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7화 (147/427)

* * *

2월 12일. 온갖 연습, 식스팩 만들기, 고양이 케어로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한율은, 어제에 이어 오늘도 샵을 찾았다. 어제는 광고 촬영 때문이었지만 오늘은 <2019 백호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함이었다.

영화 <고양이 난로>로 부윤방은 신인감독상 후보에, 한율은 신인남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오, 축하해.”

“……?”

메이크업을 우선 끝내고 헤어 아티스트를 기다리던 중. 누군가 한율의 뒤를 지나쳐 옆자리에 앉았다. 배우 윤승권이었다.

“신인남우상 후보에 오른 거.”

“감사합니다, 선배님. 오랜만에 뵙네요.”

같은 샵을 다니곤 있지만, 이렇게 마주친 건 2년 전 가을 이후로 처음이었다.

“난 전에 네가 8시 뉴스에 나온 걸 봐서 그런가, 그렇게 오랜만인 것 같지 않다. 야, 그런데 너희 진짜 인기 많아졌더라. 성공했어.”

짝짝짝. 윤승권이 웃으며 박수쳤다.

“감사합니다.”

얼핏 보면 친한 사이끼리 장난치듯 축하해주는 것 같지만, 표정이나 과장된 몸짓에선 비아냥이 느껴졌다. 사람에게 값을 매기는 듯한 관찰하는 시선도 여전하고.

“선배님도 남우주연상 후보 오르신 거 축하드려요.”

“아직 축하받기엔 이르지. 후보들이 쟁쟁한데.”

모순적인 태도. 조금 전 자신에겐 신인남우상 후보에 올라 축하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다 거울 속에서 실실 웃는 그의 낯짝을 보며 깨달았다. 그는 ‘신인남우상 정도는 당연히 타야지. 나는 그보다 급이 높은 곳에서 쟁쟁한 후보들과 경쟁하지만?’이라는 의미를 품고 축하를 던진 거라는 걸.

아주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겸손한 태도지만, 이쪽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피는 표정이나 눈빛으로 보아 이 또한 비꼬는 것에 가깝다.

하지만 그에게 신경이나 시간을 할애하기엔 아까우므로, 한율은 눈치채지 못한 척 미소 지었다.

“신중하시네요.”

“…….”

순간 윤승권의 눈썹이 미묘하게 일그러졌지만, 한율은 제게 다가오는 헤어 아티스트에게 시선을 돌렸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안녕, 한율아. 어제 광고 촬영은 잘했어?”

“네, 덕분에요. 그리고 이거.”

한율은 테이블에 올려놓은 종이가방을 들어서 넘겼다.

“어제 클라이언트가 선물로 나눠준 홍삼 제품인데, 선생님들 드리려고 조금 챙겨왔어요.”

“어머, 고마워! 잘 먹을게!”

한율은 기뻐하는 아티스트를 따라 빙긋 웃곤 자연스레 눈을 감았다. 찰나, 옆 거울 속 윤승권의 눈썹이 더 일그러지는 걸 봤지만 무시했다.

위잉. 요란한 드라이어 소리 사이로 윤승권이 다른 아티스트에게 하는 말이 들렸다.

“하하, 역시 젊음이랑 인기엔 못 당하겠어.”

잠시 후 <2019 백호영화제> 시상식장 앞 레드카펫.

쌀쌀한 늦겨울 밤이었으나 그곳엔 기자들과 배우를 보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차분하게 잘 다녀와.”

“네.”

연예인이 타고 다닐 법한 새카맣고 커다란 밴이 등장해서 그런지, 기자들의 카메라가 일제히 이쪽을 향했다. 먼저 조수석에서 경호원이 내리고, 곧 뒷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차카차카차칵!

배우로선 처음이지만 가수로선 여러 번 밟았던 레드카펫. 한율은 바로 앞에서 눈을 때리는 수십 개의 플래시에도 환하게 웃었다.

“한율 씨! 이쪽 좀 봐주세요!”

“서한율 씨! 오늘 신인남우상 탈 것 같으세요?!”

음악 시상식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여기엔 따로 레드카펫 인터뷰가 없다는 것. 기자나 리포터의 질문에도 일일이 응할 필요가 없으나, 한율은 악을 쓰듯 외치며 묻는 연예 프로그램 리포터를 향해 대답했다.

“뻔뻔하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시끄러운 셔터 소리와 어디선가 ‘한율아아!’라고 부르는 소리에 묻혀 제대로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리포터는 만족하는 얼굴로 웃었다.

차카차카차칵.

이전 영화시상식 영상으로 예습한 바에 따르면, 포토월에 서서 포즈를 취하는 시간도 음악 시상식과 달리 아주 짧았다. 배우들에게 포즈를 따로 요청하는 일도 없진 않으나, 기본적으로 배우들이 그런 요청을 다 들어줄 거란 기대가 낮다는 게 느껴졌다. 연기할 때와는 달리,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는 데에 어색해하고 부담스러워하는 배우들도 많고.

하지만 한율이 아이돌이라 그럴까.

“귀여운 토끼 부탁드릴게요!”

“고양이! 못난이 흉내 내는 윤우 부탁드릴게요!”

“어스! 래빗!”

“멋진 포즈 부탁해요!”

거리낌 없이 포즈 요청이 쏟아졌다.

한율은 무수한 카메라를 향해 머리 위로 두 손을 올려 토끼 귀처럼 까딱하는 포즈, <고양이 난로>의 ‘못난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되, 심드렁하면서도 뻔뻔해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앨범 재킷을 찍을 때처럼 각기 다른 분위기를 몸에 두르기도 하고.

누군가 외쳤다.

“서한율 최고다!”

마지막으론 평범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곤 시상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이 모습은 <2019 백호영화제>가 생중계되는 SBC, 너튜브의 SBC 채널을 통해서도 고스란히 나왔다.

-역시 본투비 아이돌

-쑥스럽게 손하트 겨우 하는 다른 배우들이랑 진짜 다르네

-방금 서한율 리포터한테 뭐라고 대답한 거예요ㅜㅜ?

-보아라 저것이 몇만 명의 팬과 기자들, 사생 스토커, 악플러들에게 시달려도 꿋꿋하게 웃을 수 있도록 훈련된 대한민국의 아이돌이다

-신인남우상 얘가 받을 것 같다. 연기도 그렇고, 인기랑 평판도 좋아서

-카메라 플래시가 사방에서 터져도 꿈쩍하지를 않네ㄷㄷㄷ

-엄청 시끄러워서 안 들렸음

-심장 폭행범 토끼

-정장 핏에다 비율, 얼굴까지 미침

시상식장 의자에는 모두 배우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한율은 진행요원의 안내를 받아 이동하면서, 눈이 마주치는 모든 배우와 감독들에게 꾸벅꾸벅 인사했다.

“한율아.”

멀찍이 앉은 이제설이 반갑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한율은 그에게도 웃으며 고개를 꾸벅였다.

백호영화제는 걸그룹 퍼플아워의 축하공연으로 막을 올렸다. 매년 이런 시상식에서 축하공연을 대하는 배우들의 태도 논란이 불거져서 그런지, 배우 대부분은 잘 모르는 노래지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전히 무심한 얼굴로 멀뚱멀뚱 무대를 보는 사람도 있었으나, 한율은 즐겁게 경청하는 태도를 보였다.

툭툭. 옆에 앉은 배우가 한율의 팔을 치더니 귓가에 대고 물었다.

“저 중에 따로 아는 사이 있어요?”

한율은 고개를 저었다. 배우가 재차 물었다.

“후배들일 거 아녜요. 정말 친한 사람 없어요?”

“네, 없어요.”

“아아….”

그는 다소 실망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한율과 부윤방 감독이 후보로 오른 ‘신인감독상’과 ‘신인남우상’ 시상은 1부에서 발표되었다. 우선 신인감독상. 부윤방은 아쉽게 수상에서 밀려났다. 이어서 신인남우상 발표.

[2019 백호영화제 신인남우상.]

[축하합니다. <고양이 난로>의 서한율 님.]

[서한율 님은 첫 스크린 데뷔작 <고양이 난로>에서 높은 몰입도와 세심한 감정 연기를 선보이며….]

한율은 박수와 축하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에게 꾸벅꾸벅 인사하며 무대로 올라갔다. 작년 신인남우상 수상자로 시상하기 위해 나온 배우들이 웃으며 꽃과 트로피를 건넸다. 무대 뒤 대형 전광판에는 현재 한율의 모습과 영화 속 ‘윤우’를 연기했을 때의 모습이 나란히 떴다.

“감사합니다.”

한율이 스탠딩 마이크 앞에 서자, 아주 먼 관객석 쪽에서 높은 목소리가 들렸다.

[장하다, 서한율!]

이프림인 모양이었다.

한율은 정면 카메라와 눈앞의 배우와 감독들, 관객을 향해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영화 <고양이 난로>에서 ‘윤우’ 역을 맡았던 서한율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한율은 처음 <고양이 난로> 대본을 받았을 때의 감정을 시작으로, 매끄럽게 수상 소감을 이어나갔다.

<2019 백호영화제> 생중계 채널 톡.

-수상하면 감격해서 눈물 글썽, 입술 떨면서 말실수도 하고 울먹거리는 게 신인상 국룰 아니었나요

-오해하지 마세요, 여러분. 이미 여러 차례 상을 받은 전적이 있어서 의연한 거지, 감격하지 않은 건 아니랍니다. 워낙 차분하고 솔직한 성격이라 그래요ㅎ

“…그리고 언제나 저의 큰 버팀목이 되어주신 부모님과 지금 함께 TV를 보고 있을 어스래빗 멤버들, 팬 분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특히 영화 촬영 내내 먼 촬영장까지 안전하게 운전해주고 힘이 되어준 매니저 유찬이 형, 정말 고마워요. 마지막으로 부윤방 감독님, 이렇게 따뜻하고 좋은 작품으로 스크린 데뷔를 할 수 있도록 제안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 조금 전 마지막이라고 말했는데 실수했네요. 아직 더 남았거든요.”

-시선 처리 OK, 발성과 딕션 OK, 실수인 척 미소 완벽.

-어쩐지 낯이 익더라니, 설에 했던 아이돌 무슨 대회에서 양궁 잘하던 애네ㅎㅎ

-아이돌이에요??? 배우 아니고???

-솔직히 신인남우상은 못난이들이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 인간보다 고양이 연기가 얼마나 더 어려운데!!

-쟤가 어떤 애냐면, 공연 도중 흔들리는 조명 탑 보면서 차분하게 관객들한테 대피하라고 말한 애임ㅇㅇ

-연기천재 아이돌입니다ㅎㅎ

-못난이들 암컷이에요..

-서한율 신인남우상 축하해! :D

<2019 백호영화제>는 자정이 될 무렵 끝났다. 그리고 수상자는 상을 안겨준 영화 팀과 함께 회식하는 게 보통이었으나, 한율은 <고양이 난로>팀과 배우들에게 양해를 구해 식당에서 인사, 미리 결제만 하고 떠났다.

바로 내일도 아침부터 광고 촬영이 있는 까닭이었다.

“그쪽 팀 주연배우는 어디 갔어요? 신인남우상 탄 친구.”

어쩌다 보니 같은 식당에서 회식하게 된 다른 영화팀의 스태프가 <고양이 난로> 제작사 눈길 프로덕션 스태프에게 물었다.

“내일 아침 일찍 광고 촬영이 있어서 먼저 갔어요. 계산까지 미리 다 해놓고.”

“벌써 대스타네.”

“아이돌이기도 하잖아요.”

그들의 대화를 듣던 다른 배우가 픽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연기만 잘하면 뭘 하나….”

그러곤 일행에게만 들릴 정도로 험담을 늘어놓았다.

“배우 이미지를 저급하게 깎아내리는데. 품격 갖춰야 하는 시상식에 여자애들 끌고 와선 살살 눈웃음이나 치고. 역시 딴따라 티 어디 안 가지.”

그 순간, 그의 뒤를 지나가다 이야기를 들은 배우 이윤영이 멈칫했다.

“방금 뭐라고 그러셨어요, 선배님?”

그렇게 보이기는 해

“예능 섭외가 들어왔습니다.”

토요일 오후. 연습실에 모인 어스래빗 멤버들 앞에서 오동식 팀장이 말했다.

“뮤닷에서 올여름 편성 예정인 프로그램으로, 아직 탑티어에 오르지 못한 보이그룹을 한자리에 모아 단체 여행을 보내고, 그 과정에서 다른 아이돌과 자유롭게 콜라보 혹은 유닛 공연을 준비하며 아직 대중에게 낯선 실력파 아이돌을 보여주는 게 기획 의도라고 합니다. 상세한 내용은 바뀔 수 있으며 첫 녹화는 6월.”

“6월이면 투어에서 돌아온 바로네요?”

“우리 그때 디지털 싱글로 컴백하잖아요. 그것까지 소화하려면 엄청 빡셀 것 같은데….”

TV 프로그램에 섭외되는 건 무척 기쁜 일이기는 하나, 그건 음악방송 활동과 겹치지 않을 때의 얘기다. 자칫하면 피곤함과 수면 부족으로 집중력이 떨어지는 모습만 카메라에 잡혀, 이미지가 오히려 나빠질 수 있다.

오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뮤닷 측에 너희들 컨디션이 걱정되어서 힘들겠다고 말하려…던 찰나.”

오 팀장이 콧잔등 아래로 흘러내리는 안경을 고쳐 쓰며 미간을 찡그렸다.

“드림래빗의 안부를 묻더군요.”

“……!”

“뭐야, 우리 후배를 빌미로 협박한 거예요?”

“이런 나쁜 방송국 놈들!”

“정확히는 거래를 제시하더군요. 너희들의 다다음 쇼케이스 및 단독 리얼리티 편성 가능성까지 들먹거리며.”

흥분하려던 멤버들이 어깨에서 스르륵 힘을 뺐다.

“아….”

상대는 세계 각국의 K-POP 팬들이 꼭꼭 챙겨보는 뮤닷이다. 단독 리얼리티 편성은 굉장히 좋은 홍보 효과를 낳을 터.

“해당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 따로 준비해야 할 건 있나요? 예를 들면 특별 무대나… 개인기?”

“반 리얼리티 성격을 띠고 있으니 부담 없이 편하게 몸만 오면 된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최종적으로 다른 아이돌 그룹과 공연을 해야 하므로, 그 과정이 마냥 편하진 않을 겁니다.”

“같이 섭외 논의 중인 팀은요? 몇 팀 출연 예정이에요?”

“그건 촬영 당일까지 비밀이라고 합니다.”

“탑티어 제외면… 원제로도 빠지겠네? 걔네 벌써 음방에서 1위 몇 번 했잖아.”

“글쎄…. 뮤닷의 아들들인데 뺄까?”

“안 뺄 듯.”

“그럼 전달 사항은 이것으로 끝. 각자 할 일들 하세요.”

연습실 바닥에 앉아있던 멤버들이 일어났다. 한율은 캐비닛으로 향했다. 차남석이 나란히 옆에 서서 캐비닛을 열었다.

“고양이들 상태 보고 갈 거지?”

“네.”

“나도….”

“길우성 넌 랩 레슨 있잖아.”

“가고 싶지만 어쩔 수 없구먼….”

바로 어제, 어스래빗 숙소에는 새로운 고양이 두 마리가 더 들어왔다.

설 연휴 동안 누군가 보호소 앞에 함께 버린 고양이들로, 그중 한 마리는 들개로부터 다른 고양이를 보호하기 위해 맞서 싸우다 다쳐서 수술, 입원 치료를 받다가 어제 퇴원했다.

“참 대단한 것 같아.”

“뭐가요?”

한율의 차를 타고 숙소로 가는 길. 차남석이 문득 말했다.

“파랑이 말이야. 귀가 안 들려서 갑자기 시야에 나타난 들개 보고 자기도 많이 놀랐을 텐데, 흑당일 제 몸 바쳐 지켰잖아. 자기 새끼도 아닌데. 그런 거 보면… 고양이가 사람보다 더 나은 것 같다.”

한율은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게요.”

“그나저나 어제 네가 올린 SNS 때문에 난리 났더라.”

어젯밤, 한율은 개인 SNS에 넉 장의 사진을 올렸다. 누군가 동물보호소 앞에 동물을 유기하는 장면이 담긴 CCTV 영상 캡처본이었다. 유기범의 얼굴과 차 번호는 모자이크 처리했다.

[우리는 무책임한 당신을 위해 그 아이들을 도운 게 아닙니다.]

해당 SNS는 곧 기사화되었다.

[어스래빗 서한율, 동물 유기범에 분노의 일침!]

-버리면서 속으론 사료도 많고 기부금도 많이 받은 곳이니 괜찮겠지? 적어도 위험한 길에 버리진 않았잖아? 이러면서 자기합리화했을 거 생각하니 토 나온다.

ㄴ엄동설한에 도로 한가운데나 산에 버린 것도 아니고 보호소 앞에다 버린 거면 그나마 나은 거 아닌가? 뭔가 사정이 있었겠지

ㄴ잡았다 이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누군가의 선한 마음을 이용하는 기생충인가요?

-예전에 <선데이 동물>에서 유기 동물 돌봐주는 착한 아저씨 이야기 나오니까 인간들이 죄다 그 집 앞에다 개 버리고 간 거 생각난다..

-요란하게 사료 퍼다 나르고 기부 자랑하면 저런 인간들 나올 거 전혀 예상 못 한 건가? ㅋㅋㅋ멍청

ㄴ너도 네가 방구석 열폭러가 될 거란 걸 예상 못 했잖아.

ㄴ냉소적인 게 멋있는 줄 착각하는 찐따는 입 다물고^^

ㄴ열폭러ㅋㅋㅋ 나 연봉 8천 받는데? 찐따보다 못한 루저가 처웃네^^

ㄴ너한테 8천이나 주는 멍청한 회사가 있다고? 야 나도 소개 좀 해주라

-동물한테 ‘아이’ ㅇㅈㄹ하는 것들 ㅆ극혐. 인간한테나 관심 가져봐라, 위선자들아. 동물 유기는 누가 한다? 한때 동물한테 내새꾸쪽쪽♡하던 인간들이 버리지, 멀쩡한 사람이 다른 집 개고양이 납치해서 버리진 않는다. 이것이 팩트.

ㄴ하고 싶은 말은 알겠는데 눈치 챙겨 아싸놈아

ㄴ키우던 동물 유기나 하는 인간한테 관심을 가지라고?

-여기 보호소 안락사 공고 떴습니다.. 보호 중인 동물도, 며칠 사이 새로 들어온 동물도 너무 많아 재정적으로 더는 힘들다고요.

ㄴ2주도 안 되는 사이에 기부금 4천을 다 쓴 거?

ㄴ뭔가 이상한데.. 누가 중간에 꿀꺽한 거 아님?

ㄴ보호소 대부분은 기부금 들어오는 족족 급한 빚(사료 대금, 병원비)부터 해결해야 해서 항상 적자입니다.. 애초에 나라에서 받는 지원금이나 예산도 얼마 안 되고요..

-돈 많으니 본인이 거두면 되겠네ㅎㅎ

ㄴ이미 세 마리 거뒀다 ^Hㄲ야

ㄴ아니 왜 욕을 하고 구랭..ㅜㅜ

우웅.

거치대에 둔 한율의 핸드폰에 [블블 민준 선배님]이 떴다.

“내가 대신 받을까?”

“네.”

“…네, 선배님. 차남석입니다. …서한율이 지금 운전 중이라서요. …네. …네, 알겠습니다. 나중에 뵐게요.”

통화는 금세 끝났다.

“너 운전 중이라니까 선배님 엄청 놀란다.”

“선배님 입대하고 난 후에 몰기 시작했으니까요. 어디로 오래요?”

“톡으로 보낸대.”

바로 어제, 작년 10월에 입대한 블블의 민준과 수재가 첫 휴가를 나왔다. 그리고 오늘 함께 만나 저녁을 먹기로 했다.

차남석이 가볍게 웃었다.

“선배님들 만나면 군대 얘기만 하는 거 아닐까 모르겠다.”

차남석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한율과 차남석은 약속 시간에 맞춰, 회사에서 랩 레슨을 마친 길우성을 픽업해서 약속 장소로 향했다. 오래간만에 만난 두 사람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것까진 좋았다. 그들이 미필자들에게 겁을 주고자 과장과 허세를 잔뜩 섞은 군 이야기를 장대하게 풀어놓기 전까진.

“새겨들어. 나중에 너희도 다 갈 곳이야.”

“하하하….”

한율은 본래 세상, 그리고 잠시 미군으로서 온몸으로 겪은 전쟁을 떠올리며 조용히 경청했다.

요즘 이 나라 군대는 그렇구나.

“그나저나… 힘들지는 않아?”

“뭐가요?”

수재가 조심스레 말했다.

“너희들 몇 달 동안 이런저런 일 있었잖아.”

차남석은 걱정하지 말라는 얼굴로 웃었다.

“괜찮아요. 사고 날 뻔한 그 순간이 트라우마로 자리 잡으려고 할 때, 좋은 선생님께 상담을 받았거든요. 그리고 데뷔 후 나도 모르게 외면한 힘든 일에 대해서도 하나둘 털어놓다 보니까, 오히려 전보다 조금 나아진 것 같아요.”

“상담?”

“서한율 빼고 멤버 전부 심리상담센터 가서 받았어요.”

민준이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회사에서 예약 잡아준 거야? 한율이 넌 왜 안 갔어?”

“전 괜찮아서요.”

“아니, 그래도….”

“써한은 강철 멘탈 소유자입니다, 선배님. 정치인을 해도 끄떡없을 멘탈 소유자.”

길우성의 단언에 차남석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민준은 한율의 얼굴을 잠시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래. 그렇게 보이기는 하는데.”

대화 주제는 자연스레 어스래빗 멤버들의 근황으로 넘어갔다가, 시시콜콜한 잡담으로 이어졌다. 길우성은 달냥과 파랑, 흑당의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했다.

“토끼집에 머무는 고양이들입니다. 귀엽죠? 사랑스럽죠?”

“얘네 아까워서 어디 다른 곳 보낼 수 있겠어?”

“군 복무만 아니면 당장 데려가서 키울 텐데….”

“군에서도 고양이 키우지 않아요? 짬타이거.”

“냥덕 선임들이 차지해서 나는 한 번도 못 만져봤어.”

그들은 후식까지 느긋하게 다 먹고 나서야 식당을 나왔다.

“정말 면회 안 가도 괜찮아요?”

“괜찮아. 그럼 다들 잘 지내고, 나중에 통화하자.”

“네.”

“먼저 들어가, 형.”

“들어가십쇼!”

수재는 부모님이 있는 본가로 간다며 먼저 택시를 타고 떠났다. 남은 넷은 주차장으로 향했다.

“드디어 한율이가 운전하는 차에 타보는 건가?”

“가는 데까지 안전하게 모셔드릴게요.”

들뜬 얼굴로 한율의 차를 여기저기 살피던 민준은 조수석에 탑승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고등학생이었는데, 세월 참 빠르다.”

“저희도 선배님이 군인이란 게 신기해요.”

“군대 썰 더 들려줘?”

뒷좌리에 나란히 앉은 차남석과 길우성이 동시에 대답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너희는 이제 다시 회사로 들어갈 거야? 아니면 숙소?”

“회사요. 연습을 더 해야 해서.”

“크으.”

철컥. 민준이 안전벨트를 매며 세 사람을 돌아보았다.

“너희는 앞으로 더 뜰 거야. 내가 장담한다.”

“감사합니다.”

“그럼 너희 회사 앞으로 가자.”

“……?”

의아해하는 한율을 보며 민준이 말했다.

“사실 한율이 너한테 조용히 알려줄 일이 있거든.”

잠시 후 WB래빗 엔터 주차장. 차남석과 길우성이 먼저 회사 안으로 들어가고, 차 안엔 한율과 민준만 남았다.

민준이 전해준 이야기를 들은 한율은 천천히 한숨을 쉬었다.

지난 수요일 <백호영화제>가 끝나고 회식을 하던 중, 한율의 험담을 늘어놓던 배우가 이윤영에게 ‘혹시 서한율한테 꼬리 쳐서 배역 따냈냐?’라고 모욕했단 이야기였다.

“큰 말다툼으로 번지기 직전에 옆에 있던 사람이 ‘이 자리에 영화 제작사 관계자랑 감독, 스태프, 배우들 다 모여있는데 분위기 망칠 거냐.’라고 해서 꾹 참았대. 하지만 윤영 씨 상태가 조금 이상해서 누나가 집요하게 물어봤더니…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더라고.”

민준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윤영 씨는 괜히 불쾌감만 줄 것 같으니 너한텐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 사람은 널 모욕한 거기도 하잖아.”

“그 사람이 누구라고요?”

“이강대라고… 아, 이 사람.”

민준이 핸드폰으로 포털사이트에 이름을 검색해 프로필을 띄웠다. 백호영화제 당시 처음 만나 인사만 나눈 배우였다.

한율은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기 위해 스크롤을 내렸다. 한 가지 이력이 눈에 들어왔다.

[KBC <장인(匠人)> 주연 - 곽종무 役 (2019 방영 예정)]

작년, 윤상진의 부탁으로 한율이 1화에서 젊은 시절을 연기했던 ‘곽종무’ 역의 배우였다.

한율은 민준에게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알려줘서 고마워요, 선배님.”

“뭘.”

민준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사실은 누나도 그렇고 나도 이 새ㄲ… 아니, 이 막말하는 모자란 놈을 혼내주고 싶은데, 이런 일은 주변인이 더 나서면 안 되는 거잖아. 화도 네가 더 날 텐데.”

한율은 가볍게 미소 지었다.

“마음만 감사히 받을게요.”

바쁜 나날이 이어졌다.

어스래빗 멤버들은 동물 캐릭터가 나오는 귀여운 모바일 게임과 과자 단체 광고, 공연 연습, 운동, 다음 앨범 준비 등으로 바쁘게 보냈다. 그러면서 고양이들을 케어하고 입양 홍보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귀는 들리지 않지만 누구보다 용맹한 파랑! #대장미뿜뿜 #흑당과세트]

[파랑 믿고 까부는 흑당. 취미는 물그릇 분수 관람ㅎ #먹보 #머리박치기아픔]

[캣_킹_달냥 포스ㅎ #눈염증완치 #하루가다르게살찌는중 #서한율껌딱지]

임시 보호인 까닭에 입양 문의는 모두 동물보호소가 받고 있었다. 소장의 말에 따르면 멤버들이 SNS에 올린 첫날부터 문의가 쏟아지곤 있으나, 정말 고양이를 끝까지 책임질 마음보다는 어스래빗을 향한 사심으로 연락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고.

『그래도 직접 보호소까지 찾아와서 다른 아이들에게 관심을 두는 사람들, 후원자, 봉사자들이 많아졌어요. 정말 고마워요.』

SBC <선데이 동물> 측에서도 연락이 왔다. 명절 연휴 유기되는 동물 문제에 관해 취재하려는데, 파랑과 흑당의 사연을 넣어도 되겠냐고. 이는 동물보호소 측의 동의를 얻어 응하기로 했다. 촬영 장소는 당연히, 파랑과 흑당이 현재 머무는 어스래빗 숙소.

2월 24일 일요일 아침, SBC <선데이 동물>.

파랑과 흑당의 사연이 소개되었다.

그냥 제가 키우려고요

[<선데이 동물> 어스래빗 “우리의 선의는 무책임한 당신을 위한 게 아니다”]

[24일 아침 방송된 <선데이 동물>엔 지난 설 연휴, 동물보호소 앞에 버려졌다가 들개에게 공격당한 고양이 ‘파랑’과 ‘흑당’의 사연이 소개되었다.

두 고양이는 발견 당시 주인에게 관리를 제대로 받지 못해 털에 오물이 묻고 엉킨 데다가 영양 결핍에도 시달리던 상태였으며…(중략).

지난 2일 해당 동물보호소로 봉사활동 및 기부를 하며 인연을 맺은 보이그룹 어스래빗은 파랑과 흑당의 사연을 듣고 대신 병원비를 지급, 현재는 숙소에서 두 고양이를 임시 보호 중이다.

(방송 화면=SBC<선데이동물>)

앞서 해당 보호소에서 안락사에 당할 처지에 놓인 ‘달냥’을 임시 보호 중인 서한율은 15일 밤 개인 SNS에…(중략).

한편 경찰에 의해 잡힌 파랑과 흑당의 전 주인은 두 고양이의 소유권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버리는 XX 따로 있고, 병원으로 데려가 치료하고 돌보는 사람 따로 있고.

-진짜 대체 무슨 권리로 다른 사람의 선의를 당당히 본인 범죄의 합리화로 악용하는 건지 이해불가다.

ㄴ삐빅. 정상입니다ㅇㅇ

-나만 파랑이가 캣타워에서 배 까뒤집고 누워서 거꾸로 카메라 쳐다보던 거에 심장폭행 당한 거 아니지..?

ㄴ비포&애프터 모습이 너무 극명해서 웃음이랑 눈물이 같이 나오더라고요ㅎㅎ

-차 밖으로 무슨 쓰레기 투기하듯 툭툭 버리고 가는 거 보고 진심 욕 나왔다.. 나중에 지 자식한테도 그렇게 버림 받길

ㄴ동물이 자식이랑 같냐?

ㄴ동물 학대범이 모두 살인과 폭행을 저지르진 않지만, 연쇄살인마들은 모두 동물 학대 전적이 있다. 유기 또한 학대다. 생명을 경시하는 사고방식 소유자들이다.

-난 쫌 그렇던데.. 저렇게 잘 꾸며놓은 집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 보면 ‘내가 버려서 더 좋은 곳으로 갔네’ 합리화 오지게 할 거 아냐 그 쓰레기놈

-얘네 임시 보호 맞나요..? 캣타워랑 캣휠 엄청 비싼 거던데

ㄴ심지어 한강뷰 보이는 통창 앞ㄷㄷㄷ

-그냥 너희들이 키우면 안 되겠니

-파랑과 흑당은 굉장히 운이 좋은 경우입니다. 아파도 치료도 제대로 못 받고 시름시름 길에서 죽거나 안락사당하는 게 대부분입니다.

-아니 그런데ㅋㅋㅋ 독신 안 돼, 집 자가소유 아니면 안 돼, 일정한 수입 없으면 안 돼, 어린아이 있는 집도 안 돼, 한 달 동안은 전화 검사 받아야 돼ㅋㅋㅋ 이러면서 입양희망자를 찾는다고? ㅈㄴ까다롭네

ㄴ원래 동물 키우려면 그 정돈 다 갖춰야 합니다.

ㄴ남의 집 살면서 동물 좀 키우지 마라. 나중에 이사가고 나서 보면 장판 뜯겨있고 냄새도 지독하고 난리도 아니다. 집주인이랑 다음 세입자는 무슨 죄냐

방송의 영향력은 SNS나 기사보다 컸다.

다음 날이 되자 동물보호소장은 어스래빗이 임보 중인 고양이들에 관한 입양 문의는 물론이고, 보호소 봉사활동과 후원에 관한 문의도 빗발친다고 전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3월 1일. 파랑과 흑당은 함께 새 주인을 찾아 어스래빗 숙소를 떠났다. 달냥에게도 임시 보호자가 아닌 새 주인이 생겼다.

한율은 자신의 베개를 함께 베고 자는 달냥의 사진을 SNS에 올렸다.

[얘 그냥 제가 키우려고요. #눈뜨자마자보이는시커먼거]

단순히 정이 들었다거나 변덕은 아니었다.

하루는 가볍게 마나를 유동시키는데, 캣타워 방석에 누워있던 달냥이 다가와 골골거리며 몸을 비비적거렸다. 시험 삼아 살며시 마나를 흘려보냈더니, 게슴츠레하게 뜬 눈이 초롱초롱해지며 더 못생긴 표정이 되었다.

그래서 시험 삼아 한번 키워보기로 했다.

마법사의 고양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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