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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혁명의 시대 3부-226화 (외전) (783/812)

3부 222화 외전. 여명의 세기

주미 대한제국 대사 조한민은 어느 일요일 아침 꿈에서 깨어났다.

너무나도 생생한 꿈이라, 다시 잠자리에 들 수조차 없었다. 조한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마셨다. 다시 현실이었다.

“무슨 일이에요? 일요일인데 좀 더 주무시지 그래요…….”

“꿈을 꿨소. 아주 긴 꿈을. 근데 말하기에는 너무 기이하군.”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온 남편이 흔치 않은 표정을 짓는 것을 본 아내가 물었다.

“무슨 꿈인데 그래요? 이야기해 보세요.”

“음, 말하기에는 불경한 내용인데…….”

“꿈 이야기인데 뭘 어때요? 더군다나 여긴 자유의 나라 아닌가요.”

고민하던 조한민은 아내의 설득에 자신의 꿈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황제 폐하, 아니 태상황 폐하를 대신해서 고종 태황제께서 계속 재위하는 세계였는데…….”

조한민이 꿈에서 본 세계에서의 대한제국은, 어찌 된 영문인지 이선이 아닌 고종 이형이 황제로서 군림하고 있었다.

꿈속 대한제국의 국력은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열강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가까스로 생존을 유지하다, 그마저도 일본의 침략 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꿈속에서도 나는 외교관이었소. 어떻게든 일본의 침략을 격퇴해 보겠다고 동분서주했지.”

미국에 유학 중이던 의친왕 이강을 초빙하여 함경북도에 분조(分朝)를 마련하고, 이상설을 수반으로 하는 임시정부가 항일운동을 이끌었다.

러시아의 힘을 빌려 일본군 본대를 무찌르고, 한국민의 전국적인 항일 봉기로 침략자를 몰아냈다.

해방전쟁을 승리로 이끈 조한민은 구국의 영웅으로 추앙받았고, 전후 신정부의 실질적 지도자가 되어 급진개혁을 이끌었다.

“정말 기이한 꿈이네요.”

“그렇소. 근데 거기서 꿈이 끝나지 않았소.”

실질적인 권력을 빼앗긴 고종은 조한민의 급진적 개혁을 혐오했고, 러시아를 끌어들여 친위쿠데타를 계획했다가 실패했다. 조한민은 고종을 면전에서 꾸짖어 퇴위시키고, 태자 이척을 차기 황제로 옹립하였다.

대한제국에서 조한민의 공식적인 지위는 외무대신에 불과했으나, 그 위상은 황제를 뛰어넘은 최고 권력자이자 ‘국가의 아버지’였다.

“부인, 이 꿈 내용은…….”

“절대로 입 밖에 내지 않겠어요.”

조한민의 꿈은 기이하다 못해 심히 불경스러웠다.

앞으로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걸, 부부 모두 인지했다.

한동안 어색한 침묵을 지키다, 조한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걸쳤다.

“밖에 나가 산책이라도 하겠소.”

“예, 다녀오세요.”

‘왜 이런 꿈을 꾼 거지?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라고 했는데, 설마 내게 숨겨진 권력욕이라도 있었단 말인가?’

조한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광무 7년(1903) 제국익무사에 처음 발탁되어 경력을 대부분 해외에서 보낸 조한민은, 어느덧 나이 쉰을 넘긴 중년이 되었다.

머리는 희끗희끗하게 변하고, 날렵하던 몸에는 나잇살이 붙었다.

권력에 대한 욕심이 있다면, 최소 외무대신 정도는 노려 봐야 할 시기였다.

「이승만은 그렇다 쳐도, 김규식은 조한민보다 나이도 젊고 경력도 짧지 않은가? 조한민이 차기 외무대신이 될 차례라고 생각했는데.」

이승만의 후임 외무대신으로 김규식이 임명되었을 때, 외교가에서는 저런 세평이 나돌았었다.

당대 가장 주목받던 외교관 3인방 중 이승만은 외무대신을 역임했고, 김규식은 신임 외무대신이 되었지만, 조한민은 주영대사를 거쳐 주미대사로 전출되었다.

물론 주미대사는 해외 주재 특명전권대사 중 최고봉이었고, 대신과 동급의 지위를 부여한 요직 중의 요직이었다.

그래도 외교관의 최고봉인 외무대신에 이르지 못한 건 사실이라, 조한민의 경력도 주미대사가 마지막이 아니냐는 말이 나돌았다.

‘굳이 꿈 내용을 해석해 보자면…….’

아마도 고종이 일종의 친위쿠데타를 계획하다 아들인 이선에게 저지당하고 퇴위당한 일이, 무의식적으로 꿈에선 자신으로 드러난 모양이었다.

‘‘내게 권력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었나? 심지어 국부의 자리를 노리는?’

단언컨대 그건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조한민과 나이가 비슷하고, 경력도 유사한 이승만이 야심만만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이승만은 총리가 목표라는 걸 공공연히 드러냈고, 실제로 그 직전까지 도달했었다.

결국 총선거에서 간발의 차로 실패해 주청 고등판무관으로 전출되었지만, 총리를 향한 이승만의 열망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에 비하면, 조한민은 권력에 대한 어떠한 욕심도 드러낸 바가 없었다.

주러대사, 주독대사, 주영대사, 주미대사를 거치며 외교의 요직에 있었고, 배후에서 제국익문사 구주(유럽)지부를 이끌며 음과 양에서 대한제국의 대외정책을 보조했다.

이선은 조한민을 신뢰했고, 조한민도 이선에게 충성했다.

새 황제 이진과는 특별한 접점은 없었지만, 국가원수인 이상 충성을 다할 뿐이었다.

한때 사회민주주의에 관심을 가지던 시절도 있었지만, 인생의 절반을 한국 외교에 바친 조한민은 충성스러운 제국의 외교관이었다.

‘꿈은 꿈일 뿐, 아무런 의미도 없다. 나는 그저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할 뿐.’

조한민은 상념을 떨치기로 했다.

태상황 이선의 방미(訪美)를 앞두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다가, 신경이 곤두선 나머지 무의식적으로 그런 꿈을 꾼 모양이었다.

이선의 방미는 단순히 퇴위한 황제의 해외 방문이 아니었다.

이선은 미국에 당분간 체류할 의사를 밝히면서, 미국 정부에 국빈 대우를 요청하지도 않았다. 이런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라 미국 정부는 놀라워하면서도, 우방국 황제의 체류에 환영 의사를 밝혔다.

미국 정부의 체류 허가를 받은 이선은, 조한민에게 밀명을 내렸다.

「대사에게 특명을 내린다. 첫째, 미국 경제를 세밀히 조사하여, 경제공황의 파국에 대비할 준비를 해야 한다. 둘째, ……」

밀명을 받은 조한민은 의문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1920년대 미국은,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라고 불릴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기록하며 호황을 누리는 중이었다.

미국의 공업 발전과 경제성장은 경이로운 수준에 이르렀고, 당대 인류 대부분이 구경조차 하지 못한 자동차와 라디오의 대중화가 이루어졌다.

이런 호황은 당분간 계속 지속되리라는 게 전문가의 중론이었다.

그런데, 이선은 1907년 금융위기(Panic of 1907)를 능가하는 경제공황의 가능성을 대비하라고 주문했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기우(杞憂)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조한민은 문득 예전 일을 떠올렸다.

1913년 시점에서, 유럽에 대전쟁이 발발하여 유수의 제국들이 무너지리라고 예측한 사람이 대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런데 황제는 예측했다. 특히 러시아가 취약하리라 생각했다. 러시아 내 한국 자산을 모두 빼돌려 스웨덴으로 옮기는가 하면, 소수의 사회주의 망명자 그룹과도 접촉하게 했다.

사회주의자 사이에서나 명망 있을 뿐, 러시아 국내에서는 알지도 못하는 망명자들이 러시아라는 거대한 나라의 권력을 잡으리라고 누가 예상했겠는가?

놀랍게도 황제는 예측했다. 이 사실을 아는 건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1917년 혁명 직전 스위스에 망명 중이던 울리야노프와 접촉하여 밀약을 맺었던 장본인이 바로 조한민이었으니, 그 자신은 모를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걸 다 예측할 수 있단 말인가? 황제는 정말 천리안을 갖고 있단 말인가?’

황성대학을 졸업하고 영국에서 유학한, 당대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받은 조한민은 천명(天命)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황제는 하늘의 가호를 받는 사람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놀라운 예측력을 갖고 있었다.

조한민은 황제의 혜안에 감탄하면서도, 문득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섬뜩함을 느꼈다.

국제정치의 은밀한 배후에서 역사의 변화를 조종한 장본인 조한민은, 기실 황제의 장기말에 불과하지 않은가?

모든 건 황제의 뜻대로였다. 조한민은 황제의 대리인에 불과했다.

자신의 능력과 경험을 토대로 독자적인 정책을 추구해 보려고 해도, 결국 따져 보면 언제나 황제가 가장 옳다는 걸 부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연 내가 그 자리에 앉아 있다고 해서, 언제나 올바른 판단만을 할 수 있을까? 어림도 없지. 역시 황제는 하늘이 낸 사람인가.’

과연 최첨단의 번영을 누리는 미국 자본주의에도 위기가 밀어닥칠까?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던 러시아의 혁명과 사회주의 정권 수립도 현실이 되었다.

그렇다면, 황제가 예측한 대공황의 가능성도 고려해 봐야 하지 않을까?

‘러시아 혁명과 경제위기가 모두 유대인 배후자본의 조종이라는 음모론이 있지. 그렇게 떠드는 놈들이 우리 황제 폐하의 진실을 알게 되면, 배후에는 사실 동양인 배후가 있다고 거품을 물겠구만.’

조한민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이선과 일찌감치 협력관계를 맺은 헨리 포드도, 유대인 음모론의 신봉자였다.

경제계를 넘어 정계에 진출,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이 된 이후로는 노골적인 음모론을 내세우지는 않지만, 여전히 그가 소유한 언론은 유대인 음모론을 전파했다.

정작 포드는 자신과 밀약을 맺은 이선에 대해서는 온갖 찬사를 보냈다.

만약 이선이 경제공황의 가능성을 탐지하고 있다는 걸 알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의문이었다.

포드뿐만 아니라, 조한민과 교류하고 있는 미국 정재계 최고위 인사들 모두 대공황은 예상하지 못하고 있을 터였다.

‘뭐, 어찌 됐건 내가 할 일을 하면 되는 거지. 구태여 따질 필요가 없다.’

숙련된 국제정치의 배후조종자답지 않게, 조한민은 단순한 면이 있었다.

단지 그 시점에서 필요한 일을 할뿐이었다. 그리고 그럴 능력도 있었다.

이선이 중대한 임무를 조한민에게 계속 맡기는 이유였다.

* * *

1927년, 미합중국 워싱턴.

대한제국 대사관이 주최한 만찬에 미 정계인사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금주법이 맹위를 떨치던 시절이라, 각국 대사관이 주최하는 파티는 정치인들에게 금주법을 우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외교공관은 치외법권이라 미국의 법이 적용되지 않으니, 얼마든지 술을 즐길 수 있었다.

집권 여당인 공화당 의원들은 물론이요, 야당인 민주당에도 초청장이 발부되었다.

뉴욕주의 연방 상원의원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금주법 초기부터 한국 대사관의 VIP였다.

“어서 오십시오, 의원님. 신수가 훤하십니다.”

“하하, 대사님 덕분에요.”

역사의 변화로,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소아마비에 걸리지 않고 정치 활동을 이어나갔다.

1922년 중간선거에서 뉴욕주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된 루스벨트는, 1928년 선거에서 뉴욕주지사 출마를 고려했다.

민주당의 촉망받는 정치가인 루스벨트는 차기는 일러도 차차기 대권후보로 언급되는 인물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의원님.”

“간만입니다, 중령. 아니 이제 대령인가? 다시 오다니, 미국이 어지간히 좋은가 봅니다?”

“하하, 군인은 명령받은 대로 움직이는 거 아니겠습니까.”

“부인께선 미국으로 다시 발령받아 좋으시겠군.”

“예, 그녀에겐 모국이니까요.”

루스벨트는 워싱턴 주재 수석무관 김유진 정령과 반갑게 악수를 했다.

주재무관 임무를 마치고 귀국한 김유진은, 이례적으로 올해 다시 워싱턴 주재무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만큼 군부 내에서 김유진이 미국통으로 평가받는다는 의미였지만, 어찌 보면 장성 진급 코스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정령 진급 후에는 참모본부나 연대장 보직을 거쳐 장성 진급을 노리는 게 출세의 코스였지만, 주재무관으로 다시 발령된 건 분명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태상황 폐하께서 김 정령에게 거는 기대가 큽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고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사님.”

김유진 자신은 미국으로 재발령 된 게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애당초 군 복무는 정령까지만 하기로 결심했던 바였고, 미국에서 인맥을 최대한 많이 터놓으면 전역 후 사업가로의 변신에 도움이 될 터였다.

김유진의 부인도 미국행을 환영했다.

김유진은 미국에서 근무하던 중, 서재필처럼 미국 정계 명문가의 여식과 결혼했다.

규정상 대사관 무관이 현지 여인과 결혼하는 건 군복을 벗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고, 군부에서도 반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김유진은 오히려 이를 기회로 전역서를 낼 생각이었다.

「김유진은 유능한 장교이니, 특별히 미국 여인과의 결혼을 허락하는 바이다.」

통수권자인 대원수가 허용한다는데, 감히 군부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정작 김유진 자신은 전역의 기회를 놓쳤다고 내심 통탄할 따름이었다.

‘뭐, 월급 받은 만큼 일하면 되는 거 아니겠나.’

김유진의 복무 원칙 제1호, ‘월급 받은 만큼 일한다.’

정령 계급에 수석주재무관으로서 넉넉한 월급과 수당을 받으니, 받은 만큼은 일해야 할 터였다.

김유진에게는 다른 이에게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탁월한 재능이 있었으니, 이선은 결코 순순히 전역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터였다.

“안녕하십니까, 부인. 오늘도 변함없이 아름다우십니다.”

“감사합니다. 의원님은 언제나 말씀을 잘하시는군요.”

“하하, 정치인이란 말로 먹고사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루스벨트는 대사 부인과도 반갑게 인사를 했다.

대사 부인 최신혜는 만찬의 안주인 격을 맡아, 능수능란하게 손님을 접대했다.

최신혜는 남편 조한민보다 한참 연하인 데다 동안이라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딸이나 조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후후, 미국인들도 당신 미모는 알아주는군.”

“그야 지금은 대사 부인이니까 그렇지요. 처음 유학 왔을 때만 해도 얼마나 차별받고 무시당했는데.”

“하지만 당신은 이겨 냈지.”

최신혜는 제중원 병원에서 견습 간호사로 일하던 중 관비 유학생으로 발탁되어, 미국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인종차별이 만연해 있던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어린 동양인 여성인 최신혜가 받았던 모욕과 멸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꿋꿋이 이겨 내어 학위를 이수했고, 한국 여성 의학사의 선구적인 존재가 되었다.

“얀코프스카 여사께서 늘 사표(師表)가 되어 주셨지요. 어릴 적에 크게 아팠을 때 가족들조차 나를 버렸지만, 그분이 직접 치료해 주셨어요. 그때 결심했지요. 나도 의학을 공부해서 생명을 살리겠다고.”

최신혜는 어릴 적 생사의 고비를 넘긴 적이 있었다. 그 유명한 ‘정동 파란양’이 그녀를 치료해 주지 않았더라면, 꼼짝없이 세상을 떠났을 터였다.

가난한 상민의 딸인 최신혜가 마르가리타를 동경해 의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했을 때, 모두가 무시하고 비웃었다.

하지만 그녀는 견습 간호사부터 시작해 어깨너머로 실무를 익혔고, 주경야독 끝에 관비유학생으로 발탁되어 마침내 미국에서 의사 자격증을 받았다.

“당신은 어떠한 경우에도 좌절하지 않지. 당신의 그런 점을 높이 평가하오.”

“그건 대사님, 당신도 마찬가지죠. 얀코프스카 여사 못지않게 당신도 내게 삶의 길잡이였는 걸요.”

조한민이 익문사에 발탁되기 이전 황성대학 강사였던 시절, 야학(夜學)에서 배우길 원하는 여성 노동자들을 무상으로 가르쳤다.

그 시절의 제자가 바로 최신혜였고, 10년 뒤에 외교관과 의사로 재회한 두 사람은 결국 결혼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걸 내 덕이라 할 수 있을까? 시대가 변한 덕이겠지. 새로운 세기는 희망의 시대가 되었으니까.”

천주교도로 박해받았던 몰락양반의 후손인 조한민이 고위 관직에 오르고, 가난한 상민의 딸인 최신혜가 의사가 될 수 있었던 건, 역사의 변화가 없었더라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설령 전자는 어떻게 가능했을지 몰라도, 후자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실로 변혁의 시대가 만들어 낸 기적이었다.

절대다수의 조선-한국인에게, 20세기 초는 세상을 완전히 뒤바꾼 혁명의 시대였다.

“이 시대는, 참으로 여명의 세기로군.”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어떤 단어로 규정해야 할지 생각하던 조한민은, 문득 여명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어두운 밤을 몰아내고 희미하게 날이 밝아 오는 빛. 희망의 빛.

바야흐로 20세기 초는 한국인들에게 있어 희망의 시대, 빛나는 여명의 세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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