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화 (65/427)

* * *

조유찬이 9시 전까진 꼭 들어가라고 세 번이나 당부한 까닭에, 한율과 차남석, 박가람은 8시 30분쯤 PC방을 나왔다. 회사와 도보로 10분 거리라, 셋은 느긋하게 걸었다.

박가람이 뿌듯한 얼굴로 생글거렸다.

“하…. 간만에 겜도 실컷 하고, 좋았다.”

“앉아서 실컷 먹었으니 이제 가서 태워야죠.”

“그럼, 그럼.”

정말로 기분이 좋은지, 박가람은 운동하라는 말에도 생글생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 일요일에도 갈까? 요금은 형이 내줄게.”

“싫은데요.”

“왜 싫은데!”

한율은 덤덤히 대답했다.

“재미가 없어서요.”

PC방은 예전에 호기심에 한번 가본 적이 있었지만, 아이들이 즐겨하는 게임엔 그리 재미를 느끼지 못했었다.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 나중엔 치즈핫도그나 먹으면서 인터넷으로 미국 뉴스나 봤다.

가상의 전투가 뭐가 그리도 즐거운 건지.

‘어차피 4년 후면 직접 질리도록 하게 될 텐데.’

능력이 각성된 자는 각성된 자대로, 없는 자들은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생존게임을 말이다.

‘아니면 가짜라서 더 즐기는 건가? 현실이 아니니까 마음 놓고?’

거기까지 생각할 때, 박가람이 한율의 팔을 덥석 잡았다.

“아냐, 한율이 네가 아직 너한테 맞는 게임을 못 찾아서 그래! 형이 찾아줄게! 할아버지의 명예와 이름을 걸고!”

“할아버지 명예와 이름은 왜 거는 건데요.”

“그냥!”

“할아버지가 들으면 섭섭해 하시겠네요.”

한율은 박가람의 손을 잡아 떼어냈다.

“그러고 보니 요즘엔 팬들이랑 같이 게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던데, 나중에 우리도 그럴까요?”

“아마도.”

차남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당장은 힘들 거야. 숙소에 컴을 놔둘 자리도 마땅치 않고.”

“식탁?”

“식탁이면 노트북 정도….”

멈칫.

“……?”

막 모퉁이를 돌아 어스래빗 숙소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을 때였다. 차남석이 무언가를 보곤 덜컥 멈췄다.

“왜 그래?”

박가람도 덩달아 멈춰선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어스래빗 숙소는 불이 꺼진 상태. 그러나 멀지 않은 가로등 불빛이나 3층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건물 앞에 선 누군가의 윤곽을 비췄다. 양복차림에 서류가방을 든 남성.

남성이 빙글 이쪽으로 몸을 돌렸다. 새하얀 마스크가 얼굴의 반을 가린 모습이었다.

“…하.”

차남석이 굳었던 어깨를 완만하게 움직이며 짧게 한숨 쉬었다. 그의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그려졌다.

“아니에요, 아무 것도. 잠깐 사람 그림자를 보고 놀라서.”

* * *

쿵, 덜그럭. …기이이잉!

알람도 울리지 않은 이른 아침. 날카롭고 시끄러운 기계음이 자고 있던 멤버들을 강제로 깨웠다.

“…뭐여, 뭔 소리여….”

“……?”

한율도 미간을 잔뜩 찌푸리다가 눈을 떴다.

거실에 설치된 에어컨 바람을 위해 방문을 활짝 열어놓은 터라, 침대 밖으로 고개를 내밀자 현관의 상황이 보였다. 기이이잉! 현관문엔 열쇠업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달라붙어 새로운 자물쇠를 추가설치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체인이 달린 이중 안전장치까지 나뒹굴었다.

작업을 마친 업자가 가고 나서야 유호가 비실비실 거실로 나왔다.

“갑자기 웬 이중 자물쇠에요?”

“최근에 이 근처에 도둑이 기승을 부린대서, 겸사겸사.”

“그렇다고 왜 하필 이런 이른 아침에….”

“잠도 깨고 좋잖아. 재충전기간이라고 해도 생활리듬이 망가지면 나중에 너희가 더 힘들어져.”

“지금 7신데요….”

조유찬이 예비 열쇠 하나를 뺀 나머지 열쇠를 유호에게 넘겼다.

“오늘 샵에 4시까지 갈 거니까 그렇게들 알고.”

“네에.”

흐아암. 숙소 여기저기에서 늘어지는 하품 소리가 들렸다. 한율은 아직 졸린 눈을 끔뻑거리다가, 다시 잠이 안 오겠다 싶어서 부스스 일어났다.

…위이이잉!

또 다른 소음이 숙소에 울렸다.

“잠 좀 자자, 진짜….”

한율은 다른 멤버들이 투덜거리든 말든, 에어컨을 끄고 창을 활짝 열어 청소기를 돌렸다. 가사도우미가 오는 건 월요일과 목요일, 주 2회였기에 청소기는 매일 돌리는 게 좋았다.

그 후엔 허브 화분을 돌보고, 양치와 세수. 옷을 갈아입고 숙소를 나섰다.

중국어와 일본어, 피아노레슨, 과제, 자율연습으로 시간을 알차게 보낸 한율은 오후 2시가 될 무렵 다른 멤버들보다 일찍 퇴근했다.

목적지는 집.

‘아무도 없네.’

집에선 캣타워에 나른하게 앉아있거나 누워있던 고양이, 퓨마와 호랑이만 한율을 반겼다.

와옹.

한율은 깔끔하게 정돈된 집안 내부를 눈으로 훑은 후 방으로 들어가 노트북을 챙겼다. 파일로 제출해야 하는 방학숙제를 위해서였다. 사과패드로 해도 되기는 하지만 노트북과 비교하면 영 불편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 다음은 발코니의 자전거.

와아오옹. 자전거를 살피는데 퓨마가 와서 알짱거렸다. 툭툭. 앞발로 한율을 치다가, 몸을 비비적거리다가.

‘아.’

그 모습을 보자 한 가지 생각나는 게 있어, 한율은 퓨마를 안아들었다. 모친이 워낙 예뻐하며 키운 탓인지 퓨마는 그렁그렁 목으로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내며 애교를 부렸다.

찰칵.

SNS에 올릴 사진 한 장 클리어.

다른 고양이 ‘호랑이’와도 한 장을 더 찍은 후, 한율은 노트북을 담은 가방과 자전거를 챙기고 집을 나섰다.

햇살은 따갑고 아스팔트를 달구고 올라오는 공기는 후덥지근했으나, 자전거로 바람을 가로지르자 흘러내리던 땀도 시원하게 느껴졌다.

“…하.”

간만에 바람을 실컷 만끽하곤 숙소에 도착.

거실 소파에 널브러져있던 길우성이 숙소 발코니에다 자전거를 세우는 한율을 보며 중얼거렸다.

“도둑이 기승을 부린다고 자물쇠를 하나 더 달았는데, 넌 오히려 비싼 자전거를 안에 들이는 구나.”

한율은 별 다른 대꾸 없이 갈아입을 옷을 챙기고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를 하고나왔을 땐 박가람과 이건우도 숙소로 와있었다.

“서한율!”

박가람이 기다렸다는 듯 한율을 보며 발코니의 자전거를 가리켰다.

“나 저거 한번만 타 봐도 돼?!”

“흠집 하나에 30만원이요.”

“에라이.”

잠시 후, 그들은 나름 단정하게 차려입고 숙소를 나섰다. 회사에 있었던 다른 멤버들과도 합류. 샵에 들러 아주 가볍게만 단장 받고 도착한 곳은 주택가에 위치한 인형공방이었다.

라이언이 잃어버린 인형을 선물해준 팬에게 오히려 인형을 만들어주겠다는 발상에서 기획된 그라 콘텐츠.

직접 만든 걸 나중에 자선경매 추첨상품으로 내놓자는 이건우의 의견까지 덧붙이자, 멤버들은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원래는 곰인형 전문공방이지만 오늘은 특별히, 어스래빗 분들이 토끼인형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실 거예요.”

“안녕하세요. 이곳 공방의 주인이자, 인형 만들기 강사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본래 취미반 교실로 운영되는 공간엔 스태프들이 카메라를 세팅해놓은 상태였다. 어스래빗 멤버들은 길고 넓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앉았다. 테이블엔 인형을 만들 온갖 재료가 널려있었다.

그들은 완성 예상 샘플인형을 차례대로 돌려보며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우리가 이런 인형 만드는 거야?”

“엄청 어려울 것 같은데…, 잘 만들 수 있을까 걱정된다.”

곧 녹화가 시작되었다.

* * *

“으아아아….”

학교와 학원에서 던져준 엄청난 양의 방학숙제와 씨름을 하던 이아름은 잠깐 머리를 식히기 위해 핸드폰 전원을 켰다.

“어?”

그러곤 상태창에 뜬 알림을 보며 활짝 웃었다.

‘율이 오빠 SNS에 새 글 올라왔네?’

서한율의 개인 SNS에 두 장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서한율의 집에서 키운다는 고양이, 퓨마와 호랑이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으흐흐.”

이아름은 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댓글을 살폈다.

-퓨마랑 호랑이 진짜 날이 갈수록 용맹해지네요♡♡♡♡♡♡♡♡♡

-정했다. 나의 다음 생은 퓨마호랑이다.

-주인 닮아 고먐미들 때깔도 럭셔리허구먼(코쓱)

-율이 집에 갔구낭ㅎ 목톡톡 진짜 잘 봤써율>ㅅ//

-고양이는 언제나 옳다. 그리고 서한율은 진리다.

정말 어스래빗 데뷔 초…, 아니, ‘꽃을 단 토끼’가 막 나왔을 때와 비교하면 댓글을 다는 사람의 수도, 팔로워도 굉장히 많아졌다.

‘인기가 많아질수록 회사 앞에서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었던 시간도 멀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긴 하지만….’

이아름은 스크롤을 위로 올려 다시 서한율의 사진을 보았다. 다시 입에 헤 벌어졌다.

‘율이 오빠 미모가 갈수록 천상계급으로 진화하는 것 같단 말이지. 흐흐….’

그러다 이아름은 바로 조금 전에 달린 댓글을 봤다.

-님들님들, 우리 율이가 아픈 애긔이프림한테 슬쩍 선물 보낸 거 아세요8ㅂ8)?????

다 들려

한 지역커뮤니티 카페. 한참 전에 올라온 게시글 하나가 뒤늦게 주목을 받았다.

[딸이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선물을 받았어요^^]

[안녕하세요.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둔 맘입니다.

얼마 전에 초등학교 4학년인 딸아이가 망막박리 수술을 받았어요ㅠㅠ.. 다행히 수술은 무사히 잘 끝났지만, 2주 동안 계속 엎드린 채, 그것도 폰이랑 컴도 하면 안 되니까 어찌나 힘들다고 칭얼거리던지ㅜㅜ;;

그렇게 어찌어찌 겨우 2주 넘겼는데, 갑자기 뭐 시킨 것도 없는데 선물배송이 왔다고, 문 좀 열어달라더라구요. 뭔가 싶어서 나가보니 엄청 예쁜 꽃다발을 든 새하얀 토끼인형이..!

처음엔 잘못 온 건 줄 알았는데 주소도 맞고, 받는 사람이 딸애 이름이라, 방에 있는 딸한테 ‘서한율이 누구니?’ 라고 물었더니 애가 바로 방에서 튀어나오던^^;;;

막 울려고 하는 거 간신히 말렸어요 정말ㅎㅎㅎ;;;

그리고 아래가 서한율이란 연예인이 보내준 선물 사진이랑 메시지카드예요ㅎㅎ

(사진)

평소에 연예인 좋아하면 떡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 그랬었는데ㅋㅋ

걱정이 가득 담긴 따뜻한 선물이 날아왔네요^^ㅎㅎ]

댓글 란에는 수많은 N표시가 반짝거렸다.

-우리 율톢 정말 맘씨 이쁘죠8ㅅ8엉어ㅓ어어엉어어엉

-빨리 나아져서 같이 어스래빗 콘서트 보러가고 싶네요(๑°꒵°๑)ㅎ

-인증 감사합니다ㅠㅠ 울애긔이프림 빨리 낫길 바랄게요!!!

-건강해져라 얍☆

-같은 이프림입니다! 쾌차바란다고 따님께 전해주세요! (o´〰`o)♡*✲゚*。

-쾌유! 쾌차! 지구톢이와 함께 지구정복!!!

-율톢굿즈 나눠드리고 싶습니다! 쪽지 보내주세요!

한율에게 선물을 보내도 좋다고 허락한 오 팀장과, 연락처를 빌려준 조유찬은 해당 게시글을 보곤 흐뭇하게 웃었다.

“수술 받는다고 말한 팬의 편지가 그 뒤로 뚝 끊겼다는 소릴 듣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었는데… 이렇게 무사한 걸 알게 되니 한결 마음이 놓이네요. 이렇게 우리 애들이 편지를 다 읽는다는 걸 팬들도 알게 됐고 말이죠.”

“덕질하는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아이돌…! 크으! 이 정도의 찬사가 어디 있습니까, 팀장님.”

“그러네요.”

그러나 오 팀장이 흐뭇함 이상의 감정을 보이지 않자, 조유찬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세요, 팀장님? 뭔가 마음에 걸리시는 거라도?”

오 팀장은 어깨를 크게 으쓱이며 입가를 올렸다.

“이제 슬슬 아이들의 선의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나겠구나 싶어서요.”

“아….”

조유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옅어졌다. 조유찬도 3년 동안 크리스탈 래빗을 담당하면서 많이 겪었었다.

크래 개인 멤버의 SNS에다 꾸준히 응원 댓글을 달다가, 어느 날부터인가 힘들다는 하소연을 한두 마디씩 덧붙인다.

힘들어도 널 보면서 견딘다, 오늘도 죽고 싶었지만 네 미소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걸 보고 마음이 약해진 멤버가 답글을 달면 기다렸다는 듯 장문의 하소연을 단다.

글의 요지이자 목적은 하나였다.

금전적인 도움을 달라.

그리고 이런 사람은 한 둘이 아니었다.

조유찬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요즘도 크래 애들 SNS에 달리는 걸 보긴 했어요. 좋은 곳에 기부되니 물건 사달라는 사람, 돈도 잘 벌면서 왜 어려운 사람 안 돕냐 대놓고 금전 요구하는 사람, 누나 앨범 사느라 돈을 다 써서 힘들어요. 5천 원만 보내주세요. 문상이라도 좋아요, 징징징.”

“예전에 미랑이한테 아픈 고양이 사진 보내놓고 수술비 보태달라던 사람이 생각나네요.”

하아. 조유찬은 재차 한숨을 쉬었다.

당시 미랑이 당장 5백만 원을 보내려던 걸 오동식 팀장이 알아차리고 말렸었다. 그리고 경찰에 신고해보니, 아픈 고양이 사진은 인터넷에서 퍼온 거였고 미랑에게 말한 인적사항과 사연도 모두 거짓이었다고.

“어스 애들한테도 나쁜 사람한테 걸려들지 않도록 잘 일러야겠네요.”

오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특히 라이언한테는 세 번 강조해주세요.”

“네.”

* * *

8월에 접어들자 기온은 더 사납게 올라갔다. 그러나 늘 온도가 적당하게 맞춰진 회사와 숙소만 오가던 어스래빗 멤버들은 아침에 숙소에서 나올 땐 ‘조금 덥구나.’ 자정 즈음 다시 돌아갈 때에도 ‘공기가 조금 뜨뜻하구나.’ 정도로만 느꼈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 8월 10일.

오래간만에 스케줄을 위해 나온 바깥은, 기온이 높고 습도까지 높아 숨이 턱턱 막혔다.

“현재 서울 기온 30도…. 불쾌지수는 95.”

“더웡.”

오늘 그들이 가는 곳은 3대 음악스트리밍사이트 중 하나인 ‘소리구름’에서 주최하는 음악시상식, 소리구름어워즈였다. 어스래빗은 신인상 후보에 올랐으며, 무대에도 오를 예정.

단체 스케줄을 뛸 때마다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멤버들을 태울 차는 2대. 한율은 길우성과 차남석, 이건우와 한 차에 탔다. 차 안은 에어컨이 가동되어 시원했다.

“우리 이렇게 큰 야외무대에 서보는 건 처음 아냐? 여기에 첫 시상식에 신인상 후보라니…!”

이건우가 핸드폰으로 소리구름어워즈 관련 기사를 훑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후보엔 올랐지만 타는 건 힘들 거야. 작년 7월 이후 데뷔한 팀 중 1년간의 성적을 토대로 뽑는 거라.”

차남석이 이어서 말했다.

“원카운트가 받을 걸.”

3대 기획사 중 하나인 아림 엔터의 원카운트가 데뷔한 건 작년 11월. 팬덤 규모도 신인치곤 굉장히 커서, 앨범 판매량이나 스트리밍 성적 또한 어스래빗과 비교하면 큰 폭으로 차이 났다.

“걔네 작년 연말 시상식에서도 신인상 거의 싹쓸이했지?”

“스카이러너랑 번갈아 사이좋게 나눠가졌죠.”

또 다른 대형기획사인 스엔 엔터의 스카이러너 데뷔는 작년 1월. 그래서 이번 신인상 후보에선 빠졌다.

“그럼 우리는 연말을 노리죠! 타도, 블루액션!”

한율은 그들의 대화를 한 귀로 흘러들으며 대본을 읽고 있었다. 한율에게 들어온 게 아닌, 차남석이 조연으로 출연하게 된 드라마의 대본이었다.

“형, 대충 다 봤어요.”

“그래? 바로 괜찮겠어?”

“네.”

운전을 하던 윤승우가 켜놓았던 음악을 껐다.

차남석의 다급하면서도 간절한 목소리가 차 안에 쩌렁 울렸다.

“빨리 수술을 받으면 살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단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왜 안 된다고 하는 건데요, 왜!”

차 안은 금세 대본 속의 장소, 병원 응급실이 되었다. 차남석은 제발 어머니를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아들, 서한율은 절박한 환자 아들을 사무적인 태도로 대하는 의사였다.

“그건 환자의 정보가 신속히 파악되었을 때의 경우입니다. 그러게 연락을 빨리 받지 그러셨습니까. 환자 분의 이름과 평소 앓던 지병, 복용 중인 약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병원은 함부로 환자 분의 몸을 열 수 없습니다.”

“그럼 여기가 대체 왜 응급실인 건데!”

바로 곁에서 이건우와 길우성이 신기한 얼굴로 두 사람을 쳐다보았지만, 배역에 몰입한 두 사람은 눈치를 보거나 실수로 대사를 씹는 일조차 없이 리딩을 이어갔다.

“적어도 흥분한 보호자에게 그런 것까지 일일이 설명해줄 정도로 여유로운 곳은 아닙니다. …김 선생님! 정형외과 연락 아직 안 됐습니까?!”

“—야! 네가 그러고도 의사 새끼야?!”

소리구름어워즈가 열릴 잠실체육관에 도착, 차가 주차장을 찾아 배회할 때가 되어서야 두 사람은 리딩을 멈췄다.

한율은 본인이 느낀 바를 솔직히 말했다.

“형, 응급실에서 헤매면서 의사를 찾던 씬 있잖아요. 나 지금 불안하고 간절하다, 그런 연기 중이니 받아들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 톤이랑 표정이 어색했나?”

“톤보단… 형 눈매가 또렷하잖아요. 그래서 조금만 힘을 줘도 다른 사람보다 더 세게 와 닿거든요. 거울을 보면서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의 농도를 조절하고, 대사도 함께 치면서 형 스스로 감을 잡아야 할 것 같아요.”

“오케이.”

차남석은 불쾌해하는 기색 없이 선뜻 수긍했다. 어느새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다른 건 어땠어? 발성이나 딕션은?”

“괜찮은 것 같아요.”

“그래….”

차남석이 여러 메모로 지저분해진 대본을 보며 고민에 잠겼다.

두 사람이 대본리딩을 하는 동안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있던 이건우가 길우성에게 속닥거렸다.

“이거 몰래 녹화할 걸 그랬다. 팬들이 보면 엄청 좋아할 텐데.”

“이따가 갈 때도 두 사람이 리딩한다 싶으면 그때 슬쩍….”

차남석이 미간을 구겼다.

“다 들려.”

“…흐.”

소리구름어워즈는 연말 시상식처럼 쟁쟁한 팀들이 총출동하는 이벤트로, 올해는 보이그룹 12팀, 걸그룹 11팀, 솔로가수 9팀. 총 32팀이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모두가 무대공연을 하는 건 아니었다.

어스래빗은 도착 후 대기실이 아닌 무대가 설치된 곳으로 향했다. 무대 앞 간이의자엔 리허설 순서를 기다리는 다른 팀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꾸벅꾸벅 인사를 한 후 빈자리에 나란히 착석.

무대에선 막 원카운트가 리허설을 진행 중이었다. 음악소리가 굉장히 커, 가수들은 서로 대화를 나눌 엄두도 못 내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거나 멍 때렸다.

어스래빗은 큐시트 순서에 따라 4번째로 무대에 올랐다.

이번 소리구름어워즈는 MBS K 채널과 너튜브로 생중계될 예정이나, 이번 공연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건 MBS가 아닌 소리구름과 계약한 공연전문 업체.

오 팀장의 설명이 떠올랐다.

『노래 파트 순서와 동선은 사전에 넘겼지만, 음방 카메라감독님들처럼 센스 있게 잡아 줄지는 장담 못합니다. 아마 풀샷을 자주 잡을 테니, 억지로 카메라 따라가지 말고 자연스럽게, 그냥 하던 대로 하세요.』

이름이 큼지막하게 적힌 리허설 조끼를 걸친 어스래빗 멤버들이 정면을 향해 허리를 깊게 숙였다.

“어스래빗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스래빗 리허설 갈게요!”

전주가 흘러나왔다.

소리구름어워즈는 오후 6시 30분부터 3시간 동안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레드카펫 생중계는 4시부터였다. 리허설을 마친 가수들은 지정받은 대기실로 들어가 헤어메이크업 풀 세팅에 들어갔다.

걸그룹 감성소녀와 아이허니가 함께 쓰게 된 대기실.

두 팀 모두 공연무대에 오를 예정이라, 비슷한 시간대에 와서 리허설을 진행하고 꽃단장을 하던 중이었다. 시끄러운 드라이어기 소리가 멈추면 그 대신 말소리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대기실 안은 소란스러웠다. 특히나 감성소녀 멤버들의 목소리가 컸다.

“아까 어스래빗 애들 괜찮지 않았어?”

“어. 애들 잘 컸더라. 작년에 봤을 땐 좀 어린 감 있었는데.”

“지금도 어려.”

“남석인 작년에 봤을 때도 잘생겼다 생각했는데, 안 본 사이에 애가 더 빛이 나더라. 여친 있겠지?”

“당연히 있겠지. 연습생 생활 3년? 4년 정도 했다고 하던데, 애들이 그런 미친 외모를 가만히 뒀겠어? 한 둘은 사귀고도 남았겠다.”

말없이 이야기를 듣던 감성소녀 리더 제유가 미간을 구겼다.

“걔네가 다 너네 같은 줄 아냐? 눈만 맞으면 연애질하게?”

“너네? 언니 선 긋는 거 존나 섭섭하다? 아, 마상.”

“미미 너 전에 한율이랑 DM 트고 싶다 그랬잖아. 어떻게 됐어?”

“몰라. 팔로 시도도 안했어.”

“왜에!”

미미가 폰으로 머리를 긁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애가 좀 범생이 같잖아. 섣불리 들이댔다간 뻘줌하게 차일 삘? 그런 촉이 강하게 와서.”

“난 거기 리더 완전 괜찮던데. 아까 인사할 때 잠깐 눈 마주쳤는데, 애가 서글서글하게 예쁘게 웃더라고. 키도 크고.”

“그라 보니까 완전 겁보던데?”

“그런 점이 좋은 거지! 누나! 하면서 키 큰 댕댕이가 안긴다고 상상해 봐. 와! 존나 짜릿.”

“변태냐. 남친한테나 그렇게 해달라고 해라.”

“…아, 좀 징그러울 듯.”

“너무한 년.”

감성소녀 멤버들과 조금 떨어진 소파. 저들만의 단독 대기실인 것처럼 떠드는 그들의 모습에, 아이허니 멤버들은 서로를 향해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속닥속닥.

“다들 왜 감소랑 거리 두라 그랬는지 알겠네요. 사람 많은 데서 뭐 저런 얘기들을 해?”

“…그러게. 좀 개념 없는 듯.”

“그래도 인기 많은 거 보면 좀 신기하지 않아?”

“노래도 은근히 좋은 거 많고, 팬서비스도 잘하잖아. 그라에선 완전 털털하게 19금 얘기도 아슬아슬하게 한다고 그러더라.”

“그런 건 모르겠고, 왜 크래 선배님들이랑 싸움 났는지 짐작 가네.”

리더의 말에 아이허니 멤버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싸웠다고요? 언제?”

“한 달 전인가? SBC에서 크래 막방하고 감소 컴백하고 겹친 날에 두 팀이 같은 대기실 썼었거든. 정확히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때 언성 높이면서 크게 싸웠었대.”

원샷원킬러가 너였구나

수다와 수군거림이 끊이질 않는 걸그룹 대기실과 달리, 어스래빗과 스타믹스가 함께 사용하는 대기실은 드라이어기 소리가 멎어도 조용했다. 서로 인사는 나눴으나 어색했고, 그들끼리도 대화를 나누며 떠들기보단 잠을 택한 이들이 많은 까닭이었다. 그나마 스태프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는 통에 문을 활짝 열어 놓아, 조금 어수선한 정도.

막 헤어메이크업을 다 받고 소파에 앉은 한율은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미드를 보기 위해 OTT 앱을 실행했을 때였다.

우웅. 블블 민준으로부터 톡.

-[대기실 놀러가도 됨?]

-[은 이미 문 앞ㅇㅇ]

“……?”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민준이 활짝 열린 문가에서 고개만 안으로 내밀곤 한율을 쳐다보고 있었다.

한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어오세요.”

민준이 히죽 웃으면서 들어왔다.

“하이.”

“엇?! 선배님 오셨습니까!”

한율에게 빌린 노트북을 펼치려던 길우성이 벌떡 일어나 인사했다. 깨어있는 다른 어스래빗 멤버들은 물론, 저 멀리 앉아있던 스타믹스 멤버들도 엉거주춤 일어나 고개를 꾸벅였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민준은 어색하게 웃으며 후배들에게 손을 흔들곤 빈 소파에 앉았다.

“심심해서 놀러왔어.”

“여기도 심심한데요.”

“게임 존 안 갈래? 거기 미니농구대랑 두더지잡기, 인형 뽑기랑 DDR, 총게임 등등. 별 거 다 있다고 하던데.”

게임 존은, 소리구름어워즈 참석자들에게 그저 편히 놀라고 만들어진 공간은 아니었다.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너튜브로 <소리구름어워즈 게임 존 실황>이란 제목으로 생중계되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곳에 가는 건 자유. 수상을 위해 참석하는 팀 대부분은 레드카펫 시간에 맞춰서 오는데다가, 무대에 오르기 위해 일찍 와서 리허설을 한 팀들도 그곳에 가기 보다는 쉬는 걸 선호하는 편이었다.

거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가장 큰 이유는 그림이 너무 밋밋하게 나와서. 실시간으로 그것까지 챙겨보는 사람들도 대형 팬덤 구성원일 가능성이 크고 말이다.

“시간 있을 때 가서 놀고 오자.”

“그런데 그런 기계는 동전 넣어야 작동되지 않아요?”

“괜찮아, 인형 뽑기만 빼고 다 무료로 할 수 있게 세팅됐대.”

“와! 나 갈래!”

반색하면서 일어나는 길우성을 강보배가 웃으면서 잡았다.

“숙제 안 하고?”

“아….”

길우성이 다시 노트북을 끌어안은 채 쭈그러졌다.

개학까지 앞으로 열흘. 길우성은 매일 레슨과 연습을 핑계로 최대한 미루고 미루다, 오늘에서야 방학숙제를 시작한 상황이었다.

“써한이나 호 형이 도와준다면 잠깐은 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한율은 길우성의 말을 못 들은 척했다.

“다른 선배님들은 안 가신대요?”

“다들 소파에 널브러져서 안 움직여. 시첸 줄.”

한율도 솔직히 가기 귀찮았지만, 일부러 다른 팀 대기실까지 놀러 온 선배를 그냥 보내기도 무엇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이 가실 분?”

민준도 기대로 찬 눈으로 어스래빗 멤버들을 보며 일어났다.

잠시 후, 너튜브 소리구름어워즈 게임 존 생중계 영상. 스태프들만 한가하게 돌아다니던 그곳에 네 명의 남자아이돌이 나타났다. 느긋했던 실시간 채팅창이 소란스러워졌다.

-민주니다!!!!!!!!!

-블블블블

-지구톢이 사자톢이 율톢이8ㅂ8!!!!!!!

-찬형아아아아아아아아

-민주니랑 어스래빗 친한 건 알고 있었는데,. 원카운트도???

그 외에 세계 각국 언어로 된 채팅도 많이 올라왔다. 대부분은 이들 중에서 인기가 가장 많은 민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그들의 부름은 네 사람에게 닿지 않았다.

“뭐부터 할까?”

“농구, 농구.”

라이언과 찬형이 미니 농구대 앞에 섰다. 한율과 민준은 그 옆에 서서 잠깐 구경했다.

라이언과 찬형도 함께 오게 된 건 우연이었다. 마침 찬형이 라이언에게 게임 존에 가서 놀자고 찾아온 까닭.

“오오, 잘하는데?”

털컹, 털컹.

라이언이 던지는 공은 단 한 개도 빗나가는 법 없이 바스켓 안으로 쏙쏙 잘도 들어갔다. 찬형은 쉴 새 없이 올라가는 점수와 라이언을 번갈아 보다가 웃었다.

“라이언 실력 안 죽었네?”

“히.”

“우린 저거 할래?”

민준이 총게임기를 가리켰다. 한율은 생각보다 아담한 게임 존 공간을 한눈에 훑곤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거 해본 적 있어?”

“아뇨.”

“간단하니까 몇 가지만 알면 돼. 일단 발판은….”

조작방법을 간단히 배운 후,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총을 들었다. 게임용 총은 지난 번 VR게임방에 갔을 때도 들었지만, 이건 그보다 더 가벼웠다.

‘그때도 그랬지만, 예전 생각나네.’

원거리 마법 공격 시 중요한 건 집중력과 명중률이었다. 그러나 마나를 끌어다 쓰고 마력을 낭비하며 연습하는 건 지극히 비효율적이라, 집중력도 기를 겸 활 쏘는 걸 배웠었다.

본래 세상에선.

그리고 로건 워커의 삶.

한국전쟁에 참전 중인 미군이었으나, 당시 심각한 PTSD 진단을 받고 곧바로 미국행 배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언어를 익히고 정신과 전문의로부터 아무 문제없다는 진단을 받은 뒤엔 사격장을 오랫동안 다녔다. 그때가 5, 60년대라 당시 다루었던 총기는 모두 구형이 되었지만, 이런 총게임 정도야.

한율은 게임이 시작되자 시선을 화면에 고정한 채 집중했다. 그리고 타깃이 잡히는 족족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꾸며진 가짜 총성이 울렸다.

“…….”

“……와.”

잠시 후. 어느새 생명이 다해 퇴장했던 민준이 한율의 플레이를 보며 감탄했다. 초반엔 조작 방법을 익히느라 몇 번의 실수가 있었으나, 중반부터는 순조로웠다. 한율의 플레이 시간이 길어지는 듯하자 라이언과 찬형, 카메라를 든 스태프도 구경 왔다.

찬형이 중얼거렸다.

“와, 나 여기까지 간 사람 실제론 처음 봐….”

민준도 중얼거렸다.

“지난 번 원샷원킬러가 너였구나….”

라이언은 신기한 얼굴로 말없이 한율을 쳐다보았다. 그때 게임 존에 걸그룹 히아신스 멤버 두 명이 입장. 사람들이 몰려 있어 궁금해졌는지, 그 뒤로 얼굴을 빼꼼 내미는 게 너튜브 송출 카메라에 잡혔다.

그렇게 한참. 한율이 플레이를 시작한 지 20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아.”

미리 숙지하지 않고서야 알 수 없는 기습과 함정 구간 탓에 조금씩 깎인 생명력. 여기에 주머니 속의 핸드폰까지 울려, 한율은 방아쇠울에 손가락을 건 채 총구를 빙글 아래로 떨어뜨렸다.

[GAME OVER]

“못 깼네요.”

“아….”

아쉬워하는 작은 탄식이 주변에서 흘러나왔다.

한율은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어느새 모인 사람들을 보곤 놀란 것처럼 눈을 크게 끔뻑거렸다. 사실은 한 명, 두 명 모일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머쓱하게 한 번 웃고선 총을 거치대에 놓았다.

민준이 아깝다는 얼굴로 말했다.

“한번만 더 해보면 깰 수 있지 않을까?”

한율은 핸드폰을 확인하곤 고개를 저었다. 점심 도시락이 왔으니 식기 전에 대기실로 오라는 메시지였다.

“적어도 5분 후엔 가야할 것 같아요.”

“아깝다….”

라이언도 핸드폰을 확인하곤 찬형에게 말했다.

“밥 먹으러 오래.”

“아. 그러고 보니 나도 배고프다….”

“하뉼, 나 먼저 갈게.”

“네.”

“먼저 갈게요.”

라이언과 찬형이 자리를 뜨자, 한율의 건슈팅 게임을 구경하던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흩어졌다.

한편, 게임 존 생중계 실시간 채팅창에선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의아함을 표했다.

-나만 맡았나 군필자 냄새???

-개머리판이 없어서 좀 어색하기는 했지만 자세가 각 나오던데

-밀덕인가???

-암만 ㅆ밀덕이라도 군대 안 가본 밀덕은 티가 나게 되어있음

-쟤 칼질도 잘 하던데. 서한율을 군대로

총게임을 뒤로 하고 한율이 민준과 간 곳은 인형 뽑기 기계 앞이었다. 민준이 기세등등하게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지폐 열 장을 꺼냈다.

“이거 하려고 미리 준비해서 왔지.”

턱.

그러나 민준의 기세는 5천원을 날렸을 때 절반 이하로 뚝 꺾였다.

“아…, 조금만 더하면 될 것 같은데….”

“정말 어렵네요.”

“한율이 네가 한번 해볼래?”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크레인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방향을 틀 때의 반동을 눈여겨보았다. 한율은 신중하게 레버를 조작하며 버튼을 눌렀다.

허망하게 천원을 날렸다.

민준이 지폐 한 장을 더 넣었다.

“…오, 오, 오!”

털컹. 그동안 민준이 출구 근처에다 떨군 인형까지, 두 개가 한꺼번에 떨어졌다.

“와아!”

와락!

“……?!”

민준에게 번쩍 들린 몸이 360도 휭 돌아 제자리.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한율이 멍해진 사이, 민준이 신나하며 출구로 떨어진 인형 두 개를 꺼냈다.

“나 인형 뽑은 거 처음이야! 정확히는 내가 뽑은 게 아니지만? 어쨌든! 자!”

민준이 한율의 손에다 인형 두 개를 쥐어주었다.

“성공했으니 밥 먹으러 가자!”

그러곤 곧장 가려 하기에, 한율은 버튼 옆에 있는 남은 3천원을 집었다.

“돈도 챙기셔야죠, 선배님.”

게임 존 생중계 영상에서도 한율과 민준이 퇴장했다.

-둘이 사귐???

-저 인형 갖고 싶다

-민준이 여자 있음 오해ㄴㄴ

-???????민준이 여친 없는데여

-민주니 바로 어젯밤에 여자랑 같이 있는 거 사진 찍힘 앗ㅆL 다니는 친구가 말해줌ㅇㅇ 결정적인 거 잡히길 벼르고 있다고

-허위사실 유포하면 디진다

-민주니 여자 있는 거 맞는 듯요.. 사생들끼리 민주니 여자생겼다고 오나전 구시렁거리는 거 들음

-ㅅㅎㅇ도 여친있다고 하던데??

-이게 다 먼소리여

-솔까 저 상판에 여자 없는 게 말이 되냐? ㅋㅋㅋㅋㅋ 아이돌 그만 쫓아다니고 정신차려 쟤네 죽었다 깨어나도 너네랑은 안 사겨 끼리끼리 모르냐

-돌덕질의 묘미를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

-한율이 너무 가볍게 들린 거 아냐..8ㅂ8..?? 우리 애 밥 좀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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