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찰칵.
“……?”
한율은 가까이에서 들린 셔터 소리에 잠에서 깼다. 옆에 앉아서 셀카를 찍은 박가람이 웃으며 돌아보았다. 헤어메이크업을 다 마친 얼굴이었다.
“깼어? 봐, 잘 나오지 않았냐? 이 형아가 내 얼굴을 희생하고 널 살려주었다.”
사진엔 곤히 잠든 자신과 나란히 머리를 댄 박가람이 있었다. 박가람은 곧장 울상을 지은 채 셀카를 찍곤, 자신의 SNS에 들어가 두 사진을 올렸다.
“민낯으로 잠든 율톢 얼굴이, 나보다 더 빛이 나 당황한 나. 쩜쩜쩜….”
“…….”
혼자 참 잘 놀아. 한율은 어느새 자신의 몸 위에 덮여진 담요를 걷었다. 그제야 대기실에 울리는 시끄러운 드라이어기 소리가 크게 와 닿았다. 한율은 가볍게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며 생각했다.
이렇게 시끄럽고 어수선한데 잘도 잤구나.
“어, 마침 일어났네? 세수하고 앉아.”
한율은 대기실 구석에 마련된 세면대에서 가볍게 세수를 하곤 거울 앞에 앉았다. 샵에서 출장 나온 직원이 메이크업 도구를 펼치면서 신기한 얼굴로 한율을 살폈다.
“한율이 넌 어떻게 자도 얼굴이 안 부어?”
“그래요? 좀 부은 것 같은데.”
“한율아, 넌 저녁 뭐 먹을래?”
어느새 오후 4시였다. 무대에 올라가기 대략 3시간 전.
한율은 거울을 통해 윤승우를 보며 대답했다.
“맵지 않은 고기면 아무거나요.”
“갈비도 괜찮아?”
“네.”
“OK.”
다른 멤버들에게도 먹고 싶은 메뉴를 전달받은 윤승우는 현장전과 함께 대기실을 나갔다. 그리고 한 시간이 지나서야 포장된 음식 봉투를 잔뜩 들고 돌아왔다.
“밖은 어땠어요?”
“사람들 한창 입장 중. 엄청나게 많더라.”
“우리 팬 분들 많이 왔을까 모르겠네….”
아뮤페스티벌 측은 아티스트의 공식 팬덤을 위한 자리를 따로 마련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현장관람을 위해선 협찬사의 이벤트 티켓에 당첨되거나, 직접 티켓팅에 성공해야 한다.
“현장에서 입장번호표 받는 경우 제외하곤 다들 따로 떨어졌을 텐데.”
“날도 추워졌고.”
“이따가 서울로 올라갈 때 차에서 라방할까?”
“음, 전부 같은 차에 타는 건 힘드니까 세 명? 네 명만 하자.”
저녁을 먹은 후엔 다시 각자 시간 때우기.
한율은 자신이 자는 동안 멤버들끼리 의논해서 나온 겨울여행 플랜을 살피곤 입가를 올렸다. 자기 전, 멤버들에게 말했던 ‘등산은 꼭 넣어주세요’ 의견이 수용되었다.
‘겨울의 설산만이 주는 묘한 흥취가 있지.’
“서한율.”
차남석이 한율의 옆에 앉았다.
“이제설 선배님은 어때? 같이 연기해보니까?”
같은 숙소에 살고 같은 학교에 다니곤 있지만, 요 며칠 동안은 서로 스케줄이 엇갈려 대화를 나눌 짬이 없었다.
“편해요. 상대방의 호흡을 잘 읽고 함께 상황으로 이끌어주는 느낌? NG도 거의 안 나고요.”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진짜 장난 아닌가 보네.”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평범하게 보이도록 연기하는 게 힘들잖아요. 그걸 아무렇지 않게 해내더라고요.”
“박현우랑 똑같은 말 하네.”
“형은 촬영 언제까지예요?”
차남석은 어깨를 으쓱였다.
“빨라도 11월 말 예상. 우린 컴백이랑 겹치는 다음 달 중순엔 정말 죽었다 생각하고 뛰어야 할 거다. 미리 각오해둬.”
정말 바쁘면 음방에 한번 나가서 다음 사녹까지 미리 따도 괜찮지만, 그러면 팬들 사이에서 섭섭하단 소리가 나올 수 있다. 좋아하는 아이돌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단체 스케줄도 아니고 개인 멤버스케줄 때문에 날아갔다는 불만도 나올 테고.
“네.”
대화는 잠시 소강. 차남석은 핸드폰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한율도 여행 플랜을 내려놓곤 대본을 꺼내다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 차남석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이돌도 술 자주 마셔요?”
난데없이 웬 술 얘기. 차남석은 이런 얼굴로 한율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주 마시는 사람은 마실 걸?”
“그래요?”
“어. 최근에 데뷔한 지 오래된 선배들도 예능에 나와서 그랬잖아. 한창 활동할 때 수면패턴이 완전히 엉망이 돼서, 정말 자야 할 시간에 잠이 안 오니까 술을 수면제 삼아 마셨다고.”
“아아.”
“그리고 사람이 잠을 제대로 못 자면 미치잖아. 그런데 여기에 여러 가지 압박감이랑 스트레스도 쌓이니까… 이해 못 할 바는 아닌 것 같아.”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겉은 화려해도 뒤에선 스트레스가 쌓이는 게 이 직업이었다. 노력에 퍼부은 시간이 같아도 사람마다 성과는 천차만별. 여기에 청산까지 요원한 억대 빚, 자신을 상품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의 시선, 악플, 성희롱, 성추행, 온갖 갑질, 더러운 유혹, 루머, 눈에 보이는 인기 그래프와 끊임없이 치고 올라오는 경쟁자들, 까딱했다가는 순식간에 밀려서 잊힐지 모른다는 불안감 등등.
그리고 사람들은 말한다.
네가 선택해서, 좋아서 하는 일이니 다 감내하라고. 징징거리지 말라고.
“그럼 비활동기에는요?”
“인기가 없으면 불안해서,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면 일적으로, 혹은 즐기기 위해 마시는 경우가 많겠지. 그때쯤이면 이쪽 업계 전반으로 인맥도 다양하게 쌓였을 테니까. 그런데 그건 왜? 민준 선배님이 또 술 마시고 톡 보냈어?”
“아뇨, 그냥.”
“아무튼, 너는 나중에 스트레스가 쌓여도 술로 풀 생각은 절대 하지 마. 술은 한번 버릇들이면 고치기 힘들다더라. 담배처럼.”
“네, 형도 나중에 조심해요.”
차남석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우리 집안은 알쓰라 괜찮아.”
“……?”
“술자리는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이는 자리라서 싫다더라고. 할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버지는요?”
“아버지도 마찬가지. 난 아직도 아버지가 캔맥 마시면서 얘기하다가, 뜬금없이 푹 고꾸라져서 잠든 모습이 생생해.”
“사회생활하기 힘들겠네요.”
“술이 있어야 성사되는 사회생활은 사양하고 싶다.”
옆에 앉아 너튜브로 고양이 동영상을 보던 길우성이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미간을 구기면서 하는 말.
“미자 둘이서 무슨 술 얘기를 그렇게 해?”
<2017 아시아 뮤직페스티벌> 공연 20분 전.
무대의상을 모두 갖춰 입은 어스래빗은 미리 백스테이지로 이동했다. 무대에 다다를수록 수 천 명의 기척과 거대한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백스테이지에는 처음으로 무대에 올라갈 에스더즈 멤버들이 원형으로 모여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천천히 숨 들이마시고, 내쉬고.”
“…누구야? 입 냄새 나.”
“아, 가시나 진짜.”
“긴장하지 마, 긴장하지 마, 긴장하지 마!”
이렇게 관객이 많은 무대공연은 처음인 듯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모습을 찍는 카메라.
어스래빗 멤버들은 그 카메라에 잡히지 않도록 떨어진 곳에서 목과 몸을 풀고, 인이어와 마이크에 문제가 없는지 체크했다.
“에스더즈 올라갈게요!”
시간이 되자 에스더즈가 무대 위로 올라갔다. 백스테이지에 설치된 모니터에 현재 방송 송출 카메라에 잡히는 그들의 모습이 나왔다. 그리고 고막을 마비시킬 것처럼 굉장히 큰 음악소리. 조금 미흡하게 여겨지는 불안정한 라이브와 호흡이 고스란히 들렸다. 시원하게 쭉쭉 올라가야 하는 고음 파트에서 난 삑사리까지.
“아….”
노래를 듣던 멤버들의 얼굴에 비슷한 안타까움이 스쳤다.
모니터 속 에스더즈 멤버들은 꿋꿋하게 라이브를 이어나갔지만, 그들은 무대를 끝내고 내려오자마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펑! 퍼벙! 그러나 페스티벌의 시작을 알리는 폭죽소리에 묻혀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악을 쓰는 스태프의 목소리만 간신히 들렸다.
“어스래빗 올라갈게요!”
아뮤페의 MC들이 에스더즈에 대한 소개와, 공연장 바깥에서 열리는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버스킹 상황에 대해 떠드는 동안, 어스래빗 멤버들은 어둑해진 무대 위로 올라가 대형을 갖췄다. 객석은 각양각색의 응원봉 불빛이 별처럼 반짝거렸다.
한율의 머릿속에 짧은 감상이 스쳤다.
‘예쁘네.’
한편, 무대 아래에서 어스래빗 멤버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오동식 팀장은 미간을 구겼다. 누군가 눈치 없이 애들이 무대에 오른 순간에 메시지를 보낸 까닭이었다.
그러나 이내 내용을 보곤 눈을 부릅떴다.
[토끼 대표님 - 별일없는집 촬영 중 이제설 씨가 제작사 측의 실수로 크게 다쳤다고 합니다. 끝나면 전화주세요.]
우리는 떠들면 안 돼
한율은 무대를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갈 때, 오 팀장에게 따로 불려가 이제설의 사고 소식을 들었다.
“많이 다치셨대요?”
“눈썹이랑 이마 쪽이 찢어져서 피가 나고 팔도 부러진 것 같다고 하더라. 자세한 건 올라가봐야 알겠지만, 아마 당분간은 촬영이 힘들 것 같아. 스태프도 몇 명 다쳤다고 하니.”
“대체 무슨 사고가 어떻게 났기에.”
오 팀장은 고개를 저었다.
“구체적인 사고경위는 대표님도 못 들으신 것 같아. 하지만 벌써 기자들이 냄새를 맡고 병원으로 몰려갔다고 하니까, 곧 어떻게 된 일인지 알려지겠지.”
한율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시선을 돌렸다. 멀리 복도 끝에서 이쪽으로 오는 걸그룹, 온더로즈가 보였다.
아직 이제설의 사고 소식은 듣지 못한 걸까. 같은 멤버들과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영아는, 한율과 시선이 마주치자 반가운 얼굴로 고개를 꾸벅였다. 한율도 그녀에게 묵례를 하곤 오 팀장을 바라보았다.
오 팀장이 조용히 말했다.
“그래도 인터넷에 뜰 때까진 입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네.”
대기실로 돌아간 한율은 조유찬에게 맡겨놓았던 핸드폰을 찾아 인터넷에 들어갔다. 아직 실검엔 이제설의 이름이 없었으나,
[[속보]배우 이제설, <별☆일없는 집> 촬영 중 사고!]
이제설의 이름을 검색해보니 아직 연예뉴스란 메인에 뜨지 않은 속보기사가 속속 올라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실검 상위권을 장악하는 것도 시간문제.
‘목숨에 지장은 없는 것 같으니 괜찮을 것 같기도 하지만.’
오늘 아뮤페에 온 사람들 태반이 온더로즈를 보기 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페스티벌 측에서도 온더로즈를 위해 특별히 세트를 제작해주었고, 온더로즈 측도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세 곡을 준비했다. 그러니 지금쯤이면 스엔 엔터에서도 이제설의 사고소식을 인지하고, 영아가 동요하지 않도록 온더로즈 멤버들의 외부연락 수단을 통제, 주변 사람들의 입단속을 시키고 있지 않을까.
“써한, 뭘 그렇게…, 히익? 이거 진짜야?!”
“조용히 해.”
“넵.”
멋대로 한율의 핸드폰을 훔쳐봤던 길우성이 얌전히 무릎 위에 두 손을 올려놓았다. 그러나 3초도 안 가 스륵 편하게 늘어뜨리곤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많이 다치셨대? 병원에 안 가 봐도 돼?”
“나중에 연락 오면 그때.”
“영아 선배님 이 사실 알면 엄청 놀라실 텐데. …가만.”
길우성이 한율의 어깨를 덥석 잡으면서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현우 형은?”
“그 형 오늘 촬영 오프.”
“아. 그나마 다행이네.”
한율은 누군가 켜놓은 대기실의 TV를 보았다. 케이블과 위성 채널에 생중계되고 있는 아뮤페 무대가 보였다. 현재 무대에 오른 건 원카운트. 대세 신인 보이그룹답게, 그들은 두 번째 곡을 소화 중이었다.
“Come in the 마음~.”
TV 사선 앞에선 라이언이 원카운트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안무를 따라 추고 있었다. 들썩들썩, 다소 소심한 동작으로.
아뮤페가 끝나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
몇 시간 만에 다시 들여다본 인터넷엔 예상대로 [이제설 사고]가 실검 1위를 찍고 있었다. 그 아래 실검도 [이제설 부상], [이제설 촬영 중 사고], [이제설 영아], [이제설 별일없는집]이 줄줄이 이어졌다.
연예뉴스란 메인에도 이제설 사고관련 기사가 가득했으나, 내용은 텅 비어있거나 이제설의 필모그래프나 영아와의 연애 사실만 나열한 것들뿐이었다. 사고에 관한 내용은 기껏해야,
[…한편, <별☆일없는 집> 편성을 확정한 방송사 tv Mu 측도 정확한 사고 원인을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이 정도가 고작.
“…네, 알겠습니다.”
조수석에 앉아 누군가와 통화를 하던 조유찬이 한율을 돌아보았다.
“한율아, 일단 내일 촬영 취소.”
“병문안은요?”
“아직 안정을 취해야 하는 상태고 기자들 때문에 번잡스러우니까, 나중에 제설 씨가 괜찮다고 하면 그때 찾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아.”
“네.”
“왜? 무슨 일 있어?”
같은 차에 탑승한 유호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함께 탄 차남석과 길우성은 피곤함에 잠든 지 오래.
“지금 인터넷에 들어가 보시면 알아요.”
“인터넷? ……아.”
띠링. 그때 모두의 핸드폰이 동시에 울렸다. 그린라이브 앱 알림이었다.
[어스래빗 - 귀경 중입니다! :D]
박가람과 라이언, 이건우, 강보배가 탄 다른 차량에서 예정대로 라방을 켰다. 유호가 라방 재생을 눌렀다. 한율은 그의 핸드폰으로 라방을 함께 보다가 자신의 핸드폰을 들었다.
우웅, 우웅.
블블 민준의 전화.
“네, 선배님.”
-[괜찮아?!]
다짜고짜 묻는 안부가 귀에 세게 박힌다.
한율은 핸드폰을 살짝 떨어뜨렸다가 대답했다.
“저 오늘 아뮤페 왔는데. 모르셨구나….”
-[아…, 어…? 아, 맞다….]
잔뜩 잠긴 목소리가 웅얼거리며 작아졌다.
-[아니, 한창 자고 있는데 수재 형이 갑자기 깨워서 하는 말이… 한율이 네가 찍는 드라마에서 사고가 났다고 하니까 너무 놀래가지고….]
비몽사몽 상태에서 놀란 소식을 접해, 이성을 수습할 겨를도 없이 전화한 모양.
-[그럼 넌 괜찮은 거지?]
“네.”
-[다행이다…. 그럼 사고는? 다친 사람은 없대?]
“이제설 선배님이 좀 다치셨나 봐요. 스태프 몇 분이랑.”
-[그렇구나…. 응, 알았어. 그럼 지금 서울로 올라오는 중이야?]
“네.”
-[응, 조심히 올라오고, 다음에 보자. 푹 쉬어~.]
“네, 선배님도 쉬세요.”
서울의 숙소에 도착했을 땐 새벽 3시가 다 되어갈 무렵이었다. 부산 행사 한번을 위해 24시간 만에 귀가한 셈.
“피곤하겠지만 꼭 씻고 자. 트러블 생긴다.”
“네에.”
“오늘 수고하셨습니다아.”
차에서 내린 어스래빗 멤버들은 비실비실 숙소 건물로 들어갔다. 힘겹게 계단을 올라 삼중으로 된 자물쇠를 열고, 온기 없이 싸늘하게 식은 숙소 안 공기에 놀라 보일러부터 켰다.
“너희들 머리 안 감고 그냥 자면 두피 완전 상하는 거 알지?”
“그냥 회사에서 내릴 걸. 여기에서 어느 세월에 기다리고 씻냐.”
“지금이라도 회사 가서 씻을 사람?”
“나. 회사가 가까우니 이런 점이 좋네.”
한율과 박가람, 라이언을 제외한 5명이 다시 우르르 숙소를 나갔다. 갈아입을 옷만 챙기고.
숙소 욕실은 박가람이 먼저 들어갔다. 라이언은 소파에 드러누워 멍하니 TV를 봤고, 한율은 클렌징 티슈로 메이크업을 지운 뒤 하릴없이 인터넷 기사를 훑었다.
[[속보]온더로즈 영아, 이제설 사고 소식에 놀라]
[새벽 03시 05분.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 뮤직페스티벌’에 참여한 온더로즈의 영아가 연인인 배우 이제설이 입원한 인천의 모 병원에 도착했다.]
-미쳤따;; 공연 9시 반 쯤에 끝나지 않았나? 거의 정리하고 나오자마자 달려갔네ㅋ
-무대에선 완전 해맑게 웃고 여유 있어 보였는데... 진짜 프로는 프로다ㅠㅠ.. 그러다가 일 끝나자마자 바로 달려가고 ㄹㅇ찐사랑
-공개 연애가 이래서 안 좋음. 사람들 시선 때문에라도 이 새벽에 인천까지 가야 하잖아
-지금 시간에 병원에 들어가도 됨??? 민폐 오지네
ㄴ조용히 들어가겠지ㅂㅅ아
ㄴ병원 쪽은 홍보 잘 된다고 좋아함^^ 오지랖 오지네
-다친 이제설한테는 좀 미안한데, 그래두 이쁘게 사귀는 것 같아서 보기 좋음ㅎㅅㅎ
댓글까지 대충 훑은 한율은 미간을 찡그렸다.
인기가 많으면 별 게 다 기사로 나온다더니. 정말 누군가의 댓글처럼, 사람들 시선 때문에라도 가야할 것 같은 과도한 관심이었다.
“하뉼~, 먼저 씻어~.”
욕실에서 박가람이 나오자, 소파에 누워있던 라이언이 한율에게 손을 흔들었다. 한율은 핸드폰을 자신의 2층 침대 위로 툭 던져놓았다.
“네.”
* * *
드라마 촬영 일정이 캔슬되어 학교에 등교하자, 아이들이 기다렸다는 듯 한율에게 다가와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대부분 한율이 사고가 난 어제, 드라마 촬영장이 아니라 한참 떨어진 부산의 행사에 참여했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같은 드라마를 찍는 배우이니 뭔가 알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엿보였다. 한율은 조유찬에게 미리 들은 바대로 ‘나도 잘 모르겠다’고 일관했다.
점심시간.
“하아….”
마찬가지로 드라마 촬영 스케줄이 취소되어 학교에 나온 박현우가 한율을 보자마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게 대체 뭔 일이냐…. 드라마 촬영도 촬영인데, 선배님 얼굴에 흉이라도 지면… 하.”
“그러게요.”
직접 봐야 알겠지만, 눈썹과 이마 부위에 난 상처가 크다면 아무리 잘 꿰매고 아물어도 사람의 인상이 바뀔 수 있다. 흉터제거 수술을 받기 전까진 계속 분장으로 가려야 할 테고. 또 그것 때문에 할 수 있는 배역도 한정될 터다.
여기에 팔 골절까지.
“최소 한 달 동안은 촬영 힘들 것 같다고 하던데….”
“그럼 완전히 엎어질까요? 아직 초반이잖아요.”
“글쎄. 듣기로는 이미 광고도 다 팔린 상태인데다가, 거미줄처럼 얽힌 계약이랑 위약금 문제 때문에 완전히 엎지는 못할 거야. 비슷한 이유로 방영을 미루는 것도 난감할 거고. 방송사 편성 스케줄도 꼬이잖아.”
박현우는 다른 사람들이 듣지 않는지 한차례 주변을 살피곤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너나 나나 별일 촬영종료 예정날짜 이후 스케줄이 다 잡혀 있잖아. 그런데 만약 이번 사고가 제작사 측 잘못인데, 촬영 날짜까지 막 뒤로 미뤄져봐. 예를 들어서, 네가 촬영해야 되는데 미리 잡힌 해외 스케줄 때문에 네가 일주일 동안 국내에 없어. 그럼 작품에 배우는 안 나오고 주변 사람들이 말로 ‘얜 대체 어딜 간 거야’ 하면서 대신 막 설명을 해. 그럼 작품은 작품대로 망가지고, 우리는 만들다 만 작품을 필모로 남기게 되는거지.”
길우성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그럼 주연을 교체하면?”
“아… 그러면 투자자들이 가만히 안 있을 걸? 거의 이제설 선배님보고 투자했을 테니까. 사람들이 납득할 만한 대체 배우를 하루 빨리 데려온다면 모를까.”
“이래저래 복잡하구만.”
“아무튼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제설 선배님한테 병문안 가고, 회사가 내는 결정에나 따르는 거니까 얌전히 기다리자. 회사도 우리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계산기 두드리고 있을 테니까. 아마 지금쯤 네가 찍은 화장품 광고, 거기 클라이언트도 드라마 엎어지는 거 아닐까 막 노심초사하면서 전화로 닦달하고 있을 걸?”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학교 수업이 모두 끝난 후에도 인터넷엔 이제설의 사고 원인을 다룬 기사는 뜨지 않았다. 그러나 연예뉴스란 상위권에 올라왔던 이제설 사고 기사의 최신댓글은 조금 달랐다.
-이번 사고, 안전 점검 제대로 안 끝낸 세트가 스태프 실수로 무너져서 다 같이 깔린 거라던데ㅋ 조명 때문에 높은 곳에 올라갔던 알바생이 그 현장을 생생하게 다 봤다 함
ㄴ무슨 알바생이 위에 가서 조명을 다뤄ㅋㅋㅋㅋㅋ멍청 돋네
ㄴ저 바닥은 전문 프리랜서도 계약서 안 쓴 일용직 알바생임
-사고가 오래 된 극장 안에다 또 지은 세트 때문에 났다던데 진짠가요..?
ㄴ예전에 지어진 낡은 극장->동네 카바레로 개조->망함->이번에 드라마 제작사가 빌려서 극장으로 꾸민 곳ㅇㅇ 갑자기 앰뷸런스 오고, 피투성이 된 얼굴로 실려 나오는 걸 본 동네사람이 한 둘이 아님. 근데 그게 이제설이었던 거ㅋ
역시 사람의 눈과 입이 무섭다더니. 기자보다 더 소식이 빠르고 정보가 구체적이다. 그렇다고 모든 말을 완전히 믿을 수도 없지만 말이다.
“내일은 어스래빗 앨범 재킷이랑 화보 촬영 있으니까, 모레에 학교 끝나고 같이 병문안 가면 어떨까 하는데. 괜찮아?”
차로 마중을 나온 조유찬이 한율과 박현우에게 물었다.
한율은 박현우를 한번 봤다가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가도 된대요?”
“어, 방금 제설 씨 매니저랑 통화했어. 생각보다 상태가 괜찮은 것 같더라. 드라마는… 아직 어떻게 하면 좋을지 논의 중이고. 그리고… 음, 뭐라고 해야 하나….”
룸미러를 통해 한율과 박현우를 살핀 조유찬이 말을 이었다.
“너희들 촬영할 때 말이야. 제작진들 많이 피곤해 보였었잖아?”
“네. 수면부족으로 다들 비틀거리셨죠.”
“그 얘기, 아무한테도 하지 마.”
“왜요?”
“사고에 대해서 지금 경찰이 조사 중이거든. 그런데 원인으로 강력하게 추정될 만한 이야기가 관계자인 우리 입에서 나오면… 나중에 우리만 곤란해져. 자극적인 걸 원하는 기자들한테만 좋은 일 시킬 순 없잖아.”
“하지만 그게 사고의 진짜 원인이면요?”
“만약 경찰 조사로 사실로 밝혀지고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시끄럽게 떠들어도.”
조유찬이 천천히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우리는 떠들면 안 돼. 이해는 안 되겠지만, 이건 그 스태프들을 위한 일이기도 해.”
이유는 묻지 마
[이제설 사고, 예견된 人災였다?!]
[지난 15일, tv Mu 1월 방영 예정 드라마 <별☆일없는 집> 촬영장에서 세트가 쓰러지며 배우 이제설과 스태프 4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이제설은 눈썹과 이마를 20바늘 꿰매고 오른팔이 골절되었으며, 함께 사고를 당한 스태프들도 가벼운 뇌진탕과 타박상, 골절 등의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별☆일없는 집>의 제작을 맡은 GT픽처스 관계자는 “아직 경찰 조사 진행 중인 사안이라 사고에 대해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대답했으나, 익명을 요구한 한 제보자는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터질 게 터졌구나란 생각이 들었다”고 운을 떼며 미술과 소도구 스태프들의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축적된 피로와 수면부족이 근본적인 원인일 거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한편, 경찰은 당시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기자ㅅㄲ 기사 쓰다가 급ㄸ왔냐? 왜 기사를 쓰다 마냐ㅡㅡ
-드라마 스태프들 갈갈 갈리는 거야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만ㅋ
-이거 누가 잠도 안 재우고 부려 먹는 거에 순간 빡쳐서 세트 밀었다는 소문 있던데
ㄴ사실이면 살인미수;
ㄴ어떤 ㅁㅊ놈이 암만 빡돌아도 그러치, 지 인생 말아먹으려고 탑배우 쪽으로 세트를 미냐??? 잘못 되면 손배금만 수 억 나올 텐데
ㄴ수십억까지 나올 수도 있지 이제설이 1년에 버는 돈이 얼만데ㅋ
ㄴ미치면 뭔 짓을 못함?? 40시간 넘게 깨어있어 봤냐?
ㄴ40시간 넘게 일했다고요??? ㄷㄷㄷ
ㄴ여러분은 지금 실시간으로 루머가 확산되는 현장을 보고 계십니다.
-하루에 잠 한 두 시간 겨우 자고 20시간씩 일하던 스태프가 휘청거리다가 세트 쪽으로 쓰러졌고, 피곤해서 대충 만들고 점검 제대로 안 한 부실했던 세트가 그대로 같이 넘어가서 사람들 덮친 게 팩트.
ㄴ진짜요? 헐....
-이제설 팔은 같이 있던 스태프 머리 감싸줬다가 부러진 거라 함. 이건 그 스태프가 진짜로 한 말임. 순간적으로 이제설이 안 감싸줬으면 자긴 그때 골로 갔을지도 모른다고ㅋ 그런데 정작 이제설은 자기 이마 보호 못해서 찢어짐.
ㄴ제설아ㅜㅜ.......
ㄴ진짜면 하... 정말 안타깝다ㅠㅠ... 이번 일로 배우 생활 지장생기면......ㅠㅠㅠㅠㅠㅠㅠ
ㄴ왜 그렇게 소처럼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하냐고 묻는 질문에, 연기하는 게 너무 좋아서 그렇다고 웃으면서 말하던 모습이 인상 깊게 남았는데... 정말 안타깝네요....
-감독 구속시켜라
-아는 사람 이야기 들어보니까 그나마 GT픽처가 저 바닥에서 나름 배우랑 스태프들 대우 좋다고 소문났던데ㅋ 저게 괜찮은 거면 다른 제작사는 대체...?
-잠도 못 자고 힘들면 그만 두거나 하루를 쉬지, 꼭 나와서 민폐를 끼치냐ㅋ
ㄴ빡대갈아 그러면 저 바닥에서 찍혀서 아예 푹 쉬는 수가 있어
ㄴ그럼 딴 일 하면 되잖아 ㅂㅅ아
ㄴ들어보니 드라마 촬영은 제일 허드렛일해도 일당 10만원이라더라. 설렁설렁 일해서 그 돈 받아가는 게 ㅈㄴ 양심 없는 거지ㅋㅋ 그리고 저 바닥 고오급 인력은 월 천 단위로 받아가ㅋㅋ 누가 보면 무임금 노예로 부려먹는 줄? ㅋㅋㅋㅋ
“…….”
한율은 핸드폰으로 기사에 달린 댓글까지 훑다가, 비슷한 내용의 다른 기사를 보았다.
아무리 겉으론 쉬쉬해도 얽힌 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이야기는 어디선가 새어나가기 마련. 하루가 더 지나자, 인터넷엔 슬슬 관계자가 이런 말을 했다더라, 스태프들 상태가 안 좋아보였다더라 등의 이야기가 여러 사람의 추측과 짜깁기되어 그럴싸한 경위로 만들어졌다.
정말 사실인 것처럼.
“한율아, 마스크 팩 떼자.”
“네.”
한율은 핸드폰 전원을 가볍게 눌러서 껐다. 새카매진 액정, 눈과 입 주변만 뚫린 새하얀 마스크 팩을 붙인 얼굴이 나타났다.
어느새 미지근해진 마스크 팩을 떼서 휴지통에 버리고 거울 앞에 착석. 헤어 담당과 메이크업 담당 직원 둘이 동시에 붙어 한율을 꽃단장시키기 시작했다.
오늘은 어스래빗의 싱글앨범재킷 및 굿즈에 들어갈 화보 촬영을 하는 날이었다. 오늘의 촬영을 위해 어스래빗 멤버들은 어젯밤 9시가 되자마자 회사에서 숙소로 쫓겨나 일찍 잠에 들어야 했다. 그리고 새벽 5시에 기상, 경기도 외곽의 세트장으로 왔다.
먼저 단장을 마친 박가람이 위로 뻗은 두 팔을 흔들면서 요란하게 하품했다.
“흐아아아아으아아아.”
“박가람, 시끄러!”
“체조와 동시에 목을 푸는 중입니다. 방해하지 말아주시죠?”
“사진 찍는 건데 목은 왜 풀어?”
“건우 형 모르는 구나? 내 목소리는 사진 밖으로 튀어나가 주변에 아아르음다운 아우라를.”
이건우가 비하인드 영상 촬영을 위해 어슬렁거리는 카메라를 잡았다.
“쟤가 요 며칠 다이어트를 심하게 해서 그런지 평소보다 제정신이 아닙니다, 여러분. 어휴….”
앨범재킷과 화보촬영은 한 사람당 옷을 다섯 번씩 갈아입고 헤어메이크업도 조금씩 수정해가면서 밤늦게까지 진행되었다.
“건우 형이랑 보배 형 짱쎄보인다. 부럽.”
“호 형 혼자 너무 섹시한 척 하는 거 아냐? 으으.”
“으으…?”
“남석이랑 라이언 투샷 잘 나왔는데?”
“한율이 진짜 거만해 보인다. 내 밑으로 다 꿇어, 이런 느낌.”
“애가 연기를 잘하니까 사진에서도 포스가 흘러나오네.”
이렇게 일하는 중간마다 결과물을 보며 떠들기도 하고, 본인 차례가 아닐 땐 편히 쉬기도 했다. 그러다 자정이 넘어가고 하나 둘 조용해질 무렵, 촬영이 모두 끝났다.
“내일 박현우랑 이제설 선배님 병문안 간다며?”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옆에 앉은 차남석이 물었다.
“네, 학교 끝나고 바로.”
“그러면 가서 영아 선배님이랑 마주칠 수도 있겠다. 어쩌면 다른 배우들이나 감독들하고도. 면회 시간이 한정되어 있잖아.”
표정이나 목소리에서 미약하게 묻어나오는 부러움.
“형도 가실래요?”
“일면식도 없는 사람 병문안을 내가 왜 가, 철면피도 아니고. 아무튼 잘 갔다 와. 갈 땐 음료수 말고, 한손으로 먹을 수 있는 간단한 디저트 선물이 좋을 거다.”
“네.”
다음 날,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한율은 박현우와 함께 조유찬의 차를 타고 이제설이 입원한 인천의 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병문안 선물을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직도 주변에 기자들이나, 찾아오는 연예인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있을 거야. 그러니 너무 환하게 웃지 말고, 평범하게 덤덤한 표정. 알았지?”
“누가 사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물어도 대답하지 말고. 알았지?”
조유찬에 이어 박현우가 한율에게 당부했다. 조유찬은 제가 할 말을 뺏어가는 박현우를 황당하게 쳐다보다가 한율을 바라보았다.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런데 스태프 분들은 안 찾아가 봐도 돼요?”
“아이고, 기특해라.”
조유찬이 흐뭇한 얼굴로 웃더니 이어서 대답했다.
“그럼 제설 씨 만난 다음에 간다고 연락해볼게. 그 분들이 괜찮다고 하면 가는 걸로. 현우 넌 어때?”
“당연히 가야죠.”
병원에 도착하자 미리 연락을 받은 이제설의 매니저가 마중을 나왔다. 관계자가 아니면 이제설이 입원한 VIP병실 출입이 어려운 까닭이었다.
“그럼 난 차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우리 애들 잘 부탁드립니다.”
“네.”
한율과 박현우는 과일바구니와 디저트가 든 종이가방을 들고 이제설의 매니저를 따라갔다.
VIP 병동 전용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박현우가 이제설의 매니저에게 물었다.
“다른 손님들도 와 계세요?”
“아니, 영아 씨만 와 있어. 제설 씨가 다른 분들 방문은 정중히 사양했거든. 너무 유난 떠는 것 같다고. 하지만 너희들한테는 직접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대.”
이제설의 병실 앞에는 경호원 두 명이 지키고 서있었다.
“안녕하세요.”
“수고하십니다.”
그들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병실 문 앞에 서자, 안에서 희미하게 드라이어기 소리가 들렸다. 똑똑. 매니저가 대신 노크를 한 후 문을 열어 안에다 먼저 고했다.
“제설 씨, 현우랑 한율이 왔어요. …들어가.”
병실엔 한율과 박현우만 들어갔다. 화장실과 욕실, 건식 세면대가 마주 보고 있는 짧은 복도를 지나고 나서야 널찍한 병실 안이 보였다.
병원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이제설이 멀쩡한 손을 들어 반겨주었다. 왼쪽 이마와 눈썹에 붙은 커다란 반창고와 오른팔의 깁스가 시선을 끈다.
“어서 와. 그리고 와줘서 고마워.”
이제설의 머리카락을 말려주고 있었는지, 온더로즈의 영아도 드라이어기를 든 채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한율도 영아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곤 이제설에게 말했다.
“사고 소식을 듣고 바로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냐, 사고 얘기 듣고 너희도 많이 놀랐을 텐데. 여기 와서 편히 앉아.”
“네. 그리고 이건 선배님의 쾌유를 바라는 선물입니다.”
“심심할 때 드세요.”
병문안 선물은 영아가 대신 받았다.
“감사합니다.”
“그냥 빈손으로 와도 된다고 말했는데. 매니저 형이 말 안 해줬어?”
박현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흔들었다.
“전혀요?”
“하하….”
“그럼 난 일하러 갈게, 오빠. 이따 봐.”
“이따 말고, 일 끝나면 집에 가서 편히 자고 내일 와.”
“싫은데? 바로 또 올 건데?”
영아는 한율과 박현우가 건넨 선물을 침대 옆 탁자 위에 나란히 올려놓은 다음, 자신의 가방과 핸드폰을 챙겼다.
“그럼 두 분 놀다 가요.”
“네. 들어가세요, 선배님.”
“조심히 들어가세요.”
“영아야.”
막 몸을 돌리려는 영아를 이제설이 불렀다. 그러곤 제 머리를 가리키면서 고개를 기울였다.
“빗질은 안 해주고 가?”
“머리는 이따가 와서 빗어줄 테니까, 그때까진 그 상태로 가만히 둬. 알았지? 빠이~.”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말한 영아는 그대로 병실을 나갔다.
이제설은 작게 한숨을 푹 내쉬더니, 한율과 박현우를 보며 우쭐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내 여자 친구다?”
엉망으로 헤집어진 머리 꼴을 하고선. 일할 때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팔불출 같은 모습이었다.
평소 여자 친구가 있는 이제설을 부러워하던 박현우가 흐릿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알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