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5화 (145/427)

* * *

1월 29일 취리히 국제공항. 로비 한쪽에 설치된 거대한 TV에 [속보]가 붙은 독일어 뉴스가 흘러나왔다.

[인터라켄에서 참혹한 모습으로 발견된 시신은 ‘위고’란 가명을 사용하며 호텔 청소 직원으로 일하던 남자로, 프랑스에서 소아 성범죄 및 강도살인을 저지르고 도주한 지명수배자로 밝혀졌습니다. 경찰은….]

누구도 보지 않는 TV 앞을 지나며 길우성이 투덜거렸다.

“김치찌개에 밥 먹고 싶다. 며칠 내내 양식만 먹었더니 속이 느글거려….”

“인터라켄에서 한식당 가자고 했을 땐 싫다 그러더니?”

“우리 회사 구내식당 이모님들의 손맛이 안 날 것 같아서 그랬지. 알잖아. 어설프게 먹으면 더, 더, 더 그리워지는 거.”

영어도 아닌 독일어로 흘러나오는 뉴스는 그들의 주의를 끌지 못했다. 한율은 [28일 아침 동거녀에 의해 살해 추정]이란 자막을 흘끗하곤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다들 선물은 뭐 살 거예요?”

훈훈함을 자아냄

[스타믹스 JE, 어스래빗 건우·한율·우성과 우정 여행!]

[30일 스타믹스 JE가 개인 SNS에 해외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올렸다.

(사진=스타믹스 JE SNS)

사진은 어스래빗 건우, 한율, 우성과 함께 스위스 베른에서 촬영한 것으로, JE는 ‘저도 연예인 친구 있습니다.’ 메시지와 #멤버들이안놀아줘서 #별혼합지구토끼 #스위스 해시태그를 달았다.

이 밖에도 JE는 공항과 취리히, 인터라켄에서 찍은…(중략).]

-우리 손지은에게 드디어 연예인 친구가 생겼어요!!!

-이제야 기사가 떴네요ㅎㅎ 인터라켄에서 산책하다가 만난 신혼부부입니다! 그때 같은 한국인이라고 반갑게 인사 나누고, 사진도 함께 찍어주셔서 정말 고마웠어요! 신랑이 돌아가는 길에 정말 아이돌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우리도 저런 잘생긴 아들 낳고 싶다고 했던 게 떠오르네요ㅎㅎ 언제나 응원할게요! :D

ㄴ부럽

ㄴ와.. 난 일주일 전에 인터라켄 다녀왔는데ㅜㅜ

ㄴ저런 아들 낳으려면 일단 유전자가..

ㄴ나쁜 말 멈춰!

-이 우정 응원합니다.

-어스래빗 애들이면 안ㅡ심.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별둥 막내가 저기선 맏형이라니..!

-뮤뮤 스케줄 날아갔다고 신나서 바로 해외여행ㅋㅋ 초등학생이냐고 손지은ㅋㅋㅋ

-허니 통해서 친해졌나보다ㅎㅎ

연예뉴스란에는 한율과 길우성, 이건우의 SNS를 토대로 작성된 기사가 몇 건 더 올라왔다.

-패러글라이딩 4인방 찐행복웃음

-얘넨 진짜 평화로운 듯ㅇㅇ 뭔 멤버 간의 불화설 이 따위 기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ㄴ지구톢 애들이 다 순둥순둥합니다ㅎㅎ

-팬들끼리 난투극 벌어진 ㅇㅈㄹ 기사보다가 이 기사 보니까 ㅇㅈㄹ 애들 좀 짠하게 느껴진다ㅋ

ㄴ이런 댓글은 ㅇㅈㄹ 관련 기사나 게시판에 쓰세요. 지구톢 기사에 아무 관련 없는 ㅇㅈㄹ 분쟁 일어나는 거 싫습니다.

ㄴ원제로 팬들끼리 쌍욕 박으면서 싸우는데 ㅈㄴ개판임ㅋㅋㅋ 꿀잼ㅋㅋ

-이건우 흑발에 안경은 진리다 이건우 흑발에 안경은 진리다 이건우 흑발에 안경은 진리다 이건우 흑발에 안경은 진리다 이건우 흑발에 안경은 진리다

ㄴ건우 이제 라식한다고 합니다.. 보내주세요..

ㄴ엉어어엉어허엉ㅠㅠ

ㄴ가끔은 패션으로 껴주겠졍..ㅜㅜ

ㄴ코디 언니 어스래빗 단체 안경 샷 좀 제발

“후우…….”

고동 엔터테인먼트. JE와 어스래빗 기사를 보던 김지영 실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모니터를 외면했다.

‘분명히 출발선은 비슷했는데…. 역시 개개인의 화제성이 약한 탓인가?’

어스래빗보다 데뷔는 일주일 느리지만, 데뷔 앨범 초동 판매량이나 그린라이브 유료 회원 수, 인지도는 블루액션 쪽이 높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어스래빗이 블루액션의 인지도를 넘더니, 이젠 가속도가 붙은 것처럼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발매하자마자 사과튠즈 9개 지역에서 1위를 한 어스래빗의 최근 앨범. 굳이 이 기록이 아니더라도, 팬들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블루액션 팬들이 더는 어스래빗을 라이벌로 여기지 않는다.

데뷔 초반엔 스밍과 너튜브 조회수, 신인상의 수상 여부로 자존심 싸움을 벌이고 투지를 불태웠었다. 하지만 이젠 어스래빗이 뭘 하든 신경을 쓰지 않는다.

팬들도 느낀 것이다. 계속 라이벌로 여기기엔 저쪽과의 격차가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걸.

‘이 이상 더 벌어지면 위험한데.’

뭉그적거리다간 후배인 V12에게도 머리채가 잡히게 생겼다. 그리고 앞으로도 신인 보이그룹은 계속해서 쏟아져 나올 터.

‘좋은 노래를 뽑는 건 A&R팀의 몫이니….’

김지영은 블루액션의 작년 앨범 판매량과 사업 부문별 매출표를 띄웠다. 그중 매니지먼트 매출을 주목했다.

‘우리 팀은 아림 엔터의 방해를 어떻게든 막거나 풀어야 해. 그게 순서야.’

아림과 최초로 사이가 틀어진 건 블블의 티스트와 히아신스 라움의 열애설을 이쪽이 사전동의 없이 터뜨렸을 때. 그때 당시엔 블루액션이 뜨도록 은근히 도와주던 손을 놓는 데에 그쳤었다.

하지만 작년 소리구름어워즈. 아림은 소리구름 측에 고동 엔터 아티스트를 빼라고 요구했다. 그렇지 않으면 보이콧하겠다고. 그러나 소리구름은 보란 듯이 블루액션에게 상을 주었고, 그때부터 아림은 조금 더 노골적으로 블루액션의 일을 훼방하기 시작했다.

『어떡하죠? 블루액션 멤버들도 나온다고 하니까 아림에서 갑자기 애들 못 내보내겠다고 하네요. 살살 자세 낮추면서 말해서 뭐라 할 수도 없고…. 미안합니다, 실장님.』

KBC, MBS, SBC 3사와 뮤닷 같은 공룡 방송국은 자존심이 강해서 연예기획사 간의 싸움에 휘둘리지 않을 것 같지만, 그 아래에 편성되는 외주 제작 프로그램은 아니다.

『그러게, 어쩌자고 대형 기획사랑 척져선…. 아림이 이번에 tv Mu에 들어갈 예능 프로그램 또 기획 제작하고 있단 건 아시죠? 빨리 푸세요. 그쪽 애들, 아는 사람만 아는 아이돌로 썩힐 거 아니면요.』

‘하지만 어떻게 푼다….’

상대는 대형 기획사. 알량한 접대나 사과로 풀릴 것 같았으면 애초에 지금까지 질질 끌지도 않았다.

‘대표 이 새낀 지가 일 저질러놓고 수습은…!’

속으로 불평과 고민을 오가던 김지영 실장은 다시 인터넷 창을 불러왔다. 다시 한숨이 나왔다.

‘너흰 승승장구 잘 나가서 좋겠다. 연기 잘하는 애도 있고, 얼굴로 나라 세울 법한 애도 있고.’

그러고 마우스 커서를 움직일 때였다.

문득 관련 기사 항목에 시선이 갔다.

[경쟁보단 우정! 4세대 아이돌의 친분 살펴보기]

* * *

2월 2일. 유호를 제외한 어스래빗 멤버 7명이 차에서 내렸다. 그러곤 일렬로 서서 인사.

“안녕하십니까!”

“어스!”

“래빗!”

“인사드리겠습니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그들과 함께 온 배우 박현우도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꾸벅였다.

“배우 박현우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어서 앞서 도착한 ‘캣앤프리’ 직원들.

“안녕하십니까, 캣앤프리에서 나왔습니다. 오늘 봉사활동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유기 동물보호소 소장과 직원들, 오늘 함께 봉사활동을 하게 된 어스래빗과 박현우의 팬들이 박수 쳤다.

와아아! 짝짝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들은 캣앤프리 측에서 준비해준 방호복과 마스크, 장갑, 장화로 중무장했다. 소장과 직원들이 앞장서서 그들에게 주의사항과 할 일을 알려주었다.

“물릴 수도 있으니까 너무 가까이 가지 마세요. 애들이 질투하니까 특정 개만 너무 예뻐라 하지도 말고요.”

어스래빗 멤버들은 견사 여기저기 흩어져서 청소부터 시작했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이곳에 온 팬들도 사심을 드러내기보다는 열심히 했다. 인원이 많다 보니 나중엔 소속 분류 없이 섞였다.

“무거우니 제가 들게요.”

“감사합니다.”

한율은 박현우의 팬과 함께 털과 오물 범벅이 된 담요와 이불을 치우고 빨기도 했다.

“반짝반짝해진 걸 보니 기분이 좋구먼?”

“그렇구먼?”

“흐흐.”

어느덧 깨끗해진 견사 안. 박현우와 박가람, 두 사람과 꼭 닮은 바보 같은 웃음을 짓는 어스래빗 팬까지.

나란히 선 셋을 기자가 카메라로 찍었다. 찰칵.

소장이 사람들을 향해 물었다.

“여기에서 고양이 키우거나 오래 키웠던 분들, 손?”

어스래빗에선 한율과 강보배가 손을 들었다.

“고양이 방 청소 부탁드릴게요.”

“네에.”

길우성이 뒤늦게 손을 번쩍 들었다.

“저도 하면 안 될까요? 고양이 엄청 좋아하는데!”

“죄송해요. 고양이가 워낙 예민한 동물이라, 고양이 습성을 잘 아는 집사가 아니면 맡기는 게 조심스러워서….”

“어흑….”

라이언이 길우성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나랑 같이 개 산책시키자.”

개 짖는 소리로 귀가 먹먹한 견사와 달리, 고양이들이 있는 컨테이너 안은 조용했다.

“안녕, 얘들아. 빨리 청소만 하고 나갈게.”

와옹. 한 마리가 강보배의 말에 대꾸했다. 어떤 고양이는 케이지 창살 밖으로 코를 내밀었다가, 한율을 향해 앞발을 뻗어 휙휙 흔들었다. 참 꼬질꼬질하고 못생긴 검은 고양이였다.

흔드는 앞발 아래로 손가락 하나를 내밀자 고양이가 덥석 잡았다. 그러곤 장갑 낀 손가락의 냄새를 맡았다.

…므앙.

“전 화장실 청소할게요. 형은 빗자루질부터 해주세요.”

“응.”

한율이 잡혔던 손가락을 빼내자 고양이가 항의했다. 므아앙.

고양이는 아주 작은 틈새로도 액체처럼 빠져나올 수 있기에, 한율이 화장실을 꺼내는 동안엔 다른 사람이 틈을 막아주었다.

“감사합니다.”

수십 개의 케이지에 있는 화장실을 꺼내 청소하고, 모래를 깨끗한 걸로 교체하고. 그다음엔 지저분해진 식기를 설거지했다.

므와앙.

“한율아, 쟤 너 부르는 것 같은데?”

“한율 오빠는 고양이들에게도 인기 만점이네욥.”

“능력 있는 집사를 알아보는 촉이 좋은 걸지도?”

“오호? 나를 간택해라? …아, 오빠한테 부담 주려고 한 말은 아니었어요….”

마스크를 쓰고 있어, 한율은 눈으로 생긋 웃었다.

청소를 끝낸 후엔 고양이들에게 사료와 간식, 깨끗한 물을 챙겨주었다. 강보배가 스스로 밥을 먹지 못하는 어리거나 아픈 고양이들을 직접 챙기는 동안, 한율은 목욕이 필요한 고양이들을 씻겼다.

므와오앙.

봉사활동은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끝났다.

“사진 찍을게요!”

오늘 함께 봉사활동을 한 50여 명이 모여 단체 사진 한 장. 캣앤프리 측에서 준비한 기부 물품 앞에선 캣앤프리 직원들과 한율, 소장과 한 장. WB래빗이 준비한 기부 물품 앞에선 WB래빗 식구들끼리 한 장. 이프림이 준비한 기부 물품 앞에선 어스래빗과 팬들이 함께. 박현우와 박현우 팬클럽이 기부한 물품 앞에서도 촬영은 이어졌다.

“찍습니다! 하나, 둘!”

한율은 기부 금액이 적힌 패널을 소장에게 건네는 모습도 찍었다.

찰칵.

어스래빗 멤버들은 오늘 봉사활동에 와 준 팬들과도 여러 장의 사진을 더 찍었다. 정말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듯이.

“오늘 정말 수고했어요. 많이 힘들었을 텐데.”

“고마워요, 이프림.”

“아니에요!”

“뿌으듯!”

“다들 조심히 들어가세요!”

“오늘 와줘서 정말정말정말 고마워요!”

“이프림 사랑해!”

“어스래빗 사랑해!”

“또 올게요! 빈말 아니고 정말로!”

한참 동안 작별 인사를 나눈 후엔 각자 타고 왔던 차에 올랐다. 차남석이 자신의 옷과 손에서 나는 냄새를 맡았다.

“방호복이랑 장갑 다 벗었는데도 아직도 강아지 냄새나는 것 같다.”

“오늘 호 형도 왔으면 좋았을 텐데.”

“먼지 날리는 곳에서 힘든 일까지 하면 눈 상태가 안 좋아질 수도 있다니, 어쩔 수 없지.”

이들의 유기 동물보호소 봉사활동 및 기부 소식은 다음 날 아침, 포털사이트 연예뉴스란 메인에 올라갔다.

[어스래빗, 팬들과 함께 유기 동물보호소 찾아]

[어스래빗·배우 박현우·캣앤프리의 훈훈한 기부]

[캣앤프리, 광고 모델 서한율과 봉사활동 및 사료 후원]

[어스래빗 서한율, 유기 동물보호소에 4천만 원 기부]

[2월 2일 보이그룹 어스래빗의 멤버이자 배우 서한율이 유기 동물보호소에 4천만 원을 기부했다.

최근 고양이 사료 브랜드 캣앤프리의 전속 모델이 된 서한율은…(중략).

한편 서한율은 수익금 전액을 ○○어린이 복지재단에 기부하는 ‘설맞이 WB래빗 플리마켓’에도 2천만 원 상당의 물품을 내며 훈훈함을 자아냈다.]

-어린 친구가 인성이 훌륭하네ㅎㅎ

-이런 게 진정한 플렉스지. 매일 허세랑 허영심에 쩔어서 명품 처바르고 돈 자랑에만 급급한 애들보단 백 배 낫다.

ㄴ얘도 명품 처바르고 다니는데? ㅋㅋㅋㅋ

ㄴ너 독해력 떨어지지? ‘만’<<<< 주목

ㄴ자기 돈 어떻게 쓰든 본인 마음 아닌가요? 좋은 일 한 건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긴 한데, 비교로 깎아내리면서 기부 강요하진 맙시다.

ㄴ무슨 명품을 처바르고 다녀요ㅋ 누가 보면 매일 비싼 옷만 입는 줄 알겠네

ㄴ팬들이 선물한 옷도 자주 입고 다닙니다. ..난 아직도 서한율이 토끼 면상 크게 그려진 핑크 후드티 입은 모습이 생생해

ㄴ뒤에 ‘언빌리버블톢’ 써진 그 티ㅋㅋㅋㅋ

-지금 기자 하나가 취재한다고 플리마켓 들어갔는데ㅋㅋ 서한율이 내놓은 한정판 신발 하나 슬쩍 새치기해서 사려고 했다가 마찬가지로 신발 노리고 온 다른 손님들한테 항의받고 쭈그러짐ㅋㅋㅋ

ㄴ엌ㅋㅋㅋㅋ

ㄴ그때 그 신발 기사 쓴 기잔갘ㅋㅋㅋㅋ

“이런, 벌써 목격담이.”

WB래빗 소속 아티스트의 소장품으로 열린 ‘설맞이 WB래빗 플리마켓’은, 오픈 2시간 만에 물품이 모두 판매되어 종료되었다.

인터뷰를 위해 남은 기자가 머쓱하게 웃었다.

“면목이 없네요. 하하….”

어스래빗 멤버들은 입가에 조용히 미소를 그렸다.

기자가 한정판 신발을 살피는 척하다가 집어서 카운터로 가려던 순간, 입구 근처에 줄 서서 기다리던 남자 입장객들이 한꺼번에 ‘그거 내려놓으세요!’라고 외친 게 떠오른 까닭이었다.

“그럼 인터뷰 시작하겠습니다. 어스래빗은 2년 전 크리스마스에 이어서 올해도 봉사활동과 플리마켓으로 선행을 했는데요, 각자 한 분씩 소감을 들어볼게요.”

최근 마무리한 앨범 활동 소감과 칠레에서의 비하인드, 그리고 멤버 셋의 스위스 여행과 바로 어제 봉사활동, 봄에 진행될 월드투어 계획까지.

인터뷰는 30분 가까이 진행되었다.

“마지막으로 본지 독자님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아, 잠시만요. 직장 동료가 톡을.”

기자가 양해를 구하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한율의 옆에 앉은 라이언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배고파.”

“조금만 참아요.”

그때, 기자가 조금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한율을 쳐다보았다.

“저기, 한율 씨.”

“네.”

“혹시….”

머뭇거리던 기자가 조심스레 물었다.

“경기도 산속에 따로 집 짓고 있어요?”

어차피 복근 공개는 길우성 몫

[어스래빗 서한율, 정말로 비밀기지 짓나?!]

[‘비밀기지도 하나 지어보고 싶어요.’ 작년 KBC <목톡톡>에 출연한 서한율이 한 말이다. 그리고 본지 취재 결과, 현재 정말로 그가 경기도의 한 산속에 저택을 짓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해당 산은 서한율의 외가가 오랫동안 소유하고 있던 사유지로, 저택 시공이 진행 중인 일대는 서한율이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외조부가 서한율에게 증여…(중략).]

-와... 그사세가 따로 없다 진짜 ㄷㄷㄷ;

-서민들은 집 한 채도 없어서 월세 전전하는데 누군 부모 잘 만나서 아파트도 모자라 산에다 비밀기지까지 짓네ㅋㅋㅋ ㅅ1발 인생

ㄴ네가 자식에게 그런 부모가 될 생각은 없고?

ㄴ이젠 돈도 가진 사람만 벌게 되는 세상이란 걸 모름? 잼민인가

ㄴ잼민이ㅋㅋ 연옌 할 재능이랑 얼굴이 안 되면 공부라도 빡세게 하고 불평하세요ㅋ 부모가 뼈빠지게 번 돈으로 학원 보내놓으면 맨날 잠이나 처자고 피방 다니면서 패드립이나 치고 다녔을 과거가 환히 보이네. 아니면 현재진행형이신가?

ㄴ서한율 정도면 물려받은 것보다 더 많은 돈 벌 텐데ㅋㅋㅋ

-중학교 입학선물로 땅 받은 거? 미쳤다ㅋㅋㅋㅋㅋ

-형 나 n년차 고시원 취준생 응애 천원만

-지금 나만 이 기사에 소름 돋나? 범죄자도 아니고 연예인이란 이유 하나로 스무 살짜리 애 뒤를 캐서 사유재산을 전 국민한테 까발린 거잖아;

-기자들 무섭네.. 사유지에 짓는 집까지;

-얜 정말 아이돌 하고 싶어서 하는 건가 보다.. 나 같으면 평생 돈 굴리면서 놀 텐데ㅋ

-어떻게 지을지 기대된다ㅎㅎ

ㄴ말만 비밀기지고 실상은 별장 아닐까요?

인터뷰를 끝내고 회사로 돌아가는 차 안. 멤버들은 기자가 알려준 기사를 핸드폰으로 보았다.

“참 별걸 다 캔다. 그렇게 할 일이 없나?”

“규모까지 적어놓은 거 보면 시공 현장도 직접 본 것 같은데…. 이거 최초보도한 곳 고소해야 하는 거 아냐? 사유지라 허락 없이 들어가는 건 무단침입이잖아.”

인터넷 기사를 보던 한율은 가볍게 핸드폰 전원 버튼을 눌렀다.

“담당 공무원이나 시공업체 관계자들, 인부들까지 더하면 이미 알고 있던 사람이 수십 명이라서요.”

“그래도 고소하면.”

유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뭐 이런 걸로 고소하냐 이러면서 나중에 더 질척거리겠지. 우리에 관한 악의적인 기사도 쏟아낼 거고.”

“아무튼 기자가 벼슬이야, 벼슬. 에휴….”

“그래서.”

박가람이 한율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우리는 언제 비밀기지로 초대할 생각이지, 서한율? 남석이랑 우성이한테는 이미 보여줬다며.”

“나중에 시간 되면요.”

“건우 형이랑 우성인 내일 병원 몇 시에 가? 같이 안 가도 괜찮겠어?”

“아침에 승우 형이랑 가기로 했어. 괜찮아.”

“아, 으아…!”

“우성, 왜 그래?”

라이언이 돌연 제 머리를 부여잡는 길우성을 살폈다.

“생각해보니까… 내일 수술 받으면 한동안 운동 못 하잖아…!”

“식스팩 내기 때문에 그래?”

“으음…. 수술을 미룰까…?”

“지금 미루면 언제 다시 시간 날지 모르는데, 고작 내기 하나 때문에 수술을 미루겠다고?”

“그럼 써한 네가 대신….”

“물론, 네 개인 사정이긴 하지만.”

“뭐지, 이 자식?”

나중에 게이트가 열리고 세상이 난리가 났을 때, 안경이 박살 나기라도 하면 여러모로 귀찮아질 터다. 시간이 지날수록 렌즈 수급도 힘들어질 테고.

“그냥 내일 받아. 지난번처럼 렌즈 잘못 껴서 눈물 줄줄 흘리느라 메이크업 수정 시간 잡아먹지 말고.”

“……!”

“동갑내기 친구의 잔잔한 구타.”

상처받은 표정을 과장되게 지었던 길우성이 부들부들 떨었다.

“말을 해도 꼭 저딴 식으로 해, 나쁜 시키.”

다음 날 아침, 설 하루 전.

길우성과 이건우가 시력 교정 수술을 받기 위해 안과로 향하고, 박가람과 강보배는 라이언을 데리고 강원도로 출발했다. 남은 세 사람은 회사로 갔다.

설 연휴라 회사는 평소보다 조용했다. 그러나 남자 연습생들과 어스래빗이 사용하는 지하엔 음악이 흘렀다.

“점심은 후배들이랑 같이 먹을까?”

데뷔곡부터 차례대로 안무 연습을 하던 중. 시력 교정 수술을 받은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아, 앞에서 연습을 봐주던 유호가 물었다.

“형이 사는 거예요?”

“응. 설 연휴에도 나와서 연습하는 거 기특하잖아. 오늘 구내식당 안 열기도 하고.”

“네.”

세 사람은 땀만 닦고선 남자 연습생들이 사용하는 연습실을 찾았다.

똑똑. 안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통유리를 두드리자, 안무 연습을 하던 네 명의 연습생이 고개를 돌렸다가 우뚝 동작을 멈췄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오늘 나온 연습생 중엔 어스래빗과 함께 연습생 생활을 하고, 작년 뮤닷 에 임승준, 변지욱과 함께 나갔던 김권도 있었다. 다른 셋은 작년에 새로 들어온 연습생들이었다.

“한식? 아니면 중식? 양식?”

함께 점심을 먹자는 유호의 말에 그들은 반색을 표했다.

“아무거나! 사주시는 거라면 뭐든 좋습니다!”

“형, 저는 닭가슴살 샐러드에 아메리카노요.”

“어차피 복근 공개는 우성이 몫 아냐?”

“그래도요.”

배달 앱으로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엔 후배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겪는 어려운 부분에 관해 묻고, 본인의 경험담을 토대로 조언하거나 하며.

“아. 오늘 지욱이랑 승준이 형 회사에 잠깐 오겠다고 했는데, 정확히 몇 시에 올지는 모르겠어요.”

“그래? 전화 한번 해봐야겠다.”

“내가 할게요.”

차남석이 임승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 나오는 거 보니까 폰은 돌려받은 것 같은데…. 어, 임승준? 어디냐?”

“선배님, 저기…. 감사합니다.”

그때 한 연습생이 한율에게 고개를 숙였다.

“뭐가요?”

“선배님 덕분에 화장품 살 돈을 아끼게 됐어요.”

“아.”

한율이 모델로 있는 더순한화장품에서는 신제품이 나오거나 브랜드 홍보 이벤트 반응이 좋을 때마다 한율에게 기초화장품 세트를 선물로 잔뜩 보냈다.

개인이 소비하기엔 무척 많은 양이라, 한율은 그걸 멤버들과 회사에 넘겼고, 회사에선 연습생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화장품이 순해서 정말 좋더라고요.”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요.”

“말 편하게 놓으세요. 제가 두 살 아랜데.”

“제가 이게 편해서요.”

“아….”

“선 긋는다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

어느새 임승준과 통화를 끝낸 차남석이 끼어들었다.

“데뷔하기 전 편하게 말놓고 지낸 동생들 몇 명 빼곤, 데뷔한 후부턴 아무리 친해져도 말을 안 놓더라고, 얘가.”

“아, 그러시구나. 조금 상처받을 뻔했어요.”

그때였다.

벌컥. 변지욱이 문을 활짝 열며 요란하게 등장했다.

“우리가 왔드아!”

임승준이 변지욱의 머리를 가볍게 누르며 안으로 들어왔다.

“다들 하이.”

점심을 먹고 난 후 어스래빗 멤버 셋은 원제로 멤버 둘과 어스래빗 연습실로 들어갔다. 변지욱은 들어오자마자 연습실 안을 산만하게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와, 이거 전에 아시아 투어에서 찍은 거야? 대박 잘 나왔다. 오! 저건 팬들이 만들어준 거야?”

“건들면 안 돼. 눈으로만 봐.”

“네엡.”

차남석은 미니 냉장고에서 음료를 꺼냈다.

“뭐 마실래?”

“따뜻한 건 없냐?”

“커피 드실래요?”

“어.”

한율은 연습실 선반 위에 놓인 전기포트에 생수를 쏟고 스위치를 눌렀다. 유호가 임승준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너희 괜찮아? 요 며칠 시끄럽던데.”

“하아….”

유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임승준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변지욱이 쪼르르 유호 옆에 앉았다.

“솔직히 우리, 따돌림이니 뭐니 이런 이슈가 터진 것도, 팬들끼리 싸움이 일어났던 것도 최근에서야 알았어. 인터넷 되는 건 죄다 압수당했거든. 바깥소식을 알 수 있는 매개체가 있어야 알든가 말든가 하지.”

“몰폰 가진 사람도 없어?”

“유지 형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워낙 부정적인 이슈라, 알면서도 일부러 말 안 한 것 같아. 가족들도 마찬가지고.”

“정민솔은?”

임승준과 변지욱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대답하기를 망설이는 변지욱 대신 임승준이 입을 열었다.

“사과하더라. 자기 때문에 그룹이랑 멤버들 이미지 안 좋아졌다고, 앞으로 행동 조심하겠다고.”

“사실… 우리도 이런저런 일 겪으면서 민솔이 형을 조금 소홀히 대하긴 했거든. 그게 딱 티가 났나, 프로답지 못했나 하는 생각도 들어.”

“아무튼 그 일 계기로 멤버들끼리 대화를 좀 많이 했어. 앞으로 같이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1년 반밖에 안 남았는데, 그 남은 시간을 이런 식으로 보내는 건 너무 아깝다. 뭐… 대충 이런?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 팀이니까.”

“그래서 나도 모르게 색안경을 쓰고 다른 사람을 대하진 않는지, 팬들 눈엔 어떻게 비치는지 한두 번 더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해.”

유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변지욱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다 컸네, 변지욱.”

“흐흐.”

“…….”

한율은 말없이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커피를 임승준에게 내밀었다.

“고마워.”

“승준이 넌 <락뮤닷> MC 준비 잘 돼가?”

“그거 하려고 오늘 회사 왔어. 호 형, 도와줄 거지?”

유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휴식 시간이 끝난 후 변지욱은 회사로 데리러 온 가족의 전화를 받고 나갔다. 유호는 임승준과 함께 보컬 연습실로, 한율은 차남석과 다시 안무 연습을 시작했다.

늦은 오후엔 연습을 끝내고 차남석과 헬스장으로 향했다. 한율은 관장과 간단히 상담을 나눈 뒤 본격적으로 운동에 돌입했다.

“관절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오, 잘하네!”

목표는 로건 워커처럼 우락부락 근육질 체형이 아닌, 호리호리하면서도 단단한, 아이돌에 걸맞은 몸과 식스팩을 만드는 것.

몇 시간 동안 운동을 한 후엔 다시 회사로 가서 혼자 노래 연습을 하다가 밤이 돼서야 숙소로 돌아왔다.

실내에서 선글라스를 낀 길우성이 그들을 맞이했다.

“다녀들 오셨소.”

“눈은 괜찮아? 어때?”

유호가 묻자 길우성이 기다렸다는 듯 두 손을 허우적거리며 징징거렸다.

“아팠어! 시려서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눈물도 줄줄 나오고…. 지금도 머리가 아파, 큰형….”

“고생했다, 우리 막내. 두통은 사나흘이면 괜찮아질 거야. 건우는?”

“방에 틀어박혀서 안 나와. 우나 봐.”

“밥은 먹었냐?”

“엉. 샌드위치랑 김밥.”

한율은 방으로 들어가 옷 몇 벌을 챙겨 다시 나왔다. 내일 새벽, 부모와 함께 시골로 내려가기로 했다.

“안 씻고 그냥 가게?”

“집에 가서 씻으려고요.”

“써한, 고양이들한테 안부 전해줭.”

“운전 조심하고, 설 잘 보내.”

“네, 다들 모레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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