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8화 (58/427)

* * *

“…….”

민준은 서한율이 보낸 톡을 보곤, 하마터면 자신이 짓는 표정을 톡창에다 고스란히 옮길 뻔했다.

[ㅇㅂㅇ]

다행히 전송을 누르기 전에 백스페이스 톡톡톡.

‘학교에 있을 시간. 톡까지 보내는 걸 보면 지금 인터넷에 무슨 난리가 나고, 어떤 소문까지 도는지 전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우웅. 그때 다른 사람으로부터도 톡이 왔다.

-[ㅁㅈ, 악플에다 욕하면 그 욕한 댓글까지 고소해??]

[누나 혹시 우리 기사에 달린 악플에다 욕햇어요..?]

민준은 빠르게 답변을 보낸 후, 서한율에게도 답변을 보냈다.

[지금 바로 추천리스트 작성한다 기다려^^]

배우 이희우로부터 답장.

-[누나x 선배님o, 햇어요x 했어요o]

-[너 자꾸 쌍시옷 받침을 시옷 받침으로 쓰더라?]

서한율의 답장.

-[네, 천천히 하세요. :)]

연달아 뜨는 두 사람의 이름을 보자 민준은 기분이 이상해졌다.

두 사람과 인연을 맺게 된 건 한 웹드라마의 캐스팅 소란으로, 썩 기분 좋은 출발은 아니었다. 하지만 고동의 잘못이 거의 드러나고 악질적인 루머까지 도는 지금, 친구인 김재신을 제외하고 자신에게 아무렇지 않게 연락하는 게 이 두 사람이라니.

민준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흘렸다.

‘내가 사람 복이 아주 없는 건 아닌가 보다.’

그러나 그 시각, 그들이 생각지 못한 곳에선 또 다른 불화가 빚어지고 있었다.

한 어스래빗 팬의 개인 SNS.

[고동이랑 블루액션은 빨리 인정하고 사과해라. 너희들 때문에 다른 애들이 루머로 피해 받는 거 안 보이냐? #고동_인정해 #고동_사과해]

싸우지 마세요

-저기요.. 파랑이들도 이번 일 피해자거든요?? 그리고 확실하게 밝혀진 것두 없는데 이러지 마시죠 어스 팬님?

ㄴ뭐라는 거야ㅋㅋ

ㄴ비웃지 마시구요, 파랑이들 잘못한 거 없으니까 인정이니 사과하라느니 하지 마시라구요

ㄴ나한테 명령질할 시간에 너네 오빠들한테 가서 물어보세요^^ 정말 가슴에 손을 얹고 그때 본인들 힘으로 본선 올라갈 수 있는 실력이었는지ㅋㅋ

ㄴ예전에 웹드 캐스팅 건도 한율이가 먼저 된 건데 나중에 날름 낚아채려다 들키니까 나 몰라라 ㅌㅌ했죠? 보컬도 접대로 본선 올라갔죠?? 고동 종특이 새치기죠? 양아치죠? 할 말 없죠?

ㄴㅅ1발 그냥 지나가려 했는데 같잖아서 진짜ㅋㅋㅋ 기억조작 당함? 먼저 되긴 뭘 먼저 돼 ㅅㅎㅇ팬 또 피코질하네ㅋㅋㅋ 지 입으로 다른 사람이 캐스팅될 거 염두에 두고 있어서 괜찮다는 기사 링크 가져와줘?? 그리고 그거 ㅁㅈ이가 낚아챈 거 아니고 몰랐었다고 고동이 멋대로 섭외 ㅇㅋ한 거라고

ㄴ고동 애들은 진짜 뭔 일만 생기면 ‘회사가 해쪄여 전 몰랐쩌여8ㅂ8’<<< ㅋㅋㅋㅋ이것도 종특이죠?

사실 어스래빗과 블루액션 팬들은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특히 어스래빗 팬들 입장에선 블루액션이 은근히 어스래빗보다 좋은 스케줄을 잡는 게 눈에 거슬렸다. 데뷔시기와 성적이 비슷해서 더욱 그랬다.

여기에 블루액션이 웹드라마 <가미난무> 캐스팅 사건 때 얽혔던 고동 엔터 소속이라는 점도 어스래빗 팬들의 심기를 자극했다.

당시엔 팬이 아니었던 사람도, 팬이 된 이후엔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과거에 당했던 일을 다시 접하면 새삼 분노하는 법이었다.

-블블 팬들, 그때 가만히 있다가 통수맞은 한율이한테 오히려 피코하지 말라고 개지랄 떨었었대여 떠비로 전화해서 완전 난리쳤다고

ㄴ얼마 안 되는 팬들한테도 착하고 예쁘게 웃던 우리 한율이한테, 블블씩이나 되는 큰 팬덤이요??? ㅅㅂ듣기만 해도 개빡치네

그리고 이번 <보컬리스트> 김PD에게 수차례 접대를 한 곳이 고동 엔터라고 추려지자, 어스래빗 팬들의 분노는 폭발 임계지점까지 올라갔다.

-진짜면 남석이랑 한율이가 피해볼 뻔한 거 아니에요??

-우리 애들이 노래를 월등히 잘하니까 그나마 못 건드린 것 가틈요 우리 애들보다 위로 가면 바로 피디픽 티나니까

-와 진짜 얼척없어서ㅋ 지금 ㅂㄹㅇㅅ이랑 ㅂㅂ팬들, ㄱㄷ이 아니라 떠비가 접대한 거라고 떠들고 다님요ㅋㅋㅋ 아이돌ㅅ접대 그 루머만 봐도 남돌보단 여돌 소속사가 아니겠냐곸ㅋㅋㅋㅋ

ㄴㅅㅂ개잡ㄴ들이 처도랏나 진짜

ㄴ그렇게 떳떳하면 떠비처럼 아니면 아니라고 바로 공식입장 내놓으면 될 텐데,.. 안 그러는 것만 구린내가 풍기지 않나? 상황 판단이 안 되나, 걔네들은?

ㄴ뇌가 없는듯ㅇㅇ

소수의 거친 언행이 전체의 의견으로 둔갑되고, 모두의 싸움으로 번진 것도 시간문제였다. 여기에 왜 또 과거 일을 들추냐는 블블 팬들까지 가세.

고동에게 사과를 요구한 한 어스래빗 팬의 SNS 메시지에는, 블루액션과 블블 팬과의 언쟁으로 댓글이 천 개를 돌파하기도 했다.

“으아아…, 왜들 이래에….”

어스래빗 팬카페와 그린라이브 게시판, SNS, 여러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어스래빗이 언급된 게시글과 댓글을 살피던 조유찬은 앓는 소리를 내며 제 머리를 헤집었다.

특히나 해외에 서버를 둔 익명 커뮤니티에선 어스래빗과 블루액션 팬들 간에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온갖 비난이 날뛰고 있었다.

이러면 서로 좋아하는 아이돌 얼굴에 먹칠하는 거라고,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비난과 욕설은 자제하는 게 어떻겠냐 말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미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하여 오기가 동한 사람들을 모두 막을 순 없었다.

하지만 다른 팬덤과의 분쟁은 득은커녕 실밖에 남지 않는다. 팬덤이 흉포하게 날뛸수록 아티스트의 이미지가 깎이는 건 물론, 분쟁자체에 피로감을 느끼고 이탈하는 팬도 많아진다. 그러니 한시바삐 진압하는 게 급선무.

조유찬은 다급히 오동식 팀장에게 보고, 오 팀장은 기획홍보팀장과 대화 후 팬카페와 그린라이브 채널 게시판, 공식 SNS 등을 통해 팬들에게 다른 아티스트를 향한 비난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

“보이그룹 팬들 화력이 어마어마하다곤 들었지만…, 엄청 살벌하네요.”

“더 무서운 게 뭔지 아세요, 유찬 씨? 그 기사가 뜬지 이제 겨우 40시간 밖에 안 됐다는 거예요.”

“히이익….”

“애들 하교하면 곧장 라방 진행시키는 게 좋겠어요. 우리 애들을 좋아하는 마음에 투지를 불태우는 사람들이니, 애들 말은 듣겠죠.”

“이런 말하긴 뭣하지만, 진짜 고동이 공식입장을 빨리 내놨으면 좋겠네요. 으으….”

그렇게, 어스래빗 멤버들은 하교하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2층 회의실로 모였다. 회의실에는 이미 라방을 위한 준비가 갖춰져 있었다.

오 팀장에게 대충 어떤 상황인지 전달받은 후, 유호가 멤버들에게 말했다.

“너무 나무라는 톤은 안 되고, 밝게, 웃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슬픈 표정도 짓지 말고, 조금 안타까운….”

라이언이 뚱한 얼굴로 물었다.

“어쩌라는 거야?”

잠시 후, 어스래빗의 깜짝 라방이 시작되었다.

“인사드립니다, 어스!”

“래빗!”

“안녕, 이프리임!”

방송을 켜자 접속자 수는 순식간에 만 단위로 올라갔다. 톡창에는 인사와 어제 방송 잘 봤다는 감상, 갑작스런 라방에 반가워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어스래빗 멤버들은 먼저 <뮤직뮤직>과 <락뮤닷> 상반기결산특집 방송을 한 소감과, 무대를 준비하면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부터 떠들었다.

“…그리고 우성 씨는 동료 가수 분들한테 예의 좀 차리세요.”

라방 시작 10여 분. 한율은 슬슬 밑밥을 깔았다.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내가 뭘요? 내가 언제? 나만큼 예의바른 사람이 어디에 있다고 그러쎄욥?”

“맞아. 어제 락뮤에서 블루액션 분들 딱 오니까, 어? 다리 일자로 쫙 벌리고 앉아서 스트레칭 하던 자세 그대로.”

박가람이 상체를 한껏 낮추고 거북이처럼 목을 쭉 내민 채 손을 번쩍 들었다.

“어서옵쇼!”

-ㅋㅋㅋㅋㅋㅋㅋㅋ아 빵터짐ㅋㅋㅋ

-이잌ㅋㅋㅋㅋ 진짜 그랬어?

-우성앜ㅋㅋㅋㅋㅋ

“내가 다 창피하더라, 야.”

“블루 분들이 성격이 좋아서 망정이지, 나였으면.”

이건우가 눈썹을 미간으로 모은 채 길우성을 한심하게 내려다보았다.

“‘아, 이런 것도 선배라고’ 이렇게, 이렇게 쳐다봤을 거야.”

“어헉….”

-지금 우성이 표정// 가람이 입술 파르르 싱크로율 백펔ㅋㅋㅋ

-어쩐지 울톢이들.. 블루 팬들이랑 우리 싸움난 거 때문에 이러는 것 가튼데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눈치가 굉장히 빠른 사람도 있기 마련. 눈만 끔뻑거리며 핸드폰으로 톡창을 보던 라이언이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그러니까 싸우지 마세요, 여러분.”

멤버들의 시선이 일제히 예고 없이 돌직구를 날린 라이언을 향했다.

“사이 나빠? OK, 조아. 하지만 싸우는 건 놉. 상처만 남아요. 상처 나면 아프고, 이프림은 안 아팠으면 좋겠어요.”

-아...ㅎㅎㅎㅎ

-라욘아..ㅜ

“어…, 라이언이 갑자기 본론을 꺼내서 조금 당혹스럽기는 한데.”

회의실 구석에 의자를 놓고 앉아 방송을 지켜보던 오동식 팀장이 괜찮다는 듯 손짓했다. 뒷말을 흐리던 유호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카메라를 보았다.

“어제 인터넷에 뜬 기사를 보고 걱정하신 분들 많을 텐데요. 저희도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리자면…, 그 기사 보고 좀 속상했어요. 만약에 우리 회사가 이랬다면, 아… 우리 실력으론 부족하다 느껴져서 회사, 또는 어떤 사람이 이런 선택을 했구나.”

차남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우리가 그렇게 못미더운가? 자책도 들고… 자신감은 물론이고 자존감도 깎이고 그랬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 차남석은 함께 <보컬리스트 시즌3>에 출연한 한율을 바라보았다. 한율은 씁쓸한 얼굴로 살며시 입가를 올렸다.

“그리고 또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게 없잖아요. 누군가 정말 그런 선택을 했다고 해도, 그 선택에 저희랑 함께 출연한 분들의 의사가 들어갔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아요.”

“함께 프로그램을 촬영하는 내내, 다들 노래 부르는 모습에서 빛이 났거든요. 만약 마음에 켕기는 구석이 있었다면….”

“정말 뛰어난 거짓말쟁이가 아닌 이상 티가 났을 텐데….”

한율은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글쎄요….”

-남석아 한율아ㅠㅠㅠㅠㅠㅠㅠ

-진짜 ㅂㄹ애들 믿는구나..ㅜㅜ

-맞아요 싸우지 마세요ㅠㅠ 비난은 비난으로 끝없이 돌아와서 결국엔 울 톢이들이 다치자나요...ㅠㅠ

-싸움에 참전하진 않았지만 안 싸울게

-8ㅅ8.....

“물론 이프림 분들이 저희를 좋아해주신다고 해도 저희가 이프림 분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도 없고, 그럴 권리도 없다는 거 잘 알아요. 이프림 분들이 우리 말을 들어야할 의무도 없구요. 그래도 이거 하나는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한율은 잠깐 말을 쉬었다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저희는 이프림 분들이 상처받고 아프길 원하지 않아요.”

멤버들 모두 끄덕끄덕하며 격한 공감을 표했다. 박가람이 ‘옳소!’를 외치고 말을 이었다.

“물론 저희에 대해 악의적인 소문이나 악플이 달리는 거 보면 속상하시겠지만, 그런 건 저희 회사에서 슈슈슛!”

이건우가 엄지를 척하고 들며 가지런한 치아를 보였다.

“고소장 날립니다.”

“그러라고 있는 회사죠.”

“어? 방금 그 발언 조금 이상한데?”

“어?”

이건우와 박가람이 서로 어리둥절 쳐다보았다. 강보배가 카메라를 보며 활짝 웃었다.

“그러니 우리 이프림 분들은 너무 큰 걱정하지 말고, 언제나처럼 즐거운 시간으로 가득 찬 하루하루를 보냈으면 좋겠어요. 이제 또 여름이잖아요?”

“올해는 또 얼마나 더울까.”

“그러게. 아, 숙소에 에어컨 리모컨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

“난 못 봤는데.”

“나도.”

“그럼 에어컨 어떻게 켜?”

“켜지 말라고 숨긴 거 아닐까?”

-으응 끄덕끄덕 감동하다가 갑분고소장에 갑분여름ㅋㅋㅋㅋ

-톢이들 은근슬쩍 주제 바꿨어!!!!!!

-??? : 조아 자연스러웟다!!

-ㅋㅋㅋㅋㅋㅋ아잌ㅋㅋㅋㅠㅠㅠㅠㅠ

이후 이야기 주제는 여름에 먹어야 하는 음식이나 바닷가 이야기로 넘어갔다가, 이건우가 어릴 적 바닷가로 개를 산책시키러 나갔다가 겪은 일을 풀어놓았다.

개가 사람들이 가지고 놀던 비치발리볼 공이 바다로 들어가는 걸 보고 흥분해서 질주. 졸지에 개와 함께 바닷물에 입수하게 되었다고.

-간식 뺏어먹었다고 복수한 거 아냐? ㅋㅋㅋㅋ

-아 맞닼ㅋㅋㅋㅋ 개 간식ㅋㅋㅋㅋㅋ

-건우네개: ㅎ...계획대로다

톡창을 보던 라이언이 이건우에게 물었다.

“견종 뭐였냐고 묻는데, 견종이 머야?”

“breed? 코커스패니얼.”

“와우.”

“그거 설마 3대 지ㄹ….”

“어떤 이프림 분이 이렇게 적어주셨네요. 간식 훔쳐 먹은 거 복수한 거 맞네. 그 견종 머리 좋다던데.”

라방은 시작한지 한 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끝이 났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지만, 그래도 블루액션 팬들과 싸우지 말아달라는 요지는 충분히 전달된 듯했다.

-라방 아직 안 보신 분들, 지금 바로 라방보고 오세요. 물어뜯는 싸움이 중요합니까, 애들이 중요합니까?

-팬이면 애들 속은 썩히지 말자 진짜. 그러는 순간 팬 자격 없는 거다

-정말 얼마나 걱정됐으면 학교 끝나자마자 교복도 안 갈아입고 라방부터 켰겠냐고ㅜㅜ..

어스래빗 팬들이 서로를 달래며 한 발 물러나자, 여기저기에서 벌어지던 고동 소속 보이그룹 팬들과의 설전도 급격히 소강상태를 맞이했다. 이미 누군가의 팬이 아닌, 개인 대 개인의 감정싸움으로 변한 경우를 제외하고선.

누군가는 어스래빗의 라방을 보곤,

-한 마디로 지갑들아 싸우지 마라, 헛소리하는 사람들한텐 우리가 고소장 날릴게<라고 한 거잖아? ㅋㅋㅋㅋ그러면서 지들만 착한 척 위선ㅅㅂ

라고 멋대로 축약해서 비아냥거렸지만, 이 정도는 집요한 안티들의 음해성 발언과 비교하면 애교수준이었다. 그러나 해당 댓글을 본 강보배는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었다.

“대체 왜! 싫다면서 굳이 방송을 찾아보는 걸까?”

“남의 흠을 찾기 위해 쉽게 버릴 정도로, 본인의 시간과 인생이 하잘것없나 보죠. 그나저나… 리모컨 여기 있네요.”

한율은 숙소 싱크대 수납장에서 에어컨 리모컨을 찾았다.

이틀 후, 포털사이트 연예뉴스란에 한 기사가 올라왔다.

[고동 엔터, 김PD 접대의혹 부인 “단순 지인 만남”]

[블랙블러드와 블루액션 소속사인 고동 엔터테인먼트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보컬리스트> 시리즈 김강원PD의 향응접대 의혹을 부인했다.

고동 측은 평소 김PD와 친분이 있던 회사직원의 식사자리가 접대로 와전되었으며, 앞서 공개된 초코톡 내용 또한 두 사람이 장난삼아 주고받은 이야기를 김PD가 제삼자에게 얘기한 것으로, 결코 접대가 아니며 소속 연습생이 방송에서 특혜를 받은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무리 지인 관계라 하더라도 소속 연습생이 출연하는 프로그램 관계자와 만난 것은 신중하지 못한 태도였음을 인정…(중략).]

말로만 주장하면 누가 믿어줘

-와 이걸 이렇게 빠져나가넼ㅋㅋ

-원래 알던 사이엿어욧>ㅂ<)!!! 빼에에에에엑

-내가 마 느그 피디랑 마 같이 밥도 묵꼬 마

-(중요)여기 나오는 직원 여자임

ㄴ한 가정도 파탄 내고 마

-소속 연습생 나간 프로 피디랑 만난 거 잘못한 거 맞긴 한데, 지금 온갖 있는 말 없는 말 지어내는 악플러들은 지들 손가락으로 사람 죽이는 거나 다름없다는 것도 알아줬으면 좋겠다.

-피디 픽도 어느 정도 실력이 있어야 포장이 가능했을 텐데, 그러지 못하니 본선 끄트머리에 슬쩍 올린 거였넼ㅋㅋㅋ

-단순 지인 식사자리였으면 각자 계산 아니면 번갈아서라도 했을 거 아니냐? 카드내역서 인증ㄱㄱㄱ

-그럼 아이돌 ㅅ접대는 뭐임??? 그 말은 어디에서 튀어나온 거???

-ㅈㄴ개뻔뻔ㅋㅋㅋㅋ 피디가 스태프들한테 누구누구 은근히 잘 띄워달라고 말하는 거 들은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라던데ㅋㅋㅋ

-방금 기사 떴는데 뮤닷 김PD 짤랐다함ㅋㅋㅋㅋ

-그럼 ㅂㄹㅇㅅ 리얼리티 예능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ㅠㅠ...

-이럴 줄 알았다. 그렇게 아니라고 떠비한테 덮어씌우려고 ㅈㄹ하더니ㅋㅋ ㅂㄹㅇㅅ 빠는 ㄴ들아 보고 있죠? ‘우리 애들은 진짜 몰랐쪄요8ㅂ8’ 종특 시전할 때 됐죠?^^ #고동_사과해

ㄴ신고로 비공개된 댓글입니다.

ㄴㅇㅅㄹㅂ 팬 아니랄까봐 피해망상 쩌네ㅋㅋㅋ 뭔 피해본 게 있다고 사과하래

ㄴ신고로 비공개된 댓글입니다.

ㄴ진짜 어스래빗 팬이면 애들 라방봤을테고, 이런 댓글을 달 리가 없을 텐데... 팬코질 그만해라

믿음이 전혀 가지 않는 입장이었으나, 그래도 기사 말미에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고소를 운운한 게 먹혀들었는지 비아냥거리던 악플은 서서히 줄었다.

사실 <보컬리스트>가 그렇게 인기가 많았던 프로그램도 아니거니와, ‘쟤네 인기 없는 팀보다 좀 많이 나오는 구나’ 할 정도로 분량이 조금 많았을 뿐이지, 심사위원 매수나 순위 조작 같은 것은 추가증거나 증언이 나오지 않은 까닭이었다. 해당 연습생들이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면 더 물고 늘어졌겠지만.

그럼에도 본선에서 떨어진 참가자들의 팬들은 꾸준히 항의성 댓글을 달고, 해외에 서버를 둔 익명 커뮤니티에서는 고동이 아이돌 성접대를 한 게 사실이며, 그것도 뮤닷의 PD뿐만이 아니라 다방면에 걸쳐 했다는 카더라가 돌았다.

[나 아는 사람이 배우 ㅇㅅㄱ 생파에 갔다가 직접 들었는데….]

* * *

소란스러웠던 6월이 지나고 7월.

포털사이트 연예뉴스란에선 더 이상 김강원PD나 고동의 접대 관련 기사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최근 몇 년 간 방송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납량특집드라마 <객귀>의 첫 방송 리뷰 기사가 소소하게 올라왔다.

[SBC<객귀(客鬼)>, 오싹한 납량특집드라마의 부활!]

“써한 네가 나오는 에피가 이번 주 토요일에 하지? 그때 본방사수 못할 것 같은데…, 어떡하냐?”

어스래빗 멤버 전원이 탑승한 버스는 일본의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일본으로 오기 전, 유호의 도움을 받아 데이터 로밍 서비스를 무사히 신청한 길우성은 인터넷 기사를 천천히 훑었다.

“본방사수를 해야 시청률이 조금이라도 올라갈 텐데.”

“무슨 소리야.”

반대편 자리에 앉은 차남석이 말했다.

“우리가 본방사수한다고 시청률 안 올라.”

“엥? 안 올라요?”

“……?”

한율도 의아한 눈으로 차남석을 보았다. 한율의 핸드폰에는 [블루액션 리얼리티 예능 녹화 재개!]라는 인터넷 기사가 떠있었다.

앞자리에 앉은 유호가 말했다.

“시청률은 따로 시청률 조사에 참여하는 가정집에서 패널이 설치된 기기로 수집되는 거야.”

“하지만 전에 유찬이 형이 본방을 봐야 시청률이 오른다고….”

으응? 멤버들의 시선이 앞쪽에 앉은 조유찬의 뒤통수로 향했다. 안 들렸을 리가 없는데, 조유찬은 미동 없이 전방을 보다가 오동식 팀장을 휙 돌아보았다.

“시청률 높이려면 본방사수해야 한다면서요, 팀장님! 이젠 케이블이나 위성 수신기로 모두 수집된다고…!”

“재작년에 한 농담을 아직도 믿고 있었을 줄은 몰랐네요.”

“…팀장님?!”

조유찬이 충격 받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난 그것도 모르고 애들한테…, 애들한테…….”

박가람이 버스 안에 설치된 카메라를 향해 나긋나긋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래서 사람은 늘 경각심을 가지고, 눈앞의 정보가 올바른 정보인지 늘 확인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어스래빗의 일본 데뷔 싱글앨범 [The Wide World -Japanese Ver.-]은 6월 30일부터 데뷔쇼케이스 예매와 함께 예약판매에 들어갔다. 그리고 데뷔쇼케이스가 열리는 7월 7일 발매예정.

데뷔쇼케이스가 열릴 장소는 스탠딩으로 2000여 명이 수용 가능한 도쿄의 한 라이브하우스. 한국에서 했던 데뷔쇼케이스 인원의 두 배 이상이었으며, 이곳에선 일본의 실시간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생중계될 예정이었다.

“7월 8일은 삿포로에서 쇼케이스, 10일엔 방송 녹화, 14일엔 도쿄에서 미니라이브 겸 하이터치회, 15일엔 오사카에서 쇼케이스….”

데뷔 앨범 프로모션으로 잡힌 기간은 짧고 공식 스케줄은 주말마다 몰린 형태였으나, 이동시간과 그라 촬영을 감안하면 여유로운 일정은 아니었다.

“그런데 신기하다. 우리 딱히 일본에 안 알려진 것 같은데, 쇼케 예매 전부 열리자마자 매진됐다는 게.”

“요즘 일본에서 우리나라 아이돌이 대세잖아. 우리한테 특별히 꽂혀서라기보다는, 전체적으로 우리나라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대부분 예매해주신 게 아닐까?”

“크래 선배님들도 일본 계정으로 열심히 홍보도 해주셨고.”

“으흐.”

“박가람 또 못생기게 웃어.”

“이건우, 당장 버스에서 내려. 나랑 싸우자.”

“팀장님!”

핸드폰으로 일본 관광지에 대해 검색하던 강보배가 손을 들어, 오 팀장에게 물었다.

“우리 전율하는 귀신의 집도 가는 거죠?”

유호가 기겁을 했다.

“안 가!”

“거길 왜 가!”

이건우와 막 투닥거리려던 박가람도 버럭. 강보배가 고개를 기울이면서 스케줄을 적어놓은 메모 앱을 핸드폰 화면에 띄웠다.

“내일 그라 촬영, 이 세계 최장 길이 귀신의 집으로 유명한 놀이공원에서 찍잖아. 그래서 오늘 여기 근처 호텔에 묵는 거고.”

“괜찮아. 들어갈 사람은 너희들이 알아서 정할 거니까.”

유호가 정색한 얼굴로 발언했다.

“전 들어갔다가 바로 심장마비로 사망할 지도 모릅니다.”

“그래, 인간적으로 호 형은 빼주자.”

이건우의 말에 한율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번, 함께 공포영화를 보러 갔었을 때의 일을 떠올리며.

“호 형은 귀신의 집 입장 무조건 제외시키는 게 팀을 위해서도 좋을 것 같아요.”

라이언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강보배에게 물었다.

“기신 집엔 진짜 기신 살아?”

“응, 사람이 분장한 가짜 귀신 사이에 섞여 있대. 재밌을 것 같지 않아?”

“아니? 무서운 곳인데 왜 들어가?”

“짜릿하니까?”

“보배, 변태였어?”

“…?!”

…푸하핫! 귀신의 집이란 소리에 거부반응을 보이던 유호가 한 템포 늦게 웃음을 터뜨렸다. 길우성이 강보배에게 핸드폰을 들이댔다.

“친구의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충격 받은 강보배 씨.”

“…아냐! 정곡 아냐!”

찰칵.

그들이 묵을 곳은 내일 촬영하러 갈 놀이공원과 불과 1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호텔이었다. 멤버들이 묵을 객실은 침대가 4대씩 비치된 넓은 패밀리 스위트룸 두 개.

박가람이 창가 너머 보이는 후지산을 향해 두 손을 쭈욱 뻗으며 괴성을 질렀다.

“으아아, 비야 오지 마라아…!”

“형, 그걸 왜 산에다 대고 빌어요. 하늘에다가, 비야 오지 마라압! 이렇게, 이렇게!”

“두 사람, 원고는 작성하고 노는 겁니까?”

“아니요.”

오늘은 그라에 ‘깡충깡충 영어극장’이 올라가는 날.

본래는 팬들이 읽어주길 원하는 사연이나 이야기로 영상을 촬영하고 난 후 자막 편집 작업을 거쳐 올리지만, 이번엔 특별 라이브로 진행하기로 했다. 팬들도 본인들이 보내는 이야기보단 멤버들의 이야기를 더 듣길 원한다고.

“으으음.”

“…….”

박가람은 가방에서 꺼낸 사과패드를 들고 침대에 엎어졌다. 소파에 앉은 길우성은 작은 수첩에다 펜 끝을 댄 채 멍하니 굳었다.

한율은 비행기에서 미리 작성해 직원에게 넘긴 터라 느긋하게 짐을 풀었다. 비슷하게 미리 원고를 보낸 차남석은 침대에 편히 앉아 귀에 이어폰을 꽂고, 쇼케에서 할 일본어 버전 노래를 흥얼흥얼.

잠시 후, 조유찬이 객실로 찾아왔다.

“얘들아, 나갈 채비해. 연습하러 가자.”

어스래빗이 무대연습을 할 수 있도록 회사에서 연습장소를 빌려 놓았다. 멤버들은 그곳에서 6시까지 연습을 한 후 호텔로 돌아왔다. 씻고 난 후엔 편한 옷차림으로 다시 모여 예약된 식당으로 출발.

“오늘은 누구 얘기가 나올까?”

“제발 멤버는 팔아먹지 말자 얘들아. 어?”

“그 말을 원고 넘기기 전에 했어야죠.”

“멤버를 팔아먹고 재미를 취한다!”

식당 측엔 양해를 구해 테이블에다 카메라를 설치한 상태.

아무리 팬들에게 보여줄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라지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는다는 느낌이 들 법도 한데, 그들은 잘도 떠들었다.

“좋아. 그럼 다음엔 내가 남석이랑 박가람 너, 연습생 때 있었던 일 폭로한다. 그래도 되지?”

“괜찮아요. 그럼 저도 형 얘기를 더 많이 쓸 수 있으니까.”

“서로의 흑역사를 잘 아는 사람이 바로 곁에 있다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그런 의미로.”

한율은 카메라에 대고 웃으면서 말했다.

“보배 형의 흑역사를 잘 아는 분들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그나저나 이거 진짜 맛있네요.”

“아까부터 라이언은 한 마디 말도 없이 먹기만 해.”

“역시 먹방 요정.”

* * *

띠링.

[어스래빗-깡충깡충 영어극장 #09 ☆특별 라이브☆]

-오늘은 라이브로 하나보다

-기대기대ㅎㅎ

-지금 애들 일본에 가 있죠?

“…훌쩍.”

“뭐야?”

이제 겨우 울음이 잦아든 이윤영이 핸드폰을 물끄러미 보자 친구가 물었다.

이윤영과 친구가 사는 좁은 원룸 안. 맥주와 소주, 저렴한 안주가 차려진 동그란 밥상엔 다섯 명이 빼곡하게 둘러앉아 있었다.

이윤영은 훌쩍거리면서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얼굴이 반짝거릴 정도로 잘생긴 소년과 눈매가 조금 날카롭지만 웃는 모습이 순한 소년, 그리고 이윤영과 친구들에게 굉장히 낯익은 곱상한 소년이 화면에 떴다.

[안녕하세요! 특별히 라이브로 진행되는 깡충깡충 영어극장! 오늘 진행을 맡게 된 어스!]

[래빗! 의 보배.]

[남석.]

[한율입니다. 반갑습니다!]

“아아, 어스래빗 라방이구나….”

이윤영은 훌쩍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어설픈 영어와 한국어가 흘러나왔다.

[오늘은 라이브다 보니 한글 자막이 없어요. 대신, 한율이가 발음교정과 함께 동시통역을 맡기로 했습니다.]

[참고로 한율이는 텍사스 사투리를 구사합니다. 그러니 어? 내가 알던 억양, 발음이랑 조금 다른데? 하셔도 너그러운 양해 부탁드립니다.]

세 사람이 카메라에 대고 고개를 숙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미스터리한 게, 한율이는 해외 처음 나간 게 작년인데 텍사스 사투리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함ㅋㅋㅋㅋ

-어스래빗 7대 불가사의 한율이 텍사스 사투맄ㅋㅋㅋㅋ

-어디에서 누구한테 배웠냐 물어봐도 그냥 슥 웃기만 하고ㅎㅎㅎ

-언제 한 번 영어능력자들끼리 영어로 대화 나누는 거 보고 싶닼ㅋㅋ 영국 영어, 워싱턴 영어, 텍사스 영어ㅋㅋㅋㅋ

그때 세 사람 뒤로 어스래빗의 멤버 중 하나가 살금살금 나타났다. 그러곤 브이 자를 그린 손을 흔들곤 문워크로 퇴장.

-우성앜ㅋㅋㅋㅋㅋㅋ

[저기요, 화면에 다 나오거든요?]

“즐거워 보이네….”

“얘네도 연예인인데, 팬들한테 늘 밝은 모습을 보여야 하잖아. 얘네라고 설마 고충이 없겠어?”

“하긴….”

“그래서 윤영아, 어떻게 할 거야? 정말 민선이가 당한 일 알리려고?”

“응….”

이윤영은 어스래빗 라방이 켜진 핸드폰을 상에 놓으며 끄덕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만히 입 다무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내가 다친 게 민선이 잘못도 아니잖아. 그런데 민선이 때문에 내가 다쳐서 촬영이 하루 지연된 거라고…, 그걸로 트집 잡고 민선이 잘랐다니까…….”

“하지만 증거랑 증언 없이 억울하다 말로만 주장하면 누가 믿어줘. …쟤.”

친구가 이윤영의 핸드폰을 가리켰다.

“한율이한테 도움 청하면 어때? 같이 드라마 촬영한 주연배우잖아. 그러니 방송국 놈들이 너희한테 갑질하고 지랄한 거, 뭐라도 본 게 있지 않을까?”

토끼에 집착하는 이유

차남석은 대본이 자신의 얼굴을 가리지 않도록 비스듬히 들었다. 그러곤 작년부터 열심히 영어 동영상 강의를 보면서 익힌 발음으로 대본을 읽었다.

[…그래서 얼룩을 빨리 빼야 했는데, 마침 남자연습생용 세탁기가 돌아가고 있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면 얼룩이 남을 것 같기도 하고 세제랑 물도 아까워서 바로 넣었어요. 그런데….]

차남석의 미간이 점점 찡그려졌다.

[나중에 봤더니 물이 시퍼렇게 변해서 원래 있던 하얀색 티셔츠를….]

“……?”

강보배가 의아한 얼굴로 차남석을 살폈다. 막 통역하던 한율도 차남석을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왜 그래요, 형?”

차남석이 대본을 내려놓으며 중저음의 목소리를 더 낮게 깔았다.

“누구야, 이거.”

눈치 빠른 팬들이 톡창에다 글을 올렸다.

-설마 흰 티 남석이 거였????

-아이고ㅋㅋㅋ

-남석이 또 눈으로 욕한다

차남석이 눈을 부릅뜨고 주변을 휙휙 살폈다.

“그때 내 옷 물들인 범인이 우리 멤버 중에 있었어?!”

“계속 읽어보면 누군지 나오지 않을까?”

차남석은 후우, 깊게 심호흡을 한 뒤 다시 차분하게 대본을 읽었다.

[물들이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으아, 진짜 큰일났다! 이거 교복 셔츠 같은데!’ 하고 빨리 내 진을 빼서 대충 짠 후에 비닐봉투에다 넣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한율이 빠르게 한국어로 통역. 강보배가 새삼 정직한 발음으로 또박또박 다음 대사를 쳤다.

[누구야! 어떤 놈이 세탁기에다 물감 풀었어?!]

[…분노로 가득 찬 남석이의 목소리를 듣고, 저는 다짐했습니다. 지금은 무서우니 나아중에, 3년 정도 지난 후에 자수를 해야겠다고. …그리고 오늘, 생각을 바꿨습니다. 설마하니 이프림 분들이 보는 앞에서 형의 멱살을 잡진 않겠…, 지.]

한율이 재빨리 통역하자 강보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범인이 추려졌네요.”

“네. 호 형, 건우 형, 가람이 형.”

차남석이 고개를 들었다. 모니터 너머의 멤버들을 향해 씩 웃는 차남석의 모습 아래로, 멱살까진 잡지 말라는 웃음 섞인 팬들의 톡이 올라왔다.

“나중에 세 분, 면담 좀 할까요?”

유호, 이건우, 박가람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라방에 나갔다.

“전 아닙니다.”

“저도 아닙니다.”

“…나도 아냐. 진짜 아냐.”

-애들 다 발뺌햌ㅋㅋㅋㅋ

-자수한다며!!

-애들 목소리 다 들리는 거 보니까 다 같이 라방하는 거 보고 있었구나ㅎㅎ

본래 ‘깡충깡충 영어극장’은 5분 정도의 짤막한 콘텐츠였다. 그러나 이번엔 라이브로 진행한데다가, 마지막 즈음엔 차남석이 박가람을 잡으러 뛰쳐나가는 바람에 더 더뎌졌다.

방송에 박가람의 처절한 목소리가 새어나갔다.

“으아아, 이프림 살려줘요…!”

[라이브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

-실시간 시트콤이냐곸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

-다람씨8ㅂ8ㅋㅋㅋㅋㅋ

-얘네 진짜 넘 웃곀ㅋㅋㅋㅋ

-차분한 남석이도 날뛰게 하는 그 이름, 박.다.람☆

-가람아ㅠㅠ... 근데 혼날 만했당ㅇㅇ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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