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5화 (115/427)

* * *

“아, 씨발. 골 존나 아프네.”

“그러게.”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야 방에서 나오는 안인섭을 보며, 같은 팀 멤버인 강정민은 피식 웃었다.

“누가 사흘 내내 술 퍼마시래? 지난 이틀간의 기억은 있어?”

“그저께는 희미한데 어제 일은 진짜 기억 안 난다. 누가 내 술에 약 탄 거 아냐?”

“그래도 형 술에 잔뜩 취해도 평소처럼 잘 씻고 자더라.”

풀썩. 안인섭이 소파에 널브러졌다. MOHE 멤버 6명이 지내는 숙소는 TV 소리 외엔 조용했다.

“나 더러운 거 극혐하잖아. 그런데 애들 다 어디 갔냐?”

“몰라? 아, 해원인 무슨 드라마 미팅 있다고 나감.”

안인섭은 시큰둥한 얼굴로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다가 미간을 구겼다. 숙취로 인한 두통이 지독했다.

“아, 진짜 골 빠개지겠네. 야, 매운탕 좀 주문해봐. 해장 좀 하게.”

“해장으로 매운 거 먹으면 속 더 버린다. 의사가 위궤양으로 넘어갈 수 있으니 조심하라 그랬다며.”

“너 먹고 싶은 것도 주문해.”

“OK.”

강정민은 핸드폰으로 배달 앱을 실행시켰다. 안인섭이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물었다.

“야. 나 이해원한테 지랄한 거 있냐? 드문드문 떠오르는 게 있는데.”

“했지.”

“뭐라고.”

“씨발, 기껏 데려와서 챙겨줬더니 혼자 깨끗한 척 잘난 척 우리 무시하는 거 존나 엿 같다? 그렇게 좋으면 다 까던가, 새끼야. 그럴 배짱도 없는 새끼가, 어쩌고저쩌고.”

“하….”

“그리고 그 얘기도 했어.”

“뭔 얘기.”

배달 주문을 마친 강정진은 미간을 찡그리며 안인섭을 쳐다보았다.

“형 진짜 기억 안 나는구나? 그저께, 그 재벌 3세 새끼가 담배 부른 건 기억나?”

“어.”

“담배가 이해원 부른 건?”

“…아, 씨발.”

그제야 안인섭은 모두 기억이 났는지 두 머리를 부여잡았다.

“내가 그 얘기를 걔 있는 앞에서 했냐?”

“어.”

“하…….”

“그놈 그 얘기 토끼 놈들한테 했다에 만 원 건다.”

안인섭은 상체를 구부린 채 이마 여기저기를 꾹꾹 누르다가 소파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씨발, 상관없어. 지들이 알면 어쩔 거야. 난 그냥 파성한테 ‘나 어스래빗 새끼들 존나 싫어요.’라고 말한 것밖에 없거든? 그 아줌마가 오버해서 소리 대표한테 말한 걸, 나더러 어쩌라고.”

“그러고 보니 파성줌마, 갈수록 형 말 잘 듣고 눈치도 보는 것 같다? 비결이 뭐임.”

“밤에 잘하면 돼.”

“에이씨, 더러워.”

“뭐, 이 더러운 새끼야. 그 아줌마 만족시키는 게 어디 쉬운 일인 줄 알아? 씨발, 너 나랑 바꿔.”

“그 아줌마 형한테만 꽂혔잖아. 형한테 세컨 있는 거 알면 눈 뒤집히는 거 아냐?”

“세컨? 아아.”

안인섭은 김안나를 떠올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세컨은 무슨. 말 잘 듣는 장난감이지.”

“그나저나 그 재벌 새끼 자꾸 나한테 크래 미랑하고 정말 안 친하냐고, 연결 좀 해보라고 지랄하는데 어떡해?”

“응? 그 새끼 전에 나한테 경험 없는 애 하나 소개해달라 그래서 연결해줬는데. 그새 갖다 버렸나….”

안인섭은 핸드폰을 꺼내서 [데뷔임박]으로 분류한 연락처를 훑었다. 그 안에 담긴 수십 명의 이름. 전부 데뷔와 돈을 위해서라면 스폰을 받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한 아이돌 연습생들이었다.

“어떡하냐고.”

안인섭은 귀찮다는 얼굴로 손을 저었다.

“걔 남자 있는 것 같다고 대충 둘러대. 잘은 모르겠지만 억대 연봉 받는 스포츠 선수랑 사귀는 것 같다, 그러면 알아서 마음 접겠지.”

“형도 미랑이한테 아직도 까여?”

“그래, 틈을 안 주더라. 아, 그런 애가 한번 넘어오면 몸이랑 마음까지 홀랑 다 주는 알찬 타입인데.”

“크큭.”

잔뜩 잠긴 목소리로 웃던 그들은 입을 다물곤 TV나 핸드폰만 보았다. 속에서 욕지기가 올라오는지, 안인섭이 입을 가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매니저한테 약 사오라고 전화해.”

“알았어.”

…탁. 강정진은 화장실로 들어가는 안인섭을 보며 생각했다.

‘저 핸드폰은 진짜 몸에서 떼어놓는 법이 없네.’

이쪽 애들한테 인기 많아

드라마 미팅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 이해원은 귀에 이어폰을 꽂고 어스래빗의 라방을 보고 있었다.

공연을 마치고 와서 피곤할 텐데, 어스래빗 멤버들은 밝은 얼굴로 능숙하거나 어설픈 영어로 단체 라방을 진행 중이었다.

[그때 절 발견한 호 형 표정이 딱 이랬어요.]

차남석이 잘생긴 얼굴을 마구 쓰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우어어얽~, 하면서 뒤로 퉁, 퉁, 퉁, 털썩.]

실감 나는 재연에 어스래빗 멤버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톡창에도 팬들의 웃음 의성어가 끊임없이 올라왔다. 한국 팬들은 물론이고 외국인 팬도 많았다. 이해원도 운전 중인 매니저의 눈치를 슬쩍 보곤 작게 큭큭거렸다.

우웅. 그 순간 화면이 전화 수신으로 바뀌었다.

[E]

“…….”

이해원의 입가에 그려졌던 미소가 사그라졌다.

“네, 사장님.”

-[야.]

“네.”

사정을 아는 사람들에겐 ‘담배’라고 불리는 그녀가 말했다.

-[너 면허 따.]

“네?”

-[면허 따라고. 두 달 준다.]

뚝. 통화가 끊겼다.

“……?”

통화 시간이 깜빡거리더니 전화 수신 창이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밝은 분위기의 라방 영상.

이해원은 이어폰을 빼고 운전 중인 매니저에게 말했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또 무슨 난리를 칠지 모르니.

“형. 저 운전면허 따야겠어요.”

“갑자기 왜.”

“사장님이 두 달 안에 따래요.”

하아. 매니저는 대놓고 한숨을 쉬었다.

“…알았어.”

* * *

[어스래빗 우성과 V12 티모, 美에서 벌인 일]

[미국 현지 날짜로 12일 LA K-POP에 참석한 어스래빗의 우성과 V12의 티모가 LA 배경의 영화 속 춤 커버영상을 찍어 각자의 SNS에 올렸다.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소리구름어워즈가 끝나고 함께 같은 비행기를 탄 게 인연이 되어 친해져…(중략).]

-님들 얘네 SNS 가서 직접 보셈ㅋㅋㅋㅋ 잘 추는데 뭔가 웃김ㅋㅋㅋㅋㅋ

-우성이 표정은 왜 꼭 그렇게 지어야 했으며ㅋㅋㅋ 뭔가 호흡 척척 맞는데 그거 보고 왜 터지는지 모르겠곸ㅋㅋㅋ

-그 와중에 추든 말든 아무 관심 없이 지나가던 외국인 스태프들이 더 웃기던데

-뭐냐 이 듣보들은

-벌인 일이라뇨ㅋㅋㅋ 진짜 뭔 일 벌인 줄

-저 와꾸로 아이돌이 가능하네ㅋ 우리반 찐따랑 존똑인데?

ㄴ응 캡처완료^ㅅ^ㅗ

ㄴ거울 좀 그만 부수고 세상으로 나와 친구! 경찰서가 널 기다리고 있어!

ㄴ그 찐따 나 좀 소개해주라

-댄싱톢 귀여웡

-날이 갈수록 예뻐지는 우성이는 오늘도 눈물점이 열일하는 구나

-영상 꼭 봐주세요, 여러분! 우성이 춤선 진짜 곱고 예뻐서 우리만 보기 넘 아까워요ㅜㅜ!!!

-얼굴에 분칠이나 한 딴따라들이 아름다운 원작을 이따위로 망쳐놓네 ㅆ극혐

ㄴ네 댓글이 더 극혐

-길우성 사랑한다 진짜

LA국제공항의 대한민국 항공사 비즈니스 라운지.

“흐흐.”

길우성이 자신의 기사를 보며 실실 웃었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댓글도 있었지만, 그런 건 흐린 시선으로 슬쩍 넘기는 모양이었다. 악플은 모두 수집되어 회사의 법무 일을 맡아주는 로펌으로 넘어갈 테니.

“어떡할래?”

“응?”

한율은 핸드폰으로 일정을 살피며 길우성에게 물었다.

“17일에 양궁 아카데미 들렀다가 가는 거 어떻냐고.”

박가람의 모친이 어렵게 예약을 잡았다는 무속인과 만나기로 한 건 18일 토요일. 한율과 길우성, 박가람, 차남석은 17일에 점심을 먹고 출발, 박가람의 집에서 하룻밤 자기로 했다.

“콜. 본선 전에 어느 정도 감은 찾아야지.”

이번 <추석특집 아이돌 스포츠 대회> 예선은 16일. 한율이 이번 양궁에 출전하겠다고 하자, MBS 측은 작년 금메달리스트라며 예선 패스권을 발급해주었다. 덩달아 같은 팀인 길우성도 본선인 23일에나 활을 들게 되었다.

“그럼 유찬이 형한테 말한다.”

“엉.”

한율은 고개를 들어 조유찬을 찾았다. 조유찬은 같은 라운지를 이용하고 있는 크리스탈 래빗, 원카운트의 매니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돌 매니저들 간에 정보를 나누는 모양이었다.

‘나중에 해야겠네.’

“우성.”

크리스탈 래빗의 미랑이 다가왔다.

“엉?”

“너 컵라면 안 먹을래?”

“갑자기 웬 라면?”

미랑이 라운지 한쪽에 마련된 컵라면 코너를 가리켰다.

“나 국물 먹고 싶어서. 면은 다 너 줄게.”

“필요 없어. 그리고, 나트륨 범벅인 라면 국물을 먹겠다니 제정신이야? 퉁퉁 붓고 싶어?”

잠시 후. 길우성은 컵라면 안에 들어있던 생라면을 커다란 과자처럼 뽀득뽀득 씹어먹었다.

“너도 좀 줄까, 써한?”

“됐어.”

후륵. 그 옆에선 미랑이 따뜻한 라면 국물을 마셨다.

“…하아. 이제야 살 것 같다.”

“어제 술 마심?”

“응. 아, 한율아.”

“네.”

미랑은 근처에 차남석과 유호만 있는 걸 확인하곤 한율에게 물었다.

“너 혹시 감소 미미랑 친해?”

“전혀요.”

“그렇구나. 그럼 됐어.”

미랑은 다시 라면 국물을 마셨다. 크으.

길우성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건 왜?”

“그 언니가 한율이랑 친하다는 식으로 말하고 다녀서, 혹시나 하고.”

“그걸 누나가 왜 신경 쓰는데? 설마…!”

미랑은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라는 듯 눈을 흘겼다.

“누가 좀 물어봐달래서 물어본 건데요.”

“그 누구가 누군데?”

“아는 애.”

“아이돌?”

“어.”

“오올~. 인기 많다, 써한?”

한율은 딱히 대답하지 않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검색하는 건 [MOHE 스케줄].

“몰랐구나? 한율이 이 바닥 애들한테 인기 많아. 조금 친해졌다 싶으면 꼭 물어보는 게 이거라니까? 한율이 여자친구 있어? 한율 선배님 여자친구 있어요?”

“다른 사람에 대해선? 잘생긴 남석 씨라든가.”

“……?”

사과패드 컬러링북 앱으로 무료함을 달래던 차남석이 고개를 들었다.

“당연히 묻지. 그런데 너무 잘생겨서 부담스럽대.”

“크으.”

“…….”

차남석은 말없이 다시 사과패드로 시선을 내렸다.

“그런데 현우 있잖아.”

“엉.”

“걘 요즘 상태 괜찮아?”

“요즘 따로 연락 안 해봤는데. 왜?”

“아냐, 아무것도. 그럼 난 간다.”

“엉.”

미랑이 크리스탈 래빗 멤버들이 모인 자리로 돌아갔다.

뽀득, …뽀각. 멍한 얼굴로 생라면을 씹어먹던 길우성이 돌연 움직임을 멈췄다.

“감이 왔다. 이 형님이 설마?!”

“……?”

길우성은 핸드폰을 꺼내 박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모습을 본 한율은 입을 열었다.

“야, 한국은 지금 새벽 3시….”

“여보시오, 박현우 씨? 혹시.”

길우성이 박현우에게 돌직구를 날렸다.

“우리 곰순이한테 고백했다가 거하게 차였소? …어? 끊었다.”

슥슥. 사과펜을 섬세하게 움직이며 차남석이 말했다.

“박현우가 그나마 쌍욕을 안 하고 끊은 건, 네가 미현이 누나 동생이라서다.”

“오우….”

한국 날짜로 8월 1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은 여느 때보다 팬과 기자로 북새통을 이뤘고, 크고 작은 소란도 벌어졌다. 포털사이트 연예뉴스란엔 LA K-POP 콘서트를 마치고 속속 귀국한 아이돌들의 포토뉴스가 줄줄이 올라왔다.

리무진 안. 한율은 자리에 앉자마자 두 귓가를 어루만졌다. 아직도 거대한 소음 속에 있는 것처럼 귀가 먹먹했다.

이건우가 라이언을 향해 말했다.

“이언아, 찬형이한테 수고했다고 전해줘.”

강보배가 멍한 얼굴로 웃었다.

“원카운트랑 온더로즈 두 팀이 먼저 나가지 않았다면 우리가 무척 험한 꼴을 당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이래서 귀국 시간대가 겹치면 안 좋은데…. 우리 실수였어.”

조유찬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하더니 멤버들을 돌아보았다.

“오늘은 시간 늦었으니 숙소로 가서 푹 쉬어.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지금 말하고.”

라이언이 손을 들었다.

“나 순두부찌개.”

리무진이 잠시 신호에 걸려서 멈췄다. 한율은 자리에서 일어나 오 팀장 옆에 앉았다.

“왜? 할 말 있어?”

“팀장님도 곧장 퇴근하세요?”

“아니, 회사에 들러서 이것저것 정리하려고. 중요한 일이야?”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닌데.”

“그럼 구내식당에서 같이 저녁 먹을까?”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몇 시간 후, WB래빗 엔터테인먼트 사무실. 구내식당에서 막 저녁을 먹고 올라온 오 팀장은 곧장 커피머신 앞으로 갔다.

우웅. 커피가 나오는 동안, 그는 벽에 걸린 어스래빗의 스케줄을 살폈다.

“흐음….”

어스래빗은 아스대 본선 녹화 바로 다음 날인 24일 일본에서 컴백. 일주일 활동 후 아시아 팬콘 투어를 떠날 예정이었다. 필리핀, 대만, 인도네시아, 싱가폴, 홍콩.

여기에 기재되어 있진 않지만, 내년에 처음으로 내놓을 시즌그리팅 화보 촬영도 며칠은 걸릴 터다.

삑, 삑. 오 팀장은 완성된 커피를 꺼내며 조금 전 서한율에게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MOHE의 안인섭과 같은 스케줄을 하고 싶다…라.’

단순히 만나고 싶은 거라면 곧 있을 아스대 녹화도 있다. 이유는 듣지 못했지만, 무언가 따로 생각이 있는 건 아닐까. 괜히 허튼 생각을 품고 사고를 칠만한 아이도 아니고.

‘일단 공홈에 기재되지 않은 MOHE 스케줄부터 확인해야겠네. 하지만 VEL 엔터 쪽엔 딱히 아는 사람이 없으니.’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퇴근하셨어요?”

같은 회사 식구인 스타일리스트 팀장에게.

“네, 다름이 아니라…. 팀장님, MOHE 스타일리스트가 자주 찾는 의상 협찬대행사 아시죠? 그쪽에 혹시 친분 있는… 아아, 아는 분이에요?”

오 팀장은 빙긋 웃었다.

“팀장님, 잠깐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 * *

8월 16일 새벽. 경기도의 한 실내종합운동장에 아이돌 55팀이 북적거리며 모였다. 이번 아스대에 협찬으로 들어온 옷과 신발을 신고.

“이프리임!”

길우성과 박가람이 이프림이 모인 관중석을 향해 행사장 풍선처럼 펄럭거리며 인사했다. 화답이 돌아왔다.

“귀여워!”

일 년 만에 아스대에 참석한 한율도 그쪽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목청 좋은 팬이 외쳤다.

“율아! 올해도 금메달 따자!”

한율은 머리 위로 크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렇게 저마다 이프림에게 인사를 한 어스래빗 멤버들은 다른 팀과도 꾸벅꾸벅 인사를 나눴다. 그동안 친분이 쌓인 아이돌과는 조금 더 대화를 오래 나누면서.

“핸드폰 해금 축하한다.”

블루액션과 마주쳤을 땐 축하 인사부터 건넸다.

지난주 소리구름어워즈. 블루액션은 수상 소감에서 고동 대표에게 핸드폰 좀 쓰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로부터 이틀 후. 블루액션 리더의 SNS에 각자 핸드폰을 든 멤버들의 단체 사진이 올라왔다.

안세현이 생글생글 웃었다.

“땡큐땡큐.”

어스래빗을 꺼리는 기색이 전혀 없는 걸로 보아, 블루액션은 자신들이 어떻게 상을 받게 되었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 오히려 저 멀리에서 MOHE 멤버들이 이쪽을 힐끗거리며 살피고 있었다.

그때 원제로 멤버들이 우르르 몰려와 시야를 가렸다.

“안녕하십니까!”

“완전한 하나!”

“원 없는 무대!”

“원! 제로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녹화장의 유일한 이질적인 팀이었다.

큰 화제가 되었던 에 출연해 팀이 되고, 멤버마다 인기도 아주 많아 벌써 사생들까지 붙었을 정도지만, 아직 앨범이라곤 프로그램 이름으로 나온 것밖에 없는 프로젝트 그룹. 그러나 MBS 측은 그들이 아스대가 방영되기 전 데뷔하니 아무 문제 없다면서 섭외했다.

이에 네티즌들은 그들의 아스대 출연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기도 했다. 미국 K-POP 콘서트야 FJ 그룹이 주관한 행사니 그렇다 쳐도, 아스대는 공영방송국이 명절마다 특집으로 내보내는 프로그램이다. 아스대가 주목을 받을 간절한 기회인 팀도 많은데, 이건 인기를 무기로 내세운 특혜라고.

방송국과 원제로의 활동 기획사가 서로의 이득을 위해 추진한 일이고, 사실상 원제로 멤버들에겐 잘못이 없다는 걸 알아도 벌써 이들을 비난하는 이도 적잖았다.

원제로 멤버들도 자신들을 향한 비난, 다른 아이돌의 경계 혹은 거북한 기류를 잔뜩 느끼고 있겠으나, 그들은 환하게 웃으며 어스래빗과 블루액션을 향해 반짝거리는 시선을 보냈다.

특히 변지욱은 인사를 하자마자 유호에게 달려들어 와락 끌어안았다.

“큰 혀엉….”

“하하. 징그러우니 떨어지렴.”

변지욱이 상처받은 얼굴로 떨어졌다.

“와. 완전 너무해.”

길우성은 변지욱의 팔을 잡아 유호와 변지욱의 거리를 더욱 떨어뜨렸다.

“야, 변지욱. 우리 팀 큰형이거든? 저리 가. 훠이! 훠이!”

화가 난 닭처럼 길우성이 팔을 날개처럼 푸드덕거리자, 변지욱도 비슷하게 두 팔을 구부정하게 벌린 채 제자리에서 뛰었다.

“와. 치사!”

차남석은 친구인 임승준을 대놓고 타박했다.

“데뷔도 안 한 놈이 여기는 왜 왔어.”

임승준은 덤덤히 대답했다.

“욕먹고 오래 살려고.”

오지랖 감사합니다

현강희는 한 발짝 앞으로 나와 한율에게 따로 또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네, 안녕하세요.”

“전부터 여쭤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요, 선배님. 선배님 영어 어디에서 배우셨어요? 지난번 선배님들 라이브방송하시는 거 봤는데, 엄청 잘하셔서요.”

한율은 미소를 슥 짓곤 대답을 회피했다.

“후배님은 어느 종목에 출전하세요?”

‘안녕하세요’ 한 마디와 고개를 꾸벅여도 본인 팀을 제외하면 54팀. 수백 명이나 되는 대인원이었으므로 서로 인사를 나누는 데에도 한참 걸렸다. 그렇다고 인사를 대충 할 수도 없는 게, 누군가의 팬인 관객들이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몸은 좀 괜찮으세요?”

한율은 이후 마주친 감성소녀의 제유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평소보다 메이크업을 연하게 하고 온 제유가 빙긋 웃었다.

“네. 그때 팔찌 주워줘서 고마워요. 오늘은 옷이랑 안 어울려서 빼고 왔지만요.”

그녀가 빈 손목을 살짝 흔들었다. 진한 향수 냄새가 났다. 아주 희미하게, 술 냄새도.

“아닙니다.”

후. 예의 바르게 말하는 한율을 향해 제유는 살며시 눈까지 휘며 웃더니 고개를 돌렸다. 감성소녀 멤버들이 멀어지고 나서야, 길우성이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제유 선배님, 그새 많이 마르신 것 같지 않아? 안색도 안 좋아 보이시고.”

한율은 푹신한 매트가 깔린 곳에 앉는 제유를 봤다. 멍하니 바닥 쪽을 응시하며 천천히 눈만 끔뻑거리는 모습이, 다른 아이돌과 신나게 웃고 떠드는 멤버들과 대조적이었다. 멤버가 웃으며 말을 건네도 그때만 입가를 올리며 반응할 뿐이었다.

2년 전 감성소녀 M/V 촬영장이나 그녀의 솔로 앨범 M/V 촬영장에서 보았던, 일에 차분히 집중하던 프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감소 팬분들도 다 걱정하는 눈치야.”

[제유는 우리가 지킨다] 슬로건을 든 남성은 조마조마한 얼굴로 제유를 쳐다보고 있었다. 거리가 멀어도 그의 얼굴에 뜬 걱정의 빛이 확연히 느껴졌다.

그때였다.

“혹시 제유한테 관심 있어?”

MOHE의 강정민이 한율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

한율은 의아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옆에 있던 길우성도 고개를 기울였다.

웬 친한 척.

강정민은 2년 전, 안인섭과 함께 <보컬리스트 시즌3>에 나왔던 인물이기는 하지만 그때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인사 외엔 따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그랬던 그가 살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관심 있으면 말해. 쟤가 내 친구의 친구거든. 어제도 같이 술 마셨을 정도로, 아주 친한 친구.”

“아이돌에게 녹화 전날 술을 권하다니. 그리 좋은 친구분은 아니시네요.”

“…뭐?”

“생각이 없거나.”

“야.”

강정민이 발끈하는 얼굴로 짧게 소리 냈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차남석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야?”

그러곤 성큼성큼 다가왔다.

“우리 애들한테 무슨 일이시죠, 선배님?”

차남석은 상당히 잘생겼지만, 무뚝뚝한 표정을 지으면 눈매가 날카롭게 보이는 편이다. 여기에 중저음의 목소리로 위협적인 분위기를 잘 자아내기까지.

‘정작 싸움 실력은 형편없지만.’

강정민이 주변을 살피더니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누가 봐도 다섯 살 아래인 차남석에게 순간 움츠러들었지만, 그걸 애써 감추려는 얼굴이었다.

“한율이 얘가 제유한테 관심 있는 것 같아서, 다른 사람한테 들킬까 봐.”

“네에.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말씀드려.”

한율은 강정민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오지랖 감사합니다.”

길우성도 따라 꾸벅였다.

“감사함당.”

“……하.”

그에 강정민은 뭐라 말하려다가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차남석은 강정민이 어느 정도 멀어지고 나서야 미간을 찡그렸다.

“뭘 가만히 상대하고 있냐.”

“무슨 수작인가 궁금해서요.”

“너도 참. 블블 선배님들 왔으니까 가서 인사나 하자.”

“네.”

블블은 7명 중 민준과 수재, 현정. 이 셋만 왔다. 그것도 운동복 차림이 아닌 반듯한 슈트를 걸치고.

“하이, 하이.”

“안녕하세요, 선배님. 왜 이렇게 멋있게 차려입고 오셨어요?”

민준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셋은 선수가 아니라 예선 현장 리포터 겸 경기 진행 보조를 맡기로 했거든.”

수재가 어깨를 으쓱였다.

“낼모레가 서른인데 파릇파릇한 10대들이랑 어떻게 같이 뛰니. 연골 닳아서 힘들어.”

“선배님….”

7년 차 선배의 등장에 다른 아이돌도 인사를 위해 다가왔다. 마침 근처에 있어서 먼저 인사를 나눴던 어스래빗 멤버들은 눈치껏 짧게 인사를 마무리하곤 비켜주었다.

“아, 한율아.”

민준이 한율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따가 점심 같이 먹자!”

“네.”

오늘 아스대 녹화 순서는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개막식, 육상과 양궁, 400m 계주 예선. 농구와 볼링은 다른 체육관으로 이동해 예선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한율이 출전하는 종목은 양궁 딱 하나. 작년 금메달리스트라고 예선은 패스였으나, 그래도 자리는 지켜야 했다. 다른 경기 예선에 나간 멤버 응원도 하고, 뒤쪽에 앉은 이프림과도 대화를 나누고.

“안녕하세요~.”

양궁 예선이 시작되기 전, 점심시간.

블블 민준이 도시락과 종이가방 하나를 들고 어스래빗 자리로 왔다. WB래빗에서 나눠준 도시락을 개봉하던 이프림도 고개를 꾸벅이며 마주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무슨 도시락이에요?”

“스테이크요.”

“와, 우리도 스테이큰데. 맛있게 드세요!”

“민준 님도 맛있게 드세요!”

이프림과 즐겁게 대화를 나눈 민준은 그제야 한율의 옆에 앉았다.

“선배님 팬분들에겐 안 가도 괜찮아요?”

“괜찮아, 허락받고 왔어. 미국은 어땠어?”

“정신없었죠, 공연장이랑 대기실은 또 왜 그렇게 먼 건지. 선배님 여행은요?”

“평범한 관광객들 사이에 섞여서 느긋하게 돌아보니까 정말 좋더라. 자, 미리 주는 네 생일 선물. 여행 간 김에 샀어.”

민준이 종이가방을 한율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종이가방 속 상자에 든 선물은, 심플하면서도 예쁜 머그잔 2종 세트였다.

“커피나 차 마시기에 좋겠네요. 잘 쓸게요.”

“응.”

두 사람은 도시락을 먹으며 각자 갔던 나라나 콘서트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문득 민준이 목소리를 낮췄다.

“한율이 너 윤영 씨 매니저 본 적 있지?”

“네. 그… 좀 무뚝뚝한 남자분 말하는 거 맞죠?”

“응. 혹시 그 사람 때문에 불쾌한 일 겪은 적 없어?”

한율은 고개를 저었다. 그와는 <목톡톡> 녹화 때나 <객귀, 해> 종방연 자리에서 스치듯 봤을 뿐이었다. <목톡톡> 녹화가 있었던 날, 크리스탈 래빗의 매니저로부터 이윤영의 매니저가 내뱉었던 저급한 이야기를 전해 듣긴 했지만.

“아니요, 딱히. 영화 촬영할 때는 안 보여서 그만두셨나 보다 했는데, 왜요?”

“최근에 희우 누나 회사에서 누나를 두고 악질 루머를 퍼뜨리던 악플러를 잡았는데, 그 사람이었대.”

한율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런 짓을…?”

“나도 나중에 들었는데.”

민준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 사람이 일을 참 못했었나 봐. 그래서 누나가, 윤영 씨 매니저 월급이 회사에다 떼이는 수수료에서 나오는 건데, 일을 제대로 하기는커녕 배우를 구박하고 억압하는 사람을 왜 계속 고용하냐, 그럴 거면 차라리 수수료 비율 재조정하고 따로 매니저를 고용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말했대. 그렇게 여차여차해서 그 사람이 관두게 됐는데.”

“거기에 앙심을 품고 그런 짓을?”

“응. 경찰한테 그렇게 진술했대. 누나가 자기 자르도록 부추겨서 그랬다고.”

쿡쿡. 젓가락으로 도시락의 스테이크를 찌르며 민준이 재차 한숨 쉬었다.

“그 얘기 듣자마자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데, 누나가 그러더라. 내가 그놈을 만나는 순간 그놈은 날 돈주머니로 볼 거라고.”

“선배님이 자신에게 손대도록 도발해서, 살짝만 닿아도 폭행당했다고 합의금, 언론 입막음비도 요구하면서 협박까지 하겠죠. 잘 참으셨어요.”

민준은 힘없이 웃었다.

“아무튼 한율이 넌 그 사람이랑 별일 없었다니 다행이다.”

그 미소엔 불안이 스며들어 있었다.

민준의 입대는 10월 초 예정.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앙심을 품고 악질적인 루머를 뿌리다 경찰에게 잡힌 남자가, 이번엔 이희우를 직접 해코지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엿보였다.

“희우 선배님 걱정되세요?”

“경호원 고용하자고 했다가 오버하지 말라고 혼났어. 하지만 그래도 많이 걱정된단 말이야. 예전에 이상한 사람이 누나가 사는 곳 지하 주차장에서 발견되기도 했고. 그리고 그때….”

다시 주위를 살핀 민준은 이번엔 더 작은 목소리로, 한율에게만 들릴 정도로 말했다.

“기사론 안 나갔는데, 그날 새벽에 누나가 이상한 일을 겪었대.”

“이상한 일이요?”

“응. 건물 안에 들어가려고 하는 순간에 등 뒤에서 난데없이 쾅 소리가 났었대. 깜짝 놀라서 어깨가 떨릴 정도로. 그래서 잠깐 주차장을 살펴봤는데 아무도 없었고.”

속닥속닥.

“그런데 누나가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이상한 사람이 발견된 거야. 분명히 누나가 살펴봤을 땐 아무도 없었던 그 자리에서.”

“그것참.”

한율은 시치미를 뚝 뗐다.

“정말 이상한 일이네요.”

“아스대에 오면 아이돌들 간의 친분을 한눈에 알 수 있다더니, 그 말이 맞았네.”

팬들이 보내준 도시락을 먹는 중. 원제로 멤버가 넓은 경기장 여기저기에서 점심을 먹는 다른 아이돌을 보며 말했다.

“지욱이도 어스래빗 리더 분이랑 같이 밥 먹고 있잖아.”

“같은 소속사잖아.”

“그런데 어스래빗에 은근히 인싸가 많은가봐. 지금 저기에 블블 민준 선배님이랑 원카운트 찬형도 있고…. 어? 스타믹스 지헌 선배님이랑 JE 선배님도 음료 들고 간다.”

“…….”

정민솔은 말없이 어스래빗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밥을 다 먹었는지, 경기장으로 내려온 길우성이 V12 멤버와 정체불명의 막춤을 추고 있었다. 거기에 스카이러너의 용맹이 끼어들더니, 곧 온더로즈 노래의 커버 안무를 추기 시작했다. 희미하게 노랫소리가 들렸다. 그 앞에선 아스대 스페셜 MC로 온 온더로즈의 영아가 짝짝 박수를 치며 좋아하고.

당연히 세 팀의 팬들도 그 모습을 찍고자, 가까이에서 보고자 난리가 났다.

“저건 백퍼 비하인드 영상으로 나가겠다. 벌써 카메라 붙었어.”

“심지어 세 분 다 엄청 잘 추셔.”

“나, 나도 저 춤 아는데…!”

“달려가. 달려가서 춰.”

“으윽…. 내가 어떻게 저길 끼냐….”

“정말 프로는 스스로 분량을 뽑아낸다더… 아, 지욱이 내려간다.”

“지욱이도 오늘부터 프로야? 아무렇지 않게 끼어서 같이 추네.”

정민솔은 시선을 더 들어서 서한율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블블 민준과 나란히 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래에서 어떤 춤판이 벌어지든 말든 개의치 않고.

“그런데… 서한율이랑 퍼플아워 진은수랑 사귄다는 소문 있던데. 사실일까? 둘이 같이 화장품 모델 하면서 자주 만난다던데.”

“그건 아닐 거예요.”

멤버들의 시선이 정민솔을 향했다. 임승준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눈길을 보냈으나, 정민솔은 태연히 말을 이었다.

“한율이가 워낙 사람을 잘 챙기고 매너도 좋아서 그런 오해가 생길 순 있겠지만요. 예전에 회사에서도….”

“야, 민솔.”

“왜에. 나쁜 일 아닌데.”

“뭔데?”

정민솔은 임승준에게 보란 듯이 웃은 후 채근하는 멤버를 향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예전에 회사에서 여자 연습생 한 명이 정신을 잃고 쓰러진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망설이는 사람들 제치고 바로 업어서 2층에서 1층까지, 그것도 구급차가 올 때까지 기다린 적도 있었어요. 대단하지 않아요?”

“와, 스윗한 미담.”

“역시 되는 사람은 될만한 이유가 있다니까. 내 친구도 그러더라. 음방에서 마주치면 정말 항상 예의 바르게 인사한다고. 아버지가 KBC 국장이니까 조금은 거만하거나 그럴 수도 있잖아? 그런데 전혀 그런 게 없대.”

“그래서 인기 많으신가 보다. 아이허니의 어떤 분도 저분 팬이라고 하던데….”

그 이야기를 들으며 현강희는 본인 일인 것처럼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얼굴로 생글생글 웃었다.

임승준이 슬쩍 정민솔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야.”

“왜.”

“넌 또 뭘 쓸데없는 얘길 하고 그래.”

정민솔은 뭐가 문제냐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WB래빗 사람들이면 다 아는 유명한 미담이잖아. 왜 좋은 얘길 해도 지랄인 건데.”

딴 얘기하자

커뮤니티 사이트의 아이허니 게시판.

[제목: 아스대 처음 가본 후기.]

[1. 우리 애들 실물 갓존예

2. 남자놈들 ㅈㄹ산만함.

3. 빨주노초파남보.

4. ㅊㄴㅅ 레알 잘생김.

5. 팬들이랑 같이 밥 먹는 애들도 있었음.

6. ㅇㅈㄹ 좀 주눅 들어 보였음.

7. 새벽부터 새벽까지 녹화함.

8. 스태프들 듣보 노골적으로 무시함.

9. 경기는 ㄹㅇ 재미없음.

10. 다음 주 본선도 보러감.

-글쓴이 끝까지 버티긴 했네 난 2년 전에 갔을 때 담날 출근 때문에 중도 탈주했는데

ㄴ미리 휴가받아놓는 센스

-방송국 ㅅㄲ들 인기 없으면 대놓고 면박주는 거 개가틈

-ㅊㄴㅅ이 누구

ㄴ(이미지) <얘

ㄴㅅㅂ 잘생겼네

-아스대 가면 썸타는 애들도 보인다며?

ㄴ몇 명 눈에 띄긴 함ㅇㅇ 팬들은 모른 척해주더라

이 게시글은 금세 다른 게시글에 밀려 1페이지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한참 밀려난 뒤에 조회수가 폭발, 감사를 표하는 댓글이 달렸다.

-진솔한 목격담 ㄱㅅ

-후기 감사합니다.

-후기 감사.

글쓴이는 왜 대충 쓴 후기에 감사를 표하는지 의아했으나, 곧 댓글을 단 이들이 누군지 알아차렸다.

바로 원제로의 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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