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화 (42/427)

* * *

“우리 쇼케 3분 만에 매진됐대!”

무대 연습 중 잠깐 쉬는 시간. 바닥과 한 몸이 되어 흐느적거리던 강보배가 사과패드를 보며 외쳤다.

마찬가지로 바닥에 널브러져있던 이건우가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거짓말하지 마…, 좌석 900개가 어떻게 3분 만에 매진 되냐.”

“진짠데….”

“데뷔 쇼케 예매권이 천 원 밖에 안 해도 팬클럽 가입을 해야 그 예매가 진행이 되는데, 3분 만에 다 팔린다는 게 말이—.”

쿵쿵. 강보배가 무릎으로 기어가서 이건우 눈앞에 사과패드를 내려놓았다. 사과패드에는 [꽃을 단 토끼 ‘어스래빗’, 데뷔 쇼케이스 3분만 매진]이란 인터넷 기사가 떠있었다.

“…되네?”

“댓글 보니까 남석이랑 한율이 이름이 절반 이상이야.”

쉬고 있던 멤버들의 눈이 한율과 차남석을 찾았다. 앉아서 레몬생강차가 든 텀블러 뚜껑을 열던 한율은 쳐다보든가 말든가 차를 마셨다.

“아, 얼마 전에 보컬 시즌3가 해외에도 풀렸다고 들었어. 그것 때문에 우리 그라 채널 해외 팔로우가 늘었다고 하더라.”

“어쩐지 갑자기 막 늘어나더라니… 다 꽃토끼 효과였구만?”

“히히, 나 찾는 댓글도 있다. ‘쇼케 예매 성공! 다람이 보러 간다람이’. 흐흐흐….”

“야, 저 모습 찍어, 빨리.”

삐빅삐빅. 그때 유호의 사과패드가 타이머 제로를 알렸다. 동시에 멤버들의 얼굴에서 웃음기와 장난기가 싸악 빠졌다.

유호가 벌떡 일어났다.

“휴식 끝! 다들 일어나!”

“흐어어엉….”

M/V 두 건을 비롯해 짤막한 인터뷰 영상까지 모두 무사히 촬영을 마쳤지만, 그래도 유호는 더 완벽한 무대를 보여야 한다면서 멤버들을 닦달했다. 그러나 퍼포먼스 호흡이나 자잘한 실수를 포착하는 건 소파 위에 올라간 이건우의 몫이었다.

“한율아, 무릎 덜 벌렸다! 라이언, 표정연기 제대로! …아니, 힘 좀 빼자. 과해서 웃겨. …다시 갑시다!”

10초 남짓한 개인 티저 영상 8개, 트랙리스트 공개, 데뷔 타이틀곡인 과 월흔(月痕) M/V 티저는 그린라이브와 너튜브 동시 공개.

그렇게 하루하루. 이젠 아예 조유찬이나 현장전이 학교까지 학생 멤버들을 태워다 주고, 수업이 끝나고 나면 바로 데리러 와, 잠깐이라도 딴 길로 샐 여유 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래도 숙소 청소해주시는 분 생겨서 진짜 다행인 것 같다. 안 그러냐, 써한?”

“어. 청소 깔끔하게 잘 해주시는 것 같더라.”

“나는 간만에 이불에서 섬유유연제 향기 나니까 적응 안 되더라.”

“얼마나 안 빨았으면.”

“어휴, 불결해.”

멤버들이 한 마디씩 툭툭 던지자 길우성이 억울한 얼굴로 외쳤다.

“나만 그랬어?!”

4월 14일 금요일.

그들은 현재 차를 타고 데뷔 쇼케이스 장소로 향하는 중이었다.

“음원이랑 데뷔 리얼리티 영상이 6시에 풀리고, 쇼케는 8시 시작. 으으…, 데뷔라니, 내가 데뷔라니! 내가 아이돌이라니!”

“그런데 말입니다.”

박가람이 호들갑을 떠는 와중, 길우성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안경을 고쳐 썼다.

“우리가 데뷔 쇼케이스를 마치는 10시, 뮤닷에서는 고동 엔터 신인 ‘블루액션’의 데뷔 리얼리티 방송을 내보낸다고 합니다.”

SBC의 시사교양 프로그램 MC를 맡은 유명한 배우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듯했으나, 전혀 닮진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 다음 주 금요일 8시엔 데뷔 쇼케이스를 뮤닷에서 생방송으로 한다고 합니다. 이게 과연 어떻게 된 일일까요?”

“흥, 그래봤자 우리보다 일주일 후배야. 기죽을 거 없어!”

“고동이 애 많이 썼네요. 데뷔 쇼케를 뮤닷에서 하고.”

조수석에 앉은 차남석이 말하자, 조유찬이 끄덕였다.

“사실 우리도 그 소식 듣고 놀랐어. 블블 인기가 점점 많아지곤 있다지만—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블루액션이 너희보다 화제성이 있진 않으니까.”

“그래도 그라 팔로우 수는 그쪽이 더 많던데.”

“그거야 블블 팬들이 블블 후배 기죽지 말라고 해준 거니까 많은 거고.”

“왜 우리는 그런 거 없죠.”

“크래 선배님들 팬 대부분이 남잔데, 퍽이나 잘도 해주겠다.”

“하긴.”

“조력은커녕.”

유호가 창밖을 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친하게 지내면 죽여 버리겠다고 하던데.”

“……!”

그들의 데뷔 쇼케이스가 열릴 S스퀘어 라이브 홀은 작년에 설립된 곳이라 그런지 외관부터 세련되고 깔끔했다. 멤버들은 감탄하려 입을 벌렸다가, 약속이나 한 듯이 한쪽을 가리켰다.

“우리 사진 걸렸어!”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티켓 발권을 받을 수 있는 매표소 옆에도 그들의 배너가 세워져 있었다.

“나, 나 사진 찍어줘!”

“나도!”

수선을 떠는 박가람과 길우성의 옆으로 차남석도 조용히 이동했다.

‘참 방송 잘해.’

그리 생각하며 한율도 카메라를 보곤 입가를 올리며 합세했다. 나중에 데뷔 쇼케이스 비하인드로 나갈 수 있는 장면이었다.

“먼저 가람이 사진이랑 찍는 거야?”

네 사람이나 모이자 로비를 돌아다니며 살피려던 다른 멤버들을 유호가 잡아왔다.

“그러려고 하는데, 정작 가람이 형이 안 보이네요. 박가람 씨, 어디 계세요~?”

“나 바로 옆에 있….”

“학생 분, 여기에서 이러시면 안 돼요. 저는 이 사진 속에서 샤랄라 빛나는 박가람 씨를 찾고 있거든요?”

“샤랄라 하게 혼나보실래요?”

어스래빗 멤버들은 그렇게 한 차례 바보짓을 하다가 공연장 안으로 들어갔다.

공연장에는 이미 공연기획을 맡은 업체 직원들과 이곳의 음향, 조명 오퍼레이터, 그린라이브 생중계를 위한 카메라맨과 각종 엔지니어, 보조 스태프, WB래빗 직원들이 모여 있었다. 여기에 경호업체에서 파견 나온 경호원들까지.

그들의 데뷔 쇼케이스를 위해 모인 사람들만 수십 명. 조금 전까지 장난을 치던 멤버들도 덩달아 긴장하여 딱딱 굳었다.

“안녕하십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리허설도 본공연처럼 하는 거 맞지?”

“형 그 질문 세 번째에요.”

“생방 경험자로서 말하는데, 이런 콘서트에서는 옷 갈아입는 속도도 굉장히 중요해요.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면 백스테이지는 지금보다 엄청 어두워지거든요. 그리고 정신이 없다보니 어디 부딪쳐서 다쳐도 제대로 못 느끼는 경우도 많고.”

대기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회사에서 맞춤으로 제작해준 인이어까지 착용한 멤버들은 스태프들로부터 안전에 대한 주의사항을 들었다. 그러나 설명을 들어도 우왕좌왕하는 멤버들이 있어, 방송 경험이 있는 한율과 차남석이 멤버 하나하나를 붙잡아 재차 설명했다.

“그러니까 잰걸음으로 움직이고, 옷 갈아입을 땐 기본적으로 스타일리스트 분들한테 몸을 맡겨 조금만 협력한다 생각해요. 그게 더 빨라요.”

“그리고 여기 프롬프터가… 잘 안 보이니까.”

“안녕하세요!”

우렁찬 목소리가 쩌렁 울리며 시선을 끌었다.

한율도 몇 번 TV로 본 적 있는 낯익은 사람이 계단을 내려왔다.

“어스래빗 데뷔 쇼케이스 MC를 맡게 된 김태건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 *

어스래빗 데뷔 쇼케이스 4시간 전.

타악. 교복 안에 입은 후드티의 후드를 머리에 뒤집어쓴 여학생이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라이브 홀 앞에 당도했다. 그리고 입구 근처에 세워져 이제 막 천막이 걷히는 작은 MD부스를 보곤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예쓰!”

MD부스 앞에는 먼저 도착한 팬들이 줄을 서고 있었지만,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얼마 없었다. 후드소녀, 이아름도 냉큼 그들 뒤에 섰다. 부스 앞에는 혼잡을 방지하기 위한 벨트차단봉이 니은 자로 세워져 있었다.

“여기는 뭐 파는 곳이에요?”

그 너머로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검은색 마스크까지 쓴 여성이 다가와 물었다.

“어스래빗 임시 굿즈요!”

아이돌 덕질을 한다는 걸 타인에게 밝히기 꺼려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잘 알기에, 이아름은 의심을 갖지 않고 부스 쪽으로 목을 길게 뺐다가 부언했다.

“임시응원봉이랑, 포토책갈피 파네욥! 아, 그런데 포토책갈피 신박하다. 보통은 포카나 키링 파는 거 같던데.”

“…….”

대답을 들은 여성은 벨트차단봉을 빙 돌아 이아름의 뒤에 섰다.

“오오, 이게 응원봉이란 거구나!”

드디어 부스 앞에 서게 된 이아름은 생각보다 저렴한 임시응원봉을 손에 쥐고 신기하게 살폈다. 토끼 얼굴을 한 임시응원봉에는 WB래빗 회사 마스코트, 얼굴이 아수라백작처럼 흑백으로 나뉜 토끼 스티커가 기둥에 부착되어 있었다.

앞서 구매한 팬들의 대화.

“건전지도 포함되어 있고, 그런데 중앙제어 기능은 없나 보다.”

“응, 설명이 없네.”

중앙제어? 그게 뭐야?

이아름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MD판매 직원을 돌아보았다.

“여기 책갈피 종류별로 하나씩 주세욥! 아니, 한율이 오빠랑 남석이 오빠 건 두 개씩!”

MD부스 앞을 벗어난 이아름은 임시응원봉에 건전지를 끼우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토끼 얼굴이 지구처럼 푸른색과 녹색으로 얼룩지며 환히 빛났다.

큽! 이아름은 웃음을 터뜨렸다.

“지구 토, 끼…, 큽큽, 너무 직설적이잖아…!”

“…….”

이아름 바로 뒤에 줄섰던 여성, 이희우는 혼자 괴상한 웃음을 흘리며 웃는 이아름을 의아하게 쳐다보다가 MD판매 직원에게 말했다.

“종류별로 두 개씩 주세요. 응원봉도 두 개 주시고.”

“죄송하지만 오늘 임시응원봉은 1인당 1개만 구입가능하세요.”

데뷔 쇼케이스 1시간 전. 관객 입장이 시작되었다.

어스래빗 대기실에선 난리가 났다.

위이잉. 헤어를 만지는 드라이어기 소리는 기본이요, 강보배와 라이언은 매니저가 촬영한 리허설 영상을 돌려보며 미흡했던 부분을 반복 연습했다. 쿵, 쿵.

차남석과 박가람은 목을 풀기 위해 노래를 부르며 돌아다녔다. 이건우와 유호는 무대 순서와 동선, 대본을 숙지하면서 인터뷰할 때 본인이 대답했던 부분까지 중얼중얼 외우고, 길우성은 헤어 세팅을 받으면서도 거울을 보며 표정연기를 연습했다.

“안녕하세요, 어스래빗에서 맏형과 동생들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건우입니다.”

“저희 데뷔 타이틀곡이자 이번 앨범 타이틀인 은 고래가 배를 보이면서 수면 위로 점프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건데요, 잔잔해 보이는 수면 아래를 거닐다가 역동적으로 튀어 오르는 그 모습처럼….”

카메라가 그 모습을 모두 찍고 있는데도, 데뷔 쇼케이스를 앞두었다는 긴장과, 실수해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집중하느라 이젠 카메라의 존재도 의식 밖으로 밀어낸 듯했다.

한율은 귀에 이어폰을 꽂고 어스래빗 음원을 쇼케 무대 순서대로 들으며, 조금 전 했던 리허설과 앞으로 할 무대의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그렸다.

처음엔 데뷔가 아닌 전혀 다른 목적을 위해 WB래빗에 들어왔으나,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대에 오른 뒤로는 ‘서한율’의 삶에 충실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1년 남짓. 이전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돌이 되기 위한 온갖 레슨을 받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여 오늘을 맞이했다.

그런 적잖은 시간을 퍼부어놓고 한심한 꼴을 보이는 건 스스로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30분 전! 화장실 다녀오실 분은 지금 다녀오세요!”

“20분 전! 인이어랑 마이크 체크할게요!”

“10분 전! 이동하겠습니다!”

어스래빗 멤버들은 저마다 심호흡을 하며 대기실을 나왔다. 밝은 복도를 지나 백스테이지로 통하는 문을 열자, 수백 명의 기척과 그들을 부르는 소리가 먼저 몸을 짜릿하게 울렸다.

1층의 스탠딩 객석을 비롯해 2층의 관객석까지. 토끼 모양을 띤 지구의 푸른빛 9백 여 개가 물결쳤다.

[어스래빗! 어스래빗!]

[지구토끼! 지구토끼!]

한율은 지난번 <보컬리스트 시즌3> 본선무대에 섰을 때보다 더한 전율을 느꼈다.

###Breaching

어스래빗의 데뷔 쇼케이스는 그린라이브를 통해 생중계로도 진행 되었다. 따로 팬클럽을 가입하거나 요금을 내지 않아도, 앱을 통해서 혹은 그린라이브와 연계된 대형 포털사이트를 통해 누구든지 볼 수 있도록.

가장 먼저 멤버 소개 영상이 나오고 1번 트랙 무대, 그리고 PR인터뷰. MC는 사전에 맞춘 대본대로 멤버들에게 처음 서로를 만났을 때의 인상이나 특별한 에피소드가 없는지에 대해 물었고, 멤버들은 사실에 MSG를 살짝 첨가하여 대답했다.

“한율 씨는 초반에 리더인 유호에게 그다지 좋은 인상을 못 받았다고 그러던데, 왜 그렇게 느꼈어요?”

“그랬어?!”

유호가 충격 받은 얼굴로 한율을 돌아보았다. 한율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들 밤늦게까지 땀흘려가며 연습하는데, 호 형만 사무실에 편히 앉아서 직원 분이랑 같이 TV를 보는 거예요. 그래서 조금 그랬어요.”

“어떻게 된 거죠, 유호 씨? 하긴, 연습이 강제는 아니겠지만 사무실에서 편히 TV라니…?”

“짬밥 과시죠.”

이건우가 끼어들어 보태자, 유호가 억울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아니야아! 그때 너도 알잖아, 나 발목 다쳐서 한동안 연습 쉬었던 거! 그때가 한율이 들어오고 얼마 안 됐을 때라….”

“그럼 집에 가서 쉬면되지, 왜 사무실에서 TV를 봐요, TV를 보길.”

“네,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럼 다음 먹잇감… 아니지, 이번엔 라이언한테 질문할게요. 한국에 와서 열심히 게임을 했다…라는 게 대체 무슨 뜻이에요?”

“농장이요!”

“……?”

“농장에서 당근, 사과, 고구마 만들면 진짜로 보내줘요. 그래서 매일 열심히 했어요!”

“아아, 그 게임! 그래서, 받았어요?”

라이언이 해맑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뇨, 근데 대표님이 군고구마 사줬어요! 게임 NO, 연습 GO!”

두 번째 무대를 준비할 때엔 스테이지의 대형LED 전광판을 통해 데뷔 리얼리티엔 포함되지 않은 또 다른 에피소드가 흘러나갔다.

무대가 끝난 뒤에는 다시 간단한 인터뷰에 이어, 예매번호를 통한 추첨 이벤트 진행.

상품은 원하는 멤버와 폴라로이드 사진 찍기 플러스, 앨범에 랜덤으로 들어가게 될 개인 포토카드가 모두 들어있는 특별한정판 포토카드 세트. 이는 920명의 관객 중 단 세 명만 받을 수 있는 특별한 상품이었다.

멤버 전원과 사진을 찍은 첫 번째, 두 번째 당첨자에 이어, 세 번째 당첨자는 강보배를 붙잡아 물었다.

“포옹은 안 돼요?!”

MC가 단호히 외쳤다.

“네, 안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팬들이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닮는다더니, 어스래빗 멤버들처럼 팬 분도 아주 시원시원하시네요!”

세 번째 당첨자는 취향이 조금 독특한지, 사진을 찍을 때에도 일반적인 포즈가 아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구애의 춤’ 포즈로 함께 찍기를 원했다.

그렇게 유쾌한 시간이 지나고, 세 번째 무대가 시작되기 전에는 사전에 촬영한 ‘고요 속의 외침 게임’ 영상이 전광판에서 흘러나왔다.

“마이크, 마이크, 내 마이크!”

“아야얏!”

그동안 백스테이지는 난장판이었다.

멤버들은 다급히 옷을 갈아입다가 인이어 선이 귀걸이에 걸려 하마터면 피를 볼 뻔하기도 하고, 땀 때문에 들러붙은 옷이 잘 벗겨지지 않아, 강제로 벗다가 피부가 쓸려 벌겋게 되기도 했다. 길우성은 미니 선풍기 바람을 쐬다가 눈에 이물질이 들어가, 렌즈를 도로 뺐다가 새 걸로 끼워야 했다.

“반지, 그거 말고 이거!”

“옷핀 어디 있어요, 옷핀! 뭐 해, 빨리 가져 와!”

생중계로도 진행되고 있기에, 조금이라도 딜레이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모두가 다급해진 까닭이었다. 첫 데뷔 무대라는 긴장감 역시, 정신없이 돌아가는 상황에 함께 휩쓸려 사라진지 오래.

그리고 무대에 올랐을 때는 뒤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시치미를 뚝.

팬들은 신기하게도, 공개된 지 고작 3시간도 안 된 그들의 노래를 목이 찢어져라 따라 불렀다.

“여기 팬 분들이 직접 작성한 질문들이 가득인데요. 자, 어떤 질문을 해볼까~, 아, 이게 좋겠네요.”

이제 겨우 곡 세 개를 끝냈을 뿐인데 기가 쭉쭉 빨리는 느낌이었다. 한율은 최대한 지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입을 꾹 다물고 끝만 올렸다.

MC가 캔버스를 가득 채운 포스트잇 중 하나를 뜯더니 한율과 차남석을 바라보았다.

“율이 오빠, 남석 오빠, 가장 처음 ‘꽃을 단 토끼’ 이름을 들었을 때의 느낌을 알려주세요! 라고 1호팬, 별 표시! 님이 물어봐주셨네요.”

꺄아아아! 어스래빗 중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하고, 불러들인 두 사람의 이름이 호명되자 객석에서 즐거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하물며 한율과 차남석의 시선이 서로를 향하자 더더욱 볼륨이 높아졌다.

‘1호 팬에 별 표시라면,’

후드소녀.

이심전심이라고,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자 MC가 호들갑을 떨었다.

“뭐죠? 뭐지? 이 질문 누가 쓴 건지 아는 거예요?”

“네, 짐작 가는 분이 계셔서요.”

“솔직히 대답해 드리자면—.”

차남석이 환하게 웃으면서 객석을 둘러보다, 한율을 바라보았다.

“제가 그때 먼저 팀명을 알았거든요? 그래서 한율이한테 말해줬을 때의 대화를 재연으로 들려드릴게요. 기억나지?”

“어떻게 잊겠어요.”

웃으며 주거니 받거니.

차남석이 땀으로 젖어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잘생긴 얼굴이 대형LED전광판에 잡히자 객석의 비명이 더욱 커졌다.

의도적으로 더욱 낮게 깐 중저음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홀에 울렸다.

“야, 우리 팀 이름 ‘꽃을 단 토끼’래.”

한율은 당시의 순간으로 몰입했다.

눈썹을 찡그리며 고개를 기울이는 한율의 얼굴이 크게 잡혔다.

“미친 토끼예요? 꽃을 왜 달아?”

그와 동시에, 차남석의 외모를 극찬하는 톡이 올라가던 그린라이브 톡창은 ‘ㅋㅋㅋㅋㅋㅋ’로 도배되었다.

MC가 벌떡 일어났다.

“요즘 아이돌들이 이렇습니다! 아아주 솔직해요!”

“그래도 특색있는 팀명이라 그 덕에 더 주목을 받지 않았나, 지금은 그 이름을 지어주신 대표님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차남석이 머리 위로 손 하나를 올려 토끼 귀처럼 까딱거리자, 한율도 반대쪽 손을 들어 까딱거렸다. 생글생글 짓는 미소는 덤.

“감사합니다!”

“다음 질문 드릴게요. 우리 작고 소중한 가람아! 멤버들 중에서 제일 얄미운 멤버는 누구야?”

“왠지 답은 정해져 있어, 넌 대답만 하면 돼. 라는 질문 같은데….”

박가람이 앞으로 상체를 기울이며 유호를 바라보자, 유호는 반대로 고개를 돌리면서 외면했다.

“다들 유호 형이라고, 그렇게 대답하리라 생각하시겠지만 제가 제일 얄미운 멤버는!”

“두구두구두구.”

박가람이 MC를 보며 대답했다.

“우리 멤버 중 가장 잘생긴 멤버입니다.”

“남석이?”

“후….”

작은 한숨을 내쉰 박가람이 눈썹 위로 흘러내리려는 땀을 닦으며 고개를 들었다.

“제 눈엔 제가 제일—.”

“자, 다음 질문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네 번째 무대.

스테이지가 어둑해졌다.

쏴아. 잔잔한 파도소리가 공연장을 울리고, 스테이지와 함께 새카매졌던 전광판에 검푸른 윤곽이 넘실거렸다. 아주 짧게 공개되었던 어스래빗 데뷔EP앨범 티저.

여기에 동화처럼 따뜻한 색감을 가진 그림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바다를 떠도는 검은 섬에 여덟 명의 소년이 있었다.

낮에는 각자 섬 여기저기로 흩어져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밤이 되면 모여서 함께 잠들던 소년들은 어느 날, 모닥불을 피웠던 자리에 돋은 토끼풀을 발견한다.

토끼풀은 휘황찬란한 달빛을 받을 때마다 아름다운 음악을 흥얼거렸다.

소년들은 그걸 보고 달을 향해 나아가자며 의견을 모은다.

‘달과 가까워지면 더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줄 거야.’

노와 연결된 폐달을 밟으며 달린다. 연주를 하고, 열심히 토끼풀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섬에게 활력을 불어넣는다.

검은 섬이 달린다.

바다에 비친 하늘인지 구름인지, 상관없이 가르고 가르다—

마침내 섬이 뒤집혔다.

소년들의 세계도 뒤집혔다.

.

소년들이 수면 아래에서 키워오던 노력의 결실이 달을 향해 과시되는 순간.

바다는 하늘을 품은 땅이 되고, 소년들은 대지에 섰다.

* * *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transmedia storytelling)이라고 하죠? 은 그 서사라고 봐도 무방할까요?”

“네!”

바로 조금 전, 무대를 마치고 의자에 착석한 터라 숨이 진정되지 않았다. 허억, 허억…. 우선 힘차게 대답한 유호는 마이크를 멀리 떨어뜨린 채 숨을 고르다가 이어서 대답했다.

땀을 흘리며 웃으며 대답하는 유호의 모습이 전광판에 고스란히 잡혔다.

“저희 데뷔 타이틀곡이자 이번 앨범 타이틀인 의 뜻이, 고래가 배를 보이면서 수면 위로 점프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건데….”

“아이고, 숨차죠?”

“네, 솔직히요! 하하….”

“조금 전까진 무대에서 그렇게 카리스마를 내뿜었는데, 인간미 있는 모습을 보니 정이 확 드네요. 그렇지 않나요, 여러분?”

객석에서 비명 같기도 하고 환호성 같기도 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맏형은 조금 힘들어 보이니까.”

“안 힘듭니다!”

“계속 시켜보도록 하겠습니다.”

공연장의 열기는 오르기만 할 뿐 떨어질 줄 몰랐다. 관객의 시선도 모두 정면에서 꿈쩍도 하지 않아, 이희우는 답답한 모자와 마스크를 벗었다.

데뷔 쇼케이스가 시작된 지 고작 45분. 그러나 어스래빗 멤버들은 벌써 에너지가 바닥난 것처럼 보였다. 그만큼 무대 하나하나에 힘을 쏟았다는 것도 느껴져, 전광판으로 흐릿하게 잡히는 땀도 또렷이 와 닿았다.

‘생각보다 열심히 하네.’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인기도 많았다.

데뷔 쇼케이스가 시작되기 전, 잠깐 근처에서 볼일을 보고 왔던 이희우는 그 사이에 라이브 홀 앞에 길게 줄을 선 수백 명의 사람들을 보고 진심으로 놀랐다. 그리고 음원이 공개된 지 몇 시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첫 곡부터 당연하다는 듯 벌써 가사를 줄줄이 외워 따라 부르기까지.

시각적으로도 음향적으로도 몰아치는 인기의 파동.

배우는 좀처럼 겪기 힘든 그 중심엔 아이돌이 있었다.

그제야 이희우는 어째서 서한율과 차남석이 연기를 뒤로 미루겠다 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이런 우레와 같은 환호성과 호의를 한번이라도 온몸으로 체감하면, 놓기 힘들긴 하겠네.’

물론 인기가 많아질수록 무조건적인 적대감이나 견제하는 사람들도 늘겠지만, 회사가 악플러를 고소한다 으름장만 놓지 않고 잘 실행하는 곳 같으니.

어스래빗 멤버가 한 마디 할 때마다 소란스러웠던 객석이 잠잠해졌다. 마지막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어스래빗이 백스테이지로 간 사이, 무대가 암전되고 전광판에 영상이 흐르는 까닭.

땀에 절어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는 어스래빗 멤버들의 모습, 지쳐 널브러져 있다가 몇몇 멤버들의 장난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 1시를 가리키는 시계와, 그제야 어슬렁어슬렁 회사 밖을 나오는 모습.

차남석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 혼자 노력한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세상에 과연 몇 가지나 있을까요.]

[지금 당장 이 마이크, 날 도와주는 스태프 분들만 없어도 내 목소리는 어디에도 닿지 않을 텐데.]

영상이 빠르게 회전하며 새벽달이 저물어가는 하늘을 비춘다. 다시 내려가는 포커스엔, 한 건물 위에 걸터앉은 여덟 명의 뒷모습이 잡혔다.

어스래빗 1st EP앨범 [Breaching]의 마지막 트랙이자, 오늘 데뷔 쇼케이스 마지막 무대의 곡명이 떴다.

<월흔(月痕)>.

어스래빗 멤버 전원이 작사에 참여한 곡.

음원과는 달리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흐르더니, 무대 한쪽에 어스름한 조명이 비추었다. 이희우의 옆에서 목이 쉬도록 환호성을 지르고 노래를 불렀던 여학생이 울컥한 얼굴로 제 입을 막았다.

“율이 오빠….”

서한율이 피아노를 연주하며 입을 열었다.

곧고 깨끗한 음색이 라이브 홀에 퍼졌다.

[희망에 취해 예뻤던 달이 이젠 미워,]

[아름답다 속이고 웃어, 돌아봐줄 거라 웃어.]

[이제 그만 맞고 싶은데….]

또 다른 조명. 잔향만 남긴 채 사그라진 피아노 선율 대신, 스탠딩 마이크 앞에 선 차남석의 목소리가 한율의 목소리와 화음을 이루었다.

[오늘도 난 네 그림자 아랠 걸어.]

###손 위치가 머리 위가 아닌 게 어디야

[어스래빗, 괴물 신인등장!]

[정식 데뷔도 전, 그린라이브를 통해 공식 1기 팬클럽을 모집하며 동시에 연 데뷔 쇼케이스 예매가 3분 만에 매진되었다.

크리스탈 래빗을 성공적으로 키운 WB래빗 엔터테인먼트가 새로이 야심차게 내놓은 보이그룹, 어스래빗의 이야기다.

어스래빗은 작년 뮤닷의 <보컬리스트 시즌3>로 얼굴을 알린 ‘꽃을 단 토끼’ 차남석과 서한율의 그룹이라고 알려져 일찍이 주목받았지만, 1월에 개설한 그린라이브 채널을 통해 다양한 개성과 매력을 지닌 다른 멤버들이 공개되면서 더 많은 관심을 끌었다.

[데뷔 쇼케이스에서 타이틀곡 을 선보이는 어스래빗(사진=앗싸일보)]

어스래빗의 1st EP앨범 [Breaching]은, 8명의 멤버의 노력과 시간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섬, 고래와 함께 바다를 누비다 자신들의 음악을 찾기 위한 포부를 고래의 Breaching처럼…(중략)….

4월 14일 열린 어스래빗의 데뷔 쇼케이스는 그린라이브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으며, 데뷔 쇼케이스가 끝난 밤 10시엔 의 M/V도 공개되었다. 데뷔 쇼케이스의 비하인드 영상은 일주일 후 공개될 예정이다.

어스래빗은 4월 15일, KBC <뮤직뮤직>에서 공중파 첫 데뷔무대를 갖는다.]

-진짜 신인답지 않았다. ㅇㅈ

ㄴ솔까 꽃토끼는 중고신인 아님? 작년에 보컬로 데뷔한 거나 마찬가지잖음.

-뭔 데뷔만 했다하면 개나 소나 다 괴물신인이래ㅋㅋ

ㄴ네 다음 개나 소보다 못한 열폭러>ㅅ<ㅗ

-애들 인터뷰할 때도 막 신인답지 않게 어버버하는 것도 덜하고, 정말 여유롭게 잘했음ㅎㅎ

-회사에서 돈 좀 쏟은 티가 나는 게, 뭔가 준비한 영상도 많았어요. 임시응원봉도 저렴하고 이쁘고ㅎㅎ 이름=세상 정직한 응원봉ㅋㅋㅋㅋ

ㄴ그 돈을 누가 벌었다고 생각하냐... (지나가던 크래 팬)

-영상 잠깐 봤는데 애들 죄다 얼굴만 보고 뽑은 느낌. 아, 한 두 명은 쫌 생긴 일반인? 그런 소소한 느낌ㅇㅇ

ㄴ얼굴만(x), 얼굴도(o)

-장신허당리더토끼 유호, 상남자토끼 건우, 다람쥐토끼 가람, 존잘토끼 남석, 카리스마래퍼토끼 보배, 랩하는농장토끼 라이언, 춤신춤왕토끼 우성, 씬스틸러토끼 한율. 다들 꽃길만 걷자٩(๑˃́ꇴ˂̀๑)۶♡

ㄴ농장토끼는 머에여??? 농촌 출신임???

ㄴㄴㄴ워싱턴ㅇㅇ

-님들! 어스래빗 데뷔 쇼케에 이희우 찍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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