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틀림없어. 내 눈은 못 속여.’
꽈악. 두꺼운 장갑을 낀 손이 운전대를 힘껏 잡았다.
서한율의 사생 스토커, 강상지는 지하 주차장 여기저기 노려보듯 살피며 이를 갈았다.
영화 <고양이 난로> 지방 촬영장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동안, 그녀의 머릿속은 의혹이 부정으로, 상상으로, 가능성으로 널뛰다 확신으로 굳혀졌다.
‘남들은 다 속였을지 몰라도 나는 안 속아. 왜냐하면 서한율 너를 제일 잘 아는 게 나니까!’
2년 전 <보컬리스트 시즌3>. 처음 그 프로그램 티저를 봤을 때 강상지는 말미에 나온 소년의 커다랗고 하얀 손, 그리고 깨끗한 목소리를 듣자마자 강한 예감이 들었다.
‘아! 나 얘 팬이 되겠구나.’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얼굴이 온전히 나온 예고 영상을 보자마자 기다렸던 본선 방청. 하늘이 그녀의 마음을 응원이라도 하듯이 바로 당첨되었다. 3분 만에 매진된 어스래빗의 데뷔 쇼케이스도, 첫 음방 사녹 방청도, 첫 팬 미팅도 모두.
서한율의 미소 띤 시선을 받은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한 공간,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며 깨달았다.
서한율의 미소엔 차가운 선이 그어져 있다는 걸.
그래서 자신의 연락이 반갑기보다는 부담스러웠던 게 아닐까. 들키면 안 될 부분을 들킨 상대니까.
물론 강상지도 처음엔 서한율의 불쾌하다는 반응이 섭섭했지만, 나중엔 이해했다. 어른스러운 태도와 달리 아직 한창 사춘기니, 자신을 진정 이해해주는 사람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터다.
주변의 어른들도 그랬겠지. 아이돌이 특정 팬과 사사로운 연락을 주고받으면 스캔들이 날 수 있어 위험하다고.
경찰 조사를 받았을 때 서한율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설렘이 한번 배신당하고, 재판을 받으러 갔을 때도 변호사만 달랑 나와서 또 배신당한 기분이 들었지만, 법원으로부터 민사 소장이 날아왔을 땐 안심되었다.
그것 봐. 얼마나 내가 곤란하게 느껴졌으면 이러겠어.
서한율 너도, 널 가장 잘 아는 게 나라는 걸 알고 이러는 거잖아.
‘…하지만 이건 아니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블블 민준과 이희우의 열애설이 터졌을 때. 민준의 팬이 서한율의 SNS에 이런 댓글을 남겼다.
네가 두 사람을 연결해줬냐고.
그 댓글을 보자마자 강상지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처음 <보컬리스트 시즌3> 티저를 봤을 때 받았던 예감과 비슷한 강도였다.
‘혹시.’
거듭된 우연은 운명이거나 혹은 인위적인 계략이다.
이희우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에 서한율이 카메오로 출연했다. 바로 가까이에서 얼굴을 살피는 씬이었다. 이후 이희우는 어스래빗의 데뷔 쇼케이스를 관람하면서 일부러 모자를 벗어 사진에 찍혔다. SNS엔 우연히 들킨 척 어스래빗의 팬이라고 밝히며 자신의 존재를 서한율에게 어필했다.
현재 함께 찍는 <고양이 난로>의 감독은 이희우의 고교 동창이며, 오늘 드러난 추잡한 사건은 서한율의 외숙이 몸을 담고 있는 로펌에다가 맡겨 해결했다.
그러면서 민준과 사귄다고?
‘아냐, 그럴 리가 없어….’
강상지는 점점 커지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기자들을 따라 촬영장으로 내려갔다. 서한율을 가장 잘 아는 게 자신이었다. 그러니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한눈에 진실이 보일 거라고.
하지만,
“흑….”
촬영장에서 이희우가 나오는 걸 보자마자 기자들과 섞여 사진을 찍는 척하곤 바로 차에 탔다. 이희우를 주시하던 기자들의 카메라가 곧 주변을, 자신까지 담을 것 같아서.
그 조심성 덕분이었다. 강상지는 누구에게도 절망하는 자신의 모습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쿵. 강상지는 운전대에 이마를 박으며 울먹거렸다.
“너 그런 애 아니잖아, 한율아….”
몰려온 기자들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이희우가 걱정된다는 듯이, 바로 뒤따라 나온 서한율의 모습.
그것도 모자라 둘은 곧바로 다음 촬영 장소로 가지 않고, 함께 카페 주차장에서 한적한 시간을 보냈다.
언젠가 비웃으면서 봤던 서한율과 이희우가 사귄다는 댓글은 사실이 되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다정한 척해도 실상은 타인에게 무심한 서한율이 그렇게 신경을 써줄 리가 없었다.
민준은 페이크였다.
두 사람이 함께 있어도 선후배 관계로만 보이도록 하는 위장용 도구.
“나쁜 년….”
분노는 이희우를 향했다.
열 살이나 많은 주제에 계속 서한율의 주변을 맴돌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미성년자인 서한율을, 화려한 외모로 유혹한 게 틀림없었다.
이번 영화도 서한율을 꾀어내기 위해서, 함께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나쁜 년, 나쁜 년…!”
끼기긱. 그때, 비상조명등만 켜진 주차장에 환한 전조등 불빛이 들어오며 바퀴 마찰음이 시끄럽게 울렸다. 강상지는 황급히 상체를 비틀어 숙이곤 눈물을 닦았다.
조심스럽게 드는 고개. 검은색 밴이 강상지의 차 앞을 지나갔다.
‘왔다!’
강상지는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조수석 아래에 놓아둔 물건을 집어 들었다.
“오늘 수고했어, 민선아. 들어가서 푹 쉬… 아니다. 우리 집에서 자고 갈래?”
“아니에요, 언니. 들어가서 쉬세요.”
“그래, 너도 얼른 들어가서 쉬어. 운전 조심하고.”
“네.”
이희우와 매니저의 밝은 목소리가 지하 주차장에 울렸다. 강상지는 조용히 차에서 내려, 옆 차에 붙어 몸을 낮췄다. 그리고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밴을 확인하곤 벌떡 일어나, 건물 출입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이희우를 향해 페트병을 들고 달려들었다.
‘네가 감히 우리 한율이를…!’
천장 조명으로 안이 환하게 비치는 페트병 속 화학약품이 출렁거렸다.
그 순간이었다.
쾅!
“깜짝이야!”
갑작스럽게 울린 굉음에 놀란 이희우가 기겁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곤 벌렁거리는 가슴팍을 꾹 누르며 미간을 찡그렸다.
‘뭐지…?’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평화에 너무 물들었나 봐
지글. 약품이 튄 살갗이 금세 붉게 물드는 걸 보며, 한율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실수했네.”
은은한 푸른색을 띠던 눈동자가 서서히 본래의 빛으로 돌아갔다.
“이해할 수 없는 부류라고 생각이 들었을 때 바로 멀리 치워버렸어야 했는데.”
타인에게 뿌리려던 화학약품에 되레 작은 화상을 입은 강상지를 바라보며, 한율은 미소 지었다.
“평화에 너무 물들었나 봐요.”
“…하, 한율…아…?”
혼란스러운 얼굴로 강상지가 몸을 덜덜 떨었다.
“어, 어떻게 한 거야…? 어, 어떻게 여기에…….”
강상지는 이희우를 향해 약품을 뿌리려 달려들고 있었다. 그러나 순간 시야가 새카매지더니, 아주 강한 힘이 그녀의 몸을 낚아채 벽에다 처박았다.
그러나 전신에서 울리는 고통보다 그녀를 혼란스럽게,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건 바로 눈앞의 서한율이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제게 벌어진 괴이한 현상, 시리도록 푸른색으로 빛나던 눈.
“하, 한율이 너, 너…….”
“거기 누구 있어요?”
그때 이희우가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외치며 이쪽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바닥에 나뒹구는 페트병이나 쏟아진 액체, 차 사이에 우두커니 서 있는 서한율의 존재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풀썩. 의식을 잃고 바닥에 고꾸라지는 강상지의 존재 역시.
한율이 주변에 둘러친 방음 마법과 환영 마법 때문이었다.
한율은 강상지를 내려다보며 고민에 잠겼다.
이제 이 아이를 어떻게 처리할까.
마법 쓰는 걸 들켰다고 죽이는 건 너무 극단적이다. 뒤처리도 번거롭고. 그렇다고 이대로 놔두면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며 다닐 건 뻔한 일.
‘역시 이 방법이 무난한가.’
한율은 강상지 앞에 쭈그리고 앉아 손을 뻗었다. 한율의 눈이 다시 은은한 푸른색으로 물들다 점점 짙어졌다.
‘갱생의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아이에게 기껏 모은 마력을 사용하는 건 아까우니.’
스스스. 한율은 거침없이, 그러나 정교하게 강상지의 몸에서 마나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이는 본래 세상에선 사용이 금지된 기술이었다.
인간의 생명력에 깃든 마나를 뽑는 건 단기간에 많은 마력을 모을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지만, 뽑힌 상대는 말 그대로 생명력이 깎이는 터라 윤리적인 문제가 뒤따랐다.
능력과 경험이 부족한 마법사는 마나를 제대로 추출하기는커녕 상대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고. 그런 까닭에 마탑에서는 이 기술을 쓴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하게 벌했다.
세상이 지구로 인해 엉망이 되어, 최소한의 선조차 지킬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기 전까진.
그만큼 문제가 많은 기술이지만, 현재 지구엔 마탑이 없다. 그리고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위험한 짓을 벌이려 한 범죄자에겐, 이것도 너그러운 처벌이 아닐까.
‘따지고 보면 지금 일은 내가 처벌할 권리가 없지만….’
한율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이희우의 뒷모습을 힐끗했다.
‘내가 귀찮다고 방치하는 바람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일지도 모르니.’
처벌이 아니라 뒤늦은 처리가 맞겠다.
사생 스토커가 왜 자신을 두고 이희우를 노렸는지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화악. 한율은 강상지의 몸에서 추출한 마나를 정제해서 얻은 마력으로 그녀에게 여러 마법을 걸었다. 덤으로 이런 수고를 하게 만든 수고비도 슬쩍하려 했으나,
‘지구의 마나의 질이 좋지 않아 그런가….’
한율은 강상지에게서 손을 떼며 미간을 찡그렸다.
‘지구인의 마나도 영 시원찮네.’
같은 양의 마나를 추출해 정제했다고 쳤을 때, 본래 세상의 인간에게서 나온 마력이 1이라면 지구인은 고작 0.6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그래도 자연의 마나를 마력으로 만드는 시간에 비하면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조금이라도 집중이 흐트러지면 실패할 수 있는 데다가 대상자가 의식이 없어야 한다는 조건 탓에 여러모로 귀찮은 방법이었다.
‘그래도 이만하면 됐겠지.’
한율은 이희우의 눈과 귀를 속인 마법을 두르고 유유히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스르륵. 여기저기 설치된 CCTV와 차량 블랙박스를 가리고 있던 나비 모양의 새카만 안개가 부드럽게 떨어져 나가며 사라지고, 지하 주차장엔 의식을 잃고 쓰러진 사생 스토커만 남았다.
잠시 후.
“대체 웬 나방 같은 게 CCTV를…. 어?”
그녀는 이상을 느끼고 살피러 온 경비원에게 발견되었다.
* * *
이희우는 아침부터 경찰에게 황당한 연락을 받았다.
-[이분이 이희우 씨에게 약을 뿌려 화상을 입히고 도망치다가,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차에 치였다고 주장해서요. 정말 피해당한 사실 없으시죠?]
“저 엄청 멀쩡한데요?”
간밤에 주차장에서 이상한 굉음을 듣고 잠시 살펴보긴 했지만, 사람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이분 렌터카 차량 내비에….]
가만히 경찰의 설명을 듣던 이희우의 미간이 점점 구겨졌다.
자신을 위험한 약품으로 테러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차량에서, 바로 어제 <고양이 난로> 촬영장에서부터 계속 자신을 따라다닌 행적이 나왔다는 이야기였다.
이희우는 잠시 통화 상대를 잊고 욕을 뱉었다.
“이런 미친?”
WB래빗 엔터테인먼트의 오동식 팀장도 회사의 법무를 맡는 로펌으로부터 의아한 연락을 받았다.
서한율에게 여러 혐의로 고소당해 재판까지 받았던 사생 스토커가, 서한율을 위해 배우 이희우에게 범행을 저질렀다고 경찰에게 자백했다는 당혹스런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희우 씨는요?”
-[그런 범행을 당한 적도, 수상한 사람을 본 적도 없다고 했답니다. 그런데 이 강상지 씨가 어제 한율 군 영화 촬영장에….]
포털사이트 연예 뉴스란.
[[단독]왜 이렇게 괴롭히나, 배우 이희우 수난]
[28일 새벽, 배우 이희우가 거주하는 빌라 지하 주차장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여성 A씨가 발견되었다.
경비원의 신고로 병원으로 실려 간 A씨는 당시 온몸에 골절상과 타박상을 입고 있었으며, 의식을 차린 직후 의료진에게 배우 이희우에게 화학약품을 뿌려 화상을 입혔다고 말했다.
의료진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사실 확인에 나섰으나, 이희우는 간밤에 A씨를 만난 적도, 약품 테러를 당한 적도 없으며 무사히 집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진=배우 이희우 SNS.)
앗싸일보의 단독 취재 결과 A씨가 전날인 27일, 이희우가 촬영 중인 영화 <고양이 난로> 촬영장으로 찾아가 이희우의 이동 동선을 따라다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A씨가 사건을 저질렀다고 주장한 28일 새벽엔 공교롭게도 지하 주차장에 나방 수십 마리가 들어와 CCTV와 블랙박스를 가려 아무것도 찍히지 않았다.
A씨를 최초 발견한 경비원은 A씨 근처에 떨어진 페트병에서 고약한 화학약품 냄새가 났다고 증언했다.
한편 A씨는 작년, 보이그룹 미성년자 멤버를 사이버 스토킹한 혐의로 고소당한 사실이 있다.]
-희우 누나 좀 가만히 냅둬라; 이제 막 남친한테 달린 정병들 떼어내고 알콩달콩 연애할 일만 남은 사람한테 이게 또 뭔 난리냐
ㄴ아홉수라 그럼ㅇㅇ
ㄴ알콩달콩ㅋㅋㅋ 신혼이야?
-희우 씨 방금 SNS 올린 거 보면 정말 아무 일 없이 평온해 보이던데.. 세상엔 정말 미친X가 많네요ㅉㅉ;
ㄴ원래 연예인 쫓아다니는 애들 중 정신 제대로 박힌 애 없음
ㄴ여기 있습니다.
ㄴ광적으로 좋아해서가 아니라, 어쩌다 직접 보면서 응원하러 가고 싶은 걸 두고 미쳤다고 욕하면 빡치는 게 당연한 거다. 설마 빡치게 만든 다음 제정신 아니라고 욕하는 건 아니지?
ㄴ누군가에게 힐링은커녕 스트레스만 주는 존재면 닥치자^^ 누가 너한테 덕질하게 돈 한 푼이라도 달라 그랬니?
-작년에 미성년자면 블블은 아닐 텐데.. 누구지
ㄴ저 지금 딱 한 사람 떠오르는데요;;
ㄴㅅㅎㅇ?
ㄴㅅㅎㅇ 사생이 왜 이희우한테 ㅈㄹ함..?
-대체 이희우가 뭔 잘못을 그렇게 했냐ㅜㅜ
-진짜 아이돌이랑은 연애하는 거 아니다. 더러운 건 둘째치고 별의별 미친 것들이 다 달라붙어서 테러하잖아
ㄴ이희우 SNS에다 악플 단 계정보면 사생 스토커들이 동원한 계정보다 블블 팬 부계가 훨씬 많음
ㄴ부계라고 어떻게 확신하시는데요? 지금 민준 팬들은 이희우 씨와 민준 사이 응원하고 있습니다. 허위사실 유포는 자제해주세요. :)
-ㅈㄴ소름... 내내 따라다니면서 ㅇㅅ뿌릴 기회 엿보고 있었던 거?
ㄴ결국엔 망상 속에서 뿌리고 진짜 했다고 착각한 거ㅇㅇ
ㄴㄷㄷㄷㄷ
-신고로 비공개된 댓글입니다.
-남돌 두 번 사귀었다간 보살되겄네
기사 댓글까지 훑은 한율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나라는 사방이 CCTV와 블랙박스라, 마법으로 엄폐하고 공작하는 데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놓친 실수는 없을까 조금 불안했는데, 다행히 그런 건 없는 모양이었다.
한율은 속으로 다짐했다.
다음에도 정신 상태가 해괴한 이상한 사람이 나타나면, 그땐 귀찮다고 미루지 말고 바로바로 처리해야겠다고.
* * *
주말이 지나 월요일.
오늘 영화 <고양이 난로> 큐시트는 다른 조연 배우들의 촬영 일정으로 채워져, 한율은 쉬는 날이었다. 대신 교복을 입고 나와보니 거실엔 일찍 일어난 멤버들이 라이언에게 한마디씩 하고 있었다.
“형, 긴장하지 말고 잘해.”
“우리 없다고, 외롭다고 울지 말고.”
“항상 카메라가 널 본다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해. 알았지? 정답 많이 맞추는 건 바라지 않는다.”
꼭 유치원에 처음 등원하는 아이에게 조언하는 것처럼. 막 씻고 나왔는지, 눈 아래까지 젖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채 나오던 차남석도 거들었다.
“오늘 거기에 퍼스트라인 멤버도 나간다니까 처신 똑바로 해. 괜히 부딪쳐서 사고 치지 말고.”
퍼스트라인은 어스래빗이 데뷔하고 처음 나간 음방 자리에서 그들에게 시비를 걸었던 보이그룹이었다. 당시 라이언은 그들의 시비를 웃으면서 영어로 받아쳤다.
『나 네 새끼 아니야, 이 뭉개진 찹쌀떡 같은 놈들아.』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멤버들의 말을 듣던 라이언이 미간을 팍 찡그렸다.
“나도 데뷔 1년 넘었어. 다 알아.”
“그 팀에 외국인 멤버가 있었어요?”
한율의 물음에 차남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일본인 한 명. 그 팀에서 제일 잘생겼는데 말 없는 애.”
“그 말인즉슨!”
길우성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퍼스트라인 나머지 멤버들이 매일 외국인 앞에서 한국 망신을 시키고 있단 뜻이로군!”
“그게 그렇게 되냐.”
한율은 길우성, 라이언과 함께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한율과 길우성을 학교까지 태워다주고 라이언을 샵으로 데려갈 차 안엔, 윤승우 말고도 오동식 팀장도 있었다. 라이언의 첫 개별 스케줄이라 특별히 동행하는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며 차에 올라타자, 오 팀장이 슥 웃었다.
“어제 너희들이 제출한 디자인 잘 봤다. MD팀에서 초안 보내주는 대로 너희들한테도 보내줄게.”
“네이옙.”
“그리고 한율아. 혹시 민준한테서 따로 연락받은 거 있어?”
“아이스크림이요?”
“응?”
오 팀장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한율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이내 민준이 한율에게 이것저것 먹거리 쿠폰을 곧잘 보낸다는 사실을 떠올렸는지 아아 하며 대답했다.
“일이랑 관련된 내용으로.”
한율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래.”
오 팀장은 고개를 끄덕거리다 화제를 전환했다.
“너희들 내일 뮤닷에서 첫 방송 되는 거 알지?”
“네.”
참가자들 오디션과 면접을 보는 등, 준비 작업에도 적잖은 시간을 소요하고 첫 녹화도 들어간 지 한참 된 것 같은데, 이제야 방영되는구나.
“지난번에 너희들이 찍은 영상이 첫 방송부터 나올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회사 연습생들 수준도 확인할 수 있고 도움이 될 만한 내용, 참고할 만한 내용이 나올지도 모르니까 웬만하면 꼭 봐둬. 그리고 시청자들이 직접 투표해서 뽑는 것이니만큼,”
계속 상체를 비튼 채 얘기하는 게 불편한지, 오 팀장이 자세를 바로 하며 안경을 고쳐 썼다.
“나중에 너희를 위협할 팀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니까, 특히 잘하는 애들은 눈여겨보고.”
세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1교시 수업이 끝났을 무렵, 포털사이트 실검엔 [민준]이 올라왔다. [민준 팔색엔터테인먼트]도. 연예뉴스란 메인에는 오늘 민준이 팔색 엔터테인먼트과 전속계약을 맺어, 대한민국 대표 발라더 김우재와 한 식구가 되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홀로서기 민준, 6월 디지털 싱글 앨범 발매 예정!]
이런 기사나,
[민준♡이희우, 다정하게 고양이용품점 데이트]
이런 기사도. 며칠 전 연예뉴스란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희우 사건 관련 기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블블 민준 팬들, 민준♡ 이희우에게 간식차 선물!]
[29일, 블블 민준의 팬들이 민준의 연인인 배우 이희우의 영화 <고양이 난로> 촬영장으로 간식차를 선물했다.
민준의 팬들은 [우리에게도 선물 같은 배우, 당신을 응원합니다]라는 포토 현수막과에다 자그맣게 민준의 사진도 집어넣어 두 사람의 관계를 응원하고 있음을…(중략).]
네가 와줬으면 좋겠어
-기자야 중간에 오타 났다. 검수 제대로 안 하냐?
ㄴ마감이 급했나봄ㅇㅇ
-사생이랑 선 확실히 긋는 팬들
ㄴ속으론 민준 연애하는 거 싫어도 어쩔 수 없었겠지. 가만히 두면 본인들 이미지 똥망되니까
ㄴ민준 팬덤 강제보살행
ㄴㅋㅋㅋㅋㅋㅋ
ㄴ둘이 당장 결혼해도 축하 화환 보내줄 것 같다.
“훈훈한 기사구먼.”
멋대로 한율의 핸드폰을 훔쳐본 길우성이 웃었다.
“그런데 민준 선배님 새 회사로 옮기자마자 6월 앨범 준비하시는 거 보면…. 장르가 발라든가?”
“글쎄.”
그래도 연예인을 그만둘까 하던 고민은 완전히 정리된 모양이었다. 이번에 사생 스토커들이 저지른 범죄 때문에 이 바닥에 강한 환멸이 들었을 법한데도.
우웅.
“어? 선배님 톡이다.”
양반은 못 되네.
“톡도 같이 볼 거냐?”
“아니요.”
길우성이 순순히 고개를 돌리며 떨어졌다. 한율은 민준의 톡을 확인했다.
-[오늘 오후에 시간 괜차나? 만나서 할 얘기 잇어ㅎ]
방과 후. 한율은 매점 근처 정자에 홀로 앉아있었다. 조금 전 길우성이 현장전의 차를 타고 먼저 간 까닭이었다.
한율은 7분 후면 도착할 것 같다는 민준의 톡을 확인했다.
‘무슨 용건일까.’
아침에 오 팀장이 민준으로부터 일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적 없냐고 물었던 걸 떠올리며, 한율은 하릴없이 인터넷 기사를 살폈다.
연예 뉴스란엔 벌써 관련 기사가 많았다. 비슷하게 연예기획사 소속 연습생들이 경연을 펼쳤던 <보컬리스트> 시리즈와 다른 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기사, 연습생 소속사가 뿌린 홍보성 기사, 소리소문없이 묻혔던 아이돌이 해당 프로그램에서 재기를 노린다는 기사 등.
[워크라이 유지와 채강, 도전!]
-이런 그룹도 있었음?
-검색하니 4년 전에 데뷔했다고 뜨는데... 레알 처음 듣는 이름이라 당황;
-얘네 데뷔곡은 괜찮았는데
-작년 봄에 앨범 냈으면 아직 현역이지ㅋ 데뷔 4년 차면 아무리 듣보라도 무대 짬밥도 있고 팬도 있을 텐데.. 연습생 애들이 이런 애들이랑 경쟁하는 건 불공정하지 않나?
-풋풋한 연습생들만 출연시키지, 방송물 먹을 대로 먹은 중고를 왜 받음ㅡㅡ
ㄴ말이 너무 심하시네요. 사람이 물건인가요? 중고라뇨. 출연자 프로필 살펴보니까 워크라이 말고도 한번 데뷔했지만 쓰린 아픔 겪은 아이들이 몇몇 더 보이는데.. 본인들도 안 좋은 소리를 들을 걸 알면서도, 그만큼 간절하니까 나온 거라는 생각은 못 하시나요?
ㄴ진지충 어서 오시고ㅋㅋ
ㄴ정말 무례한 분이시네요.
-유지는 노래를 굉장히 잘하고, 채강은 춤신에다 랩까지 예술입니다! 하지만 흐름을 잘 타지 못하고 불운까지 겹쳐 가지고 있는 재능을 5분의 1도 못 피웠던 안타까운 아이들입니다!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D
-와꾸 좀 별론데?
ㄴ거울 앞 혼잣말을 왜 여기에다 적으세요
ㄴ얼평하는 애들 특: 본인이 당하면 외모지상주의 엿먹어라 외침
-소속사야 포털사이트에 걸린 애들 프사부터 바꿔줘라... 검색했다가 프사보고 짠해지는 아이돌은 처음이다ㅜㅜ..
-21살, 23살ㅋㅋㅋ 참가자 중에 14살짜리도 있던데 나이 차 어쩔
ㄴ참가자 중에 28살도 있음;
ㄴ두 배ㅋㅋ 나란히 서 있으면 자존심이랑 자존감 뭉개질 듯
기억은 희미하지만, 한율도 기사에 나온 ‘워크라이’를 만난 적이 있었다. 어스래빗이 막 데뷔했을 무렵, 음방에서 딱 한 번.
‘그러고 보니….’
워크라이뿐만이 아니었다. 화려한 모습을 하고선 어색하게 인사와 앨범을 주고받았던 그 많은 아이돌은 다 어디로 갔을까.
몇몇 팀은 방송 활동, 음반 활동을 하는 등의 소식이 간간이 들려오거나 다시 만나기도 했지만, 워크라이처럼 잠깐 인사하고 1년 가까이 소식을 듣지 못한 팀도 많았다.
동료 아이돌에게도 잊히는 아이돌.
‘그래도 원하는 성과가 안 나온다고 이 일을 쉽게 포기할 마음가짐이었다면, 애초에 데뷔도 못 했을 테니.’
아이돌로 1년을 살아보니, 새파란 병아리 연습생들 사이에 껴서 다시 비상을 꿈꾸는 그들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되었다.
몇 시간씩 연습으로 채운 하루를 몇 년이나 보냈는데, 쉽게 포기할 수 있을 리가.
여기 댓글에 적힌 것처럼 흐름을 제대로 타지 못해서, 혹은 기획사가 제대로 일을 못 하거나 돈이 없어 좋은 곡, 좋은 안무를 구하지 못해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던 거라면 더 억울할 법도 했다.
누군가는 좋은 기획사에 합격하는 것 또한 실력이라고 하지만, 중소에서도 뜰 만한 이들은 뜨고, 대형 기획사라고 해서 데뷔한 이들이 모두 성공하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한율은 생각이 난 김에, 최근 이름을 듣지 못한 아이돌그룹의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그때였다.
“…선배님!”
멀리서 누군가 달려오더니 급히 속도를 낮추곤 호흡을 가다듬었다. 후우, 후….
“안녕하십니까! 여기에서 혼자 뭐 하세요?”
한율을 롤모델이라고 했던 연극영화과 1학년 현강희였다. 내일 방송되는 출연자이자, 크레용박스 엔터 소속 연습생.
한율은 핸드폰 전원 버튼을 가볍게 눌렀다.
“만날 사람이 있어서 약속 시간까지 기다리는 중이에요.”
“아, 어쩐지. 매일 촬영으로 바쁘신 것 같던데, 왜 혼자 여기 계시나 했어요.”
지난번에 인사했을 때보다 눈빛과 표정, 태도에서 한율을 향한 동경심이 흘러나온다.
한율은 덤덤히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네.”
대화의 맥을 끊는 단답. 현강희가 허둥거렸다.
“어… 그럼 저기…. 바…쁘신 거죠?”
저 바쁘냐는 질문은 지금을 두고 하는 말인가, 스케줄을 두고 하는 말인가.
한율은 의아한 시선을 던졌고, 현강희는 ‘내가 방금 무슨 말을 한 거지?’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저한테 용건 있으세요?”
“아, 아뇨! 그런 뜻이 아니라….”
긴장한 사람처럼 버벅거리면서도, 현강희는 말을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그, 용건은 아닌데 선배님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요. 물론 이런 제가 좀 이상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지실 거 잘 아는데, 정말 중학생 때부터 선배님 연기하는 모습 보고 진짜 감명받았거든요. 그래서 괜찮으시면 선배님과 얘기를…. 아니, 이게 용건이구나. 아무튼 그래서….”
“배우가 목표에요?”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현강희가 대답했다.
“네! 선배님처럼 연기실력 쩌는 아이돌이 목표입니다!”
“네….”
우웅. 민준으로부터 톡이 왔다.
-[3백 미터 앞이ㄷ]
신호에 걸린 사이에 톡을 쓰다 말고 그냥 보낸 모양. 한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응원할게요.”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럼!”
꾸벅 인사한 현강희는 왔을 때처럼 달음박질로 멀어졌다.
잘 뛰네. 한율은 현강희의 뒷모습에서 고개를 돌리곤 교문으로 향했다.
“우리가… 두 달 만에 보는 건가?”
“네. 제주도 다녀온 다음에 만났으니, 그 정도 됐네요.”
민준이 이른 저녁을 사주겠다고 데려온 곳은, WB래빗 엔터와 가까운 아담한 파스타 전문점이었다. 한율과 민준은 잎사귀가 무성하고 커다란 화분과 파티션이 교묘하게 가려주는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기사 봤어요. 팔색 엔터랑 계약하셨다면서요.”
“응, 6월에 디지털 싱글 하나 내려고 해. 너희도 6월 컴백이지?”
“네. 같이 활동하겠네요.”
“그 앨범으론 방송 활동 안 할 거야. 대신 서울이랑 일본에서 미니 팬 미팅을 할 계획인데….”
민준은 직원이 메뉴판과 물을 가져다주고 멀어진 뒤에야 말을 이었다. 한율과 시선을 마주하며.
“일본 팬 미팅 때, 한율이 네가 게스트로 와줬으면 좋겠어.”
“게스트요?”
“응.”
이는 한율에게 굉장히 좋은 제안이었다.
블블은 일본 음악 차트에서 곧잘 1위를 하고, 큰 규모의 단독 콘서트도 여러 번 성료시켰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민준 개인만 놓고 봐도 어스래빗보다 인지도가 훨씬 높을 정도.
그런 민준의 팬 미팅 게스트로 나간다는 건, 그를 좋아하는 수많은 팬에게 서한율이란 아이돌을 알릴 좋은 기회였다. 해외 K-POP 팬들은 국내 팬과 달리, 특정한 한 팀이 아닌 다른 아이돌도 두루 좋아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한율은 미소 지었다.
“시간 맞으면요.”
“역시 솔직해서 좋다. 그럼 너희 회사에 정식으로 연락 넣어도 되는 거지?”
“네.”
민준이 생글생글 웃으며 메뉴판을 내밀었다.
“고맙다. 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마음대로 골라. 형이 쏜다.”
“감사합니다.”
민준과 저녁을 먹는 동안, 한율은 어떻게 오 팀장이 먼저 알고 물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한율을 팬 미팅 게스트로 초대하고 싶다는 민준의 의사를 들은 팔색 엔터 직원이, WB래빗 측으로 넌지시 연락을 취했었다고.
“팔색 엔터가 규모는 작지만, 그래도 차분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이 들어서 좋은 것 같아. 직원도 기본 3, 4년은 일한 분들이 대다수더라고. 미팅할 때 분위기도 좋았고.”
“잘 맞는다니 다행이네요.”
“아이돌 기획사랑 달리 안무 연습할 만한 곳이 마땅찮기는 하지만, 그건 내가 따로 알아보면 되는 거니까.”
그 외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6시가 될 무렵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게는 WB래빗과 불과 백 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았으나, 민준은 혹시 모른다면서 한율을 차에 태웠다.
“그런데 한율아. 혹시 그저께… 희우 누나 사는 집 주차장에서 이상한 사람 발견됐었다는 기사 본 적 있어?”
“네. 여기저기 다친 채 발견돼서 희우 선배님에게 이상한 화학약품 뿌렸다고 자백한 사람 말씀하시는 거죠?”
“응. 그런데 그 이상한 사람이….”
민준이 조심스러운 얼굴로 말을 하다가 머뭇거렸다. 한율은 그가 선뜻 꺼내지 못하는 말을 예측하고 먼저 꺼냈다.
“알고 보니 그 사람, 예전에 저한테 고소당했던 사생이라고 하더라고요.”
“아….”
“저희 쪽으로도 경찰한테서 연락이 왔었어요. 그 사람이 선배님을 따라다닌 동선에, 그 사람을 고소했던 저도 포함되어 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차.”
“그렇구나….”
민준이 미간을 구긴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율은 낮은 한숨을 쉬었다.
“재판 끝나고 한동안 조용해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선배님에게 사과드려야겠죠?”
민준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냐, 네가 잘못한 일이 없는데 왜 사과해. 한율이 너도 피해자잖아. 탓하려면 그런 위험한 사람을 쉽게 풀어주는 사회를 탓해야지. 나도 누나가 겪은 일 생각하면 정말…. 후우…….”
철컥. 민준은 속상한 얼굴로 깊게 한숨을 쉬곤 안전벨트를 맸다. 한율도 안전벨트를 맸다.
“그나저나 놀라진 않았어?”
“뭐가요?”
민준이 시동을 걸면서 슬쩍 시선을 피했다.
“나랑… 누나가 사귄다는 얘기 들었을 때.”
“놀라긴 했죠. 두 분이 서로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걸 들은 적이 없어서. 선배님이 톡으로 희우 선배님 정말 예쁘다고 했을 때 빼곤.”
“으아…, 그걸 기억해?”
“아직 제 핸드폰에 남아있을걸요?”
“지워주라.”
“귀찮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