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두 번째 곡 사녹까지 마치고 돌아온 어스래빗 멤버들은 앨범이 든 종이가방을 챙겼다. 오늘 출연자 대부분 어제 <뮤직뮤직>에서도 만난 팀이라, 짐은 가벼웠다. 찾아가서 인사해야 하는 선배도 두 팀뿐.
“MC분들 드릴 것도 챙겨야지.”
“내가 챙겼어.”
“이건 제가 들게요.”
한율은 퍼스트라인에게 건네줄 앨범을 챙기고 대기실을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어스….”
“잠시만요.”
첫 번째 팀에 이어 두 번째로 찾은 퍼스트라인 대기실. 노크 소리를 듣고 문을 열어준 이는 같은 대기실을 사용하는 신인 아이돌의 매니저였다. 그는 눈치껏 어스래빗이 퍼스트라인을 찾아왔다는 걸 알고, 뒤쪽을 돌아보았다.
이내 퍼스트라인 매니저가 나와, 손을 내밀었다.
“애들 지금 자고 있어서요. 앨범만 주세요.”
“…네. 잘 부탁드립니다!”
이 녀석들은 대기실 인사를 제대로 받는 경우가 거의 없네. 한율은 속으로 한숨을 쉬며 챙겨온 종이 가방을 건넸다.
‘그래도 메시지를 남겼으니, 찔리는 구석이 있다면 반응하겠지.’
잠시 후 생방송이 시작되었다.
퍼스트라인 다음이 어스래빗인지라, 그들은 백스테이지에서 다시 마주쳤다. 그러나 앨범에 적은 한율의 메시지를 보지 못했는지, 코우는 별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전 출연진이 모두 올라가는 엔딩 무대에서도.
“이번 주는 아쉽게 놓쳤지만, 다음 주엔 원제로가 1위 할 것 같다.”
“응. 그나저나…. 드디어 한율이랑 남석이가 나간 <달리는 예능>을 볼 수 있는 건가?”
30분 동안 조정실 앞 복도에 줄 서서 기다리다, PD와 주요 스태프에게 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느닷없이 길우성과 박가람이 난데없이 한율 앞을 우뚝 가로막고 섰다.
“달리느은~!”
그러곤 두 팔을 허우적거리다, <달리는 예능>의 시그니처 포즈로 얼음.
“예능!”
…쿡. 한 걸그룹이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옆을 지나쳤다. 길우성이 목 뒤를 긁적이며 자세를 바로 했다.
“머쓱.”
“엣헴.”
한율은 두 사람을 무시하며 먼저 대기실로 들어갔다. 그들은 이번엔 차남석을 붙잡고 장난을 쳤다.
“달리느은!”
“예능!”
“두 분 누구신데 제 앞에서 이러는 거죠.”
유호가 큭큭 웃으며 들어왔다.
“저녁은 뭐 먹을까? 먹고 싶은 거 있어?”
<달리는 예능>은 숙소에서 저녁을 먹으며 VOD로 보기로 했다.
“형은요?”
“보쌈?”
“보쌈 좋네요. 저 모바일 쿠폰 많으니까 그걸로 주문해요.”
“민준 선배님은 대체 얼마나 보내셨던 거니. 왜 먹어도, 먹어도 줄지를 않아….”
내일은 스케줄이 모두 오프. 비록 고3 학생 두 명은 등교해야 하고 오후엔 회의가 있지만, 오늘은 편한 침대에서 잠을 푹 잘 수 있는 날이었다. 짙은 무대 메이크업으로 사흘 내내 고생한 피부도 쉬게 해주고.
“으, 몇 시간 사이에 트러블 올라왔어.”
조금 전까지 까불던 길우성이 거울을 보며 울상을 지었다.
“큰마음 먹고 비싼 걸 사서 쓰는데 왜 이래.”
“일단 클렌징 워터로 지우자. 피부 숨 좀 쉬게 해주자고. 렌즈도 빼고.”
“흐엉엉.”
길우성은 세면대로 가서 손을 박박 씻은 후 눈에 착용한 렌즈부터 제거했다.
“이놈의 렌즈, 내년엔 작별하고 만다.”
“나도 내년에 우성이 시력 교정 수술받으면, 그때 같이 받아야겠다.”
유호의 말에 이건우도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 나도 받을까?”
사실 유호와 이건우도 시력이 그리 좋지 않은 편이었다. 안경 대신 렌즈를 일상적으로 착용하여 그리 티가 나지 않을 뿐.
“받으려면 투어 들어가기 최소 두 달 전에 받는 게 안전할 것 같아. 무대 조명이 원체 세야지.”
가만히 대화를 듣던 조유찬이 물었다.
“그럼 내일 회의 전에 팀장님이랑 일정 맞춰볼까?”
“네.”
한율은 본래 세상, 처음 길우성을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당시 길우성은 안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그래도 행동하는 데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던 걸로 봐선, 그때도 시력 교정 수술을 받았던 모양.
“그런데 수술비 비싸려나?”
“사람마다 눈 상태에 따라 권하는 수술 방법이랑 비용이 다르대.”
박가람이 쯧쯧 혀를 찼다.
“그러니 다들 나처럼, 응? 어릴 때부터 시력 보호를 위해서, 응? TV를 멀리하고, 응? 당근을 많이 섭취했어야지!”
“저거 누가 다람쥐 아니랄까 봐.”
“형 시력 몇인데?”
“둘 다 1.7!”
“와우….”
강보배가 물었다.
“한율이 넌 시력 몇이야?”
한율은 불편하게 치렁거리는 피어싱을 빼며 대답했다.
“양쪽 다 2.0이요.”
“남석이 넌?”
“1.5 정도?”
“우리 팀이 이상하게 시력 좋은 사람 비율이 높구나. 나도 그 정돈데. 라이언도 시력 좋고.”
“후후….”
길우성이 더듬더듬 의자나 매니저의 팔을 짚으며 웃었다.
“어릴 때 책을 많이 안 읽어서 그래, 책을.”
“우성아, 이거 손가락 몇 개?”
“그 정돈 보이거든요, 형님?”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그때 그레이트7 멤버들이 대기실로 들어오며 인사했다. 어스래빗 멤버들도 화답했다.
“오늘 방송 수고하셨습니다!”
“화요일에 뮤닷 나오시죠? 그때 또 뵐게요.”
“네!”
“…….”
그중 새벽에도 한율을 조심스레 훔쳐보던 그레이트7의 멤버, ‘완언’이 잠시 머뭇거리는 듯했으나, 그는 고개를 돌리며 옷을 갈아입었다.
방송국을 나와 차에 탔을 땐 이미 <달리는 예능> 방송이 끝난 뒤였다. 한율은 인터넷의 방송 반응부터 확인했다. 벌써 연예뉴스란에 기사가 여럿 올라와 있었다.
[<달리는 예능> 배우 이희우·어스래빗·원제로 대활약]
-아이돌은 잘 모르지만, 예고에 나온 애 보고 오래간만에 본방도 봄. 이름이 차남석이라고?
ㄴ타팬이지만 차남석 잘생긴 거 ㅇㅈ.
ㄴㅇㅈ22222
ㄴ33333
ㄴ∞
-얼굴만 봐도 대유잼 편
-서한율 트램펄린 처음인데 명중률 실화냐고
-나 완전 깜놀했던 게, 중간에 ㅅㅎㅇ 물폭탄 맞았는데 피부 진짜 넘사ㄷㄷㄷ 이희우보다 더 좋은 듯
ㄴ괜히 화장품 모델이 아닙니다ㅎㅎ
ㄴ이희우도 화장품 모델 하고 있
-남돌 재미없어ㅡㅡ
-라일♡♡♡♡♡♡♡
-이희우 활약씬에 왜 CG로 군복 입히는뎈ㅋㅋㅋㅋ
ㄴ유기원 자빠지고 보물 뺏기면서 처절하게 ‘민준아 조심해엑!!!! 악!!!!!’
ㄴㅋㅋㅋㅋㅋㅋㅋ
-남돌은 군대나 가라
-차남석 얼굴값 하면서 가식적으로 보였는데 의외로 허당에 약골이라 터짐ㅋㅋ
ㄴ송혜지가 바짝 끌어당기니까 진짜 당황한 얼굴로 발 퉁퉁퉁, 구르면서 그대로 끌려가는 거ㅋㅋㅋㅋ
ㄴ혜지님 다칠까 봐 힘 조절한 거예요ㅎ
ㄴ은근히 댕댕미 넘치는 순둥한 아이고, 최근 생긴 취미가 허브 키우기라고 합니다. 이쁘게 봐주세요! :D
-고양이난로 제작사는 메이킹 필름을 내놔라!!!!
-마지막 엔딩 영상에 못난이 두 마리 함께 나온 거 보고 심쿵사 ㅇ<-<
“…뭐지?”
그때 옆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길우성이 미간을 찡그렸다.
“뭔가 이상한데….”
“뭐가?”
“너튜브에 이런 게 올라왔어.”
[V12/지금은 삭제된 티모 라방]
15초 가량의 짧은 영상이었다. 우측 상단에 그린라이브 로고가 모자이크 처리된 걸로 보아, 라이브 방송을 누군가 편집해서 올린 모양.
한율은 길우성의 핸드폰을 가져와 재생 버튼을 눌렀다. 새카만 화면에 자막이 떴다.
[2018. 12. 16. 오후 2시경.]
[제목 <...>로 라방 시작 알림이 울림.]
[그리고….]
창백한 민낯에다가 야구모자, 그 위로 또 후드티 모자를 뒤집어쓴 티모의 모습이 나왔다. 작업실 책상에 팔꿈치를 세우고 턱을 괸 채 눈을 끔뻑거리며 모니터를 바라보는데, 잠을 제대로 못 잔 것인지 눈은 충혈되고 눈가는 발갛게 부어 있었다.
[한참 동안 말없이 팬들의 인사를 보는 티모.]
[그리고 손등으로 눈물을 닦듯]
[얼굴을 가리더니.]
아주 작은 목소리로 티모가 중얼거렸다. 그러곤 자리에서 일어나 라방을 종료했다.
[티모가 한 말은 무엇이었을까.]
영상이 다시 티모가 중얼거리는 순간을 잡았다. 편집자가 크게 살린 그의 목소리는,
[죄송해요.]
[이후 이 라방 영상은 5분도 지나지 않아 삭제되었다.]
[티모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영상은 올라온 지 두 시간밖에 되지 않았지만, 티모를 걱정하는 팬들의 댓글이 아주 많이 달려있었다.
-티모 요즘 많이 힘들어 보이긴 했어요... 옆의 형들이랑 동생들이 잘 다독여주겠지만 그래도 걱정되네요..
-안무 조금 실수했다고 죽을 죄인 취급한 극성 악개들 ㅅㅂ
-우리 인절미 댕댕이 왜 구랭ㅠㅠ 누가 괴롭혔어ㅠㅠㅠㅠ
-계속 웃고 있어도 아까운 아인데,. 뭐가 죄송한 거야. 우린 네가 웃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ㅜㅜ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도 괜찮아. 우리 다 네 편이야.
“티모 지금 일본에 있지?”
“어. 거기에서 활동하다가 아스대 녹화하기 전 즈음에 귀국할 거라고 들었어.”
길우성이 핸드폰을 가져가더니 SNS에 접속했다. 그리고 티모에게 DM을 보냈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힘들면 말해.]
그러곤 걱정 가득한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상대방이 핸드폰이 없으니 이럴 때 정말 불편하네….”
우웅. 그때 한율의 핸드폰이 울렸다.
-[앨범에 적은 거 무슨 뜻이야?]
초코톡 메시지. 저장되지 않은 번호에다 프로필 사진은 기본 이미지였지만, 퍼스트라인의 코우가 확실했다.
‘용케도 번호를 알아냈네. 아니면 초코톡 ID?’
앨범에 적은 메시지엔 일부러 초코톡 ID나 연락처를 기재하지 않았건만.
한율은 핸드폰 화면이 길우성에게 보이지 않도록 주의하며 답장을 보냈다. 코우에게 적었던 메시지를 떠올리며.
『S→K→T??』
[톡으로 말해도 괜찮아요? 기록이 남을 텐데.]
톡은 보내자마자 ‘읽음’ 표시가 떴으나, 코우는 한참이 지나서야 대답했다.
-[만나서 얘기해.]
282새벽부터 뭐 그런
월요일. 한율은 길우성과 3층 회의실로 들어갔다.
오늘은 4, 5월 진행 예정인 투어 관련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콘서트의 기획과 연출은 공연 전문기획사의 몫이지만, 세트리스트를 비롯한 대략적인 틀과 방향을 정해야 한다.
회의실엔 좌기훈 대표와 매니지 B팀이 먼저 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그래.”
좌 대표가 길우성, 유호, 이건우를 보며 물었다.
“너희들, 투어 전에 병원에 가고 싶다고?”
“네. 시력 교정 수술을 받고 싶습니다, 대표님.”
좌 대표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안경을 쓰거나 자꾸 렌즈를 끼는 것도 불편하지. 전에 은영이랑 라나가 수술받은 곳 있는데, 거기 갈래? 아니면 따로 다니는 곳이나 생각해둔 곳 있어?”
“따로 생각한 곳은… 없어요.”
오 팀장이 태블릿 PC로 어스래빗 스케줄을 불러왔다.
“이번 활동 끝나고 며칠 쉰 다음에 병원 가서 검사받고, 2월 초 즈음 수술받는 게 적절할 것 같네요.”
“당분간 컬러렌즈 착용도 피하게 하고요.”
“네. 스타일리스트 팀에 전달하겠습니다.”
“우성이 넌 부모님께 허락받은 거지?”
“넵! 어제 통화로 말씀드렸더니 OK 하셨습니다!”
좌 대표는 푸근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오 팀장을 돌아보았다.
“그때 애들 치과에도 데려가고요. 슬슬 검진받을 때 됐잖아요.”
“히익.”
“네.”
“방금 ‘히익’ 누구니?”
곧 회의실에는 A&R팀, 기획홍보팀, 공연 전문기획사에서 나온 콘서트 연출가와 직원이 들어와 자리를 채웠다.
“가장 먼저 주제와 세트리스트부터 정해볼까요?”
“저희 A&R 팀이 생각한 플랜은, [Breaching] 인트로는 무조건 들어가야 하고….”
회의는 공연 전문기획사 측에서도 미리 여러 가지 기획안을 가지고 와서 빠르고 거침없이 진행되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어스래빗 멤버들의 의견도 적극적으로 물었다.
“3부로 이뤄지잖아요. 스토리텔링을 중심으로 진행하되, VCR로 징검다리 같은 경계를 세웠으면 좋겠어요. 1부는 착지, 2부는 적응, 그리고 혼란, 3부는 자신감, 도취. 이렇게 감정선 대로.”
“그리고 너희 이프림은, 투명한 벽을 사이에 두고 우리의 행보를 지켜보며 응원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바로 우리 옆에서 함께 걷고 있는 친구다. 이런 메시지가 잘 전달되도록….”
90여 분에 걸친 회의가 끝난 뒤엔, 구내식당으로 내려가서 저녁 식사.
“어? 티모한테서 답장 왔다.”
길우성이 핸드폰에 뜬 SNS 알림을 눌렀다.
“뭐래?”
“…걱정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대. 요즘 스트레스가 너무 쌓여서 힘들었다고.”
어제 티모의 짧은 라방 영상이 너튜브에 올라온 후, V12 팬들은 아주 난리가 났다. 소속사인 스케일 엔터에 항의 전화는 기본이고, 직접 회사로 찾아간 팬들도 있었다. 일본에 있어야 할 티모가 왜 회사 작업실에서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냐며.
SNS에선 ‘티모야 사랑해’ 검색어 총공이 펼쳐졌다.
소란은 V12의 리더가 SNS에, ‘티모는 잘 있습니다. 리더이기 이전에 형으로서 동생을 더 잘 챙기도록 하겠습니다. 걱정 끼쳐서 죄송합니다.’라는 글을 올리고 나서야 살며시 가라앉았다.
“다른 말은?”
“없어.”
“왜? 무슨 일 있어?”
맞은편에 앉은 박가람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한율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아무것도.”
다음 날 새벽. 어스래빗은 리허설 시간보다 일찍 숙소를 나서서 샵으로 향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넷은 다른 샵으로 갈라졌다.
<락뮤닷> 측에서 다음 주 크리스마스 특집 예고 영상 촬영을 제안한 까닭이었다. 촬영은 리허설 전, 원제로와 함께 찍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크리스마스 특집 예고 영상을 찍게 됐거든요. 귀여운 컨셉에 맞게, 너무 진하지 않게 단장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네.”
아직 이른 새벽이라, 샵에는 일반인보다는 스케줄을 가기 전 찾아온 연예인 손님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모든 연예인을 다 알 수는 없기에, 어스래빗 멤버들은 일단 눈이 마주치면 꾸벅꾸벅 인사했다. 인상이 좋게 박히도록.
간혹 정말 아는 사람을 마주칠 때도 있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어? 한율아.”
모자만 푹 눌러쓴 민낯으로, 커피 메이커를 조작하던 여성이 한율을 보며 알은체했다. 한율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작년, 요리 전문 케이블 채널의 <여름소풍>에 함께 출연했던 배우 최가을이었다.
최가을이 반가운 얼굴로 다가왔다.
“너희도 이 샵 다닌다고 말은 들었는데…. 실제로 마주치니까 정말 신기하다. 잘 지냈어? 아, 영화 진짜 재밌게 봤어. 못난이 정말 귀엽더라.”
“네, SNS에 올리신 거 봤어요. 잘 지내셨어요?”
“나야 잘 지내고 있지. 다음 작품은 언제 들어가? 투어 다녀온 다음에?”
“아직 검토 중이에요.”
한율은 소파에 앉아있는 길우성에게 시선을 옮겼다. 길우성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최가을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어스래빗의 막내이자 서한율과 친구인 길우성이라고 합니다. 서한율에게 선배님이 정말 아름다우시단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어머, 거짓말.”
“초면에 거짓말해서 죄송합니다.”
최가을이 웃음을 터뜨렸다. 먼저 거울 앞에 앉아있던 박가람과 차남석이 의아한 얼굴로 그들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두 사람의 얼굴을 살며시 잡아 원위치시켰다.
“그런데 벌써 방송국에 출근하는 거야?”
“네, 따로 찍어야 할 게 있어서요. 선배님은요?”
“나는 지방 촬영이 있어서 일찍 왔어. 효운이랑 해원인 잘 지내?”
“네. 자주는 못 만나지만, 잘 지내는 것 같아요.”
“그렇구나….”
말끝을 흐리는 최가을의 얼굴에 머뭇거림이 깃들었다. 삑삑. 커피 메이커에서 알림이 울렸다.
“커피 마실래? 커피 마실래요?”
“전 괜찮습니다.”
“전 마실게요.”
길우성은 다시 소파에 앉고, 한율은 최가을과 함께 커피 메이커 앞으로 갔다. 최가을이 유리 서버를 꺼내 종이컵에다 커피를 따라서 내밀었다.
“내 취향으로 내렸는데, 입맛에 맞을까 모르겠다.”
“감사합니다.”
한율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맛있네요.”
최가을은 살며시 웃곤 자신의 몫도 종이컵에 따랐다.
“그런데 있잖아….”
“네.”
달칵. 유리 서버를 제자리에 집어넣으며 최가을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가 목소리를 낮췄다.
“해원이 말이야. 혹시 여자친구 있어?”
“……?”
한율이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자, 최가을은 대답을 기다리는 얼굴로 눈을 깜빡이다가 아, 하고 덧붙였다.
“내가 해원이한테 그런 관심이 있는 건 아니고, 조금 유명한 사람이 아침부터 데이트하는 게 기자 눈에 띄었는데, 그 상대가 해원이를 닮았다고 해서.”
조금 유명한 사람? 그 사람인가?
한율은 안인섭이 몰래 찍은 영상 속에서 이해원과 키스를 나누던 여성을 떠올렸다.
대기업 이우그룹의 회장 손녀, 이채현.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재계에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선 조금 유명한 인물이었다. 안 좋은 쪽으로.
영상에도 늘 이해원과 함께 등장하고 진한 스킨십도 하지만, 결코 연인 사이론 보이지 않았다.
“아…. 글쎄요.”
한율은 시치미를 뗐다.
“처음 듣는 이야기라.”
“그럼 아닌가 보다. 이런 얘긴 조금 그렇지만, 평이 좀 안 좋은 사람이거든.”
“어떤 사람인데요?”
“음…. 누군지는 말할 수 없지만.”
최가을이 다시 한번 더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조심스레 대답했다.
“사람을 사람으로 안 보는 사람이야. 중학생 때, 피우던 담배로 동급생의 팔을 지졌다고 하더라고.”
한율은 미간을 구겼다. 이해원의 손목에도 담뱃불에 지진 듯한 흉터가 있었다.
“인간이 덜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