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4/427)

* * *

박현우가 동행하게 된 연유는 단순했다. 길우성이 간만에 제주도로 내려간다는 말을 듣고선, 자기도 가고 싶다며 그냥 합류했다는 것이다. 드라마 촬영이 시작되기 전, 여름에 제주에서 놀고 싶다고. 

“너도 우리 집 올래? 너 오면 우리 엄빠가 엄청 좋아할 것 같은데.”

평일이었지만 성수기에 접어들어서 그런지 이륙직전인 비행기 안은 어수선했다. 한율은 60년대에 타봤던 비행기와 비교하며 안전벨트를  맸다. 

“촬영 끝나고 여유 되면. 아, 너 혹시 한라산 정상까지 가 본 적 있어?”

“후···.”

길우성이 고개를 젓더니 창 너머로 아련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사극 톤으로 나긋나긋 말을 이었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5월만 되면 아이들을 한라산으로 강제로 끌고 갔었지. 그뿐인가? 육지 것들이 관광지다 뭐다 신나게 떠드는 장소 모두, 우리에겐 유치원 때부터 지겹도록 다닌 소풍 장소였다네, 친구.”

“···그러냐.”

“그렇다네, 친구.”

띵. 핸드폰을 비롯한 모든 전자기기 전원을 꺼달라는 기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한율은 핸드폰 전원을 끄기 전 새로 들어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며칠 전부터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이런저런 메시지나 전화가 걸려오고 있었다. 일일이 상대하기 귀찮아져서 아예 무음으로 두고 무시했더니 빨간 숫자만 잔뜩 쌓였다. 

‘조만간 번호를 바꾸든가 해야지.’

전원을 끈 한율은 시트에 편히 몸을 기댄 채 자그마한 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아직 푸른 저녁 하늘 아래, 활주로와 공항 건물, 그리고 그 너머로 펼쳐진 도시 불빛이 예쁘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제주도에 도착했을 땐 여름 해가 완전히 진 캄캄한 밤이었다. 굳이 다른 일행을 제치고 가장 먼저 비행기에서 내린 길우성이 일행을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리며 외쳤다. 

“어서 와, 제주도는 처음이지—?!”

박현우도 두 팔을 벌리며 외쳤다. 

“처음 아니거든—?!”

풋. 해맑기 그지없는 그 모습에, 함께 내리던 다른 승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조유찬이 황급히 길우성과 박현우를 끌고 갔다. 

“공공장소에선 조용히!”

공항에서 나온 후엔 렌트한 미니 승합차를 타고 인근 식당으로 이동. 늦은 저녁을 먹은 뒤엔 길우성과 박현우는 따로 택시를 타고 길우성의 집으로 향하기로 했다. 

“시간되면 전화 해. 같이 놀게!”

“너희들 선크림 바르고 다니는 거 잊지 마! 특히 박현우!”

“네에.”

두 사람을 보낸 후엔 다시 차를 타고 예약된 호텔로 향했다. 호텔은 소박한 곳으로, 조유찬은 침대 두 대가 놓인 아늑한 객실에다 한율과 차남석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손에 마스크 팩 한 장씩을 쥐어 주었다. 

“시간 늦었으니까 씻은 다음에 이거 20분씩 하고 자. 얼굴에 덮은 채로 그냥 잠들면 안 된다.”

“네에.”

“에어컨 너무 세게 틀지 말고.”

“네에.”

“알람은 다섯 시···, 아니, 네 시 반에 맞추고.”

“···네에.”

다음 날. 새벽에 비몽사몽 일어난 두 사람은 간단히 조식을 먹은 후 차를 타고 이동했다. 깜빡 다시 잠들었다가 눈을 떠서 내린 곳은 광활한 녹차 밭이었다. 

“하···.”

시야를 가득 채우는 푸름에 머리도 깨끗하게 비워지는 느낌이었다. 한율은 잠시 눈앞의 아름다운 광경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어디선가 마법과 비슷한 기운이 실려 오고 있었다. 

‘저건.’

한율은 홀린 것처럼 그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약해진 기운의 근원지로 손을 뻗었다. 

‘반질반질하네.’

어느새 따라온 차남석이 한 쪽 눈썹을 찡그렸다. 

“돌하르방 코는 왜 만지고 있어? 아들 낳게?”

“아들을 왜 낳아요, 뜬금없이?”

“그거 만지면 아들 낳는다는 설 있던데, 아닌가?”

“무슨 소리에요, 이건 수—.”

“수?”

무심코 ‘수호석’을 내뱉을 뻔한 한율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곤 코가 닳아 없어진 돌하르방에게서 손을 뗐다. 한율이 지닌 마력에 반응한 것인지, 가느다랗게 딸려오던 돌하르방의 기운이 힘없이 툭 떨어졌다.

아무것도 아니야

‘이 땅에 오랫동안 스며든 믿음을 바탕으로 힘을 가지고 만들어졌지만···.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장소에 둬야 제대로 된 역할을 할 텐데, 그냥 보기 좋으라고 아무렇게나 세워뒀으니.’

게이트가 열릴 때쯤엔 정작 기운이 다해 평범한 돌조각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한율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등을 돌렸다. 

“아무 것도 아니에요.”

화창한 여름 햇살 아래에서 촬영이 진행되었다.

“우왓! 무슨 바람이···!”

솨아아아. 푸른 잎이 일제히 물결치는 것은 장관이었으나, 변덕스러운데다 강한 바람 탓에 수시로 머리와 옷매무새를 만져야했다. 아주 동서남북 사방팔방에서 휘몰아쳤다가, 잠잠해졌다가 휙 불어왔다가 난리도 아니었다. 

바람이 유명한 제주다웠다. 

“아까 선선하게 불었을 때가 딱 좋았는데···. 이대로 가다간 모든 일정이 딜레이되겠는데요?”

“바람이 좀 잠잠해지면 좋겠는데···.”

“······.”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촬영진 측은 심각한 얼굴로 상의에 들어갔다. 촬영장 순서를 바꾸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한율은 바람 때문에 몇 번이고 머리를 다시 만져주는 스타일리스트를 보며 속으로 한숨 쉬었다. 

촬영이 길어지다 못해 일정까지 늘어지면, 가고 싶었던 곳을 찾을 시간마저 사라질 지도 모른다.

‘하는 수 없지. 이 정돈 아무것도 아니기도 하고.’

한율은 살며시 눈을 감고 손끝을 아주 얇은 마력으로 감쌌다. 그리고 불어오는 바람에 섞인 마나와 접촉을 시도했다. 한율의 손가락이 까딱, 까딱 미세하게 움직였다. 

곧 스태프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오, 잠잠해졌다.”

“뭐지? 저긴 여전히 세게 부는데 여기만 잦아들었네? 참 신기한 곳이야, 제주도.”

“다 됐다.”

스타일리스트가 한율에게서 물러났다. 그리고 차남석의 머리도 능숙한 손길로 정돈해주곤 카메라 밖으로 나갔다. 

이후 촬영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장소 옮길게요!”

녹차 밭에서의 촬영이 다 끝나고, 사람들은 다음 촬영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처음부터 촬영을 쭉 지켜보던 보송화장품 측 기획 담당자가 조용히 한율에게 다가왔다. 

“한율 씨, 처음 봤을 때부터 정말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요.”

“네.”

그녀는 심각한 얼굴로 한율의 이마와 뺨을 살폈다. 굉장히 집요한 시선이었다. 

“진짜 피부 관리 어떻게 해요? 어릴 때부터 무슨 화장품을 썼는지, 씻을 때 어떤 제품을 쓰는지 다 말해줄 수 있어요? 자주 먹는 음식이나 좋아하는 음식, 선호하는 차, 음료 같은 것도 전부. 집에서 따로 챙겨주는 건요?”

“한 가지가 아니신데요.”

“아, 부모님도 피부가 좋으세요? 이게 제일 중요한 건데 깜빡할 뻔했네.”

“······.”

* * *

예쁜 카페, 비자림과 수목원에서 진행된 이틀간의 촬영이 끝난 후, 한율은 소품 도구로 전락한 기타를 차 안에 고이 넣었다. 그리고 트렁크에서 캐리어와 가방을 꺼냈다. 

“너희들 진짜 괜찮겠어?”

조유찬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먼저 본인의 캐리어를 꺼내 옆에 세워둔 차남석이 걱정 말라는 듯 웃었다. 

“저희 다 고등학생인데요, 뭘.”

“그래도 걱정되는데······.”

제주에 내려간 김에 이번 주말은 편히 쉬게 하는 건 어떻겠냐 먼저 얘기를 꺼낸 게 좌기훈 대표였기에, 조유찬은 더 이상 말리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 시간이니 뭐라 할 수도 없고···. 그럼 너희들 진짜, 진짜진짜 인터넷에 올라갈 만한 일 만들지 말고, 선크림 꼭 챙겨서 바르고, 항상 어디서건 누구를 만나든 예의바르게 행동하고, 또 뭐가 있지···. 아, 아무리 신난다 해도 밤새서 놀지 말고!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나한테 전화하고!”

“네.”

잔소리가 너무 길다. 그러나 몇 달 동안 익숙해졌기에 한율과 차남석은 잘 듣고 있다는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하면 제때제때 잘 받고. 알았지?”

“네에.”

“남석이 형! 써한!”

투박한 SUV 차량 한 대가 끽 멈춰서더니 조수석 창에서 길우성의 얼굴이 나왔다. 곧 운전석에서 중년 남성이 내렸다. 이목구비는 길우성과 전혀 닮지 않았지만, 웃는 모양새와 분위기는 누가 봐도 부자지간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우성이 아빠입니다!”

두 사람을 마중 나온 차는 곧바로 길우성의 부모가 운영하는 흑돼지 전문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그리 규모가 크진 않았지만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빠, 여기!”

한 소녀가 그들을 향해 번쩍 손을 들었다.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고기를 굽던 박현우도 돌아보았다. 어느새 다가온 중년 여성도 한율과 차남석의 등을 두드렸다. 

“와, TV보다 실물이 더 훤칠하네!”

한 눈에 봐도 길우성의 모친이었다. 

“자, 자리에 가서 앉아요. 배고프겠다.”

“안녕하세요.”

뒤늦게 꾸벅 인사를 한 후 길우성의 누나와 박현우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갔다. 길우성의 누나, 길미현은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마자 핸드폰을 꺼냈다. 

“사진 찍어도 되죠? 아니, 되지? 어, 반말해도 되려나?”

“편하게 말 놓으세요.”

“그렇다고 나 대하듯 너무 편하게 대하면 안 된다, 곰순···, 악!”

퍽. 길미현은 깐죽거리는 길우성의 다리를 망설임 없이 걷어 찬 후 카메라 앱을 켰다. 사진 찍는 데에 익숙한 그들은 금세 화면 안에 들어가 환히 웃었다. 길미현을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째려보는 길우성까지. 

찰칵. 

“친구들한테 자랑해야지~.”

“이게 바로 대한민국 고3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가만 있어보자···, 수능이 며칠 남았더라···.”

퍽. 

“아팟!”

식욕이 왕성한 고등학생들은 고기가 익는 순간 입으로 가져가기 바빴다. 그렇게 어느 정도 배를 채운 후 후식으로 냉면을 먹으면서야 이런저런 잡담을 나눴다. 

“그나저나 내일 뭐할까? 형들은 가고 싶은 데 있어요?”

“한라산.”

길우성의 물음이 끝나기 무섭게 한율이 대답했다. 

“난 내일 한라산에 가려고 하는데.”

“허얼···.”

길우성과 길미현이 신기한 생물을 발견한 듯 동시에 한율을 쳐다보았다. 

“어째 나한테 한라산 정상까지 가봤냐고 묻더라니···.”

“아니, 왜 스스로를 괴롭히려고 해? 고민 있어? 막 마음이 복잡해서 그래? 스트레스 많이 받았나 보다, 어떡해···.”

“한라산이 그렇게 힘들어?”

차남석이 의아한 얼굴로 박현우를 향해 물었다. 멋대로 길우성의 냉면을 반이나 가져가던 박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정상가는 코스말고 다른 코스로 갔었는데 힘들어서 뒈질 뻔.”

“백록담까지 오르려면 진짜 빡센데. 왕복 여덟 시간은 기본이야.”

“괜찮아. 원래 주말마다 산 자주 다녔었거든. 저번에도 설악산 혼자 갔다 왔고.”

“희한한 놈일세···. 그럼 내일 몇 시에 일어나야 되지?”

“너도 가려고? 나 혼자가도 돼. 그게 더 편하고.”

길우성이 충격 받은 표정을 지었다. 

“뭐냐, 서한율? 벌써부터 날 끌고 다니기 귀찮은 짐짝 보듯이 보는 것 같은 이 기분은 뭐지?”

“나도 가지 뭐. 그런 데에 너 혼자 보냈다가 나중에 무슨 소릴 들으라고. 나도 한라산 궁금하기도 하고.”

차남석까지 합세하자 박현우가 질색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이 미친 자들. 난 빠진다.”

“그럼 너 내일 혼자 뭐하려고?”

“야, 나 피부 타면 안 돼. 병약한 설정의 재벌 3세가 건강하게 탄 구릿빛 피부 자랑하면서 등장하는 거 본 적 있냐?”

“그렇게 등장하면 역대급일 듯요. 크크큭.”

“—엄마! 얘네 내일 한라산 간대요!”

다음 날. 결국 박현우를 제외하고 한율과 길우성, 차남석은 새벽 일찍 버스를 타고 한라산으로 향했다. 

바로 그날 새벽에 <보컬리스트 시즌3> 본방이 방송되었지만, 이틀 연달아 촬영을 진행한 피로와, 조금이라도 일찍 정상까지 오르려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한다는 생각에 잊어버린 게 컸다. 

‘길우성은 그렇다 쳐도, 차남석, 서한율 이 정신없는 것들. 나까지 덩달아 본방사수하는 걸 잊었네.’

남의 집에서 홀로 뒤늦게 일어난 박현우는 느긋하게 하품을 하며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살폈다. 포털사이트 실검엔 지난주처럼 또 ‘보컬리스트’가 올라와 있었다. 

이번 주 내용은 한 달 전에 있었던 1차 본선 1부. 실검에 오른 건 두 팀이었다. 하나는 1차 본선 1부 중 굉장히 잘한 팀 이름, 또 하나는, 

“허얼···.”

박현우는 잔뜩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보컬리스트 꽃을 단 토끼 무대···.”

박현우는 직접 가서 봤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실제로 현장에 가서 듣는 건 사운드를 온몸으로 느끼는 것과 다름없다. 그리고 그날 두 사람의 노래는 좋았다. 

솔직히 다른 참가자들과 비교하면 실력이 가장 좋다곤 할 수 없었다. 굉장한 고음으로 화음을 쌓거나, 무대를 휘어잡을 정도의 감정 연기를 선보이며 노래까지 놓치지 않는 참가자들도 있었으니. 

꽃을 단 토끼의 무대는 그런 최상위권 실력자들 간의 싸움을 구경하던 중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박현우는 <보컬리스트 시즌3> 클립 동영상 페이지에서 꽃을 단 토끼 1차 본선 영상을 눌렀다. 한 낡은 건물 모퉁이처럼 꾸민 세트를 뒤로 한 채 벤치에 앉은 서한율이 기타연주를 시작했다. 원곡과는 달리 간결하게 편곡되었지만 속도는 같았다. 차남석은 그 옆 스탠딩 마이크 앞에 섰다. 

원곡은 The Script의 .

도입부는 차남석이 그 특유의 중저음 보이스로 시작됐다. 조금 굵은 그 울림은 담담하면서도 서정적인 노래의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후렴구엔 서한율의 깨끗한 목소리가 곧게 치고 들어왔다. 코러스가 아닌, 또 다른 그녀를 기다리는 동지처럼 조심스럽게 파고 들어와 차남석과 호흡을 맞췄다. 2절은 그와 반대로. 

감정은 둘 다 과하게 잡지 않았다. 이건 의도한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격정을 내보인다면, 그녀와 만났던 모퉁이에 가만히 앉아 기다린다는 가사와 모순되게 여겨질 테니. 

둘은 그녀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기다리면, 언젠가 그녀가 와주지 않을까 믿는 순진한 소년들이었다. 

영상을 끝까지 본 박현우는 슥슥 페이지를 내려 댓글을 보았다. 

-여기가 그 유명한 안구정화, 귀 정화 포인트인가요. 

ㄴ그 전에 누구 팀이었냐; 보는 내가 다 힘들 정도로 꽥꽥 소리 지르던 무대 보다가 얘들 보니까 급차분해짐ㅋ

-와···. 역시 애들이라 성장이 빠르네. 예선이랑 본선 시간 차이가 확 느껴짐ㄷㄷ;

ㄴ한율이 키 더 컷쪄요>ㅅ<)♡

ㄴ노래도 더 늘엇쪄요>ㅅ<)♡

ㄴ남석이는 진짜 잘 자랐다... 예선 때도 느꼈지만 ㄹㅇ존잘돼서 나타남ㅠㅠ...

-서한율 유학파임? 발음 원어민 수준인데

ㄴㄴㄴ대한민국 밖으로 한 번도 나간 적 없다함ㅇㅇ

-마지막 부분 진짜 좋다ㅠㅠ 둘이 쳐다보면서 부르는 거 봐ㅠㅠ 돌아와이뇬들아ㅠㅠ.... 

-얘네 지금 뭐하고 있을까? 붙었으면 슬슬 2차 준비할 시기 아님? 

ㄴ감성소녀 이번 타이틀 곡 뮤비에 꽃토끼’가?! (https://www.neotu······)

ㄴ공홈 게시판 보니까 CF찍었다는 목격담 있던데요. 붙은 것 같음. 

박현우는 그 아래로 댓글을 작성했다. 

ㄴ지금 한라산 오르고 있어요. 

* * *

“한라산을 오르고 있다고?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소리··· 라고 보기엔 애들이 진짜 제주에 있잖아?”

WB래빗 엔터테인먼트 대표실. <보컬리스트 시즌3> 본방사수를 하고서 그대로 밤을 샌 좌기훈 대표가 황당한 표정으로 눈을 끔뻑거렸다. 그러곤 설마하는 생각에 핸드폰을 들었다. 

“···어, 남석아. 어디···, 왜 이렇게 목소리가 힘든 것 같지? 너희들 어디야?”

-[한라산··· 백록담입니다, 대표님.]

“거긴 왜 간···.”

핸드폰 너머에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야이 써한 이 의리 없는 쌍쌍바 같은 놈아! 우리 버리고 먼저 올라오니 좋냐?!]

-[길우성 조용히 해!]

“···남석아, 혹시 현우도 같이 있니?”

좌기훈 대표는 하산할 때 다치지 않도록 안전히 내려오라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가, 뒤늦게야 사진 몇 장 찍어서 보내라는 메시지를 날렸다. 

우웅. 곧 핸드폰이 울렸다. 좌기훈 대표는 차남석이 보낸 메시지겠거니 무심코 핸드폰을 집었다가 미간을 찡그렸다. 김강원PD 전화였다.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야 대표인 자신에게 직접 전화를 걸 리 없을 텐데. 

“네, 김PD님. 어쩐 일로···. 네. ······네? 브로커요? 글쎄요, 저는 금시초문입니다만. ······네, 한 번 애들한테 물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좌기훈 대표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게 진작 참가자 섭외에 신중을 기했어야지. 미꾸라지 하나 때문에 우리 애들한테도 흙탕물 튈까 걱정이네······.”

“네? 대표님 뭐라고요?”

지금껏 테이블 자리에 앉아 조용히 노트북을 노려보던 기획홍보팀 강순철 팀장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노트북 화면엔 서한율과 차남석의 사진이 여러 장 띄워져 있었다. 

좌기훈 대표는 판다 같은 얼굴로 슥 미소 지었다. 

“아니에요, 아무것도. 그나저나 업자는 언제 오려나···.”

건강이 우선

<보컬리스트 시즌3> 2차 본선 방청 신청접수가 시작되었다. 날짜는 8월 12일 금요일 밤 9시 30분. 방송은 생방송으로 진행되며, 현장투표 뿐만이 아니라 실시간 문자투표도 함께 받는다.

그 전인 8월 6일 새벽에 방영될 6화는 예선에서 떨어진 팀들의 에피소드를 비롯한 촬영 비하인드 특집편으로 꾸며질 예정이었다. 

“이번엔 꼭 가서 응원할게!”

모친이 크게 결심한 얼굴로 말했다. 한율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사람 많은 곳 힘들어하시잖아요.”

“아냐. 그래도 우리 아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날인데, 엄마란 사람이 집구석에서 TV로만 응원할 순 없잖아.”

“어머니가 오면 걱정 때문에 더 집중이 안 될 것 같아서 그래요.”

“······!”

충격 받은 모친의 옆에서 부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보. 예전에 백화점에서 당신 쓰러졌을 때 같이 있었던 한율이가 얼마나 놀랐었는데. 기억 안 나?”

“약 먹으면 괜찮을 것 같은데···.”

“안 돼요.”

“안 돼.”

두 부자의 단호한 말에 모친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이대로 두면 2차 본선 날까지 내내 우울해할 것 같아, 한율은 모친을 살며시 안아주었다. 

“전 제가 무대에 오르는 것보다 어머니 건강이 더 중요해요. 그리고 이건 제게 있어 당연한 마음이니, 미안해하실 필요 전혀 없어요.”

어릴 적부터 또래에 비해 어른스러웠지만, 한편으론 이런 스킨십에는 굉장히 인색했던 아들이었다. 모친은 눈에 고이는 눈물을 참으며 어느새 훌쩍 자란 아들의 품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부친은 흐뭇한 얼굴로 두 모자를 바라보았다.

적당한 시간을 두고 모친을 놓은 한율은 주제를 바꿨다. 

“참, 저 핸드폰 번호를 바꾸고 싶은데요.”

학교가 방학 시즌에 들어가자 회사는 연습생들에게 9시 단체레슨부터 참여하기를 권고했다. 그러나 강제는 아니었기에 한율은 점심시간 즈음 모친과 함께 동네 통신사 대리점에 들러 번호를 바꿨다.

쏴아아. 비가 너무 쏟아지는 터라 모친은 회사 앞까지 차로 태워다 주었다. 

“원래 여기 사람이 많니?”

차 안은 타인과 차단된 안전한 장소로 인식이 되는지, 모친은 회사 앞 편의점이나 주변에 우산을 쓰고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을 보며 의아한 표정만 지었다. 

의아한 건 한율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번 ‘서한율 인성’이 실검에 올랐을 때 기자 같은 인물들이 알짱거렸던 게 떠오르긴 했지만, 이번엔 별다른 이슈 없이 조용히 지나가지 않았나. 

“골목이 복잡하니 전 여기에서 내릴게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응, 우산도 챙기고.”

한율은 가방을 매고 차 문을 열었다. 그리고 모친이 건네준 우산을 펼치며 내리는 순간이었다. 꺄악! 돌연 들리는 비명에 어깨가 흠칫 떨렸다.

탁. 한율은 황급히 차 문을 닫았다. 우산에 가려 보이지 않던 사람들의 면면은 대부분 어린 여학생들이었다. 그 중엔 후드소녀도 있었다. 오늘은 티나 재킷이 아닌 노란색 우비 후드를 뒤집어썼다.

후드소녀가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율이 오빠!”

한율은 걱정으로 머뭇거리고 있는 모친을 향해 괜찮으니 가시라고 손짓했다. 그리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걸로 추정되는 그들을 향해 곧장 걸었다. 

잠시 후, 한율은 손에 짐을 잔뜩 든 채 회사 로비로 들어갔다. 스륵 닫히는 투명한 문 너머에서 몇몇의 여학생이 외쳤다. 

“한율아, 힘내!”

“응원할게!”

“레슨 열심히 받아요, 오빠!”

한율은 그들에게 덤덤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어주곤 계단으로 종종 걸음을 옮겼다. 얼굴이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게 되어서야 그 미소는 씁쓸히 변했다. 

“······?”

남자연습생 휴게실 앞에 도착했을 때, 한율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문이 바뀌어 있었다. 이전에 없던 카드 리더기까지 달려 있어 무심코 출입증을 갖다 댔더니 삑, 철컥. 잠금이 해제되었다. 

“오, 써한! 우리 스타님 오셨어요?”

“와, 역시 방송 효과가 대단하긴 하네. 팬들이 막 기다렸다가 선물도 주고.”

“뭐뭐 받았어?”

안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휴게실에 있던 연습생들이 말을 건넸다. 한율은 뒤로 문을 닫으며 대답했다. 삐릭. 문이 자동으로 잠겼다. 

“다 내 거 아니에요. 남석이 형은?”

“사무실 호출. 그럼 네 건 뭔데?”

“없는데.”

“뭐···?”

길우성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다가오다가 우뚝 멈췄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라는 표정. 

“선물은 마음만 받겠다고 거절해서, 편지 몇 통 빼곤 다 남석이 형 거야. 아, 하나는 나랑 형 같이 먹으라고 준 거라 받은 거고.”

“허얼···.”

축하한다거나 놀리려던 연습생들이 하나 같이 맥빠진 얼굴로 한율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문은 언제 바뀐 거야?”

“토요일에 대표님이 업자 불러서 바꿨대. 이제 문 열려고 출입증 찍는 순간 누가 몇 시 몇 분에 출입하는지 다 기록되는 거지.”

한율은 여전히 휴게실 구석에 놓인 야광 돼지저금통을 보았다. 돼지저금통의 머리엔 영정사진처럼 검정색 테이프가 사선으로 붙여져 있었다.

‘저것 때문인가.’

한율은 편지는 따로 빼서 가방에 넣고, 차남석 앞으로 온 선물들은 일단 자신의 캐비닛 안에 차곡차곡 쌓았다.

우웅. 그때 길우성의 핸드폰이 울렸다. 

“어, 형. ···응? 써한요?”

길우성이 한율을 바라보며 통화 상대방에게 말했다. 

“지금 휴게실에 있는데? ···옛서얼.”

“······?”

“써한, 너 폰 꺼놨어? 남석이 형이 네 전화 상태가 이상하다는데?”

“아아. 오는 길에 번호 바꿨거든. 왜?”

“2층 매니지 팀으로 오래.”

한율은 고개를 끄덕이곤 캐비닛을 잠갔다.

철컥. 

평일 오후라 그런지 2층 사무실엔 사람이 많았다. 심지어 처음 보는 얼굴도 있을 정도. 늘 저녁 시간대나 주말에만 사무실에 왔었던 한율은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인사하며 매니지먼트팀으로 향했다. 그러나 매니지먼트팀 직원은 한율을 보곤 정반대쪽에 위치한 사무실 내 회의실을 가리켰다. 

“회의실로 들어가세욥.”

“네.”

그리고 다른 팀 데스크를 지나치며 무심코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신인개발팀 강무기 팀장 앞에 나란히 선 여자연습생 셋의 뒷모습이 보였다. 말소리는 잘 들리진 않았지만 왠지 혼나는 분위기였다. 

“정말, 정말, 저엉말 이르다고는 생각하는데 말이다.”

회의실 안에는 차남석과 조유찬, 그리고 또 다른 매니저인 현장전이 있었다. 그들은 한율이 자리에 앉자마자 본론으로 들어갔다. 

“남석이, 한율이 너희에게 따로따로 대본이 들어왔다.”

“전 안 할래요.”

“······.”

“······.”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단칼에 자르자, 매니저 두 사람이 동시에 입을 벌린 채 한율을 쳐다보았다. 차남석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말했잖아요, 얜 보나마나 싫다고 할 거라고.”

“아니, 무슨 대본인지 들어보지도 않고···.”

“전 연기자가 아닌 아이돌로 데뷔하고 싶거든요. 그렇게 하기로 약속도 했고.”

“그 데뷔 커트라인 점수에 플러스가 될 수 있다곤 생각 안하니?”

허리를 꼿꼿이 세운 곧은 자세로 조유찬을 바라보던 한율은 곧바로 두 팔을 테이블에 올렸다. 

“생각해보니까 무슨 얘기인지 한 번 들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요.”

“큭···.”

차남석이 낮게 웃음을 터뜨렸고, 조유찬은 한숨과 함께 가슴을 쓸어내리는 포즈를 취하더니 한율을 찌릿 째려보았다. 그러곤 얇은 책자를 한율과 차남석에게 하나씩 나눠주었다. 

“우선, 한율이 너한테 들어온 건 내년 SBC에서 1월 방영을 목표로 한 드라마의 아역 역할. 그쪽에서 네가 노래 부르는 걸 보고 연락했다고 하더라. 영어 잘하는 것 같다면서.”

한율이 받은 책자엔 <하울링(가제)>라고 작게 제목이 적혀 있었다. 대충 훑어보니, 부모에게 강제로 떠밀려 미국으로 혼자 조기 유학을 간 주인공의 어린 시절 역이었다.

“그래서 생각 있으면 오디션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어. 캐스팅이 되면 촬영은 전부 미국에서 진행될 거고.”

“오디션 날짜는요?”

“이번 주말까지. 벌써 시작됐어.”

“경쟁자가 많을 것 같은데.”

“그렇겠지. 그래도 한 번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거야.”

한율은 대충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1화 절반 정도만 나온 대본을 훑었다. 주인공이 처음 미국으로 건너간 건 아홉 살 정도. 한율에게 제안이 온 역은 주인공이 열다섯 살, 질풍노도의 시기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나쁜 무리랑 어울리고, 싸우고, 차를 털고. 그러다 커다란 사건에 휘말리고···.’

조유찬은 차남석에게 들어온 제안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OSN에서 준비 중인 수사물인데, 한 회 분량 에피소드에 나오는 학생 역할이야.”

“피해자에요, 가해자에요?”

“살인 사건의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참고인인지는 네가 가서 오디션을 직접 봐야 알 것 같다. 일단 제작사 측에선 해당 에피소드에서 학폭 가해자 역할로 제안을 줬는데···.”

차남석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왜죠.”

“몰라.”

“잘생기고 목소리가 낮고 그래서? 왠지 만화에 나오는 전형적인 일진 통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런 것 같기도.”

“아, 왠지 알 것 같네.”

현장전의 말에 조유찬이 납득이 간다는 얼굴로 수긍했다. 당사자인 차남석은 미간이 거칠게 구겨졌지만, 오디션을 보러 가지 않겠다고 거부하지도 않았다. 보아하니 조금 전 조유찬이 ‘데뷔 커트라인 점수 플러스’를 운운한 게 차남석에게도 통한 듯했다. 

“그래도 오디션이랑 면접 보고나면 그쪽에서 다른 역을 제안할 수도 있으니까 일단 보러가자.”

“···네.”

한율은 바인더를 덮으며 차남석을 바라보았다. 싸움을 못하는 사람에게 학폭 가해자 역이라. 

“그런데 형이 연기레슨 받는 건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작년까지 받았었어. 올해는 노래에 더 치중하고 싶어서 접어둔 상태였고.”

조유찬과 현장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야기는 끝. 남석이 넌 모레에 여기 장전 씨랑 같이 시간 맞춰서 다녀 와. 한율이 넌 나한테 연락하고. 아, 너 전화 어떻게 된 거야?”

“오다가 번호 바꿨어요. 모르는 사람들한테 계속 연락이 와서.”

“그럼 바꾸자마자 알려줬어야지. 번호 뭐야?”

새 번호를 알려주자 조유찬은 물론 차남석도 기존에 저장했던 번호를 수정했다. 문득 조유찬이 차남석에게 물었다. 

“넌 괜찮아? 이상한 데서 막 연락이 온다거나.”

“별로요? 어차피 제 번호는 아는 사람만 알거든요.”

“한율이 넌? 번호 어떻게 퍼진 건지 짐작 가는 데 있어?”

“네. 반 애들이 알고 있었거든요.”

“아··· 너 일반고 다녔었지, 참. 그럼 나가면서 강 팀장님한테 들러서 번호 바뀌었다고 말씀드려.”

“네.”

두 매니저가 먼저 회의실을 나갔다. 한율도 바인더를 챙기며 일어났다. 

“형 오늘 몇 시에 출근했어요?”

“일곱 시 반쯤. 왜?”

“오다가 입구 앞에서···.”

차남석에게 말하면서 회의실을 나갈 때였다. 누군가 힘없이 터덜터덜 한율 쪽으로 걸어왔다. 조금 전 강무기 팀장에게 혼나는 것 같았던 이들 중 한 명으로, 얼굴을 보니 연기 레슨을 받을 때 늘 한율에게 미소와 인사를 먼저 건네던 연습생이었다.

훌쩍. 시선을 떨어뜨린 채 걷느라 미처 한율을 발견하지 못한 듯 멈추지 않기에, 한율은 동선을 막지 않기 위해 슬쩍 뒤로 몸을 뺐다. 

그 순간이었다.

여자연습생의 몸이 크게 휘청거리며 힘없이 무너졌다. 

“······?!”

긴 머리카락 사이로 눈이 새하얗게 뒤집히는 게 보여, 한율은 반사적으로 쓰러지는 연습생의 몸을 안았다. 풀썩. 

“뭐야···!”

자리에 앉아있던 강 팀장이 벌떡 일어났고, 다른 여자연습생 두 명도 작게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에 다른 직원들도 무슨 일인가 고개를 빼들었다가 일어났다. 

“아까까진 괜찮았는데···.”

성큼 다가온 강 팀장이 연습생의 이름을 불렀다. 

“세은아! 박세은!”

한율은 정신을 잃은 연습생을 품에 안은 채 조심스럽게 무릎을 굽혔다. 맥을 짚어보고, 눈꺼풀을 벌려 살폈다가 이마에 손을 댔다가 축 늘어진 손을 잡았다. 굉장히 차가웠다. 

‘빈혈기도 있어 보이고, 탈진한 것 같은데.’

“구급차를 부르는 게 좋겠어요.”

“하······.”

강 팀장은 속상한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곤 핸드폰을 꺼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하는 다른 연습생들 틈으로 여성 직원이 끼어들어 박세은을 살폈다. 

“일단 휴게실에 눕히는 게 좋겠어요. —여기 아무나 와서 애 좀 업어주···.”

직원은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박세은을 살피느라 숙였던 상체를 들었다. 한율이 거리낌 없이 박세은을 업으며 일어난 탓이었다. 

박세은의 몸은 축 늘어져 있었지만 굉장히 가벼웠다. 

“어디로 가면 돼요?”

오디션 보러간다

“일단 1층에···. 아, 잠깐만.”

직원이 얇은 담요를 챙겨와 박세은의 허리에 둘러 묶었다. 매듭이 지어지자마자 한율은 사무실 출입구로 향했다. 신고를 마친 강 팀장이 쫓으며 큰소리로 말했다. 

“마침 근처에 있어서 금방 도착한대. 한율아, 내가 업을 테니까···.”

“괜찮아요.”

“야, 계단 조심해, 계단.”

앞서 문을 열어준 차남석이 계단을 먼저 내려가며 살펴주었다. 1층 로비로 내려가자, 멀리서 빗소리를 뚫고 희미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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