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6화 (146/427)

* * *

2월 5일 설날. <2019 설특집 아이돌 스포츠대회>가 방송되었다. 한율은 외가에서 쌍둥이 사촌 동생들과 함께 방송을 보았는데, TV에도 한율이 나오자 색이 다른 설빔을 입은 쌍둥이들이 한율을 졸랐다.

“오빠, 사진 찍자.”

“학원 친구들한테 자랑할 거야.”

“사진, 사진.”

어느새 쌍둥이는 8살이 되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이젠 한율이 어떤 일을 하는지, 친구들에게 ‘TV에 나오는 사람’이라고 자랑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모양.

“그래.”

한율은 TV 속 자신의 모습도 함께 나오도록 쌍둥이들과 사진을 찍었다.

찰칵.

“…이상해. 다시 찍어.”

“다시 찍어.”

“그래. 하나, 둘.”

찰칵.

“…또 찍어.”

“그래.”

찰칵. 촬영은 쌍둥이들이 만족할 때까지 반복되었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쌍둥이들의 아버지, 최은후가 한율에게 슬쩍 귀띔했다.

“곧이곧대로 말 듣지 말고, 엄청 예쁘고 귀엽게 잘 나왔다고 칭찬해. 그래야 끝나.”

“아.”

친가에 갔을 땐 사촌 누나인 서한림이 사진을 부탁했다. 함께 찍는 게 아닌, 서한율의 단독 셀카를.

찰칵. 셀카를 찍고 핸드폰을 돌려주자 서한림이 물었다.

“그런데 너도 따로 고양이 키울 거야?”

“아니요.”

“흐음.”

“왜요?”

“너희 회사 홍보 블로그에 동물보호소 봉사활동 사진이 잔뜩 올라와서 봤거든. 그래서 너도 보호소에서 고양이 데려오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특히 이 고양이.”

서한림이 캡처한 사진을 띄워 핸드폰을 넘겼다. 못생긴 검은 고양이가 한율의 손가락을 잡은 사진이었다.

“퓨마랑 좀 닮지 않았어?”

“퓨마가 더 예쁘죠.”

“아무튼.”

한율은 고개를 저었다.

“끝까지 책임질 자신 없으면 데려오지 않는 게 낫다고 봐서요. 생명이잖아요.”

“돈도 많으면서.”

“집을 비우는 시간도 많으니까요.”

“그래, 너 참 신중하다. …이 고양이.”

서한림이 머뭇거리다 말했다.

“일주일 후에 안락사된다더라.”

“네?”

한율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구겼다.

당시 유기 동물보호소에 기부할 때, 보호 중인 동물의 의무 보호기간이 지나도 안락사를 시키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소장의 포부와 약속을 들은 까닭이었다.

한 해에 유기되는 동물은 수만 마리. 그렇기에 현실적으로 지켜지기 힘든 약속이란 건 알지만, 이렇게 빨리 깨질 줄이야.

“내가 잘 아는 언니가 이 보호소 지역 동물병원에 들어갔거든. 그쪽 통해서 들었대. 지금은 너희가 한 봉사활동이랑 기부로 언론이랑 사람들 관심이 쏠려서 일주일이나 미뤄진 거라고. 오히려….”

서한림이 살며시 입술을 깨물었다가 말을 이었다.

“기사가 나가니까 그제랑 어제, 그 앞에다 몰래 개랑 고양이 버리고 가는 사람이 늘었다더라.”

나중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율은 핸드폰 속 사진으로 시선을 내렸다. 염증이 심해 한쪽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앙상하게 말라 뼈밖에 없던 못생긴 고양이.

당시 직원이 지나가듯 한 말이 떠올랐다.

『신기하네요. 우리한텐 하악질하고 심하게 경계했었는데, 이렇게 얌전히 목욕도 다 받고.』

잠시 생각에 잠긴 한율에게 서한림이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네가 홍보 좀 하면 어때?”

“입양 홍보요?”

“응. 분명히 지금도 연휴랍시고 키우던 동물 버리는 것들이 있을 텐데, 아예 대놓고 ‘우리가 다녀온 뒤로 유기 동물이 더 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러면서 호소도 하고, 홍보도 하는 거지. 솔직히 일반인들이 아무리 모여서 외치는 것보단, 유명하고 평판 좋은 연예인의 한 마디가 더 영향력이 크잖아.”

한율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한림에게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생각해볼게요.”

서울로 돌아올 무렵, 포털사이트 연예뉴스란엔 올해도 아스대에서 엑스텐을 꼭꼭 채운 한율의 양궁 기사가 메인에 올라왔다.

[…이제 더는 아이돌계에 자신의 적수가 없다는 걸 공표한 서한율은, 다음 아스대부턴 양궁 종목에 한해선 선수가 아닌 현장 리포터나 코치로 활약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신궁의 배려ㅎㅎ

-솔직히 처음 한두 번만 짜릿했고 그 담부턴 당연히 쟤가 되겠네 라고 긴장이 느슨해지긴 했음ㅇㅇ

-코치할 땐 꼭 융복 갖춰 입고 영상도 따로 찍어주세요.(진지) 그리고 중요한 건 꼭 같은 남돌만 가르칠 것. 여돌과의 사소한 스킨십이나 눈 맞춤은 절대 용서 못 한다.(근엄)

“한율아, 그럼 당분간은 안 바쁜 거지?”

조수석에 앉은 모친이 물었다.

“네. 광고 촬영이 있기는 하지만요.”

“이번에 무슨 광고 찍는다고 했지?”

“금연 공익광고요.”

부친이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아들 하난 참 잘 키웠어.”

“율인 스스로 알아서 잘 컸죠.”

“그나저나 지난번에 뜬 집 관련 기사, 정말로 가만히 둘 거냐? 어떻게, 내가 확.”

“괜찮아요. 연휴 지나면 회사에서 정식으로 항의하기로 했거든요. 그리고 언젠가 밝혀질 거란 예상도 했고. 그것보다….”

한율은 한 호흡을 쉰 후 말을 이었다.

“두 분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 * *

2월 6일 밤. 각자 설을 쇤 어스래빗 멤버들이 라이브 방송을 위해 연습실로 모였다. 스타일리스트 팀에서 준비해준 한복을 차려입고.

“가람이 형, 이번 명절엔 사촌 형이랑 안 다퉜어?”

“그 인간 군대 갔어. 아주 나이스한 일이지.”

“라방 하기 전에, 모두와 상의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뭔데?”

멤버들의 시선이 한율을 향했다. 조금 전 안약을 넣어서 반짝거리는 길우성과 이건우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유기 동물보호소 고양이를 임보하고 싶어요.”

“고양이?”

“고양….”

멍하니 읊조리던 길우성이 두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훅 다가왔다. 타닥!

“고양이를 키운다고?!”

한율은 길우성의 면상을 손끝으로 밀어냈다.

“키우는 게 아니라 임시 보호.”

한율은 서한림에게 들은 이야기, 오늘 아침 동물보호소장과 통화한 내용을 멤버들에게 전했다. 멤버들의 표정은 점점 심각해지다가 분노로 얼룩졌다.

“무책임한 인간들 많다, 진짜.”

“끝까지 책임질 자신 없으면 키우지를 말든가, 중간에 사정이 생겨도 어떻게든 좋은 곳에 보낼 생각을 해야지!”

“보호소 앞에다 버리면 그나마 낫다고 생각한 건가?”

한율은 멤버 개개인의 반응을 살피며 말했다.

“어쨌든 당분간은 크게 바쁘지 않으니까 한두 마리 임보하면서 입양 홍보를 하고 싶은데, 그 전에 멤버들의 동의를 구하는 게 올바른 순서 같아서요. 집주인 말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은 일단 접고, 솔직히 말해주세요. 동물을 키우는 데에 구성원 누구 하나라도 불편하면 안 되잖아요.”

멤버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연습생 시절부터 몇 년 동안 봐온 터라 다들 고양이를 좋아하는 건 잘 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과 직접 돌보며 지내는 건 별개.

“고양이로 한정한 건 아파트라서 그런 거지?”

“네. 그리고 개는 하루에 최소 2시간씩 산책시켜줘야 하잖아요. 만약 입양이 안 될 시엔 우리가 거둬야 하는데, 앨범 활동이랑 해외 스케줄이 잡히면 돌봐줄 사람도 마땅치 않고요. 고양이는 여차할 때 부모님이 봐주시기로 했거든요.”

“으음. 그러고 보니 이상하게 우리 주변엔 고양이 키우는 사람들만 있는 것 같아.”

“이제설 선배님 개 키우지 않나? 전에 비글이랑 같이 전력 질주하시던데.”

“끌려가던 게 아니라?”

“아니, 그분에게 개를 맡기기엔 좀….”

그들은 진지하게 임보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예고했던 라이브 방송 시간이 되었을 땐 진지함을 거둬내고 생글생글 웃었다.

“이프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프림 올해도 건강하고 행복하자!”

* * *

2월 7일 아침. WB래빗의 입장문을 다룬 기사가 포털사이트 연예뉴스란에 올라왔다.

[WB래빗, ‘아티스트 과도한 사생활 침해 언론사 유감’]

[걸그룹 크리스탈 래빗과 드림래빗, 보이그룹 어스래빗의 소속사인 WB래빗 엔터테인먼트가 7일 아침 소속 아티스트의 사생활을 과도하게 침범하는 언론사에 관해 입장문을 내놓았다.

WB래빗은 지난 3일, 어스래빗의 멤버이자 배우 서한율이 경기도에 저택을 짓고 있다는 사실을 본인의 동의 없이 공개한…(중략).

한편 서한율은 외조부에게 증여받은 대지와 부모로부터 증여받은 아파트, 외제차 등 현재 수십억 원대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내일 8일 대한예고 졸업을 앞두고 있다.]

-....사생활 침해 언론사 유감이라는 제목을 써놓고 지도 다 까발려놨네..

다음 날인 8일엔 연예뉴스 포토뉴스란에 한율과 길우성의 사진이 올라왔다.

[[포토뉴스]오늘 8일 어스래빗 서한율·길우성 고교 졸업!]

[오늘 8일 보이그룹 어스래빗 멤버 한율, 우성이 대한예고 졸업식에 참석했다.

(사진=앗싸일보).]

“써한.”

졸업식이 끝난 뒤 멤버들과 함께 온 화단 앞. 길우성이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그들 곁에는 그린라이브 영상 콘텐츠 VJ도 있었다.

“내가 준비한 너의 졸업 축하선물이야.”

“선물? 같이 졸업하는 거라 난 따로 준비….”

스윽. 말을 하던 한율은 길우성이 내미는 걸 보곤 입을 다물었다. 고양이용 수제 간식이었다.

“…….”

길우성이 생글생글 웃었다.

“집사 길만 걷자, 친구.”

“…그래, 아주 고오맙다.”

한율은 멤버들에게 선물 받은 꽃다발에다 길우성이 건넨 고양이 간식을 꽂았다.

꺄아! 귀여워! 경호원들과 매니저들, 학교 경비원들 사이로 비명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어디선가 대한예고 교복을 구해서 입고 들어온 사생 스토커들이 핸드폰이나 대포 카메라를 들이댔다.

“남석아, 여기 봐! 차남석!”

“밀지 마세요, 다쳐요!”

“길우성! 졸업 축하해!”

“관계자가 아닌 분은 나가주세요! 경찰에 신고합니다!”

조유찬이 황급히 다가와 속닥거리듯 말했다.

“안 되겠다, 얘들아. 촬영 그만하고 빨리 나가는 게 좋겠어. 이 이상은 다른 사람들이랑 학교에 민폐야.”

“네.”

본래는 학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그린라이브에 올릴 영상을 촬영할 계획이었으나, 멤버들은 다른 졸업생들과 가족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하며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뒤에서 악을 쓰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것만 전해주겠다고! 나 쟤들 팬이라고…!”

“후….”

차에 타자마자 길우성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식으로 많아진 인기를 실감하고 싶진 않았는데,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쳐버리다니….”

“길우성 까분다.”

“호 형한테서 영통 왔다. 형, 출근 잘했어?”

-[응. 졸업식은 잘 끝났어?]

강보배가 핸드폰을 높이 들어서 빙글 돌렸다. <뮤직센터>로 출근한 유호가 카메라에 대고 손을 흔들었다. MC 대기실이었다. 뒤로 지나가던 MOHE의 이해원이 슬쩍 끼어들어 손을 흔들었다.

-[졸업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유호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왜 차 안이야? 촬영도 벌써 끝낸 거야?]

“여차여차해서 일찍 나가려고.”

-[그래….]

정확한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지만, 유호는 짐작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율이랑 우성인 오늘 저녁 뭐 먹고 싶어? 형이 사줄게.]

“치킨!”

“샤브샤브요.”

-[응. 닭고기 샤브샤브 먹자. 그럼 조심히 잘 갔다 와.]

“응, 나중에 봐!”

“수고하세요, 형.”

강보배는 한율과 길우성 쪽으로 돌렸던 핸드폰을 바로 하고 통화를 끊었다. 운전석에 앉은 현장전이 그제야 시동을 걸었다.

차는 우선 WB래빗으로 향했다.

차에서 내리기 전, 이건우가 멤버들에게 당부했다.

“너무 임시 보호에 초점 두지 말고, 우리가 끝까지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신중히 살펴. 알았지?”

길우성과 차남석, 조유찬도 내리며 한마디씩 했다.

“안전 운전하고!”

“애들 사진 보내.”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꼭.”

“네, 나중에 봐요.”

오늘 한율은 지난번 동물보호소를 다시 찾기로 했다. 차남석은 광고 미팅, 이건우와 길우성은 먼지가 많은 곳은 피해야 해서 강보배, 라이언, 박가람. 이 셋과 함께.

목적은 다음 주에 데려올 고양이들을 살피는 것.

“캣타워는 몇 시에 온대?”

“5시 배송 예정이요.”

한율은 대답하면서 SNS에 졸업식 사진을 올렸다.

“승우 형이 대신 받아주기로 했어요.”

“숙소에 캣타워라니…! 빨리 조립하고 싶다.”

“승우 형이 조립까지 다 해준다고 그랬는데.”

“안 돼. 내가 할 거야.”

강보배가 윤승우에게 톡을 보내는 동안, 박가람과 라이언은 해당 동물보호소의 입양 공고 페이지를 살폈다.

박가람이 우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감당할 수도 없으면서 무턱대고 데려오는 것 또한 무책임하지만…. 마음 아프다. 살릴 수 있는 애가 아니라, 죽게 둬야 하는 애를 고르는 것 같아서….”

라이언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현실 생각해야 해. 개인의 힘으론 한계 있어.”

“…라이언 너 진짜 한국말 많이 늘었다.”

그날 밤.

똑, …똑.

포근한 온기가 감도는 한율의 방. 한율은 한 방울씩 천천히 떨어지는 링거액을 가만히 보았다. 기다랗게 연결된 링거관을 따라 시선을 내린 곳엔 새카맣고 못생긴 고양이가 있었다.

비틀거리면서도 동물병원 수의사에게 하악질을 하고 입으로 호흡하며 흥분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고양이는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잠들어있었다.

『한율 씨 품에서 떨어지면 너무 불안해하니, 괜찮으면 댁으로 데려가시는 게 어떨까요. 안정제나 수면제를 투여하기엔 몸이 너무 약해진 상태라….』

오늘 당장 고양이를 데려올 계획은 없었지만, 지난주 봤을 때보다 건강 상태가 나빠져 인근 동물병원으로 데리고 갔었다. 그리고 수의사의 말을 듣고 숙소로 데려왔다.

똑똑. 누군가 방문을 노크했다.

“네.”

길우성이 문을 조용히 열며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작은 목소리로 소곤.

“들어가도 되냐?”

“안 돼.”

“네….”

길우성이 뒤로 슬슬 물러나며 문을 닫고 퇴장했다. 한율은 속으로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집었다.

찰칵. 카메라 앱 소리에 고양이 귀가 움찔 떨렸다. 하지만 눈은 뜨지 않았다.

[임시 이름 지어주실 분. #특징_검고못생김 #암컷5개월]

사진과 함께 SNS에 업로드.

이내 팬들의 댓글이 달렸다.

-웬 고양이?!

-퓨마치곤 작은데 누구야?

-애기 어디 아포??

-봉사활동 갔을 때 율톢 손가락 잡았던 그 고앵이다8ㅅ8

-특징 검고 못생김ㅜㅜㅋㅋㅋ

-?????!!!!! 설마 보호소에서 데려온 거?!!

-고양이 어디 아픈 거야ㅜㅜ?

-지구토끼 고양이니까 달냥

ㄴ[Seo Hanyul]달냥 좋네요. 감사합니다! :D

ㄴ오

ㄴ빨라

ㄴ이름 너무 초스피드로 결정한 거 아니니ㅋㅋㅋㅋ

ㄴ그래 고민은 우리한테 맡기고 율이 넌 달냥이 잘 살펴줘;ㅅ;

한율은 핸드폰을 내려놓곤 ‘달냥’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특별히 뭔가를 하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자신을 잘 따르는 걸 보면, 마나에 유독 예민한 개체일지도 모른다.

‘척후 훈련을 차근차근 시키면 나중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고양이 특성상 나무도 잘 탈 테고, 몸도 날랠 것이다. 여기에 털까지 온통 새카매서 어두운 곳에선 눈에 띄지도 않을 터.

고민하던 한율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그래도 고양이는 너무 약해.’

뻔뻔한 게 매력이잖아

토요일 아침 일찍, 한율은 강보배와 함께 달냥을 데리고 본가의 고양이들이 다니는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어제 갔던 동물병원에서 챙겨준 달냥의 진료기록을 들고.

므앙.

“굉장히 얌전한데요? 주사도 잘 맞고, 착하네~.”

“한율이가 잡고 있어서 그래요, 선생님.”

“앞으로 케어만 잘해준다면 크게 문제없을 거예요. 눈의 염증도 전염성을 띤 질환이 아니기도 하고. 하지만 다른 고양이와의 합사는 스트레스를 줄 수 있으니까, 데려오게 된다면 공간을 완전히 분리했다가….”

숙소로 돌아온 후 한율은 달냥을 자신의 방에다 풀었다. 얌전히 잠만 자던 어제와 달리, 달냥은 킁킁 냄새를 맡으며 한율의 방을 돌아다녔다. 발코니에 놔둔 모래 화장실을 찾아가 볼일을 보고, 모래를 꼼꼼하게 잘 덮기까지.

“방에서 한율이 네 냄새 나니까 안심되나 보다. 원래부터 이 집에 살던 고양이처럼 자연스러운데?”

“그러게요. 좀 뻔뻔한 것 같기도 하고.”

“고양이야 원래 뻔뻔한 게 매력이잖아.”

한율은 어제 강보배가 조립해서 거실에다 둔 캣타워를 그와 함께 방으로 옮겼다. 그리고 팬들의 선물을 놓아둔 선반 중 한 칸을 비워서 고양이용품으로 채웠다.

“그래도 가만히 보니까, 경계심은 강하지만 겁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아. 사람 보고 숨진 않는 거 보면.”

한율은 화장실을 나와 부르르 터는 달냥을 보았다. 달냥도 한율을 보았다. 므앙.

“다른 멤버들이랑 만나면 확실히 알 수 있겠죠.”

한율은 달냥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넌 여기에서 얌전히 놀고 있어. 어제랑 오늘 병원 다녀오느라 수고했다.”

뫙. 달냥의 사료와 물을 넉넉히 챙겨주고 나선 방문을 닫고 회사로 출근했다.

토요일이었지만 회사 3층 회의실엔 많은 사람이 모였다. 4월에 진행할 데뷔 2주년 팬 콘서트와 미국, 유럽, 호주 투어에 관한 세부적인 논의 및 설명을 들었다.

회의실을 나온 후엔 6월에 깜짝 발매할 디지털 싱글 수록곡 노래와 안무 연습, 투어 공연 연습이 이어졌다.

“써한.”

저녁 시간. 연습실을 나가기 전 길우성이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달냥이, 아직 아픈 앤데 너무 혼자 두는 거 아냐?”

“그래서 지금 잠깐 다녀오려고.”

“나도 같이 가.”

“그러든가.”

어차피 다녀와서 다시 안무 연습을 해야 하는 터라, 두 사람은 씻지 않은 꼬질꼬질한 모습을 모자와 마스크로 대충 가리고 외투를 걸쳤다.

잠시 후.

“달냥아, 안녀엉.”

하악!

“어흑….”

달냥은 생각보다 아주 잘 있었다. 그릇에 채워둔 사료나 물의 양도 어느 정도 줄어있었고.

한율은 고양이 화장실을 청소해준 후 물을 새로 갈아주었다. 안약을 넣기 위해 안자, 달냥은 얌전히 배를 드러낸 채 차려자세를 취했다.

달냥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멀찍이 서 있던 길우성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뭔데, 이 노골적인 차별은….”

“넌 오늘 처음 만나는 거나 다름없잖아.”

“아. …그런데.”

길우성이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보배 형 말 들어보니까 달냥이도 새끼 때 유기됐었다던데…. 써한 너한테 기껏 마음 열었는데, 나중에 다른 집사한테 가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그건 일단 이놈이 건강해지면 그때 생각하려고. 정 안되면 내가 계속 키우고.”

“오올.”

“금방 또 올 테니까 얌전히 있어.”

므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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