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지난 번 선배인 크리스탈 래빗으로부터 받은 선물은, 장거리 이동시 유용한 목베개와 수면안대였다. 그리고 의문의 쪽지 8장.
[ㄹㄷ], [gh], [Q], [Hi], [후지], [ㄱㄱ].
그렇게 조합하여 완성된 단어가 가리키는 놀이공원에 도착한 어스래빗.
“…….”
한율은 고개를 바짝 들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롤러코스터 종류를 두 눈 가득 담았다. 강보배가 그런 한율을 보더니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한율이가 이렇게 눈 반짝거리는 거 처음 봐…!”
한율은 바로 이곳 전용 앱을 설치, 각 놀이기구 예상 대기시간을 확인하곤 멤버들을 보챘다.
“선배님들이 일단 여기로 가라 그랬잖아요. 그러니 전부 타보면 그 다음 힌트가 나오지 않을까요? 빨리 가죠.”
“아니,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롤러코스터 종류는…. 한율아? 서한율?”
“나 저렇게 적극적인 써한 처음 봐…. 야, 같이 가!”
어스래빗 멤버들은 두 팀으로 나뉘어 놀이기구를 탔다. 그러나 첫 번째 기구를 타고 난 후 곧바로 박가람이 속을 게워내는 바람에, 그 뒤 박가람은 놀이기구 탑승에서 제외.
어스래빗의 그라 영상제작 프로덕션 스태프들은 멤버들이 놀이기구 하나를 클리어할 때마다, 멤버들의 결정적인 순간이 찍힌 사진 뒷면에다가 힌트를 적어 건네주었다.
“잘생긴 남석 씨도 시속 100키로 넘는 속도에선 어쩔 수 없구만.”
“이 사진은 영원히 봉인하도록 하겠습니다. 모자이크처리해주세요.”
그리고 마지막 힌트가 있는 장소는 모두의 예상대로,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귀신의 집 내부에 있었다.
“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시간이 지나 본래의 컨디션을 되찾은 박가람과, 짜릿한 속도와 바람을 만끽하며 즐긴 한율을 제외한 여섯 명의 멤버들은 귀신의 집 근처 벤치에 널브러졌다.
“그런데 우리 진짜 웃기지 않냐? 그 와중에 목 상하면 안 된다고 차마 비명은 못 지르고 대신 어, 어우! 억.”
“크큭.”
“이것이 바로 어스래빗의 프로 정신!”
길우성이 카메라를 향해 윙크하며 눈 옆에 브이 자를 그렸다.
“그럼 이제 대망의… 저 귀신의 집만 남은 건가요.”
“겉모습부터 완전 무시무시한데….”
“여기 일하는 직원 분들도 진짜 귀신을 자주 목격해서, 아예 사당까지 만들고 제 지낸다고 하더라.”
“벌써 소름이 쫙쫙.”
“어떡할까요? 입장권은 3인 그룹 5장인데.”
그룹 중 한 자리는 VJ의 자리. 유호는 슬그머니 엉덩이를 들어서 벤치 끝자락으로 이동, 멤버들과 거리를 벌리곤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말했다.
“아까 가람이는 놀이기구 탑승에서 거의 빠졌잖아. 그러니 가람이는 들어가는 게 형평성에 맞지 않을까?”
“맞아.”
“옳소!”
“으윽….”
박가람은 입을 일자로 꾹 다문 채 귀신의 집을 한 번 보더니, 한율의 팔에 와락 끌어안았다.
“그럼 나 무조건 한율이랑 한 팀!”
“싫은데요.”
“아잉, 뿌리치지 말….”
“…….”
“써한, 가람이 형한테 눈으로 욕한다.”
“…죄송함다, 함께 가게 해주십쇼, 다신 귀여운 척하지 않겠음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아?”
손에 든 귀신의 집 입장권을 보면서 차남석이 고개를 기울였다.
“저 안에 남은 마지막 힌트는 하나잖아. 그런데 왜 입장권을 이렇게 많이 준 거지?”
“중도 포기할 경우를 대비해서 그런 게 아닐까? 아니면 찾기 어려운 곳에 숨겨져 있다거나?”
“코스 끝자락에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끝? 그럼 달리면 돼! 어떤 사람이 달리면 15분 안에 끝난댔어!”
“달릴 거면 그 사람은 애초에 왜 들어간 거래…?”
“일단 들어갈 사람을 정합시다! 5명! 아니, 가람이 형은 들어가기로 했으니까 4명만!”
강보배가 손을 들었다.
“저는 들어가겠습니다!”
“안 돼, 돌아가. 자진은 받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재미없으니까.”
유호와 박가람을 제외한 6명이 둥글게 모였다. 가위바위보 소리가 세 번 울렸다.
“예쓰!”
“…….”
“아….”
“나는 왜….”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으르르….”
귀신의 집 입장엔 한율과 라이언, 이건우와 길우성이 당첨되었다.
* * *
다음 날인 5일은 하루 종일 데뷔쇼케이스 무대연습, 6일은 데뷔쇼케이스가 진행될 라이브하우스와 가까운 호텔로 옮겼다. 그리고 라이브하우스로 가서 리허설을 진행.
호텔로 돌아온 후, 멤버들은 리허설 촬영 영상을 보면서 미흡한 부분에 대해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눈 뒤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불이 꺼진 객실에서 유호가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정말 일본에서도 데뷔한다는 게 실감이 안 난다….”
조곤조곤 이어지는 나지막한 말소리.
“형 전에 여기 와서 뮤비찍을 때도 그 말 했었어요.”
“어, 그래?”
“아직 감상에 빠지기엔 한참 일러요, 큰형. 나중엔 아시아 투어도 하고, 미국도 가고, 유럽도 가고….”
한율은 유호와 차남석, 길우성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다가 조용히 잠이 들었다.
다음 날 7월 7일 금요일.
도쿄 시내의 한 라이브하우스 외벽에 어스래빗의 대형 포토현수막이 걸렸다. 라이브하우스 안의 스토어에선 오늘 정식 발매된 어스래빗의 일본 데뷔 싱글앨범 [The Wide World -Japanese Ver.-]과 온갖 MD상품이 진열되었다. 그리고 어스래빗 멤버들에게 하고 싶은 질문을 적는 코너도.
어제 리허설을 할 때에도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그들 곁에는 일본 활동 비하인드 영상촬영을 위한 카메라가 붙었다.
“응원봉 디자인이 그대로 티셔츠 안에…!”
“우리 사진이 찍힌 티셔츠가 아닌 게 어디냐….”
“와, 이 머그잔 갖고 싶다. 로고 진짜 귀엽지 않냐? 팀장님! 나 이거 미리 사도 돼요?”
“사도 되기는 한데, 나중에 다 나눠줄 거야.”
“공짜?”
“네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 배너랑 사진 한 장! 아니, 두 장!”
멤버들은 나중에 관객들이 사진을 찍을, 본인들의 전신배너를 중심에 두고 서거나 앉았다. 배너와 똑같은 포즈와 표정을 짓고 한 장, 그리고 완전히 다른 포즈와 표정을 지으며 또 한 장.
사진을 찍을 땐 환하게 웃던 라이언이 자신의 전신배너를 보며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었다.
“얘 입술 너무 빨개.”
“하하.”
최종 리허설에는 MC를 맡아 줄 ‘하루카와 스스무’와 함께 했다. 한국 연예인의 일본 쇼케이스와 팬미팅 전문 MC라고 알려질 정도로 유명한 사람답게, 그는 한국말도 굉장히 유창했다. 여기에 전문 통역사도 따로 붙었다. 멤버들 모두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했다곤 해도, 복잡한 문장을 구사할 땐 힘들 수 있으므로.
데뷔쇼케이스 시작 2시간 전.
라이브하우스 앞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들이 길게 줄을 섰다. 멤버들은 대기실에서 꽃단장을 시작했다. 그리고 인터뷰 대본과 일본어 버전 노래가사를 입속으로 중얼중얼.
데뷔 앨범에 수록된 곡은 하나뿐이었으나, 오늘 데뷔쇼케와 삿포로, 오사카 쇼케에서는 국내 앨범에 수록되었던 전곡을 일본어 버전으로 부를 예정이었다.
“중간에 생각이 잘 안 나면 편하게 한국말로 해도 되니까, 얘들아 너무 부담 갖지 마. 한국에서처럼 호응이 크지 않아도 단순히 문화차이니까 눈치 보지 말고.”
“넵!”
데뷔쇼케이스 시작 5분 전.
멤버들은 대기실을 나가기 전, 한 손으로 서로의 등을 감싸며 둥그렇게 모였다.
유호가 선창했다.
“어스!”
멤버들의 주먹이 중심에 모였다.
“래빗!”
“가즈아!”
암전된 무대. 객석은 어스래빗 응원봉이 내는 푸른색 불빛이 반짝거렸다.
쏴아. 잔잔한 파도소리와 함께 대형LED 전광판에 인트로 영상이 떴다. 영상에서 나오는 불빛은 무대 위에 조각처럼 선 멤버들의 실루엣을 그렸다.
꺄아아! 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일본어 버전을 첫 무대로, 어스래빗은 일본 데뷔쇼케이스를 시작했다.
* * *
데뷔쇼케이스 순서는 한국에서 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첫 곡을 끝낸 후 등장한 MC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는 사이, 무대엔 멤버들이 앉을 의자 8개가 비치되었다. 단체 인사 후엔 앉아서 각자 자기소개. 멤버들이 열심히 외운 일본어를 더듬거리거나 실수를 할 땐 객석에서 귀엽다는 외침이 들렸다.
몇 곡의 무대 후 이어진 질문 코너.
“일본에 와서 제일 처음 먹은 게 뭐예요?”
MC가 거의 정확한 한국어 발음으로 물었다. 박가람이 마이크를 들어서 당당히 대답했다.
“물을 마셨습니다! 워터! 워어러!”
“아니, 이 사람아 그걸 물어본 게 아니잖아…는 완전히 틀린 대답도 아니네요? 그 다음 질문은…, 왜 회사이름부터 소속 가수 팀 이름까지 전부 토끼인 건가요? …흐음, 이거 저도 참 궁금하네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작년에 크리스탈 래빗의 쇼케이스 MC를 맡았었는데, 비슷한 질문을 한 적이 있거든요. 하지만 크래 친구들은 다들 모른다고 했는데… 두 번째 토끼라면 뭔가 알고 있는 게 있지 않을까… 살짝 기대가 되는데, 어떻습니까?”
이건우가 MC를 향해 엄지를 척 들었다.
“한국어 정~말 잘하시네요!”
그때 유호가 손을 들었다.
“저 정답 압니다. 대표님에게 직접 들었어요.”
“엣?!”
“호 형, 대표님이 토끼에 집착하는 이유를 안다고?!”
“역시 리더 토끼! 정답이 뭔가요? 자, 여러분 주목! 토끼의 비밀이 밝혀집니다!”
의미심장하게 말한 MC와 멤버들의 시선이 모두 유호를 향했다. 유호는 그들을 둘러본 후 카메라, 마지막으로 관객을 향해 입을 열었다.
“회사 이름과 크리스탈 래빗, 우리 어스래빗에 토끼가 들어간 이유는, 대표님이 막 독립해서 회사를 차리기 직전에 꾼 꿈 때문입니다.”
“…꿈이요?!”
“네, 엄청나게 드넓고 아름다운 초원에다.”
유호가 한 손을 넓게 펼치며 미소 지었다.
“굉장히 예쁘고, 잘생긴 토끼를 가득 풀어서 키우는 꿈이었다고 합니다.”
공포 드라마의 결말
[어스래빗, 日 데뷔쇼케이스 성료!]
[신인 보이그룹 어스래빗이 일본에서 정식으로 데뷔했다. (사진=앗싸일보)
7월 7일, 일본 데뷔 싱글앨범 [The Wide World -Japanese Ver.-]을 발매한 어스래빗이 도쿄의 라이브하우스에서 데뷔쇼케이스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어스래빗의 데뷔쇼케이스는 6월 30일 예매 시작 10분 만에 전석이 매진되었으며, 8일 삿포로와 15일 오사카에서 열릴 쇼케이스 예매 또한 30분 만에 모두 매진되었다.
이날 데뷔쇼케이스에는 2천 여 명의 관객이 운집했으며, 어스래빗은 ‘Breaching’을 시작으로 국내에서 발매한 데뷔 앨범 수록곡을 모두 일본어 버전으로 선보였다. 이 모습은 일본의 실시간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생중계되었으며, 일본 네티즌들도 어스래빗의 데뷔에 큰 관심을…(중략).
한편, 데뷔쇼케이스의 질문 코너에서는 회사와 소속 그룹 이름에 왜 ‘래빗’이 들어갔는지, 그 이유가 밝혀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 이유가?
-기자님아 왜 기사를 쓰다 마세요
-저기 간 내 친구가 말해줬는데 떠비 대표가 꿈에서
ㄴ....?
ㄴ꿈에서 뭐
ㄴ인터넷 끊기셨어요? 왜 말을 하다말아ㅠㅠ
-쇼케 전석 매진!!!!! 자랑스러운 우리 지구톢이♡♡홧팅♡♡
-한국에서 못 보는 건 아쉽지만.. 외화 많이 벌어와욥8ㅅ8..
데뷔쇼케이스 바로 다음 날 이른 새벽, 어스래빗은 비행기를 타고 삿포로로 날아갔다. 그곳에서도 무사히 쇼케이스를 마친 후엔 지역 잡지 언론사와 인터뷰. 삿포로 시내에 위치한 호텔로 돌아온 후에는 쇼케이스 영상을 보면서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아, 이때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갔어야 했는데.”
“보배 형, 이 안무할 때 더 힘껏 빡! 하면서 시선을 내리깔면 더 멋있을 것 같아.”
“응.”
“이런 말하긴 조심스러운데…, 한율아.”
“네.”
“왠지 한국에서 활동할 때보다 텐션이 조금 떨어진 것 같아. 미소, 미이소오.”
“네.”
“그러고 보니 오늘 얘가 찍은 드라마 방영되는 날 아니야? 여기 TV에 SBC 나오나?”
“노트북이나 폰으로 실시간 TV 보면 되지 않아?”
“해외 IP는 차단돼서 못 봐.”
“헉.”
“VPN으로 IP를 한국으로 우회시키면 된다는데… 이거 무슨 외계언지 아시는 분?”
“그런 건 호 형이 잘 알지 않…, 호 형 어디 갔어?”
차남석이 문 쪽을 가리켰다.
“드라마 얘기 나오자마자 도망.”
“허얼.”
언제나처럼 두루뭉술하게 반성시간은 끝. 멤버들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율도 객실로 돌아가려는데, 조유찬이 손짓했다.
“한율아, 잠깐 매니저 방으로.”
“……?”
매니저들이 묵는 객실로 가자, 노트북과 온갖 일본 잡지가 쌓인 탁자 앞에 앉아있던 오동식 팀장이 맞은편 의자를 가리켰다.
“오늘도 수고했다. 앉아.”
“네.”
“피곤할 테니 바로 물을게. 한율이 너 혹시 배우 이윤영 씨하고 따로 얘기 나눈 적 있어?”
“따로…, 라면 어떤 범위로요?”
툭. 조유찬이 문을 닫더니 가까운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유찬 씨랑 떨어져서 혼자 산책할 때 통화를 했다던가, 만났다던가.”
“전혀요.”
“연락처도 모르지?”
“네. 무슨 일 있어요?”
오 팀장과 조유찬의 시선이 마주쳤다. 오 팀장이 고개를 젓더니 입가를 올렸다.
“아무 것도. 그냥 오늘이 <객귀, 해> 방영일이라 확인 차 물어본 거야. 그럼 이만 방으로 돌아가서 쉬어. 메이크업 꼼꼼하게 지우고 팩하는 거 잊지 말고.”
정말 그것뿐인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
한율은 잠시 의아한 눈으로 오 팀장을 바라봤지만, 오 팀장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생글생글 웃었다.
“…네, 쉬세요.”
* * *
밤 11시 정각, 한국.
어스래빗의 삿포로 쇼케이스 기사를 보던 WB래빗 엔터테인먼트의 좌기훈 대표는 시간에 맞춰 사무실 TV를 켰다. 이제 막 <객귀> 시리즈의 오프닝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무서운 건 잘 못 보지만…, 우리 애가 나오니 꼭 봐야지.’
그러면서 좌 대표는 기획홍보팀으로 전화를 걸었다.
“강 팀장님도 객귀 볼 거죠? 내 방에서 같이 보는 건 어때요?”
드라마에 붙은 광고가 나오는 동안, 기획홍보팀의 강순철 팀장이 부하직원인 김 대리와 함께 노트북을 들고 들어왔다. 세 사람은 TV 맞은편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김 대리가 두 사람에게 물었다.
“공포 드라마니, 불도 끌까요?”
“……?!”
“공포물은 불을 환히 켜서 보는 게 요즘 유행입니다, 김 대리님.”
“아, 네….”
김 대리는 경악하는 좌 대표의 얼굴을 기억에서 황급히 지우면서 노트북으로 <객귀> 프로그램 톡창에 들어갔다. 톡창엔 벌써부터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떠들고 있었다. 김 대리는 매의 눈으로 서한율에 대해 안 좋은 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찾아내 신고하거나, 오늘 에피 정말 기대된다는 글을 올렸다.
길게 체감되는 광고시간이 끝나고, <객귀, 해>가 시작 전 경고문이 떴다. 다소 자극적이거나 충격적인 장면이 포함되어 있으니 노약자나 어린이, 임산부 및 심장이 약한 사람들은 시청을 자제해달라는 문구.
“어…, 어어우억, 뭐야, 저거…!”
불을 환하게 켰음에도,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소리와 함께 불쑥 나타나는 귀신의 모습은 보는 이들을 섬뜩하게 만들었다.
“오우씨, 놀래라….”
김 대리는 옆에서 무섭다고 호들갑떠는 아저씨들을 두고, TV와 노트북을 번갈아 보면서 키보드를 두드렸다.
-바보들아 소리를 꺼! 그러면 안 무섭..긴 ㅅㅂ 전나 무섭다ㅠㅠ
-한율이 보고 싶은데 계속 보기가 힘들다ㅠㅠㅠㅠ엄무아ㅠㅠ
-까득.. 까드득...
-쟤 입 안에서 호두 까먹나 보다
-건치인 듯
-그나저나 한율이 연기 진짜 실감나게 잘한다ㅎ :D
<객귀, 해> 후반부.
주인공 ‘윤진해’가 악몽을 꾸다가 잠에서 깼다. 꿈과 달리 창 아래로 들어와 바닥을 더듬던 손도 없고, 커튼 아래의 끈과 못이 멀쩡한 걸 보고 안도한 것도 잠시. 진해는 한밤중에 슬그머니 집에서 나가는 종조부의 뒤를 쫓는다.
-저걸 왜 또 따라가 야 잠이나 자ㅠㅠㅠㅠㅠ제발류ㅠㅠ
-저 할배가 귀신 죽인 범인아님?? 계속 한쪽 발 쿵쿵 거리는 것도 의심스럽고 낮에 시체 찾아야 한다고 뒤진 것도, 자기가 죽인 애라서 그런 거 아님?? 진해가 귀신봤다니까 시체가 집 근처로 돌아왔단 생각에 또 찾으러 가는 것 가튼데
-내 이름은 고난. 역경이죠
-그럼 대학생은 누가 죽인 거???
-고난이 죽임ㅇㅇ
-고난ㅋㅋㅋㅋ야이앀ㅋㅋㅋㅋㅋ 내 몰입 돌려냌ㅋㅋㅋ
-님의 몰입은 톡창에 들어온 순간 깨진거임
낮에도 갔었던 ‘소형’의 집을 다시 찾은 진해의 종조부는 불이 꺼진 집을 빙 둘러, 소영의 방 창 앞에 섰다. 그의 핸드폰 조명이 창 앞에 움푹 들어간 거대한 발자국을 비췄다.
그 순간 그의 뒤에서 파삭! 크게 들리는 소리.
그가 홱 고개를 돌리자, 멀지 않은 어두컴컴한 수풀 사이로 우두커니 선 새하얀 형태가 흐릿하게 잡혔다.
-짜자잔ヾ(o´∀`o)ノ!!!
-우억
-아놔 놀라서 적으려는데 위에 이모티콘보고 확 깼네;;
-할배 가지 마
-할부지 왜 가요
-왜가왜가왁ㅕ‧
종조부가 절뚝거리면서 홀린 듯이 그곳을 향해 다가갔다. 퍼석! 점점 다급하게 걷던 그의 상체가 돌연 앞으로 꺾였다. 우두커니 섰던 새하얀 형체는 사라지고, 그 자리엔 대신 미친 듯이 맨 손으로 땅을 파는 노인의 모습이 나왔다.
“…….”
좌기훈 대표와 강순철 팀장이 심각한 얼굴로 TV에 집중하고, 톡창도 조용해지던 그때.
화면 속 종조부가 덜컥 움직임을 멈췄다.
…달칵, 달그락. 흙으로 더러워진 노인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며, 수풀이 자란 안쪽 땅에선 보기 힘든 동글동글한 조약돌을 옆으로 치운다.
[소형아….]
소리 없이 전환되는 장면.
“…으어억!”
좌 대표가 기겁을 하면서 소파 위로 두 다리를 올렸다.
화면에는 목이 기이하게 꺾인 소형의 얼굴이 나왔다. 부릅뜬 두 눈가에는 탁한 눈물 자국이, 벌려진 입에는 조약돌과 깨진 이가 뒤섞여 있었다.
-아ㅠㅠ....
-까득까득거리던 게 입 안의 돌 때문이었어???
-ㅅㅂ소름ㅠㅠ...
-호두가 아니었네
-왜 눈에서 검은 게 흘러내리나 했더니.... 생매장당하면서 흙이랑 눈물이 뒤섞여서 그랬던 거였네...
-할부지 표정 보니까 범인 아님
-하소연하고 싶어서 입을 움직여도 입에 가득 찬 돌 때문에 말을 못한 거였네 대신 까득까득
-할배 아니면 누가 죽인 거야 대체
-??? 근데 쥔공이 초상집에서 만났을 땐 멀쩡히 말하지 않았음? 엄마 찾으러 왔냐고 물었잖아
-그땐 엄마한테 씌었을 때라 말할 수 있었나봐요
-ㅠㅠ....
-할배가 자길 못 보니까 진해한테 붙었던 거였네..ㅋ
[소형아, 기다려라. 아저씨가 금방 꺼내주마…. 엄마 보러 가야지, 소형아…. 엄마가 집에서 기다린…….]
[—퍽!]
-깜짝야ㅑ
-십버머여
-저새키머야!!!!
[까득, 까드득.]
화면에 나타난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남자가 고개를 옆으로 뚝뚝 기울였다. 쓰러진 종조부가 괴로운 신음을 내뱉으며 앞으로 손을 뻗는다.
-저거 죽은 대학생 친구아님??
-대학생 친구네
-저샠희 손!!!!!
-손!!!!!!!!!!!!!
-저놈또 할배 친다!!
-쥔공 어디갓냐 근데
-저놈도 뭐에 씌인 것 같은데
사람들이 흥분했는지 톡창의 톡이 아주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그리고 화면 속 남자가 까득거리며 다시 한 번 팔을 휘두르는 그 순간,
[할아버지…!]
윤진해가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