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0화 (90/427)

* * *

[<별☆일없는 집> 첫 방송! 시청률 4.4%로 순조롭게 출발]

[꽃미남 삼형제의 가족 힐링 드라마 <별☆일없는 집> 첫 방송!]

[지헌, <별☆일없는 집> 첫 방 앞두고 SNS로 박현우와 한율에게 고마움 전해]

[<별☆일없는 집> 서한율, 캐릭터 소화력 300% 美친 연기력]

[지난 15일 tv Mu 새 월화드라마 <별☆일없는 집>이 첫 방송 되었다. 어스래빗의 한율이 맡은 <별☆일없는 집>의 꽃미남 삼형제 막내 ‘태바다’ 역은…(중략).

한율은 아직 미성숙하여 흔들리는 중학생 태바다의 내면을 과장되지 않은 섬세한 연기력으로 표현하며, 작년 <객귀, 해>와는 전혀 다른…(중략).]

-1화 보고 얜 진짜 연기 잘하는 애구나, 제대로 느낌. 흔하고 평범한 감정연기를 잘한다고 느낄 정도면 정말 연기 잘하는 거. 단순히 몰입력만 높은 게 아니라 그걸 표현하는 연기 기술도 좋음.

ㄴ발성이랑 발음까지 진짜ㄷㄷ

-귀하디 귀한 잘생쁜 아역배우8ㅅ8.. 많이 애껴주고 싶ㅍ다

-현우랑 정말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남보다 어색한 쌍둥이 형젠 줄

-율톢♡사랑해♡

-경질된 전 감독이 캐스팅 하나는 잘한 듯ㅋ

ㄴ하나는(x), 하나만(o).

-난 좀 신기한 게, 아빠가 국장인데 아들이 연예인하는 거 허락해줬다는 게 신기ㅇㅇ 저 바닥 완전 더러운 거 진짜 잘 알고 있을 텐데

ㄴ카바칠 수 잇으니까 시킨거게죠 저 재능 써켰으면 어쩔 뻔?

ㄴ엄마 피가 어디 가겠음?

ㄴ??? 서한율 엄마요? 아빠 아니고???

-배우는 준비됐다!!! 연출도 이 정도면 쏘쏘!!! 이제 작가만 잘하면 된다!!!

안 돼

인천의 드라마 촬영장으로 향하는 차 안.

한율은 간밤에 방송된 <별☆일없는 집> 1화 인터넷 반응을 살폈다. 너무 자극적이지 않은 가족 힐링 드라마를 지향하고 있어서 소소하게 재밌을 것 같다는 평과, 맨송맨송할 것 같다는 평이 엇갈리고 있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괜찮아지겠지.’

썩 행복하지 않은 삼 형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이후 감초 역할 조연들이 적절하게 웃음 포인트나 밸런스를 잡아줄 예정이니.

그러다 한율은 어떤 댓글 하나를 보았다.

-ㅅㅎㅇ 엄마 피 제대로 물려받긴 한 듯. 고향 유지 집안이라 좀 쉬쉬하는 분위기이긴 한데, 아직도 그 동네에선 유명하다고 하니ㅋ

역시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이다. 특히 TV에 얼굴이 나오고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면 더더욱.

그래도 여태 잠잠했던 건, 사정을 아주 잘 아는 관계자들이 입을 다물고 있어서였을 터.

모친은 제 일이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도 이젠 괜찮다고 했다. 잘못한 것 하나 없는데 왜 당시엔 위축되었는지 모르겠다고,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그때만큼 약하지도 않다며.

‘지금은 고작 댓글 한두 개지만, 타인의 얘기로 타인의 관심을 끌고자 하는 인간들은 사실을 왜곡하고 부풀리는 게 기본이니.’

안티나 악플러들이 제 입맛대로 가공시켜 퍼뜨리기 전에 선수를 치는 게 낫다.

부친의 직업이 공개되기 전, 이미 그렇게 하기로 이야기도 됐고.

“한율아, 왔어?”

오늘 찍을 씬은, 부모의 연이은 사고가 우연이 아닐지 모른다는 의심이 짙게 핀 상태에서, 태바다가 그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던 학교 일진들과 갈등이 폭발하는 전개였다. 대판 싸우고, 보호자인 태하늘이 호출되는.

“선배님 일찍 오셨네요?”

한율은 기다렸다는 듯 비실비실 다가오는 지헌을 의아한 얼굴로 보았다. 앞의 씬 촬영이 오래 걸릴 테니 적어도 3시간은 더 여유롭게 와도 됐을 텐데.

“그냥… 너희들 촬영하는 거 보고 싶어서.”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잠 못 잤어요?”

지헌이 퀭한 시선을 멀리 던졌다.

“어….”

“첫 방송 반응 살피느라 그런 건 아니죠?”

“…….”

한율은 이번엔 입을 다무는 지헌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어제 첫 방송 반응은 전체적으로 나쁘진 않았으나, 지헌의 연기에 대해선 다소 지적이 있었다.

-삼형제 중 제일 비중이 크고 중요한 역이 장남인데.. 혼자만 캐릭터랑 따로 노는 느낌ㅋ

-제설씨 돌아와요ㅜㅜ..

-이 드라마가 작가가 이제설을 머릿속에 두고 쓴 작품임ㅋ 그러니 이제설보다 급 낮은 아이돌이 연기하니 영 안 맞을 수 밖에

-ㅅ1ㅂ이래서 믿거아이돌..... 아, 막내 예외ㅡㅡ

-혼자 있으면 그럭저럭 괜찮은데... 동생들이랑 있으면 왠지 모르게 좀 어색해 보임ㅋ; 아역배우들이 넘 잘하니까 바로 비교돼서 그른가8ㅅ8..

-진짜 큰형 데려와라

물론 스타믹스 팬들이 나서서 선플을 열심히 달아주곤 있지만, 본래 칭찬 열 마디보다 욕 한마디가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후려치는 법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센 건, 팩트 폭격.

“선배님 캐릭터 연구도 제대로 할 시간 없이 급히 투입된 거잖아요. 그 짧은 준비시간 동안 바로 캐릭터와 동화될 수 있는 건 이 바닥에서도 소수의 천재뿐일걸요. 그러니 초반의 미흡하다는 평가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회차가 쌓일수록 그런 이야기도 쏙 들어갈 테니까.”

“…고마워. 머리론 잘 아는데… 어제 1화 모니터링을 하니까 사람들의 혹평이 이해되기도 하고, 부족한 면도 너무, 너무 잘 보여서 그거 하나하나 되짚다 보니까 아침이더라….”

“부족한 면이 보인다는 건 그만큼 성장했단 증거죠.”

살금살금 조용히 다가온 박현우가 불쑥 끼어들었다.

“우리가 과거의 흑역사를 떠올릴 때마다 스스로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는 것처럼. 그렇다고 선배님 초반 연기가 흑역사 수준이란 소린 아니니까 오해는 마시고.”

“하하….”

“가서 따뜻한 커피나 마시면서 정신 차립시다.”

세 사람은 스타믹스 팬들이 보내준 커피차 앞에 나란히 서서 커피를 마셨다. 지헌의 포토 배너 옆에서 함께 인증샷도 찰칵.

사진은 지헌이 본인 SNS에 올렸다.

[어제 별☆일 첫방 잘 보셨나요? 동생들이 커피 잘 마셨다고, 팬 분들에게 고맙다는 인사 대신 전해달래요ㅎㅎ #동생들보러촬영장일찍옴]

“그런데 우리, <스타학교>에서 섭외 들어왔다던데. 너희도 들었어?”

“<스타학교>요? 금시초문인데…. 거기 웬만큼 뜨거나 화제성 있는 사람 아니면 섭외 잘 안 하잖아요. 나가고 싶은 대스타들도 줄을 섰다던데.”

<스타학교>는 국민MC 유기원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주동수를 비롯해, 여러 인지도 높은 출연자들이 나오는 케이블의 인기 예능이었다. 그리고 게스트들이 본인 PR을 하기 정말 좋은 포맷이라, 아이돌 사이에선 꼭 나가고 싶은 프로그램 상위권에 뽑힐 정도.

“그래? 나 올 때 매니저 형한테 분명히 들었는데….”

“드라마 방영 도중에 홍보차 나가는 일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첫 방에 맞춰서 못해도 1, 2주 전에 녹화했어야 했는데…. 이렇게 갑자기요?”

지헌도 잘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한율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용히 커피를 마셨다.

“…….”

그리고 몇 시간 후. 박현우는 <스타학교> 제작진과 사전 인터뷰 일정이 잡혔다는 조유찬의 이야기를 듣더니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한율을 쳐다보았다.

“이거 설마… 네 아버지 인맥 빨 아니지?”

한율은 시치미를 뚝 뗐다.

“그럴 리가요.”

* * *

1월 19일. 한율은 더순한화장품 화보를 찍기 위해 스튜디오로 향했다. 입학 및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에 맞춰 나올 예정인 신제품 광고 화보였다.

먼저 와있던 진은수가 한율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작년 10월에 있었던 더순한화장품 브랜드 팬미팅 이후로 석 달만이었다.

“네, 은수 씨도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잘 지냈어요?”

“네! 아, 그리고 선배님 신인상 받으신 거 정말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광고주와 스튜디오 사람들에게도 인사를 하고 난 후엔 거울 앞에 앉았다. 헤어메이크업을 받으면서 다시 화보 콘티 숙지. 단장을 마치고 나왔을 땐 화보 촬영 메이킹 영상을 찍기 위한 VJ가 대기하고 있었다.

한율은 익숙하게 카메라 앞에 서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더순한화장품 모델, 서한율입니다. 반갑습니다.”

카메라는 화보 촬영 내내 한율과 진은수를 앵글 안에 담았다. 중간에 잡힌 휴식 시간에도. 그렇다 보니 두 사람은 처음 인사했던 걸 제외하곤 서로 잡담조차 나누지 않았다. 어떻게 찍혀서 어떻게 나갈지 모르는 까닭이었다. 사적으로 조금이라도 친한 분위기를 풍기는 영상이 나가면 괜히 사람들의 오해를 사므로.

진은수의 경우엔 3대 기획사 중 하나인 아림 엔터 소속이라, 벌써 많은 팬이 붙은 상황이라 더 조심해야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선배님.”

옷을 세 번 갈아입고, 헤어메이크업도 세 번 고치고. 화보 촬영은 오후 5시가 지나 끝났다.

사람들에게 인사를 마친 한율은 마지막으로 두 번째 화보 촬영에 대한 소감을 남기고, 먼저 스튜디오를 떠났다. 바로 40분 후인 6시에 <스타학교> 제작진과 사전 인터뷰 약속이 잡혀있어, 시간이 촉박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방송국에 도착해 <스타학교> 제작진 사무실에 들어갔을 땐 5시 59분. 하필 금요일 저녁 시간대라 도로에 차가 밀렸다.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PD와 작가가 괜찮다고 웃었다.

“약속 시간을 칼같이 맞추는 분이시네.”

“왜 이렇게 꽃단장을 하고 오셨어요, 사람 설레게.”

그들은 곧장 한율과 조유찬을 회의실로 안내했다.

“어…. 정말 이 이야기를 우리 방송에서 해도 괜찮겠어요?”

사전 인터뷰 중. PD와 작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네. …프로그램 특유의 재미를 반감시킬까요?”

PD와 작가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그건 걱정 안 되는데… 우리 프로가 예능이라 가볍잖아요. 자칫하면 시청자분들한테도 그 문제가 가볍게 느껴질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사실 그러기를 바라요. 당시엔 무거웠던 문제였지만 지금은 거의 극복하셨거든요.”

한율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지금의 제가 있는 거고.”

긍정적이고 밝은 한율의 대답에, PD와 작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왔을 땐 8시가 될 무렵이었다. 연습실로 들어가자, 막 이동식 유리 화이트보드를 멤버들 앞에 설치하던 오 팀장이 반겼다.

“스케줄 하느라 수고했다. 앞에 편히 앉아.”

“써한, 내가 네 방석을 미리 깔아놨다.”

한율은 빈 방석 위에 앉았다.

오 팀장이 바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다 모였으니 간단히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전달할 사항은, 여러분 숙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오오!”

“드디어!”

“새로 구한 숙소는 용산구로, 강변북로 바로 앞에 있는 아파트입니다. 방 개수는 넷. 화장실은 셋.”

“…….”

밝은 얼굴로 반기던 멤버들이 입을 벌린 채 굳었다.

끼긱끼긱. 고장 난 장난감처럼 이건우가 고개를 어색하게 기울였다.

“강변북로 바로 앞이면… 한강뷰?”

“한강뷰 아파트면 엄청 비싸지 않아요?! 그것도 방 네 개면….”

“48평. 전용 면적은 37평 정도라고 합니다.”

“…잠깐만요, 팀장님.”

유호가 심각한 얼굴로 손을 들었다.

“그렇게 비싼 집은 저희가 감당이 안 돼요. 아무리 숙소 비용을 사람 수에 맞춰 나눠서 낸다고 해도….”

“집주인이 보증금 없이, 월세도 평균 시세 절반으로 계산해 받겠다고 해서 괜찮습니다. 단, 조건이 하나 있는데.”

오 팀장이 한율을 가리켰다.

“한율이에게는 화장실이 딸린 독방을 줄 것.”

“혹시….”

“그럼 집주인이….”

한율은 저를 향하는 멤버들의 시선과 덤덤하게 마주 보며 대답했다.

“저에요.”

“히이익…….”

“와우….”

“금수저 플렉스….”

“써한!”

덥석. 길우성이 한율의 팔을 강하게 잡았다.

“고양이 키워도 돼?! 냥냥이네 데려오자!”

“안 돼.”

“왜에!”

한율은 조곤조곤 받아쳤다.

“스케줄이랑 학교로 계속 집을 비우게 될 텐데 새끼고양이들을 키우자고? 그리고 동물 하나 키우는 데에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지 몰라? 키우고 싶으면 전에 빌린 돈이나 먼저 갚고 말해.”

“으윽….”

길우성이 쪼그라들었다. 박가람이 키득거리며 라이언에게 속닥거렸다.

“고양이 키우자고 조르는 아이랑 부모 보는 것 같지 않냐?”

“호랑이가 아니라?”

“…어?”

“숙소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한율이에게 듣고, 두 번째 전달사항은… 여러분들 여행 가기로 했죠?”

그 외에 다음 앨범 컨셉 회의 일정과 몇몇 멤버들의 개별활동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브리핑이 끝나 오 팀장이 연습실에서 퇴장한 후, 한율은 어제 모친이 보내준 사진을 핸드폰에 띄워서 멤버들에게 보여주었다.

“일단 이게 그 집 평면도래요. 그리고 다음은 부동산에서 직접 찍은 내부 사진.”

“혹시 한율이 너도 이 집 안 가본 거야?”

“네, 저도 어제 막 매매 완료했다는 얘길 들어서. 그리고 이 집에 사는 사람이 바로 내일 나가거든요. 청소도 해야 하니까… 다음 주말에 시간 있으면 같이 가서 봐요. 웬만한 살림살이는 다 갖춰져 있지만 필요한 게 있으면 미리 주문도 해야 하고, 방도 정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솔직히….”

차남석이 낮은 한숨을 쉬더니 착잡한 얼굴로 한율을 보았다.

“너한테 이렇게 신세를 져도 괜찮은 건지 모르겠다.”

“괜찮아요. 이건 날 위해서이기도 하거든요.”

“……?”

“무슨 뜻이야?”

“서한율 너… 그렇게 안 보였는데….”

박가람이 굉장히 부담스럽게 반짝거리는 눈으로 한율을 보았다.

“이젠 우리가 없으면 외롭구나! 그렇지?!”

“아닌데요.”

“쳇.”

“역시 단호박.”

한율은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집주인에게 눈치받으면서 살기 싫으면, 혼자 자립할 정도로 더 열심히 하라고요.”

한 마디로 이런 뜻이었다. 팀이 빨리 잘 돼야 나도 더 잘 되지.

길우성이 꿍얼거렸다.

“고양이 있으면 더 힘내서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안 돼.”

나 누군지 알지?

사실 처음엔 길우성을 포함해 둘 정도만 데려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길우성이 아무리 뻔뻔하다고 해도, 같은 팀 멤버들을 제쳐두고 숙소보다 더 좋은 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지낼 정도는 아니었다. 연습생 때와는 여러모로 상황이 다르므로.

‘고양이를 키울 수 있다고 꼬드기면 아주 쉽게 넘어오긴 하겠지만.’

그건 자신이 싫었다. 어떤 미래가 다가오는지 환히 아는데, 작고 약한 짐승을 스스로 거두고 싶진 않았다. 신경 쓰일 게 뻔하므로.

그렇다고 다른 말로 설득을 하자니 귀찮았다.

“그런데 이러니까 우리 꼭 한율이한테 빌붙어 사는 것 같다. 흐.”

“월세도 시세의 반값이면 뭐 비슷한 거 아닐까.”

“그런데 여러분 이것도 생각하셔야 해요.”

멤버들이 의아한 얼굴로 한율을 돌아보았다.

“집 면적이 늘어나는 만큼, 청소 대신해주는 분 고용비도 늘어난다는 걸.”

“아.”

“그리고 한강뷰라고 다 좋진 않아요. 창 열면 도로 먼지, 미세먼지, 소음 때문에 자주 열지도 못하고,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거든요. 그래서 계절 냉난방비도 많이 나올 거예요. 공용관리비도. 아무튼 이런 비용도 나중에 월세랑 같이 정산금에서 제해질 겁니다.”

강보배가 살며시 손을 들어 질문했다.

“그럼 한율이 네가 회사에서 우리 몫의 월세를 매달 꼬박꼬박 대신 받는 거지?”

“네.”

“네 정산이랑 별개로?”

한율이 고개를 끄덕이자 박가람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이제 널 형님이라고 부르면 되는 거냐?”

“아니지. 주님이지, 건물주님.”

“아파트면… 우리 전용 주차장도 있는 거지?”

“네, 한 세대당 두 대까지 가능하대요. 한 달에 만 원씩 더 내면 세 대까지 가능하고.”

“호 형 설마… 차를 가져올 셈이야?”

유호가 씨익 웃었다.

“한 곳은 매니저 형들이 차 세우는 곳으로 두고, 나머지 한 곳은 내가 써도 되는 거잖아.”

“우리가 단체 스케줄 갈 때 거의 두 대로 움직이는 걸 잊었습니까, 휴먼?”

“에이, 회사 차를 계속 거기에 세워두진 않잖아.”

“아무튼 이렇게 나중에라도 계산이 되는 거니까 너무 내 눈치 볼 필요 없어요. 고마워하거나 미안해할 필요도 없고.”

이렇게 말한들 정말 마냥 속 편히 지낼 만한 성품들은 아니지만.

멤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겠슴다, 주님.”

“고양이….”

“그만 포기해, 우성아….”

* * *

<별☆일없는 집> 삼 형제가 인기 예능 <스타학교>를 찍는다는 소식은 스타믹스 팬들에 의해 알려졌다. 바로 스타믹스 공홈 스케줄에 해당 프로그램 녹화 일정이 기재된 까닭.

그 사실은 곧장 기사가 되어 연예뉴스란 메인에도 떴다.

[<별☆일> 삼 형제, <스타학교>에 뜬다!]

그 덕에 <스타학교> 녹화가 진행되는 26일 아침엔, 평소보다 많은 기자와 팬들이 그들의 출근 모습을 찍기 위해, 혹은 보기 위해 방송국 앞에 진을 치고 대기했다.

스타믹스의 지헌같은 경우엔 인기가 많고, 한율 또한 여러 화제성을 가진 데다가 점점 인기가 많아지는 추세인 까닭이었다. 여기에 아이돌 못지않게 잘생기고, 앞날이 유망하다고 정평이 난 박현우까지.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한율은 박현우와 함께 차에서 내려 그들에게 인사했다. 차칵차칵차칵. 쏟아지는 셔터 소리 사이로 기자들의 요구가 섞였다.

“이쪽 보고 손 흔들어주세요!”

“하트 만들어주세요!”

“서로 형제처럼 쳐다봐주세요!”

<별☆일없는 집>은 4화까지 방영된 상황. 아직 ‘태바다’와 ‘태산’의 사이는 그리 썩 좋지 않았다. 태바다가 수상쩍기 그지없는 사람에게 피아노 개인레슨을 받는다는 사실을 안 태산이, 그를 몰래 조사하고 태바다를 말리다가 다퉜기 때문이었다.

한율과 박현우는 서로를 한 번 쳐다본 후 살며시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4화 마지막 즈음에 나온 두 사람의 갈등 씬처럼 서로를 쳐다봤다. 박현우는 답답함과 걱정이 공존하지만, 좀처럼 제 말을 들어 처먹지 않는 동생에 대한 화가 섞인 얼굴로. 한율은 형이란 게 인생에 도움은커녕 방해만 한다는 짜증 섞인 눈으로.

차칵차칵차칵. 기자들은 순식간에 드라마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태산과 태바다의 모습을 재빨리 카메라에 담았다. 스타믹스의 지헌을 기다리던 팬 중 몇 명도 핸드폰을 들어서 그 모습을 찍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이만하면 됐겠지. 한율이 환하게 미소 지으면서 고개를 꾸벅이자 박현우도 따라 인사하곤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매니저, 스타일리스트와 복도를 걸으면서 박현우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나 예능 출연은 처음인데 어떡하냐….”

친구나 동생들 앞에서 늘 당당하고, 연기를 할 때도 거침이 없었던 그였지만, 예능은 처음이라 긴장되는 모양이었다.

“평소대로 솔직하게 해요. 어차피 긴 녹화 시간 중 70분을 채울 액기스만 추려서 방송에 내보내니까 너무 부담가질 필요 없을 거예요. 인원수가 몇인데.”

“묻힐까 봐 그러는 거잖아.”

“평소 하던 대로 하면 안 묻힐걸요.”

“…욕인지 적절한 조언인지 헷갈린다?”

한율은 알아서 좋은 쪽으로 받아들이라는 의미로 어깨를 으쓱였다.

<스타학교>는 출연자와 게스트가 서로 편하게 반말을 사용하는 친구라는 설정에다가, 그에 걸맞게 직설적인 화법이 오고 가는 분위기라 이번 녹화는 한율에게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멤버들 없이 혼자 카메라 앞에서 어스래빗 곡 안무를 춘 것도 처음이었고.

“나 진짜 한율이에 대해서 놀라운 소문 하나 들었는데.”

“뭔데?”

“아빠가 K본부 국장이란 것 외에 뭐가 또 있어?”

교실로 꾸며진 스튜디오에서 한율이 교탁 앞에 섰을 때, 출연자들이 저들끼리 떠들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출연자 중 한 명이 속닥거리듯 말했다.

“쟤 벌써 아파트 하나 갖고 있대.”

“브땡마블?”

“아니, 아니, 한강이 쫘악 보이는 진짜 고급아파트. 그런데 그걸 멤버들이랑 숙소로 쓰기로 했다고. 맞아?”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아마 이 방송 나갈 때 즈음엔 한창 이사준비하고 있을 거야.”

“아니, 한강뷰 아파트가 자기 소유인데 멤버들이랑 같이 산다고?!”

“어스래빗은 한율이 네가 다 먹여 살리는 거야?”

“야, 우리랑도 팀 하나 만들자. 한율이 너 센터 시켜줄게.”

한율은 씨익 웃으며 토끼 안마봉으로 제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토끼 안마봉은 예전에 팬미팅 때 팬에게 받은 선물이었다.

“풀만 먹여도 괜찮아?”

“그럼, 한강뷰가 보이는 고급아파트에서 살 수 있으면.”

“관리비랑 월세 포함해서 한 사람당 매달 60만 원씩만 내. 식비까지 더해서 백만 원으로 깎아줄게.”

“야잇!”

“있는 놈이 더한다더니.”

“그럼 멤버들한테도 그 정도씩 받는 거야?”

한율은 당연하지 않냐는 얼굴로 대답했다.

“받아야지.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

아침 일찍 시작된 녹화는 6시가 될 무렵 끝났다.

대기실로 돌아왔을 때 지헌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한율이 너… 그런 얘기 다 해도 괜찮은 거야?”

“무슨 얘기요?”

“부모님 얘기나 민준 선배님 얘기.”

“세 분 모두한테 사전에 허락받은 거라 괜찮아요.”

“그럼 다행이지만. 와, 그나저나 한강뷰 아파트… 진짜 부럽다. 그, 얼마짜린지 물어봐도 돼?”

“정확한 가격은 저도 듣질 못해서.”

박현우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이렇게 모이면 부동산 얘기만 하는지 모르겠다….”

다음 날. 드라마 촬영을 일찍 마친 한율은, 회사에서 기다리고 있던 멤버들과 함께 숙소로 사용할 집으로 향했다.

“으아… 으아아…….”

멤버들은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더 크고 고급스러운 아파트 외관을 보고 놀라 입을 벌렸다.

“무슨 단지 안에 분수랑 연못이 있냐….”

“여기 건물 안에 수영장이랑 피트니스센터도 있대. 도서관이랑 카페, 실내 골프장도….”

“안 되겠어. 빨리 열심히 일해서 벗어나야지, 나 여기 매달 나가는 관리비 감당 안 될 것 같다.”

“이런 집은 얼마나 하는 거죠.”

“인터넷으로 미리 검색해서 봤는데… 여기 평균 30억에 거래된대….”

“히익.”

“여기 유명한 연예인도 많이 산다던… 아, 이제설 선배님도 이 아파트 살지 않아?”

차남석의 물음에 한율은 고개를 기울였다.

“그래요?”

멤버들은 걱정과 부담, 기대가 복잡하게 어우러진 얼굴로 로비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한 곳은 21층. 집 안으로 들어가선 두 눈을 크게 뜬 채 내부 곳곳을 어슬렁거렸다.

“와, 진짜 넓다.”

“우리 정말 이런 곳에서 살아도 되는 거야? 신인 주제에 사치 부린다고 욕먹으면 어떡해?”

“우리 두 달하고 며칠 더 있으면 데뷔 1주년이야. 신인 아니야.”

한율도 자신이 사용할 방을 살폈다. 드레스룸과 욕조가 있는 화장실이 딸린 안방이었다. 미리 청소전문업체에 의뢰해서 깨끗하게 청소했다더니, 구석구석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밖에서 강보배가 길우성에게 하는 얘기가 들렸다.

“우성아, 만약에 여기에서 네가 키우는 고양이가 벽에 흠집이라도 내잖아? 영역표시라도 잘못해서 냄새가 스며들잖아? 그럼 수리비만 수백만 원 가볍게 깨지는 거야.”

“흐엉엉…. 내가 이놈의 비싼 집구석, 빨리 나가든가 해야지….”

이윽고 멤버들이 거실로 모였다. 조용히 그들을 지켜보던 오동식 팀장이 말했다.

“기본적인 가전제품은 모두 구비되어있으니, 이제 방을 정하고 필요한 구매 물품을 정리해봅시다. 참, 그 전에.”

오 팀장이 커다란 벽걸이 TV 외에 아무것도 없는 휑뎅그렁한 거실을 손으로 가리켰다.

“대표님께서 여러분들 이사 기념 선물로, 이곳에 둘 소파를 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오오!”

“대표님 감사합니다!”

방 하나는 한율이 사용하기로 했기에, 남은 방 셋을 멤버 7명이 나눠 써야 하는 셈. 멤버들은 1, 2, 3번 방 중에서 그나마 조금 더 넓은 2번 방을 3명이 쓰는 걸로 했다.

“한율이 네가 쪽지에다 숫자 적어서 섞어줘.”

“네.”

한율은 7장의 쪽지에다가 방 숫자를 적었다. 1, 3은 2장씩, 2는 3장으로. 그리고 똑같은 크기로 접은 후에 마구 섞어서 거실 바닥에 놓았다.

“하나둘셋 하면 하나씩 집는 거다. 번복하기 없음.”

“좋아.”

둥글게 모여 앉은 멤버들이 슬금슬금 무릎으로 일어나 쪽지를 집을 준비를 했다. 뒤로 빠진 한율이 대신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타다닥. 쪽지를 향한 멤버들의 손이 얽혔다.

“제발 잠버릇 좋은 사람으로…!”

“이건우만 피하자!”

“섭섭하게 왜 그래…. 나 이제 코 잘 안 골잖아….”

접힌 쪽지를 빠르게 펼친 차남석이 긴장한 얼굴로 멤버들을 돌아보았다.

“1번 방 손.”

다른 멤버들도 하나둘 빠르게 쪽지를 펼쳤다.

“아?”

길우성이 어벙한 얼굴로 손을 들었다.

“나다. 1번 방.”

“…에이씨.”

“뭐죠, 남석 씨? 그 반응은?!”

이사는 좌 대표가 받아놨다는 길일인 2월 5일에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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