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7화 (117/427)

* * *

8월 23일 새벽. 지난주 <추석 특집 아이돌 스포츠대회> 예선 녹화가 진행되었던 실내종합경기장. 본선에 진출한 아이돌 팀이 모였다. 인원은 줄었지만 어수선한 건 여전했다.

다른 팀과 인사를 나누던 중, 한율은 퍼플아워의 진은수와도 인사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녕하세요.”

“선배님, 저기….”

“네.”

음악방송 대기실 복도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 이후로, 진은수는 이런 공개적인 자리에서 한율과 말을 나누기는커녕 반가운 티도 내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번엔 머뭇거리며 거리를 좁혔다. 같은 팀 멤버들이 다른 팀에게 인사하러 자리를 옮기는 데도.

“혹시… 뮤직…….”

그 순간이었다.

“얘들아, 안녕!!”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그들의 주의를 끌었다. 20여 년 전 활동했던 1세대 아이돌 대선배가 두 팔을 흔들며 등장했다. 아이돌은 너나 할 것 없이 그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한율과 진은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대선배가 활짝 웃으며 한쪽을 가리켰다.

“새벽이라서 춥잖아. 그래서 따뜻한 간식 좀 챙겨왔으니까, 가서 마음껏 먹어!”

“감사합니다!”

늘 배고픈 아이돌들이 그곳을 향해 우르르 움직였다. 한율은 순식간에 허전해지는 주변을 살피곤 진은수를 보았다.

“미안해요. 조금 전 잘 못 들었는데, 뭐라고 했어요?”

“아, 그게….”

진은수도 썰렁해진 주변을 살피더니 머쓱하게 웃었다.

“아니에요, 아무것도.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그러곤 꾸벅 인사하곤 종종걸음으로 멀어지다… 우뚝 멈췄다. 당황한 얼굴로 잃어버린 멤버들을 찾아 헤매는 진은수를 향해, 위에서 지켜보던 남성 관객이 외쳤다.

“은수야! 한 시 방향!”

“…네에! 감사합니다!”

본선 녹화도 예선처럼 큰 잡음 없이 진행되었다. 올해 설 아스대 70m 육상에서도 은메달을 획득했던 길우성이, 이번에 처음 출전한 원제로 멤버에게 밀려 또 은메달을 딴 걸 제외하곤.

“이번엔 금메달 딸 수 있었는데…! 승준이 형! 승준이 혀엉…!”

“미안, 나 초등학생 때 육상선수였… 아니, 왜 날 업는 건데!”

길우성은 원제로 멤버들과 기쁨을 나누고 자리로 들어가려던 임승준을 덥석 업었다. 그러곤 과장되게 울부짖으며 뛰어다녔다.

“내 금메다알…!”

MC와 카메라가 그 모습을 잡았다.

[아아, 이런! 어스래빗 우성, 금메달을 못 따니 금메달을 딴 원제로 임승준 군을 납치하는 건가요?!]

생각 없이 까불거리며 장난치는 것 같지만, 실은 지켜보는 팬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한, 그리고 카메라에 조금이라도 더 잡히기 위한 일종의 수였다.

길우성은 한참을 그렇게 소란스럽게 뛰어다니다 원제로 멤버들에게 임승준을 반납했다. 임승준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다, 우성아.”

“흐.”

그러나 길우성은 자리로 돌아와 유호에게 혼났다.

“발목이라도 다치면 어쩌려고 그런 짓을 해. 그리고 사람을 납치하면 못 써.”

길우성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죄송함당. 생각이 짧았습니당….”

이 모습도 카메라에 잡혔다.

시간이 지나 양궁 남자 단체전 본선이 시작될 차례.

한율은 지난주처럼 길우성과 임시 대기실로 들어갔다. 라이언이 따라와, 한율이 옷을 갈아입는 걸 도와주었다.

“하뉼, 멋지다.”

“…감사합니다.”

한율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흐릿하게 웃었다.

복장은 작년, MBS <신나는 친구들>에 특별 출연했을 때 걸쳤던 융복이었다. 티셔츠 위에 저고리를 입고, 길게 내려온 푸른색 철릭을 걸쳤다. 허리는 붉은색 천과 광다회로 둘러서 고정, 소매도 그때처럼 검은색 천으로 둘둘 감아 단정하게 묶었다.

투박한 목화를 신은 후엔 마지막으로 붉은색 전립을 썼는데….

“토끼 귀도 귀여워.”

전립엔 깃 대신 한 쌍의 새하얀 토끼 귀가 달려있었다.

길우성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상투도 틀어야 하는 거 아냐?”

“나중에 벗으면 머리 엉망 되잖아.”

스태프가 밖에서 외쳤다.

“이제 나갈게요!”

“네!”

[2018년 추석 특집 아이돌 스포츠대회, 양궁 남자 단체전. 드디어 작년 추석, 렌즈를 연달아 박살 내어 제 지갑을 탈탈 털었던 그가.]

MC 정태현이 한율을 언급했다.

[왕좌에 앉아 예선을 치르는 많은 도전자를 거만하게 웃으며 바라보던 그, 무시무시한 토끼가 돌아왔습니다. …지금 PD님이 스태프들에게 과녁 뒤의 렌즈를 빼라고 지시하고 있네요.]

[어스래빗 막내 팀과 처음으로 맞붙게 된 풀썸 팀, 지금 매우 허망한 얼굴로 팬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데요.]

[그래도 아직 체념하기엔 이릅니다. 희망을 놓지 마세요, 풀썸! 지기 위해 올라온 게 아니잖아요?]

와아아! MC의 격려에 풀썸을 비롯한 다른 아이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아. 말하는 순간, 어스래빗 팀이 나옵니다.]

꺄아아악!

[귀염뽀짝한 토끼 귀와 멋있는 한복을 걸치고 나오는 자태가 참 곱네요. 우성 군은 절구 찧는 토끼인가요? 절구 무겁지 않아요?]

토끼 옷을 입고 토끼처럼 분장한 길우성은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진 가짜 절구를 머리 위로 번쩍 들었다.

“우가아!”

[아니, 토끼 탈을 쓴 야수인가요?]

길우성은 장내에 흘러나오는 어스래빗 <파라솔> 노래에 맞춰 막춤을 추다가, 풀썸과 나란히 선 순간 정색하면서 절구를 내려놓았다. 현장 리포터를 맡은 블블의 수재와 카메라가 가까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우성 군. 컨셉이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떡 사러 내려온 달토끼입니다.”

“그럼 이 절구는?”

길우성은 절구를 끌어안고 진지하게 대답했다.

“장바구니입니다.”

“한율 군은 컨셉이?”

한율은 한 곳을 바라보며 웃었다.

“저는 올해 설에 먹지 못한 피자를, 먹으러 온 토끼입니다.”

와아아아! 아이돌들이 다시 환호성을 질렀다. 한율의 시선이 MC 정태현을 향한 까닭이었다. 정태현이 이마에 손을 짚었다.

[아이고야….]

스페셜 MC인 온더로즈의 영아가 웃으며 말했다.

[한율 군이 방송이 많이 늘었네요.]

[1년 사이에 애가 참 뻔뻔해졌어요. 작년에 처음 출전했을 때 활 들고 수줍게 웃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MC들이 야기를 나누는 동안 한율은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웃곤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윙크했다. 꺄아아아! 거대한 전광판을 통해 그 모습이 고스란히 나오자 팬들은 더욱더 소리 높여 환호했다.

수재가 MC석을 향해 물었다.

“어떠세요, MC님! 올해도 렌즈 깨면 피자 사주시는 건가요?”

정태현은 잠시 번뇌하는 표정을 짓다가 대답했다.

[다섯 번 연속 엑스텐 명중.]

우우우! 아이돌과 관중석 팬들이 동시에 야유를 퍼부었다.

한율은 수재에게 마이크를 받아,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도미솔 쉬림프 피자 주문 부탁드리겠습니다, 선배님.”

애들하고 문제 있어?

“어우, 나 눈이 안 떠지는데.”

“역대급으로 부은 것 같아….”

“삭신도 쑤셔.”

아스대 본선 녹화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와 씻고 잔 게 2시. 2시간 만에 다시 눈을 뜬 멤버들은 비실비실 캐리어 가방을 현관 앞에다 놓았다.

한율은 양치와 세수만 하고선 편한 옷차림에 모자만 눌러썼다. 그리고 이틀 전 미리 싸둔 캐리어에다, 냉장고에 있던 레몬생강청만 옷으로 둘둘 감아 넣었다.

바로 오늘이 일본에서 컴백하는 날이었다.

유호가 사과패드에다 큼지막하게 쓴 글을 멤버들에게 보였다.

[되도록 말하지 마. 목 아껴.]

멤버들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차카차카차칵. 인천국제공항 앞엔 평소보다 많은 사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해외 스케줄을 떠날 땐 출국 날짜와 시간을 비밀에 부쳐 알음알음 알게 된 사람들만 모였으나, 이번엔 일본 컴백 날짜가 아스대 녹화 바로 다음 날이었다. 그러니 오늘 이른 아침 출국할 거라는 예상이 충분히 가능했을 터.

“우성아! 어제 수고했어!”

“보배야아! 사랑해! 잘하고 와!”

“서한율! 나 좀 봐봐!”

새벽 6시도 안 됐는데 참 부지런도 하지.

한율은 졸린 눈을 끔뻑거리며 걸었다. 다른 멤버들도 그들의 부름을 철저히 무시했으나, 몇 명은 항공권도 끊었는지 출국장 안, 비즈니스 라운지까지 따라 들어와 사진을 찍었다. 가까이 오면 바로 매니저와 경호원들에게 제지당하기 때문에 멀리에서 카메라를 줌인해서. 개중엔 낯익은 홈마들도 있어, 매니저들은 일부러 모른 척했다.

“흐아으아아.”

길우성은 카메라 의식도 하지 않고 몸부림치듯 기지개 켰다. 한율은 의자에 앉은 채 깜빡 잠들었다가, 차남석이 탑승 시간이 됐다며 깨워서야 일어났다.

비행기 안에서도 카메라는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무뎌진다는 게 이런 건가 봐.”

일본 도쿄에 도착. 리무진에 타고 나서야 그들은 카메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강보배가 토너로 듬뿍 적신 화장 솜을 감은 눈두덩에 올렸다.

“최소한 어떻게 하면 덜 추하게 찍힐까, 그 계산 범위 안에서 편안한 모습을 찾는 게.”

“무뎌진 게 아니라 길들여진 거 아닐까.”

“그럴지도.”

그들은 리무진 안에서 도시락을 먹고, 호텔이 아닌 쇼케이스를 할 공연장부터 찾았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현지 스태프들과 공연장 관계자에게도 일본어로도 인사.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었다.

“원, 투, 쓰리. …앞뒤 폭이 좁으니까 조심해야겠다.”

무대의 너비와 동선을 가늠, 음향과 조명, 카메라 위치도 점검했다. 이번 쇼케이스는 처음 일본에 데뷔했을 때처럼, 일본의 실시간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생중계될 예정이었다.

“선생님, 여기에도 발광 테이프 하나 붙여주세요!”

음악 없이 간단히 안무를 맞춰본 후엔 대기실로 가서 리허설 준비를 하고 다시 나왔다.

한 시간 동안 진행될 컴백 쇼케이스 세트리스트는 오늘 발매되는 싱글앨범 [Slow down]과 [Parasol] 일본어 버전을 비롯해 총 6곡. 무대 사이마다 녹음과 M/V를 촬영했을 때 함께 찍은 비하인드 영상도 나올 예정이었다.

“부기가 가라앉았다. 나는 무적이다.”

실전처럼 리허설을 하고, 모니터링을 하면서 보완하다 보니 어느새 오후 4시. 박가람이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며 도시락을 열었다.

“졸음과 부기를 물리친 무적의 다람톢. 하하하.”

길우성이 손을 들어 유호를 찾았다.

“큰형, 가람이 형 고장 났어.”

늦은 점심을 먹고 난 후엔 꽃단장을 시작. 멤버들은 단장을 받으면서도 일본어 가사나 인터뷰 답변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흥얼흥얼, 중얼거렸다.

무대 맞은편에 작게 프롬프터로 가사와 인터뷰 대본 가이드가 뜨지만, 이건 관객들을 향한 성의였다.

작년, 어스래빗이 데뷔하기 전. 좌기훈 대표가 멤버들을 불러 이런 말을 했었다.

『관객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공연이 시작되면 음악과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당장은 즐거워 보일진 몰라도, 한편으론 알아차린다. 눈앞의 아티스트가 예쁜 척, 멋있는 척 사람을 홀려 대충 돈만 벌고 가려는 것인지, 바쁜 시간을 쪼개고 적잖은 돈을 들이면서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의 관심과 사랑에 진심으로 보답하고자 하는 것인지.

『늘 완벽하게 하라는 건 아닙니다. 최대한 열심히,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하라는 뜻입니다. 잊지 마세요. 여러분이 무대에 서기 위해 땀을 흘린 시간 동안 그들도 열심히 살았고, 그 열심히 살아가는 시간 중 귀한 한쪽을 여러분에게 내어주는 것이라는 걸.』

드디어 쇼케이스가 시작되는 오후 6시까지 3분. 어스래빗 멤버들은 대기실을 나가기 전 둥글게 모였다.

“잘하자, 어스.”

“래빗.”

“거 카메라 없다고 너무 담담하게 외치는 거 아니요?”

“말 걸지 마. 외운 거 다 날아가.”

“…넹.”

* * *

“그게 무슨 소리야? 못 하겠다니.”

아림 엔터테인먼트.

진은수는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린 채 모은 두 손을 꼼지락거렸다. 종일 연습을 하다가 저녁을 먹기 전 잠깐 올라온 터라 꼬질꼬질한 모양새였다.

“죄송합니다, 팀장님.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보다 루아 언니가 더 나은 것 같아서요.”

“…하.”

팀장은 진은수를 쳐다보다가 바인더를 책상에다 강하게 내려놓았다. 타악. 진은수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솔직히 말해, 진은수.”

팀장이 목소리를 낮췄다.

“혹시 애들하고 문제 있어?”

진은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거 없어요, 팀장님. 아무리 생각해도 생방송 MC는 잘할 자신이 없어서….”

지난주 <뮤직센터> 측이 서한율에게도 MC 자리를 제안했다는 기사를 봤을 땐, 솔직히 조금 흔들리기는 했었다.

‘선배님이랑 MC가 되면 같이 신고식 무대도 준비하고, 몇 달에 한 번이 아니라 매주 만나서 인사하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가까워지지 않을까? 그럼 호칭도 비즈니스적인 ‘은수 씨’에서, 다정하게 ‘은수야’라고 바뀌고….’

쾅쾅쾅. 상상만 해도 너무 좋아, 진은수는 괜히 테이블을 두드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상상은 상상이기에 즐거운 법이었다.

‘안 돼, 사심에 휩쓸리지 마. 이미 루아 언니랑 약속했잖아.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루아 언니보단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렇다고 너무 틀리거나, 연습을 전혀 안 한 티를 내면 본인만 모자라고 이상한 사람이 된다. 진은수는 차분히 대본을 읽었다. 어색해 보이지는 않을까, 사과패드로 촬영해 제 모습을 살펴보기도 하며.

그러나 한 시간 후. 진은수는 팀장이 든 카메라 앞에서 고의가 아닌, 실제로 대사를 씹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반면에 루아는 완벽했다. 대사도 또박또박, 시선 처리나 사소한 동작도 모두 어색함 없이 훌륭했다.

‘그래서 무조건 언니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틀 전, 퍼플아워 멤버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팀장이 결과를 통보했다.

『루아가 무척 잘하기는 했지만, <뮤직센터> MC는 은수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이건 나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매니지 팀 전체의 의견이야.』

“정말 자신이 없어요, 팀장님….”

“그렇다고 자신 없다는 말을 두 번이나 반복하니.”

“…….”

팀장이 천천히 한숨을 쉬곤 말을 이었다.

“어제 아스대 방청 왔던 팬들이 그러더라. 네가 서한율이랑 얘기하는 동안 멤버들이 은수 너만 두고 가는 모습이, 단순히 대화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자리를 비켜주는 게 아닌 것 같았다고. 정말… 애들하고 아무 문제 없어?”

진은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어제 루아 언니 은메달 땄을 때, 같이 웃으면서 끌어안는 거 보셨잖아요.”

팀장이 미심쩍은 얼굴로 가만히 쳐다봤지만, 진은수는 입가를 내리지 않았다. 그러기를 한참. 팀장이 입을 열었다.

“네 말대로 정말 애들하고 아무 문제도 없는데, 네가 이렇게 못하겠다 나오는 건 루아 자존심에 더 상처만 주는 거야. 모르겠어?”

“하지만….”

“프로그램마다 어울리는 사람이 있어. 음방 MC같은 경우엔 누구와 붙여놔도 화기애애하게 케미가 잘 사는 사람이 제격이고. 그게 은수 널 뽑은 직원들과 나의 판단 근거야. 그래도 싫어? 못하겠어?”

“…….”

“신인은 원래 은수 너처럼 인지도가 높은 멤버가 앞서서 길을 밝혀야, 함께 있는 일행도 차차 사람들 시야에 들어가. 당장은 기대가 부담스럽고 멤버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겠지만, 정말 미안하면 더 잘해서 사람들 이목이 팀으로 쏠리도록 끌어주면 돼.”

그 뒤로 길게 이어지는 설득. 결국 진은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듣다 보니 팀장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자신을 선택해준 직원들의 판단과 기대를 쉽게 저버릴 수 없다는 생각도 들어서.

“…네. 열심히 준비할게요.”

“잘 생각했다. 미팅은 다음 주 월요일이야.”

“네. 그럼 수고하세요, 팀장님.”

“그래, 저녁 맛있게 먹고.”

진은수는 팀장에게 고개를 꾸벅이곤 사무실을 나왔다.

‘정말 미안하면 내가 더 잘해야….’

“안녕하세요.”

몸을 돌리던 진은수는 막 사무실 쪽으로 오던 원카운트 찬형과 마주쳤다.

“아, 안녕하세요, 선배님!”

찬형이 살갑게 웃었다.

“<뮤직센터> MC 제안받으셨다면서요? 축하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럼.”

“저기, 선배님…!”

찬형이 자연스럽게 멈췄던 걸음을 다시 움직이려던 찰나, 진은수는 용기 내어 그를 붙잡았다.

“네?”

“혹시….”

찬형도 자신과 비슷한 경우였다. 데뷔하기 전부터 단독 광고 모델도 여러 번, 데뷔하고 나선 몇 달 만에 뮤닷 <락뮤닷> MC가 되었다. 그리고 현재 MC 경력만 1년하고도 6개월 정도.

“음악방송 MC 잘하는 비결 좀 여쭤봐도 될까요…?!”

찬형은 기꺼이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그냥, 대본에 적힌 대로 잘하면 돼요.”

“…네…….”

비결이랄 것도 없는 너무나 당연한 대답. 멍해지는 진은수를 향해 찬형이 덧붙였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호 형이 잘 이끌어줄 테니까.”

“호…. 유호 선배님이요…?”

“네. 거의 확정된 것 같던데?”

진은수는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움직여 주변을 살폈다가 찬형에게 물었다.

“기사론 한율 선배님이….”

“한율인 연기 활동도 해서 바쁘잖아요. 그래서 거절했다고 들었어요.”

“아….”

진은수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감사합니다….”

그러곤 터덜터덜 힘없이 걸음을 옮겼다.

찬형은 그런 진은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호수 누나 동생이 서한율을 좋아한다는 루아 말이 사실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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