와 우당은, 호법정부와 국민당만이 중국의 주권과 인민의 의지를 대표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정부는 총리를 초청한 겁니다.”

이번에도 이선은 자신의 구상을 김규식과 이회영의 공으로 돌렸다.

소련과 혁명을 혐오하지만,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여전히 국민당과의 제휴를 검토하겠다는 연기였다.

“폐하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제 속내를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라고 어찌 소련의 전략을 모르겠습니까? 다만 적의 적은 동맹이 될 수 있기에, 우리는 중국을 분할하는 서양 열강과 군벌의 적인 소련과 일시적 제휴를 선택한 겁니다. 그 외에 다른 뜻은 없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동맹은 단연 동양의 형제인 귀국입니다.”

한국을 안심시키기 위한 외교적 수사인가, 본심인가?

이선은 손문의 표정과 말을 보고 후자라고 판단했다. 왕조명의 말 없는 표정변화도 ‘저 양반 또 저러네.’를 의미했다.

‘참 솔직하군. 그렇다면 대화가 쉽지.’

“좋습니다. 짐은 총리의 진심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한국은 동양의 형제이자, 혁명의 오랜 후원자입니다. 어찌 이를 잊겠습니까?”

원역사의 손문은 중화주의와 아시아주의 사이에서 애매한 태도를 보인 사람이지만, 역사의 변화로 진심으로 아시아주의를 믿게 되었다.

저 가망 없던 망명자 시절, 김옥균은 한국의 총리임에도 삼화주의를 주창하며 중국동맹회를 지원해 주지 않았던가. 그러니 어찌 그 진정성을 믿지 않겠는가?

혹자는 만주와 몽골 등을 중국에서 떼어 내려는 한국의 제국주의적 음모라고 주장했지만, 애초에 손문은 중국 민족주의자로서 청조를 혐오했다.

중국 혁명을 성공시킬 수 있다면, 본토 18성을 제외한 ‘변강(邊疆)’ 지역은 얼마든지 독립시킬 용의가 있었다.

“대한제국은 모든 민족의 자결권을 존중합니다. 이번에 분리한 몽골도 마찬가집니다. 그렇기에 몽골의 독립과 인민정부 수립을 인정하고, 새로운 관계를 구축한 겁니다.”

“귀국의 결단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한국이 친소 외몽골 정권을 승인하자, 만주를 넘어 몽골까지 장악하려는 제국주의적 음모라는 비난은 설득력을 잃게 되었다.

“총리께 한 가지 다시 확인해 둘 것은, 청국과 중국은 별개의 국가라는 겁니다. 만주, 몽골, 신강, 티베트는 청국의 일원으로 남든, 혹은 독립하든 중국과는 무관한 독립국입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중국은 만주, 몽골, 신강, 티베트의 주권을 존중합니다.”

죽어서도 권위를 자랑할, 아니 살아 있을 때보다 죽은 후에야 더욱 권위가 상승할 중국의 지도자로부터 확고한 답변을 받은 이선은 만족감을 느꼈다.

함께 들은 이가 손문의 후계자와 충복을 자처할 왕조명과 장중정이니, 부정할 수도 없을 터였다.

“소위 범중화주의니 하는 패권주의적 행보는, 결코 동양의 평화에 도움이 안 됩니다. 단기서처럼 범중화주의 미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군국주의자는 타도되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광동과 북경의 협력과 승리를 바랍니다.”

“물심양면 배려를 아끼지 않는 귀국의 배려에, 중국 정부와 인민은 은혜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선은 현란한 수사로 쐐기를 박았다.

“짐과 대한제국이 국민당을 지지하고 후원하는 건, 서양 열강이나 일본과 대립할 가능성을 감수하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이 여러분을 지지하는 이유는, 중국은 대한의 소중한 이웃나라로서 패도를 추구하는 군벌의 압제로부터 벗어나길 희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공맹(孔孟)의 본향인 중국에서 왕도정치가 재건되는 날을 고대합니다. 그 역할은, 진정으로 중국 인민의 민의를 대변하는 국민당만이 수행할 수 있습니다. 왕도정치가 재건되는 그날까지, 우리는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이선의 현란한 수사를 들으며, 손문은 한국 황제가 진정 아시아주의를 신봉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왕도정치를 추구하는 군주라는 건 확신했다.

중국에서는 사라진지 오래인, 왕도정치의 미덕을 알고 있는 명군이었다.

“동양에는 폐하와 같은 위대한 군주가 있기에, 왕도정치의 맥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한국이 왕도의 간성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짐 또한 중국이 왕도의 간성이 되리라 믿습니다.”

이선은 손문의 말에 화답하며, 손을 내밀었다. 손문은 기쁘게 손을 맞잡았다.

“자, 그럼 실무 논의는 여기 두 사람과 하길 바랍니다. 우당과 우사는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전달하도록.”

“예, 폐하. 명을 받듭니다.”

이선은 김규식과 이회영에게 자리를 넘기면서, 빠르게 속삭였다.

“우당, 앞으로 저 깡마른 장교의 행보를 잘 지켜봐야 하네. 방문 기간 동안 최대한 한국에 우호적인 생각을 심어 두도록. 군사 시찰도 원하는 대로 하게 해 주게. 한국이 소련보다 유용한 동맹이 될 수 있는지를 각인시켜 주도록.”

“알겠습니다. 다만 장은 얼마 전 소련 시찰을 다녀왔고, 소련 군사고문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친소적 인사로 분류됩니다만…….”

“내가 확신하네. 그건 절대 본심이 아닐 걸. 숙적인 북양군벌, 그리고 그 배후에 있는 일본을 격퇴하려면 소련과 손을 잡는 게 최선이라고 택하고 있는 것뿐. 절대 소련과 영구히 합작하려고 하지는 않을 거야.”

이선은 확신을 담아 말했다.

그가 기억하기로, 이상주의자 손문의 수명은 얼마 남지 않았다. 병이 악화된 자연사였으니, 그 수명이 크게 바뀌진 않았을 터였다. 안색만 봐도 오래 살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 후계자로 왕징웨이가 가장 유력하다고 보지만, 나는 장제스에 걸겠네.’

왕조명은 손문과 송교인의 뒤를 잇는 국민당의 핵심지도자였고, 장중정은 손문의 개인경호원을 맡았던 군사지휘관이었다. 아무도 장중정이 후계그룹에 속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손문은 물론이고, 심지어 현시점의 장중정 자신도.

하지만 1920년대 중국은 혼란스러운 군벌의 시대였다. 군권을 가진 자, 군사적 지도력을 가진 자가 승리했다. 여기에 대의명분과 정치력이 첨가되면 금상첨화다.

역사가 크게 변화했다고는 하지만, 이선은 장중정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 * *

일본이 단기서와 안휘군벌을 막대한 차관으로 매수했듯이, 한국도 호법정부와 오패부에게 차관을 제공해 끌어들였다.

안휘군벌 타도를 목적으로 동맹을 주선했지만, 이선의 의도가 그리 순수할 리가 없었다.

‘안휘군벌이 타도되면, 직례군벌이 순순히 국민당에게 권력을 넘겨줄까? 군벌이 그럴 리가 있나. 새로운 대장 노릇을 하려고 들겠지.’

1단계. 광동 국민당과 북경 직례군벌의 동맹으로 남경 안휘군벌 정권을 타도한다.

2단계. 국민당과 직례군벌은 공동의 적이 사라지는 순간, 패권을 놓고 다시 대립할 것이다.

3단계. 국민당 내에선 공산당과의 합작을 반대하는 세력이 많다. 충분한 무력을 얻었다고 판단되면 공산당을 걷어차려고 할 것이다.

4단계. 안휘군벌이라는 피후견인을 잃은 일본은, 국민당보다는 다루기 쉬운 직례군벌과 접촉할 것이다. 직례군벌 입장에서도 사양할 이유가 없다.

5단계. 소련도 일본도 적대하게 된다면, 국민당은 ‘오랜 맹우’인 한국의 지원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6단계. 남경 국민정부와 북경 북양정부가 남북으로 대립하는 구도를 만들고, 한국은 국민정부의 북벌을 지원한다.

이선의 장대한 구상은, 중국의 국력을 내전으로 계속 소모하는 한편, 대의명분에서 우세하나 군사력이 약한 국민당을 지원하여 우호국으로 삼는다.

그 명분은 ‘중국의 국부’ 손문이 주창하는 대아시아주의라면 적당하지 않겠는가?

“내가 뭐랬나? 한국 황제는 실로 일세의 영걸이야. 한국은 진정 왕도를 아는 나라라니까. 중국의 문화를 이토록 이해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야. 그건 일본도 따르지 못하네. 일본은 서양 흉내는 잘 내지만, 왕도는 몰라.”

은밀히 한국으로부터 향후 5년에 걸쳐 차관과 무기 지원을 약속받은 손문은, 크게 기뻐하며 측근들에게 말했다. 소련을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손문으로선 한국과 관계가 회복된 게 기뻤다.

“하지만 저들을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 서양 열강과 손잡고 만주를 사실상 식민지배한 제국주의 국가 아닙니까.”

“그렇게 따지면 중국 분할에 가담하지 않은 열강이 어디 있나? 만주는 중국의 국외 문제야. 한국은 일본과 달리 중국 본토에는 야심이 전혀 없지 않나. 그럼 충분하네.”

손문에게 중요한 건 중국 본토지, 만주가 아니었다. 한국이 만주를 어떻게 차지하든 알 바 아니었다.

“자, 삼민주의 혁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북경으로 가세.”

손문은 장차 군벌과의 싸움에서 든든한 동맹을 얻었다고 믿고, 중국의 미래를 논의하기 위한 협상을 하러 북경으로 향했다.

하지만 손문에게 남은 시간은 극히 짧았다.

북경에 도착한 손문은 병세가 악화되어 쓰러졌고,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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