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427)

*

학교엔 뮤닷 로고를 제거한 카메라를 든 카메라맨과 보조 스태프 한 명만 왔다. 그들은 티가 나지 않게 한율이 수업 받는 모습을 중심으로 가볍게 찍은 후 물러났다가, 한율이 자전거를 타고 WB래빗으로 향하는 걸 스토커처럼 쫓아다니며 촬영한 후 철수했다.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네.’

시청률은 바닥이고 참가자는 마흔 명. 한 사람에게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나 인력이 적은 건 당연한 일일지도. 한율은 그렇게 추측하며 임시숙소 발코니에다 자전거를 놔둔 후 회사로 향했다. 

“서한율!”

남자연습생 휴게실에 들어가자 심각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있던 차남석이 기다렸다는 듯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다짜고짜 한율의 팔을 잡고 휴게실 밖으로 끌고 나갔다. 들어간 곳은 빈 보컬 연습실. 

“너 혹시 대표님이 우리 팀 이름 뭐로 접수했는지 들었냐?”

“아뇨? 팀명은 나중에 우리가 짓게 해준다고 미루지 않았어요? 예선 전에만 지으면 된다고.”

“내가 오늘 보컬리스트 스태프한테 들었는데···.”

말을 흐리는 차남석의 표정도 잔뜩 흐려졌다. 그는 정말 내뱉기 싫은 말을 해야 하는 사람처럼 한참을 머뭇거리다 소리 냈다. 

“꽃을 단 토끼.”

“···미친 토끼에요? 꽃을 왜 달아.”

“접수된 우리 팀명이 ‘꽃을 단 토끼’라고.”

“······.”

한율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세상에, 무슨 그런 끔찍한 작명을···!

차남석이 문에 등을 기댄 채 주르륵 쭈그려 앉았다. 

“아무리 어그로끄는 게 중요하다지만, 꽃을 단 토끼라니 이게 뭐냐고 진짜······.”

“······.”

“미친 토끼라고 존나 놀려댈 게 뻔한데···. 슬픈 발라드 부르기 직전에 꽃을 단 토끼라고 소개될 거 생각하면, 하, 거기에 발음 하나 까딱 잘못하면······.”

정말 아이돌 데뷔가 목표는 아니지만, 이건 정말 아니었다. 한율은 ‘꽃을 단 토끼’라는 깜찍하지만 끔찍한 수식어가 자신에게 붙는 걸 상상하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가죠.”

한율은 차남석을 강제로 일으켰다. 그리고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대표실로.”

“안 된대.”

툭. 수화기를 놓으며 좌기훈 대표가 고개를 저었다. 

“이미 그렇게 편집이 다 들어간 상태라 이제 와서 바꾸기 힘들대. 그리고 그렇게 튀는 좋은 이름을 왜 바꾸냐고···.”

“대표님 제발요! 이건 진짜 아니라구요! 대표님은 우리 회사에서 처음 선보이는 남연이, 방송에 나가서 미친 토끼라고 비웃음 받으면 좋으시겠어요?!”

평소 자신 앞에만 서면 꼿꼿하게 얼었던 차남석이 그렇게 나오자 좌기훈 대표는 살짝 놀란 눈치였다. 그리고 본인의 작명 센스가 그렇게 구린 건가 심각하게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한율에게 물었다. 

“한율이 너도···.”

“끔찍해요.”

“어, 그래···. 음··· 하지만 말이다, 얘들아. 너흰 아이돌이 목표인 애들이야. 앞으로 팬들의 니즈에 맞춰 온갖 애교를 부리며 빵긋빵긋 웃어야 하는데 고작 이름 하나 때문에···.”

“그 이름이 인상과 노래까지 잡아먹게 생겼는데요, 대표님.”

“아니, 얘들아? 꽃을 왜 머리에 달았다고 생각해? 가슴에 달 수도 있는 거잖아. 그리고 좋은 무대를 보이면 이름이 어떻든 다 충분히 끌어안고 갈 수 있어. 그렇게 실력에 자신이 없니?”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대표님···. 최소한 ‘단’이 아니라 ‘든’이었다면 또 몰라······.”

그러나 아무리 항의한들, 방송국에서 편집이 다 들어가 수정이 힘들다 하니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결국 한율과 차남석은 ‘꽃을 단 토끼’가 되어 터덜터덜 대표실을 나왔다. 

“이게 다 우리 회사가 힘이 없어서 그래. 만약 대형 기획사였으면 즉각 다 수정해줬을걸?”

“대형이었다면 애초에 그 프로그램에 들어가지도 않았을 텐데요.”

“넌 적군이냐 아군이냐.”

시간이 지나자 당장 싫어서 울컥했던 마음도 퍽 가라앉았다. 한율은 대답하지 않았고, 차남석은 체념 어린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막 2층으로 내려갔을 때였다. 

“빡고?”

“······!”

막 2층 사무실을 나오던 연습생이 차남석의 부름에 화들짝 놀라 돌아봤다. 남자연습생 중 가장 나이가 어린 박고영이었다. 박고영은 마치 나쁜 짓을 하다 걸린 아이처럼 어색하게 웃었다. 

“어···, 형네 왜 3층에서 내려와요?”

“대표님한테 따··· 아니,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렇구나. 하하, 맞다. 형네 곧 방송 나가지? 음, 바쁘겠당.”

“넌 무슨 일인데?”

“어··· 아, 팀장님한테 좋은 학원 추천받으려구요.”

“지금도 빡센데 뭘 더 배우려고 그래.”

박고영의 대답은 대충 둘러대는 느낌이 강했지만 차남석은 더 이상 물고 늘어지지 않았다. 한율은 아예 관심 자체를 두지 않았다. 곧 박고영은 화장실에 들렀다 간다며 그들과 떨어졌다. 

차남석이 멀어지는 박고영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뭔 일이 있긴 있는데···.”

한율은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일은 우리한테 생겼죠. 꽃을 대체 어디에다 달 건지.”

“아··· 기껏 잊고 있었는데······.”

한율과 차남석은 방송이 나가기 전까지 다른 연습생들에게 팀명을 철저히 숨기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연습에 매진하는 하루 끝, 침대에 누워 잠깐 눈을 감았다 뜨면 아침이 시작되는 나날이 흘러 월말평가일이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합 맞춰보고 갈까?”

유호의 제안에 A팀은 연습실을 나가려다가 다시 대형을 갖췄다. 그리고 도입부 전부터 집중한 뒤 음악이 다 끝날 때까지, 몇 날 며칠 새벽 늦게까지 연습한 안무를 펼쳤다. 

—쿵. 발을 세게 구른 뒤 그 반동으로 흔들리다 제각기 다른 엔딩 포즈로 뚝 멈췄다. 

“오오, 이만하면 좋은데?”

핸드폰으로 찍은 조금 전 안무 영상을 돌려보며 임승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언이 한율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하뉼, 너 진짜 많이 늘었다?]

한율의 눈엔 원곡 아이돌그룹의 무대에 비해 한참 떨어졌지만, 준비하고 연습한 기간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유호가 웃으며 팀원들에게 타월을 챙겨주었다. 

“이대로 가면 감기 걸리니까 땀 잘 닦고.”

A팀은 마지막으로 연습실을 정리한 뒤 나왔다.

우웅. 월말평가가 진행될 제일 큰 연습실로 이동하던 도중, 유호의 핸드폰이 짧게 울렸다. 유호가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팀원들에게 손짓했다. 

“먼저 가 있어.”

“네.”

두 번째로 맞는 월말평가. 지난달과 마찬가지로 연습실에는 여자연습생들도 함께였다.

회사 측에선 웬만하면 남녀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주의하는 편이었지만, 강의료와 시간문제 상 모든 레슨을 따로 받게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몇몇 연습생들은 그 틈을 비집고 썸을 탔다. 지금도 몇 사람 간엔 묘한 눈빛교환이 이뤄지고 있었다. 

한율에게도 연기레슨을 같이 받으며 말 몇 마디 주고받은 적 있던 여자연습생이 작게 손을 들어 알은체했다. 입모양으로 ‘하이’라고 인사하며. 한율은 무심코 그녀에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그 순간,

꼬집. 

“아.”

차남석이 한율의 팔을 세게 꼬집었다. 왜 그러냐고 돌아보자, 차남석이 눈썹을 미간으로 모았다가 치켜세웠다. 귓가에 닿은 낮은 목소리가 으르렁거렸다. 

“미쳤냐?”

한율은 황당한 얼굴로 눈을 끔뻑거렸다. 상대방이 인사를 해서 받아준 것뿐인데 난데없이 미쳤냐니?

“단 둘이 있을 때면 몰라도 다른 애들 있는 데선 눈도 마주치지 마. 괜히 말 생기니까.”

빠르게 충고를 던진 차남석은 그대로 한율의 어깨를 잡은 채 남자연습생들이 모인 곳으로 끌고 갔다. 한율은 꼬집힌 팔을 슬슬 어루만지며 미간을 찡그렸다. 고작 가벼운 인사도 남의 눈치를 봐야 하는 건가. 

시간이 되자 대표를 위시한 직원들과 트레이너가 모두 들어왔다. 유호는 세 대의 카메라가 설치된 후에야 들어왔는데, 한율은 스치듯 본 그의 표정에서 불쾌하고 초조해하는 기색을 읽었다. 

신인개발팀 강무기 팀장이 짝짝 박수를 치며 주의를 끌었다. 

“자, 그럼 4월 평가를 시작하겠습니다. 안 온 사람 손?”

이번 월말평가 노래로 한율은 맨디 무어의 를 불렀다. 이건 차남석과 한율의 노래를 봐주는 보컬트레이너의 지시이기도 했다. 

『노래에 감정을 싣는 연습이라 생각해.』

무리하지 않게 키를 조금 낮춰서 불러 큰 실수는 없었으나, 노래가 다 끝나자 보컬트레이너는 한율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일부러 감정을 싣지 않았던 한율은 슥 그의 시선을 피하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시간이 흘러 댄스 평가 시간. A팀은 오늘 아침에도 그랬듯 음악이 시작되기 전부터 대형을 갖췄다. 

‘역시 좀 이상한데.’

삼각 대형 끝에 선 한율의 눈엔 다른 팀원들의 모습이 다 들어왔다. 시작 포즈 역시 고개를 비스듬히 든 채 정면을 주시하는 터라, 센터에 선 유호의 모습이 가장 잘 보였다. 

그 순간 강렬한 사운드가 울리고, 한율은 동시에 생각을 접었다. 어느 순간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던 오기. 그로 인해 새벽 늦게까지 몸이 부서져라 연습했던 성과를 스스로 확인할 차례였다. 

한편 그 시각, 음악전문 케이블 채널 뮤닷의 보컬리스트 기획팀 사무실. 김강원 PD는 조금 전 너튜브에 올린 보컬리스트 시즌3 티저 영상의 반응을 확인하고 있었다. 

방영 날짜는 두 달 후로 잡혔지만, 아무리 시청률과 화제성이 바닥을 친다해도 소리 소문 없이 슥 시작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이번 시즌 외모 탑은 JZ랑 WB 애들인데··· 아직 얼굴을 보여줄 수 없는 게 아쉽네.’

티저 영상의 시작은 의도적으로 윤곽을 흐릿하게 만든 참가자의 사진이었다. 그 위로 다른 참가자들의 사진이 하나 둘 점점 빠르게 쌓이며 포커스가 멀어진다. 

둥. 주의를 끄는 효과음과 함께 새카만 바탕에 보컬리스트 로고가 멋들어지게 박히고, 화면은 한 참가자의 인터뷰 영상으로 돌아갔다. 

의도적으로 입술 위 얼굴을 잘라놓았지만, 흠 잡을 데 없는 새하얀 피부와 적당히 날렵한 턱선, 성인이 되기 전 소년 특유의 덜 여문 목과 옷깃 사이로 살포시 나온 쇄골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PD가 물었다. 사실은 다른 인터뷰에서 말했던 걸 따서 붙였다. 

[걱정되진 않아요?]

참가자의 입술이 부드럽게 말려 올라갔다.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듣기 좋은 깨끗한 미성이었다. 딕션도 좋았다. 

[아예 생각을 안 하려고요.]

쿵. 영상은 더 강한 효과음과 함께 다시 새카만 바탕의 보컬리스트 로고로 돌아간다. 바로 그 옆에 ‘시즌3’ 글자가 새로이 박히는 것으로, 15초가량의 짧은 티저가 끝났다. 

-이건 내 촉이다. 인터뷰 한 애 꽃돌이 삘이다. 믿어라. 난 쟤다. 

ㄴ잠깐 봤는데 피부 엄청 좋긴 하더라ㄷㄷ 

ㄴ응 화장빨^^

ㄴ멍청아, 목까지 다 덮었으면 티나지 이 동태눈깔아

-이거 또함? 누가 보냨ㅋㅋㅋ 것도 이번엔 남탕이구욬ㅋㅋ

ㄴ그래서 중소에서만 애들 내보내나봄. 이런 거라도 해야 조금이라도 알리니까

-시간 낭비 말고 군대나 가자 얘들아!! 나라가 부른다!! 

ㄴ딱 봐도 대부분이 미자구만; 거 너무한 거 아니요

“하아······.”

김강원PD는 드륵드륵 마우스 휠을 내리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예상대로 댓글 대부분이 부정적이었다.

‘나중에 애들 얼굴 다 나오는 트레일러 영상이 나오면 조금 나아지려나······.’

국장도 시청률이 시즌2보다 떨어지면 시즌4는 꿈도 꾸지 말라며 엄포를 놓고 간 상황이었다. 김강원PD는 실수인 척 몇몇 참가자의 얼굴을 흘려버릴까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일어났다. 

‘그러다 괜히 시작도 전부터 편애 논란일라.’

우웅. 그때 김강원PD의 핸드폰이 울렸다. 

[고동엔터 김지영 실장]

“네, 김강원입니다. ···아, 김 실장님이 어쩐 일로······. 오늘 저녁이요? 어쩌죠? 내일이 바로 예선 촬영이라 술은 좀 그런데. ···아하하, 그래요? 네, 그럼 갈게요. 네, 이따 뵙겠습니다.”

왜 그래

“···A팀.”

음악이 끝났다. 거칠어진 숨을 억누르며 마지막 포즈를 유지할 때, 조용해진 분위기 속에서 댄스 트레이너가 운을 뗐다. 창백한 안색에 퀭한 시선을 든 그녀의 목소리는 낮지만 날카로웠다. 

“왜들 이래요?”

“······.”

“A팀 리더 유호 연습생. 말 해봐요.”

“···죄송합니다.”

“어떻게 된 게 내내 뒤로 빠진 차남석, 서한율 연습생 빼고 합이 다 엉망일 수 있지? 세 사람이 가장 잘해서 좋은 부분 다 가져간 거 아니었어요? 왜 도중에 한 명 따라 같이 무너져!”

차분하게 짚던 트레이너의 목소리가 끝에서 쩌렁 울려 퍼졌다. 숨을 죽이고 지켜보던 몇몇 연습생들이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각자 솔로로 데뷔할 거예요? 누가 솔로 시켜준대?!”

한율을 제외한 A팀 팀원들은 죽을죄를 지은 것처럼 두 손을 공손히 모아 잡은 채 고개를 푹 숙였다. 격앙된 호흡을 고른 댄스 트레이너가 차남석과 한율을 차례로 가리켰다. 

“두 사람 빼고 셋이서만 춰 봐요. ···음악 주세요.”

한율은 차남석과 함께 뒤로 성큼 물러났다. 그리고 가만히 서서 유호와 임승준, 라이언이 춤추는 것을 보았다. 유호는 실수를 지적받은 게 굉장히 분한 듯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었다. 다른 두 사람도 마찬가지. 그러나 잘 맞던 합은 중간을 지나자 유호의 자잘한 스텝 실수로 인해 살며시 어그러졌다. 옆에 있던 라이언도 흔들렸고, 동시에 댄스 트레이너가 기기 앞에 선 직원을 향해 손을 들었다. 

“그만. 음악 꺼주세요. 수고하셨어요, A팀.”

그녀는 연습생들에게 일별도 던지지 않고 평가서로 시선을 내렸다. 

“하······.”

유호는 자리로 돌아간 뒤 마른세수를 하다 그대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실수를 저지른 당사자임에도 굉장히 분노한 서늘한 표정에, 주변의 다른 연습생들이 되레 그의 눈치를 보았다. 라이언은 잔뜩 주눅이 든 채 무릎 사이로 고개를 푹 숙였다. 임승준은 유호에게 뭐라 말하려다 그냥 입을 다물고 혼자 씩씩거렸다. 

한율은 유호를 슥 보곤 B팀의 댄스로 시선을 옮겼다. 

‘처음부터 정신이 딴 데 팔린 것 같더라니.’

* * *

“두 사람, 이리로.”

월말평가가 다 끝난 후, 트레이너들과 직원들이 먼저 자리를 떴다. 그러나 좌기훈 대표가 나가지 않고 차남석과 한율을 부르자, 차례대로 나가려던 연습생 대부분의 동작이 하나같이 굼떠졌다. 내일 촬영을 나가는 그들에게 대표가 무슨 말을 할 지 궁금한 까닭이었다. 

“내일 여섯 시까진 뮤닷에 가야되는 거 알고 있지? 오늘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저녁 먹은 다음에 숙소에 들어가서 푹 쉬어. 목 상하지 않게 조심하는 거 잊지 말고. 알았지?”

“여섯 시면···.”

“샵에 들르려면 3시에 일어나야지?”

“히익···.”

한율은 시간을 확인했다. 현재 시각 오후 4시 10분. 12시간도 안 남았다. 

“그럼 레슨도 빠져요?”

“음, 오늘은. 나중에 촬영 잡히는 날에도.”

그러고서 좌기훈 대표는 두 사람에게만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응원했다.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너희가 예선을 통과하면 다른 친구들도 스튜디오로 응원갈 수 있어. 그러니 우리 ‘꽃을 단 토끼’, 파이팅!”

“······화이팅.”

“···홧팅.”

기운 빠지는 응원을 받으며 마지막으로 나온 두 사람은 남자연습생 휴게실로 향했다. 구내식당 저녁시간은 5시부터라 시간이 붕 떴다. 

“진짜 새벽부터 하루 종일 촬영할 건가 보다. 여섯 시까지 나오라는 거 보면.”

“스무 팀에 각각 5분씩만 할애해도···.”

“그렇게 딱딱 맞춰서 돌아가면 얼마나 좋겠냐. 하지만 팀별로 무대 세팅하고, 대기하고, 인터뷰 따고, 중간에 제작진 회의 들어가고, 그러다보면 엄청나게 늘어질걸. 이번 시즌은 듀엣 포맷인 만큼 인원이 더 많으니 분명 뭔 일도 터질 거다. 장담한다.”

이번 월말평가 그룹댄스는 죽을 쑨 거나 다름없지만 차남석은 그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아니, 거기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는 건가.’

길우성의 말에 따르면 차남석은 현재 연습생 중에서 데뷔조에 들어갈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이라고 했다. 과거 공중파 노래 경연 프로그램에서 본선에 진출한 이력이 있는데다, 얼굴도 잘생기고 노래 실력도 수준급이며 춤도 안정적이라. 

본인 또한 본인이 아닌 팀원의 실수로 월말평가 한 번 삐끗했다고 크게 문제되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을 것이다. 회사의 월말평가보다 방송이 더욱 중요한 기회란 것도. 

“거기 예비 스타 두 분?”

휴게실이 있는 복도에 들어섰을 무렵, 휴게실 문 밖에 나와 있던 길우성이 두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곤 그대로 뒤로 물러나라는 듯 손짓하며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훠이, 훠이.”

“······?”

“왜 그래?”

길우성은 멈추지 않고 두 사람의 몸을 강제로 돌린 뒤 등을 밀었다. 

“이대로 뒤돌아서, 다른 곳으로 가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안에, 어후, 분위기가 아주 살벌해요.”

“왜. 유호 형 때문에?”

“그보단 승준이 형이랑 라이언이 한 판 붙는 중이요. 괜히 휘말렸다가 불똥 맞을라.”

그때 맞은편에서 싸늘하게 굳은 표정의 강무기 팀장이 나타났다. 길우성이 당혹스런 얼굴로 중얼거렸다. 

“어, 아직 물리적 충돌 전인데···?”

강 팀장이 세 사람을 향해 곧장 다가왔다. 

“휴게실에 유호 있냐?”

“네, 있···.”

강 팀장은 길우성의 대답을 다 듣지 않고 그대로 쌩 지나쳤다. 그러곤 노크 없이 휴게실 문을 벌컥 열었다. 한국어와 영어로 설전을 벌이는 임승준과 라이언의 목소리가 복도로 크게 새어나왔다가 뚝 멈췄다. 

“유호, 나와.”

곧 유호가 휴게실에서 나왔다. 무슨 일로 불려 가는지 알고 있는 사람처럼 유호의 표정은 그룹댄스 평가를 받았을 때보다 더욱 안 좋았다. 그는 복도에 서있는 한율과 길우성, 차남석을 보곤 잠시 흠칫하더니, 이내 시선을 피하며 그들을 지나쳤다. 

“대체 무슨 일이야? 아까 실수한 것 때문에?”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뭐지?”

한율이 휴게실로 들어가 보니, 임승준과 라이언의 충돌도 어수선해진 분위기 속에서 흐지부지된 상태였다. 다만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는 구석진 곳, 박고영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

“야, 차남석! 서한율! 내일 둘 다 잘하고 와라!”

“들어가서 잘 쉬고, 컨디션 챙겨야지!”

그때 응원하는 몇몇 연습생들이 박고영을 향한 한율의 시야를 가렸다. 차남석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밥 먹고 퇴근할 거거든?”

“뭐야, 대표님이 맛있는 거 안 사주신대?”

“그냥 저녁 먹으라던데?”

“떨어지면 사주시려나 보다.”

“야, 우리 예선에서 떨어지면 너희도 스튜디오 구경 못한다?”

“떨어질 거면 멋있게라도 떨어져라? 회사 망신시키지 말고.”

다들 팔팔한 10대에서 20대 초반 남자라 그런지 휴게실 분위기는 이내 왁자지껄하게 변했다. 유호와 가장 친한 몇몇 연습생들만이 무슨 일이 있는 건가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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