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화 (25/427)

* * *

평소 3층까지 올라올 일이 드물었던 대부분의 연습생들은 회사에서 가장 넓은 회의실 내부를 둘러보며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긴 회의용 테이블에 자리마다 놓인 스포츠음료도 섣불리 집지 않았다.

“음료수 놓인 자리가 스무 개야. 우리가 총 열 다섯 명이니까 끝에 한 자리는 대표님이고 나머지 네 자리는···.”

“강 팀장님은 분명 오실 거고, A&R팀이나 매니지팀에서도 오시는 거 아닐까?”

“라나 선배님 일로 매니지 팀은 전체 비상이지 않아?”

그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대표 자리를 위시한 다섯 자리를 남겨놓고 자리에 앉았다. 아직 5시까지 20여 분이 남았지만 모두. 

“그나저나 사방이 CCTV라 금방 동선 파악해서 잡을 줄 알았는데 느리네.”

“그러게.”

“내 손에 잡히면 시발, 그 새끼 가위로 내가 그 새끼 거기 잘라버릴 거야, 시발.”

“워워. 진정하시게, 달나라 주민. 밖에선 티 안냈지?”

“너희들 너무 떠들지 마. 복도 밖, 대표실까지 다 들리겠다.”

“여기에 숨겨진 카메라가 있을지도 몰라. 다들 침착해.”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강무기 팀장이 고개를 내밀었다. 

“다들 조용.”

그리고 툭 문을 닫고 대표실 쪽으로 마저 지나갔다. 회의실은 학교 도서실처럼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잠시 후 5시 정각이 되자 좌기훈 대표와 강 팀장이 들어왔다. 연습생들이 다 같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대표가 손을 저었다. 

“일어나지 말고 다들 앉아요. 하루 종일 수업 받고 와서 피곤할 텐데. 그런데··· 자리가 더 비었네요?”

“음료가 사람 수보다 더 놓여 있어서 그렇습니다. 직원이 실수한 모양이네요.”

그러면서 강 팀장이 치운 음료는 두 개였다. 연습생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안 온 사람이 한 명뿐이란 얘긴데, 누구지?

“다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좌 대표가 자리에 앉기 전 인사를 건네자 연습생들은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좌 대표는 흐뭇한 얼굴로 연습생들을 바라보다가 자리에 앉았다. 

한율은 그를 보며 생각했다.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왔네.’

아무래도 데뷔조 발표를 앞둔 중요한 시점에 라나 사건까지 터져 몇날며칠 밤을 샌 모양이었다. 

“여러분들에게 아주 중요한 발표를 하기에 앞서, 우선 그제 회사 앞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해 먼저 얘기할까 합니다.”

좌 대표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연습생들도 어두워진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그제 토요일 낮, 여러분들의 선배인 크리스탈 래빗의 라나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겼습니다. 범인은 아직 잡히지 않았지만··· 많은 팬 분들과 목격자 분들의 제보로, 그와 비슷한 인상착의를 했던 수상한 남자가 이전부터 회사와 라나의 주변을 맴돌았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늘 모자에 마스크를 쓰고 있어 직접 얼굴을 본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조만간 반드시 붙잡힐 거라 믿습니다.”

네···.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홀로 대답했다. 좌 대표는 그쪽을 향해 슥 입가를 올렸다가 내렸다. 

“여기 있는 여러분들도 앞서 데뷔한 여러 선배들을 통해, 혹은 인터넷과 같은 매체를 통해, 소위 ‘사생팬’이라 불리는 사람들로 인한 피해 사례를 접했을 거라고 봅니다. 그들은 아무리 경호 인력을 배치하고 방범시스템을 갖춰도, 숙소까지 들어가 물건을 훔치고, 몰래 카메라를 설치하고, 심지어 대범하게 방 안에 숨어들기까지 하죠. 그리고 이는 비단 여러분이 데뷔하고 나서도 아닌, 현재 일반인 신분인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들입니다.”

듣는 것만으로도 질리는 이야기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사생팬은 절대 팬이 아닙니다. ‘팬’이란 가면을 뒤집어쓰고 비뚤어진 애정을 강요하고 집착하며, 더 나아가 개인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범죄자입니다. 그들의 그런 행동을 ‘나를 좋아해서 그런 거니까···’라고 이해해선 절대 안 됩니다. 그들은 그런 마음을 이용하고 본인의 욕망을 채우는 악질적인 범죄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여러분 스스로를 위한 많은 권리, 안전할 권리,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 등을, 애정을 주고받는 대가로 넘기지 마십시오. 알겠습니까?”

“네!”

“물론 이와 반대로, 팬의 사랑을 빌미로 과한 요구를 해서도 안 되겠지요?”

“아직 팬이 없는데요···.”

누군가의 작은 항변. 좌 대표는 무거워진 분위기를 날리려는 듯 가볍게 웃으며 강 팀장을 바라보았다. 강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바톤을 이어받았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지난 번, 회사에선 데뷔조에 들어갈 7인 중 2명을 우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남은 5명을 이 자리에서 발표할 예정입니다.”

후우. 여러 곳에서 마음의 준비를 위한 심호흡 소리가 들렸다. 한 템포를 쉰 강 팀장이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덧붙였다. 

“본래라면 이렇게 말할 예정이었지만.”

뭔데 또. 아, 빨리빨리 진행 좀. 후딱 발표하고 후딱 끝내면 안 되는 건가? 많은 항의의 시선이 그에게 빗발쳤다. 

“와, 이놈들. 대표님이 말씀하실 땐 세상 모범생인 척 눈 반짝거리더니, 내가 입만 열면 빨리빨리 하라고 눈으로 협박하고. 응?”

그러면서 강 팀장은 손에 들고 있던 얇은 검은색 바인더를 펼쳤다. 

“우리 WB래빗에서 크리스탈 래빗이 나오고 3년. 내년이 되면 4년이 되는 해에 WB래빗의 이름을 지고 나갈 두 번째 그룹을 위한 데뷔조는, 8인입니다.”

“······?!”

“그리고 이 추가된 한 명은.”

갑작스런 변경사항에 웅성거릴 틈도 주지 않고 좌 대표가 말을 받아 이었다. 

“팀장급 회의와 트레이너 선생님들, 외부 전문가의 의견,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이 직접 작성한 평가표까지 종합하여 뽑은 7명의 색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기 위해, 외부에서 스카웃하여 데려온 새로운 연습생입니다.”

“아···.”

소문의 진위여부가 진실로 밝혀진 순간이었다. 그러나 대놓고 실망한 기색을 내지 못하는 연습생들은 저마다 소극적으로 표정을 관리했다. 기존 연습생들로선 몇 달 간의 집중 준비기간을 거쳐도 부족할 것 같아, 안이 아닌 밖에서 데려왔다는 말이었으므로. 

저벅저벅. 강 팀장이 문을 열더니 복도의 누군가를 불렀다. 

“들어와.”

난데없이 나타나 데뷔조에 박힌 낙석은, 조금 전 한율이 로비에서 마주친 후드소년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제게 박히는 수많은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꾸벅이며 들어온 그는 강 팀장의 안내에 따라 쭈뼛쭈뼛 빈자리로 향했다. 그리고 자리에 앉기 전, 다시 연습생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자기 소개했다. 

“강원도 속초에서 온 강보배라고 합니다. 나이는 열여덟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오, 강원도!”

그때 한 연습생이 반가워하며 번쩍 손을 들었다. 연습생들 중 평소 실없는 장난을 많이 치던 박가람이었다. 

“나도 강원도! 반가워!”

“하하···.”

박가람이 손을 흔들자 강보배도 엉겁결에 손을 들며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자, 보배는 일단 자리에 앉고.”

강 팀장이 강보배의 어깨를 살며시 두드리며 상석 쪽으로 향했다. 

“그럼 남은 다섯 명을 발표하기에 앞서.”

또 뭔데! 자꾸 발표를 미루는 강 팀장의 말 끊기에 연습생들이 하나같이 일자로 입을 다물었다. 강 팀장이 얄밉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하나 정확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데뷔조는 8인이지만, 최종 데뷔 멤버 숫자는 본래대로 7명입니다.”

“······!”

“물론 나중에 상황을 봐서 8명 그대로 갈 수도 있습니다만, 대체적으로 여덟은 너무 많다, 가 현재 사측의 판단입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데뷔조로 뽑힌 최초 멤버들이라 할지라도, 추후 데뷔하기엔 실력이 부족하다는 판단이 들거나, 멤버들과 호흡이 안 맞는다거나, 행실에 문제가 많다고 판단될 시, 해당 멤버는 공식 데뷔무대에 올라서기 전이라면 언제든 데뷔조에서 빠질 수 있습니다.”

그 말인즉슨, 이번 데뷔조 발표에서 불리지 않아도 묵묵히 레슨을 받으며 실력을 향상시킨다면 그 자리로 대신 올라갈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러니 이번에 불리지 않았다 해서 너무 크게 실망하고 좌절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데뷔조 멤버 자리는 노력에 따라 성취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럼 데뷔조 멤버 이름을 호명하겠습니다. 먼저···.”

강 팀장이 좌중을 둘러보다 한 곳을 바라보았다. 강 팀장과 한율의 시선이 마주쳤다. 

“서한율.”

새로운 (예비)토끼 팀의 탄생

“오오···!”

“역시.”

연습생들이 작은 환호성을 보내거나 박수쳤다.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한율은 강 팀장의 눈짓을 보고 일어났다. 

“다음, 라이언.”

“와우! 예쓰! 감사함다!”

“······.”

이름 석 자 호명과 동시에 라이언이 벌떡 일어나 실내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고, 차남석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가려진 얼굴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선명히 그려졌다. 

‘다른 기획사에서 내보낸 걸 받아주었을 정도니 쉽게 내치진 않을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차남석과 사이가 안 좋아 배제할 줄 알았는데.’

몇 달 간 별반 트러블이 없어 괜찮다고 판단했나?

그러면서 한율은 라이언의 실력을 떠올렸다.

노래실력은 썩 나쁘지 않고 춤도 이곳에선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추는 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커다란 장점은 미국 국적이란 점일 터. 나중에 해외활동을 하기 위해선 외국어 능력자가 많은 게 유리하고, 또 미국 팬들에겐 같은 나라 사람이라고 어필해 친숙함을 줄 수 있으니. 

“그 다음은.”

박수가 잦아들어서야 강 팀장이 다음 멤버를 호명했다. 

“박가람.”

“예엑?!”

호명과 동시에 박가람이 경기를 일으키듯 벌떡 일어났다. 끼익, 쿵. 뒤로 의자가 요란하게 쓰러졌다. 박가람은 당황해하며 강 팀장과 쓰러진 의자를 번갈아 보다가, 황급히 쓰러진 의자를 바로 세웠다. 

강 팀장이 소리 내어 웃었다. 

“대답을 해야지, 왜 비명을 지르고 기물 파손부터 하냐.”

“어, 죄, 죄송합니다···, 어······.”

허둥지둥하던 박가람이 고개를 꾸벅 숙이자 연습생들 사이에서도 큭큭 웃음이 새어나왔다. 

강 팀장이 연습생들에게 말했다. 

“자, 박수.”

“축하한다!”

“감사합니···, 흡.”

짝짝 울리는 박수소리에 이리저리 고개를 꾸벅이던 박가람이 돌연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옆자리에 앉은 변지욱이 고개를 기울이며 살폈다. 

“가람이 형 울어요!”

아이돌이 되겠다고 홀로 상경해 매일 레슨을 받고 연습을 한지 거의 3년. 그 시간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는지 박가람은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그 마음을 잘 알아서 그럴까. 조금 전 박가람이 허둥댔을 때 웃었던 연습생들은 박수를 더 크게 쳤다. 

“그 다음은.”

훌쩍거리는 울음소리를 배경으로 다음 이름이 호명되었다. 이제 슬슬 불릴 때가 되었는데, 하고 대다수의 연습생들이 떠올린 이름. 

“유호.”

반전은 없었다. 

“감사합니다.”

이제 마지막 한 명만 남았다. 호명되지 않은 연습생들은 초조하게 두 손을 꽉 잡거나 아예 눈을 질끈 감았다. 

“마지막으로 데뷔조에 들어갈 멤버는.”

잘하는 포지션은 말하지 않았지만, 그간 대표가 언더래퍼의 믹스테잎을 쌓아놓고 들었다니 강보배는 래퍼일 확률이 높았다. 라이언도 보컬보단 랩이 특기였고, 길우성은 특기가 댄스지만 데뷔조에 발탁된 이후 본격적으로 랩을 배우고 있었다. 반면 보컬이 특기인 라인은 이미 넷이었다. 차남석, 유호, 박가람, 한율. 

랩과 보컬 비율이 3:4. 보컬에 더 힘을 실을 것이냐, 랩을 탄탄하게 다질 것이냐. 

강무기 팀장이 이름을 불렀다. 

“이건우.”

보컬, 랩, 댄스. 어느 한 가지에도 치우쳐지지 않고 이 세 가지 밸런스가 잘 잡힌 연습생의 이름을. 

“감사합니다!”

한 사람의 기쁨과 끝내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는 절망이 교차했다. 한율은 이건우를 향해 박수를 치면서, 핏기가 가신 얼굴로 눈시울을 붉히는 정민솔을 보았다. 

‘악의를 던지는 나쁜 버릇은 하루아침에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지.’

분명 만들어지는 과정 중에 다른 피해자가 있었을 것이다. 하물며 데뷔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작은 세상임에야. 

정민솔을 배제시켜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직후, 한율은 그 다른 피해자를 찾았다. 아주 쉽게. 

정민솔은 결코 연상이 있는 앞에선 못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차남석과는 동갑이었지만 제 기준으론 상대하기 껄끄럽다 느껴졌는지, 차남석 앞에서도 조용했다. 그러나 다른 동갑내기인 라이언에게는 달랐다. 

『언이가 쌔벼간 거 아냐?』

들어온 지 이틀 밖에 안 된 신입 연습생을 앞에 두고, 그 자리에 없던 라이언을 도둑처럼 일컬었던 게 정민솔이었다. 

라이언에게 정민솔과 친하냐 물어보자 라이언은 울컥하며 대답했다. 

『나 그 새끼 싫어, 차남석보다 더. 아빠가 때릴 때 남 앞에서만 말리는 척하고, 뒤에선 맞을 짓해서 맞은 거라고 뭐라 하던 못된 고모? 그런 격이야.』

실제 경험담인 듯 생생한 예시에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그래서 지금까지 정민솔이 나한테 했던 욕들 평가표에 다 적었어. 그래도 차남석은 드라마 같이 촬영한 배우가 사줬다는 피자를 공평하게 돌려서 봐줬어.』

다른 피해자는 길우성. 

『그 형 말 좀 심하게 하지. 내 얼굴론 아이돌 못한다고, 지금도 안 늦었으니 백업댄서 쪽으로 가닥 잡는 거 어떻겠냐고 하더라. 허, 참! 그래도 나 안경 벗으면 조금 낫지 않냐? 응? ···써한? 야! 대답은 해주고 가!』

16세, 15세인 김권과 변지욱은 아예 정민솔과 함께 있는 일 자체를 웬만하면 피한다고 했다. 자기들만 있을 때 이래라 저래라 고나리질이 심하다고. 

정리하자면, 정민솔은 한율이 특별히 방해하지 않아도 본인이 저지른 사소한 잘못들로 인해 발목이 단단히 잡혔을 거란 얘기였다.

가벼이 내던진 악의에도 생채기가 나는 법. 피해자들이 이렇게 많은데 정말 ‘형들’ 귀에 한 마디도 안 들어갔을까. 평가표의 정민솔 기타 의견란이 깨끗했을까. 

그래서 일단 아무 짓도 하지 않고 가만히 두었더니 정말 탈락했다. 

‘그래도 만약 데뷔조에 들어온다면 도중에 갈아 치울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는데, 귀찮은 수고를 덜었네.’

“데뷔조 멤버들 뒤쪽으로.”

앉아있던 차남석, 길우성, 강보배가 일어났고 호명된 다섯 명과 함께 뒤쪽에 나란히 섰다. 여전히 훌쩍거리는 박가람을 유호가 토닥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긴 테이블에 앉은 연습생 동료들과 상석의 좌기훈 대표, 강무기 팀장을 향해 몸을 바로 했다. 데뷔조 멤버들도 따라 앞을 보았다. 

유호가 선창했다. 

“감사합니다!”

사전에 맞추지는 않았지만, 데뷔조 멤버가 된 연습생들은 하나같이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우렁차게 외쳤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WB래빗 엔터테인먼트 두 번째 아이돌 그룹, 새로운 (예비)토끼 팀의 탄생이었다. 

* * *

좌기훈 대표가 이번에 호명되지 않은 연습생들과 긴 이야기 시간을 가지는 사이, 데뷔조가 된 연습생들은 강 팀장의 말에 따라 지하의 B연습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강보배와 인사를 주고받았다. 

이번 데뷔조에서 탈락한 연습생들에게는 미운 굴러온 돌이지만, 데뷔조 멤버들에게는 함께 데뷔할 가능성이 높은 같은 팀 동료인 셈이었다. 

“그럼 여태 속초에서 살다가 대표님 연락받고 서울로 온 거야? 학교는? 잠은 어디서 자?”

“학교는 곧 옮길 예정이고, 잠은 서울 사는 이모네 집에서 잠깐 신세지기로 했어요.”

“오오, 그런데 우리 대표님 연락받고 어땠어?”

“처음엔 사기꾼 아닌가 했는데··· 하하.”

그렇게 막 새로운 돌인 강보배를 캐려 할 때 매니지먼트팀 직원이 연습실로 들어왔다. 데뷔조 연습생들은 질서정연하게 두 줄로 섰다. 시키지 않아도 대열을 갖추는 그들의 모습에 매니지먼트팀 직원이 씩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늘부터 데뷔조 여러분의 전반적인 관리를 맡게 된 매니지먼트 B팀의 오동식 팀장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매니지먼트 B팀? 원래 매니지먼트팀은 하나 아니었나? 순간 데뷔조 멤버들의 눈엔 의아함이 깃들었지만, 새로운 그룹 런칭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사내의 모든 화력이 집중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들은 새로 생겼나 보다 하며 힘차게 대답했고, 오동식 팀장은 다시 미소를 짓더니 들고 있던 네모난 바구니에서 서류를 꺼냈다. 

“이름 부를 테니 나와서 받아가세요. ···유호, 이건우, 박가람, 차남석, 라이언, 강보배, 길우성, 서한율.”

그가 나눠준 건 개인별 레슨 스케줄 표였다. 

“지금 나눠준 스케줄 표는 여러분들이 지난주까지 받았던 레슨과 월평 성적을 토대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더 갈고 닦아야 하는 부분을 개인 별로 맞춰 새로 짠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댄스와 노래는 각각 하루에 두 시간, 한 시간 필수. 보면 알겠지만 노래의 경우, 보다 높은 실력향상을 위해 모두 1:1 레슨입니다.”

“그러려면 트레이너 쌤들을 더···.”

“네, 여러분을 위해 새로운 보컬 선생님을 두 분 더 모셨습니다. 각자 레슨 스케줄 표에 적힌 선생님의 이름이 바로 여러분을 1:1로 지도해주실 분입니다.”

“와, 나 이 분 노래 엄청 좋아하는데!”

“혹시 이게 왕년에 발라드 계에서 한 가락 하셨다는 우리 대표님 인맥 빨인가?!”

한율도 보컬 트레이너의 이름을 확인했다. 

왕연수. 처음 보는 이름이었으나, 옆에서 슬쩍 한율의 스케줄 표를 훔쳐본 박가람이 호들갑을 떨었다. 

“대박! 왕연수 선생님이 오신다고?!”

“헐!”

유명한 사람인가?

한율은 의아해하며 나머지 레슨 스케줄을 살폈다. 

평일은 6시부터 중국어, 노래 각각 1시간씩, 댄스 2시간, 연기 1시간. 그렇게 11시가 되어서야 레슨 스케줄이 끝난다. 주말엔 9시부터 댄스 3시간, 점심시간 이후로 연기와 노래, 여기에 새로 피아노와 일본어가 끼어들었고, 저녁 시간 이후엔 다시 댄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일요일 밤 10시엔 ‘심신안정’이란 아리송한 스케줄이 있다는 점이었다. 

‘기타 레슨이 어디로 갔지?’

짝짝. 오동식 팀장이 수군거리는 데뷔조 멤버들의 주의를 끌었다. 

“여러분은 금일부로, 회사에서 보다 세심한 관리를 받습니다.”

장내가 조용해졌다. 오동식이 고쳐 쓰는 안경 렌즈가 환한 조명에 반사되어 번쩍거렸다. 

“가장 먼저 핸드폰.”

오동식이 빈 바구니를 들었다. 

“내일부턴 레슨을 받기 전, 매니지 B팀으로 와서 핸드폰을 이 바구니에 넣으셔야 합니다. 급한 연락이 올 지도 모르니 전원은 끄지 말고, 진동으로 놓고 잠그기만 하면 됩니다.”

“그럼 자율 연습 때 음악을 켜거나 모니터링을 못하는데요···.”

“대신 사과패드를 나눠드릴 겁니다. 하지만 엉뚱한 앱을 깔거나 연습과는 전혀 무관한 걸 검색해선 안 됩니다. 다 검사합니다.”

활짝 웃으며 하는 말에, 데뷔조 멤버들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히익.”

길우성이 손을 들어 질문했다. 

“새벽 1시가 넘어도요?”

“네, 3시가 되어도 직원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미성년자 분들은 새벽 1시가 넘도록 회사에 있어선 안 됩니다. 이건 대표님 지시입니다. 그리고 다음 안내사항은···.”

이번에 뽑히지 않은 연습생들에겐 냉정하게 비춰질지 모르지만, 연습생들과 데뷔조 사이의 선은 발표 직후부터 선명히 그어졌다.

우선 데뷔조는 기존 연습생들과 함께 받던 단체레슨에서 분리되었다. 지하의 B연습실은 아예 데뷔조 전용이 되었으며 구내식당 식권 사용횟수 제한도 사라졌다. 권리와 혜택이 주어진 만큼 핸드폰도 반납해야하고 연습량과 공부해야 할 것들이 늘어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가장 큰 변화는, 

“숙소에··· 들어가야 한다고?”

데뷔조로 뽑힌 멤버들은 내일부터 이어질 고된 스케줄에 대비해 오늘 하루 쉬라는 말을 듣고 일찍 귀가했다. 

한율이 데뷔조에 들어갔다는 소식에 기뻐하던 모친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왜? 회사랑 집이랑 그렇게 먼 것도 아니잖아. 지금처럼은 안 돼?”

“절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본격적으로 트레이닝과 준비에 전념하려면 숙소로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어머니도 알다시피 제가 다른 연습생들에 비해 연습 기간이 짧잖아요. 그러니 늦은 만큼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쓰고 싶어요.”

“그렇지만···.”

“언제 들어가야 하는 거냐? 당장 내일은 아니지?”

부친이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이번 주 토요일이요. 팀장님 말에 따르면 회사와 백 미터도 안 떨어진 곳이래요.”

“그래도 한 집에 여덟 명씩이나 살게 되면 불편한 게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그리 넓은 곳을 구하지도 않았을 거고. 그리고 물은 잘 나오는지, 난방은 잘 되는지, 외풍은 심하지 않는지 등등 신경 써야 할 게 얼마나 많은데. 어떻게, 내가 한 번 좌 대표를 만나서—.”

“여보?”

“커흠.”

한율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여덟 명이서 지낸다 해도 거의 잠만 자는 용도로 쓰일 텐데요. 별 일이야 있겠어요?”

한율이 부모와 단란한 저녁식사를 가지고 있던 그 시각, 연습생 숙소에서는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야, 라이언.”

데뷔조 숙소 입주는 아직 닷새나 남았지만, 연습생 숙소로 일찍 들어온 데뷔조 멤버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차남석은 라이언의 옷들 사이에서 나온 양말을 발견하곤 눈을 부라렸다. 

“그 양말 네가 가지고 있었냐?”

“몰라?”

“모르긴 뭘 몰라! 여기 ‘ㅊ’ 표시해놓은 거 안 보이냐?!”

“지가 떨구고 뭔 소리야!”

“내가 미쳤냐? 다른 놈 옷에다 양말을 떨구게? 빨래도 따로 하는데!”

“난 몰라!”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는 차남석과 라이언을 떼어놓은 건, 그나마 여기에서 가장 연장자인 박가람이었다. 

“니들 또 싸우냐? 우성이가 무섭다고 우는 거 안 보여?”

“나 안 우는데···.”

“라이언 너 똑바로 들어!”

차남석이 라이언을 노려보며 단단히 일렀다. 

“그 도벽 제대로 안 고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너 떨어뜨려! 알겠어?!”

하! 라이언은 기가 막힌 얼굴로 뭐라 받아치려다, 박가람의 옷을 잡아 물었다. 

“도벼기 머야?”

차남석이 답답해 죽겠다는 얼굴로 외쳤다. 

“물건 훔치는 버릇, 이 무식한 새끼야!”

“너한테 안 무러써! 그리고 나 안 무식해, 이 영어 무식아!”

“으아아, 그만해, 그만!”

서한율은 밖에선 나름 차분하게 행동하는 차남석이, 숙소 내에선 라이언과 부딪치기만 하면 버럭버럭 화내는 걸 알까.

길우성은 숙소에서 종종 벌어지는 이 광경을 서한율에게 미리 알려줄까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같은 숙소에 입주하는 순간부터 곧 질리도록 보게 될 텐데, 뭐.’

남석이는 가난하다

“데뷔조 숙소는 어떤 곳일까요?”

회사에서도 보는 얼굴들이 매점 앞 벤치에 모였다. 길우성의 물음에, 그들 중 유일하게 데뷔조가 아닌 박현우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연습생 숙소랑 별반 차이 없을 걸? 매니저나 회사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면서 밤에 뭐 몰래 먹는지, 어디 마음대로 놀러나가는지 검문하는 게 추가되는 정도 아냐?”

“히익, 진짜 그런다고요?”

“네에, 대개 그렇대요.”

“딴 거 다 필요 없고, 제발 화장실 두 개 이상이었으면 좋겠다.”

차남석의 간절한 바람에 길우성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했다. 

“아, 진짜! 제발!”

“그런데 조금 의외다. 네가 안 뽑힌 게.”

푹. 박현우는 사과 음료에 빨대를 꽂으며 대답했다. 

“이상할 게 뭐 있냐. 솔직히 나 뭐 하나 특출한 게 없잖아. 2년 정도 빡세게 해보니까 슬슬 인정하게 되던데.”

“왜요. 얼굴이 잘생겼잖아요.”

박현우가 길우성을 향해 손을 들었다. 짜악! 길우성이 손을 맞부딪치며 단단히 잡았다. 서로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우는 둘을 보며 차남석이 물었다. 

“그래도 계속 할 거지?”

“음. 뭐, 연기도 병행하면서 생각 좀 해보려고.”

겉으론 담담해 보여도 속이 상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가라앉은 공기 속에서 길우성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이번에 관두거나 옮기는 사람들··· 있을까요?”

“아무래도 있지 않을까?”

차남석이 무릎에 팔꿈치를 세우고 턱을 괴었다. 

“특히 형수 형 같은 경우는 올해 스물 둘이라, 우리 회사에선 다음 순서를 노리기엔 나이가 애매하잖아. 이제 데뷔조 멤버들은 개인별 집중레슨을 받으면서 실력이 더 좋아질 텐데, 그걸 뚫을 기세로 악쓰고 달릴 것 같지도 않고.”

“하긴···. 그 형 요즘 술도 자주 마시는 것 같고. 자정 넘게 연습하는 걸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젠지 기억도 안 나.”

“그러게 유호 형이 이것저것 배우기 시작할 때 같이 했으면 좋았을 텐데.”

“작곡이나 작사, 프로듀싱 같은 건 그야말로 재능이랑 창의력, 센스부터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야 하는 거잖아. 배운답시고 다 되겠냐, 그게.”

“하긴. 나도 뭐 작곡하라 그러면 어디선가 들었던 음률만 떠오르더라고요.”

우웅. 냐옹. 그때 한율과 길우성의 핸드폰이 동시에 울렸다. 두 사람이 같은 단톡방에 초대된 까닭이었다. 

-[범인 잡혔대!!!!!!!!!!!!!]

미랑이었다. 

“오!”

길우성이 호들갑을 떨었다.

“라나 선배님 테러한 범인 잡혔대요!”

“뭐?”

“진짜?”

미랑이 단톡방에 인터넷기사 링크를 띄웠다. 눌러보니 정말 [[속보]여자아이돌 피습미수범 체포]란 커다란 기사제목부터 눈에 들어왔다. 길우성은 박현우에게, 한율은 차남석에게 핸드폰을 넘겨 보여주었다. 

“진짠가 본데요?”

“다행이네. 이제 처벌만 세게 받으면 좋겠다.”

우웅. 미랑의 메시지가 핸드폰 상단에 떴다. 

-[그때 그놈은 아니래ㅠㅠ 그ㅅㅋ면 진짜 내가 가서]

“이 프사··· 미랑 선배님 아니냐?”

한율은 말없이 핸드폰을 회수했다. 길우성이 웃으며 대신 대답했다. 

“우리 누나가 미랑이 누나랑 친구잖아요.”

“그래서 그 인맥으로 얘를 소개시켜줬다고?”

“소개라뇨! 큰일 날 소릴! 그런 거 아니에요, 절대!”

“그래, 한 살 차이면 몰라도 두 살, 그것도 고3에게 고1은 완전 애기지. 차라리 날 소개시켜 줘. 같은 회사인데 지금껏 말 한 마디 못 나눈 게 말이 되냐? 나야, 잘생긴 박현우.”

엉뚱하게 치고 들어오는 박현우와 절대 안 된다는 길우성의 실랑이를 뒤로 한 채, 차남석이 조용히 물었다. 

“너 박세은은 어쩌고. 둘이 연락하는 거 아니었어?”

한율은 변명하기 귀찮아 박세은과의 톡방을 보여주었다. 

-[데뷔조된 거 ㅊㅊㅊㅊ!!!ㅠㅠ]

[ㄱㅅ]

-[근데 앞으로 연기레슨 따로 바더ㅠㅠ?]

[ㅇ]

-[인간적으로 ㅇ하나 더 넣어주라ㅠㅠ]

[ㅇㅇ]

휙휙. 톡방 스크롤을 넘기던 차남석의 손짓은 금세 멈췄다. 한율과 박세은 간의 대화가 소위 썸타는 관계의 연락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까닭이었다. 

지난 번 조유찬으로부터 여사친은 절대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로 대답을 더 심플하게 해서 그런지, 박세은도 눈치 챈 듯 톡을 덜 보내고 있었다. 

“···아니었네.”

“그러고 보니 우리 회사엔 유독 박 씨가 많네요. 라나 선배님도 박 씨 아니었나?”

“어? 그 생각 나도 했었는데.”

라나 피습 미수범이 잡혔다는 기사는 제목이 곧 내용이었다. 그들은 일단 안심된다며 대화 주제를 바꿨다. 

“형은 언제 밥 살 거예요? 촬영 끝나면 사준다고 했던 것 같은데.”

“뭐? 가난한 차남석이 밥을 산다고?!”

“넌 그걸 다른 놈들 앞에서 말하면 어떡하냐. 오늘 갈까?”

“써한만요? 나는?!”

“그럼 나도!”

“너희 둘은 따라오려면 각자 계산.”

“우우. 차남석, 우우.”

“오늘 가죠, 뭐.”

오늘부턴 이전보다 더욱 빡센 일정이 기다리고 있으니, 소소한 외식을 하고 시작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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