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TV봤니][SBS 새 월화드라마 <하울링> 첫 방송!]
[장르드라마의 대가 이사문PD가 연출하여 캐스팅이 진행될 무렵부터 주목받았던 드라마 <하울링>이 드디어 9일, 베일을 벗었다.
···(중략)··· <하울링> 1화는 90분으로 편성되었으나, 신인이지만 뛰어난 열연을 펼친 아역 연기자들과 긴장감 넘치는···(중략).
뿐만 아니라 추돌이 발생한 사고 현장에서 비를 맞으며 차 밖으로 기어 나오는 서한율의 처절한 연기는, 그가 이전에 단 한 번도 연기를 해보지 않은 신인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나 솔직히 중반까지 그냥 누워서 편히 봤는데, 추돌 씬 직전부턴 내내 앉아서 고개 빼들고 봄ㅋ
-1화는 생소한 이름 가진 아역들만 나와서 패스할까 했는데, 생각보다 다들 연기 잘하더라ㅇㅇ 발음이나 발성도 괜찮고.
-난 아직도 보컬리스튼가 나와서 귀엽고 예쁜 척 하면서 노래부른 애랑 은호 역 한 애가 동일인물이라는 게 아직도 충격임ㅋㅋㅋㅋㅋ 인상이 완전 다르잖앜ㅋㅋㅋ
ㄴㅅㅂ눈빛 지렷고ㄷㄷ;
ㄴ조수석에서 뭐 가져가는 그 발 노려보는 눈에서 살기 장난 아니었음ㅇㅇ.. 막 눈에 빗물 들어가던데,, 안 아팠나?
ㄴ사실은 감독을 향한 살기였을지도ㅋㅋ
ㄴ더 놀라운 건 하울링이 서한율 첫 연기 데뷔작이라는 거임ㅋ
ㄴㅁㅊㄸㄹ;;
-ㅅㅎㅇ 연기보고 나니 이쯤에서 다시 생각나는 그 웹툰... 아니, 그 웹드...
ㄴ언급하지 마셈ㅡㅡ
-서한율이 텍사스 촌놈이란 소리에 욱하는 거 나만 웃겼냨ㅋㅋㅋ 그 장면은 연기 안 같던뎈ㅋㅋ
ㄴ텍사스에서 10년 살다왔습니다. 텍사스 촌 맞습니다. 뉴욕에 비하면요. 그런데 사고 난 역 한 분 진짜 그쪽 사투리 자연스럽던데, 이 분도 살았었는지 모르겠네요. :) 어쨌든 반가웠음ㅎㅎ
-저번 주에 랄라밤에서 윤상진이랑 서한율 통화하는 거 들으신 분?
ㄴ저요ㅎㅎ 둘이 같이 드라마 찍고 나서 친하게 지내는 듯ㅎㅎ
SBC에서 <하울링>이 첫 방송된 바로 다음 날, 포털사이트에는 [하울링]과 [하울링 재방송]이 실검에 떴다. 그리고 ‘차 밖으로 기어 나오던 아역배우 누구냐’ 하는 질문도 여기저기에 올라왔다.
-아이돌 연습생이라고??? 신인배우 아니고??? 아이돌???? 연습생????? 왜(; ・`д・´)??????!!!
-쥔공이랑 그냥 대화하는 장면도 보니까 평범하게 잘하던데, 저 정도면 그냥 배우해도 되지 않나?
-MBS 수목에 나오는 아이돌출신 주인공 발연기보다가 하울링 보니까 ㅈㄴ 비교됨
ㄴ심지어 하울링 쪽은 아직 데뷔도 안 한 연습생ㅋ
-엉엉어ㅓㅓ어어어엉
ㄴ왜 울어여
ㄴ처음에 한율이 캐스팅됐을 때 쟨 뭔데 저기 캐스팅됐냐고 무턱대고 욕하던ㄱㅅㄲ들이 보고 있을까 궁금해서요(ㅠ⌓ㅠ)엉어어엉
ㄴ;;;
조유찬은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가는 기자들에게 특별히 잘 좀 부탁한다고 연락을 넣어도, 사실 호의 가득한 기사보다 더욱 효과가 좋은 건 바로 네티즌들의 입소문이었다.
저 연기 잘하는 애 누구냐?
물론 아직 인지도가 낮은데다 회사 힘이 약해 아주 크게 화제가 되진 않았지만, 벌써 서한율이 나온 프로그램이나 광고를 편집하고 정리해 자신의 너튜브 채널에 올린 너튜버도 있었다.
[이쯤 되면 재능 낭비 아니냐? -서한율 편-]
해당 너튜버는 서한율이 <보컬리스트 시즌3> 예고에 나왔던 앳된 모습부터, 감성소녀 M/V, 몇 달에 걸친 <보컬리스트 시즌3> 무대 영상, 그리고 CF, <하울링>에서의 열연 장면, <수의형사> 카메오 출연, 감성소녀 제유의 M/V 씬까지 시간 순으로 영상을 편집했다.
[이렇게 연기를 잘하니, 지난번 캐스팅이 불발된 ㄱㅁㄴㅁ에도 출연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칭찬일색이 이어지던 영상의 마지막 즈음, 최근에 한율이 본인 SNS 계정에 올린 사진이 떴다. 한율이 집에 갔을 때 새끼고양이 두 마리를 안고 찍은 사진이었다.
[그럼에도]
밝았던 이미지가 치직치직, 노이즈를 내며 흐려지고, 웹툰 <가미난무>에서 ‘백자’가 잔인하게 웃으며 닭을 잡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콰직!
[그건 또 그것대로 또 겁났을 것 같기도ㄷㄷ]
크게 주목받는 드라마에서 아무리 강렬한 씬을 보였다고는 해도, 송출 시간이 짧은 터라 호들갑이 과한 면이 없잖아 있다. 제목도 그렇고. 하지만 이렇게라도 화제로 삼아주니 소속사 입장에선 고마울 따름.
‘여기에 블블의 민준이랑 이희우까지.’
블블의 민준은 본인 SNS에다가 서한율이 나온 <하울링> 스틸 컷을 올렸다.
[어제의 명장면! 보는 내가 다 아팟어오ㅜㅜ 맛있는 거 보내줘야지^^ #하울링서한율]
ㄴ[Seo Hanyul]선배님, 아이스크림 케이크만 다섯 판 쌓였어요. 전화받아주세요. :)
ㄴ?!! 본인 등판ㅋㅋㅋㅋㅋㅋ
ㄴ다섯 판이라닠ㅋㅋㅋㅋ 얼마나 보낸 거야 민주나ㅠㅠㅋㅋㅋㅋㅋ
ㄴ분명 이모티콘으론 웃고 있는데 안 웃고 있을 것 같다ㅋㅋ
ㄴ잠깐, ‘만’이라고 했어, ‘만’이라고...!
이희우는 본인 SNS에 서한율의 연기에 대해 언급한 기사 링크를 띄웠다.
[굿. 빨리 메이킹필름도 보고 싶다. #서한율홧팅, #하울링대박]
어쨌든 좋은 반응이 올라온 덕분에 조유찬은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다. 인터뷰 요청부터 시작해, 오디션을 보러 와 달라는 프로덕션의 연락이 쉴 만하면 오고, 다시 다른 일을 하려면 또 오는 통에.
사전 연락 없이 1화 대본부터 메일로 보낸 곳도 있었다.
‘대부분 작은 곳들이긴 하지만.’
연기를 잘하는 10대 배우는 많다. 그러나 아직 대한민국 연예계는 외모와 인지도를 우선으로 쳐주기에, 서한율처럼 곱상한 외모에 연기 실력까지 갖춘 이는 소수.
그런 의미로 차남석에게도 대본이 심심찮게 들어오곤 있지만, 조유찬은 미리 작성한 문서양식을 불러왔다. 그리고 제의는 감사하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당장은 힘들다는 결정 보류의 의사나, 거절의 의사를 담은 답변을 작성했다.
이는 차남석과 서한율, 본인들의 의사였다.
데뷔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므로. 그리고 두 사람은 데뷔를 한 후에도, 당분간은 연기가 아닌 그룹 활동에 전념하겠다는 의사도 덧붙였다.
좌기훈 대표와 오동식 팀장도 그러라고 했다. 계약서에도 아티스트 본인이 거부하는 일은 강제로 시킬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기도 하고.
‘참 야무진 애들이야. 조금 걸리는 게 있다면···.’
삘릴리리. 행여 받는 업체 이름을 잘못 적진 않았을까, 두 번 세 번 작성한 메일을 검토하는데 전화가 울렸다.
“네, WB래빗··· 아, 안녕하세요. ···네? 아······.”
양반은 못 되는 사람이네.
조유찬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쉬며 응대했다.
“죄송하지만 그건 말씀드리기가 조금 곤란합니다. ···아니요, 할아버님께는 다 말씀드리죠. ······네, ······죄송합니다. 말씀드리기가 곤란합니다, 정말로요. 그럼 전화 끊겠습니다.”
* * *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겨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한율은 다른 데에 더 신경이 쏠려 있었다. 바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가이드보컬의 노래.
다섯 번째 감상을 마친 후 한율은 고개를 기울였다.
‘그냥 이 사람이 불러도 괜찮을 것 같은데?’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썩 뛰어난 노래실력이었다. 랩 파트는 비워두었지만, 이 정도 수준이면 웬만한 가수 못지않은 것 같은데.
“이제 슬슬 불러볼까요?”
고개를 끄덕인 한율은 눈앞의 악보를 보며 가이드가 불렀던 것처럼 노래를 불렀다. 왕연수는 한율의 노래를 녹음하며 끝까지 들은 후에서야 적절한 조언을 건넸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본인이 만족할 때까지, 한율에게 무한 반복연습을 시켰다.
그들의 첫 데뷔앨범은 EP앨범으로 총 다섯 곡이 수록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가이드녹음까지 다 되어 넘어온 곡은 아직 둘. 그러나 데뷔 멤버들의 일정엔 적잖은 변화가 생겼다.
유호는 이번 앨범에 자신이 만든 곡을 올리고 싶다는 의지로 활활 불타올라, 보컬과 안무 외의 다른 레슨을 죄다 빼고 작곡 작업에 올인하겠다 선언했다. 강보배도 틈이 생길 때마다 그 옆에 자리했다. 꼽사리껴서라도 작곡과 프로듀싱을 배우고 싶다고.
라이언은 대표가 섭외한 강사에게 영문학과 영시 강의를 듣게 되었고, 길우성에게는 강제 독서시간이 주어졌다.
힙합 씬에서는 래퍼 취급도 제대로 못 받는 아이돌이지만, 가이드래퍼가 하라는 대로 따라하지 말고, 작사가가 쓴 랩만 읽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언젠가는 너희들이 직접 본인의 랩을 만들고 쓰라는.
“내일 미팅 두 건 잡힌 거 다들 잊지 않았죠? 곡 하나는 전에도 말했듯이 여러분이 직접 쓴 글이 가사가 될 예정이니까, 데뷔를 준비하면서 느낀 이야기나, 드디어 데뷔를 이루게 된 감상을 각자 노트에 솔직하게 적어오세요. 그 곡을 들을 팬들에게 들려준다는 생각으로요.”
규칙적인 레슨 스케줄 도중엔 이런 변칙적인 일정이 끼어들기도 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한율은 비어있는 2층 회의실에 홀로 앉아 노트를 펼쳐두고 생각에 잠겼다.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라···.’
미안하지만 내가 ‘서한율’로 사는 건 4년 후, ‘그날’이 올 때까지. 본래 세상을 위해 이곳 지구의 멸망을 적극 방조할 개새끼가 될 예정이니, 꾸며낸 거짓 껍데기에 호의를 품으며 환호하지 말고—.
“······.”
한율은 어느새 끄적거린 문장을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역시, 아주 솔직하게 적어선 안 된다.
[스스로부터 챙겨.]
한율은 그 문장 위로 줄을 직직 그었다.
이름에 토끼가 안 들어가면 섭섭하지
촤르르. 투표함이 열리고 그 안에 담겨있던 쪽지가 테이블에 쏟아졌다. 모두 새 보이그룹의 이름을 지어달라는 사내 공모에 모인 아이디어였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네요?”
상석에 앉은 좌기훈 대표를 대신해서 오동식 팀장이 하나를 집었다. 그리고 8명의 데뷔 멤버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제가 하나씩 읽어보겠습니다.”
“그럼 제가 적을 게요.”
박가람이 자진해서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최소한 몇 년 동안, 혹은 죽을 때까지 그들에게 달릴 중요한 이름. 멤버들은 긴장 반, 설렘 반인 얼굴로 오 팀장이 든 쪽지를 바라보았다.
“공정한 투표와 채택을 위해 아이디어를 낸 사람의 이름과 소속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가장 먼저··· 무적토끼.”
“무적···.”
“토끼···.”
“이렇게 이름을 지은 이유는, 가요계를 다 휩쓸어버리는 강자가 되라고. 그 다음은.”
부스럭. 오 팀장은 펼쳤던 쪽지를 옆에다 엎어놓고 새로운 걸 펼쳤다.
“래빗 오브 탑(Rabbit Of TOP). 줄여서 ROT.”
라이언이 얼굴을 구기며 거부감을 표했다.
“rot? 썩었어?”
“당치도 않구만.”
“다이아몬드 래빗.”
“저거 나올 줄 알았다.”
“굇수토끼단.”
“···박가람 너냐?”
“나 아냐!”
“······.”
그러나 토끼가 들어간 이름만 나온 건 아니었다.
“헤르츠 플랜(hertz plan).”
“바람 따라 별 따라 구름 따라 노래. 줄여서 바별운송.”
“그냥 막 갖다 붙인 느낌이···.”
그렇게 한참 동안 발표가 이어지다, 마지막 쪽지 하나만 남았다.
생각처럼 확 와 닿는 이름이 얼마 나오지 않아, 투표함을 쏟을 때만 해도 기대로 반짝이던 눈빛들은 기세가 꺾인 지 오래였다.
오 팀장이 마지막 쪽지를 펼쳤다.
“어스래빗(Earth Rabbit).”
“오.”
“느낌 있는데?”
“······.”
한율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예감이 들었다.
최소 4년. 자신이 속하고 활동하게 될 아이돌그룹의 이름이 바로 ‘저게’ 될 거라는 강한 예감이.
그리고 이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축하합니다. 과반수에 따라, 여러분의 그룹명은 ‘어스래빗’이 되었습니다.”
“오오오오!”
“이제부터 우리는 지구토끼다!”
“하하하하! 어스래빗이라고 하자! 하하하하!”
결국 그룹명에 ‘토끼’가 붙었다는 누군가의 체념어린 웃음소리가 퍼졌다. 좌기훈 대표는 대만족스럽다는 얼굴로 박수쳤다.
한율은 나지막한 한숨을 쉬었다.
‘누가 지었는지는 몰라도, ···참.’
* * *
언제부턴가 아이돌이라면 필수적으로 하게 된 라이브방송 서비스 ‘그린라이브’. 그곳엔 K-POP 정상을 넘어 세계에서도 인정받은 아이돌부터 시작해, 아직 데뷔하지 않았지만 기획사의 이름을 걸고 나오는 연습생들까지. 수많은 채널이 개설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늘 2017년 1월 20일 금요일 오후 5시.
그린라이브에 새로운 채널이 생겼다.
[Earth Rabbit]
조금 많이 허술한 다른 후보 그룹명을 제치고 당당히 다수표를 받아 정해진, WB래빗 엔터테인먼트의 새 보이그룹 이름.
저녁시간, 구내식당에서 모인 멤버들은 눈앞의 식판을 외면하고 각자 사과패드를 들여다보았다.
“이렇게 보니까 뭔가 신기하다. 아직 우리 그룹명이 입에 안 붙어서 그런가?”
“둘 다일지도. 그나저나 로고 예쁜데? 하루 만에 이렇게 예쁘게 뚝딱 만들어지는 건가?”
“이미 어떤 식으로 디자인할 건지 기본 구상은 해놓고 있었대.”
“새로고침할 때마다 팔로우 수가 막 늘어나는데? 뭐야, 이거 무서워.”
“남석이랑 한율이 SNS 보고 온 사람들 아닐까.”
한율도 그린라이브에 뜬 어스래빗 채널과, 실시간으로 달리다시피하는 채널 톡방의 글을 가볍게 훑었다. 그리고 전원을 끈 후 식사를 시작했다.
[어스래빗] 채널에 올라갈 첫 방송은 바로 지난 달 크리스마스 때 촬영된 것으로, 6시에 올라올 예정. 그들이 막 레슨에 들어가는 시간이었다.
“저번에 영상실에서 봤을 때보다 더 매끄럽게 다듬어져서 나오겠지?”
“실시간 반응 궁금해서 어떻게 참냐, 정말. 두근두근하다.”
“실시간 선플이 아닌, 악플이 달린다고 상상 해봐요.”
차남석이 차분한 얼굴로 조언했다. 박가람이 활짝 웃었다.
“오. 순식간에 두근거림이 가라앉다 못해 슬퍼지는 걸? 어드바이스 고마워, 선배!”
“아, 맞아. 가람이 넌 실시간 반응 안 보는 게 나을 지도 몰라. 남석이랑 한율이가 다람쥐니 프레리독이니 하며 놀렸었잖아.”
“······!”
완전히 잊고 있었는지, 박가람이 입술을 파르르 떨며 상처 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때와 똑같이.
“큭큭. 어? 인터넷에 우리 기사 떴다.”
[WB래빗엔터, 새 보이그룹명은 ‘어스래빗(Earth Rabbit)’]
[인기 걸그룹 ‘크리스탈 래빗’의 소속사인 WB래빗 엔터테인먼트에서 올해 상반기에 선보일 보이그룹의 이름은 ‘어스래빗(Earth Rabbit)’이라고 공개했다.
어스래빗은 8인으로 구성되었으며, 여기에는 작년 뮤닷의 <보컬리스트 시즌3>에서 큰 활약을 펼친 ‘꽃을 단 토끼’의 차남석과 서한율, MBS의 <댄스단!수(秀)!>에 나가 뛰어난 춤 솜씨를 선보였지만 아쉽게 떨어진 길우성이 포함되었다.
정식 데뷔 예정일은 다가올 4월이지만, WB래빗은 금일 오후 그린라이브에 어스래빗의 채널을 개설하고, 데뷔하는 과정 중 벌어지는 어스래빗 멤버들의 에피소드를 올릴 계획이라 전했다.
차남석과 서한율, 길우성을 제외한 나머지 5인의 모습은 오늘 20일 6시, 그린라이브에서 최초 공개될 예정이다.]
-요즘엔 데뷔 전부터 애들 공개하는구나.
-데뷔도 하기 전에 일하는 아이돌ㄷㄷ
ㄴ아직 팬클럽 모집도 안 떴고 그린앱 전용 팬키트 예약이나 템도 없고..ㅠㅠ 애들 뭘로 돈 버냐
ㄴ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이랑
-그런데 8명은 너무 많지 않나? 둘 빼곤 헷갈릴 것 가튼데
ㄴㄴㄴㄴㄴㄴ애들 다 개성 있어서 조금만 봐도 다 구별 가능할 거예염ㅎㅎ 대표적으로 187 최장신 맏형 있고 170 안 되는 것 같은데 170이라고 우기는 분 계심ㅎㅎ
-기대된다... 한다... 존버... 팬클럽 가입... 데뷔쇼케... 선예매 특권... 한다... 노린다...
-그런데 왜 회사 이름부터 애들 이름까지 죄다 토끼임???
ㄴ우리도 그것이 알고 싶다
-내가 어스래빗 1호팬이다☆ 핸드폰을 앞에 모시고 영상이 뜨길 대기타는 중이옵니다. 얍☆
* * *
오후 6시 정각.
그린라이브의 [Earth Rabbit] 채널에 예약된 영상이 올라왔다.
[EP.00 - 지구토끼가 연습생토끼였던 시절의 크리스마스]
어스래빗 뿐만이 아니라, 같은 소속사인 크리스탈 래빗을 비롯해 직원들과 함께 간 봉사활동 에피소드.
차남석의 인사로 시작된 영상은 세상 평화로웠다. 어떻게 보면 외모만 단정하고 잘생긴 평범한 아이들이 모여 봉사활동을 간 것처럼, 전개도 잔잔하고 소소했다.
그러나 워낙 아이돌 팬들만 찾는 그린라이브다 보니, 포털사이트 연예뉴스 댓글란처럼 괜히 화를 내거나 악의를 드러내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왜 애들 이름을 ㅇㅇㅇ(나이)/WB래빗연습생 이렇게 인간극장처럼 써놨엌ㅋㅋㅋㅠㅠ
-프레리독ㅋㅋㅋ 다람쥐 싱크로율이 더 높은 것 같긴 하닼ㅋㅋㅋ
-표정 졸귀ㅎㅎㅎㅎ
-다람쥐 가람이 다람이!
-한율이 칼솜씨 보소ㄷㄷㄷ 현역 쉐프인 우리 아빠보다 더 잘하는 듯ㄷㄷ
-무대에서랑은 애들이 조금 다르네요. 보컬에선 잘 웃던데
-전 저게 자연스러워 보여서 더 좋은데요?
-오히려 형이랑 누나들 있는 데에서도 계속 방긋방긋 웃었다면 더 걱정됏을 것 가틈
-분명 민낯인데도 미모가♡
-애들 진짜 열심히 하네요ㅎㅎ 착하당ㅎ
-양파를 왜 그렇게 썰어! 저러면 즙이 다 튀지!
-운닥ㅋㅋㅋ
-이건우(20) WB래빗연습생/양파 썰다 통곡하는 청년
-자막 잔인햌ㅋㅋㅋ
-.....? 뭐지? 저만 방금 다람이 행동에 위화감 느낀 건가요?
-저도 느낌
-왜요? ???
-뭔데요???
-엘리베이터에 아무도 없었는데 뭔가에 놀란 것처럼 막 멤버 옆에 붙는 것 같았는데
-그냥 벌레 본 거 아닐까요? 아무렇지 않게 그냥 웃으면서 말하는데?
어스래빗 멤버들은 첫 그린라이브 방송에 대한 반응을 모든 레슨과 연습이 끝난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볼 수 있었다.
댓글이 아닌, 사람의 얼굴로.
“기대했던 것보다 반응이 좋았어요.”
좀처럼 볼 수 없던 환한 미소를 지으며 오동식 팀장이 핸드폰 수거함을 내밀었다. 웬 화장품 하나도 함께.
“고오급 수면 팩이에요. 오늘은 다들 이거 바르고 자요.”
숙소로 돌아간 이후 멤버들은 수면 팩을 얼굴에 치덕치덕 바른 채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키득키득. 뭐가 그리도 신기하고 즐거운지, 작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한율은 끈적거리는 액체가 베개가 묻을까 저어되어, 혼자만 수면 팩을 마다하고 핸드폰도 엎어놓은 채 수면을 청했다.
추적추적. 닫아놓은 창 너머에서 비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날 아침. 여느 때처럼 청소기를 돌리던 한율의 눈에 의아한 광경이 들어왔다. 유호가 마치 외계인 보듯 멀찍이서 박가람을 살피고 있었다. 어젯밤에 수면 팩을 하여 반질반질 윤이 나는 얼굴로.
“왜 그래요, 형?”
“···어? 뭐가?”
“가람이 형한테 할 말 있···.”
“아냐, 그런 거 없어. 음, 없어. 아, 혹시 잘 때 춥거나 그러진 않았어? 오한이 든다거나. 왜, 오늘 새벽에 비 좀 왔었잖아.”
“아뇨? 별로.”
“그럼 됐어.”
유호가 허둥대며 멀어졌다.
“······?”
말하는 본인의 안색이 되레 창백해 보이던데.
한율은 곧 신경을 끄고 다시 청소에 전념··· 하지 못했다.
“어제 영상···.”
한율, 정확히는 청소기를 따라다니며 걸레질을 하느라 조금 전부터 뒤에 우두커니 멈춰 섰던 강보배가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한율에게 속닥거렸다.
“가람이 형 혹시 진짜 귀신 보이는 거 아닐까? 베개 밑에 염주 놔두는 것도 그렇고···.”
난데없이 웬 귀신. 그런 걸 보는 기미가 영상에 나온 건가?
그러면서 한율은 유호가 그런 류의 이야기에 굉장히 취약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어쩐지.
“썩어가는 시체도 아니고. 그딴 건 안개보다 못한 허상이에요. 너무 경계할 필요 없어요.”
“어? 어···.”
* * *
“앞으로의 일정을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연습실로 찾아온 오동식 팀장이 커다란 벽걸이 달력을 펼쳤다.
달력 여기저기에 그려진 귀여운 오리 가족 그림과 ‘우리오리 맛난오리’라는 오리고기 전문식당 이름이 시선을 끌었지만, 아무도 태클을 걸진 않았다.
“이제 곧 설 연휴가 다가옵니다. 그러나 전에도 말했듯이 여러분은 설 당일에만 쉴 수 있습니다. 싫다, 난 연휴를 챙기며 놀겠다, 손?”
“······.”
“없군요. 하지만 설에 팬 분들에게 새해인사를 않는다면 그건 문제가 있겠지요? 설 바로 다음 날인 29일에 새해인사 라이브를 짧게 진행할까 합니다. 나 한복 없다 손?”
두 줄로 옹기종기 모여 앉은 멤버 전원이 손을 들었다.
“그럴 줄 알고 기성 한복과 소품을 잔뜩 대여해왔습니다. 나중에 스타일리스트팀에 가서 각자 입을 한복을 찜해놓으세요.”
“네.”
“그럼 다음 달, 2월.”
펄럭. 달력이 한 장 넘어갔다.
“전체적으로 2월엔 모든 녹음을 마칠 계획이니, 다들 감기 걸리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세요. 그리고 본격적으로 데뷔 리얼리티 촬영에 들어가기 이전, 가람이 고등학교 졸업축하 영상을 촬영할 예정입니다.”
박가람이 머쓱해하며 웃었다.
“하하, 뭘 그런 걸 다.”
“오오. 그럼 막 꽃다발 휘두르면서 가람이 형한테, 가! 가란 말이야! 대학으로 꺼져 버려! 이러면 되는 건가요?”
오 팀장이 콧잔등에서 흘러내리는 안경을 위로 고쳐 썼다.
“화훼농가 관계자에게 악플을 받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습니다. 그리고 가람.”
“네?”
“지금 몸무게 몇이지?”
“56?”
“2kg만 빼자.”
“······!”
졸업축하 영상을 찍는다는 말에 실실 웃으며 좋아하던 박가람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굳었다. 정말 충격을 먹은 모양.
멤버들은 그런 박가람을 안쓰럽게 쳐다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가끔 배고픔을 못 참고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핫바를 사먹더니 결국.
“하··· 하필 설을 앞두고오···!”
“그리고 건우야. 슬슬 라미네이트를 하면 어떨까 하는데.”
이미 이야기가 된 건인지, 이건우는 우울한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오늘 밤에 예약 잡는다?”
“네···.”
“그리고 유호 넌 앞으로 밤샘 작업하게 될 땐 마스크 팩이라도 한 번 하고. 이제 피부 관리해야 하는 나이인 거 알지?”
스물 셋이 된 맏형도 우울한 얼굴이 되었다.
“···네.”
“우성이 넌 안경 언제 맞춘 거야?”
“어··· 재작년?”
“일회용 렌즈 유통기한은?”
“아마 1년 더 남았을 걸요?”
“이따가 유찬 씨랑 같이 안과 가서 시력검사 받고, 안경이랑 렌즈 새로 맞추자. 금액은 회사가 부담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오우예쓰!”
듣다보니 죄다 외모 관리 얘기다.
그러니 나는 안 부르겠지. 라고 생각하던 한율은 오동식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자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한율아.”
“···네.”
“귀 위쪽에 피어싱 하나 더 박고 싶은 생각 혹시 없니? 그럼 더 예쁠 것 같은데.”
“연골 뚫는 건 싫은데요.”
“그래, 그럼.”
두근두근 첫 라방
음력 1월 1일. 설날이 되었다.
한율의 가족은 매년 명절마다 친가와 외가 방문 순서를 번갈아 바꿨는데, 올해는 외가부터였다. 어차피 부친과 모친의 고향이 같은 지역인 것을 넘어, 두 본가가 한 동네에 위치하고 있어 번잡스러울 일도 없었다.
“난 정말 매형이 동네 친한 오빠랍시고 매일같이 누나를 학교에서 집까지 바래다 줄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괜히 내 공부봐준다면서 축구하러 가던 날 강제로 집에 끌고 와서 이용까지 해먹고.”
“하하하하.”
세배가 모두 끝난 외조부모 댁 거실엔 친척들이 가득 모였다. 푸른색 잔디가 깔린 마당엔 개 세 마리가 조금 어린 친척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주고, 거실에 설치된 캣타워 가장 높은 곳에 앉은 고양이 두 마리는 무심한 눈으로 인간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유전은 유전인가 봐요. 한율이도 TV에 나오는 일을 택하고.”
“이거 사인이라도 미리 받아둬야하는 거 아냐? 전에 지상파 드라마에도 나왔었잖아.”
“매형, 나중에라도 혹시 한율이 잘 봐달라고 사람들한테 괜히 언급하지 마세요. 매형 지위가 있어서, 까딱했다가는 갑질 청탁, 이런 얘기라도 나오면 정말 한율이 앞길까지 가로막는 겁니다.”
“하하하. 아무렴 내가··· 음, 그런 걸 모를까.”
사각사각. 식탁에 앉아 사과를 깎던 한율은 거실 쪽을 흘끗했다.
말 중간에 머뭇거림이 들어간 것 같았는데.
옆과 맞은편 의자에 앉아있던 어린 쌍둥이가 와! 탄성을 질렀다.
“토끼다!”
“사과가 토끼가 됐어!”
“토끼 눈은 어디에 있어, 오빠?”
한율은 토끼모양으로 깎은 사과를 포크로 찍어 두 사람에게 나눠주었다.
“눈 뜬 건 먹는 거 아니야.”
외조부모 댁에서 불과 20여 미터도 안 떨어진 친가에서도, 한율이 연예인이 되었다는 소리에 유전이구나 고개를 끄덕이더니 부친에게 행여 지위를 남용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부친은 알겠다고 수긍하면서도 반문했다.
“그래도 책상에 아들 사진 놔두는 것 정돈 괜찮지 않나?”
“그야 그렇지만, 일부러 보게끔 유도하면 문제될 걸요?”
“···그러고 보니 한림이 너 복학 안 하고 당분간 놀 거라며? 세뱃돈은 취소다. 치사해지고 싶진 않으니 반만 돌려받으마.”
“이미 치사하거든요, 큰아빠?!”
TV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몇 달 있으면 정식으로 아이돌로 데뷔한다고는 하지만, 친척들은 사진이나 같이 찍자고 할 뿐 크게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이모만 조금 걱정을 표했을 뿐.
『데뷔하면 분명 널 상품으로, 수단으로만 대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야. 그럼 너도 그런 사람들을 사람으로 대하지 마. 난 네가 언니처럼 다치는 거 보고 싶지 않다.』
“율아, 얘네 봐봐.”
서울로 올라가는 차 안. 한율과 함께 뒷자리에 앉은 모친이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고양이 방에 설치된 홈 카메라와 연결된 영상이었다. 방석 위에 고양이 두 마리가 꼭 붙어서 자고 있다.
“너무 귀엽지 않니?”
모친은 몇 시간 전에 먹은 약의 약효가 아직 떨어지지 않았는지, 조금 들떠보였다.
“네, 귀엽네요. 그런데 개 한 마리 더 데려오고 싶다 하지 않으셨어요?”
“아···. 그 애.”
모친이 시무룩한 얼굴로 대답했다.
“다른 사람이 먼저 입양 받아서 데리고 가버렸대.”
“저런.”
밤늦게 돌아간 숙소에는 유호를 제외한 멤버들이 모두 있었다. 한율이 들어가자 설을 쇠러 가지 않은 길우성이 다짜고짜 물었다.
“써한, 넌 어땠어?”
“뭐가?”
“친척들 반응 말이야. 완전 놀라거나 그러진 않았어? 사진찍자 그러거나, 사인 미리 해 달라 그러거나.”
“사진 말곤 딱히? 그런데 가람이 형은 왜 저래?”
박가람은 거실 구석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스쿼트를 하고 있었다. 이 자리엔 없는 누군가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며.
“후우, 후우···. 복수하고 말 테다······.”
“큰집에서 만난 사촌이 무시했다나봐. 1년에 아이돌이 수십 그룹이나 쏟아져 나오는데 네가 버틸 수 있겠냐, 1년도 안 돼서 지방 축제만 전전하다 해체되는 거 아니냐,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지 말고 군대나 가라.”
“내가 반드시 2kg을 빼서! 음방 출근, 완벽한 핏을 자랑하는 어스래빗의 박가람! 이라는 포토 뉴스를 띄우고 말 테다!”
목표가 참 구체적이다.
한율은 조부모가 챙겨준 봉투를 소파에 툭 내려놓았다. 길우성이 킁킁 냄새를 맡았다.
“뭐야?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
“경단이랑 꿀송편이랑 인절미.”
“······!”
TV 바로 앞에 앉아있던 라이언이 벌떡 일어나고, 박가람이 괴로워하며 한율에게 삿대질했다.
“악마다! 숙소에 악마가 들어왔다!”
“먹어도 되냐?”
방에 있던 차남석이 나왔다. 머리카락이 엉망인 게, 하루 종일 숙소에서 늘어지게 쉰 모양.
“네.”
“악마야 물럿거라아···, 흑······.”
박가람이 스쿼트 자세를 무너뜨리며 풀썩 주저앉았다. 그러더니 처연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나 인절미 하나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