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화 (61/427)

* * *

KBC는 늘 음악방송이 열리는 공개홀만 들어갔던 터라 신관 안에 들어간 건 처음이었다. 대부분의 TV프로그램 녹화는 이곳이 아닌 별관이나 공개홀에서 진행되어서 그런지, 신관 내부는 평범한 회사처럼 느껴졌다.

“안녕하십니까.”

예전에 크리스탈 래빗 스케줄 문제로 와 본 적이 있다는 조유찬은 헤매는 일 없이, 예능국에서 <목톡톡> 사무실을 바로 찾았다.

제작진들과 한차례 인사를 나눈 후, 그들은 빈 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미팅을 진행했다.

“MC분들만 믿고 잘 따라가면 큰 문제는 없을 거예요. 그런데 혹시 개인기 같은 거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잘 못하는 그런 거. 5초 안에 눈물 흘리기 같은 것도 괜찮고, 아니면… 무술을 배웠다거나.”

이런 자잘한 것에도 솔직히 대답해야 하나.

그러나 이런 토크쇼 종류의 제작진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출연 게스트의 과거 행적을 싸그리 조사한다고 들었다.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장에 잠깐 다닌 적은 있어요.”

“오! 어떤 거? 태권도? 몇 년?”

“특공무술 6년이요.”

초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수영과 함께 배웠었다.

처음엔 가벼이 호신술이나 익힐까 하는 생각에 시작했으나, 막상 배우기 시작하니 이 또한 조금씩 성취감이 느껴지고 운동도 제법 되는 것 같아 6년씩이나 꼬박.

마법사인 자신에게 큰 쓸모는 있을 것 같진 않지만 말이다.

조유찬이 놀란 눈으로 한율을 바라보았다.

“특공무술 배웠었다고? 왜 말 안했어?”

“그만둔 지 오래돼서 안 한 건데. 해야 되는 거였어요?”

“매니저 분도 모르셨구나?”

“얘가 좀 무뚝뚝해요. 본인 얘기도 잘 안 하고.”

“그래요? 무대나 CF 찍은 거 보면 굉장히 애교 많고 다정다감할 것 같은데.”

한율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똑 부러지네. 하긴, 요즘 친구들은 솔직한 게 대세니까.”

“그럼 눈물 연기는 몇 초 안에 가능해요? 한 번 보여줄 수 있어요?”

토크쇼 사전미팅은 정말 사소한 부분까지 꼬치꼬치 캐묻고 대답하는 시간이나 다름없었다. 제작진은 늦어도 15일까진 대본을 보내겠다고 했고, 한율은 회의실로 들어온 지 2시간이 지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회의실을 나온 후에도 제작진들과 꾸벅꾸벅 인사.

그때였다.

“어?!”

복도 끝 모퉁이를 돌아 등장한 누군가가 놀란 소리를 내며 걸음을 멈췄다. 한율을 포함한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을 향했다.

정장을 반듯하게 걸친 중년남성이 반갑게 웃으면서 한 손을 번쩍 들었다.

“한—…!”

“……!”

그의 입에서 한 글자가 나온 순간, 한율도 단번에 그를 알아보았다. 언젠가 집에 찾아와 ‘이 녀석 인물 봐라? 나중에 연예인하면 딱이겠는데?’ 하면서 촌스러운 패딩을 선물해주었던— 부친의 지인이자, 현 KBC 예능국장.

한율은 재빨리 고개를 짧게 흔들었다. 괜히 부친의 직업이 드러났다간, 주변에서 온갖 말을 만들어내 귀찮게 굴 게 뻔하므로.

다행히 그는 눈치가 빠른지, 이어서 내뱉으려던 ‘율’ 자를 꿀떡 삼키며 몸을 빙글 돌렸다.

“…하안 많으은~! 이 세에사앙, 야아속하안~ 니임아아~.”

“……?”

난데없이 나타나 노래를 한 곡조 뽑으며 퇴장하는 그의 모습에, <목톡톡> 제작진들은 서로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다행히 한율의 사인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듯했다.

“국장님 왜 저러시지…?”

이 미션은 6월 24일 모 방송국에서 시작되어

7월 14일에 잡힌 미니라이브&하이터치회는 하루에 두 번, 1부와 2부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1부는 오후 3시, 2부는 오후 6시. 미니라이브에서 부를 곡은 을 포함해 세 곡.

장소가 대형쇼핑몰 내부의 중앙광장이다 보니 라이브를 보는 건 제한이 없다. 하지만 무대 근처에 마련된 지정관람구역에 자리를 잡거나 멤버들과 하이터치를 하기 위해선, 따로 앨범에 들어있던 하이터치회 응모권에 당첨, 현장에서 1부 혹은 2부 참가 티켓으로 교환받아야 가능한 방식이었다.

그리고 현장에서도 앨범 및 MD상품을 판매할 예정.

쇼핑몰은 이런 공연 종류의 이벤트가 종종 열리는 곳이다 보니, 관리사무실 옆에는 널찍한 대기실도 마련되어 있었다.

하이터치회 시작 2시간 전. 아직 편한 차림의 어스래빗 멤버들 앞에는 조금 전 점심으로 먹은 도시락 케이스나 음료가 널려 있었다.

박가람이 안내 문구를 읽었다.

“당첨자는 당첨된 응모권 한 장당 티켓 한 장과 교환 가능. 티켓 두 장 소유 시 하이터치 두 번 가능. 하이터치회 참가자들은 모두 손과 소지품을 검사하며, 반지와 같은 액세서리는 착용불가. 멤버들과는 하이터치만 가능하며 2초 이상 접촉, 손 외의 다른 신체접촉은 절대금지입니다…. 선물과 팬레터는 멤버들에게 직접 전달할 수 없으니, 현장에 준비된 선물박스에 미리 넣어주세요. 경우에 따라 가드가 내용물을 개봉하여 검사할 수 있으며, 음식 류는 즉시 폐기처분되므로 넣어둬라, 네 품에.”

“선생님, 잘 되던 번역기가 고장 난 것 같아요.”

박가람은 꿋꿋이 그 다음 줄을 읽었다.

“현장질서가 무너지면 안전을 위해 행사는 중단됩니다.”

“가람이 형 일본어 안 까먹었네.”

“1부 티켓 소지자는 2부 참가 불가능!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퇴장할 때 티켓은 무조건 반환! 사진과 동영상 촬영 절대금지!”

“팬 분들도 신경 써야 할 게 많구나….”

“와, 그런데 우리 오늘 이벤이랑 내일 오사카 쇼케 끝나면 일본 프로모션 끝이야.”

멤버들은 저마다 감개무량한 표정을 짓거나 짧게 감탄했다.

“벌써?”

“이번 활동 끝나면 우리 뭐해? 학교도 곧 방학인데.”

“각자 개인 스케줄 뛰어야지. 한율이나 건우, 남석이처럼.”

“두 사람은 그렇다 쳐도… 건우 형?”

멤버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건우를 향했다. 사용한 티슈를 쪽지처럼 접어서 정리하던 이건우가 씨익 웃었다.

“낚시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나가기로 했다.”

“낚시?!”

“건우가 어릴 때 어린이 민물낚시대회 나가서 1등 했었대.”

“후후.”

박가람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충격 받은 표정을 지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는 있다더니…!”

“다물어, 프레리독.”

“그런데 우리 프로모션 이벤, 전부 회사가 기획한 거죠? 이곳 회사는 우리 회사 기획대로 각종 이벤 장소 섭외준비나 보조, 진행대행만 하고?”

차남석의 물음에 오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럼 여러모로 번거롭지 않아요? 우리야 안심돼서 좋기는 한데….”

오 팀장이 씩 웃었다. 그러곤 멤버들을 둘러보면서 일렀다.

“다 먹었으면 깨끗하게 정리합시다. 스태프들 오기 전에.”

“네엡.”

차남석이 안심돼서 좋다고 말한 건, 예전에 한 보이그룹이 당한 일 때문이었다. 그들의 일본 활동 전반을 맡은 회사가 온갖 해괴한 행사를 잡아 쉴 새 없이 뛰게 한 것도 모자라, 팬미팅 땐 멤버들이 성적 수치심을 받을 수 있는 스킨십 요구—를 빙자한 성추행을 당하도록 놔두었다고 했다. 심지어 어떤 멤버는 팬—이라 부르기도 싫은 사람에게 뺨을 맞기도 했다고.

쓰레기를 모두 치웠을 때 즈음, 헤어메이크업 스태프들과 스타일리스트가 우르르 들어왔다. 그들을 마중 나갔던 조유찬이 함께 들어오며 말했다.

“현장집합 시간까지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 밖에 사람들 벌써 줄서있어.”

콘서트 전용 홀이나 음방 스테이지와는 전혀 다른 장소. 여기에 처음 해보는 하이터치회.

마침내 이벤트 시간이 다가오자, 멤버들은 나가기 전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었다.

“하이터치는 팬미팅이랑은 다르게 한 사람당 굉장히 빨리 지나갈 거야. 눈 마주치고, 환하게 웃으면서 빠르게 대답하는 거 잊지 말고. 팬들도 일일이 통역으로 전달되지 않을 건 잘 알지만, 그래도 태도가 소홀한 건 곧바로 알아차리니까 열심히!”

그 외의 여러 가지 조언을 들은 후, 매니저와 경호원들, 스태프들에게 둘러싸인 채 대기실을 나섰다.

“하뉼, 산 갔어?”

미니라이브가 끝나고 하이터치 시간. 연예인과의 하이터치회 이벤트가 많은 일본이다 보니, 일본 팬들은 익숙하게 하이터치를 하고선 다음 동선으로 물 흐르듯 움직였다.

“재팬 산.”

옆에서 길우성과 짝! 두 손바닥을 부딪친 다음 사람이 한율에게 오면서 어눌한 한국어로 물었다. 한율의 취미가 등산이란 걸 알고 온 팬인 듯했다.

한율은 미소를 머금은 채 두 손바닥을 올렸다. 그리고 일본어로 대답했다.

[아직 못 갔어요.]

짝!

“한율아, 키 컸어?!”

몇 사람과 손바닥을 마주쳤을까. 돌연 높은 톤의 한국말이 들렸다. 묻고 싶은 마음이 너무 앞섰는지 삑사리까지 내며.

목소리 주인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키 좀 큰 것 같아서….”

한율은 웃으면서 손을 맞부딪쳤다.

“정말 듣고 싶은 말이었어요. 감사합니다!”

짝!

하이터치를 하는 사람들 중에는 퇴장 후에 다시 줄을 서서 오는 사람도 적잖이 있었다. 대체 앨범을 몇 장이나 구입해서 얼마나 당첨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멤버들은 동일 참가자를 알은체하며 반겼다.

“하뉼, 남알프스 기타다케 츄천!”

[추천 감사합니다!]

짝!

미니라이브를 겸한 하이터치회는 1부에이어 2부도 큰 문제없이 무사히 끝났다.

밤 8시. 멤버들은 준비된 버스를 타고 곧장 공항으로 향했다. 버스에는 오늘 아침 호텔을 나오기 전 미리 싼 짐이 모두 실려 있었다.

“배고파….”

금방이라도 좌석 아래로 흘러내릴 것 같은 포즈로 라이언이 중얼거렸다. 유호가 기다렸다는 듯 가방에서 커다란 쿠키를 꺼냈다.

“쿠키라도 먹을래?”

덥석.

“고마워, 리더.”

그걸 본 이건우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무슨 쿠키가 사람 얼굴만 해…?”

“모르겠어. 아침에 산책 갔다가 들른 빵집에서 호기심에 사긴 했는데. …맛있어?”

“응.”

“쿠키가 아니라 빵인 거 아냐?”

“아냐. 포장지에도 분명히 쿠키라고 적혀 있어.”

버스 앞자리에 앉은 조유찬이 어스래빗 멤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얘들아, 저녁은 공항에서 먹을 거니까 조금만 더 참아.”

비행기를 타고 오사카에 도착, 호텔에 체크인 했을 땐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이었다. 각자 객실로 들어간 멤버들은 흐느적거리면서 메이크업을 지우고, 목욕까지 한 후 이불속으로 꾸무럭꾸무럭 들어갔다.

치이익. 차남석은 스포츠 테이프로 왼쪽 발목을 능숙하게 테이핑하더니, 에어파스까지 뿌렸다.

이불로 몸을 돌돌 감아 얼굴만 쏙 내민 길우성이 중얼거렸다.

“내일까지 무사히 버팁시다… 가 아니라!”

“……?”

길우성이 애벌레처럼 꿈틀거리며 일어났다.

“우리 오늘 그라에 에피 올라오는 날이잖아. 뱅기 시간이랑 겹쳐서 이따 봐야지 했었는데…!”

“내일 쇼케 끝나고 느긋하게 보는 게 컨디션을 위해서 좋지 않겠냐?”

차남석의 말에 길우성이 바로 수긍했다.

“음! 굳나잇!”

풀썩.

* * *

1, 2주에 한 편, 금요일마다 올라오는 어스래빗의 리얼리티 에피소드 영상콘텐츠. 7월 14일 밤 9시에도 한 편이 업로드 되었다.

오프닝 영상이 나온 후, 곧바로 새카만 바탕에 하얀 글씨로 뜬 이번 에피 제목은,

[EP.10 - 이 미션은 6월 24일 모 방송국에서 시작되어….]

화면이 밝아졌다. 무대의상을 입고 헤어메이크업까지 마친 어스래빗 멤버들의 모습이 떴다. 화면 아래에 뜬 자막은 ‘2017. 06. 24. KBC 상반기결산특집 <뮤직뮤직> 대기실’

박가람이 감개무량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 회사 선배님들이랑 같이 음방뛰는 거 오늘이 처음 아냐?]

[같은 소속산데 이렇게 앨범을 챙겨들고 대기실에 인사를 하러 가다니!]

-보배 발연기한다.

-ㅋㅋㅋㅋ

-우리 톢이들, 이때도 단독 대기실 썼네요? 뮤뮤는 신인한테 단독 잘 안 준다고 들은 것 같은데ㅎㅎ

-피디도 알아보는 대세톢이♡

어스래빗 멤버들이 바삐 움직였다. 편집효과로 순식간에 도착한 곳은 크리스탈 래빗의 대기실.

-어색함과 자연스러움과 쭈뼛거림이 공존하는 선후배 간의 인사

-라나랑 미랑이 진짜 이뿌다..

-얘들아 맘 흔들리면 안 돼..8ㅅ8...조마조마

-크래 애들 진심 다 이쁨..ㅠㅠ

-우리 애들도 다 얼굴 작은데 얘넨 더 작네ㅜㅜ

잠시 후, 본방을 마치고 돌아온 어스래빗 멤버들이 크래가 준 일본 데뷔 축하선물을 개봉했다. 선물은 멤버마다 디자인이 다른 목베개와 수면안대였다. 그리고 종이가방 바닥에 한 장씩 놓인 의문의 메시지카드.

[이게 뭐야…?]

[다들 가져와봐. 맞춰봐야 뭔지 알 것 같아.]

[gh, 리을디귿, 후지, 기윽기윽은 고고 같고… Q, Hi?]

[일단 고고는 뒤로 빼는 게 맞는 것 같아.]

[…아! 나 여기 어딘지 알 것 같아!]

한참동안 의문의 메시지카드를 맞춰보던 멤버들의 시선이 유호를 향했다.

[이렇게 후지부터 시작해서….]

[여기가 어딘데?]

[일본에 있는 놀이동산.]

[와, 그럼 우리 놀이동산 가는 거야?]

기대감으로 가득 찬 멤버들의 얼굴이 화면에 잡혔다. 영상을 보던 팬들도 흐뭇하게 웃으며 좋아하던 그때, 갑자기 화면에 노이즈가 섞였다.

[치직, 치직….]

자막.

[그러나 잠시 후]

영상이 적외선모드로 촬영했을 때 나오는 특유의 녹색으로 물들었다. ‘으아아아! 한율아, 한율아, 한율아, 서한유울!’ 무언가에 기겁, 애타게 서한율을 부르며 달리는 박가람과, 모자이크 처리된 무언가를 보고 놀라 삐— 처리되는 영어 욕을 뱉는 라이언의 모습.

-설마

-전율의 귀신의 집이다!!!

-아이곸ㅋㅋㅋ

-갔구나... 저기에.. 갔구나....;ㅅ;)/ (애도)

-후지땡랜드 나왔을 때부터 좀 싸하더라니

-호 무서운 거 진짜 싫어하는데...8ㅂ8..... 극장에서도 무서운 영화보고 팝콘 뿌리고 콜라 쏟고 난리 났었는데 괜찮았을까...ㅠㅠ

다시 컬러풀하게 돌아온 화면.

6월 27일, 뮤닷의 <락뮤닷>에서 더와월 무대를 상큼하게 선보이는 어스래빗의 모습이 떴다.

[앞으로 닥칠 일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멋진 무대를 선보이는 어스래빗 멤버들]

영상은 이내 7월 3일, 멤버들이 일본으로 출국하는 장면으로 이어졌다. 일본에 도착해서 버스에서 미션 장소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도.

[팀장님! 우리 전율하는 귀신의 집도 가는 거죠?]

[안 가!]

[거길 왜 가!]

-보배 신나게 말하기 무섭게 호 바로 거부반응ㅋㅋㅋㅋ

-역시 공포영화 감상이 취미인 범인ㅋㅋㅋㅋ

-가람이도 무서운 거 싫어하나보다

-울톢다람쥐♡

-인간적으로 호 형은 빼주자ㅋㅋㅋ

-한율이까지 호는 안 된다 하는 거 보니까 애들 사이에서도 호 무서운 거 싫어하는 거 공식인듯 하네요ㅋㅋ

-라욘 보배 변태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아냐 정곡 아냐!!!! <<<아보배기요미양ㅠㅠ

-나도 보배랑 같이 변태할래..///♡

미션 힌트를 얻기 위해 놀이공원에 간 어스래빗 멤버들이 놀이기구를 탈 때에도 팬들은 쉴 새 없이 톡으로 감상을 쏟아냈다. 특히나 그곳에서 제일 무섭다고 소문난 롤러코스터를 앞에 두고 한율이 멤버들을 재촉할 땐 톡창이 폭주했다.

-한율아??? 내가 아는 차분한 한율이 맞니??? ㅋㅋㅋ

-한율이 이렇게 좋아하는 거 첨 봐

-멤버들은 이런 한율이가 낯섭니다. <자막ㅋㅋㅋㅋ

[한창 놀이기구 좋아하는 열여덟 살 서한율]

[특징: 숨겨진 스피드광(?)]

제작진은 어스래빗 멤버들이 놀이기구를 하나씩 클리어할 때마다 순간 찍힌 사진 뒷면에다가 미션 힌트를 적어서 내밀었다.

[07], [07], [Fri], [한율], [우성].

[이거 아무래도 우리 일본 데뷔쇼케이스 날짜 같은데? 그런데 한율이랑 우성이는 뭐지…?]

[내가 볼 땐 시간이야. 한율이랑 우성이가 열여덟 살이니까 18시. 저녁 6시.]

[그럼 마지막 힌트는 장소겠네! …그런데 우리 이미 어디에서 할 건지 알지 않아?]

[뭔가가 더 있나 보다. 마지막 힌트까지 얻어야 확실해질 것 같은데… 우리 아직 여기에서 안 가본 곳 있지?]

-드디어

어스래빗 멤버들이 귀신의 집 앞에 도착했다.

-와 진짜로 호는 빼줬어ㅠㅠ 고마웡애들아

-가람이 왤케 한율이한테 집착햌ㅋㅋㅋ 한율이가 담이 세서 그런가?

-한율이 눈으로 욕하는 거 남석이랑 빼박ㅋㅋㅋㅋㅋ

-항상 붙어 다니니 서로 닮아가는구나

이런 저런 논의와 가위바위보. 귀신의 집 입장 멤버는 이건우와 라이언, 서한율과 길우성이었다. 여기에 박가람까지.

-한 명씩 들어가는 거야8ㅂ8?!

-히이이익

입장은 안전상의 문제와 스포 방지를 위해, 앞 팀이 들어가 일정시간이 지나서야 다음 팀 입장이 가능했다. 순서를 정하는 것에도 잠시 시간이 걸렸는데, 박가람이 자신은 꼭 서한율 뒤 순서여야 한다고 빡빡 우긴 까닭이었다.

[내부가 어두우니 힌트 모양에 대해 알려드릴게요. 힌트는 녹색 형광색으로 두 줄이 그어진 엽서크기의 봉투입니다.]

가장 첫 주자로 이건우가 나섰다.

[건우 형이 성공하면, 아직 안 들어간 팀은 자연스럽게 들어갈 필요가 없어지는 거네요?]

[형 힌트 찾아놓고 숨기지 마요, 진짜.]

[만약에 형 성공하면, 앞으로 한 번은 못생겼다 놀려도 봐줄게.]

-그러나 우리는 이미 마지막 순서인 라이언까지 들어가서 욕하는 영상을 봤죠...?

-ㅋㅋㅋㅋㅋㅋ

-건우 평소에 다람이 못생겼다 놀리나부다

-내사랑못난다람이

-다람이가 얼마나 이쁘고 깜찍하고 잘생겼는데!!!

이건우는 자못 의연한 모습으로 귀신의 집으로 향했다. 멤버들이 응원의 함성을 질렀다.

[이건우 멋지다!]

[형! 꼭 살아 돌아와야 돼!]

[믿는다, 둘째야!]

[간다!]

그러나 멋지게 불끈 쥔 주먹을 올리며 화답한 이건우는, 막상 VJ와 단 둘이 귀신의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주저앉았다.

[아, 벌써부터 너무 무서워….]

온갖 욕을 부를 정도로 무섭다는 뜻입니다

[그 부적 좀 몰래 사둘걸….]

건우의 혼잣말이 끝나기 무섭게 영상하단에 설명자막이 떴다.

[※입장하기 전, 앞에서 파는 부적을 목에 걸고 들어가면 귀신들의 힘이 약해진다고 합니다!]

-건우얔ㅋㅋㅋㅋㅋ

-애들 앞에서는 쎈 척하더니ㅋㅋㅋ아귀여웤ㅋㅋㅋ

-그런데 진짜 무서워하는 것 같네요.. 우리한텐 그냥 녹색으로 보이지만 실제론 진짜 어둡다고 하던데..8ㅅ8...

-(번역)부적사면 귀신 분장 직원들 안 놀라게 합니다. 따라오지 않습니다. 아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건우야 걍 나가자ㅠㅠ

이건우는 벌써 지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호흡을 한 후, 본인이 든 짐벌의 카메라와 VJ의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들어오자마자 서늘한 소독약 냄새랑… 그, 과학실 특유의 냄새 있잖아요? 좀 기분 나쁜 약품 냄새. 그 냄새가 뭔가 비릿한 거랑 섞인 것 같은 냄새라서 더 신경이 곤두서는 것 같아요. 그럼 가보겠….]

그때였다. 두 걸음 옮기기 무섭게 무언가가 펄럭거리더니 카메라 앞을 휙 스쳤다. 그리고 비명과 함께 달음박질로 인한 흔들림의 시작.

[흐아악…!]

-건우야8ㅂ8!!!!!!!!!!!

으스스한 건물 외관으로 장면이 전환되며, 이건우의 비명소리가 빨갛고 파란색 자막으로 표기되었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어요!]

그와는 대조적으로 이건우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멤버들의 평화로운 모습. 멤버들은 두 번째 주자인 길우성에게 겁을 주고 있었다.

[저 안에서 유일하게 귀신 분장한 사람이 없는 구간이 계단인데, 누가 있으면 그건 진짜 귀신이니까 무조건 도망치래.]

[왜, 쉬고 있는 다른 사람일 수도 있잖아.]

[너 바로 앞에 들어간 사람이 건우 형인데? 건우 형이 아니면…?]

[다리에 쥐가 나서 30분 넘게 쉬고 있는 사람?]

[그런데 우리, 힌트 찾은 사람한테는 뭐 특별한 상품 같은 거 있어야하지 않을까?]

다시 이건우의 상황으로 장면전환.

이건우는 괴성을 지르며 쫓아오는 귀신에게 일본어로 ‘죄송합니다!’를 연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처음 놀랐을 때보단 많이 진정되어, 귀신이 그만 쫓아오자 소름 돋는 소품 사이를 들여다보았다.

[형광색 두 줄…, 형광색 두 줄….]

이건우가 입장하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이번엔 길우성이 귀신의 집 정문 앞에 섰다. 곱상한 소년들이 모여 무언가를 촬영해서 그런지, 그들 근처엔 어느새 구경꾼이 조금씩 모이고 있었다.

길우성이 하늘을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이프림! 나에게 힘을 줘!]

-히이이이임!!!!

-우성이 홧팅!!

-막냉이는 과연

그러곤 멤버들을 향해 손구호를 했다.

[어스!]

멤버들이 답했다.

[래빗!]

길우성이 호기롭게 들어갔다.

[…으아아악!]

그리고 3초도 안 되어 다시 뛰쳐나왔다.

[이런 X친, XX! 겁나 무서워!]

두 번의 삐—, 삐—, 묵음 처리.

-우성이 진심 놀랐닼ㅋㅋㅋㅋㅋ

-대한민국 남고딩의 거짓1도 없는 현실 리액션

-촬영 구경하는 분들도 웃음 터졌엌ㅋㅋㅋㅋㅋㅋ

잠시 난리치다가 다시 귀신의 집으로 들어간 길우성은 다행히 이번엔 바로 뛰쳐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멤버들은 직감했다. 길우성은 무조건 중도포기해서 나오겠구나.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이번엔 서한율의 차례.

[한율아, 너만 믿는다.]

[호 형, 건우 형에 대한 믿음은?]

유호가 처연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건우가 들어간 지 벌써 30분이나 지났어. 그러니 이미….]

-호야 왜 멀쩡한 애를 멀리 보내버리려고햌ㅋㅋㅋㅋ

-건우 지금 열심히 힌트 찾고 있어ㅠㅠ

영상 중간 중간엔 급기야 귀신을 향해 ‘덤벼!’를 한국어로 외치는 이건우의 모습이 나왔다. 길우성은 귀신인지 마네킹인지 모를 것을 보고 움찔움찔, 게걸음으로 걷다가 안전 구역, 계단이 나오자 카메라를 향해 외쳤다.

[저는 건우 형을 믿습니다! 건우 형이 잘 살펴봤을 거라 믿어요! 그러니 힌트는, 제가 지나친 곳이 아닌, 앞에 있을 겁니다!]

-야잌ㅋㅋㅋㅋ

-막내야??? ㅋㅋㅋㅋㅋ

-한율이 출격한다.

-솔직히 한율이 반응 기대돼요

-객귀 주인공!!!

-객귀의 진해랑은 다르게 애가 차분해서, 실제론 무서운 거 봤을 때 어떤 반응 보일지 진짜 궁금..ㅇㅂㅇ

-드라마에서 무서워하는 연기는 봤는데, 여기에서는 또 놀라거나 무서워하는 모습이 상상이 잘 가지 않는 이건 무엇

입구로 향하는 서한율을 보며 멤버들도 서로를 향해 말했다.

[나 한율이가 진짜 놀라거나 무서워하는 모습 잘 상상이 안 가.]

[나도.]

[난 한번 본 적 있어. 한율이가 놀라서 짧게 비명 지르는 거.]

[언제?]

들어가기 전, 서한율이 돌아보자 멤버들은 잘 갔다 오라고 손을 흔들었다. 서한율도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면서 화답했다.

[갔다 올게요~.]

서한율, 귀신의 집 입성.

들어가자마자 서한율은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나 이건우와 길우성과는 달리, 두려움이 아닌 불쾌감의 표현이었다.

[장소를 병원 모티브로 꾸며서 그런지, 약 냄새가 지독하네요.]

서한율이 걸음을 옮겼다. 이건우가 처음 비명을 지른 곳에서 이번에도 무언가가 펄럭거리며 나타났다.

[…….]

-ㅇㅂㅇ...

-한율아...?

-귀신이 머쓱해한다...

-귀신한테 지나갈게요, 수고하세요 정중히 일본어로 말하면서 그냥 가는 우리 톢이..

-아니, 귀신 지금 비명 지르면서 쫓아갈까 0.3초 정도 고민한 것 같은뎈ㅋㅋㅋㅋ

-가람이가 왜 그렇게 한율이랑 같이 가려고 했는지 그 이유를 알겠네

서한율의 반응이 너무 무덤덤해서 그런지, 영상을 촬영할 땐 되도록 말을 걸지 않던 VJ가 슬며시 물었다.

[안 무서워요…?]

서한율은 진짜 피가 튄 것처럼 보이는 공간 안에 매달린 사람의 모형을 가리키며 웃었다.

[진짜가 아니잖아요. 예고 없이 큰소리를 내면서 불쑥 튀어나오면 모를까.]

-아냐... 그게 아냐... 저게 다 진짜가 아니란 건 다른 사람들도 다 알아...8ㅂ8..

-한율이 분명 이과형

-왠지 진짜래도 얜 잘 안 놀랄 것 같다

-우리 막내톢이들 진짜 성격 정반대넼ㅋㅋㅋ

-이과생입니다. 부정하겠습니다.

-평화로운 브금따라 보는 저도 차분해지는군요

실제로 서한율이 귀신과 맞닥뜨리는 영상에는 라랄라나난나나뚜둥뚜링 동요 같은 조금 발랄한 BGM이 흘러나왔다.

서한율의 상황처럼 평화로운 귀신의 집 밖. 드디어 본인 차례가 다가오자 박가람은 너튜뷰로 국민체조 영상을 틀어놓고 따라 하기 시작했다.

[국민체조~ 시, 작! 하나, 둘, 셋, 넷!]

-다람아 벌써부터 뛸 준비하는 거 아니지?? ㅋㅋㅋㅋ

-박다람이 현재 목표 : 1시간짜리 귀신의 집 15분 주파

-과연

-달려서 한율이랑 합류하는 게 목표 아닐까욬ㅋㅋㅋ

라이언이 그 옆을 기웃거리더니, 박가람을 따라 국민체조를 시작했다.

[이거 왜 하는 거야?]

[하면 좋은 거야. 둘, 둘, 셋, 넷….]

자막.

[가람과 라이언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외국인 관광객 분들]

곧 입구 앞에 먼저 대기 중이던 VJ가 손짓했다. 박가람이 발을 옆으로 툭툭 차는 동작으로 발목을 풀면서 나아갔다.

[헛차! 헛차!]

[기다리시잖아! 빨리 가!]

뒤에서 유호가 외치자, 박가람은 속도를 높였다.

[헛! 차! 헛! 차!]

-목도리 도마뱀이 달리기 직전에 다리 푸는 것 같

드디어 입구 앞에 도착한 박가람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멤버들과 촬영 스태프들, 구경하는 관광객들과 마지막으로 귀신의 집 직원에게까지 손을 흔들었다.

-누가 보면 올림픽 나간 줄ㅋㅋㅋㅋㅋ

-하트는 왜 날리는 거얔ㅋㅋㅋㅋㅋ

-왜 보는 내가 다 창피한 거 같지ㅠㅠ.. 가람아 너 아이돌이야.. 개그맨아니라고ㅠㅠㅋㅋ

요란한 퍼포먼스를 벌이던 박가람이 귀신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곧바로 녹색으로 물든 영상.

[으헉, 공기부터 엄청 살벌해….]

박가람은 눈을 잔뜩 찡그린 채 앞을 휙휙 살폈다. 그러곤 VJ에게 당부했다.

[지금부터 저는 뛰어서, 한율이를 잡을 겁니다. 그러니까 형 낙오되면 안 돼요. 안 구해줌.]

[;;;]

[분명히 한율이 성격 상 먼저 간 두 사람… 아니지, 건우 형이 안 살펴봤을 곳을 천천히 훑으면서 힌트를 찾느라 멀리 못 갔을 거예요.]

-진짜 한율이 잡을 생각이구나

-....?

-님들, 방금 가람이 완전 작게 중얼거리는 거 들으심? 나 볼륨 거의 최대로 올려서 들린 것 가튼데

-??

-저 들음. 있네, 있어. 라고 분명히 말함.

-저 들었어요/ 있네있어.

-8ㅂ8

박가람이 뛰기 시작했다.

펄럭! 앞서간 멤버들이 가장 처음 맞닥뜨린 귀신이 괴성을 지르며 나타났다. 하지만 박가람은 다다다 시끄러운 발소리를 내며 그 앞을 휙 지나쳤다. 비명 한 번 지르지 않고.

VJ가 잘 따라오는지 잠깐 돌아보는 박가람의 얼굴엔, 그 특유의 가벼운 웃음기는 온데간데없었다.

-얘네 봉사활동 갔을 때 생각난다; 그때 가람이 엘베에서ㄷㄷ

[끼하아아아…!]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지친 걸음으로 나선형 계단을 오른 박가람이 문을 열자, 저 앞에서 귀신으로 분장한 직원이 지르는 섬뜩한 비명이 울렸다.

박가람이 그제야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VJ를 돌아보았다.

[한율이가 저기 있나 봐….]

말을 하던 박가람의 얼굴에서 싸악 핏기가 가셨다.

-뭐야

-왜 그래 가람아

박가람의 시선이 VJ의 사선 아래에서 위, 그 다음은 뒤를 향해 차츰 움직였다. 마치, 그들을 따라 나선형 계단을 올라오는 누군가를 보는 것처럼.

[으….]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치던 박가람이 몸을 돌렸다.

[으아아아!]

짐벌에 끼운 카메라 방향이 저를 향했다는 것도 모른 채,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뛰기 시작했다.

[한율아, 한율아, 한율아!]

도망치듯 복도를 달리며 애타게 서한율을 부르는 목소리가 생생하게 잡혔다. 박가람과 VJ의 카메라 영상도 격하게 흔들렸다.

[서한유울!!]

-?!!?!?!?

-뭐야 뭔데

-가람아 대체 뭘 본 거야!!!!

-계단엔 귀신분장 직원 없다면서요!

-한 팀 입장하면 몇 분 동안은 아무도 못 들어오는데다 가람이는 들어가자마자 막 뛰어서 바로 뒤에 누가 있을 리가 없는데

-ㅁㅊㅁㅊㅁㅊㅁㅊㅁㅊㅁㅊ

-개소름

-가람이 울 것 같아ㅜㅜ

그와는 반대로 정적인 녹색 화면. 한 창고 같은 방 안에서 토막 난 신체 조형물과 내장이 담긴 병 사이를 살피던 서한율이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이거 가람이 형 목소린데…?]

저를 부르는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서한율이 방을 나왔다. 서한율 전담 VJ의 카메라에,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달려오는 박가람과, 그 뒤를 간신히 따라잡으며 헉헉대는 다른 VJ가 잡혔다.

[서한율…!]

덥석!

[……?!]

순식간에 가까워진 박가람이 서한율의 두 팔을 강하게 붙잡았다. 주룩. 그러곤 그대로 미끄러지듯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허억, 허억…….]

[형 왜 그래요?]

서한율이 상체와 고개를 비스듬히 숙이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박가람을 살폈다. 그러곤 앞에 쭈그려 앉아 어깨를 토닥토닥.

[그렇게 무서웠어요?]

[와나 진짜….]

박가람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흐느끼는 것처럼 웅얼거렸다.

[흐윽, 여기 들어오기 싫었다고…, 진짜 있을 것 같아서…….]

[아…. 속은 괜찮아요? 또 토할 것 같으면 말해요.]

[훌쩍, …괜찮아…….]

-가람이 진짜 울어.... 맴찢...8ㅅ8

-가람이 정말 무서운 거 봤나보다ㅠㅠㅠㅠ

-연예인 중에 그런 거 잘 보는 사람이 많다더니,. 가람이도 그런 건가

-한율이 다정하게 형아 챙겨주는 거 봐..(*꒦ິ⌓꒦ີ)

자막.

[가람이는 대체 뭘 봤기에 이렇게 놀란 것일까]

환하게 불이 켜진 호텔 객실로 장면이 전환되었다.

[Q. 귀신의 집에서 뭘 봤는지 말해줄 수 있어요?]

객실 의자에 앉은 박가람은 장난스럽게 씩 웃으며 입 앞에 검지를 세웠다.

[아직은 비밀입니다. 쉿.]

-가람이도 웃는 게 마냥 웃는 게 아니었구나..8ㅅ8..

-한율이가 기가 센가? 그래서 한율이랑 있으면 귀신이 안 보이나?

-가람아..8ㅂ8...

다시 녹색영상.

서한율이 박가람을 달래며 함께 일어났다.

그 동안 길우성은 중도포기, 탈주. 멤버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무사히 잘 살아 돌아왔다며 길우성을 반겨주었다.

길우성이 막 들어가려는 라이언에게 당부했다.

[무조건 달려! 아무 것도 보지 마! 그냥 달려! RUN!]

라이언이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라이언이 들어간지 1분도 지나지 않아, 출구에서 이건우가 환호성을 지르며 나왔다.

[찾았다아!]

형광색으로 두 줄이 그어진 마지막 힌트 카드를 손에 든 채.

자막.

[어떻게 된 것일까?]

영상이 이건우의 시점으로 거꾸로 돌아갔다.

마지막 코스인 영안실을 무사히 지나친 이건우는 출구로 가는 복도에 쓰러진 환자를 보고 크게 놀랐다.

[저… 사람 무릎 위에 있는 게 설마 그건 아니…죠? …마네킹인가? 사람인가?]

사람이었다.

이건우는 미동 없이 고꾸라져있는 그의 무릎 위에 놓인 봉투를 집으려다가, 좀비처럼 삐거덕거리는 사람에게 놀라 괴성을 질렀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바닥에 떨어진 봉투를 낚아채, 또 다른 곳에서 튀어나오는 귀신들을 피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으아아아아!]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귀신의 집을 벗어난다는 기쁨의 괴성을 지르며.

[둘째 형 최고다!]

아직 귀신의 집 안에 있는 서한율과 박가람, 라이언을 제외한 다섯 명의 어스래빗 멤버들이 서로의 손을 부딪치며 자축했다.

[역시 믿은 보람이 있었어!]

-호 태세전환 보솤ㅋㅋㅋㅋ

[잠깐만, 그런데 우성이 너 왜 여기 있어? 나 바로 뒤 순서 아니었나?]

길우성이 천진한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아아. 형 들어가고 나서 멤버들이랑 내기했거든. 이겨서 입장 면제됐어.]

[…그래?]

-건우 설마 저 말 진짜 믿는 건

[아무튼 이 힌트는 다른 애들 나오면 그때 같이 보자.]

-건우 은근히 순진햌ㅋㅋㅋ

밖에서 멤버들이 신나게 떠드는 동안, 라이언은 묵음 처리되는 영어 욕을 남발하고 있었다.

하단의 자막.

[※온갖 욕을 부를 정도로 무섭다는 뜻입니다.]

-8ㅂ8....................

-건우가 성공한 거 좀 알려주지...ㅠㅠ...

라이언처럼 아직 이건우의 성공 소식을 듣지 못한 서한율과 박가람은, 마침 중도포기 탈출구를 알리는 표지판을 찾은 참이었다.

[나갈래요, 형?]

[한율이 너는?]

[전 혹시 모르니 끝까지 살펴보려구요.]

[…그럼 나도 같이 갈게.]

저벅저벅. 두 사람은 중도포기 탈출구 안내판을 지나쳐 피칠이 된 복도를 나란히 걸었다.

-가람이 처음 들어갔을 때 엄청 불안해보였는데 그래두 한율이랑 있으니 안심한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ㅠㅠ..

-나쁜 제작진 놈들.. 성공한 것 좀 알려주지..ㅜㅜ

-가람이 계속 한율이 옷 잡고 걸어...8ㅂ8...안쓰럽

이건우가 마지막 힌트를 찾아 미션은 성공.

카드 안에는 미션 성공 보상금이 숨겨진 지도가 들어있었다.

죄송합니다, 지나갈게요!

어스래빗의 열 번째 에피가 뜨고 3시간 정도가 지난 자정 무렵.

도쿄에서 미니라이브 겸 하이터치회를 마친 어스래빗 멤버들이 오사카의 호텔에서 막 잠을 청하던 그때, 포털사이트엔 오늘 어스래빗의 에피소드를 다룬 기사가 올라왔다.

[현실판 <객귀, 해> 진해는 한율이 아닌 다른 멤버였다?!]

[14일 밤 9시, 어스래빗의 열 번째 리얼리티 에피소드 영상이 업로드되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 어스래빗은 같은 소속사인 크리스탈 래빗으로부터…(중략).

마지막 결정적 힌트가 남은 곳은 기네스북에 세계 최장 길이의 귀신의 집으로 등재된 귀신의 집이었다. 멤버들은…(중략)…, …도중에 가람은 아무도 없어야 할 나선형 계단 아래를 보곤 혼비백산하여 한율을 애타게 부르며 도망쳤다.

[무언가에 놀라 도망치는 어스래빗의 가람(사진=어스래빗 그린라이브)]

(중략)…한편, 어스래빗 팬들 사이에서 가람이 뭔가를 보는 것 같다는 의혹이 돈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어스래빗 0번째 에피소드에서…(중략).]

-이 기사보고 궁금해서 그라에 뜬 영상 봤는데... 무서운 거 찍힌 건 아무 것도 없는데 상황이 ㅈㄴ무서움

-진해 놀래려고 연기한 게 아니라 진심 무서운 거 보고 도망친 거임 ㄹㅇ생생;;

ㄴ진해 아니고 한율이욥8ㅅ8.. 진해는 드라마 캐릭 이름

-그래도 형이라고, 한율이가 끝까지 갈 거라니까 혼자 안 빠지고 같이 가고.. 그러면서도 한율이 옷도 끝까지 안 놓고ㅜㅜ

-여기가 원래 영상촬영하면 스포땜에 전부 다는 못 나가게끔, 극히 일부만 나갈 수 있도록 허락해주니까 많이 편집된 것 같은데, 실제론 한 시간씩이나 걸릴 정도로 길고 어두워서 ㅈㄴ무서움ㅇㅇ

-저 아는 사람이 가람이랑 같은 초등학교 나왔는데요, 그때도 가끔 귀신 본다는 소문 있었대요 근데 워낙 장난기가 많고 까불거려서 다들 장난인 줄 알았다는데.. 진짜였네요

ㄴㄷㄷㄷ;;;;

-기자가 객귀 제대로 안 봤네ㅋ 진해 원래 귀신 보던 아이 아님

-세 번째 스샷 제일 키 큰놈 티셔츠 어디 건지 아시는 분?

ㄴㅇㄷㅅ벨, 인터넷에서 4만5천원ㅇㅇ

ㄴ이런 질문에 대답 바로 뜨는 거 보면 ㅈㄹ신기ㅋ..

ㄴ놈이라뇨ㅡㅡ

-진해봤을 땐 연기를 너무 잘해서 실제 본인 성격인가 했는데.. 실제 배우는 무서워하는 거 1도 없고ㅎㅎ

-주머니에 쏙 넣어서 매일 꺼내서 보고 싶은 작고 소듕한 ☆박다람이☆

-저런 곳에 가면 왜 다들 쫄보인척ㄱ오반데?ㅋㅋㅋㅋㅋ 난 가면 웃으면서 귀신들이랑 사진 찍고 온다ㅋㅋㅋㅋ

ㄴ저기까지 갈 필요 없음ㅇㅇ 네 얼굴 바로 옆에 붙어있거든

어스래빗 멤버들이 어제 올라온 에피소드 영상을 본 건, 오사카 쇼케이스를 무사히 끝내고 호텔로 돌아온 후였다.

영상을 보고 나서야 이건우는 당시 길우성에게 까맣게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박가람 너…, 대체 뭘 봤기에 이렇게 놀란 거야…?”

“진짜 귀신이라도 본 거야, 형?”

유호는 귀신의 집에서 미션을 진행하는 장면이 나올 때부터 객실을 나가고 없었다. 박가람이 다른 6명의 멤버들을 둘러보며 씩 웃었다.

“이 썰은 아껴뒀다가 나중에 TV에 나가게 되면 써먹을 거야.”

“…그래.”

“그나저나 우리 드디어 일본 활동 끝났네?”

“한국으로 돌아간드아!”

똑똑.

“누구세요?”

에피소드 영상도 봤으니 슬슬 객실로 돌아갈까. 제일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한율은 마침 들리는 노크소리에 답했다.

“나야, 문 좀 열어줘.”

유호의 목소리였다.

문을 열자, 케이크상자를 세 개나 품에 쌓아올린 유호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 뒤를 따라 들어오는 오 팀장과 조유찬의 양손에도 무언가가 잔뜩 들려 있었다.

“먹을 거다!”

“우와!”

소파나 침대에 편히 앉아있거나 널브러져 있던 멤버들이 벌떡 일어나 그들의 손에 들린 것들을 받았다. 오 팀장이 씩 웃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래도 첫 해외 활동을 무사히 마쳐 고생한 여러분들에게 특별히 주는 포상입니다.”

“우와우와우와!”

아직 저녁을 못 먹은 참이었다. 멤버들은 일사불란한 동작으로 포장된 각종 음식을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패밀리룸이라 객실 내에 길쭉한 테이블이 있어 다행이었다.

“케이크에 스테이크, 초밥에…, 이건 뭐예요?”

“성인 멤버들을 위한 음료….”

딸칵.

“……?”

오 팀장의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 캔을 딴 강보배가 두 눈을 끔뻑거렸다. 조유찬이 미간을 깊게 찡그렸다.

“열아홉 살 보배야?”

“아니, 난 캔에 사과가 그려져 있기에 음료순 줄 알고….”

“형…, 겉에 버젓이 Beer라고 적혀 있는데 어디에서 쌩구라를….”

“아냐, 못 봤어! 여기 사과가 화려하게 그려져 있어서….”

“저거저거 갈수록 본색을 드러내는구만.”

강보배의 손에 들린 맥주는 압수. 고스란히 이건우에게 넘어갔다. 이건우는 한 모금 마셔보더니, 그대로 꿀꺽꿀꺽 시원하게 들이켰다.

“…크으! 워후! 맥주가 아니라 그냥 음료수 같지만, 그래도 좋다!”

“…….”

바쁜 활동, 혹은 노동 끝에 마시는 술 한 잔의 맛은 기가 막히는 법. 한율은 저도 모르게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쉬며 오렌지주스나 들었다. ‘서한율’이 술을 마실 수 있는 법적나이까진 아직 한참 남았다.

“그라하려면 취하기 전에 하고. 호, 네가 얘들 술 안 먹게 챙겨. 너희들 몫으로 두 개씩 마시라고 딱 4캔 사왔다.”

박가람이 고개를 기울이며 유호와 이건우, 그리고 자신을 가리켰다.

“그럼 캔이 여섯…, 건우 형이 하나 마셨으니 다섯 개가 돼야죠.”

“일본은 만으로 스무 살이 되어야지만 음주가 가능하단다, 만 열여덟 살 가람아.”

“……!”

그동안 테이블의 음식 세팅은 라이언이 마친 후였다. 멤버들은 모자란 의자 대신 소파를 끌어다 놓은 후, 노트북과 캠, 마이크를 챙겼다.

“라방 제목은 뭐라고 할까?”

“우리가 간다?”

“일본 팬 분들이 좀 섭섭할 것 같은데?”

“그냥 내가 알아서 적을게.”

유호가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어스래빗 - 토실토실 살찌우는 불토의 밤]

“하나, 둘, 이프림, 안녀엉!”

객실 양옆, 바로 위 아래층 모두 어스래빗 스태프들이 묵는 곳이라 더 크게 소리를 지를 수도 있었지만, 그렇진 않았다.

순식간에 많은 팬들이 접속해 어스래빗의 라이브방송을 반겼다. 톡이 너무 빠르게 올라가는 터라 제대로 읽을 수도 없었다.

-디너 대박ㅋㅋㅋㅋㅋ

-토실토실 살찌우는 불토의 밤이라닠ㅋㅋㅋㅋㅋ

-오구오구 우리 톢이들 맘 놓고 먹는 날이야?! >_<

어스래빗 멤버들은 우선 일본 활동을 마친 소감을 말한 후, 조금 전에 본 에피소드 영상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아, 미션 성공으로 받은 보상금이요?”

“어떤 분이 나중에 정산 받을 때 까이는 거 아니냐고 물으시는데요, 형.”

“우리 대표님이 그렇게 쩨쩨한 분은 아니에요. 흐흐.”

“이번에 일본에 올 때, 쉬는 날에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한 사람당 2만 엔씩 용돈도 주셨어요. 우리가 가끔 SNS에 올린 먹방 사진 있죠? 그거 다 대표님이 주신 용돈으로 사먹은 거예요.”

“그리고 이번 미션 성공 보상금으로 받은 백만 원은….”

유호가 핸드폰의 모바일 통장 계좌번호를 손가락으로 가린 채 렌즈에 들이댔다.

“우리 어스래빗 모임통장의 첫! 입금 금액이 되었습니다!”

“와아아.”

짝짝짝.

“우리가 백만 원! 이라고 대표님 싸인이 들어간 메시지 봉투를 발견하자마자, 연락을 받은 대표님이 직접! 바로! 계좌이체로 쏴주셨어요.”

-대표님 진짜 사랑해요ㅜㅜ 톢이들은 우주만큼 사랑해♡

일본 활동 마무리기념 라방을 끝낸 뒤에는 편하게 이것저것 먹으며 잡담을 나눴다. 그러나 오늘도 무대를 뛰어서 피곤한데다가 내일이 바로 귀국하는 날이었기에 그렇게 오랫동안 놀진 않았다.

배가 넉넉하게 채워지자마자 뒷정리. 각자의 객실로 돌아갔다.

“흐아아암.”

“입 찢어지겠다.”

“형 발목은 괜찮아요?”

오늘 공연할 땐 그럭저럭 버티더니, 지금은 걷는 게 불편해 보인다. 차남석이 침대에 풀썩 걸터앉더니 양말을 벗었다. 그의 발목은 여전히 스포츠 테이프로 칭칭 감겨있었다.

차남석이 무뚝뚝한 얼굴로 한율에게 대답했다.

“아파.”

“…….”

“남석 씨가 제 입으로 아프다고 할 정도면 진짜 아픈 건데. 그런데도 팬들 앞에선 웃으면서…, 으흑!”

차남석은 잠시 길우성의 얼굴을 보면서 뭐라 말하려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유호가 자신의 가방을 뒤졌다.

“약 없어? 진통제 내 거라도 줄까?”

“아뇨, 약은 되도록 안 먹으려고요. 어차피 내일 귀국하기도 하고.”

“열감은?”

“약간.”

유호는 미간을 찡그린 채 차남석을 바라보다가 말없이 방을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냉찜질팩을 가지고 돌아왔다. 한국제품인 걸로 보아 매니저들이 비상용으로 챙기고 온 걸 받아온 모양.

툭.

“오다 주웠다.”

차남석이 씩 웃었다.

“감사.”

“호 형 츤츤거리는 거 대박 안 어울려.”

뚱한 표정을 짓던 유호가 얼굴근육에서 힘을 뺐다.

“네가 봐도 그렇지?”

그 사이 메이크업을 꼼꼼히 지운 한율은 화기애애한 세 사람의 모습을 일별하곤 욕실로 들어갔다.

다음 날, 인천국제공항. 입국장 상황을 먼저 살피러 갔던 조유찬이 다급한 얼굴로 돌아왔다.

“사람이 너무 많아…!”

“다른 팀도 오늘 귀국하나보죠.”

“너희 슬로건이 엄청 많은데?!”

“오우.”

조유찬이 캐리어를 잔뜩 실은 카트를 밀면서 앞장섰다. 어스래빗 멤버들은 경호원들의 가드를 받으면서 그를 뒤따랐다.

“어스래빗이다!”

입국장으로 나가기 무섭게 바리케이드 너머로 빽빽하게 들이찬 인파 사이에서 환한 플래시가 파파팟 터졌다. 일본으로 출국할 때 모인 인원보다 어림잡아 두 배는 더 모인 듯했다.

“건우 오빠! 웃어주세요!”

“진해야아! 서한율!”

“지나갈게요! 죄송합니다, 지나갈게요!”

“가람아 받아!”

어디선가 다람쥐 인형 하나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왔다. 엇! 그러나 박가람이 있는 곳까지 궤도 오차가 크게 나, 대신 근처에 있던 라이언이 가볍게 점프해서 낚아챘다.

차카차카차칵!

“얘들아, 수고했어어!”

“남석아, 발 다쳤어?!”

멤버들은 사방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셔터소리와 목청이 찢어져라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목소리에 정신없이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바리케이드 구간을 지나자 인파의 포위망이 좁혀졌다. 여기에 얼굴 바로 앞까지 핸드폰과 대포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들 탓에, 늘 정중했던 경호원들의 표정도 한층 더 굳어졌다.

“비켜주세요!”

“죄송합니다, 지나갈게요!”

그럼에도 그들의 가드를 뚫고 멤버들에게 선물을 건네는 팬들도 있었다. 그렇게 간신히 로비를 빠져나와, 바로 앞에 정차된 WB래빗의 차를 발견했을 때였다.

“보배 오…, 꺄악!”

“……?!”

사람들에게 밀린 한 여학생의 몸이 앞으로 크게 기울여졌다. 여기에 반사적으로 뻗친 손. —타악! 가까이에 있던 한율과 강보배가 동시에 여학생의 팔을 잡아 넘어지는 걸 막았다. 대신, 여학생의 손에 들려있던 종이가방이 바닥에 떨어졌다. 툭.

“괜찮아요?”

“어…, 어, 네에….”

차카차카차칵!

자신들에게 밀려 한 사람이 크게 다칠 뻔했는데도, 뒤의 사람들은 좋은 장면을 건졌다는 듯 셔터를 누르기에 바빴다. 그들의 행태에 화가 났는지, 강보배가 욱하는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형.”

“…….”

그러나 눈이 마주친 한율이 짧게 고개를 흔들자, 벌렸던 입을 꾹 다물었다가 여학생을 향해 입가를 올렸다.

“미안해요, 세게 잡아서.”

“괜찮아요…. 이거, 오빠 주려고…. 감사합니다….”

큰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을 때완 달리, 여학생은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종이가방을 들었다. 탁탁, 손으로 먼지까지 털어 내밀자, 강보배가 환하게 웃으며 받았다.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요!”

“네! …율이 오빠도 고마워요!”

짧은 해프닝이 일단락되자, 경호원이 바로 그들 사이를 가로 막으며 이동을 재촉했다.

“지나가겠습니다!”

잠시 후, 한 커뮤티니의 어스래빗 게시판에 게시글 하나가 올라왔다.

[오늘 인국공에 간 사람들 반성해라, 진짜.]

[일본에서 고생하고 돌아온 애들 환영해주러 가는 건 좋다. 그런데 ㅅㅂ.. 우리 애들 이름 뒤에 ‘무질서 팬들’<이딴 말이 따라붙어야 되겠냐? 영상 봤는지는 모르겠는데 ㅈㄴ 난리도 아니었다.

공중으로 인형 던진 ㄴ, 네 행동으로 애들 다칠 수 있는 거 생각 안 하냐? 그리고 애들이 더 욕먹는다는 것도 몰라? 그런 팬 등장하면 인국공에서 ㅈㄹ한다고!! 애들하고 회사한테!! 그래, 어리면 모를 수도 있겠지. 그런데 애들 사진 찍겠다고 들이댄 것들, 남석이 다리 아파서 절뚝거리는 거 보면서 가방 잡아 끌어당긴 ㅅㅂㅆㄴ아 넌 내가 얼굴 딱 기억해뒀으니까 앞으로 몸 사려라개녀나

그리고 사람 좀 밀지마라. ㅍㅍㅍㅍ가 올린 영상 좀 보고 와. 넘어지기 직전의 애 잡아준 보배가 순간 빡쳐서 밀친 것들한테 뭐라 하려던 거 한율이가 말렸다고. 완전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게 안 보이면 눈치코치 없는 거 증명이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챙겨.

다른 개념장착 팬들 같이 싸잡아 욕 먹이지 말고 좀.]

킁킁

서울로 들어오자마자 차남석은 조유찬과 함께 일요일에도 진료를 보는 병원으로 향했다. 입국할 때 태풍처럼 몰아닥친 난리에 놀라, 창밖만 멍하니 보던 멤버들이 그제야 하나 둘 입을 열었다.

“왜 선배님들 출입국사진보면 하나같이 다 무표정한지, 이제야 그 이유를 잘 알 것 같아….”

“공항에선 급한 일 있는 것처럼 빨리 걸으라고 한 충고가 그거였어….”

“정말 너희들이랑 떨어지는 거 순식간이더라. 그런데 우리 출국할 때도 이 정돈 아니었지 않나? 지난번에 갔다 왔을 때도.”

“공식 스케줄엔 데뷔쇼케 날짜만 나오고, 정확한 출국날짜는 표기 안 됐었잖아. 그런데 이번엔 우리가 어젯밤 라방할 때 말했잖아. 오늘 들어간다고.”

“아….”

“나는 조금 충격이었어.”

강보배가 한숨을 푹 내쉬곤 말을 이었다.

“우리 팬 분들, 가끔 극성적인 분들도 있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밝고, 질서도 잘 지켜서 참 좋다고 생각했거든. 그라에 올라오는 톡이나 SNS에 달리는 댓글만 봐도 그렇고. 그런데 오늘은….”

사진을 찍는 사람들 사이에서 욕설이 적잖이 들렸었다. 말없이 몸싸움을 벌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조금이라도 멤버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같은 팬들끼리 인정사정없이 서로를 비난하며 밀쳤다.

“일부 거친 분들이 많이 모였다고 생각해. 이프림이 전부 그렇진 않다는 건 보배 너도 잘 알잖아.”

“응….”

“어?”

멍하니 창밖을 보던 라이언이 문득 품에 안고 있던 제 가방을 살폈다.

“왜?”

“가방에 달았는데 없어져써.”

“뭐가?”

“일본 이프림이 준 키링.”

“그 모자 쓴 토끼인형 달린 거? 으아…, 난리 통에 어디 떨어진 모양이다.”

“분명히 입국장으로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쟤 가방에 대롱대롱 매달린 거 본 것 같은데.”

한율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봤어요.”

라이언이 울상을 지으며 핸드폰을 꺼냈다.

“팀장님, SNS 로그인 시켜죠!”

차가 신호에 걸려 잠깐 멈췄을 때 라이언은 오 팀장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 팀장은 우선 인국공의 유실물센터로 연락해 신고접수부터 진행했다. 곧 라이언의 개인 SNS에도 사진을 첨부한 글이 올라갔다.

선물 받은 날 호텔에서 찍은 걸까. 아스라한 스탠드 조명 아래, 새카만 야구 모자를 불량하게 쓴 토끼인형이 앉아있는 사진이었다.

[오늘 인천국제공항에서 잃어버린 토끼 찾아요.. 찾아주신 분께 사례금 드립니다ㅜㅜ 주신 선물을 잘 간수하지 못해서 미안해요ㅠ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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